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협상무효 고시무효를 위한 국민소송

‘협상무효 고시무효를 위한 국민소송’을 제기합니다.

국민소송의 청구인단이 되어 주세요.

1. 국민소송이란?

   미국 광우병 쇠고기의 수입을 전면 허용하기로 한 농림부장관의 고시에 대한 헌법소원 및 효력정지가처분 소송 등

2. 국민소송의 취지

   미국 광우병 쇠고기가 수입되면, 그 소비자도, 그 피해자도 전부 우리 국민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우리 부모님도, 그리고 우리들도……
   한 명이라면 바람 앞의 등불이지만, 천명, 아니 만명이 모인다면 온 광야를 활활 태우는 들불입니다.
   백만, 천만이 모이면 우리는 이미 승리한 것입니다.

3. 국민소송의 소송대리인

   ‘미국산쇠고기 수입강행 및 인권탄압 대응을 위한 민변 법률지원단’ 소속 변호사들

4. 국민소송 참가방법
   -누가: 국민소송의 취지에 동의하는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미성년자는 여기를 클릭하세요.
   -어떻게: 아래 참가절차에 따라 국민소송 청구인단 참가 동의서를
      작성하고 인적 사항을 기재하면 끝.
   -모집기간 : 2008. 5. 29.부터 6. 2.(월) 16시까지

http://minbyun.jinbo.net/minbyun

민변에서 협상무효, 고시무효를 위한 국민소송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참가방법은

http://minbyun.jinbo.net/minbyun/zbxe/popup/people_law.html

주소에 가서 참가신청을 하고 1만원정도 소송비를 입금하면 된다.

최소 3만명은 필요하다는데, 일단은 10만 이상이 소송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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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누리] 이영훈 교수 재론 (아흐리만에 대한 반론) by 진중권

이영훈에 관한 아흐리만의 글을 읽고…

그 동안 시간이 없어서 여기에 글을 쓰지 않았는데, 아흐리만님이 공격을 해오셨으니 반론을 하는 게 예의겠지요. 일단 논의의 지형부터 확인하고 넘어갑시다. 아흐리만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이번 사태는 ‘전달’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다.
(2) 따라서 이영훈 교수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부당한 마녀사냥이다.

반면 나의 논지는

(1) 이번 사태는 그저 ‘전달’의 실패가 아니라 좀 더 깊은 원인이 있다.
(2) 하지만 이영훈 교수에 대한 비난은 뿅망치로 족하다.

내가 그 글을 썼을 때에는 진보누리에 올라온, 이영훈에 대한 비난과 옹호의 글을 모두 읽은 상태였습니다. 당시의 토론상황을 직접 확인한 후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이영훈을 비난하는 글은 과도하게 뜨거운 반면, 그를 옹호하는 글은 논리적으로 옹색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론은 위에 요약한 두 문장 속에 들어있습니다.

이제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를 제시하지요. 아흐리만님의 글에는 정작 제가 이영훈의 논지를 재구성할 때  “이 분이 대체 왜 이런 얘기를 하나” 의아해 했던 부분의 해명이 고스란히 빠져 있습니다. 대단히 유감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바로 그 부분을 해명할 수 없었기에 위에서 말한 그런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지요.

아흐리만의 재구성이 맞다면, 이영훈 교수의 발언 중에서 제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생깁니다. 그것은 하나의 물음과, 두 개의 유비입니다. 물음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1.

“누가 주장했나. 어느 학자가 주장한 것인가. 조선총독부가 강제로 동원했다는 게 명백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아흐리만은 이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이영훈 교수는 조선총독부에서 정신대를 강제로 동원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들을 동원하는 데에 조선인도 한몫 했다는 얘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일제통치에 대해 만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기에 “경기”(sic!)를 일으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가 일본에 식민지배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일제 시대 때 벌어진 모든 범죄가 오로지 일본 사람에 의해서만 저질러졌다는 믿음을 전제해야 할까요? 그랬다면 “친일파 진상규명”이라는 얘기가 애초에 나올 수가 없었겠지요. ‘친일파’란 일제에 협력한 조선인을 의미하니까요.

일본의 식민지배의 강제성을 비난하자 누군가 옆에서 이렇게 얘기한다고 합시다. “누가 주장했나. 어느 학자가 주장한 것인가. 일본정부가 강제로 지배한 게 명백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서 을사5적이라든지, 그 밖에 일제에 협력한 조선인들의 예를 드는 겁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마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당연히 “경기”를 일으킬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기”는 무엇 앞에서 놀라는 것일까요? ‘식민지배는 쪽바리들만 한 줄 았는데 거기에 수많은 조선인들이 협력했다’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진리 앞에서 갖는 놀라움일까요요? 아니면 “친일파 청산하자”는 맥락에서 일본식민지배의 죄악성을 얘기하는데 느닷없이 “거기에는 한국인도 참여했다”고 말하는 사오정 어법에 내포된 함의의 황당함 앞에서 느끼는 “경기”일까요?

2.

“그리고 최근에 어떤 연구자가 한국전쟁 때 위안소가 있었다는 걸 증명했는데 한국군대가 일본군대를 배워와서 한국전쟁 때 그런 일을 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한국사회는 조용하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해명은 아흐리만의 글에서 통채로 빠져있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징후적’인데, 왜냐하면 그가 통탄해 마지않는 여론의 마녀사냥(?)은 바로 이 구절에 대한 해석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문제가 되는 이 부분이, 그릇된 해석의 폭력으로부터 이영훈을 옹호하겠다고 나선 아흐리만의 재구성에서는 송두리채 빠져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친척들 중에도 당시에 정신대 가는 것을 피하려고 조혼을 했다가 고생하신 분이 계신다고 하더군요. 조선인  “팸프”가 무서워 시집을 일찍 갔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국가의 권력을 이용한 강제성이 있었다는 얘기지요. 포주 무서워서 조혼을 한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모두 조혼 바람이 불어야 할 것입니다. 아흐리만의 말대로 정신대=성노예라는 것은 이영훈 교수도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영훈 교수는 이것을 반례로 제시한 것일까요?

