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 혁명≫ 역자 해설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번역본의 출간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현재 최종(?) 교정 작업 중이므로, 아마도 2월이나 3월에는 출간될 것 같습니다. 그 기념으로 제가 책 뒤에 덧붙인 역자 해설을 이곳에 올려봅니다.

 

Thomas S. Kuhn, The Copernican Revolution: Planetary Astronomy in the Development of Western Thought (Harvard  University Press, 1957)
Thomas S. Kuhn, The Copernican Revolution: Planetary Astronomy in the Development of Western Thought (Harvard University Press, 1957)

 

1957년에 출판된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토머스 쿤이 집필한 첫 번째 책이다. 이 책은 5년 뒤 출판한 ≪과학혁명의 구조≫와 함께 과학에 대한 통념을 허물고 새로운 과학관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과학적 변화의 일반적인 성격을 이해하기 위한 거대한 사례 연구로 기획되었으며, 그 내용은 쿤이 강의했던 하버드대학의 교양 과학 수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47년 가을 물리학 박사 과정에 있던 쿤은 하버드대학 총장 제임스 코넌트가 개설한 교양 과학 수업의 조교로 참여하면서 개인적인 ‘혁명’을 경험했다. 17세기 역학의 기원에 대한 강의를 준비해야 했던 그는 뉴턴 역학과의 비교를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을 읽다가 당혹감에 빠졌다. 뉴턴의 역학 체계로 교체되기 전까지 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서양 과학을 지배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가 너무나 엉터리로 보였기 때문이다. 쿤은 그런 엉터리 같은 내용이 사람들을 사로잡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글과 끈질기게 씨름했고, “어느 기록적인(매우 뜨거웠던) 여름 어느 날, 그러한 당황스러움은 한꺼번에 사라졌다”. 그날 그에게는 모종의 “개념적 재조정”이 일어났고, 이를 통해 그는 글 전체를 합리적으로 만들어 주는 이해 방식을 발견했다. 더 중요하게, 개인이 과거의 글을 이해하는 데 그러한 개념적 재조정이 필수적이라면, 그것은 역사적으로도 일어났어야 했다. 이는 쿤이 과학도로서 습득했던 과학 지식의 발전 방식인 축적에 의한 발전과 충돌했다. 1977년 저서 ≪본질적 긴장≫의 서문에서 스스로 회고한 바에 따르면,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음으로써 들춰낸 것은 인류가 자연을 보거나 그것에 언어를 적용하는 데서 이루어진 전체적인 종류의 변화로, 이는 지식의 추가나 단지 단편적인 오류의 수정으로는 적절히 묘사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만약 이러한 종류의 개념적 전환이 과학의 특징이라면, 과학 지식이 어떻게 발전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그림이 필요했다. 그가 보기에 이 그림을 추구하는 최선의 방법은 “과학사학자가 과거를 되찾는 데, 또는 반대로 과거에서 현재로 발전하는 데 필요한 근본적인 개념적 재조정”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1949년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쿤은 하버드대학 특별 연구원이 되어 아무런 제약 없이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과학사학자로 거듭났고, 1956년 UC 버클리로 옮길 때까지 하버드의 교양 교육 및 과학사 조교수로 재직하며 학부생을 위한 과학사 교양 수업을 꾸준히 강의했다. 그 수업의 내용은 차곡차곡 쌓여 바로 이 책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이루는 재료가 되었다. 그렇다면 쿤은 이 책을 통해 과학의 어떤 성격을 드러내고자 한 것일까? 그것은 네 가지 정도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과학은 혁명을 통해 비축적적으로 진보한다. 과학이 진보함에 따라 해명 가능한 현상들은 많아지지만 그것을 설명하는 과학의 개념들은 연거푸 파괴되고 대체된다.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이 얼마나 막강한 체계였는지를 보여 주는 동시에 그것이 결국에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 준다. 이를 통해 아무리 강력하고 그럴듯한 개념 체계일지라도 언젠가는 소임을 다하고 다른 개념 체계로 대체되기 마련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혁명적 교체 과정에는 끝이 없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믿고 있는 개념들 역시 종국에는 파괴될 것이다. 이러한 쿤의 관점에 따르면, 과학의 진보는 진리를 향해 수렴하지 않는다.

