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의철학] 하이에크와 그의 방법론: ‘The Constitution of Liberty’, Hayek, 1959

review.hwp 1. 내용 요약

이 책의 목적은 어떤 정책이 자유체제에 적합한가를 판단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
1부에서는 전체논의의 전제가 되는 자유의 가치에 대해 논한다. 자유가 왜 필요하고 또 자유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보여줄 것이다. 2부에서는 자유의 원리를 보존하기 위한 원칙들을 검토할 것이다. 3부에서는 그로부터 오늘날의 복지국가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 속에서 자유의 원리를 훼손하는 정책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살피고, 자유체제에 적합한 정책의 기준을 제시한다.

1부. 자유의 가치

‘(타인의) 강제가 없는 상태로서’의 ‘개인적 자유’는 ‘내적 자유’, ‘정치적 자유’, ‘힘, 권력으로서의 자유’ 등과 구분된다. 하이에크에 따르면, 전자의 ‘개인적 자유’와 후자의 ‘자유들’은 양립가능하긴 하지만, 후자의 자유들을 우선시할 경우 개인적 자유가 훼손될 위험이 있다. 즉, 무엇을 할 수 있는 허가로서의 자유 또는 권력으로서의 자유는 오히려 타인에 대한 강제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인간의 문명은 계획적으로 건설된 것이 아니며, 우리는 문명을 충분히 알 수 없으며, 계획적으로 건설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것이며 이는 자주 자유의 적이 된다고 말한다. 오히려 문명의 성장 또는 진보는 우연의 산물에 가깝다. 설계 없이도 진보가 지속되는 명백한 이유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성공한 것들이 존속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화론적 자동적인 메커니즘은 ‘개인적 자유’ 때문에 가능하다. ‘개인적 자유’의 보장을 통해서만 새로운 발전의 기회와 가능성이 마련되고 그에 대한 선택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그것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끊임없는 사회진화의 과정을 멈추게 된다는 논리이다.
(부자유로운) 다수는 특정 개인의 무한한 자유로부터 혜택을 받는다. 대부분의 다수는 ‘특정 개인들이 자유를 (모험적으로) 이용한 결과’에 의해 시도되고 확인된 사항들을 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른 사람에게는 아직 그 혜택이 미치지 못한 새로운 성취로부터 이미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 즉 불평등의 존재이다. 진보의 길은 과거에 누군가가 이미 지나갔기에 한결 수월하다. 지금은 소수만이 향유하는 지나치게 낭비적으로 보이는 것들도 결국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용가능해질 삶의 스타일을 실험하는 대가에 대한 지불인 것이다. 하이에크는 계획경제에서도 이러한 시험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계획사회 또한 나머지보다 항상 몇단계 앞서가는 계급, 또는 위계를 마련해야 하며, 그럴 때 그 불평등은 (강제적, 자의적) 기획의 결과가 된다. 그러한 원리에 따르면, 계획사회가 자유사회와 같은 성장률을 달성하고자 한다면, 그 불평등의 정도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자유를 위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법 앞의 평등이다. 이 말은 인간이 ‘본성’의 결과이든 ‘양육’의 결과이든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대우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해악을 해결하기 위해서일지라도 자의적 강제의 사용은 정당화되지 못한다. 대부분의 평등주의자들은 ‘본성’의 결과인 차이와 ‘양육’의 결과인 차이를 다르게 보며 상속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어떤 개인의 자질이 가족배경의 산물일 때 유전자의 산물일 때보다 사회에 덜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은 근거가 없다. 가족이 도덕, 취향 및 지식의 전수를 위한 도구로써 개인간의 차이를 만들어내더라도 바람직하다고 믿는다면 재산의 이전 또한 막을 근거가 없다. 왜냐하면 규범과 전통을 물려주는 가족의 기능은 물질적 재화의 전수 가능성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2부. 자유와 법

