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 혁명≫ 역자 해설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번역본의 출간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현재 최종(?) 교정 작업 중이므로, 아마도 2월이나 3월에는 출간될 것 같습니다. 그 기념으로 제가 책 뒤에 덧붙인 역자 해설을 이곳에 올려봅니다.

 

Thomas S. Kuhn, The Copernican Revolution: Planetary Astronomy in the Development of Western Thought (Harvard  University Press, 1957)
Thomas S. Kuhn, The Copernican Revolution: Planetary Astronomy in the Development of Western Thought (Harvard University Press, 1957)

 

1957년에 출판된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토머스 쿤이 집필한 첫 번째 책이다. 이 책은 5년 뒤 출판한 ≪과학혁명의 구조≫와 함께 과학에 대한 통념을 허물고 새로운 과학관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과학적 변화의 일반적인 성격을 이해하기 위한 거대한 사례 연구로 기획되었으며, 그 내용은 쿤이 강의했던 하버드대학의 교양 과학 수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47년 가을 물리학 박사 과정에 있던 쿤은 하버드대학 총장 제임스 코넌트가 개설한 교양 과학 수업의 조교로 참여하면서 개인적인 ‘혁명’을 경험했다. 17세기 역학의 기원에 대한 강의를 준비해야 했던 그는 뉴턴 역학과의 비교를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을 읽다가 당혹감에 빠졌다. 뉴턴의 역학 체계로 교체되기 전까지 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서양 과학을 지배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가 너무나 엉터리로 보였기 때문이다. 쿤은 그런 엉터리 같은 내용이 사람들을 사로잡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글과 끈질기게 씨름했고, “어느 기록적인(매우 뜨거웠던) 여름 어느 날, 그러한 당황스러움은 한꺼번에 사라졌다”. 그날 그에게는 모종의 “개념적 재조정”이 일어났고, 이를 통해 그는 글 전체를 합리적으로 만들어 주는 이해 방식을 발견했다. 더 중요하게, 개인이 과거의 글을 이해하는 데 그러한 개념적 재조정이 필수적이라면, 그것은 역사적으로도 일어났어야 했다. 이는 쿤이 과학도로서 습득했던 과학 지식의 발전 방식인 축적에 의한 발전과 충돌했다. 1977년 저서 ≪본질적 긴장≫의 서문에서 스스로 회고한 바에 따르면,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음으로써 들춰낸 것은 인류가 자연을 보거나 그것에 언어를 적용하는 데서 이루어진 전체적인 종류의 변화로, 이는 지식의 추가나 단지 단편적인 오류의 수정으로는 적절히 묘사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만약 이러한 종류의 개념적 전환이 과학의 특징이라면, 과학 지식이 어떻게 발전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그림이 필요했다. 그가 보기에 이 그림을 추구하는 최선의 방법은 “과학사학자가 과거를 되찾는 데, 또는 반대로 과거에서 현재로 발전하는 데 필요한 근본적인 개념적 재조정”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1949년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쿤은 하버드대학 특별 연구원이 되어 아무런 제약 없이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과학사학자로 거듭났고, 1956년 UC 버클리로 옮길 때까지 하버드의 교양 교육 및 과학사 조교수로 재직하며 학부생을 위한 과학사 교양 수업을 꾸준히 강의했다. 그 수업의 내용은 차곡차곡 쌓여 바로 이 책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이루는 재료가 되었다. 그렇다면 쿤은 이 책을 통해 과학의 어떤 성격을 드러내고자 한 것일까? 그것은 네 가지 정도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과학은 혁명을 통해 비축적적으로 진보한다. 과학이 진보함에 따라 해명 가능한 현상들은 많아지지만 그것을 설명하는 과학의 개념들은 연거푸 파괴되고 대체된다.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이 얼마나 막강한 체계였는지를 보여 주는 동시에 그것이 결국에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 준다. 이를 통해 아무리 강력하고 그럴듯한 개념 체계일지라도 언젠가는 소임을 다하고 다른 개념 체계로 대체되기 마련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혁명적 교체 과정에는 끝이 없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믿고 있는 개념들 역시 종국에는 파괴될 것이다. 이러한 쿤의 관점에 따르면, 과학의 진보는 진리를 향해 수렴하지 않는다.

