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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나의것’ 다시보고서 생각난 옛기사: [말] 박찬욱 인터뷰 – ulyss 홈에서 다시 퍼옴 by 월간 말

모순투성이 세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

한 달새 박찬욱 감독의 머리칼은 제법 많이 자라 있었다. 삭발 후에 자라난 제멋대로인 머리칼 탓인지 그의 인상은 다부져 보였다.

범생이 감독’인 그의 이미지가 크게 바뀐 것은 불과 한 달 전의 ‘용기’로부터 비롯됐다. 그의 용기와 선택에 대해 인간 박찬욱은 몰라도 「공동경비구역 JSA」는 알고 있는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변화는 파격이 아니라 ‘머리칼이 자라듯’ 자연스럽고 점진적인 것이었다.

박찬욱 감독은 지난해 12월 6일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 미국 정부에 항의하며 삭발식을 단행했다. 그와 친한 동료감독인 류승완, 김지운 감독도 동참했다. 박 감독은 “불평등한 나라의 처지를 슬퍼하는 것이 극단적이라면, 나는 극단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그는 더 큰 용기를 발휘한다. 그는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 한국 영화계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흥행감독’의 진보정당 지지는, 그래서 ‘커밍아웃’이라고까지 불렸다. 그가 속해 있는 민주노동당 강남지구당 당직자들조차 그를 영화감독 박찬욱과 동명이인으로만 알았을 뿐, 당비를 꼬박꼬박 내는 ‘진성당원’임은 알지 못했단다. 그는 기꺼이 TV광고에 출연해 주었고, 민주노동당에 던지는 표는 “사표가 아니라 효자표”라고 외쳤다.

“숫자(표)는 중요하지 않다. 정몽준 악재가 정말 컸다. 실제로 아내와 어머니, 동료감독 중 한 명 등 내 가까운 곳에서만도 세 명이 투표하러 가는 그 순간, 권영길에서 노무현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정몽준 소식이 전해진 날, 젊은 감독들 모임인 디렉터스 컷에서 송년행사를 치르고 있었는데, 다들 큰일 났다고 노무현을 걱정하는데 나 혼자 화내며 노무현은 오히려 더 확고해졌고 권영길이 문제라고 했다. 결국 사실로 드러나지 않았나. 그래도 다 가져가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세상은 점점 역설적으로 변해 간다.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드로 달려갔던 어떤 이들은 ‘인물과 개혁’을 택했고, 오히려 외곽에서 그들의 투쟁과 희생을 지켜봤던 어떤 이들이 ‘당과 진보’를 택하고 있다. 그는 그의 선택이야말로 ‘순리’이고, ‘리얼’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확실히 역설적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급진적이지는 않다. 우리 사회의 현 단계에서는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을 높여 나가는 게 점진적이고 리얼리스트적이다. 노무현이 집권하면 갑자기 세상이 바뀔 듯 기대하는 게 오히려 이상주의적이지 않은가. 물론 나도 인물로서의 노무현은 너무 좋아하지만, 시스템은 결코 그렇지 않다.”

그의 설명은 좀더 이어진다.

“1980년대 초 학번이다. 나는 겁도 많고 조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 ‘언더’ 학생운동 조직에서 활동하지는 않았어도 당시 정서나 이념에 익숙하다. 어느 날 나이가 들어서 새로운 이념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늘 그들과 함께 해왔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에 들어간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들이지만 노무현 지지자들이야 이해할 수 있다. 어쩌면 정열적으로 운동에 청춘을 바쳤던 사람들처럼 내가 좌절을 겪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그렇게 갑자기 방향을 선회해서 출세주의나 보수쪽으로 급선회하는 일을 하지 않게 된 것일 거다. 조금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으니까.”