강제란 해를 끼칠 위협과 그것을 통해 특정한 행위를 유발할 의도를 모두 포함한다. 이러한 강제는 한 개인이 자신의 정신적 능력을 완전하게 이용하고 공동체를 위해 최대한 기여하는 것을 막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권력(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능력)은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강제하는 권력, 즉 위협을 통해 타인을 자신의 의지에 강제로 복속시키는 권력이 나쁜 것이다.
강제는 특정한 서비스나 이익을 제공하려고 하는 조건이나 상황과는 조심스럽게 구별되어야 한다. 상인이 자신이 원하는 가격이 아니면 원하는 물건을 제공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강제’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러나 (필수적인 상품에 대한) 독점자는, 예를 들어 오아시스에 있는 샘의 소유자라면, 진정한 의미의 강제를 행사할 수 있다.
‘강제’를 제한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은 ‘일반규칙’의 실행이다. 일반규칙의 적용이 자의적이지 않고 유사한 상황에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도록 만들어진 것인 한 그러한 규칙은 자연법칙과 동일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 대표적 예인 국가의 법률은 적어도 예측가능한 강제이기 때문에, 임의적인 권력이 행사하는 자의적인 강제보다 개인을 훨씬 덜 제한한다. 일반원칙으로서의 법률은 개인의 자유를 위한 본질적인 조건이며, 그것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법률의 주된 기능이다. ‘인간이 아닌 법의 통치’의 원리는 정부의 자의성에 맞서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핵심 원리이다.
그러나 법의 통치라는 형식적 절차만 지켜진다고 법치가 유지되진 않는다.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서도 법치의 원리는 훼손될 수 있다. 이 때 법치의 훼손되어서는 안 될 원리란 다음과 같다. 첫째, 법치란 정부가 알려진 법의 수행을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인에게 강제를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 법이 없다면 죄도 없고, 위법도 없다. 특히 법률은 사적영역과 사적소유권을 성역으로서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또한 만일 어떤 법이 정부에게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무제한의 권력을 부여한다면, 그것이 수행하는 모든 행위는 적법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법치의 첫 번째 원칙에 위배된다.
둘째, 법은 최대한 확실해야 한다. 셋째, 법은 일반적이고 평등해야 한다. 추가적으로 권력분립 원칙 또한 법치의 일부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자유가 빠져나갈 수 있는 틈새’로 유력한 것이 행정부의 재량권이다. 효율성을 위해 재량권은 불가피할 수 있지만, 행정부의 재량적 행위가 개인의 사적 영역(사적 개인과 그 소유권)을 침범하는 모든 경우에 대해서 법원은 그 특정한 행위가 합법적인가, 초법적인가, 또는 법이 요구하는 것인가에 대해 판단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 즉 그 경우에 한해서 행정부의 재량권은 금지된다. 이러한 원칙은 경제정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가능하지만, 자유체계가 기반하고 있는 원칙에 반하는 개입은 배제되어야 한다. 단순히 일반준칙을 실행하는 것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고, 필연적으로 자의적인 판단을 수반하게 되는 정책수단들은 배제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몇몇 예외를 제외한 가격통제, 수량통제, 생산통제는 준칙에 따라 행사될 수 없으며 그 본성상 재량적이고 자의적이기 때문에 배제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자의적인 정책수단이 계속 등장하는 이유는 법치의 한계 안에서는 달성될 수 없는 정책목표 ― 특히 분배정의 ― 들 때문이다. 분배적 정의는 일반준칙이 아닌 계획당국의 특정한 목표와 지식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며, 결국 당국이 개인들이 해야할 일을 결정하게 된다. 이는 개인적 자유를 원리적으로 훼손하게 된다.