이것이 반례로 기능하려면, 한국군이 운영한 위안소도 조선총독부에서 관리한 위안소와 그 본질이 같다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전쟁 중에 한국정부가 국가권력을 동원하여 강제로 멀쩡한 처녀들을 성노예로 만들었다는 얘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게 반례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나요? 한국 정부가 국가권력의 강제로 제 나라 처녀를 성노예로 만들었나요?

3.

“그러고 그 뒤에 대한민국 정부의 합법적인 지원 하에서 미군들의 위안부가 수십만 명이 있었다.”

이 부분도 이영훈의 발언에 대한 여론의 해석을 결정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던 발언입니다. 하지만 아주 유감스럽게도 아흐리만의 재구성에는 이 부분의 해석 홀라당 빠져있습니다. 사실 앞에서 언급한 그 물음과, 방금 언급한 이 두 개의 유비만 없다면, 이영훈 사건은 아예 일어나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된 이 발언에 대한 아흐리만의 해석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여기서 이영훈 교수는 “대한민국 정부의 합법적인 지원 하에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대한민국 정부가 미군 위안부를 만드는 데에 어떻게 합법적인 지원을 했는지 궁금하군요. 50만명씩이나 위안부로 만들드는 것은 엄청난 “지원”일 텐데, 이를 지원하는 부처는 어디이며, 예산은 얼마나 들었고, 어떤 인력이 동원되었지요?

이 부분이 논거로 기능하려면, 역시 정신대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지원은  미국 위안부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지원과 같은 종류의 것이다, 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논리적으로 ‘논거’로 성립을 할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이게 논거가 되려면, 조선총독부의 정신대 정책 내지 관리는 곧 우리 정부에서 미군에 제공하는 편의와 같은 “합법적 지원”과 같은 것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4.

따라서 여기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에는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

(1) 이영훈 교수는 서울대 교수를 하고 있지만 논술실력이라는 면에서는 똥, 오줌을 못 가리는 분이다. 하지만 동료인 양동휴 교수의 말대로 이영훈 교수가 “군계일학”으로 보일 정도로 토론회에서 잘 했다면,

(2) 위의 두 개의 유비는 그저 잘못된 예, 혹은 말실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잘못된 예, 혹은 말실수가 아니라면, 그는 분명히 정신대가 본질에 있어서 한국군 공창, 혹은 미군 위안부와 같은 것이라 발언을 한 것이지요.

이 궁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경우가 하나 있습니다. 이영훈 교수가 래디컬한 페미니스트인 경우입니다. 즉, 가부장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매매춘 자체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차피 모두 “성노예”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한국군 성노예, 미군 성노예는 문제 안 삼으면서 왜 일본군 성노예만 문제삼느냐, 그건 제대로 반성하는 자세가 아니다”라는 얘기가 나올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영훈 교수가 미군 위안부도 기꺼이 “성노예”라 부를까요? 하지만 저는 이영훈 교수가 그 정도로 래디컬한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이영훈 교수가 아니라 차라리 아흐리만의 견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들어봅시다.

“종군위안부 피해자가 강제로 잡혀갔음을 강조하고 그들을 매춘여성과 완벽하게 분리시키는 것은 일본군의 전쟁 성노예 문제를 분명하게 부각시키는 데에는 효력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다수의 매춘부들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시키고 ‘자발적 성매매’라는 환상을 더욱 공고히 하는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일본군 종군위안부와 미군부대 위안부를 서로 아무 관계없는 양 깔끔하게 나눠놓는 것이 외려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아흐리만의 페미니즘이 제게는 매우 느닷없이 느껴집니다. 여기서 페미니즘은 고작 논리적 곤궁에 처한 이영훈 교수를 구원하는 아리아드네의 실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글쎄요, 하지만 아흐리만의 이런 주장에 정작 페미니스트들이 “고맙다”고 동의해줄까요?

이렇게 역사청산이라는 논제에서 발생한 난점을 엉뚱하게 페미니즘을 끌어들여 피해가다 보니, 이 분은 좀 무리한 결론으로 비약하게 됩니다. 아흐리만의 주장입니다.

“이영훈 교수 발언의 핵심은 정신대 문제가 해방 이후 한국의 여러 성매매 문제의 뿌리요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동의할만한 주장이다. 사실 과거청산을 운위하는 이유는 그 과거가 단순히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구속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정신대가 해방 이후 한국의 여러 성매매 문제의 뿌리요 원인이라…. 이 주장은 상당히 억지스러워 보입니다. 성매매는 일반적으로 정신대가 없는 다른 나라에도 보편화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정신대 문제에 관해 한국 사람들이 먼저 반성하지 않아 오늘날 성매매가 창궐한다는 얘기도 좀 들어주기 뭐 합니다. 이 무리는, 아흐리만이 이영훈의 망언에 억지로 심오한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려다 보니 빚어지는 것이겠지요.

5.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저는 아흐리만의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엇던 것입니다. 그 대신, “그러면 저분은 대체 왜 저러냐”라는 물음을 던지고 내가 얻어낸 답변은 이것입니다:

<이번 사건은 이영훈 교수가 학계에서 이루어지는 “자본주의 맹아론/ 식민지근대화론”의 대결을 아주 적절하지 못하게, 한 마디로 주책없이, 정치권의 논의 속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해프닝이다. 따라서 뿅 망치 정도의 질타로 족하다.>

이영훈 교수가 알아야 할 것은, 친일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맹아론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울러 학계에서는 민족주의가 대세라서 그 편향으로 인한 폐해가 심할지 몰라도, 현실의 정치권에서 대세를 이루며 폐해를 끼치고 있는 것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이승만-박정희-전두환-박근혜로 이어지는 국가주의 세력이지요.