망설였던 자는 오래 간다

오히려 그에게 ‘망설임은 나의 힘’이 된 셈일까. 그러나 스스로 ‘운동권 아웃사이더’였노라고 털어놓듯 그 역시 학창시절 맑스레닌주의의 수혜(?)를 받았던 시절이 있다. 그런데 그 계급과 전선은 인간 박찬욱 안에서 또다시 발효한다.
“사고가 유연해진 것일까, 생활에 찌든 것일까. 이젠 그렇게 쉽게 선악을 구분한다거나 진보와 보수 양쪽을 나눠서 단정 짓지 않는다. 이론보다는 인간을 보게 되는 성숙 같은 것. 「복수는 나의 것」에서 송강호는 왜 내가 노동계급의 적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자본가다. 팽 기사를 어쩔 수 없이 해고했지만 붙들고 함께 망하는 것보다 조금 자르고 계속 회사를 이어가는 게 나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진…. 자본가 중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계급적 정체성과 달리 개인으로서는 착하게 살아왔다고 우길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자신의 해고 때문에 그 해고자가 가족과 함께 죽어버린 그 순간이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깨닫는 순간이다. 이젠 세상이 과거처럼 이론만으로 보이지 않는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혁명적 무정부주의자 동맹’의 역할은 극단적인 혁명 소아병에 대한 희화나 혐오로 보였다.

“유감이다. 사실 (그들을) 굉장한 애정을 가지고 표현한 것이다. 그렇게 혁명 소아병적이고 과격한 사람들에 대해서 딱하게 생각하는 한편으로, 그들의 원칙주의나 래디컬한 이상주의가 참 멋있다고 생각하는 점도 있다. 내가 아직 낭만적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한국 사람들이 김구 선생이나 안중근 모두 다 테러리스트인데, 그런 테러리즘은 존경하고 다른 이들에 대해선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좌파가 아닌 대학생들이 체 게바라 전기를 읽은 것처럼. 그런 원칙에 대한 동경, 낭만적 혁명주의자에 대한 동경. 하지만 그들은 현실에선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혐오스럽기보다 불쌍하다.”

과거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는 것인가?

“당연히 있다. 우리 세대에 그런 부채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있겠나. 그래서 변절한 386에 대해 나는 남들처럼 그렇게 욕할 수가 없다. 많은 이들이 김지하를 욕했지만, 그가 살아온 헌신과 희생을 생각하면 내 경우는 돌 던지기가 힘들다. 영향력이 큰 사람으로서의 잘못은 지적할 수 있겠지만. 사형선고 받고 나오자마자 바로 또 『동아일보』에 인혁당 폭로하는 글을 써서 또 들어가고. 보통 사람 같으면 어떻게 그럴 수 있겠나?”

박찬욱 감독은 김지하씨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나?”라며 경탄했다. 내가 겪어 보지 못한 과거에 대한 겸허함. 그에게는 함부로 냉소를 남발하지 않는, 그런 미덕이 있었다. 그가 언제고 꼭 만들겠다고 생각하는 영화가 ‘인혁당’ 사건을 다룬 영화다.

“사실상 사건에 대한 취재는 다 끝났다. 이수병이 어떤 사람인지, 유족들과 개인 인터뷰를 하는 단계만 남았다. 조심스러운 건 내가 이 영화를 언제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가족들에게 영화를 만들겠다는 언질을 줬다가 만일 영화를 만들 수 없게 된다면 그건 또 죄를 짓는 게 아닌가.”

인혁당 사건을 다루고 싶다

이 땅에서 영화감독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도박판에 뛰어든 도박사의 삶을 연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판돈을 쥐지 못한 도박사. 더욱이 ‘인혁당’과 같은 액면에 판돈을 댈 만한 뜻있는 투자자들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분단이라는 고착화된 소재를, 그것도 그 한복판인 ‘JSA’에서 풀어내 대중을 감화시킨 그에게도 여전히 성공이냐, 실패냐의 압박감이 영화감독으로서의 삶을 짓누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불안한가”라는 질문에 “엄청나게 불안하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영화감독은 쉰 살에서 쉰다섯 살이면 퇴출된다. 임권택 감독 같은 행운은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는다. 어느 영화사로부터도 전혀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 상황이 온다. 그렇다면 내 경우 길게 봐서 앞으로 10년 내지 15년이다. 이후 두 편만 실패한다치고 그럼 『복수는 나의 것』까지 합쳐 세 편이다. 그러면 바로 끝이란 말이다. 내 성향으로 봤을 때 앞으로 만들 영화 두 편 모두 성공 못할 수도 있다. 그럼 결국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누구나 좋아할 만한 흥행영화를 만들거나 독립영화에 뛰어드는 것이다. 물론 나는 전자를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 1년 365일을 통틀어 1시간 정도가 브라운관에 할애되는 시간이다. 그는 2002 월드컵이 끝난 후 한 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월드컵 경기를 단 1초도 보지 않았노라고 ‘고해성사’까지 했다. 하지만 문학과 음악과 미술 같은 ‘영상 외적인’ 것을 탐닉하면서 남들의 ‘TV 타임’을 대신한다. 그는 영상 미학을 추구하는 감독으로서는 어울리지 않게(?) 달필이다. 그가 한때 젊은 영화평론가로 두각을 나타내 “정성일 형이 꽉 잡고 있는” 『말』지를 뺀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면서 ‘감독 대기발령자’의 고된 시간을 헤쳐 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문학적 소양도 크게 한몫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글’에 대해 가지는 집착과 애정은 영상 이상이다.

