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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의 서사시와 현실의 서정시의 경계

spain_Neruda.hwp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어간다. 그러나 단지 리얼리즘적이기만한 시인 역시 죽어간다”

1. 마추피추의 산정

(1)

허공에서 허공으로, 텅 빈 그물처럼,
나는 오갔다, 가을의 문턱에서
동전처럼 펴진 나뭇잎들이 이리저리 쓸려다니는,
거리와 대기 사이로 그리고 봄과 이삭들 사이로,
그건 마치 떨어지는 장갑 속인 양, 가장 큰 사랑이
길쭉한 달처럼 우리에게 건네주는 것.
(후략)

(12)

나와 함께 태어나기 위해 오르자, 형제여.

네 고통이 뿌려진 그 깊은 곳에서
내게 손을 다오.
넌 바위 밑바닥으로부터 돌아오지 못하리.
땅 속의 시간으로부터 돌아오지 못하리.
딱딱하게 굳은 네 목소리는 돌아오지 못하리.
구멍 뚫린 네 두 눈은 돌아오지 못하리.
대지의 밑바닥에서 나를 바라보라,
농부여, 직공이여, 말없는 목동이여.
수호신 구아나코를 길들이던 사람이여.
가파른 발판을 오르내리던 미장이여.
안데스의 눈물을 나르던 물장수여.
손가락이 짓이겨진 보석공이여.
씨앗 속에서 떨고 있는 농부여.
너의 점토 속에 뿌려진 도자기공이여.
이 새 생명의 잔에
땅에 묻힌 그대들의 오랜 고통을 가져오라.

그대들의 피와 그대들의 주름살을 내게 보여다오.
내게 말해다오, 보석이 빛을 발하지 않았거나
땅이 제때에 돌이나 낟알을 건제주지 않아,
나 여기서 벌받아 죽었노라고.
그대들이 떨어져 죽었던 바위와
그대들을 못박아 매달았던 나무 기둥을 내게 가리켜다오.
그 오랜 부싯돌을 켜다오,
그 오랜 등불을, 그 오랜 세월 짓무른 상처에
달라붙어 있던 채찍을
그리고 핏빛으로 번뜩이는 도끼를.
나는 그대들의 죽은 입을 통해 말하러 왔다.
대지를 통해 흩뿌려진 말없는 입술들을
모두 모아다오.
그리고 밑바닥으로부터 얘기해다오, 이 긴긴 밤이 다하도록.
내가 닻을 내리고 그대들과 함께 있는 것처럼,
내게 모두 말해다오, 한땀 한땀,
한구절 한구절, 차근차근.
품고 있던 칼을 갈아,
내 가슴에, 내 손에 쥐어다오,
노란 광선의 강처럼,
땅에 묻힌 호랑이의 강처럼.
그리고 몇 시간이고 몇 날이고 몇 해고, 날 울게 내버려다오,
눈 먼 시대를, 별의 세기를.

내게 침묵을 다오, 물을 다오, 희망을 다오.

내게 투쟁을 다오, 강철을 다오, 화산을 다오.

그대들의 몸을 내 몸에 자석처럼 붙여다오.

나의 핏줄과 나의 입으로 달려오라.

나의 말과 나의 피로 말하라.

2. 파블로 네루다와 그의 시세계

파블로 네루다의 시세계는 매우 방대하다. 그의 전집에 실린 작품은 총 3,500쪽에 이르며, 또한 그가 스페인어권 리얼리즘 시를 대표하는 시인인 동시에 중남미 아방가르드의 일면을 대변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작품의 경향 또한 다양하다. 네루다는 그의 긴 창작 여정을 통해 우리에게 실로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사랑의 시인, 형이상학적 시인, 자연의 시인, 소박한 사물들의 시인, 중남미 역사를 노래하는 서사적 시인, 정치적 시인 ……. 그의 시세계란, 그의 말을 빌리면 “한 편의 긴 순환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초기,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하나의 절망의 노래}(1924)에서의 사춘기의 괴로운 열정과 우수는 {지상의 거처}(1933, 1935)에서 고뇌로 이행한다.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부차적인 차원으로 밀어내는 모더니즘의 미학, 항상적인 인간의 오류로 인한 비관주의가 이 시기의 시를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소외를 벗어나고자 고뇌하던 네루다는 스페인 내전(1936∼1939)을 거치면서, 역사를 끌어안기 위해 고독과 절망으로부터 멀어져갔다. 그의 말대로 “세계는 변했고 나의 시도 변했다”. ‘형이상학’ 대신 “거리의 피”를 노래하였고, 역사 속에서의 시의 역할에 대한 성찰을 통해 현실 지향적인 세계의 문을 열었다. 그 대표작인 …