정치권이 아니라 당장 서울대만 보십시요. 이영훈 교수는 그 망언을 하고도 잘리지 않지만, 김민수 교수는 직언을 했다고 그 자리에서 잘려버립니다. 이게 현실이지요. 이렇게 맥락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향은 임지현 교수에게서도 일정하게 나타납니다. 참고로, 저는 자본주의 맹아론에 그리 찬동하지 않지만, 식민지 근대화론에도 찬성하지 않습니다. 뭐랄까, 양쪽 다 역사철학에 뭔가 fault가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아흐리만은 이영훈 교수가 그저 “전달”에서 실패했다고 주장하나, 저는 그게 아니라 그 실수가 좀 더 깊숙한 오류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라 보는 것입니다. 어쨌든 아흐리만님이 자신의 재구성을 좀 더 plausible하게 만들려면, 정작 문제가 됐던 발언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해석을 해당 발언을 듣고 분노했던 사람들의 것보다 더 타당하고 그럴 듯하게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ps.1

아, 방금 검색을 통해 얻은 정보인데, 제가 제대로 본 모양입니다. 참고로, 서울대 경제학과 홍기현 교수가 영남일보에 기고한 글 중에서 정신대 관련 부분입니다. 이것이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요? 만약 이것이 서울대 경제학과의 학풍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이번에 아흐리만이 사안을 얼마나 잘못 보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홍기현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

“예를 들어 종군위안부 문제를 살펴보자. 일제시대사를 연구하는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일제하에서 일본군대나 정부에서 행정체계를 통해서 종군위안부를 동원한 기록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당시 일본의 법치수준과 행정조직 상태를 보면 이 점은 신빙성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말하자면 종군위안부는 군인을 대상으로 민간인 업자들이 성매매를 알선했기 때문에 생겼다. 당시 종군위안부가 지급받은 금액은 우리나라의 일반적 성매매 대가보다 훨씬 높아서, 모집책들이 서울의 사창가뿐만 아니라 농촌지역을 돌면서 젊은 여성들을 모아 갔다. 상당수의 종군위안부는 몇 년 정도 일하고 돌아갔지만, 전쟁이 끝나면서 방치된 여성들은 대가로 받은 군표를 현금화하지 못하고 비참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그렇다면 종군위안부 문제는 일제하 우리의 경제사정이 열악하여 우리 여성들이 자발적이든 주위의 강권에 의해서든 성매매 업소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핵심적 사항이며, 이러한 상태를 스스로 떨쳐내지 못했다는 사회구조적 문제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는 결국 우리가 경제성장을 하고 일본과 대등한 경쟁력을 가질 때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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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누리] 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 위장폐지 기도 by 김정진

10일자 한겨레신문에 열린 우리당의 아래와 같은 국가보안법 폐지안이 공개되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열린 우리당은 국가보안법을 위장폐지하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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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내란목적단체조직죄 신설(안 제87조의 2)
–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지휘통솔체계를 갖춘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내란죄에 의하여 처단(수괴는 사형, 무기, 중요임무종사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이상의 징역. 단순참가자는 5년 이하의 징역)
– 이에 대한 예비, 음모, 선전선동을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함.

O 내란목적단체 선전선동죄 신설(안90조 제3항)
–  국헌을 문란하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내란목적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선전, 선동한 자를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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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열린 우리당의 형법개정안은 두가지 중대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국가보안법 제7조의 사실상의 존치이다.

  국가보안법의 대표적 악법조항이 제7조이고, 사건 수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열린우리당안은 사실 상 제7조를 존치시키는 안이다.

  즉,  내란목적단체는 이적단체(국가보안법 제7조 제3항)와 요건이 동일하고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한다는 의미가 현행 국가보안법 제7조의 “국가변란 선전ㆍ선동”을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한다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체제비판적인 단체에 대해서도 그 단체가 구체적인 폭력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처벌할 수 있어 현재 국가보안법 상 이적단체 적용과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또한,  내란목적단체나 그 구성원의 활동을 선전, 선동한다는 조항도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 고무, 선전, 선동한다는 현행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과 다르지 않다.  즉, 찬양,고무가 삭제되기는 하였지만, 예를 들어 일정한 주장을 수차례 반복한 경우에는 선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체제비판적인 단체의 활동에 대해서 몇 차례 찬성발언을 하여도 이는 선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제7조 제1항도 존치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둘째, 형량이 오히려 강화되었다.

  국가보안법 상 이적단체 구성, 가입은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나 내란목적단체 조직은 사형, 무기, 5년 이상의 징역까지 가능하고,  국가보안법 상 찬양, 고무, 선전, 선동죄는 7년 이항의 징역에 처하나 내란목적단체를 선전선동한 경우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다.

이처럼 열린 우리당은 사실 상 국가보안법을 위장폐지하려고 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대국민 사기극을 즉각 중단하고, 국가보안법을 조건없이 폐지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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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친일문제와 근대화론에 접근하기: 원재형 홈피에서 퍼옴 by 칸막이

[딴지일보] 친일 문제와 근대화론에 접근하기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필자도 어렸을 적 오락실을 다녔다. 당시 오락실엔 <겔러그>나 <보글보글> 같은 후대에까지 회자되는 명게임들이 있었지만, 필자가 심취했던 것은 <서유기>라는 게임이었다. 손오공과 저팔계가 악당들을 물리치며 서천으로 가는 게임. 그 중 처음 만나는 보스는 무슨 해적 두목같이 생긴 놈들이었는데, 필자는 이들을 물리치는 게 상당히 힘들었다.



어느 날인가 필자의 플레이를 보며 뒤에 서있던 껄렁껄렁한 동네 엉아 한 명이 스르륵 필자를 밀쳐내더니, ‘내가 깨줄게’ 하면서 플레이를 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보스를 깨긴 했지만 그 인간은 손오공이 죽어 넘어갈 때까지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필자는 오매불망 보고 싶어하던 뒷 스테이지를 볼 수 있었건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이 시키가 내 돈 내고 내가 오락하는데, 왜 뺏는거야! 그러나 쌈을 못했던 필자는 그저 맘속으로만 억울하고 서러울 뿐이었다.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게 있다. 역사 발전의 본질이 경제적 측면에 있다고 보았을 때 일제 강점기는 나름대로 ‘진보’적 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말은 바른 말이다.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 강점기 사람들의 삶의 질을 따져본다면 오히려 후자가 나았다고 할 수 있다. 근대적 교육을 위한 학교 세워줬지, 교통과 산업 발전을 위한 철도 만들어 줬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공장 세워줬지, 건강 생각해서 근대식 병원 세워줬지…



아닌 말로 일제 강점기가 혼란으로 점철된 대한제국보다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미개한 중세 봉건적 상태에 놓여있던 ‘조센진’들은 선진국 일본의 지도에 의해 비로소 근대화되었다. 처음에는 일본의 선의를 곡해하고 독립 만세 운동이니 무장 투쟁이니 하며 반발을 하기도 했지만 종국에는 수그러들었다.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고 하는 자들의 상당수도 구질구질한 3류 독립국보다는 세계에서도 인정해주는 대일본 제국 신민으로의 삶이 가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적극 협조해 주었다.



