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가 태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들

임신 출산 카페를 보면, 가끔씩 “임신 중에 술을 먹어요 되나요?”, “임신 중에 감기약을 먹어도 되나요?”, “임신 중에 … 해도 되나요?”와 같은 질문이 올라온다. 콜라, 커피, 녹차, 회 등을 먹어도 되느냐는 질문도 올라온다. 때로는 임신인 줄 모르고 술이나 약을 먹었다며 혹시 애를 지워야 하는지를 묻는 사람도 있다. 임신 관련 서적에도 “이러저러한 음식이나 행동은 위험할지 모르니, 또는 그 위험성이 알려져 있지 않으므로, 또는 악영향이 보고된 적은 없지만, 가급적 삼가는 것이 좋다”는 얘기가 꽤 있다.

카페에 올라온 질문에 대한 답변은 대체로 두 가지 형태를 띤다. 첫째는 어디서 들은 얘기를 토대로 한 조언 : “술은 절대 먹으면 안되요”(자신이 먹어 보고서 한 얘기는 아닐테니 -_-), “포도주 한 잔 정도는 괜찮다고 들었어요”, “아이를 생각해야지요. 약은 뭐든 먹으면 안되요”, “소화제는 괜찮대요”, “회 먹으면 안 된다고 들었어요”, “생선은 중금속 때문에 안 된대요”, “커피 먹으면 까만 애 낳는대요(-_-)”, “카페인은 태아에 안좋아요. 대신 사이다 드세요” 등등. 둘째는 자신이나 자기 주변의 경험을 토대로 한 조언 : “커피 자주 마셨지만 우리 애 아주 멀쩡했다”, “땅콩 먹었더니 애가 아토피가 생긴 것 같다” 등등.

이러한 수많은 조언들 중에서 어떤 조언을 신뢰해야 할까? 커피의 경우 원래는 안 좋지만 하루에 몇 잔 이하는 괜찮다는 식의 조언이 다수인데, 대체 커피의 카페인이 태아에 안 좋다는 얘기는 실제 연구 결과가 전해진 것일까 아니면 떠다니는 속설이 전해진 것일까? 또 그 몇 잔 이내는 괜찮다는 정량적인 조언의 출처는 어디일까? 개인적인 경험에 기초한 조언 또한 신뢰하기가 어렵다. “…해봤지만 멀쩡했다”는 얘기는 확률적으로 운이 좋았던 경우일 수도 있고, “A 때문에 B가 생긴 것 같다”는 개인적인 얘기는 수많은 가능한 원인 중에 하필 A를 지목한 이유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부부는 이런 조언들에 대해 그다지 신뢰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면서도, 각각의 근거를 찾아보는 것도 귀찮고 대충 그럴듯한 조언으로 보이는 것들을 취사 선택해서 적당한 선에서 지켜왔다. 예를 들면 커피는 위에 나온 대로 몇 잔 이내로 마시고, 이러저런 음식 먹지 말라는 조언은 모두 무시하고 골고루만 먹기로 했다. 하지만 근거가 별로 없어 보이는 조언들조차도 은근히 신경이 쓰이면서 스트레스가 생기는 것 같다. 부인님은 자신이 요즘 땅콩을 안 먹는 이유가 원래 안 좋아해서 안 먹는 건지 친구가 얘기한 땅콩->아토피 영향설에 신경이 쓰여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술의 경우, 임신 이후 부인님은 어쩌다 술 마실 기회가 있을 때 맥주 한 모금 입에 대는 정도로만 술을 마셔왔다. 그런데 꼭 그래야 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사실 난 사람들이 임산부 술 먹지 말라는 얘기가 별 근거 없이 “그냥 어른한테 안 좋으니 태아한테도 안 좋겠지” 하는 식의 추측성 얘기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주가 태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결과가 있기나 할까? 이러한 의심을 가지고 검색을 해봤는데, 웬걸… 생각보다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었다.

