은빈이의 한글공부

은빈이는 내 조카.
이녀석이 요즘 한글을 읽고 쓰는데, 그 패턴이 재밌다.

1시기 :
동화책을 읽어주는대로 내용을 외어서 읽는다.
누가보면 진짜로 읽는 걸로 착각할지도 모른다.

2시기 :
몇 개의 글자를 알아버린다.
하도 세뇌를 받아서인지
가나다 같은 몇개 글자의 모양과 소리를 매치시키기 시작한다.
특히 ‘박’, ‘은’, ‘빈’을 잘 안다.
그러나 다른 글자는 모른다.
가끔 ‘하’, ‘파’ 이런 쉬운 글자도 잘 모른다.

3시기 :
가나다라마바사… 등등을 외운다.
간, 원, 주, 중, 신, 경, 림 등은 안다.
(원주, 아빠이름, 엄마이름이다.)
그래도 ‘붭’ 이런 글자는 절대 모른다.
물어보면 안배웠단다.

4시기 :
이제 자기 손으로 자기 이름을 쓴다.

ㅂㅏ  ㅇ  ㅂㅣ
  ㄱ   —    ㄴ
        ㄴ

뭔가 깨달은 듯한 느낌이나, 완벽하지 않다.
‘아빠’ 써보라고 하면

ㅇㅏ  ㅂㅂ-

이런 식이다.

5시기 : 요즘이다.
혼자서 글자를 쓰는데 여려운 글자만 골라서 지어내서 쓴다.

ㅂ        ㅅㅐ     ㄴ ㅏ  
ㅜㅔ      ㅗ        ㅜ
  ㅂ        ㅅ         ㄴ

이렇게 써놓고서
“뭐게?” 하고 묻는다.
“뷉”, “쇗”, “놘” 이라고 읽어주고서,
마지막 글자는 약간 틀렸다고 설명해주지만, 이해하진 못한다.
드디어 이녀석이 글자의 구성법칙을 대충이나마 이해하고서
자음, 모음을 조합해 글자를 만드는 재미를 느껴버린 것.

아마 좀 지나면

왜 ‘원주’가

ㅇ      ㅈ  
ㅗ ㅓ  ㅜ
ㄴ            가 아니고

ㅇ       ㅈ
ㅜ ㅓ   ㅜ
  ㄴ           인지 깨달을 날이 오겠지..

그때가 되면 한글을 완벽하게 쓸 줄 알것 같다.

그러면…
이녀석의 한글을 깨우쳐가는 과정은
완성형 → 조합형 → 완성형
인건가?

처음의 ‘완성형’과 마지막의 ‘완성형’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르다.
전자의 단계에서는, 글자를 뭔지 모르고 그냥 외운다. 세뇌작용이다.
그러나 후자의 단계에서는, 한글 구성법칙을 알지만 글을 읽으며 그걸 생각하진 않는다. 거의 반사작용과 같은 수준으로 우리는 글자를 읽을 것이다. 가끔 ‘햏’, ‘뾁’ 등의 글자가 우리의 머리를 회전시켜주겠지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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