3부. 복지국가에서의 자유

하이에크는 현대 복지국가에서 쟁점이 되는 것들, 특히 각종 사회정의를 위한 정책들이 지켜야할 원칙에 대해서, 노동조합, 사회보장, 조세와 재분배, 화폐체계, 주택 및 도시계획, 농업 및 천연자원, 교육과 연구 등 각 세부사항에 대해서 서술하였다. 그가 적은 것들을 일일이 요약하기란 힘들며, 1부와 2부에서 언급했던 기본원칙을 각 부문에 적용한 것으로 보면 된다. 그 대부분의 결론은 자유와 법치의 원칙에 어긋나는 정부의 재량적 개입은 선의의 의도에 의한 것일지라도 종국에는 해악으로 드러날 것이라는 점이다.

2. 방법론 : 진화론적 설명과 자유로운 행위자

크게 보았을 때, 하이에크의 ‘(The) Constitution of Liberty’는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의 대립을 주된 축으로 경험주의적 통찰의 우수성을 전제로 ‘자유’의 가치를 논하는 글이다.

하이에크에 있어, 사회는 인간행위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인간설계의 결과는 아니다. 문명의 성장 또는 진보에 일반법칙은 없으며, 그것은 오히려 우연의 산물에 가깝다. ‘어떠한 문명이 왜 성공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 문명의 어떠한 특징 때문이었는지를 모르더라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질문에 대해서는 ‘성공한 것들이 존속했기 때문’이라고 진화론적으로 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한편, 이러한 답변을 넘어서는 오만한 합리주의적 설계이론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어리석은 시도라고 비웃으며, 17세기 헤일의 홉스비판을 인용한다. “오랜 경험은 가장 현명한 위원회가 얼른 예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법률의 편리함, 또는 불편함에 관한 발견들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가 제도의 존재이유를 우리에게 명확히 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확실성을 주는 제도화된 법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하며, 개별제도들의 존재이유는 모를지라도 그것들을 관찰하는 것이 합당하다.”
하이에크는 위의 진화론적 설명에 대한 자동적인 메커니즘을 부여하는데, 그것이 바로 ‘개인적 자유’의 존재이다. ‘개인적 자유’의 보장을 통해서만 새로운 발전의 기회와 가능성이 마련되고 그에 대한 선택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며, 그것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끊임없는 사회진화의 과정을 멈추게 된다는 논리이다.

그런데, 위의 ‘어떠한 문명이 왜 성공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성공한 것들이 존속했기 때문’이라는 답변 외에 ‘그 문명의 어떠한 특징 때문에’라는 답변은 왜 안되는가? 두가지 답변은 서로 배치되는가? 논리적으로 두가지 답변은 배치되지 않으며, 상호보완적일 수 있다. 후자의 답변이 하이에크에게 거부되는 이유는 첫째, 사회현상이 개인행동의 분석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으며 각 개인들은 하나의 원리로 설명될 수 없다는 생각과 둘째, 인간행위의 산물은 개인이 파악하기엔 너무 복잡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기든스의 글에서 인용된 하이에크는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데 타자를 향한 개인의 행위와 기대되어진 개인의 행위에 대한 이해 이외의 방법은 없다”고 말하고 있으며, 하이에크의 이 글 전체에서 함축하는 바에 따르면, 각 자유로운 행위자들은 매우 다양한 기질,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보통 특출한 기질과 신념을 가진 엘리트 행위자들에 의해 사회변화가 주도되며, 사회가 변해감에 따라 다수 행위자의 신념체계 또한 변해간다는 것이다.
한편, 복잡계에 대한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그의 생각은 ‘우리는 문명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로 요약되며, 그에 대한 어떠한 설명과 설계도 거부하는 결과를 낫는다. 이에 대한 예외가 있다면, 가상의 모델로서의 경제학과 사회전체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이다.

이러한 전제를 가진 하이에크에게, 특정한 제도, 특정한 사회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은 거부될 수밖에 없고,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연의 산물’이라고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 유일하게 가능한 설명은 ‘개인적 자유’의 존재가 사회진화를 지속시켜왔고, 특정한 제도, 특정한 사회는 그러한 사회진화의 산물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설명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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