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통론2] 뉴턴과 뉴턴종합: 2주차 요약문 – 프린키피아, 광학 요약문

hs_20040907.hwp GENERAL SCHOLIUM

소용돌이 가설은 많은 문제에 봉착했다. ① 소용돌이 주기와 행성 주기가 불일치하고 ② 태양의 큰 소용돌이와 행성의 작은 소용돌이를 조화시키기 어려우며, ③ 혜성의 극한 편심운동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우주공간에서의 물체(행성, 혜성)는 진공상태에서처럼 자유롭게 운동할 것이며, 위에서 설명된 법칙(만유인력 등)을 따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계적인 원인만으로는 ‘행성들의 거의 같은 평면을 같은 방향으로 운행하는 조화, 다른 태양계의 적당하게 먼 위치’ 등에 대한 설명을 할 수가 없다.
신은 모든 것의 진정한 지배자이다. 진정한 지배가 진정한 신을 만든다. 신은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한다. 신은 지각하고 이해하고 행동하기 위한 모든 유사, 무든 눈, 모든 귀, 모든 뇌, 모든 팔, 모든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방식은 아니다. 우리는 그 방법을 알 수 없다. 장님이 색을 알 수 없듯, 우리도 신의 방법을 알 수 없다. 신은 우리에게 지각될 수 없다. 우리는 신이 일으키는 현상에 대해서는 알 수 있지만, 그 내적본질과 신의 본질은 알 수 없다. 우리는 목적인과를 통해 그를 알 수 있고, 그의 완전성에 대해 존경하지만, 우리는 그의 지배 때문에 그를 숭배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의 종이기 때문이다. 지배, 예견, 목적인과를 뺀 신은 운명 또는 자연일 뿐이다. 한편, 신이 보고, 말하고 웃는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신에 대한 관념은 그와 유사한 인간의 양식으로부터 얻은 추측이다. 이상은 신에 관한 것들이나, 사물의 현상들로부터 신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확실히 자연철학에 속하는 일이다.
여기까지 여러 현상을 중력에 의해서 설명해 왔지만, 아직 그것의 원인을 지정하지는 않았다. 그 원인을 실제의 현상들로부터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나는 ― 현상으로부터 추론할 수 없는 ― 가설을 만들지 않는다. 가설은 어떠한 성격이든간에 실험철학에서 아무런 지위를 가질 수 없다. 이 철학에서는 특수한 명제가 현상으로부터 추론되고, 후에 귀납을 통해 일반화되는 것이다. 그것이 현상의 설명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정기의 작용, 전기, 빛, 감각, 신경 등의 작용에 대해서는 아직 그 법칙을 증명하기에 필요충분한 실험을 우리는 갖고 있지 않다.

Rules of Reasoning in Philosophy

규칙 1. 현상을 설명하는데 참이고 충분한 것을 넘어서는 원인을 더이상 인정하지 않는다. (자연의 단순성 강조)
규칙 2. 같은 자연효과(현상)에 대해서는 가능한 같은 원인을 지정해야 한다. (현상과 본질?)
규칙 3. 우리의 실험 하에서 모든 물체에 속하는 것으로 밝혀진 성질은 모든 물체의 보편적인 성질로 간주되어야 한다.
규칙 4. 실험철학에서는, 여러 현상으로부터 귀납적으로 추론된 명제에 대해서는 반대가설이 상상된다 하더라도 거의 정확한 진리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것을 더 정확하게 수정시키거나 그것을 폐기시키는 다른 현상이 나타나거나 할 때까지는.

Newton’s “Author’s Preface to the Reader” of the Principia

현대에는 자연현상을 수학법칙에 적용시키려 해왔다. 나는 철학에 관련이 있는 범위 내에서 수학을 발전시켜왔다.
역학의 두가지 – 완전히 정확한) 기하학과 (실용적 기술로서의) 기계학
수공기술은 주로 물체를 움직이는 데에 사용. 기하학은 보통 이들 물체의 크기에 관련된 것. 역학은 이들 물체의 운동에 관한 것이 됨. 합리적 역학은 어떠한 힘이건 간에 정확하게 제시되고 실증되는 운동을 일으키게 하는 데 필요한 힘에 의한 운동의 과학일 것이다.
나는 기교보다는 철학을 생각하며, 사람의 힘 아닌 자연의 힘에 관해 쓰고, 또한 ‘모든’ 힘에 관련된 것들을 주로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저작을 철학의 수학적 원리라고 이름을 붙였다. 여러가지의 운동현상으로부터 자연계의 여러가지 힘을 조사연구하며, 그러한 힘으로부터 다른 현상을 논증하려 한다. 1권과 2권에 있어서의 일반명제들은 그러한 목적을 위한 것이다. 3권에서는 그 실례를 세계체계의 해명이란 뜻에서 냈다. 앞서의 두권에서 입증된 명제들에 의해 3권에서는 여러 체계현상으로부터 물체가 태양이나 각 행성들에게 작용케 하는 중력이란 것이 유도된다. 또한 그와 다른 명제들로부터 행성, 혜성, 달 및 바다의 운동을 유도한다. 나는 이 자연의 남은 여러 현상들도 역학의 원리로부터 같은 종류의 논리에 의해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으며, 이 책이 그 알려지지 않은 올바른 다른 방법을 찾아내는 데에 무엇인가 한 빛을 던져주었으면 한다.

Definitions

정의 1. 물질의 양은 그 물질의 밀도와 용적을 곱한 것으로 측정되는 것이다.
정의 2. 운동의 양은 속도와 물질의 양을 곱한 것으로 측정되는 것이다.
정의 3. vis insita 또는 물질고유의 힘이란 물체가 현 운동상태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하나의 저항력이다.
정의 4. 가해진 힘이란 그 운동의 상태를 변화시키기 위해 가해진 작용이다.
정의 5. 구심력이란 물체를 중심을 향해 끌거나 밀거나 하는 힘이다.
정의 6. 구심력의 절대량.
정의 7. 구심력의 가속량.
정의 8. 구심력의 동적량.

Scholium

시간, 공간, 장소에 대해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 진정한 것과 겉보기의 것, 수학적인 것과 통상적인 것으로 구별해 보겠다.
1. (절대)시간
2. 절대공간 – 상대공간
3. 장소 – 공간의 일부
4. 절대운동 – 상대운동
시간의 여러 부분의 순서가 변치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간의 여러 부분의 순서도 또한 불변한다. 물체가 어떤 장소를 차지하고 있다고 함은 그것들의 본질 또는 본성에 기인하는 것이며, 물체의 본래의 위치가 변하여야만 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따라서 그것들은 절대적인 장소이며, 그리고 그것들의 장소로부터의 이동은 유일한 절대운동인 것이다. 그러나 공간의 여러부분들은 우리들의 감각으로서는 볼 수가 없으며, 또는 그것들을 서로 구별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것들 대신에 그것들의 감각적인 측도를 사용하는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다고 간주되는 임의의 물체를 기준으로 위치를 정의한다. 이러한 절대-상대의 사용은 통상적으로 아무런 불편을 수반하지 않는다. 그러나 철학적인 논의를 하자면, 감각적인 척도 이상의 추상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타 물체의 장소나 운동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정말로 정지하고 있는 물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Laws of Motion

법칙 1. 모든 물체는 힘에 의해 그 상태가 변화되지 않는 한, 정지 또는 등속직선운동을 계속한다.
법칙 2. 운동의 변화는 가해진 힘에 비례하며, 그 힘이 작용한 직선방향에 따라 행해진다.
법칙 3. 모든 작용에 대해서는 같은 크기의 반대방향의 반작용이 항상 존재한다.
계 1, 2. 작용의 연산은 벡터연산.
계 3. 운동량 보존.
계 4. 물체의 공동중심(질량중심)의 운동은 물체간의 상호작용만으로는 변하지 않는다.
계 5. 주어진 공간 내의 물체의 운동은 그 공간이 정지해있거나 등속직선운동을 한다해도 그 사이엔 차이가 없다.
계 6. 그들 사이에서 어떤 방식으로 운동하고 있는 물체들이 평행하게 가속력을 받으면, 그들 사이의 운동은 그 전과 같이 지속될 것이다.

Selected Propositions from the Principia, Book 1

명제 1. 움직이지 않는 구심점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물체가 반경을 통해 그리는 영역은 시간에 비례한다.
명제 4. 계 6. 주기가 반경의 2/3제곱에 비례하면, 속도는 반경의 제곱근에 비례하며, 구심력은 반지름의 제곱에 반비례할 것이다.

Optiks : Querries 1-7 and 31

Newton’s Alchmy and His Theory of Matter (B.J.T. Dobbs)

The Significance of the Newtonian Synthesis (Koyre)

CLASS WORKS : Newtion’s Prism and the Uses of Experiment (Simon Schaffer)

The Prehistory of the Principia from 1664 to 1686 (D.T. Whiteside)

[과학사통론2] 화학과 화학혁명: 6주차 요약문 – 라부아지에를 중심으로

hs_041012.hwp Antonie Lavoisier, Elements of Chemistry (1789), selections

서문
사실-생각-말의 관계 오묘하다. 애초에 말만 발전시키려 했지만, 과학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그 작업은 불가능하다. 또한 반대로 말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과학의 발전도 불가능하다.
지식, 과학의 발전이란 경험으로부터 sum of human knowledge로의 발전. 아는 것에서부터 모르는 것으로의 발전 가능.
유아기와 같은 과학은 감각으로부터 지식을 얻는다. 아이는 뭘해도 상관이 없지만, 과학은 그렇게 해선 안된다. 상상력은 자기기만을 초래한다. 처음에 가정에 불과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 권위를 얻고 나면 진실로 여겨지게 된다. 이러한 오류를 막기 위해서는 추론과정을 제약하고 단순화해야 한다. 한편 사실 외에는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추론은 꼭 실험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아는 것 -> 모르는 것을 알기 -> 그것들로부터의 필연적인 귀결로서의 결론 형성 -> arrange, ordering -> 다시 초심자에게 가르치기. 그런데 초심자들이 이를 제대로 배울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지금까지 알려졌던 화학의 질서로부터 벗어나기로 했다.
화학은 아직 완전한 학문이 아니긴 하지만, 희망은 많다. 많은 사실들이 밝혀졌고, arrangement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화학의 원소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론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옛날 4원소론은 단지 가설에 불과했고, 실험기준 없이 체계만 만든 것으로서, 우리는 그것을 거부해야 한다. Stahl이 여러 원소들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이 체계에 새로운 변형을 가져다 주었고, 화학의 발전을 이뤄내고 있다.
우리의 능력상 분해할 수 없는 최종점을 element, principles of bodies라 부르고, 실험적 증거 없이는 결합물로 보지 말자. 한편, 간단한 물질은 간단한 용어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결합된 물질은 결합된 용어로 표현하기로 하고, 많은 개별들의 공통성질을 표현할 class를 이름짓는다. 반면 종의 이름은 개별자의 성질을 표현해야 한다.
이름짓기의 방식 : 개별 -> 보편 -> 특수
(예) 무슨무슨 산 : ~~~ acid, 산화금속 : (metal 종류) oxyd
이와 함께 다른 결합물들도 유사하게 이름짓는다.
물질 명명법에 (물리적) 상태를 표현하지 않는다.
예전의 잘못된 명명 버리고 정확한 표현 사용해야 하며, 이는 선생 과학자들도 바라는 바였다.
방해물이 있긴 하겠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제거할 것이다.

part 1 : 본인이 직접 적용한 것들을 담은 유일한 파트임.
part 2 : salt에 대한 명명. 내 것은 없다. 단지 다른 사람의 작업을 추출한 것일 뿐이다.
part 3 : 자세한 논의. 실험 상술 등.