둘째, 과학 연구는 개념 체계 또는 전통의 도움을 받아 수행된다. 어떤 개인도 기존 개념 체계로부터 한 번에 벗어날 수 없으며, 코페르니쿠스 역시 태양과 지구의 자리를 바꾼 것 외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 전통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개념 체계는 우리에게 다양한 현상에 대한 통합적인 설명과 심리적 만족감을 제공할 뿐 아니라, 미지의 것을 예측하고 탐지하는 강력한 도구로서 연구의 길잡이가 된다. 좋은 개념 체계는 좋은 연구 문제를 제공하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제공한다. 따라서 개념 체계의 경쟁은 단지 현재의 설명력이 아니라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에 달려 있다. 이론의 ‘정확성’, ‘일관성’과 같은 익숙한 가치 외에 ‘생산성(fruitfulness)’이라는 낯선 가치를 중시했던 쿤의 독특한 관점은 여기서 출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이라는 유명한 개념으로 발전한다.

셋째, 과학혁명은 입증이나 반증의 논리로 진행되지 않는다. 이론과 관찰의 불일치는 전통을 파괴하는 혁명의 궁극적 원천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불일치는 언젠가는 기존의 전통 내에서 해결될 일시적인 불일치로 간주된다. 따라서 이론과 관찰의 불일치 자체는 혁명의 동기나 호소력을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어떻게 시작될 수 있었을까? 쿤은 코페르니쿠스의 동기를 설명하기 위해 그가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은 전문적인 천문학자로서 하늘의 기하학적 조화에 집착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점은 코페르니쿠스 체계에 대한 독특한 수용 과정도 설명해 준다. 그다지 정확하지도 단순하지도 않았던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는 그것의 기하학적 조화를 알아본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호소력이 있었고, 그러한 소수의 노력 덕분에 결국 다수에게 수용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혁명 초기에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수용 여부는 미적 취향의 문제가 되었다.

넷째, 과학의 한 분야는 다른 분야의 사상들과 얽혀 있다. 천문학은 기본적으로 좁은 분야에 속한 전문가들의 활동이긴 하지만, 물리학, 우주론, 종교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천문학의 일부 내용이 바뀌면 물리학과 우주론, 심지어 종교의 내용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한 변화가 완수되기 전까지 천문학의 혁신은 저항을 받는다. 이는 코페르니쿠스에 대한 당시 유럽 사회의 저항이 왜 그렇게 극렬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촉발된 변화가 왜 그렇게 광범위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쿤에 따르면,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코페르니쿠스가 야기한 수많은 천문학 바깥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도중에 완성됐다. 따라서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출판된 1543년에 시작되긴 했지만, 그 혁명은 그로부터 150년 뒤에나 종결될 수 있었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코페르니쿠스만의 혁명이 아니었다.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은 독자라면, 쿤이 제시한 ‘정상과학→위기→과학혁명→새로운 정상과학’의 발전 단계가 이 책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서술되길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기대는 합당하며 어느 정도는 충족될 것이다. 단, 혁명의 전조를 알리는 ‘위기’에 대한 묘사는 쉽사리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1543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출판되기 전까지 당대의 천문학의 상황을 위기로 인식한 사람은 코페르니쿠스를 제외하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에서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의 위기와 가장 근접한 묘사를 찾는다면, 프톨레마이오스의 후계자들이 그 체계에 주전원을 추가해 체계의 복잡성을 증가시켰다는 지적이 전부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지적조차도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코페르니쿠스 이전까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 대한 수정 시도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며, 코페르니쿠스가 활동하던 16세기 초 사람들은 프톨레마이오스의 고유한 체계에 기초한 천문표를 여전히 사용했다. 천문학 이론을 이용해 천문표를 계산하던 사람을 제외하면, 천문학 이론 자체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연구자’ 자체가 극히 희박했던 것이다. 어쩌면 코페르니쿠스는 16세기 초 유럽에서 천문학의 상태를 온전히 이해한 유일한 천문학 ‘연구자’였을지 모른다. 쿤에게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당시 천문학 연구자 공동체의 구성원은 코페르니쿠스 한 명이나 다름없었으므로, 그의 개인적인 위기의식 표명은 공동체 전체의 위기로 간주될 수 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한편, 이론 선택의 문제가 미적 취향의 문제일 수 있다는 쿤의 주장은 엄청난 논쟁을 야기했다. 과학의 합리성을 부정하고 상대주의를 옹호하는 주장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후에 쿤은 자신이 상대주의자가 아니며 이론 선택은 분명히 정확성, 단순성, 정합성, 생산성과 같은 합리적인 가치에 호소해 이루어진다고 했지만, 이론 선택 과정에 주관적인 요소가 일정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과학자들이 위의 가치들을 존중하는 데 모두 동의하더라도 개인들은 다른 이론을 선택할 수 있다. 개인마다 이론의 단순성이나 생산성에 대해 조금씩 다른 판단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각 항목의 상대적인 중요성에 대해서도 다른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이 코페르니쿠스의 체계가 별로 단순하지 않다고 판단할 때, 케플러는 매우 단순하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또 케플러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이론의 단순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 편이었다. 이러한 개인들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미적 취향’의 차이로 본다면, 케플러는 당대의 평균과는 꽤 동떨어진 취향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만약 16, 17세기의 모든 과학자가 평균 취향에 따라 획일적인 선택을 했다면, 코페르니쿠스 이론처럼 이단적인 이론은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했을 것이다. 즉, 쿤에게 개인들의 취향 차이 혹은 주관적인 요소는 혁명을 가능케 하는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설명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이 쿤의 철학적인 견해를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책으로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자체로 훌륭한 역사서이자 대중과학서다. 이 책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의 상당 부분을 그대로 인용함으로써 코페르니쿠스 본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줄 뿐 아니라 코페르니쿠스 체계에 대한 유럽인들의 다양한 반응들 역시 당시 대중 작가들과 성직자들의 입을 빌려 매우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또한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비롯해 역사적으로 등장한 다양한 이론과 방법들을 상세하면서도 명료하게 설명해 준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정교하게 그려진 독창적인 다이어그램들은 어쩌면 이 책의 가장 큰 기여 중 하나일 수 있는데, 그의 다이어그램들은 교육적인 목적으로 수없이 복제되었을 것이다.