3. [마추피추의 산정]의 구조와 그 속의 정치; 상상력의 서시사, 현실의 서정시

[마추피추의 산정]에서의 시적자아는 평면적 인물이 아니다. 실존적 고뇌로부터 개인적 진실의 발견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의 상실감으로부터 연대성을 통한 사회적 가치의 발견에 이르기까지 시적 자아의 진화과정이 제시된다. 즉, 후반부로 가며서 개인의식의 표현보다는 민중의 대변자로서의 사회적 기능이 강조됨으로써 개인적 자아가 사회적 자아로 확대되는 ‘성장소설’의 양상을 보여준다.
(1-5)에서는 자아는 과거 개인사에 대한 회고적 시각을 보여준다. 시적자아는 방향감각 없는 방황에 대해 얘기한다. 자연과 인간사회 사이의 대조적인 방식으로 비관적인 자아의 심정을 고백한다.

인간이란 무엇이었나? 상점과 기적소리 사이
그 열린 대화의 어느 곳에, 그 어느 금속성 움직임 속에
파괴될 수도, 죽어 사라질 수도 없는 삶이 살고 있었다?

세 행에서 암시된 사회적 소외와 개인적 고뇌, 인간의 운명적 고독, 홀로 있음의 의식 속에서 자아는 무너질 수 없는 하나의 벽이 된다. 여기에서 사회적 차원은 인간 조건의 본질을 이루지 못하고, 시인의 자아는 역사적인 것과의 연관 속에서 지각되지 않으며, 소외의 다양한 양상들은 죽음이라는 하나의 강박관념으로 흘러든다.
이러한 고독하고 절망적인 자아의 고뇌의 답이 마추피추의 잉카유적을 매개로 주어진다. 시4-5에서 자아는 인간 고독의 맨 밑바닥에 도달한 후에(“빵도, 돌도, 침묵도 없이, 홀로, / 내 자신의 죽음으로 죽어 나뒹굴었다”), 시 6에서 상징적인 마추피추로의 상승에 착수한다.

잃어버린 밀림의 거친 잡목덤불 사이
마추피추, 너에게로.
돌층계로 이루어진 고도,
마침내, 잠든 옷 속에 대지를 감추지 않은
것의 거처

역사적 유물의 영원성을 통해, 개인적 죽음을 극복하고, 집단적인 인간 속에서 인간의 삶을 영원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인간의 삶은 개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으며, 각각의 개인적 존재는 사회적 총체의 부분을 이룬다.
먼저, 마추피추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매우 서정적인 시구절로 노래하던(시9) 시적자아는 그 유혹에 머무르지 않고 아름다움을 건설한 노동자들의 예 고뇌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시적자아는 역사적 진실의 뿌리를 찾기 위해 잉카의 유적 속에 함축돼 있는 인간의 고통에 주목하며, 이것을 오늘과 모든 시대의 노동자들의 고통과 결합시킨다. 즉, 피착취계급의 연대에 이른다. 여기에서 원주민문화를 신성불가침한 초역사적 실체로 파악하는 낭만주의적 태도나 소재주의로 흐르는 모더니즘의 경향은 극복되며, 서정시와 서사시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마지막으로, 1인칭인 시적자아는 주관을 넘어 보다 객관적인 폭으로 확장시켜 ‘역사’를 이야기한다. 개인적 자아는 사회적 자아로 성장한 것이다.

나는 그대들의 죽은 입을 통해 말하러 왔다.
대지를 통해 흩뿌려진 말없는 입술들을
모두 모아다오.
그리고 밑바닥으로부터 얘기해다오, 이 긴긴 밤이 다하도록.

4. 나가며 ; 시 속의 정치

초석과 구리광산에서 실직된 수천의 노동자들의 수도에 도착했다. 시위와 뒤따르는 진압이 국가생활을 비극적으로 물들였다. 그 때부터 간헐적으로 내 시와 삶에 정치가 뒤섞였다. 내 시에서 거리로 향한 문을 닫는 것은 불가능했다. 젊은 시인의 가슴속에 있는 사랑, 삶, 환희 또는 비애를 향한 문을 닫는 것 또한 가능하지 않았던 것처럼. – Confieso que he vivido(1974)

시와 정치의 관계에 대해 네루다가 표현한 말이다. 1936년 이후, 시인 네루다와 투사 네루다는 분리할 수 없는 하나가 되었으며, 투쟁시의 전형이 된 그의 시는 더 이상 세계의 고통을 외면하는 도피처가 아니라 투쟁의 무기가 되었다. 레르난로욜라는 “네루다의 결정적인 칠레공산당 가입과 [마추피추의 산정]의 창작은 동일한 내적 사실의 두 표현이다. 둘을 서로 설명하고 보완한다”고 말한다.
사실상, (모든 문학에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정치성과 예술성은 동일시될 수도 없고, 적대적인 대립관계에 있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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