간간이 일본을 반대하는 반인륜적 테러 행위들이 있기는 했지만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전반적으로 성공적이었다. 일제 시기 말기에 이르러서는 대다수 조선인들도 일본의 반도 지배를 인정하고 납득했다. 일본의 대한제국 접수과정이 폭력적이었다는 흠집 따위는 그런 것으로 무마되고 남음이 있다. 일본은 조선인들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것은 ‘합의된’ 식민지 지배였다.



만약 위와 같이 주장하는 인간이 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려는가?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은 일본에 의해 근대화되었다. 그런데 이처럼 구구절절 맞는 주장에 대해서 우리는 어째서 짜증과 분노를 느끼는 것일까? 그리고 일본 정치인 입에서 나오는 위와 같은 류의 주장을 단호히 망언이라 규정하는 것일까?



아무리 때깔 좋은 근대화라고 해도 내 자유의지의 존엄함보다 우선일 수는 없다. 확실히 대한제국은 무능한 정부였다.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못해보고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길 정도니 이처럼 무능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무능한 정부라 해도 가능성은 가지고 있다. 그래, 이 모지리같던 애들이 어느 순간 정신 바짝 차리고 어느 순간 일본 뺨 칠 정도로 능력을 발휘해 효율적인 근대화의 길을 걸었을 수도 있다. 갑오농민 전쟁 때처럼 개화된 시민의식을 가진 민중들의 힘으로 정부를 개혁해 냈을 수도 있다. 임요환이가 누구나 졌다고 생각했던 도진광과의 경기에서 기적같은 역전을 했던 것처럼, 창의력 제로의 모지리라고 무시 받던 땡삼이가 깡통과 우유팩에 쉬야를 받아내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처럼! 그리고 필자가 아무리 게임에 재능이 없어도 <서유기>의 해적 두목 스테이지를 스스로의 힘으로 클리어 했을 수도 있는 것처럼! 이것이 바로 역사의 가능성이다.



그런데 일본은 ‘니들은 절대 못해. 니들끼리는 희망이 없어’ 하면서 그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박탈해 버린 것이다. 우리가 열 받아야 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지들이 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지고지순한 가능성을 박탈해 놓고 자기 덕분에 잘 살게 되었느니 어떻느니 하면서 나불대냐 말이다.




 



같은 관점을 다른 경우에 대입해 보자. 박정희가 한 짓이 일본 애들이 한 짓이랑 쌍둥이처럼 똑같다. 누가 일본군 장교 출신 아니랄까봐 논리 구조가 딱 그 짝이다. ‘장면 정부는 무능해서 안 되. 내가 근대화 해주께’ 그러더니 합법적인 정부를 총칼로 찍어누르고 지가 정부를 꾸린다.



박정희 시대, 확실히 성공적인 근대화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정희를 긍정하게 된다면 일제시기를 긍정 못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박정희가 한 일을 장면이 못할 이유가 있나? 대한제국이 성공적인 근대화에 성공했을지 여부를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장면 정부가 성공적인 산업 근대화에 성공했을지 여부 역시 아무도 모른다. 그 길을 걸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가능성을 원천 박탈한 건 바로 박정희다. 우리가 박정희에 분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하나의 가능성을 짓밟아 버렸다. 합법적인 정부 하에서의 민주적 절차에 따른 산업 근대화. 그 가능성을 우리는 영원히 상실해야만 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박정희가 근대화에 성공했으니까 긍정적으로 봐줘야 한다는 조갑제 식의 논리는 무책임하다. 모든 사안이 결과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면, 지금 당장 쿠데타가 일어난다고 해도 논리상 막을 수가 없다. 그 쿠데타가 경제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나쁜 결과를 가져올 지는 10년, 20년 후에야 판가름 날 테니까. 결과론에 입각해 판단을 내리자는 이야기는 지금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아무 것도 하지말고 가만히 있자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박정희가 근대화를 시켜줬기 때문에 훌륭한 인물이라고 하는 이들은 자신의 주장이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망언과 똑같은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정통성 있는 정부와 인간의 자유 의지보다 외형적 근대화와 먹고사는 문제를 우위에 놓는다는 점에서 박정희의 지배와 일제 식민지 지배는 정확히 일치하고 있으니까.



요즘 친일청산법 문제 때문에 국회가 시끌시끌한 모양이다. 박정희가 친일 부역자 조사 범주에 들어가는 바람에 그분 따님께서도 심기가 불편하신 모양이고. 돌아가는 모양새로 보건대 논리나 합리성과는 담을 쌓은 그들도 일제 강점기의 근대화론과 박정희 시대의 근대화론 사이의 끈끈한 유사성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고 보인다. 식민지 시대의 근대화 주체와 박정희 시대의 근대화 주체가 상당부분 겹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겠다. 문제는 일제시기 친일파에 대해서는 격렬한 증오감을 표출면서도 박정희에 대해서는 막연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당수의 국민이다.



오랜 기간 정책적으로 장려된 국가주도의 민족주의 교육으로 인해 마땅히 같은 선상에 놓여 비판받아야 할 소위 ‘근대화 주체 세력’은 각기 다른 평가를 받게 되었다. 한쪽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고 악당들에게 봉사한 후안무치한 인간 말종들로, 한쪽은 자기 무덤에 침이 뱉어질 것을 각오하고 다수를 위해 악역을 감수했던 의지의 인물들로.



그러나 두 집단이 본질적으로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이상 평가에 있어서도 일관성이 적용될 필요가 있다. 역사를 반성의 도구로 삼는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마음 내키는 시점에 멋대로 선을 긋고 그 이전과 이후의 사안에 대해 각기 다른 기준으로 평가를 하려 든다면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를 향한 방향타로서의 역사 활용은 물 건너가는 것이다.



