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 2015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저와 부인님이 함께 번역한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가 2015년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

 

전에 책 출판 소식을 블로그에 쓰긴 했지만 책 제목과 표지에 대한 불평만 하고서, 정작 책에 대한 소개는 하지 못했는데요. 늦었지만 이번 기회에 다시 책에 대한 소개를 올려볼까 합니다.

이 책은 데이비드 에저턴의 1999년 논문 “From Innovation to Use: ten eclectic theses on the history of technology“에서 밝힌 연구 계획을 책으로 완성한 것으로, 원래의 책 제목을 그대로 번역하면 “구식의 충격 : 1900년 이후의 기술과 세계사” 정도가 됩니다. 이 책은 혁신 중심의 기술사에서 사용-기술 중심의 기술사로 초점을 옮김으로써 기술에 대한 다양한 신화를 깨는 동시에 20세기에 대한 전지구적인 기술사를 서술하는 데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역자 서문에서 우리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에저턴은 첨단이나 혁신 같은 기준 대신 그 기술의 사용, 사용 중인 기술(technology-in-use)에 주목한다. 사용 중인 기술을 통해 돌아본 오늘날의 세상은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 온 기술의 세상과는 완연히 다르다. 석유에 자리를 내준 것으로 여겨지는 석탄은 19세기보다 지금 더 많이 생산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은 역사상 가장 많은 말이 동원된 전쟁이었다. 즉 석탄과 말은 20세기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석유와 자동차만큼이나 중요하다. 또한 사용기술을 통해 본 이 세상에는 자동차보다도 많은 자전거가 거리를 활보하고 있으며, 이 세상의 수많은 집들은 콘크리트가 아닌 초라한 양철판과 골함석으로 덮여 있다. 이러한 초라한 물건들은 현대적인 느낌을 주지 않지만 분명 20세기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현대의 물건들로, 20세기의 세상을 이해하는 데 비행기와 원자력만큼이나 중요한 기술들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20세기의 기술과 세계사”라는 책의 부제는 이 책이 부유한 나라만이 아닌 전 세계의 역사를 다루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은 대만, 아르헨티나, 가나, 인도, 중국 등 지금까지 기술의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가난한 지역들을 끊임없이 조명해주고 있다. 즉 사용기술의 세계에서는 기술의 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곳도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언제나 추격과 추월의 관점에서만 이해되었던 20세기 한국의 기술도 다른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한국의 수많은 아파트들은 단지 선진국 기술의 모방품이나 혹은 기형적인 한국의 주거 문화로만 볼 수 있겠는가?

사용기술의 세계에서는 발명이나 혁신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유지관리가 중요하다. 발명과 혁신이 이루어지는 곳은 매우 제한되어 있지만, 유지관리는 기술이 사용되는 모든 곳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유지관리는 구매력이 떨어지는 가난한 지역의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폐차되었을 법한 낡은 자동차들이 가나에서는 날마다 끊임없는 수리를 받으며 영생을 누리고 있다. 또한 유지관리는 부유한 나라의 발명과 혁신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하다. 엔지니어들은 새로이 발명된 물건을 유지관리를 하는 과정 속에서 그것을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되며, 이러한 유지관리 역량의 축적은 종종 혁신 역량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래서 일본의 자전거 산업과 전자 산업은 보잘 것 없는 수리점에서 시작되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유지관리는 발명이나 혁신에 뒤처지는 활동이 아니라 그것과 연결되어 있는 유기적인 활동인 셈이다.

흔히 국가의 기술 혁신이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한다고들 말한다. 반대로, 기술의 발전이 전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 에저튼의 책은 두 생각 모두에 균열을 일으킨다. 그에 따르면, 선진국조차도 그들이 사용하는 기술의 상당수는 다른 나라에서 온 것이며, 국가의 경제 성장과 기술 혁신은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인 적이 없었다.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보이는 나라는 오히려 기술 혁신에 큰 투자를 하지 않는 가난한 나라였다. 또한 비행기, 인터넷 등 전 세계를 지구촌으로 만들어준다던 여러 기술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국가라는 경계는 기술의 선택과 발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실 비행기와 같은 기술은 대부분 국가적 안보의 목적으로 개발되어 전 세계적으로 모방되었다. 석탄 액화 연료와 같은 비효율적인 기술의 등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국가의 ‘연료’ 안보라는 목적을 고려해야만 한다. 즉 기술의 혁신은 흔히 생각하는 만큼 국가의 경쟁력을 키우지도, 국가의 경계를 없애주지도 못했다.

이렇듯 이 책은 기술과 관련된 수많은 믿음을 깨뜨린다. 그렇다면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기술은 무엇이었는가? 도대체 기술은 국가의 경제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기술은 세계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기존의 답변들에 고개를 젓는다. 그러나 그 답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료한 입장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이 책은 답을 주는 책이라기보다 문제를 제기하는 책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답은 아직 열려 있다.

이 책에 대한 국내의 좋은 리뷰로는 아래의 두 가지가 있으며, 저자의 들어가는 글 역시 책에 대한 아주 좋은 소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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