둘째, 과학 연구는 개념 체계 또는 전통의 도움을 받아 수행된다. 어떤 개인도 기존 개념 체계로부터 한 번에 벗어날 수 없으며, 코페르니쿠스 역시 태양과 지구의 자리를 바꾼 것 외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 전통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개념 체계는 우리에게 다양한 현상에 대한 통합적인 설명과 심리적 만족감을 제공할 뿐 아니라, 미지의 것을 예측하고 탐지하는 강력한 도구로서 연구의 길잡이가 된다. 좋은 개념 체계는 좋은 연구 문제를 제공하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제공한다. 따라서 개념 체계의 경쟁은 단지 현재의 설명력이 아니라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에 달려 있다. 이론의 ‘정확성’, ‘일관성’과 같은 익숙한 가치 외에 ‘생산성(fruitfulness)’이라는 낯선 가치를 중시했던 쿤의 독특한 관점은 여기서 출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이라는 유명한 개념으로 발전한다.

셋째, 과학혁명은 입증이나 반증의 논리로 진행되지 않는다. 이론과 관찰의 불일치는 전통을 파괴하는 혁명의 궁극적 원천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불일치는 언젠가는 기존의 전통 내에서 해결될 일시적인 불일치로 간주된다. 따라서 이론과 관찰의 불일치 자체는 혁명의 동기나 호소력을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어떻게 시작될 수 있었을까? 쿤은 코페르니쿠스의 동기를 설명하기 위해 그가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은 전문적인 천문학자로서 하늘의 기하학적 조화에 집착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점은 코페르니쿠스 체계에 대한 독특한 수용 과정도 설명해 준다. 그다지 정확하지도 단순하지도 않았던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는 그것의 기하학적 조화를 알아본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호소력이 있었고, 그러한 소수의 노력 덕분에 결국 다수에게 수용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혁명 초기에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수용 여부는 미적 취향의 문제가 되었다.