죽 훑어본 결과를 요약하자면, 알콜은 분자 크기가 작아 태반을 통과해 태아에게 쉽게 전달되며, 이 알콜은 태반의 혈관을 수축시켜 산소와 영양분의 공급을 방해하는가 하면, 특히 임신 초기(12-15주) 태아의 신경계 형성을 저해한다. 그래서 임신 기간 과도한 음주를 한 임신부는 그렇지 않은 임신부에 비해 정신 지체 및 얼굴 기형을 특징으로 하는 태아 알콜 증후군에 걸린 태아를 낳을 확률이 높다. 이는 거의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과도한 음주의 기준은 논란거리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정책적으로 임신부에게 금주를 권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영국 보건당국은 오랫동안 주 1,2잔의 포도주는 괜찮다는 권고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소량의 음주도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여럿 보고되고,[footnote]원숭이 실험 (1997년 한겨레)
소량의 음주도 태아의 반사 행동 발달 저해 (2005년 헬스조선)[/footnote] 임신중 음주를 한 임신부의 아이의 평균 지능지수가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2 포인트 가량 낮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면서,[footnote]실수로 창을 닫아 출처를 모르겠음 -_-;; [/footnote] 2009년부터 완전 금주를 권고하는 것으로 정책을 바꾸었다.[footnote]임산부 음주 제한, 권리 침해인가?[/footnote] 그래서 영국 정부는 현재 임신부 전체에게 식비를 지원하면서, 단서 조항으로 금주와 금연을 약속받고 있다.[footnote]하이닥 음주 흡연에 관한 게시물[/footnote] 그러나 논란은 아직 끝이 나지 않은 것 같다. 2008년 영국의 연구 그룹은 주 1-2잔의 음주를 한 임신부의 태아가 한 잔도 마시지 않은 임신부의 태아보다 오히려 행동장애가 적고 언어능력도 더 좋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 했다.[footnote]임신중 주당 1-2잔은 태아에 유익 (2008년 한경닷컴)[/footnote]  

기간에 따른 위험성을 다루는 논의도 정확하지 않다. 음주가 신경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신경계가 형성되는 임신 초기에 음주를 조심하라는 얘기는 대체로 일치한다. 소량의 음주도 위험하다는 2005년 헬스조선에서 소개된 연구도 사실은 임신 초기 음주의 영향을 다루고 있었다. 그러나 그 초기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는 불확실하다. 어떤 사이트에서는 첫 임신 3개월까지는 단 한번의 음주로도 태아에게 치명적인 신경계 발달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footnote]임신중 음주와 태아알코올증후군 (아가사랑)[/footnote] 수많은 임신부를 불안에 떨게 하면서 “임신인 줄 모르고 술을 마셨는데 임신이래요. 어떡하죠? 애를 지워야 하나요?”와 같은 질문을 올리게 만든 주범이 바로 이 얘기인 듯하다. 그러나 다른 사이트에서는 오히려 12주 이전에는 임신부의 몸이 태아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 걱정을 할 필요가 없고, 12주-15주 사이에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footnote]12주 이전의 음주는 큰 문제 없다 (스토리 서치)[/footnote] 내 느낌으로는, 특별한 근거는 없지만, 후자의 얘기가 더 맞을 것 같다.

그렇다면 임신 20주째에 접어드는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임신 초기도 지났으니 음주가 크게 위험할 것 같진 않다. 이제부터는 “임신중 주당 (포도주) 1-2잔은 괜찮다”는 연구 결과를 그냥 신뢰하고 조금씩 마셔도 되지 않을까 싶다. (맘에 드는 연구 결과만 취사 선택하는 건 어쩔 수 없다 -_-;;)

ps. 신기하게도 임신중 음주에 관한 연구를 찾아보면 영국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를 많이 접하게 된다. 아마도 소량 음주 vs. 완전 금주 사이의 논쟁이 크게 벌어지다 보니, 관련 연구가 많이 이루어진 것 같다. 