우리의 지난 흔적을 합리적이고도 일관적인 기준을 통해 냉엄하게 직시하고 평가하자. 그리한다면 친일 부역자 재조사 문제는 단순한 한풀이나 마녀 사냥, 정치적 공세 수단으로의 활용을 넘어서 내면화된 진정한 근대화를 향해 나아가는 디딤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초딩 때의 오락실 사건이 못내 억울한
칸막이(khanmagi@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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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Unow] 이영훈 교수를 옹호한다 by 아흐리만

“이영훈(53)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일제시대 정신대(일본군에 의한 성노예)를 두고 미군부대를 비롯해 도심 곳곳 성매매 업소에서 이뤄지는 성매매에 빗대 ‘정신대가 사실상 상업적인 목적을 지닌 공창의 형태’라는 일본 우익측의 주장을 대변해 논란이 예상된다”

오마이뉴스, 오전 6시 37분. 이로부터 모든 일은 시작되었다. 다른 언론매체들이 서울대 교수가 정신대는 자발적 성매매라고 주장했다고 기사화하기 시작했고, 서울대 경제학과 사이트는 초토화되었다.

▲경제학부 게시판은 마치 폭탄을 맞은 듯했다. ©  

그러나 녹취록 전문을 보든 VOD를 보든 이영훈 교수는 정신대가 자발적 성매매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이영훈 교수의 어법이 오해를 살 여지는 있었으나, 그의 발언을 통해서 그런 견해를 전혀 추론해낼 수 없다.

이영훈 교수는 문제의 발언이 있기 전, 즉 토론회가 시작한지 한시간이 채 지나기 전에 종군위안부 문제를 스스로 처음 언급한다. 그리고 그는 분명히 “일본군 위안부”라고 말했다가 좀더 엄밀하게 “그러니까 전쟁중 성노예”라고 고쳐 말하고 있다. 노예는 자발성이 없는 존재이므로, 종군위안부 피해자 여성을 “성노예”라고 칭했다는 사실은 이영훈 교수가 자발적 성매매를 주장하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 또한 성노예라는 명칭은 페미니즘 진영에서 정신대나 위안부와 같은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명칭에 반대하면서 국제적으로 전파시킨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한 이영훈 교수의 식견이 상식 수준 이상임을 짐작할 수 있다.

발언의 맥락 역시 이 명백한 추론을 뒤집을 수 없다. 이영훈 교수는 처음에 친일파진상규명에 깔린 전제가 도덕적 역사관에 기초해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다음 발언 차례에서 그는 국가에 의한 인권 침해 범죄는 시효를 막론하고 처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맥락에서 앞서 말했던 종군위안부, 전쟁중 성노예라는 말이 처음 언급된다.) 그가 의문을 표하는 것은 구체적인 행위없이 일제의 관직에 있었거나 상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처벌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민족’이라는 역사적이고 특수한 개념으로 과거의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재단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 그리고 그것이 국가와 ‘법’이라는 제도적 장치로 이루어낼 일인가. 이것이 이영훈 교수의 맥락이었다.

그러나 이영훈 교수는 ‘민족’의 개념에 입각한 친일파 청산에 완강히 반대하는 입장에는 서지 않았다. 이영훈 교수는 원론적인 비판을 제시하지만 이 의견을 완강히 고수하기보다는 정치인들이 ‘참작’할 것을 부탁하는 쪽이었다. 첫째로 그는 인권범죄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려운 민족반역죄의 처벌에 회의적이지만 진상 규명에 총독부 관리 자료 등을 참조해야 한다고 말하고, 둘째로 그는 과거청산을 정치권에서 푸는 것이 아니라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풀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토론의 말미에서 송영길 의원에게 “어차피 통과될 법이니까 시민단체의 자율권을 침해하지 않는 쪽으로 힘써주시길 바란다”라고 부탁한다. 여기에서 “친일파진상규명법을 저지하고 흠집내기 위해 안달”인 수구세력의 모습은 엿보이지 않는다.

괴물의 이름은 ‘일본 제국주의’?

이제 문제의 발언의 맥락으로 들어가보자. VOD를 열심히 본 내 입장에서 녹취록에는 몇몇 어구들이 빠진 듯 하지만, 그 점을 무시하고 오마이뉴스에 인용된 부분녹취록으로 사태를 판별해보자. 송영길이 말한다.

송영길 : “지적할 게 있다. 일제 시대 정신대의 문제와 지금 미군부대의 문제를 등치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일본우익이 지금도 주장하는 것은 정신대가 총독부와 국가 권력에 의해 강제로 동원된 것이 아니라 상업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일종의 공창의 형태로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이미 증거자료에 의해 정신대는 조선총독부 권력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서 일종의 성적 노예 상태에 놓인 것으로 근본적으로 (미군의 경우와) 차원이 다르다”

이영훈 : “누가 주장했나. 어느 학자가 주장한 것인가. 조선총독부가 강제로 동원했다는 게 명백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사람들은 이영훈 교수가 말을 끊고 발언한 이 부분을 보고 이영훈 교수가 “정신대는 자발적인 매춘부라고 주장했다”라고 확신한다. 이 부분만 떼어놓고 본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다행히 현명한 사회자인 손석희는 이영훈 교수에게 정신대 문제에 대한 견해의 정리를 요구한다. 이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이영훈 : “정신대 관련 일본에는 2000점의 자료가 있고 그런 일본학자들에 경의를 표하고, 국내학자들이 노력도 많았지만 거기에 의존한 바가 많았다. 거기에 보면 하나의 범죄행위가 이뤄지는 것은 권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참여하는 많은 민간인들이 있다. 그리고 그 민간인들이 가령 팸프. 한국 처녀, 한국 여성들을 관리한 것은 한국업소 주인들이다. 그 명단이 있다”

그가 언급한 자발적인 참여의 예는 팸프, 그러니까 포주인 셈이다. 권력의 작동은 통치기관 하나의 작용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고 당연히 그에 참여하는 수많은 민간인들이 존재한다. 이영훈 교수는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 사실이 “정신대 할머니들은 매춘부이다”라는 주장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영훈 교수는 이미 이전에 피해자를 “전쟁 중 성노예”라고 지칭하였으며, 결정적으로 문제의 발언 다음에도 피해자들을 “성노예”로 지칭한다.