넷째, 과학의 한 분야는 다른 분야의 사상들과 얽혀 있다. 천문학은 기본적으로 좁은 분야에 속한 전문가들의 활동이긴 하지만, 물리학, 우주론, 종교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천문학의 일부 내용이 바뀌면 물리학과 우주론, 심지어 종교의 내용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한 변화가 완수되기 전까지 천문학의 혁신은 저항을 받는다. 이는 코페르니쿠스에 대한 당시 유럽 사회의 저항이 왜 그렇게 극렬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촉발된 변화가 왜 그렇게 광범위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쿤에 따르면,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코페르니쿠스가 야기한 수많은 천문학 바깥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도중에 완성됐다. 따라서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출판된 1543년에 시작되긴 했지만, 그 혁명은 그로부터 150년 뒤에나 종결될 수 있었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코페르니쿠스만의 혁명이 아니었다.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은 독자라면, 쿤이 제시한 ‘정상과학→위기→과학혁명→새로운 정상과학’의 발전 단계가 이 책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서술되길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기대는 합당하며 어느 정도는 충족될 것이다. 단, 혁명의 전조를 알리는 ‘위기’에 대한 묘사는 쉽사리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1543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출판되기 전까지 당대의 천문학의 상황을 위기로 인식한 사람은 코페르니쿠스를 제외하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에서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의 위기와 가장 근접한 묘사를 찾는다면, 프톨레마이오스의 후계자들이 그 체계에 주전원을 추가해 체계의 복잡성을 증가시켰다는 지적이 전부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지적조차도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코페르니쿠스 이전까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 대한 수정 시도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며, 코페르니쿠스가 활동하던 16세기 초 사람들은 프톨레마이오스의 고유한 체계에 기초한 천문표를 여전히 사용했다. 천문학 이론을 이용해 천문표를 계산하던 사람을 제외하면, 천문학 이론 자체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연구자’ 자체가 극히 희박했던 것이다. 어쩌면 코페르니쿠스는 16세기 초 유럽에서 천문학의 상태를 온전히 이해한 유일한 천문학 ‘연구자’였을지 모른다. 쿤에게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당시 천문학 연구자 공동체의 구성원은 코페르니쿠스 한 명이나 다름없었으므로, 그의 개인적인 위기의식 표명은 공동체 전체의 위기로 간주될 수 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한편, 이론 선택의 문제가 미적 취향의 문제일 수 있다는 쿤의 주장은 엄청난 논쟁을 야기했다. 과학의 합리성을 부정하고 상대주의를 옹호하는 주장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후에 쿤은 자신이 상대주의자가 아니며 이론 선택은 분명히 정확성, 단순성, 정합성, 생산성과 같은 합리적인 가치에 호소해 이루어진다고 했지만, 이론 선택 과정에 주관적인 요소가 일정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과학자들이 위의 가치들을 존중하는 데 모두 동의하더라도 개인들은 다른 이론을 선택할 수 있다. 개인마다 이론의 단순성이나 생산성에 대해 조금씩 다른 판단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각 항목의 상대적인 중요성에 대해서도 다른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이 코페르니쿠스의 체계가 별로 단순하지 않다고 판단할 때, 케플러는 매우 단순하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또 케플러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이론의 단순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 편이었다. 이러한 개인들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미적 취향’의 차이로 본다면, 케플러는 당대의 평균과는 꽤 동떨어진 취향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만약 16, 17세기의 모든 과학자가 평균 취향에 따라 획일적인 선택을 했다면, 코페르니쿠스 이론처럼 이단적인 이론은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했을 것이다. 즉, 쿤에게 개인들의 취향 차이 혹은 주관적인 요소는 혁명을 가능케 하는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설명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이 쿤의 철학적인 견해를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책으로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자체로 훌륭한 역사서이자 대중과학서다. 이 책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의 상당 부분을 그대로 인용함으로써 코페르니쿠스 본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줄 뿐 아니라 코페르니쿠스 체계에 대한 유럽인들의 다양한 반응들 역시 당시 대중 작가들과 성직자들의 입을 빌려 매우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또한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비롯해 역사적으로 등장한 다양한 이론과 방법들을 상세하면서도 명료하게 설명해 준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정교하게 그려진 독창적인 다이어그램들은 어쩌면 이 책의 가장 큰 기여 중 하나일 수 있는데, 그의 다이어그램들은 교육적인 목적으로 수없이 복제되었을 것이다.

부디 이 멋진 책을 읽고 다채로운 즐거움을 함께 맛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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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근황

1. 번역 완료

 

토머스 쿤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초역 원고를 어제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원래 지난 2월까지 보내겠다고 한 원고였는데 한참이 미뤄졌네요. 부인님도 한 번 봐주겠다고 했고 원래 한 번은 검토하고 보내는 게 맞을 것 같지만, 그러다 보면 또 한두 달이 훌쩍 지날 것 같아 그냥 보내버렸습니다. 교정지가 오기 전까지 저도 따로 검토를 해서 교정지에 반영을 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번역에서 가장 어려웠던 번역어는 ‘thought’이었던 것 같습니다. ‘Western thought’, ‘scientific thought’ 등으로 책에서 엄청나게 많이 등장하는 단어였는데요. 이 책의 맥락상 ‘사상’이라고 하면 딱 맞는 번역이겠지만, 한국어에서 ‘사상’이라고 하면 매우 거창한 뉘앙스가 있잖아요. 그래서 ‘서구 사상’이라고 하면 꽤 그럴듯하지만, ‘과학 사상’이라고 하면 좀 어색한 느낌이 있지요. 그래서 문맥에 따라 ‘사상’이라고도 했다가 ‘사고’나 ‘사고방식’으로 번역을 하긴 했는데, 별로 만족스럽지가 않네요. 교정지가 오기 전까지 고민이 마무리되길 빕니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Copernican’이나 ‘Aristotelian’과 같은 형용사의 번역이었습니다. 이러한 형용사는 코페르니쿠스나 아리스토텔레스 본인을 지칭하기보다 코페르니쿠스적이거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것을 지칭합니다. 그래서 ‘-의’로 번역하면 간혹 오해를 초래할 수 있더군요. 그렇다고 위의 단어가 나올 때마다 ‘-적’이란 어미를 적으면 문장이 아주 안 예뻐집니다. 다행히 몇몇 구절에서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처럼 어미 없이 써도 괜찮을 때도 있었지만, 다른 많은 부분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아 무엇보다도 책의 부제를 만족스럽게 번역하질 못했는데요. 