안다고 생각할 수록 치료 어렵다.

PART I.
CAHP 1.
열을 받으면 물체 팽창하는 것은 일반적. 이로부터 열을 일으키는 원인요소에 반발하는 성질이 있다고 생각. 한편, 같은 추론에 의해 모든 물질은 세가지 상태변화 가능하다고 생각했으며, 열의 원인과 상태변화의 원인은 caloric(열소)라 생각했다. 하지만 라부아지에는 열소를 실재한다고까지 무리한 가정을 하진 않았고, 그 기능에 초점을 맞추어 정의했고, 설명을 위해 사용한다고 했다. (조작적 정의)
잠열의 존재와 상태변화 과정을 열소로서 설명. 기화 과정에서 주변의 자유열소(free caloric)을 물질과 결합하여 기체상태로 변화한다고 설명했다. 압력과 온도가 상태변화에 결정적임 발견.
기체(gas)란 caloric이 결합한 물질로 생각했고, 물질의 이름을 지을 때는 caloric을 배제하고 순수 물질에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편 열용량을 물질모양 또는 배열에 따른 caloric을 포함할 수 있는 능력으로 해석.

CAHP 2
모든 물질은 압력, 온도에 따라 세가지 상태 가능하다. 같은 방식의 추론에 의해 공기는 여러 물질이 섞여 있는 것이라 생각.
물과 알콜 섞여지듯이 대기는 여러 물질의 혼합물일 수 있다고 생각했고, 물과 기름이 안 섞이듯, 대기가 여러 층으로 나뉘어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CHAP 3
대기의 첫번째 (가장 아래에 있는) 층은 여러 유체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여러 물질을 분석, 종합해보듯이, 대기 또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은 하소 과정에서 공기가 일정량 감소하는 것 발견하고, 그 공기는 호흡과 연소에 적당하지 않음 발견했다. 하소된 수은을 다시 분해했을 때, 그 공기는 호흡에 적당하고 연소가 매우 활발히 일어남을 발견. 분석에 의해, 호흡에 적당한 부분과 적당하지 않은 부분은 27:73 정도임을 발견했고, 오차 있을 것이라 인정했다.
한편, 공기중에 물도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했고, 물 뿐만 아니라 여러 물질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CHAP 4
이름에는 상태를 포함시키지 않는다.
상태를 나타내는 말(first term)과 물질을 나타내는 말(second term) 분리.
무슨무슨 gas. 무슨무슨 acid.
그리스어를 이용해 공기중의 두가지 물질 명명. oxygen(oxygen gas), azote(azotic gas). 후자를 nitrigen이라 부를 개연성 있음.

CHAP 5
여러 물질들로부터 공기를 분해할 수 있으며, 여러 산을 만들 수 있음.

J. B. Gough, “Lavoisier and the Fulfillment of the Stahlian Revolution,” Osiris 4 (1988), pp. 15-33

저자는 이 글을 통해, 라부아지에가 Stahlian으로부터 상당한 (본인이 인정하는 것보다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보이려 한다. 그에 따르면, 라부아지에는 Stahl의 기본가정들을 받아들여 Stahl로부터 시작된 화학혁명을 완성했다. (혁명의 시작이 아님). 이러한 입장에서 화학혁명에서 라부아지에의 공헌은 무엇이었는지 분석하고, 그의 자리를 재배치하려 한다.

I.
당대 화학자 사회에서 화학 정의에 대한 전반적인 동의 : 물질 구성 요소의 분리, 통합에 관한 학문. 조합과 분해. 종합과 분석.
라부아지에의 화학적 구성 질서에 대한 새로운(반대의) 이해 : (예) 물보다 산소, 수소가 더 간단하다는 주장
당시 많은 화학자들은 ‘플로지스톤 포기’ 입장보다 화학적 전통질서 전복에 저항감 느꼈음.
라부아지에의 화학적 질서 전복은 단순한 플로지스톤의 포기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중량측정’에 의한 것이다.
라부아지에의 (기체까지 포함한) 중량측정 기준은 검증불가능한 프로지스톤주의자들의 기준들에 비해, 일관되고 일정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고, 이에 의해 라부아지에와 그 지지자들은 화학적 구성의 문제를 정확하게 풀 수 있었다.
그러나, 라부아지에는 중량적인 물질 구성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라부아지에는 질적인 측면을 얻기 위해 실험했고, 33개의 물질표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당시 화학자들의 논쟁지점은 ‘화학적 물질 구성 질서’
당시 라부아지에의 새 화학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라부아지에의 새 화학적 물질 구성 질서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라부아지에의 새 체계는 많은 현상 설명에 성공적이었고, (반응 전과 후의 중량측정) 실험을 통해 검증가능했기 때문에,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라부아지에는 승리할 수 있었다.

II.
Stahl의 “여러 종류의 물질 존재” 입장. ‘분자’ 아이디어.
화학의 독립성 강화하는 Stahlian 혁명. 라부아지에는 이를 최고조에 이르게 함.
partie integrante : (분자) 더 쪼개면 그 고유의 성질 사라지는 최소단위.
parties constituantes : 위의 구성물. (원자?)
chemical affinity(affinite de composition) : 화학적 결합. 구성물이 모여 분자를 이루는 결합
affinite d’agregation : 물리적 결합? (분자)들이 모여 응집되는 결합.
화학적 성질 : (하나의) 분자가 가진 고유의 성질. (무엇과 반응하여 어떻게 된다.. 등등)
물리적 성질 : 뭉치는 배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성질. (단단하다. 탄력적이다.. 등등)
라부아지에는 Stahl의 ‘분자’ 아이디어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고, 이 ‘분자’ 아이디어가 당시 획기적인 화학진보 일궈냄.

III.
Stahlian들은 자신의 기본가정 충분히, 일관되게 숙고하지 않았던 점이 문제이다. 플로지스톤 이론은 자신의 기본가정과 애초에 모순적인 입장이었다. 오히려 라부아지에는 Stahl의 기본가정을 일관되게 그리고 철저하게 ‘기체’에까지 확대적용하였고, 그것이 성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IV. 결론
라부아지에는 Stahlian framework에 세가지 중요한 생각을 추가했다.
첫재, 공기는 하나가 아니라 공기와 같은 상태에 있는 여러 물질로 이루어져있음을 밝힌 ‘물질의 기체상태’ 이론을 만들었다.
둘째, 반응 과정에서 기체는 물질에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한다. 이는 중량측정에 의해 측정가능하다. 라부아지에가 화학적인 단순한 질서를 발견하게 된 것은 체계적인 중량측정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셋째, 화학적으로는 다르지만 동일한 물리적 상태(기체)에 있는 많은 기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화학적 동일성에 대한 Stahlian의 기준을 전보다 더욱 엄격하고 체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화학혁명에 대한 기준은 ‘얼마나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는가?’라는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 ‘얼마나 본질적인 지적기반을 변화시켰는가?’라는 질문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화학혁명은 이미 라부아지에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라부아지에는 이를 완성한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것을 완성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Stahl의 시대는 라부아지에에 의해 끝이 났지만, 그것은 reject를 통해서가 아니라, fulfillment를 통해서였다.

C. E. Perrin, “Research Traditions, Lavoisier, and the Chemical Revolution,” Osiris 4 (1988), pp. 53-81

라부아지에 이전과 이후의 불연속성(혁명)과 연속성(점진) 주장들의 타협을 주장하는 글이다. 저자는 현 상황에 대해 각자가 자신이 유리한 위치에서 자기주장을 펼치고 있는 형국 ― 비유를 하자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고 있는 형국 ― 으로 묘사하며, 각자가 부분적 진실만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각 주장의 지나친 부분을 버리고 인정할 것은 인정한다면 화해가 가능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만약, 그 시대를 멀리서 보면(처음과 끝을 보면), 라부아지에는 명확히 분기점이다. 반면, 그 시대 맥락을 좇아가다보면, 그 시기는 상당히 연속적이다. 이에 대한 종합은 화학혁명에 대한 다양한 직관을 설명해야 한다. 수용가능한 종합이 지녀야할 특징은?
전통적 관점의 단선적인 면을 피하기 위해, 그것은 첫째, 화학혁명의 누적적인 충격을 의미의 몇몇 층들의 복잡한 변화로 다루어야 한다. 둘째, 그것은 세밀한 변천의 구조를 동학과 상호작용의 과정으로서 그려야 하며, 이는 연속성과 라부아지에 프로그램의 국면 뿐만 아니라 과거와 그시대 대안과의 관계까지 산출해내야 한다. 셋째, 그것은 통합적인 설명 속에서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직관을 화해시켜야 한다.
라부아지에 연구에서의 연속성의 증거(누적적인 변화과정)와 그것이 만들어낸 종국적인 결렬을 연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연속성을 주장하는 여러 주장이 있지만, 심각한 반론은 될 수 없다. 라부아지에가 Stahl의 영향을 받았고, 그 잔존물이 남아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왜냐하면 라부아지에는 Stahl의 틀에서 발전한 체계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이다. 또한 반-플로지스톤주의 화학이 1815년에 증발해버렸다는 주장도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라부아지에의 몇몇 견해는 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또한 반면 라부아지에는 여러 새롭고 강력한 연구를 제시하기도 했고, 여러 새로운 개념(산화, 증발)과 방법(공기와 열에 대한 정량화)들을 개발했다. 이러한 것들은 라부아지에 사후에도 계속 변형되고 발전되었다. 1815년과 그 이후의 화학은 라부아지에의 성과를 부정하지 않았으며 (라부아지에가 했던 것과 같은 드라마틱한 전복 없이) 그것을 발전시켰다.
저자가 제안하는 해석방식은 점진주의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혁명’이라 부르는 것이 일관될까? 중립적인 표현으로 ‘변형’이란 말이 요즘 대세이긴 하다. 그러나 혁명없이 단지 ‘변형’만 있었다고 결론지어야 하는가? ‘혁명’이냐 ‘변형’이냐를 가르는 선은 상당히 자의적이다. 과학의 변화를 계속 혁명에 비유하는 한, 화학혁명을 정통사례로 부르는 것은 계속될 것이다.

