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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trix2 : Reloaded 왜 열광하고 비판하나…

영화잡지들마다 게시판마다
매트릭스2를 논하느라 법석이다.
‘프레시안’마저 매트릭스2 비판평론을 메인화면에 올려놓았다.

글쎄… 나조차도 이 글을 쓰게 만드는 것을 보면 엄청난 화두이긴 한 모양이다.

글을 시작하자. 아자! 아자!

매트릭스2에 실망하는 주흐름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내용없음.
둘째는 너무나 높은 기대감.

글쎄… 나는 두 가지가 함께 버무려져야 할 것 같다.
나는 막연히 기대의 양적 차이  때문에 실망이 나타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엄청나게 기대하고 영화를 본 재은이가 아직도 매트릭스에 열광하는 것이 그 반례이다. –.–;

문제의 핵심은 기대의 내용적 차이이다.
매트릭스 1편을 본 사람들이 느낀 흥분은 사람마다 그 내용이 다르다.
대충 몇가지로 나누어보자면,
첫째, 혁신적인 액션연출과 카메라워크 등의 형식적인 측면.
둘째, 수수께끼 같은 매트릭스 세계가 주는 호기심과 꼬인 철학적 사유
셋째, 시스템 통제라는 ‘매트릭스’라는 현실사회에 대한 상징과 그것을 깨부수는 해방감.

매트릭스 1편에서 둘째, 셋째는 매우 깊은 연관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서로 구분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2편으로 넘어오면서 수수께끼와 현실 사이의 사이의 간극은 너무 벌어져버렸다.

수수께끼는 게임과 애니매트릭스 등으로 매니아들을 사로잡으며 그 호기심을 증폭시켰고, 2편은 그것을 어느정도 만족시켰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매트릭스에 숨겨진 수수께끼들의 해답을 찾아내기 위해 안달이다. 재은이가 올린 ‘반쯤 맘에 드는 입장’을 봐도 엄청나지 않은가… 그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그러나, 현실사회에 대한 상징을 보여주던 ‘매트릭스’의 매력은 희미해졌다. ‘빨간약’을 먹고 시스템통제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것을 깨뜨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액션’과 ‘예언’으로만 대체되었다. ‘예언’을 좇아 아키텍트를 만나는 상황설정은 점점 ‘현실에 대한 상징’은 사라지고 그 위에 허구 그 자체만이 남았음을 보여준다. 물론 2편에는 ‘구원의 예언이 거짓이다’라는 암시가 끝에 나타나기 때문에, 2편만으로 실망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매트릭스’라는 영화에서 현실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 사람들에겐 허무함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real world’는 정말 ‘real world’일까.. ‘네오는 프로그램일까 사람일까’ 등등의 수수께끼들에 흥미를 가진다면 매트릭스는 여전히 재밌는 영화이다.

그런데, 비평가들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매트릭스는 1편부터 ‘뭔가 철학적인’ 영화가 아니었다.
철학적인 개념과 성경들을 인용하고 차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단지 구절인용이었을 뿐, 전체적으로는 오락영화일 뿐이었다.
어쩌면 매트릭스는 ‘철학적인 사유’를 원하는 영화라기 보다는
‘고급스런 패러디’ 영화인지도 모른다.

성경에서 ‘구원’을 패러디하고,
장자에서 ‘스푼은 없음’을 패러디하고,
맑스와 들뤠즈에서 ‘매트릭스:시스템의 통제’와 ‘빨간약:혁명’을 패러디하고

이정도의 패러디 실력은 정말 인정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원래 유물론적 세계관과 주관적 관념론, 객관적 관념론을 모두 패러디한 영화에서
뭔가 일관된 철학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수수께끼의 존재는 재미를 낳고 매니아를 낳는다.
매트릭스라는 영화가  현실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빨간약’의 혁명성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매니아는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아 자기만의 시나리오를 써나가거나
‘혹시 현실이 매트릭스는 아닐까’라며 순수 사변적인 철학고민에 빠질 수 있다.

매트릭스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은 3편이 궁금하지 않은가?

보론1: 맘에 안드는 장면

1. 군무 장면..
글쎄.. ‘인간적’이란 것을 그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나…

2. 트리니티와 네오의 사랑
‘인간적’인 것을 보여주기 위해 등장하는…
시스템의 오류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등장하는… ‘남녀간의 사랑’
왜 이것밖에 없는 것일까?
‘남녀간의 사랑’이 최고의 가치라는 듯 강변하는 듯해서 싫다.
그리고 그것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초월적인 힘’이라는 상징은 동의하기 어렵다.

현대에 들어,
유일한 초월자인 ‘하나님’의 위상이 격하되자
그 자리를 ‘남녀간의 사랑’이 대체하는 듯..

보론2 : 맘에 드는 장면

딱히 어디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질문

“선택의 자유란 있는가?”

‘통제와 자유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나에겐 잔잔한 고민을 남겨준다.
2편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현실세계에 대한 상징인 듯.

보통 이 사회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허나, 선택의 상황에서 그들이 취할 수 있는 ‘경우의 수’란 그리 많지 않다.

탈선하는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은 자유롭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대부분은 이 사회에서 규정되어진 몇가지 길을 가게 마련이다.
밑바닥인생으로 전락하거나,
후회하고 돌아와 현실에 적응하며 살거나…

대학을 진학할 때, 우리는 엄청난 자유가 있다. 엄청나게 많은 과가 있지 않은가..
그러나, 과연 우리는 선택의 자유를 누리며 과를 정했다고 할 수 있을까?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란 보통 두가지 쓰임새가 있다.
‘–으로부터의 자유’
‘–을 할 수 있는 자유’

전자는 보통 ‘소극적 자유’라 부르며, 후자는 ‘적극적 자유’라 부른다.
현대사회에서 ‘소극적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벗어나면 된다.
가정과 학교의 억압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청소년은 가출을 하면 된다.
그러나, ‘적극적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달리 말해,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의 ‘경우의 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왜 이런 얘기들을 주절거리지?

어쨌든…
아키텍트와 만난 네오.
네오가 취할 수 있는 수천가지의 경우의 수.
(네오가 취할 수 있는 논리적 경우의 수는 디지털화되어 있기 때문에 딱 수천개로만 정해져 있는 듯)
수천개로 정해져 있다 하더라도 무척 많은 논리적 ‘경우의 수’이다.
하지만 현실적 ‘경우의 수’는 인과관계를 따르게 마련.
매우 매력적인 부분이다.

물론, 네오가 취한 ‘트리니티를 구하러 간다는 선택’에서 어떠한 인과관계를 느낄 수는 없었지만..^^

3 thoughts on “The Matrix2 : Reloaded 왜 열광하고 비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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