부디 이 멋진 책을 읽고 다채로운 즐거움을 함께 맛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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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님 책 yes24 판매지수 8,000점 돌파!

4신. 2015년 12월 25일 현재 8,000점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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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점 돌파에 맞춰 2쇄도 도착했습니다. 12월 15일 2쇄 발행이라고 찍혀 있네요. 초판 발행 3개월만입니다.

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 2쇄 발행
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 2쇄 발행

 

3신. 2015년 12월 22일 오후 2시 현재 7,800점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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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2,000점을 넘은 후부터는 갑자기 미친듯이 오르고 있습니다. 대체 어디까지 오르게 될까요?

 


 

2신. 12월 18일 오전 현재 5,000점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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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 2015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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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님이 선유정, 정원 선생님과 함께 집필한 <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의 yes24 판매지수가 4,800점을 넘었습니다. 9월에 출판됐는데 벌써 2쇄를 찍는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대체 무슨 일일까요?

어쨌든 부인님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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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 2015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저와 부인님이 함께 번역한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가 2015년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

 

전에 책 출판 소식을 블로그에 쓰긴 했지만 책 제목과 표지에 대한 불평만 하고서, 정작 책에 대한 소개는 하지 못했는데요. 늦었지만 이번 기회에 다시 책에 대한 소개를 올려볼까 합니다.

이 책은 데이비드 에저턴의 1999년 논문 “From Innovation to Use: ten eclectic theses on the history of technology“에서 밝힌 연구 계획을 책으로 완성한 것으로, 원래의 책 제목을 그대로 번역하면 “구식의 충격 : 1900년 이후의 기술과 세계사” 정도가 됩니다. 이 책은 혁신 중심의 기술사에서 사용-기술 중심의 기술사로 초점을 옮김으로써 기술에 대한 다양한 신화를 깨는 동시에 20세기에 대한 전지구적인 기술사를 서술하는 데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역자 서문에서 우리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에저턴은 첨단이나 혁신 같은 기준 대신 그 기술의 사용, 사용 중인 기술(technology-in-use)에 주목한다. 사용 중인 기술을 통해 돌아본 오늘날의 세상은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 온 기술의 세상과는 완연히 다르다. 석유에 자리를 내준 것으로 여겨지는 석탄은 19세기보다 지금 더 많이 생산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은 역사상 가장 많은 말이 동원된 전쟁이었다. 즉 석탄과 말은 20세기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석유와 자동차만큼이나 중요하다. 또한 사용기술을 통해 본 이 세상에는 자동차보다도 많은 자전거가 거리를 활보하고 있으며, 이 세상의 수많은 집들은 콘크리트가 아닌 초라한 양철판과 골함석으로 덮여 있다. 이러한 초라한 물건들은 현대적인 느낌을 주지 않지만 분명 20세기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현대의 물건들로, 20세기의 세상을 이해하는 데 비행기와 원자력만큼이나 중요한 기술들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20세기의 기술과 세계사”라는 책의 부제는 이 책이 부유한 나라만이 아닌 전 세계의 역사를 다루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은 대만, 아르헨티나, 가나, 인도, 중국 등 지금까지 기술의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가난한 지역들을 끊임없이 조명해주고 있다. 즉 사용기술의 세계에서는 기술의 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곳도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언제나 추격과 추월의 관점에서만 이해되었던 20세기 한국의 기술도 다른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한국의 수많은 아파트들은 단지 선진국 기술의 모방품이나 혹은 기형적인 한국의 주거 문화로만 볼 수 있겠는가?