Frederic L. Holmes, “The Boundaries of Lavisier’s Chemical Revolution,” (1995) pp. 9-48

저자는 라부아지에의 화학혁명을 해석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보자고 제안한다. 그렇다고 이미 해명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재구성을 위해 남아있는 많은 narrative의 요소들을 스케치할 것이다.
화학혁명 해석에서의 전통적인 관점과 새로운 관점 사이의 대립 속에서, 화학혁명의 정합적인 상을 재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기준에 대한 엄격한 점검’이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아주 잘 들어맞는 사례로 화학혁명을 들었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묘사는 제대로 맞지 않았다.
당시 당사자들 특히 라부아지에의 생각은 어떠했을까? 라부아지에 자신의 생각이 전부를 규명해주지는 않겠지만, 당시의 핵심에 있었던 목격자라 할 수 있다. 또한 당시 라부아지에로의 개종자인 Guyton de Morveau는 ‘반-플로지스톤 입장의 수용’, ‘자신의 자신감’, ‘혁명의 완수’를 얘기했다. 또한 Stahl의 천재성을 인정했고, 그의 플로지스톤 체계의 초기 유용성과 나중의 해로움을 역설함과 동시에, 점차 파괴됨을 얘기했다. 라부아지에의 첫 제기, 결국 자신(Guyton)이 라부아지에의 이론 받아들임. Guyton에게는 물의 분해를 결정적인 것으로 보았다. Guyton에게 ‘혁명의 완수’란 Stahlian 플로지스톤 체계 내의 연소이론에서 라부아지에의 선택을 의미했다.
화학혁명의 핵심 의미에 대한 전통적 관점을 반복이 혁명과정의 동학이 이미 완전히 해명되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19세기의 역사가들은 라부아지에의 영웅적 이미지에 의해 왜곡되었고, 20세기 초에는 이러한 전통적인 관점들을 그대로 받아들였었고, 시간이 지나서는 더욱 세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하여 그 시대에 대한 폭넓은 이해 연구가 유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론 진화구조에 대한 연구 및 논쟁은 꼭 필요하다.

‘화학혁명’과 ‘근대화학의 형성’은 나누어서 보아야 한다.
라부아지에는 분명 혁명을 이뤘다. 그러나 그의 공헌은 근대화학의 형성이 아니라, 화학 ‘내의’ 혁명일 뿐이다.  라부아지에 또한 Stahl의 성과를 인정했고, 한 분과 내에서의 여러번의 혁명을 인정했다. 어떤 이는 라부아지에가 명명법을 통해 완전한 단절을 이뤄냈다고도 하지만, 이는 잘못이다. 화학자들은 문법가가 아니다.
라부아지에의 서문에서 밝히지만, 라부아지에에 의해 새롭게 발견(발명)된 것은 1장에만 있다. 2장에는 그의 것이 없다. 라부아지에는 단지 ‘번역’을 했을 뿐이다. 그는 과거의 경험적 개념적 지식을 근대로 이전시켜주었다.

[과학사통론2] 18세기와 19세기의 전기와 자기: 5주차 발제문 – 프랭클린을 중심으로

hs_041005.hwp Benjamin Franklin, Experiments and Observations on Electricity (Letters I – X ) (1747-1752)

Letter II
* 첫째 실험은, 뾰족한 물체가 전기적 불(electrical fire)을 끌어오고 내보내는 현상에 관한 실험이다.
첫째, 대전시킨 라이덴병의 쇠구슬에 뾰족한 바늘을 근접시키다 보면 6-8인치 거리에서 갑자기 라이덴병의 전기를 끌어온다.
둘째, 뭉툭한 바늘을 근접시키다 보면 1인치 거리에서 스파크와 함께 병의 전기를 끌어온다.
셋째, 바늘을 절연체 손잡이에 꽂아 병에 근접시키면 위의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넷째, 그러나 손을 바늘에 대는 순간, 병의 전기를 끌어온다.
라이덴병의 전기성 유무에 대한 확인은 병 위쪽에 매단 코르크공과의 반발력의 유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어둠 속에서 실험을 하면 불빛을 확인할 수 있다. 바늘이 뾰족할 수록 그 불빛을 작아진다.
뽀족한 젖은 나무로도 가능하다. 마른 나무는 밀랍처럼 전도성이 없어 불가능하다.
다섯째, 바늘을 (라이덴병의) 쇠구슬에 올려놓으면 코르크공을 반발할 정도로 대전시킬 수 없다.
여섯째, 바늘을 쇠봉에 총검처럼 고정시키면, 그 쇠봉에 대전된 유리관을 대도 스파크를 낼 정도로는 대전될 수 없다. 전기적 불(fire)이 뾰족한 부분을 통해 조용히 계속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전기적 불(electrical fire)은 마찰을 통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퍼져있는 것들을 모으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그것의 유입과 유출을 바람개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두번째 실험
1. 밀랍 위에 유리관을 문지르는 사람(A)과 그 근처(유리관 근처)에서 전기적 불(electrical fire)을 끌어오는 사람(B)은, 땅에 서있는 사람(C)에게 대전된 것으로 보인다. 즉, 그(C)는 두 사람 각각의 근처에 가면 스파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 그러나, 두 사람 A, B가 손을 잡을 채로 유리관을 문지르면, 아무도 대전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3. 위(1번)에서 설명한 대로 한 후 A와 B가 손을 잡으면 C와의 스파크보다 강한 스파크가 일어날 것이다.
4. 강한 스파크 이후에는, 아무에게도 전기성을 발견할 수 없다.
위 실험에 대한 프랭클린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문지르는 동안, 유리관은 A로부터 전기적 불을 뺏어오고 B는 유리관으로부터 전기적 불을 뺏어온다.
둘째, 중간양의 전기적 불을 가지고 있는 C는, 과도한 양의 전기를 가진 B에 가까이 가면 스파크를 받고, 적은 양의 전기를 가진 A에 가까이 가면 스파크를 준다.
셋째, A와 B 사이의 스파크가 큰 이유는 양의 차이가 더 크기 때문이다.
넷째, 그 후 C가 가까이 가도 스파크가 생기지 않는 이유는 A와 B가 원래의 양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손을 잡은 채 문지르면 전기양의 동등함은 파괴되지 않고 순환할 뿐이다.
여섯째, B를 양으로 대전되었다고 하고, A를 음으로 대전되었다고 하자.
* 기타
라이덴 병으로 불도 붙일 수 있다.
왁스위에 서서 한손으로는 병을 잡고 한 손으로는 병의 (윗부분에 연결되어있는) 금속선을 대면 몇번이고 스파크가 일어난다.
왁스위에서 A는 병을 잡고 B는 금속선을 잡은 후 키스를 하면 스파크가 일어나면서 충격을 받을 것이다.

Letter III
1. 병이 대전될 때, 안과 밖의 비-전기성 물질(non-electric 도체)은 다르게 작동하며, 유리는 그들의 이동을 막는다.
2. 병의 금속선과 위쪽이 양으로 대전될 때, 병의 아래쪽은 정확한 비율로 음으로 대전된다. 초기상태를 20,20이라 했을 때, 위쪽이 24가 되면 아래쪽은 16이 된다. 위쪽이 40이 되면 아래쪽은 0이 된다. 이렇게 되면 아래쪽의 양이 더이상 줄어들 수 없으므로 위쪽 또한 전기를 더 받을 수 없다. 만약 전기를 더 넣으려 하면, 전기적 불은 되돌아가거나 옆면으로 날아가게 된다.
3. 평형의 회복은 비-전기성 물질(non-electric 도체)을 통한 접촉으로만 가능하다. 양쪽을 모두 접촉하면 엄청 폭력적이고 강하게 회복되며, 한쪽한 접촉하면 어느정도만 회복된다.
4. 바닥의 양이 더이상 줄어들 수 없을 때 위쪽 또한 전기를 더 받을 수 없는 것처럼, 바닥에서 아무것도 나갈 수 없을 경우 위쪽 또한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즉, 전기성 물질(electric 절연체) 위에 올려놓은 채로는 병을 대전(충전)시킬 수도 (방전)시킬 수도 없다. 비전기성 물질(non-electric 도체) 위에 올려놓아야만 위쪽으로 (방전)시킬 수 있다. 전기성의 두 상태는 라이덴 병에서 놀랍게 균형을 맞춘다. 이에 대해서는 왜 그러한지 잘 모르겠다.
5. 전기쇼크는 몸을 통애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전기가 순간적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이 실험이 비전기성 물질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며, 왁스 같은 전기성 물질 위에서도 가능하다. 왁스 위의 사람이 한 손으로 병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 위쪽 금속선을 만져도 전기쇼크는 똑같이 일어난다. 그런데 전기적 불은 예상과 달리 병의 위쪽 → 손 → 몸 → 다른쪽 손 → 병의 바닥 으로 흘렀다.

