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차이의 함정

그러나 진실은 보다 단순하다. 내가 아는 한 지인은 세인트 루시아(St Lucia)에서 보낸 휴가 얘기를 내게 해주었다. 그는 여종업원에게 어떻게 사는지 진지하게 물었는데, 이는 당연히 윤리적 관광객이 해야 하는 종류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 여종업원은 손님의 기대에 맞게 전통 의상을 입고 있고서, 본토에서의 삶의 방식을 어설프게 읊어댔다. 그러한 역할 연기(role playing)의 맥락에서는 공감이나 공통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 젊은 여성은 여행을 위해, 잘 되면 외국에서의 유학을 위해 열심히 저축을 하고 있었다. 술을 좀 더 마시고 문화적 규범이 느슨해지고 나서야, 그들은 그들의 공통된 소망을 털어놓게 되었다. 그들을 갈라놓은 장벽은 물질적 불평등이었지 물신화된 ‘문화’가 아니었다. 여행의 짜릿함은 장벽이 제거되고 서로가 진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윤리적 관광은 문화적 차이를 강조하면서 그들을 ‘존중’하는 ‘조심스러운’ 관광객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소위 문화적 차이에 대한 과도한 조심스러움은 공통의 인간성을 보는 우리의 눈을 가리면서, 서로 배우고 친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다.

문화를 통해 현지인과 관광객을 보는 것은 관광에 대한 윤리적 비판의 특징이다. 윤리적 관광은 현지인과 관광객을 문화적으로 나누어진 두 개의 분리된 세계에 사는 것으로 그린다. 인류학자들은 이러한 흐름에서 관광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는데, 그들은 관광을 일종의 문화 변용(acculuturation), 즉 ‘둘 또는 그 이상의 문화적 시스템이 결합하면서 발생하는 문화의 변화’로 간주했다(D. Nash,<관광 인류학 The Anthropology of Tourism>, 1996, 나의 강조). 분명, 우리가 다른 ‘문화적 시스템’에서 출발하게 된다면, 현지인과 관광객이 공통으로 가진 것은 간과되기 쉽다. 현지인의 문화에 위협을 가하는 관광객의 문화를 강조하는 것은 동정심(sympathy)을 유발하긴 하지만, 공감(empathy)에 대해서는 장벽을 만든다.

예컨대, 지구감시연대(Earthwatch) 아마존 전통 문화 휴가의 자원 활동가들은 피라바스(Pirabas) 사람들의 풍부한 구전 전통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전통은 ‘현대 문화, 즉 텔레비전의 공세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지구감시연대의 공공 유인물). 우리 문화로부터 현지 문화를 보호하려는 바람은 그들에게 텔레비전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바람으로 확장되는 것처럼 보인다. …

관광은 다른 지역과 문화에서 온 사람들 사이의 접촉과 관련된다. 어떤 이들은 문화적 제국주의라는 말로 그 위험성을 보지만, 차이에 대한 통념은 무너질 수도 있다. 문화적 역충격 ― 엄청난 차이를 예상했지만, 매우 다른 상황에 있음에도 우리와 같은 것을 바라고 비슷한 질문과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는 ― 을 경험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여행의 짜릿함 중 일부는 우리 사회나 문화 바깥의 사람과 만나서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러나 여행지를 문화적 상징으로, 즉 현대적인 삶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은 사회의 대표로 보는 것은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게 관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험의 잠재성을 위축시키는 것이다. 다름에 대한 지나친 조섬성은 공통의 인간성을 보는 우리의 눈을 가린다.

짐 부처, “윤리적 짐의 무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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