여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론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설령 팸프가 있다고 하더라도 조선 총독부가 관리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책임은 조선 총독부가 지는 것인데, 이영훈은 어째서 물타기를 하는가. 진중권조차도 시사저널의 칼럼을 통해 이처럼 한심한 소리에 가담하고 있다. (나는 몇 년간 진중권의 글을 봐왔지만 이번에 이영훈과 양동휴를 비판한 글만큼 맞는 소리가 한마디도 없는 글을 보긴 처음이다.) 두 번째 반론은 팸프를 언급하는 것은 사실상 정신대가 공창제의 형태였음을 이영훈 교수가 인정한다는 견해다.

첫 번째부터 반박해 보자. 이런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친일파 청산을 주장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조선 내부의 친일파에 대해 진상을 규명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잘못의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이 져야 하고, 친일파를 운위하는 것은 물타기일 뿐이다. 나는 이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역사적 판타지의 실체를 구상해 볼 수 있다. 여러분은 대충 만화 사우스파크 정도의 그림체로 내 묘사를 머릿속에 그려보기 바란다. 1940년대, 조선총독부에 웬 괴물이 사육되고 있었다. 이 괴물의 이름은 ‘일본제국주의’다. 키는 에베레스트보다 더 큰 8888m, 얼굴은 8개에 눈은 4000개라 시선이 전 조선땅을 포괄하고, (모르도르의 사우론보다 무섭지?) 결정적으로 팔이 1008,000개나 되어 조선반도 모든 가정에 팔을 하나씩 뻗는다. 보이는 족족 순결한 처녀를 골라잡는다. 수십만의 처녀가 사로잡히자 팔을 하늘에 쳐들고, 중국에서부터 동남아시아에 이르는 전 일본군 막사에 처녀들을 던져넣는다. 끔찍하고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지만, 있을 법하지 않기에 남는 것은 코믹의 여운.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째서 한국인 범죄자의 존재에 경기를 일으키는가? 이영훈 교수가 말한 조선인 참여자가 피해자 여성이 아니라 그들을 관리한 사람들이라면,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물론 포주의 존재가 일제의 만행을 덮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 점에는 이영훈 교수도 동의한다. 서로간에 이러한 판단을 공유한다면 학계의 대대적인 연구와 자발적인 성찰이든, 관련자의 엄격한 처벌이든 그 기반 위에서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그 이전에 송영길 의원은 이영훈 교수를 “일본우익과 논리가 같다”고 재단했고, 그 과정에서 쌍방이 모두 흥분해버렸다.

두 번째 반론은 홍기빈이 프레시안 칼럼을 통해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가 논의지형에 대단히 무지하거나 정직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홍기빈의 주장처럼 이영훈 교수의 말이 정신대가 상업적 공창제의 한 형태였다는 암시를 담고 있을 수도 있다. 단, 일본군과 포주에게만, 그리고 외양적으로만 그러하다. 왜냐하면 실제로 거기서 일하던 피해자들은 조선 땅에서 끌려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이영훈 역시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토론과정에서 “성노예”라는 표현을 두 번이나 사용했다. 자발적이거나 상업적 대가를 받는 성매매라면 굳이 “성노예”라고 칭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대중들의 분노는 이영훈이 피해자 여성들을 매춘부로 격하(?)시켰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홍기빈이 이영훈의 해명서를 보고 재차 사실검증을 했더라면, 이영훈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가 일종의 ‘해프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짚어낼 수 있었을 게 아닌가?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나는 여기서 대중이 분노하는 부분에 대해서 굳이 반론하지 않으려는 지식인의 기회주의를 읽는다. 분노하는 대중 앞에서 이영훈 교수에게 토론을 제기하는 홍기빈의 자세는 온당한가? 나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

▲홍기빈, 무지하거나 부정직하거나 © 프레시안

이영훈 교수의 의견은 친일파청산 문제에 있어서 지금까지의 논의지형을 바꿔버릴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전쟁중 성노예 문제만큼 인륜에 어긋나고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 범죄에 한국인 포주가 개입했고 일본군으로부터 대가를 받는 공범 역할을 했다면, 이들에 대한 처벌은 일본군이나 일본경찰의 일정한 직급에 종사한 이들보다 훨씬 정당한 일일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학적연구의 토대가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친일파진상규명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이영훈 교수의 말을 입증한다. 지금껏 정치권은 기준이 일본군 소좌니 중좌니, 헌병 오장이니 하며 서로의 득실을 재어왔는데, 전혀 새로운 문제가 나타난 것이다. 순진하게 그래봤자 일제의 책임이니 어쩌니 하는 것은 이 새로운 문제를 억압하려는 시도밖에 안 된다.

억압받은 자는 누구인가

따라서 이영훈 교수의 발언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영훈의 무엇에 대해 분노하는지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정신대가 공창이라는 망언을 한 교수에 대한 분노? 그것은 TV토론보다는 강의에 익숙한 교수의 발언이 잘못된 언론보도를 통해 가공된 결과 생긴 해프닝이다. 그러나 “성노예와 성매매는 결코 동일선상에서 언급되어서는 안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거나, “지식인이 친일청산규명법에 반대하는 것 자체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분노한다면 여전히 논점은 남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모든 것이 융합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거대한 분노가 생겨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본인이 화를 내는 이유에 대해서 차분히 정리를 해본다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영훈 교수 발언의 핵심은 정신대 문제가 해방 이후 한국의 여러 성매매 문제의 뿌리요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동의할만한 주장이다. 사실 과거청산을 운위하는 이유는 그 과거가 단순히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구속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제의 전쟁 성노예 문제는 그것이 한국사회에 만연한 성매매 문화와 인과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더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적어도 이영훈 교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그는 한국인 포주뿐 아니라, 학도병으로 참가해 위안소를 이용한 이들의 자발적인 반성과 고백을 통해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일본에서는 실제로 시행되어 온 일이고, 이것이 친일파진상규명법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친일파진상규명법 시행 이후에도 진정한 과거청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다. 만약 당신이 친일파진상규명법에 찬성하는 입장이고, 이영훈 교수의 논변의 합리적 핵심을 취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친일파진상규명법은 일제시대의 범죄에 대한 최소한의 처벌일 뿐이라는 합의를 통해 당신이 말씀하신 면죄부 효과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그 최소한의 것을 시행하면서 학문적 연구와 자발적 반성과 고백을 이끌어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그러나 대다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말은 물타기다. 따라서 당신은 수구세력이다” 그런 생각으로 법안에 반대하는 이들은 모조리 수구세력으로 몰아붙인다면, 법안을 통해 예상되는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하는 기제는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이다. 너무나 위험한 일 아닌가.