Letter IV
1. 위쪽 고리를 먼저 쥐고 다른 손으로 병의 주석코팅을 만져도 전기쇼크가 일어난다.
2. 충전된(charged) 병을 그 힘을 없애지 않으면서 고리쪽으로 들려면, 우선 병이 절연체 위에 놓여져 있었어야 한다.
3. 코팅쪽으로도 충전시킬 수 있다.
4. 그 방향은 반대이므로, 폭발의 방향도 반대이다. 고리쪽으로 충전되었으면 고리쪽으로 방전되고, 코팅쪽으로 충전되었으면 코팅쪽으로 방전된다.
5. 이를 증명하기 위해, 똑같은 방향으로 충전시킨 두 병의 고리를 양손으로 잡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한병의 고리와 다른 한병의 코팅을 만지면 전기쇼크가 발생하고, 두 병은 방전된다.
6. 반대방향으로 충전시킨 두 병의 고리를 양손으로 잡으면 전기쇼크가 발생하지만, 고리와 코팅을 만지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주고 싶음과 받고 싶음은 평형이 유지된다. 완전히 충전된 병과 하나도 충전되지 않은 병의 고리를 양손으로 쥐면 반정도의 쇼크가 일어나고, 두 병은 모두 반만큼 충전된 상태로 남는다. 한쪽은 반만큼 방전된 것이고, 다른 한 쪽은 반만큼 충전된 것이다.
7. 같은 방향으로 충전시킨 두 병 사이에 코르크공을 매달면, 한쪽에 끌렸다가 (살짝 붙거나) 밀려난다. 그 경우 다른 한쪽으로부터도 밀려난다. 다른 방향으로 충전시킨 두 병 사이에 코르크공을 매달면, 한쪽에 끌렸다가 밀려나고, 다시 다른쪾에 끌렸다가 밀려나고, 두 병이 거의 방전될 때까지 이를 반복한다.
8. 충전, 방전된다고 해서 전체 전기적 불의 양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총량은 변함이 없다. 약간의 예외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경우도 계를 더 크게 보면 총량은 변함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왁스위에 충전된 병을 놓고 왁스 위의 사람에 후크에 손을 대면 최대폭발의 500분의 1도 안되는 약한 스파크가 일어나는데, 이 경우 병의 총량은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지만 줄어든 양은 사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람 외에는 갈 곳이 없기 때문에)
9. 병에서 전기적 불이 나갈 길이 없으면 충전되지 않는다. 절연체 위에 놓거나 공중에 매달면 충전되지 않는다.
10. 라이덴병을 꼬리에 꼬리에 물듯 연결하고(직렬연결), 마지막 병을 접지시킨 후 충전시키면, 모든 병은 같은 양만큼 충전되며 각 양은 원래 한 병에 충전시켰을 때의 양과 같다.
11. 병이 충전되면, 병의 안쪽과 바깥쪽은 준비상태가 된다. 안쪽은 나갈 준비를 하고, 바깥쪽은 받을 준비를 한다. 하지만 둘 중 한쪽이라도 개시를 못하면 다른 쪽도 개시할 수 없다. 양쪽 모두 개시상황이 되는 순간, 무척 빠르고 폭력적으로 주고 받는 것이 이뤄진다.
12. 생략
13. 유리는 항상 같은 양의 전기적 불을 가지며, 그 양은 질량에 비해 엄청난 양이다.
14. 유리에 할당된 이 양은 그것을 강하게 유지하려 한다.
15. 유리에 있던 전기적 불의 양이 변하게 되면 원래 상태를 회복할 때까지, 불안정한 상태에 있게 된다. 이 회복은 전도체를 통한 접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16. 라이덴 병의 전체 힘은 유리 그 자체에 있다. 비전기적 물질(non-electric)은 단지 유리의 각 부분에서 부분으로 (전기를) 전달만 할 뿐이다.
17-20. 위의 증명 실험. 병을 충전시키고, 유리위에 놓은 후, 금속선(wire)을 제거한 후, 물을 채워본다. 그래도 병은 전기를 띠고 있다. 따라서 금속선은 별 역할이 없다. 이번엔 그 물을 다른 병에 채워보면 그 병은 전기를 띠지 않는다. 한편 새 물을 원래의 병에 부어보면, 그 병은 여전히 전기를 띠고 있다. 따라서 금속이나 물은 별 역할이 없다. 따라서 병의 힘의 원천은 유리이다.
한편, 납판자와 유리판을 겹겹이 붙여서도 라이덴병과 같은 충전지를 만들 수 있다. 이 충전지는 매우 강력해서 치명적이다.
21. 위의 7번의 원리를 이용하면 전기모터도 만들 수 있다.

J.L. Heilbron, “Franklin as an Enlightened Natural Philosopher”

이 글의 저자는 프랭클린이 통상적인 과학자로 보기 어려우며 오히려 ‘계몽된’ 자연철학자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프랭클린을 비롯한 18세기 ‘과학자로 여겨질 만한’ 인물들(특히 놀레 Nollet)의 실제 활동을 그려내고 그것으로부터 그들 활동의 세가지 특징 ― 적용, 유비, (지식)보급 ― 을 추출함으로써, 그들은 통상적인 의미의 과학자로 보기 어려우며 오히려 자연철학자로서의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논하고 있다.
사전적인 논의로, ‘scientist’라는 단어는 1830년 영국에서 ‘자연에 대한 지식에 능통하고 그것을 발전시키고 보급하는’ 사람을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프랑스어 동의어 ‘scientifique’라는 단어는 합리적 지식에 대한 명명으로 18세기 사용되었지만, 사람들에게 통용되진 않았다. 한편 ‘scientist’란 단어는 20세기까지도 그다지 유쾌한 취급을 받지 못했다.
통상적인 의미의 과학자를 오늘날의 훈련된 전문가 ― 오랜기간 훈련을 받고, 자연에 대한 지식을 증가시키고 적용하는 데에만 전문적으로 전념하는 사람 ― 으로 간주했을 때, 프랭클린은 어떤 과학 분과도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적이 없다. 그는 그의 공부를 통해 돈을 벌지 않았으며 그에 돈을 지불했다. 그가 남긴 여러 영역의 지식에 대한 공헌은 기술과 과학 사이의 광범위한 유비를 통해서였다. 그는 명료하게 표현할 줄 알았다. 또한 그는 지식의 축적에 만족하지 않고, 그것의 실용적 기술과 섭리 이해에 적용하려 했다. 또한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급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특성들 ― 우발적인 실험과 설명, 광범위한 유비와 표현기법에의 의존, 과학집단에서의 활발한 멤버쉽, 대중화와 신앙에 대한 관심, 실용에 대한 희망 ― 은 바로 그 시대 자연철학자들을 정의한다. 이는 당시 그의 정반대편에 서있던 놀레 또한 비슷하게 가지고 있던 특성이다. 그들은 자연철학자이다.

적용
다니엘 제니쉬는 사고의 실험과 관찰, 다방면에 걸친 사고와 행동에 기반한 사고의 실용적 방법을 그 세기의 최고가치로 간주했다. 프랭클린은 그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완전한 자연철학자는 단지 사색가가 아니었다. 모은 지식을 적용했다. 18세기 말 유럽과 미국의 지식인들은 실용적인 산물이 자연철학의 선물이라 생각했고 실용적인 적용을 하나의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프랭클린은 (재미와 교육을 위한) 실험결과를 실용적인 적용을 할 줄 하는 실험철학자임과 동시에 이미 알려진 (물리)지식을 적용할 줄 아는 실용적인 절약가(economist)였다. 전자에 의해 피뢰침을 발명하였고, 후자에 의해서는 펜실베이아형 난로를 발명하였다. 피뢰침은 접지된 뾰족한 바늘을 통한 방전실험의 외삽 결과였고, 펜실베니아형 난로는 (그대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공기순환에 대한 물리이론을 적용하여 과거난로의 문제를 설명하고 그것을 개선하려는 노력이었다.
반면, 놀레는 피뢰침같은 발명을 하진 않았지만, 온도계, 검전기, 에나멜 코팅법 등 자신의 지식을 여러분야에 적용했다.
한편, 지식을 신의 섭리 이해에 적용하는 방법을 살펴보면, 프랭클린의 경우, ‘인간이 가진 지식과 지혜의 적음은 신의 위대함을 보여준다’는 논지를 펼쳤고, 놀레의 경우, ‘자연에 대한 공부를 통해 느낄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잇점은 창조주의 위대함을 깨달을 수 있다는 점이다’는 논지를 펼쳤다.

유비
마찰을 통한 대전과 방전에 대한 설명은 펌프원리에 대한 유비에서 왔고, 충전상태에서의 양으로의 대전과 음으로의 대전 등의 기술은 장부계원의 용어에서 따왔다. 균형과 비균형 수지, 자연용량, 자유순환, 종국적인 회복 등의 개념은 프랭클린이 전기현상에 적용하기 20년 전에 그가 썼던 글에 이미 등장했었다. 기쁨과 고통의 상호관계에서(도덕), 가난 문제에서(복지), 수표발행의 문제에서(경제) 그는 반복해서 +/- 및 종국적인 평형의 개념을 사용했다. 한편 용량의 개념은 인구문제에 대한 고찰에서도 등장했었다.
또한 난로 문제에 대한 유비로 기상학과 해양학에 대해 이해하려 했고, ‘기화열’ 현상에 대해 ‘왜 그러한가’에 대한 설명은 못해도 그것의 유비로 여러가지 설명과 예측 및 적용을 하려 했다.
1771년 브리테니커는 “우리의 철학의 중요한 부분은 유비 외에 다른 어떤 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아”고까지 하였다. 보통 유비는 ‘일상적인 관찰’과 ‘다룰 수 있는 물체에 대한 역학’ 사이에서 흔히 이루어졌다.
한편, 놀레는 그의 전기이론을 수력학적 유사성에 기반해 세웠다. 그의 유비추리 유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유형으로 볼 수 있다.

보급
그들은 매우 사회적이었다. 놀레와 프랭클린 모두 다양한 그룹에 속해 활발한 활동을 하였고, 교훈적이거나 품위있는 글쓰기를 통해 지식을 공유하고 퍼뜨렸으며, 지식을 알아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을 역설했다. 한편, 둘 모두 여자도 자연철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편, 그들은 여자가 수학에 약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여자 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복잡한 수학을 뺀 채 가르치는데 노력하기도 했다. 또한 그들은 미신과 편견을 척결하는 데에도 힘을 쏟았다.

그들은 다방면에 많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과학자는 아니었다.