사용기술의 세계에서는 발명이나 혁신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유지관리가 중요하다. 발명과 혁신이 이루어지는 곳은 매우 제한되어 있지만, 유지관리는 기술이 사용되는 모든 곳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유지관리는 구매력이 떨어지는 가난한 지역의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폐차되었을 법한 낡은 자동차들이 가나에서는 날마다 끊임없는 수리를 받으며 영생을 누리고 있다. 또한 유지관리는 부유한 나라의 발명과 혁신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하다. 엔지니어들은 새로이 발명된 물건을 유지관리를 하는 과정 속에서 그것을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되며, 이러한 유지관리 역량의 축적은 종종 혁신 역량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래서 일본의 자전거 산업과 전자 산업은 보잘 것 없는 수리점에서 시작되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유지관리는 발명이나 혁신에 뒤처지는 활동이 아니라 그것과 연결되어 있는 유기적인 활동인 셈이다.

흔히 국가의 기술 혁신이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한다고들 말한다. 반대로, 기술의 발전이 전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 에저튼의 책은 두 생각 모두에 균열을 일으킨다. 그에 따르면, 선진국조차도 그들이 사용하는 기술의 상당수는 다른 나라에서 온 것이며, 국가의 경제 성장과 기술 혁신은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인 적이 없었다.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보이는 나라는 오히려 기술 혁신에 큰 투자를 하지 않는 가난한 나라였다. 또한 비행기, 인터넷 등 전 세계를 지구촌으로 만들어준다던 여러 기술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국가라는 경계는 기술의 선택과 발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실 비행기와 같은 기술은 대부분 국가적 안보의 목적으로 개발되어 전 세계적으로 모방되었다. 석탄 액화 연료와 같은 비효율적인 기술의 등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국가의 ‘연료’ 안보라는 목적을 고려해야만 한다. 즉 기술의 혁신은 흔히 생각하는 만큼 국가의 경쟁력을 키우지도, 국가의 경계를 없애주지도 못했다.

이렇듯 이 책은 기술과 관련된 수많은 믿음을 깨뜨린다. 그렇다면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기술은 무엇이었는가? 도대체 기술은 국가의 경제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기술은 세계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기존의 답변들에 고개를 젓는다. 그러나 그 답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료한 입장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이 책은 답을 주는 책이라기보다 문제를 제기하는 책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답은 아직 열려 있다.

이 책에 대한 국내의 좋은 리뷰로는 아래의 두 가지가 있으며, 저자의 들어가는 글 역시 책에 대한 아주 좋은 소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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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님의 따끈따끈한 새 책

부인님이 집필에 참여한 두 권의 책이 출판됐습니다.

  

«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는 부인님이 정원, 신유정 선생님과 함께 쓴 책입니다.
9월에 출판됐는데요. 얼마전 문화체육관광부 추천도서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과학자의 연애»는 바로 11월 20일 출간된 책인데요.
부인님은 마리 퀴리 파트를 집필했습니다.

교정 볼 때 옆에서 봤는데 꽤 재미 있었습니다.
힌트를 조금만 드리자면 마리 퀴리의 남자는 총 세 명이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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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주의한 재인용의 폐해와 그것이 남긴 떡밥

요즘 쿤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번역하고 있는데요. 6장에는 이런 부분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창세기 주석(Commentary on Genesis)≫에서 칼뱅(Calvin)은 시편 93편(Ninety-third Psalm)의 첫 구절 “the earth also is stablished, that it cannot be moved”를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따져 물었다. “누가 감히 코페르니쿠스의 권위를 성령의 권위 위에 놓으려 하는가?(Who will venture to place the authority of Copernicus above that of the Holy Spirit?)”6

 