한국인의 자발적 참여라는 말에서 곧바로 자발적인 매춘여성을 떠올려 버리고 공분하는 것은, ‘순결한 희생자’ 상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매매 문화에 대한 윤리적인 비난을 피하면서, 아니면 적어도 성매매 문화와 일본제국주의를 연결짓지 않고 일본제국주의만 단죄하고픈 강렬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데, 이영훈 교수가 이 소망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이영훈 교수의 말로 인해 ‘일본 제국주의의 유산’은 한국 남성 사회에 보편화된 성매매 문화와 연결되어 버렸다.

종군위안부 피해자가 강제로 잡혀갔음을 강조하고 그들을 매춘여성과 완벽하게 분리시키는 것은 일본군의 전쟁 성노예 문제를 분명하게 부각시키는 데에는 효력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다수의 매춘부들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시키고 ‘자발적 성매매’라는 환상을 더욱 공고히 하는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후자에 대해선 아무도 입도 벙긋 하지 못한다. 벙긋했다가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질타를 받거나, 그분들의 감정을 대리하는 이들에게 질타를 당할 것이다. 사과하러온 이영훈 교수에게 한 종군위안부 피해자는 “어떻게 우리를 동두천 여성과 비교한단 말인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비극이다. “우리는 빨갱이가 아닌데 왜 학살했단 말입니까”라고 말했다는 민간인 학살 생존자의 말만큼이나 비극이다. 한 범죄의 피해자가 다른 범죄의 피해자를 경멸하는 것이다.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사태를 판별한다면, 여러 종류의 기준에서 볼 때 생겨나는 여러 부류의 피해자를 고루고루 고려하는 것이 우리의 윤리적 의무다. 민족에 의해 신비화되고 깊숙이 감춰진 피해자를 자기 필요에 따라 호출해내며 다른 이의 견해를 억압하는 행위는 지양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억압받은 이는 이영훈 교수였을까, 아니면 이영훈 교수의 발언으로 억압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일까? 나는 명백히 전자라고 본다.

▲ 과연 누가 억압받았는가? ©  

이영훈 교수에게 경의를 표한다

따지고 보면 나는 이영훈 교수의 시각에 온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이영훈 교수는 민족에 대해서는 해체주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고 국가체제에 대한 관점은 보수주의적으로 보인다. 그는 민족사의 관점을 인정하지 않으며, 국가체제는 존중하는 바가 있으면서도 시민사회의 영역과 뚜렷하게 분리하고자 한다. 나는 그보다는 일반적인 젊은이들의 관점에 (그러니까 민족적으로는 좀더 굳건하고 국가체제에 대해서는 그만큼은 존중하지 않는)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영훈 교수의 시각에 일리가 있으며, 체계성과 논리성에서 별다른 하자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영훈 교수가 보여준 성실성과 전문성은 그가 서울대 교수이고 아니고의 문제를 떠나서 매우 훌륭했다. 따라서 이영훈 교수와의 견해차는 토론을 통해서 극복할 문제이지, 손쉽게 매도해서 해결할 일은 아니다. 사람들은 (특히 개혁을 운위하는 사람들은) 가령 임지현 교수가 해체주의자이며 허무주의자라는 이유만으로 비난한다. 그러한 포지션 자체가 우리의 개혁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임지현 교수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으나, 그런 비난은 위험하다. 어떤 입장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그 입장이 파악하거나 대변하는 합리적인 논점과 기준을 배제하고 세상을 재단하겠다는 의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손쉽지만 위험한 논리다. 이영훈 교수의 건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송영길 의원의 경우 위안부의 문제를 ‘일본’과 ‘한국’의 문제로만 바라봤기 때문에 이영훈의 사상의 지평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자신의 도식에 따라 “일본 우파의 논리”로 지목한 것이다. 나는 그의 행동이 악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한계에 연유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영훈 교수의 주장 중 일부는 지식의 정치성을 고려해 볼 때 순진한 것이다. 안병욱 교수의 주장처럼, 서울대 김민수 교수처럼 친일 문제를 단지 언급만 하고도 쫓겨난 사람이 있을 정도로 학계는 친일 문제에 대해 완강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학계 스스로 친일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견해는 천진난만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지식인이 지식의 정치성에 밝아야 한다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지식인에게도 전공분야가 있고, 모든 지식인이 본격적인 사회참여 지식인은 아니지 않은가. 주로 연구에 종사하면서도 자신의 전공분야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 간혹 견해를 피력하는 지식인도 있을 수 있으며, 그런 지식인 역시 인정받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학적 논쟁이 주책없이 정치적 맥락 속에 들어”왔다는 진중권의 주장은 매우 주책없는 소리다. 상아탑 지식인은 뭘 모르니 입닥치라는 얘기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사회참여 지식인들만 지식인과 대중 사이에서 중간자적인 입장을 전유할 수 있다는 것인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지식인이 대중에 비해 전면적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특수한 부분에서 우위성이 분명할 경우 그에 합당한 존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지식인을 뭐 그리 대단한 교양인이나 계몽주의자로 상정하고 있지는 않다. 지식인을 전문가로 파악하기만 해도 이해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의사들의 권위주의를 타파하자는 것과, 어떤 상황에서 의사의 말을 존중한다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비록 언론이 왜곡보도를 했다고는 하나, 이런 점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된 ‘대중’들의 행동은 결코 올바르지 못했다. 그들은 발언자가 하지 않은 발언으로 발언자를 비난했고, 발언자의 일관성 있는 논리를 마음대로 재단하고 단죄했다.