Thomas L. Hankins, Science and the Enlightment, pp. 46-80

이 글은 실험물리학이 정립해가는 과정을 서술한 글이다. 실험물리학은 각기 계승되어온 실험전통과 수학전통이 정량적 이론에 의해 통합됨으로써 비로소 정립될 수 있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미세유체와 같은 것의 가정은 정량적 이론의 형성초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음을 주장하고 있다.
계몽말기, 실험물리학은 비유기물을 지배하는 법칙을 발견하기 위한 정량적, 실험적 방법의 사용을 의미하게 된다.
애초에 물리학이 다루는 범위는 매우 모호했고 실험도 정량적인 방식도 없었다.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은 동물을 설명하는 데에 더욱 성공적이었다. 실험전통은 르네상스 시기 ‘자연 마법’이란 이름으로 시작되었고, 수학전용의 전통은 ‘혼합 수학’이라 불리며 시작되었다. 사색적 철학에서 수학의 지위가 점점 상승해감에 따라 수학의 중요성에 대한 논쟁이 일기도 했으며 점차 실험과 수학(추론)은 균형을 맞춰가기 시작한다.
실험전통은 영국과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계승되었고, “실험”과 “설명장치(demonstration apparatus)”가 무척 강조되었다. 한편, 수학전통은 독일을 중심으로 프랑스에도 일정정도 영향을 미치며 계승되었으며,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기반으로 하나의 합리적 체계를 구성하려는 노력이 계속 시도되었다.
그러나 실험이 곧 물리학을 정량화하지는 못했다. 실험기구는 현상을 측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기 위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측정이란 행위는 정량적 이론들이 나오고서야 행해졌으며, 이는 수많은 정성적 관측 후에야 가능했다.
18세기말, 정확한 측정은 실험물리학의 중요한 목표가 되었으며, 그러자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미세한 유체”는 정량적 법칙에 의해 대체되었는데, 이 새로운 정량적 법칙은 물리현상을 더욱 잘 예측했지만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미세한 유체
전기 또는 열의 전달을 설명하는데 그것을 ‘성질은 있으나 무게는 없는 유체’ 탓으로 돌리는 것은 가장 쉬운 일이며, ‘미세한 유체’는 몇몇 알기 쉬운 개념으로 구성된 이론적 틀을 제공해주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시도가 한창이던 17세기 중엽, 뉴턴의 에테르가 ‘있다’는 식으로 재해석되기도 했다.
미세한 유체는 서로 반발하며, 팽창적인 성질을 보편적으로 띠고 있어서, 밀도가 낮은 곳으로 퍼지게 된다는 것이 기본 설명틀이다. 이러한 미세한 유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불’과 유사한 본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열, 빛, 전기는 불의 여러 형식들로 간주하고 실제로 그들에 ‘불’이라 이름 붙이기도 했다.
미세유체 이론은 물리학자들에게 새로운 물리적 개념들을 만들고 일정정도 그들을 정량화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종국에, 뉴턴 이론이 에테르의 가정없이 중력현상을 수학적으로 기술할 수 있었듯이, 18세기 말 물리학자들도 미세유체의 가정없이 온도, 열, 전하, 용량과 같은 물리적 개념들을 정량화할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물리학은 점점 현상론적이고 정량적인 이론이 되었다. 미세유체 이론은 그것이 이론 형성과 정량화의 초기단계에 본질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잃게 되었다.

전기
18세기 많은 인기를 누린 전기실험은 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으로 단일유체 이론과 두가지유체 이론이 경쟁하였다. 한편, 이론이 형성되기 전부터 전기에 관련된 개념들과 실험장치들은 1600년 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는데, electric과 non-electric을 마찰전기의 생성유무로 구분하였고, 진공에서의 발광현상들에 대해 그 현상의 필요조건들을 찾다가 전기발생장치를 만들게 되었다. 한편 전도현상과 인력/척력 개념을 알아냈고, 두 종류의 전기를 구분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관찰에 의해 두종류의 전기적 유체를 가정하곤 했다. 이러한 시기에 프랭클린은 단일유체 이론을 제안하는데, 그의 이론은 (왜 그런가에 대한) 설명에는 성공적이지 못했으나, 현상의 규칙성을 기술하는 데에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실험기구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라이덴병은 일종의 충전기이다. 프랭클린은 이 기구를 통한 많은 실험으로 그 원리를 설명하려 했는데, 전도체는 전기적 불을 운반만 할 뿐이고 전기는 불침투성인 유리표면에 있다는 결론을 낸다. 또한 실험가들은 유리 뿐만 아니라 공기에도 전기유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인력과 척력은 전기적 공기의 직접작용 때문인 것으로 생각했었다. 이러한 많은 착각들은 전도와 전기성 사이의 많은 혼란 때문이었는데, 전도체는 전기현상을 띠지 않고 반대로 부도체는 전기현상을 띠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 때문이다.
한편, 라이덴병을 시작으로 한 충전기의 발명들, 특히 볼타의 고갈되지 않는 전기를 공급하는 일렉트로포어(electrophore)의 발명은 전기적 공기 개념의 불충분함을 증명하게 되었고, 공기의 제거와 함께 전기학자들은 현상에 대한 메커니즘 설명을 포기하게 되었고 대신 정량적인 규칙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측정 이전에 ‘무엇을’ 측정할지가 결정되어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다시 이론이 필요했다. 대략적인 측정을 가능케 했던 검전기는 비선형적이었기에 수학적인 비례분석이 불가능했고, 이후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전기력의 제안은 성공적이었고 실험적으로도 증명되었고, 이를 세밀하게 증명한 쿨롱의 비틀림 저울은 실험물리학의 새로운 모범이 되었다. 카벤디쉬는 전기력 측정 뿐만 아니라 오차분석을 처음 시도했으며, 상대용량과 상대저항을 무척 작은 오차로 측정해냈다.
흐르는 전기는 갈바니의 개구리 해부실험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갈바니는 이를 생체전기 식으로 설명하려 했지만, 볼타는 개구리다리는 단지 전기 탐지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흐르는 전기의 필요조건이 두종류의 금속과 물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볼타전지 즉 흐르는 전기를 발명했다.


열이 정량화되기 시작한 것은 온도계의 발명부터이다. 그러나 온도계의 눈금이 자의적이라는 문제와 도대체 측정한 게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상당한 골치거리였다. 일단 일정한 열을 가하는 실험을 통해, 수은팽창이 열에 선형비례한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 후 물체의 양에 따라 또는 물체의 종류에 따라 수은팽창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온도는 열의 밀도와 같은 개념으로 열과 구분되었다. 이 과정에서 열용량이라는 개념과 비열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다. 재밌는 것은 예상과 달리 밀도는 열용량과 완전히 무관하다는 사실이었다.
액화열과 기화열 등의 잠열의 발견은 열의 총량이 보존된다는 직관을 흔들었고, 온도계로 탐지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한편, 잠열의 발견으로 측정될 것으로 기대되었던 열소의 질량은 측정되지 않았다. 재밌는 것은 열소이론을 반증하는 사례(포탄 뚫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가 제시되었음에도, 열소이론은 반박되지 않았다. 열소이론은 정량과학을 가능케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용이했기 때문이다. 열현상에 대해 역학적 이론을 주장하는 과학자일지라도 편의상 열소(열유체)의 용어로 생각을 하게 된다.
열에 관한 유체이론은 복사현상을 설명하지 못함으로 인해 복사열을 다루는 이론을 찾는 과정에서 끝나게 되었고, 이후 기체운동이론에 의해 대체되었다. 그럼에도 유체이론은 실험의 정량화를 가능케 했고, 역학적 철학에 추상적 차원을 더해주었으며, 매우 유용했다. 이들 유체 이론들은 강력한 반박들에도 오랫동안 살아남았는데, 그 이유는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웠고, ― 매우 단순하고 좋은 모델이었음 ― 역학이론엔 이를 대체해 설명할 다른 모델이 없었기 때문이다.

M. Pera, The Ambigous Frog : The Galvani-Volta Controversy on Animal Electricity, pp. 117-175

이 글은 갈바니-볼타 논쟁의 촉발에서부터 볼타의 승리하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두 진영의 입장차이는 결정적 실험 제시를 비롯한 논쟁의 진행과정에서 좁혀지기보다는 오히려 점점 벌어져갔으며, 이에 대해 저자는 두 이론 사이의 공약불가능을 주장하는 한편, 볼타의 승리는 파일(pile)에 의해 우위를 점해서이기도 하지만 여타 사회적인 이유 또한 작용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개구리 다리 실험을 계기로, 갈바니, 알디니, 발리 등은 동물 전기이론 진영을 형성하는 한편, 볼타, 레일, 폰타나 등은 접촉 전기 이론 진영을 형성하게 되었다.
결정적 실험은 실질적인 증거를 포함한다. 그러나 같은 실험을 놓고도 다른 설명가설과 이론이 나올 수 있었다. 갈바니의 결정적 실험 ― 몇가지 종류의 금속 없이도 근육 수축이 발생한다는 것을 밝히기 위한 실험 ― 에 대해서, 볼타는 그 실질적인 증거는 인정하고 자기 이론과 모순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곧 갈바니 이론에 대한 동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고, 볼타는 새로운 가설을 통해 설명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볼타가 결정적 실험 ― 상이한 도체 사이에서 접촉에 의해 생긴 불균형으로부터 전류가 발생시키는 실험, 근육수축의 원인이 신경과 근육 사이의 불균형이 아니라 그 외부의 힘에 있음을 보이고자 했음 ― 을 수행하여, 자신의 지위를 회복했다.
두 진영의 결정적 실험 이후, 적절한 절충안으로 타협하는 것이 합리적인 해결일 수도 있겠으나, 이러한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두 진영의 절충안은 두 진영의 입장을 공평하게 ― 두 공간에 걸쳐서(coextensive) 동등하게(equivalent) ― 다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두 진영은 각각 다른 길을 걷다가 19세기 초 볼타의 파일(Volta’s pile)가 등장하고서야 논쟁이 종결될 수 있었다. 파일은 지금까지와 비슷한 기전력과 갈바닉 유체를 거의 똑같이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볼타는 이를 접촉 이론의 뚜렷한 증거라고 생각했고, 곧 대부분 나라의 과학자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또한 점차 동물 전기에 대한 언급은 사라지게 되었고, 결국 볼타의 승리로 두 진영의 논쟁은 종결되었다.
저자는 갈바니와 볼타가 서로 다른 개념틀을 이용하게 현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같은 현상을 보고도 다른 해석을 내리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상대방의 게슈탈트(gestalt)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참된 결정적 실험이란 존재할 수 없고, 결정적 반박도 존재할 수 없다.

S. Hong, “Once Upon a Time in Physics When Both Mathematics and Experiment were Helpless: A strange Life of Voltaic Contact Potential”

이 논문은 왜 볼타접합효과에 대한 논쟁이 19세기동안 합의 없이 지속되는가에 대한 답변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실험과 수학 모두 둘 중 누가 옳은지를 결정해주는데 도움이 안되었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톰슨과 톰슨 진영을 한편으로, 멕스웰과 멕스웰 진영을 다른편으로 놓고, 그들 사이의 논쟁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결론적으로 두 진영의 이론이 공약불가능했으나, 이는 주로 톰슨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기에 비대칭적이었다는 점을 주장할 것이다.