“나는 문법에 맞지 않거나 맞춤법이 틀린 글에 대한 혐오가 병적으로 심하다. 후배들에게도 거의 유일하게 화를 내는 부분이 문법에 맞지 않은 글을 쓸 때이다. 영화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쓴 시나리오에 그의 모든 것이 드러난다. 그가 얼마나 자기의 예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대충대충 하는 사람인지 말이다. 정확한 문법과 경제적인 문장이 중요하다. 그저 중언부언해 가면서 불필요한 단어와 문장을 쓰는 사람은 그의 예술이 어떨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조언한다. CF와 MTV만 보고 성장한 예술가의 미래는 뻔하다.”

모순덩어리 세상

박 감독은 포스트모던이 판치던 199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면 본인의 정치적 성향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여중생 사건에 항의하는 삭발식을 하자고 먼저 제안한 이는 열 살 연하인 류승완 감독 – 처음엔 아무 생각 없어 보였던 – 이었다며 다시금 점진적인 변화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했다. 문득 그의 시각으로 본 우리 사회 진보진영에 대한 쓴소리가 궁금했다. 그는 긴 시간 침묵을 지키더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 놨다.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혼란스럽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 혼란이 점점 더한 건 과거 사악한 집단으로 여겼던 자본가나 기득권층이 직접 만나 보면 상당히 젠틀하고 착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낄 때다. 화가 나서 미치겠다. 문제는 지금 그들이 창업자나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아니라 2세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꼬인 게 없는 자들이다. 그래서 착하다. 그러니까 더 화가 나는 거다. 예전엔 못 가지고 무식한 사람들이 착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렇지도 않다는 것. 빈부의 격차가 인격이나 인성마저도 그렇게 비틀고 있다. 어떻게 이 세상을 바라봐야 할지 참 답답하다. 『말』지를 보면 운동권 내부에도 참 비리와 문제가 많은 것 같고? 참으로 진실이 뭔지 혼란스럽다.”

박 감독이 느끼는 ‘모순’은 이분법 구도가 깨져버린 이 세계의 ‘리얼리즘’ 그 자체다. 그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서 무정부주의자, 유물론자, 테러리스트들이 신의 대리인 역할을 자임하는 설정을 통해 모순의 결합으로만 이루어진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 모순투성이 작품이 던진 메시지는 냉소가 아니라 더 깊은 ‘천착’이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그의 작품을 통해 ‘모순의 해체’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인터뷰를 마치고 그의 사무실로 들어섰더니 새 작품 「올드 보이」의 주연으로 캐스팅된 영화배우 최민식씨가 유난히 밝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불쑥 그에게 다가가 박 감독에 대해 물었다.

“개인적으로 『복수는 나의 것』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저런 논리와 자기 문법이 확실한 감독이 있나? 몇 안 되는 감독이다. 이번 작품을 통해 정말 괜찮은 장르영화 하나 나오겠구나, 하는 기대가 있다. 배우는 집을 고르는 사람과 같다. 박 감독은 내가 살고 싶은 세계이고, 내가 살고 싶은 집이다.”

과연, 최고의 감독에 최고의 배우였다. 최민식씨의 찬사가 부담스러웠는지 박 감독은 짧은 머리칼을 연신 쓸어올리며 자리를 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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