 

The Copernican Revolution: Planetary Astronomy in the Development of Western Thought

코페르니쿠스 혁명 : 서구 사상의 발전과 행성 천문학

 

어때요? ‘in’을 살리려면 문장이 복잡해져서 그냥 포기하고 ‘과’로 해버렸습니다. 혹시 ‘in’의 의미를 살리면서 문장을 아름답게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분들은 의견 부탁 드려요.

 

2. 첫 대중 강연

 

김영사의 지식인마을 시리즈 중 한 권인 <패러데이&맥스웰> 덕분에 난생 처음으로 대중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식인마을 40권 완간 기념 2차 강연회라고 하는데요. 저는 7월 17일 정독도서관에서 “전류계와 전압계가 없던 시절의 전기 과학”이란 주제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이 제 강연을 들으러 올지 무척 궁금하네요. 참고로 제 부인님은 이번주 목요일(7월 10일)에 강연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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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에 대한 스티븐 호킹의 불만

단순하고 순진해 보이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호소력이 느껴졌다.^^
나의 믿음(My Beliefs)
 
오늘밤에는 제가 믿고 있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신에 대한 저의 신념을 들으려는 희망으로 이 자리에 오셨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저의 연구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즉 궁극의 이론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현실적으로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러한 문제를 탐구해야 하는 사람들, 즉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현대의 이론물리학에서 이루어진 발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학적 기초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과학철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철학자들보다는 나은 과학적 기초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물리학자로서는 대부분 실격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이론의 수립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대신 과학의 철학에 대해 쓰게 된 것이지요.
 
그들은 지금도 상대론이나 양자역학과 같은 금세기 초기의 과학 이론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물리학의 최첨단 이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제가 철학자들을 지나치게 혹평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지금까지 저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저의 연구방법은 순진하기 짝이 없고 세련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유명론자(唯名論者)라든가, 개념 도구주의자, 실증주의자, 실재론자, 그리고 그 밖의 무슨무슨 ‘주의자’라는 이름으로 불려왔습니다. 그런 식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저의 연구 방법을 경멸함으로써 반론을 제기하는 방법으로 보입니다.
 
여러분이 저의 연구 방법에 어떤 이름표를 붙일 때 거기에 어떠한 점이 잘못되어 있다고 말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슨무슨 ‘주의’가 어떤 치명적인 오류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이론 물리학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철학자나 과학사가(科學史家)들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낸 범주 속에서 사고하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이나 하이젠베르크 그리고 디랙이 자기 자신이 실재론자인지 개념 도구주의자인지 생각해보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들이 관심을 가졌던 문제는 당시의 기존 물리학 이론들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 스티븐 호킹, <우주에도 생명이 존재하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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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철학 중간고사

중간고사 문제는 지난달에 출제된 것이지만, 아래 기말 페이퍼 주제들도 쓴 김에 올려본다.

다음 두 개의 문제에 답하시오. 답안 당 600-800 단어 내로 쓸 것(900단어는 절대 넘기지 말 것).

배경이나 다른 논자에 관한 불필요한 논의를 삼갈 것. 질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출 것. 명료하고 직설적인 방식으로 글을 쓸 것.