핵심논쟁은 볼타전지의 기전력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것이었으며, 톰슨과 멕스웰 논쟁은 이전의 논쟁을 각기 계승한 것이었다. 볼타의 경우 기전력을 금속접합에 의한 것으로 본 반면, 갈바니와 패러데이는 화학이론에 따른 금속-전해물 결합에 의한 것으로 여겼다. 이후 톰슨은 정밀한 전위계를 이용하여 두 금속을 서로 떼지 않고서도 전위차를 측정할 수 있게 되었고, 그의 지지자들은 톰슨의 이론을 더 발전시켜 금속과 전해액, 액체과 액체 사이의 전위차도 이론에 포함시키는 성과를 냈다. 이로써 전지의 기전력은 몇몇 분리된 접합 전위차의 합 ― 두 금속 사이의 전위차 + 금속과 전해질 사이의 전위차 ― 으로 설명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톰슨의 새 접합이론은 볼타접합현상과 그 기전력까지 설명하며 금속 외 물질 사이의 접합까지도 포함하는 정통이론이 되었으나, 멕스웰의 비판이 제기되면서부터 톰슨과 멕스웰 진영의 논쟁은 1900년에도 계속되었다.

전위 측정에서의 합의, 이론에서의 불일치
전도 전위계, 유도 전위계를 만들어내면서, 볼타전지의 기전력을 0.75V로 정확히 측정해낼 수 있었다. 이에 대한 표현은
과 같이 할 수 있다. 그러나 볼타는 공기와 금속 사이의 전위차를 0으로 해석했고, 멕스웰은 반대로 두 금속 사이의 전위차를 거의 0으로 해석했다. 다시 말해 볼타는 전지의 기전력을 금속 접합의 결과로 해석한 것이며, 멕스웰은 금속과 공기 접합의 결과로 해석했다. 이러한 결론의 차이는 각기 미세하게 다른 전위의 정의 ― 단위전하를 무한히 먼 지점에서 도체(Maxwell) vs 도체 근처(Thomson)까지 옮기는 데 필요한 일의 양 ― 를 사용했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실험장치(전위계)가 측정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불일치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론은 실험으로 검증될 수 없었는데, 실험으로는 개별 전위차를 따로 측정할 수 없었고 오직 총전위차만을 측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열전기 측정과 수학적 분석에서의 불일치
열전기 현상이 발견되어 JTI라는 양이 측정되었다. 톰슨은 열현상과 전기현상이 무관하다는 생각 때문에 그 작은 값에 대해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나, 멕스웰은 열현상과 전기현상의 상호작용을 생각하며 그 작은 값을 두 금속 사이의 전위차로 해석하였다.

결정적 실험에 대한 불일치
멕스웰 진영의 결정적 실험으로는 브라운의 실험이 있다. 그는 공기를 황화수소로 대체했을 때 기전력이 반대로 바뀐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기전력이 매질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결론을 내렸고, 멕스웰은 이를 자기이론을 입증하는 결정적 실험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볼타진영은 여러 이유로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멕스웰 진영의 로지(Lodge)조차도 사용된 금속이 녹슨 것을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톰슨 진영의 결정적 실험으로는 진공 실험이다. 진공상태에서도 기전력 측정값이 같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기전력이 공기와 상관없으며 단지 금속사이의 전위차임을 보이는 결정적 실험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멕스웰 진영은 진공상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를 거부하였다.

결론
두 이론간의 불일치는 너무 근본적이어서, 양 진영은 종종 합리적인 소통이 불가능했다. 쿤의 관점에서 볼 때, 두 이론은 공약불가능했다. 톰슨은 멕스웰의 개념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는 전기와 열에 대한 비연관성에 대해 확신했고, 멕스웰의 볼타전지에 대한 견해를 멕스웰의 전체 이론틀(전자기 이론) 내에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톰슨의 제자들은 멕스웰의 전자기 이론 분만 아니라 멕스웰의 볼타전지에 대한 견해까지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에 대해 동의는 하지 않았지만 각 이론의 장점과 단점도 인정했다.
반면, 멕스웰과 그 지지자들은 비유적으로 말해, 2개국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멕스웰은 초창기 전위에 대한 관념을 톰슨으로부터 빌려왔기 때문이다. 이후 그것을 버리긴 했지만, 그는 톰슨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따라서 두 이론은 공약불가능했지만, 대칭적이지는 않았다. 공약불가능은 주로 톰슨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였다.

[과학사통론2] 뉴턴주의의 사회적 의미: 3주차 요약문 – 클라크 vs 라이프니츠 논쟁을 중심으로

hs_3.hwp <과학사통론 II 3주차 요약문>
뉴턴주의의 사회적 의미 : Newton(Clarke)-Leibnitz Dispute

날짜 : 2004. 9. 14 | 이름 : 정동욱  | 담당교수 : 홍성욱

Leibnitz-Clarke 논쟁 (생략. Koyre 글에 자세히 담았음)
Alexander Koyre, “Leibnitz and Newton”

1차 제기
① 영국에서의 신앙심 쇠퇴는 뉴턴 탓인가?
② 공간은 신의 (지각을 위한) 기관인가?
③ 지속적으로 태엽을 감아주는 신은 과연 완전한가? 지적능력이 부족하지 않은가?

1차 답변
① 신앙심 쇠퇴는 사실이나, 그것은 유물론 탓임. 뉴턴의 수학적 원리는 유물론을 배격하는 이론임. (무한한 진공의 공간에 비해 작은 양의 물질을 전제하기 때문)
② 공간은 신의 기관이 아니며 신은 그러한 기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신은 어디에나 직접적으로 존재함으로써 지각할 수 있다. 공간은 어디에나 있는 신의 sensorium과 같다.
③ 신은 무질서로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영원히 작동하는 시계를 보존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신은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2차 제기
① ‘수학적’ 원리 자체가 유물론과 동일하며, 그 내용은 데모크리토스, 에피쿠로스, 홉스의 주장과 같다. 한편, 중요한 문제는 수학이 아니라 형이상학이며, 형이상학은 ‘충족적 근거의 원리’에 기초해야만 한다. (뉴턴의 수학적 원리의 내용이 그 원리에 위배된다는 함축)
첫째, 스피노자의 세계관과 유사하다.
둘째, 뉴턴의 신은 예지력이 없는 Socinians의 신과 매우 유사하다.
셋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도 진공을 인정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그들이 생각하는 물질의 양이 뉴턴보다 많다는 점뿐이다. 그러나 더 많은 물질은 신의 지혜와 힘을 행사할 더 많은 기회를 의미한다. 이는 진공이 불가능하다는 근거이다.
② Sensorium은 감각기관이다.
③ 신의 지속적인 (보존) 활동은 필요하다. 다만 세계는 더이상 고칠 필요가 없도록 창조되었을 뿐이다. 반면, 신이 세계를 계속 고쳐야 한다면, 그는 초자연적인 방법, 즉 기적을 통해서(그러나 기적을 통한 자연현상의 설명은 불합리하다) 또는 자연적인 방법을 통해 할 수 있다. 이 경우 신은 자연에 속한 존재인 anima mundi가 된다.

2차 답변
① 수학적 원리는 절대 유물론과 동일하지 않으며 전혀 반대이다.
첫째, 수학적 원리는 세계에 대한 순수 자연적인 설명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둘째, 충족근거의 원리는 맞다. 그러나, 충족근거가 단지 신의 의지일 수도 있다. (초기 위치 부여의 경우 신은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음)
② 신은 intelligentia mundana도 intlligentia supra-mindana도 anima mindana도 아니다. 신은 세계의 안에도 밖에도 모든 것 안에도 모든 것 위에도 존재하는 intelligence다. 신은 기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 Sensory라는 단어는 (감각)기관이 아닌 감각의 장소를 지칭한다. 또한 뉴턴은 장소가 sensoruum이라고 하지 않았다. 비교를 위해서만 썼을 뿐이다. 신은 모든 것을 그것에 존재함으로써 그것자체로써 지각한다.
③ 신의 개입은 신의 ‘영원한 계획’에 있는 것이다. 한편, 신의 활동은 자연스러운 것, 기적적인 것으로 구분될 수 없다. 기적을 통한 개입은 신의 지배를 배제하는 것을 뜻한다. 한편, 신의 개입 없이는 우주의 motive force는 감소하여 결국 사라질 것이다.

3차 제기
① 클락은 공간에 대해 실재하는 절대적 존재라고 했다. 이는 문제 소지가 많다.
첫째, 그러한 존재는 영원하고 무한해야 한다. 따라서 그것은 신 자체 또는 신의 속성 중 하나로 여겨진다.
둘째, 공간은 부분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그것은 신에 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셋째, 공간이 절대적으로 동질적이라 하면, 모든 점은 다른 점과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어떠한 물체를 특정한 곳에 위치시켰는지 근거가 있을 수 없다. 이로써 선택이 필요없는 공간과 시간의 상대성을 주장. 공간은 물체의 공존의 질서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시간은 계승의 질서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 근거가 없으면 선택을 할 수 없고, 선택을 할 수 없으면 하지 않는다. 동기 없는 선택은 진정한 자유와 반대되는 모호한 무차별이다.
② 지속적인 수리는 그의 기계의 비완벽성 뜻한다. 신은 그러한 불편을 피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취할 것이고, 그렇게 했다. ※ 이 또한 자기충족 요건 가정에 기반하고 있음.

3차 답변
① 공간은 존재가 아닌 무한하고 영원한 존재자의 존재의 속성이자 귀결이다.
첫째, 공간은 분할 불가능하다. 무한한 공간은 하나이다.
둘째, 공간과 시간의 상대성 논변은 모순을 야기한다.
※ 신은 선택의 자유가 있고, 선택의 근거나 동기가 꼭 필요하지는 않다.
② 어디에나 있는 존재자로서의 신은 모든것에 본질적으로 그리고 substantially 존재한다. 그의 (거기에서의) 존재는 거기서의 작용을 뜻한다. 그가 없으면 작용도 없다.
※ 거기에 없으면 아무것도 활동할 수 없다. 신 또한. 원거리 작용은 없다. 신 또한. 그러나 신은 어디에나 “거기에” 존재함으로써 그는 어디서나 작용할 수 있다.

4차 제기
① 선택 없이 작용이 없고, 결정동기 없이는 선택이 없고, 충돌하는 가능성 사이에 차이가 없으면 동기가 없다. 따라서 완전히 동일한 두개의 상황은 실재할 수도 가능할 수도 없다. 따라서 진공은 불가능하며, 공간은 물체의 기능일 뿐이다. 또한 물질(substance) 없이는 속성이 없다. 공간은 무엇의 속성인가? 공간이 절대적 실재라면, 신은 그것을 파괴할 수도 변경할 수도 없다. (인력의 문제 등에 대한 빈약한 반박들 계속됨. 뉴턴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반함)
※ 이런 식의 제기는 동일한 물체가 불가능하다는 라이프니츠의 말이 맞다면 창조도 불가능(입자론의 입장에서). 따라서 더이상 분할할 수 없는 입자 부정함.

