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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빠의 임대계약서

몇 년 전부터 엄마와 아빠는 전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마당과 텃밭이 있고 실내에 계단이 있는 2층집에서 살고 있지요. 그러나 꿈에 그리던 전원생활이 시작되었음에도, 엄마와 아빠는 그 전원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티격태격 중입니다.

 

가장 큰 갈등은 텃밭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엄마는 그 텃밭에 오이, 고추, 호박, 옥수수, 콩 등 각종 먹을거리를 잔뜩 심어서 자식들에게 나눠주고 싶어합니다. 반면 아빠는 여러 나무를 심어 공원처럼 꾸미고 싶어합니다. 또 엄마는 아빠에게 농사일을 하나도 안 도와준다고 타박이지만, 아빠는 오히려 엄마한테 일을 너무 열심히 한다고 타박입니다. 사실 아빠는 허리가 아파서 그런 종류의 힘든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엄마가 농사일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그 일 외에는 다른 할 일이 딱히 없기 때문입니다. 전에 시내 주택에 살 때는 버스를 타고서 시장도 혼자 갈 수 있고, 친구분들과 등산도 다니고 요가도 다니고 하셨지만,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난 이후에는 아빠가 차를 태워주지 않으면 시내도 나갈 수 없고, 등산도 요가도 다니기 어려워졌거든요. 아빠가 아침에 출근할 때 같이 차 타고 나가면 되지 않냐고 하면, 엄마는 그때가 제일 바쁠 때라 나갈 수 없다고 합니다.

 

지난 식목일, 오랜만에 원주집에 놀러갔을 때도 엄마와 아빠는 이 문제로 티격태격 대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성격상, 집에 앉아 가만히 쉰다거나, 넓은 밭을 놀리는 건 엄마가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대로 둘 경우 엄마는 운동과 여가 대신 노동으로 점철된 힘겨운 전원생활(?)을 보낼 것만 같더군요. 게다가 일하지 않는다고 툴툴대는 엄마와 그러길래 누가 일하랬냐고 반문하는 아빠의 사이는 점점 악화될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시골에서 나와 아파트로 이사를 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결정은 쉽게 내릴 수 있는 게 아니죠.

 

그날 저녁 누나네 가족들도 오고 함께 쭈꾸미를 먹으며 술을 마시다가 재미난 타협안이 떠올랐습니다. 해결해야 할 핵심은 첫째, 엄마의 노동량을 줄일 것, 둘째는 아빠의 전원생활에 대한 로망도 풀어줄 것. 사실 아빠는 며칠 전부터 엄나무를 심을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엄마의 오케이 사인이 없어서 차일피일 시간만 보내고 있던 상황이었거든요. 엄마는 먹지도 못하는 걸 심으려 한다고 싫어했습니다. ㅎㅎ

 

저의 제안은 엄마가 아빠에게 밭의 일부를 임대하고 임대한 밭에 대해서는 아빠에게 일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엄마는 밭의 절반만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어 노동량이 줄어들 것이고, 아빠는 아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땅이 생겨 기분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제안을 꺼낼 때는 몰랐는데, 정말 땅의 명의는 엄마로 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임대료가 관건일 텐데, 아빠가 처음에 20만원 불렀다가, 엄마가 30만원을 얘기했던가… 어쨌든 결국에는 30만원으로 합의가 이루어져 아래와 같은 계약이 성사되었습니다.

 

 

계약서 작성은 이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매형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옆에 있던 저와 부인님, 누나, 매형 모두 증인이 되어 주었고요.

 

그러고 보니, 이틀 전 첫 임대료 지불일이었을텐데, 아빠가 임대료를 늦지 않게 잘 지불했는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3,4번 조항을 보면, “갑은 을의 토지 사용방식에 대해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간섭을 할 경우 임대료의 2배를 을에게 지불한다”고 되어 있는데, 엄마가 이 조항을 잘 지키고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아빠의 임대료 지불 약속은 별로 걱정이 안 되는데, 엄마의 불간섭 약속은 꽤 걱정이 됩니다. 엄마가 잘 참아야 할 텐데 말이죠. 아무래도 걱정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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