10월 21일 수업 시작 전까지 제출할 것.

자신의 답안을 다른 사람과 토론하지 말 것. 서로의 답안을 읽어보지 말 것. 단 자신의 노트와 텍스트북을 사용해도 좋음.

 

질문 1. (a)와 (b) 중에 답하시오.

(a) 생물학 이론 및 이론이 조직되는 방식에 대해 세 가지 방식 — 법칙, 메커니즘, 모형 — 을 논의했었다. 르원틴의 1970년 논문 첫 페이지를 보라. “Darwin’s scheme”이란 르원틴의 요약은 법칙, 메커니즘, 모형 중 무엇으로 간주될 수 있을까? 아니면 셋 다 아닌가?

(b) 수업 시간에 “기원 설명”에 관한 논의에서, 나는 [자연]선택의 역할을 대충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선택은 개체군 내에서 (인간의 눈과 같은) 새로운 형질을 더 잘(more likely) 출현시킬 수 있다. 어떻게? 그 새로운 형질의 전단계(precursors)를 더욱 흔하게(more common) 만듦으로써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태를 이렇게 기술할 때, 우리는 눈과 같은 형질의 존재를 당연시 간주하면서 결국 진화를 이러한 목적으로 향하는 과정으로 기술하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화가 모종의 목적-지향적인 과정이라는 것은 현대 생물학의 주장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는 수업시간에 얘기된 ‘기원 설명’에서의 선택의 역할에 대한 설명과 문제를 일으키는가?

질문 2. (a)와 (b) 중에 답하시오.

(a) 상당수의 논자들은 ‘시행 & 착오(trial and error)’에 의한 학습이 변이 & 자연선택의 [진화] 과정 또는 적어도 그와 매우 유사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에 대해 평가하시오.

(b)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13쪽(영문판)에는 “다윈의 ‘적자 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은 사실 안정된 것의 생존(survival of the stable)이라는 보다 일반적인 법칙의 특수한 경우이다”라는 말이 적혀 있다. 이 말의 뜻은? 그리고 그 말은 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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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학적 사고 vs. 개체군 사고

저명한 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지금은 죽었음)는 유형학적 사고(typological thinking)와 개체군 사고(population thinking)를 구분했다.

  • 유형학적 사고 : 실재하는 것은 유형(type)으로서의 종이며, 각 개체들은 그것의 불완전한 예화를 뜻한다. 즉 변이는 단지 ‘잡음’, 즉 불완전이나 결함이 된다. [variation = type + deviation]
  • 개체군 사고 : 실재하는 것은 각 개체들의 집단이다. 유형이란 그것들의 통계적 추상에 불과하다. [type = average or idealization or abstraction(variations)]

마이어는 다윈의 진화론이 ‘개체군 사고’의 손을 들어주고 있음을 주장하면서, 이것이 인간 본성에 관한 질문에 중요한 함의를 가지고 있다고 역설한다. 수업 시간에 나누어준 프린트물에는, 아래의 사르트르의 인용문이 마이어의 주장을 대신했다.

신을 창조자로 생각할 때, 우리는 대체로 그를 초월적인 장인(supernal artisan)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즉, 신의 마음 속의 인간이란 개념은 장인의 마음 속의 종이칼[꼭 종이칼일 필요는 없음]의 개념과 비교될 수 있다. 즉 장인이 모종의 정의와 공식을 따라 종이칼을 제작하듯, 신은 모종의 절차와 개념에 따라 인간을 만든다…. 18세기 철학적 무신론에서, 신이라는 관념이 억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이 존재에 우선한다는 생각은 남았다. 디드로(Diderot)에서, 볼테르(Voltaire)에서, 심지어 칸트(Kant)에서도, 우리는 도처에서 그와 같은 생각을 발견한다. 인간은 인간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 “인간 본성”이란, 인간(human being)의 개념으로서, 모든 인간에게서 발견되는 것을 말하며, 이에 따르면 각각의 인간은 보편 개념, 인간(Man) 개념의 특정한 사례가 된다.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인간이 존재하고, 자신을 마주하고, 세계에서 출렁이는(surge up) 것이 먼저고, 그 자신을 정의하는 것은 그 나중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사르트르(Sartre), “Existentialism is a Humanism” (1946)