4차 답변
① 공간은 어떠한 substance의 속성이 맞다. 그 substance가 바로 신이다. 한편, 진공에는 물질 외에 가능한 많은 다른 substance가 있을 수 있다. 이로써 공간은 부분으로 분할될 수 없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하나이기 때문이다.
② 진정한 운동은 절대운동이다. 절대공간과 절대시간 실재한다. (절대공간의 개념은 물질의 무한성을 피하기 위함이자 창조의 개념을 구제하기 위함이다)

5차 논쟁 (생략. 앞의 논쟁과 많은 부분 중복)

논쟁의 종결과 그 이후
라이프니츠의 죽음으로 논쟁은 끝이 났다. 이후 뉴턴과학과 뉴턴철학은 더욱더 많은 근거를 얻게 되었고, 점차 데카르트주의자들의 저항을 극복해갔으며, 18세기 말 뉴턴의 승리는 완결되었다. 뉴턴은 승리했지만, 뉴턴의 수학적 원리는 점차 이신론 또는 입자론(유물론)의 입장과 동화되어 자연화되었고, 형이상학적 근거들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된다.
인력의 문제 : 신의 작용이 아닌 자연의 작용으로 변모함. 인력의 원인은 단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됨.
공간의 문제 : 뉴턴이 말했던 속성은 그대로 남았지만, 거기서 신의 존재는 사라짐.
감소의 문제 : 뉴턴과학의 발전에 따라, 라이프니츠의 입장이 받아들여짐. moving force는 사라지지 않으며, 세계는 태엽을 감아줄 필요도 수리해줄 필요도 없어졌다.
신성의 문제는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100년이 지난 뒤, 라플라스는 나폴레옹의 ‘세계에서의 신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저의 세계에는 신이라는 가정이 필요치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Steven Shapin, “Of Gods and Kings: Natural Philosophy and Politics in the Leibnitz-Clarke Disputes”

미적분 발견에 대한 우선권 논쟁에서 시작된 라이프니츠와 클라크의 논쟁은 자연철학, 형이상학, 종교의 영역에까지 확장된다. 그들 논쟁의 주요한 쟁점은 세 가지 ― 신이 자연세계의 질서에 개입하는 방법, 진공의 가능성, 공간과 물질의 속성 ― 로 볼 수 있고, 그중 신학적 공리에 대한 견해차 ― 뉴턴의 신은 자율적 의지(will)가 강조된 신인 반면 라이프니츠의 신은 완벽한 지혜(wisdom)가 강조된 신이다 ― 가 근본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도의 분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들 사이의 형이상학, 신학, 자연철학 논쟁의 중요성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위해서는 당시 사회정치적 맥락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다. 다시 말해, 1680년에서 1720년 사이의 영국의 특수한 사회정치적 대립구도 하에서 특정 정치그룹들이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과정에 라이프니츠와 클라크의 논쟁이 존재했고, 그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만 그 논쟁의 진정한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1680년에서 1720년 사이의 영국의 정치적 쟁점과 대립구도
왕권계승의 정당성과 그것의 정치적 책임을 둘러싸고, 토리당, 휘그당 및 기타 급진파들의 대립이 형성되었다.
토리당 : 개인의 자유의지 부정, 완벽한 절대군주제 지지
(궁정)휘그당 : 개인의 자유 인정, 제한적인 군주제 지지 → 뉴턴의 견해와 유사성 존재
급진파 : 홉스주의자, 스피노자주의자, 공화주의자, 지방휘그 등 → 라이프니츠의 견해와 유사성 존재

결론
명예혁명 이후 주도권을 잡된 휘그주의적 저교회 분파는 급진적인 지방휘그나 자유사상가들이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왔다. 그 시기 휘그주의적 저교회 분파의 입장에 서있었던 클라크의 라이프니츠와의 논쟁은 급진적 자유사상가들에 대한 클라크의 정치적, 이론적 투쟁이기도 했다. 여기서 라이프니츠의 철학에 대한 정치적 이용은 라이프니츠의 의도와는 상관이 없다. 라이프니츠의 철학이 지방휘그의 정치적 입장의 관점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다는 증거 또한 없다. 그러나 특정 철학적 견해들은 영국 내 대립하는 각 사회그룹에 의해 사용되었고, 그들의 정치적 견해를 정당화하는 데에 일상적으로 이용되었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그 시기의 라이프니츠와 클라크의 논쟁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했다. 또 한편, 당시 철학의 사회적 이용은 그 자체로 평가적이진 않았을지라도 자연철학자의 판단에서 핵심을 차지했다.

Margaret C. Jacob, The Newtonians and the English Revolution,
ch. 5 “The Boyle Lectures and the Social Meaning of Newtonianism”

보일강좌의 배경 – 뉴턴주의를 옹호한 성직자들의 공통된 관념
① 신의 의지에 조화롭게 작용하는 우주는 사회적․정치적 안정과 유사하다는 관념 공유
② 한편으로는 무신론, 이신론, 반종교론 등의 위협에 대항해야 한하는 관념 공유
③ 명예혁명 이후 사회적 상황에 맞는 새로운 사회철학 필요성 공유

보일강좌에 참여한 성직자들이 사용한 뉴턴주의의 구체적 내용
① 우주의 질서는 신의 의지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안정적으로 그 위계질서가 유지된다
② 뉴턴의 물리 이론과 운동법칙은 자연에 대한 신의 섭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Clarke)
③ 운동법칙에 의해 통제되는 자연세계 속에서 정치적 세계의 모델을 발견할 수 있다
④ 자연의 질서가 신의 의지에 의하여 통합적이고 조화로운 것과 같이, 사회의 질서도 조화롭게 유지되어야 한다
⑤ 인간은 (신의 의지에 의하여) 사소하고 하찮은 물질을 지배한다
⑥ 신에 대한 인간의 복종, 물질에 대한 인간의 우위와 같이, 상층에 대한 복종과 위계질서가 잡힌 사회형태를 조화로운 사회이다

보일강좌의 사회적 역할
① 교회의 도덕적 권위 회복과 정치적 영향력 유지
② 뉴턴의 자연철학을 (온건)휘그주의 이데올로기와 통합하여 정치적 사회적 안정 도모

Toulmin, Cosmopolos (Chapter 3, The Modern World View)

1. “국민국가의 유럽”이라는 새로운 체제의 형성
1600년까지만 해도 봉건적 질서에 의해 유지되었던 유럽의 주요국가는, 종교전쟁이라는 엄청난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1650년 경 국민국가의 체제를 정립하게 된다. 그 시기 국민국가가 역점을 두었던 과업은 첫째 안정, 둘째 종교적 통일과 관용이었다. 이때부터 영국과 프랑스는 ‘국민적’ 발전의 전형을 보여준다. 영국은 잠시 동안의 공화정을 거쳐 입헌군주제의 길을 걸었고, 프랑스는 절대왕정의 길을 걸었다.
새로운 정치체제의 정립에 조응하여 새로운 종류의 사회적 관계 ― 계급사회 ― 도 형성되기 시작했다. 수직적으로 구획된 중세(당신의 주인은 누구인가? 당신은 누구의 사람인가?)와 달리 ‘주인없는 사람들’의 수평적인 사회계급 형성은 사회적 안정과 충성에 대한 위협으로 뚜렷하게 부상하게 되었다. 한편, 국민다운 국민에 대한 관념 형성되기 시작하며, 왕권은 상송적 봉건 영지의 법적 계승권이 아닌 국민이나 민족의 상징이라는 관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한편, 새롭게 형성된 국민국가 내에서 개인들 및 공동체들 사이의 관계를 지배할 ‘새로운 원리’의 정립이 필요했다.

2. 1660-1720: 보편교회 Ecumenism을 구상한 라이프니츠
17세기 사회 재건 사업의 두가지 과제는 첫째, 서로 다른 신학적 입장과 종교로 인해 반목해온 국민들 사이에서 대화의 통로를 회복하는 문제, 둘째, 봉건적 관계로부터 벗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안정적이고 통합적인 사회관계를 재정립하는 문제였다.  
이러한 과제에 대해, 데카르트가 이성적 방법이 종교적 대립을 피해 확실성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라 희망했던 것과 유사하게, 라이프니츠는 보편언어 이론이 정치적 신학적 마찰을 일고에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했으며, 이를 위해 수학적 상징체계를 도입하려 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그는 모든 경쟁적인 교리가 공유하고 있는 ‘충족이유의 원리’에 의존하여 유럽의 신앙체계를 통합하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3. 1660-1720 : 뉴턴과 새로운 코스모폴리스
여러 국가, 다양한 종파에 소속된 ‘석학들’에게 확신을 심어줄만한 지식체계 정립하여 공통의 세계관을 유지하는 일에 있어서, 실질적으로는 라이프니츠보다는 뉴턴이 더 큰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데카르트, 뉴턴, 라이프니츠는 일련의 공통된 관념을 공유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상당히 이분법적인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으며 근대적 믿음들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그 대략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자연에 해당하는 관념으로는 ① 자연은 창조시부터 작동된 불변 법칙들에 의해 지배된다 ② 자연의 근본 구조는 불과 몇천년 전에 정립되었다 ③ 물리적 자연의 대상들은 비활동적은 물질로 구성된다 ④ 창조 시에 하느님은 자연물들을 안정된 위계로 묶었는데, 이 위계서열 내에서 ‘보다 높은 것들’의 체계는 ‘보다 낮은 것들’의 체계와 결합한다 ⑤ 사회에서의 ‘행동’이 그러하듯이 자연에서의 ‘운동’은 아랫쪽으로, 말하자면 ‘보다 높은’ 피조물로부터 ‘보다 낮은’ 피조물들에게로 진행한다. 한편 인간에 해당하는 관념으로는 ① 인간에게 ‘인간다운’ 면이 있다면 그것은 이성적 사고나 행동의 능력이다 ② 합리성과 인과성은 서로 다른 규칙에 따른다 ③ 사고와 행동은 인과적으로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인과적 심리과학에 의해서는 설명될 수 없다 ④ 인간은 자연의 물리체계처럼 안정적인 체계를 사회 안에도 정립할 수 있다 ⑤ 따라서 인간은 두가지 생명이 혼합된 생을 영위하는 바, 일부는 이성적이며 일부는 인과적이다. 이성적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삶은 지적 혹은 영적이지만, 감정적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삶은 육체적 혹은 육욕적이다 ⑥ 감정은 이성의 작용을 방해하며 왜곡하는 특성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이성이 신뢰받고 고양되어야 마땅하다면, 감정은 불신되고 제한되어야 마땅하다.
이러한 믿음들은 ‘타당성’을 충실하게 검증받은 적이 없었다. 이들은 ‘공리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지적 비계들(intellectual scaffoldings)’이라고 보아야 한다. 즉, 과학자들이 근대 물리학을 구성한 ‘골격’이었다. 사실상 근대의 비계는 일련의 잠정적이자 사변적인 절반진리들로 구성된 것이었으며, 이성주의 철학자들의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근대의 비계는 논리적 증명뿐만 아니라 사실적 근거마저도 결여한 것이었다.