7 thoughts on “음주가 태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들

  1. 주당 포도주 1-2잔 정도가 괜찮다라는 걸 믿고 싶은 건, 아마도 그정도가 딱 욕구와 양심(?)을 조율할 수 있는지점이기 때문이 아닐까나? 지나친 금주는 오히려 음주욕구로 인한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고, 너무 많이 마시는 건 왠지 태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죄책감이 들 수 있을 듯. ㅋ

    약간 옆길로 새는 얘기지만, 영국에선 이상한 연구를 정말 많이 하는 듯 해. 얼마 전엔 “동안이 오래산다”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더라고. -_- 대체 이런 연구는 어디서 펀드를 따는 건지 모르겠음.

  2. 임신에 대한 여러가지 조언들을 보다보면 임신부의 죄책감을 자극하면서 이것저것 하지 말라는 것들이 많더군. 그런 것들을 보다보면 임신 중 모체는 그저 아기를 건강하게 낳는 것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 (보통 난 ‘숙주’라고 표현하지만)에 불과한 취급을 받는 게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들기도^^;; 태아를 위해 엄마가 조심해야 할 필요는 있겠지만, 지나친 건 안 좋지 않을까?

  3. 임신부에게 죄책감을 자극하는 지나친 제약은 분명 안 좋다고 생각하지만, 어디서부터가 지나친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ㅎㅎ. 호들갑스럽게 이것저것 모두 하면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싫으면서도, 가끔씩은 내가 지나치다고 생각했던 것이 결국에 지나친 것이 아닌 걸로 드러날 만일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순간 내가 저 사람을 싫어할 자격이 있나 싶기도 해.

    1960년대초 입덧방지약으로 권장되던 “탈리도마이드”를 먹은 임신부들이 기형아를 출산해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잖아. 그 당시에는 약의 부작용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거나, 있었더라도 그 약에 대한 의사들의 안전성 주장을 상당히 신뢰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 반편향으로 완전히 반대쪽 극단에 와 있는 것 같아. 이제는 의사들이 괜찮다고 해도 안 믿는 사람이 꽤 많은 듯. 적절한 지점은 그 중간 어디엔가 있을텐데…

    하지만 흥미로운 건, 약이 자기 자신에게 미치는 부작용에는 관대한 반면, 약이 아이에게 줄 부작용에는 엄청나게 민감한 것 같아.

    (뭔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나도 잘 모르겠군 -_-)

  4. “하지만 흥미로운 건, 약이 자기 자신에게 미치는 부작용에는 관대한 반면, 약이 아이에게 줄 부작용에는 엄청나게 민감한 것 같아.”

    –> 이건 다 인간의 주인이 유전자이기 때문이야. 새로 복제되는 유전자를 보호하는 게 진화적으로 더 중요하기 때문이지. ㅋㅋ

    그나저나 두타타는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나올지 매우 기대되는군 ^^

  5. 성욱/ 도킨스에게 쌓인 게 많은가? ㅋㅋ 난 그냥 은유나 비유, 또는 길게 써야할 걸 짧게 줄이기 위한 방법 정도로 생각려고 하는데 ㅎㅎ. 만약 ‘아이에게 더 신경을 쓰는’ 표현형에 책임이 있는 유전자가 있다면, 그 유전자는 ‘아이에게 덜 신경을 쓰는’ 표현형에 책임이 있는 유전자보다는 널리 퍼질 것 같긴 한데, 도킨스의 얘기는 결국 이런 결과론적인 표현을 보다 쉬운 이해(?)를 위해 ‘유전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목적론적인 표현으로 바꾸어쓴 것뿐 아닌가? 어쩌면 오해만 더 양산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6. zolaist/ 도킨스 본인도 그냥 은유라고 말하고 있는 듯. 설마 진짜라고 주장하겠어(-_-). 근데 일반인들은 내가 위에서 말장난(?)한 방식대로 ‘이기적 유전자’를 이해하거나 사용하는 경향이 대세인 듯. 거기엔 도킨스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긴 한 거 같아. ㅎ

    버트, 도킨스에게 쌓인 게 많아서 쓴 게 아니라 그냥 웃자고 한 농담이야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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