저는 칼뱅이 유명한 사람이므로, 책 제목 Commentary on Genesis나 Ninety-third Psalm의 첫 구절 “the earth also is stablished, that it cannot be moved”에 대한 한국어 번역이 이미 있지 않을까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칼뱅 창세기 주석 코페르니쿠스”를 넣고 검색을 해보았는데요. 그러나 이상합니다. 처음 나온 몇몇 웹페이지를 들어가보니, 칼뱅은 “누가 감히 코페르니쿠스의 권위를 성령의 권위 위에 놓으려 하는가?”라는 말을 어느 책에서도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중 하나를 옮겨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앤드류 딕슨 화이트(Andrew Dickson White)는 <과학과 신학의 전쟁역사>에서 “칼빈은 창세기주석에서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을 정죄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통상 시편 93편 1절을 인용하면서 이 문제에 도전했고 어느 누가 감히 성경의 권위 위에 코페르니쿠스의 권위를 올려놓으려 할 것인가”라고 질문했다. 안티기독교인이었던 러셀(B. Russel)은 <서양철학사>에서 화이트가 주장한 이 내용을 반복해서 칼빈을 공격하였다. 심지어 최근의 토마스 쿤(T. S. Kuhn) 조차 이 구절로 칼빈을 공격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심코 칼빈을 반 코페르니쿠스주의자였다고 인정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위의 인물 중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꼼꼼히 살펴본 적은 없는 듯하다. 칼빈의 어느 책에도 위의 구절은 나오지 않는다. 칼빈은 시편 93편 1절에 대한 주석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지동설을 유지하고 천동설을 주장하는 해석학적 오류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한 사실에 대한 분명한 강조를 말한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를 비난하고자 감정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문헌은 결코 없다. (조덕영, “과학 관련 성서해석, 칼빈 해석방법 주목해야”)

 

정말인가 싶어 쿤이 실제로 인용한 출처를 확인해보니, 쿤은 그 칼뱅의 말을 앤드류 딕슨 화이트의 책에서 재인용 했더군요. Andrew D. White, A History of the World of Science with Theology in Christendom (New York: Appleton, 1896), I, p. 127.

 

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에 영문으로 “Calvin Copernicus”를 넣고 검색을 또 해보았습니다. Matthew F. Dowd의 “Calvin and the Astronomical Revolution”이 맨 앞에 뜨더군요. 그 논문의 소개에 따르면, 에드워드 로젠은 1960년 논문 “Calvin’s Attitude Toward Copernicus”에서, 칼뱅의 책을 다 뒤졌으나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고, 그 말의 출처는 앤드류 딕슨 화이트의 Warfare of Science with Theology를 거쳐 Frederic William Farrar의 History of Interpretation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거기서 끝이 난다는 것을 밝혀냈다고 합니다. 게다가 로젠은 Farrar가 보통 기억에 의존해서 글을 썼고 책의 오류를 수정할 시간이 없었다는 Farrar의 아들 말도 인용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로젠은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의 영문 번역자로 유명한 연구자입니다.)

 

이 정도로 확인이 되고 나니, 더 찾아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불확실한 기억에 의존한 칼뱅의 의심스러운 말은 책에 한 번 실렸다가, 화이트, 러셀, 쿤 등 여러 권위 있는 저자의 책에 재인용 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낳았던 것이 확실했습니다.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부주의한 재인용에 현혹되었을 것입니다. 저도 이번에 번역을 하면서 우연히 검색을 해보지 않았더라면 그 오해를 풀 수 없었을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칼뱅과 코페르니쿠스에 관한 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Dowd의 논문은 로젠과 그 이후의 연구들을 소개해주고 있는데요. 그에 따르면, 로젠은 칼뱅의 성서 주석들을 검토한 결과, 칼뱅이 지구중심설을 당연히 전제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였지만, 코페르니쿠스를 전혀 인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코페르니쿠스와 그의 태양중심설을 몰랐고 따라서 그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가지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나 그 카이저라는 연구자는 칼뱅의 설교 기록을 검토함으로써, 칼뱅이 코페르니쿠스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태양중심설에 대한 얘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으며, 그 얘기를 한 사람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음을 보였다고 Dowd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논문의 나머지 부분에서 Dowd는 태양중심설에 부정적이었던 칼뱅이 왜 코페르니쿠스나 천문학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남기지 않았을까를 묻고서 칼뱅의 신학적 입장에 비추어 답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런 식으로 화이트, 러셀, 쿤의 부주의한 재인용이 남긴 잘못된 떡밥으로 인해 시작된 연구는 지금까지도 진지하게 이어지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그들의 실수도 나름 쓸모가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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