4. 1720-1780 : 근대성의 외전들
1700년대 이래로 새로운(뉴턴식) 자연관의 폭발적 수용은 ‘원전 외부’의 다른 요인들에 의존한다. 실제로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이해한 사람은 드물었다. 여기서 ‘폭발적 수용’이라고 하는 것은 다소 과장이긴 하다. 새로운(뉴턴식) 자연관(세계상)은 17세기 말 급성장한 진보성향의 소수 엘리트층에게만 유포되고 지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유포된 관념은 바로 「(국제관계에 있어서의) 안정과 (사회 계급들 간의) 위계의 원리를 하나님의 계획의 모든 구석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러한 자연관은 인간관이자, 과학적 장치일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인 장치였으며, 이를 빌어 주권 국민국가의 정치질서를 정당화할 수 있었다.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이 1700년 경에 대중적 지지를 획득한 – 또한 그 덕택에 ‘실질적으로 정립되는’ –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 과학적 세계관은 행성운동이나 조류의 간만을 훌륭하게 설명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국가의 정치체계의 정당성을 부여했던 것이다.

5. 이성주의로부터의 이단계 후퇴
근대의 과학과 철학은 탈역사적인 추상화 작업이 아닌, 역사적 상황의 산물이다. 1600년대의 혼란스러웠던 종교적 정치적 분쟁은 베이컨식 경험주의의 자신감을 쇠퇴시키고 ‘수학적 확실성’에 대한 모색에 무게를 더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뉴턴이 제시한 완전한 (수학적) 자연질서는 안정과 위계를 갈구하는 그 시대의 엘리트들에게 사회 질서를 정당화해주는 ‘코스모폴리스’를 제공해줌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다.
즉, 과학의 성공은 이 설명의 능력뿐만 아니라 정치적 고려에도 의존했다. 지난 세기의 과학적 활동은 오늘날과 전혀 다르게 수행되었다. 예컨대 뉴턴 시기의 과학적 관념은 16세기 인문주의자(베이컨)들의 권고를 무시한 채, 실천적 결실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유리된 채 성장했다. 과학자들은 베이컨의 정신을 거부하였으며, 기술의 편에서가 아니라 신학의 편에서 과학을 추구했다. 일반독자들 또한 새로운 과학이념의 코스모폴리스적 함축이 주목거리였다. 즉, 정치적 의무며 사회구조 등과 관련된 코스모폴리스적 주제들이 독자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다. 이제 과학사 연구에 꼭 추가해야 할 질문이 있다. 첫째, 특정한 시대의 과학자들, 그리고 과학의 독자들에게는 과연 무엇이 ‘현안’이었던가? 둘째, 무엇이 새로운 과학이념을 ‘상식’으로 통용될 만큼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었던가?

[과학과근대사회] 바이마르시대 독일의 수학과 물리학에 적대적인 지적환경

qkdlakfm.hwp 1. 서론

막스 재머는 ’19세기 후반의 몇몇 철학사상들(우연론, 실존주의 등)이 현대 양자이론의 새로운 개념형성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양자역학(1925년경)과 위의 철학사상은 시간적으로 25년이라는 간격이 있다. 그 기간사이에 많은 독일어권 물리학자들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연구내용상의 발전과는 관련없이’ 인과율을 거부했다.
필자는 사회학적 접근법을 이용해, 그 변화를 인과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설명을 위해서는, 독일의 당시 지적환경을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마땅하다. 바이마르의 지적환경은 물리학, 특히 인과율에 적대적이었다. 독일의 패전 이후, 바이마르의 지적 경향은 신낭만주의적 실존주의의 ‘생의 철학’이었고, 분석적 합리성, 정밀과학은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수학자와 물리학자는 이러한 환경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일반적인 반응은 ‘과학 내부로 그리고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사회 속으로 자신들을 가두어 버리며 그 분야들의 전통적인 이데올로기를 재확인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대적 환경에의 적응도 서서히 이루어진다. 특히 그들과 그들 분야의 지위가 낮아지고 있을 때에는 무언가 대항할 수단을 취해야만 한다. 그러한 대항수단은 일반적으로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를 대중의 변화된 가치와 조화되도록 하는 시도가 될 것이다.
독일 과학자들은 강연이 많았는데, 그러한 강연에서 과학자들은 실증주의적 개념들을 거부하고, 과학연구에 대한 공리주의적 정당화를 거부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과학활동의 가치와 가능성 자체마저도 거부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과학자 사회의 적응은 ‘이데올로기’ 차원에만 한정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실질적인 ‘학문적 내용’에까지 미쳤던 것일까?
필자는 물리학에서 인과율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독일 물리학자들의 적응 노력의 결과라고 확신하고 있다. 당시 독일의 물리학자는 대중에 대한 자신의 이미지를 개선시키려고 했다면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인과율, 엄격한 결정론을 제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2.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에 의해 인식되어진 형태

적대적 환경과 그에 대한 적응의 예시들 소개.

3. 다른 동시대인들에 의해 확인된 형태

루카치는 “(독일에서) 전후에 널리 읽힌 부르조아지의 세계고나에 관한 문헌은 거의 전부가 ‘생의 철학’적이었다”고 말했다. 생의 철학이란 실증주의에 대한 완전한 거부, 기계적인 것보다는 유기적인 것을, 죽은 것 대신 산 것을, 인과율 대신에 가치·목적·목표 등의 개념을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사고형태이며, 이것이 거부하는 것은 ‘인과적 해석의 기계론과 결정론이고, 연역 논리 체계, 합리주의와 형식주의’였다.
생물학에서는 신생기론, 심리학에서는 게슈탈트주의가 등장하는데, 이 또한 ‘생의 철학’과 많은 연관관계가 있다고 여겨진다.

[과학과근대사회] 발제문 : 뉴튼주의와 계몽사조

newton.hwp 뉴튼의 생애와 과학
뉴튼(Isaac Newton, 1642 – 1727) : 당시의 경험과 이론 종합하여 [프린키피아] 출간. 고전역학의 완성. 운동의 3법칙과 역제곱(만유인력)의 법칙 정리. 미적분학 도입. [광학] 출간

뉴튼과학의 방법
가설의 배격 : 실험이나 관측에 의해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설명을 ‘가설’이라고 불렀고, 과학에 있어서 이같은 ‘가설’의 개입을 배격했다. 현상의 기술로 만족하고, 그 본질이나 원인 등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으려고 함. 그러나 보편중력을 발견하기 위해 그는 분명 가정 또는 ‘가설’을 세웠을 것이다. 다만 자신이 못 느낀 것일 뿐.
‘질문들’ : [과학] 끝부분에 포함된 ‘질문들’에서 뉴튼은 중력, 전기, 자기, 열, 불, 화학 현상 등 각각에 해당하는 고유한 ‘힘’들이 있으며, 그것들의 수학적 형태를 찾아내면 그러한 모든 현상들을 수학적으로 설명해낼 수 있을 것이라 피력했다.

18세기 과학에 미친 뉴튼과학의 영향
‘질문들’의 영향 : 18세기의 많은 과학자들을 ‘질문들’에서 제기한 현상들의 기본이 되는 힘과 작용들을 설정하고 수학적으로 표현하려 시도하였다.
뉴튼주의(Newtonianism)의 두가지 경향 : ① 아주 정확하고 수학적이며 기계적인 연구. 현상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려는 시도들 ② 경험적이고 상상적인 ‘힘’들을 포함하는 사색들.
과학에 대한 하나의 이미지 형성 : 서로 분리된 채 존재하던 자연세계에 대한 지식의 여러 분야들이 ‘뉴튼과학’이라는 기치 아래 단일한 방법, 단일한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과학’이라는 단일한 분야가 되었다는 생각이 자리잡게 됨.

계몽사조
뉴튼과학이 ‘가설’이나 ‘독단'(dogma) 없이 수학적, 합리적, 경험적, 실험적 방법만을 사용했다는 믿음과 그렇게 함으로써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었다는 믿음이 18세기 철학자, 사상가, 문인들에게 퍼짐. 한마디로 ‘과학적’인 방식을 이용하면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이전의 미신, 무지, 독단 등으로부터 ‘계몽’될 수 있다고 생각함. 계몽사조 : 특히 자신들이 ‘계몽’된 사람들이라고 지칭하며, 과학적 방식을 통한 ‘계몽’을 통해 사회가 진보한다는 믿음을 가짐. 현재의 권위, 비리 등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임.

과학과 계몽사조
볼테르 : 프랑스의 상류계층은 편견과 독단에 젖어 있었고, 하류계층은 무지와 미신에 싸여 있었다. 이러한 나쁜 요소들이 교회와 관습에 바탕한 것으로 생각하고, 이러한 나쁜 요소들의 정반대로서 뉴튼과학을 소개하려 한 것. 뉴튼과학에는 편견이나 독단 없이 경험과 이성에 바탕해서 세상을 보여줄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백과사전파 : 지식의 수집을 넘어, 객관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의 사고의 형태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것을 추구. [백과전서]에 담긴 여러 항목들에는 ‘뉴튼과학’의 정신을 자주 표방하였다.

과학지상주의에 대한 반작용
낭만주의 :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현상으로, 과학에 대한, 특히 수학화되고 기계론적이 된 과학이 인간의 욕구와 감정 등과는 무관해지고 자연으로부터 조화, 생명, 신비, 멋 같은 것들을 제거해 버린 데 대한 반응.
정치적 과격파(자코뱅 등)들의 반과학적 태도 : 과학이 너무 어려워지고 전문화되어서 지적 엘리트의 전유물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권력과도 결탁해서 통제와 억압의 수단으로 사둉되게 되었다는 생각에서 생겨난 태도.
역설적으로 이러한 과학지상주의에 대한 반작용은 결국, 과학의 높아진 위상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별 중요성 없이 행해지던 과학이라는 활동이 이제는 사회의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고, 근대사회의 구성원들은 어떤 방향으로든 그것에 대해 반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