* 이 인용문 덕분에, 아래 포스팅에서 나열된 주제중 다소 생뚱맞아 보였던 8번과 9번 주제가 드디어 말이 되는 질문으로 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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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철학의 페이퍼 주제들

요즘 Godfrey-Smith의 생물철학 수업을 청강하고 있는데, 어제 수업에서는 교수가 “기말 페이퍼의 가능한 주제들 – 1″이라는 프린트물을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중에 “주제들 – 2″도 나누어줄 모양이다. 나는 청강생이라 페이퍼를 안 써도 되지만, 페이퍼에 대해 꽤 친절한 가이드를 해주는 모습에 약간의 감동을 받았다. 한국에서 생물 철학 수업을 듣거나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도 혹시나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래에 대충 옮겨 적어 본다.

  1.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에 대한 르원틴의 표준 요약 방식을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요약을 개발하라. John Endler의 Natural Selection in the Wild의 1장 등을 보거나 Godfrey-Smith의 “Conditions for Evolution …” (web)을 볼 것.

  2. “자연법칙”으로 간주될 만한 생물학의 원리를 찾아 논하시오.
  3. 문화 진화 이론에서 얘기되는 다양한 선택의 단위들(e.g., 밈, 아이디어, 개체, 종족 및 그룹)을 비판적으로 평가하시오. 이들 중에 무엇이 가장 유망한가?

    Dawkins의 Selfish Gene의 memes에 관한 장이나, Godfrey-Smith의 “Darwinism and Cultural Change” (web), 혹은 Dennett의 Darwin’s Dangerous Idea에서 시작하면 됨. Boyd와 Richerson의 Not By Genes Alone (2004)도 도움이 될 것임.

  4. 나무와 같은 modular organism(같은 module이 반복되는 유기체로서 그 일부가 분리됨으로써 번식하기도 하는)에서 생식과 자연선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Tuomi & Vuorisalo의 논문 “What are the Units of Selection in Modular Organism?”과 같은 전자의 다른 논문을 참고할 수 있음)
  5. 여러 “종 개념들” (typological, phenetic, reproductive capacity, phylogenetic)중에서 다른 것에 우월한 개념을 말할 수 있을까?

    만약 아니라면, 종에 대해 “다원주의적” 태도를 취해야 할까? (e.g., Kitcher 1984, Dupre paper in Wilson (ed.)Species: New Interdisciplinary Essays)

    또는 종이라는 개념을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으로 버려야 할까? (e.g., Ereshevsky & Mishler paper in Wilson (ed.) Species…)

  6. 박테리아에 대한 올바른 종 개념을 무엇일까? (Laura Franklin-Hall의 논문들과 Dupre & O’Malley의 논문을 볼 것)
  7. “생명의 나무” 아이디어의 지위는 무엇인가? 은유인가? 가설인가? 만약 가설이라면, 참인가 거짓인가? “나무” 아이디어에서 발견되는 문자 그대로의 주장(literal claims)과 유비(analogies)와 그림 표상의 규약(conventions of pictorial representation) 사이의 관계를 분리해서 보도록 노력할 것.

    (LaPorte’s의 논문(web), Dawkins The Blind Watchmaker, chapter on the tree를 볼 것. Dennett의 Darwin’s Dangerous Idea도 관련 논의가 있음. Dawkins의 The Ancestor’s Tale을 봐도 좋지만, 관련 논의가 책 전체에 흩어져 있음.)

  8. Mayr의 “population thinking”이 인간 본성 개념과 관련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도덕 철학의 문제와의 관련은?
  9. 진화주의자는 실존주의자가 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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