많은 이들이 ‘지식인’에 대해 부정적인 상(象)을 가지고 있다. 요약하자면, 그들은 각론에는 강하지만 총론에선 자신이 어떤 맥락에서 이용되는지도 모르는 채 정치권력에 이용되거나,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담론으로 대중의 견해를 억압하고 왜곡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영훈 교수는 그러한 상에 부합하기는커녕 전문적인 조사를 통해 정치인들보다도 더 ‘대중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많은 시청자들이 별 관심없이 지나쳤던 부분이지만, 한국 전쟁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면서 이영훈 교수는 자신이 필드워크를 다니던 남부지방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적인 상황을 겪은 마을들이 있다. 그런데 그 마을들 중 많은 마을의 ‘어른’들이 그 사실에 대해 절대로 말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최소한 아이들이 서로 손잡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할게 아니냐며. 그리하여 민간의 상처는 겨우 아무는 중인데, 진상규명법의 내용엔 피해자의 신고가 있으면 가해자를 조사할 수 있도록 되어있으니 자칫하면 겨우 아문 상처가 다시 커다란 문제가 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그는 전체토론과정에서 몇 번이나 강조했듯이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조사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니까 어느 쪽이 되었건 정부나 군대에 의한 학살은 조사되는 것이 마땅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비일비재했던 민간인끼리의 학살 문제는 매우 신중해야 될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 아무런 대비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안병욱 교수의 답변은 “진실이 있어야 진정으로 상처가 아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지식인에 대한 부정적인 수사로 흔하게 운위되는, 계몽주의적인, 자기확신에 찬, 대중의 삶에 대한 고려가 없는 주장을 찾는다면 이 경우 누구의 주장이겠는가. 나는 오히려 안병욱 교수의 주장이라고 본다. 그러한 점에서 이영훈 교수의 대안이 빛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인식을 가능토록 한 그의 성실한 학적 연구와 조사에 대해서도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친일진상규명에 대한 회의

나는 본래 친일진상규명법에 찬성하던 입장이었다. 이 법안이 반민특위의 입법만큼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친일문제를 언급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친일파의 후손이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친일파 문제를 햇볕에 꺼내어 언급한다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정신병리현상에 대한 치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찬성했다. 또한 이영훈 교수가 지적한 입법의 포괄성과 자료의 미숙함도 이 법안이 처벌을 위한 법안이 아니라 진상규명에 국한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커다란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이들과 무엇이 다른가?  © 월간조선

그러나 한 양심적인 교수의 소신 있지만 서툴렀던 발언이 언론매체를 통해 왜곡되고, 대중들을 들끓게 하고, 급기야 집단적인 분노의 광기를 터트리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착잡하다. 도대체 내 눈에 명백하게 보인 것이 왜 이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을까. 그들은 이영훈의 제스처의 오만함에 분통을 터트리고, 그의 뉘앙스를 끌어내어 재단한다. 녹취록 구문의 연결구조만 봐도 파악할 수 있는 ‘의미’를 왜 뉘앙스까지 동원해서 재해석해야 하는가. 여기서 나는 최장집의 “역사적 결단”이란 어구에서 김일성에 대한 찬양을 읽어냈던 월간조선의 편집증과 동일한 것을 본다.

피해자에게 맡겨 처단해야 한다느니, 각론은 알지만 총론엔 무지하다느니 하는 책임지지 않는 말의 성찬 속에서 피로감을 느낀 후, 내가 묻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이영훈 교수에게 손해배상을 하는 그 날, 저이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자발적으로 고백’할 수 있을까? 혹은 법원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며 손해배상금 대신 내주기 모금운동이라도 벌일까?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옳았고, 나는 대중의 건전한 상식을 신뢰한다는 의견이 인터넷에 올라온다. 그런 말들에 나는 절망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불과 며칠 전에 일어난, 하나의 원본텍스트를 가진 사건을 두고도 이러한 전쟁을 벌여야 하는데, 우리의 양식(良識)은 과거의 사건에 대한 해석을 담당하기에 충분한 것일까?  

나의 글은 무척 길다. 그러나 3시간에 걸친 토론의 녹취록보다는 짧고, 60년의 간극을 둔 몇십년 역사의 퇴적에 비하면 형편없이 짧다. 만일 당신이 이 글 정도도 길다고 꼼꼼히 읽지 않는다면, 한 인간에 대해 청산이니 처리니 하는 말을 입에 담을 자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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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Unow] 누가 이러셨습니까? by 한지훈





지난 8월 31일(화) 새벽 2시경, 학생회관 앞 열린마당에 세워진 5.18 기념탑이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 넘어뜨려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날 학생회관 1층 수위실에서 근무 중이던 수위 모씨는 “쾅하는 소리를 듣고 나와보니 탑이 쓰러져 있었고, 한 사람이 도망가는 게 보였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방학 중에 보수공사를 했던 5.18 기념탑은 이번 사건으로 끝부분이 구부러지는 파손을 입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같은 날 심상치 않은 사건들이 더 있었다. 총학생회장 홍상욱씨의 말에 따르면, 기념탑이 쓰러진 31일 아침, 중앙도서관 계단 위에 걸린 현수막들이 여러 갈래로 찢겨 있었으며, 자연대에 붙어있던 자보도 칼로 베어 있었다는 것이다. 대학본부 앞에서 김민수 교수가 농성 중인 천막도 10여군데가 넘게 칼로 ‘난도질’ 당했는데, 취재 결과 31일에 벌어진 일로 밝혀졌다.


한편, 대학본부 학생과 측은 넘어진 5.18 기념탑을 31일 오전에 다시 세웠는데, 여기에 참가한 학생과의 한 관계자는 “쇠로 된 탑이 너무 무거워서 17명이 달라 붙어서야 겨우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위에 의해 목격된 사람은 한 사람이었지만, 한 명의 힘으로 탑을 넘어뜨리긴 힘들었을 것이란 얘기다. 이에 대해 총학생회장은 “서너명이 같이 저지른 일인 것 같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학생회관 수위도, 총학생회도, 대학본부도 “누가 그랬는지 알 길이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한밤중에 활개치다 사라진 이들을 어디가면 찾을 수 있을는지.


 








▲학생회관 앞 열린마당에 있는 5.18 기념탑 © 한지훈


 








▲이번 사건으로 끝이 심하게 구부러졌다. © 한지훈


 








▲옆에서 본 모습 © 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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