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톡(CONG) 적립금 5만 캐시 돌파

현재(9월 23일) 메신저 콩톡(CONG)(채팅창에 뜨는 광고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메신저 앱. 형네 회사에서 개발함. 망하면 안 될텐데;;)의 내 총 적립금이 5만 캐시를 넘어섰다. 콩톡으로 올해 안에 2만원(현금으로 전환 가능한 최소 금액)만 벌면 많이 버는 거겠지 생각했었는데... 벌써 5만원이라니! (물론 여전히 푼돈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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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적립 캐시 항목을 보면 53,253원이라고 적혀있다. 잔금이 13,253원뿐인 이유는 문화상품권 구입에 4만원을 썼기 때문.

적립금 증가는 대부분 초대장 덕분이다. 이 블로그에 콩톡(CONG)에 대한 사용 후기와 초대장을 올린 게 4월(콩톡)과 5월(콩톡 사용 후기) 두 번이었다. 초대장은 아래와 같은 링크다. 링크를 누르면 앱스토어나 플레이스토어로 연결되며, 추천인코드에 내 추천인코드가 자동으로 입력된다.

<CONG 초대장>

메신저, 그 이상의 혜택. 콩톡

추천인코드: W6CLGEM4
https://bnc.lt/m/BmfYFD7xBt

처음 초대장을 올렸을 때에는 내 페이스북 친구들이나 가입해줄 줄 알았다. 사실 처음에는 그것도 잘 안 됐다. 초대장을 게시하고서 한 달이 되도록 블로그에 올린 내 초대장을 통해 콩톡에 가입한 사람은 단 두 명. 아마도 내 친구들 감수성과는 잘 맞지 않는 앱인 듯;;; 사실 우리가 쪼잔하게 50원, 100원 벌려고 채팅할 때 뜨는 광고 클릭할 나이는 아니지 않은가;;;

근데 6월 25일부터 갑자기 가입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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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5일 네 명 가입. 6월 26일 네 명 가입.

이 이후로 현재(9월 23일)까지 내 초대장을 통해 가입한 사람은 총 106명(6월 13명, 7월 30명,  8월 48명, 9월 15명). 지금은 약간 주춤하긴 한데, 8월 어느 날에는 하루에 10명이나 가입하기도 했다. 나는 이 분들이 콩톡으로 버는 광고적립금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꼬박꼬박 받고 있는 중이며, 덕분에 내 콩캐시는 엄청난 속도로 쌓여갔다.  7월 초 1만 캐시 정도에서 시작된 콩캐시는 8월 7일 2만 캐시, 8월 13일 3만 캐시, 9월 2일 4만 캐시를 돌파했으며, 그리고 9월 20일 5만 캐시를 돌파한 것.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광고 좀 더 많이 클릭해주시면 좋을텐데;;

최근엔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이모티콘인 마이콘에도 재미를 좀 붙였다. 요즘 부인님과 이러고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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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만들어 쓰다 보니 요령이 생겼는데, 평소 대화에서 자신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을 마이콘으로 만들어 놓을수록 쓸모가 많은 것 같았다. 내 경우엔 "네", "응", "OK", "ㅇㅋ" 등. 부인님께는 주로 긍정적인 대답을 한다.

어쨌든 요즘 부인님과의 채팅도 더 재밌어지고 푼돈 모으는 재미도 쏠쏠하다. 누가 내 초대장으로 좀더 가입해서 광고 좀 클릭해주면 좋겠는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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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톡(CONG) 사용 후기

콩톡(CONG)은 제가 잘 아는 학부 선배인 제 친형이 창업한 벤처에서 개발한 '돈 버는 메신저' 앱입니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후기가 학연과 혈연에 의해 작성된 글임을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돈을 어떻게 벌 수 있을까?

콩톡은 카톡과 비슷한 메신저이지만 친구와 대화를 하면 가끔씩 말풍선 옆에 작은 광고가 잠깐씩 떴다 사라지는데요. 그 광고 덕분에 돈을 벌 수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 스크린샷은 기사 광고가 떴을 때의 모습입니다. 광고가 뜨면 바로 1캐시가 적립되는 광고인데요(보기 +1 광고). 사실 기사 광고만 보는 것으로는 돈을 많이 벌기가 힘듭니다. 두 번째 스크린샷은 지난 광고를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는데요. 여기에는 다른 종류의 광고도 보입니다. 앱 광고의 경우에는 설치 또는 실행을 기준으로 100캐시 또는 그 이상의 캐시를 지급해 줍니다(두 번째 그림 중 설치 +100 광고). 가끔씩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클릭만 하면 그냥 30캐시를 바로 주는 광고도 나옵니다(두 번째 그림 중 클릭 +30 광고). 콩톡에서 사용자에게 랜덤으로 주는 선물인 셈입니다. 글을 쓴 이후, 이 선물은 하루에 한 번 50캐시를 지급해주는 출첵 광고로 변경되었습니다. 

광고로 캐시를 적립하는 방식에 대한 공식적인 설명은 다음의 동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www.facebook.com/congtalk/videos/1321151821235048/

그 외에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더 있는데요. 바로 친구를 초대하는 것입니다. 사용자의 추천으로 친구가 콩톡에 가입하면 사용자는 500캐시를 지급받습니다. 꽤 큰 금액이라서 상당히 유혹적이지만, 초대를 했는데도 친구가 가입을 안 하면 기분이 상하기 때문에 무작정 많이 하기는 힘듭니다. 저의 경우에는 지금까지 한 8명 정도를 초대해서 4,000원 쯤 번 것 같아요. 앱 개발업체 임원의 동생 치고는 영업에 소홀한 건가요.? 형 미안해 흑흑;;

글을 쓴 후에 친구 추천에 관한 정책이 바뀌었습니다. CONG으로 친구를 초대하면, 초대받은 친구는 첫 가입적립금으로 1,000캐시(초대 안받고 가입하면 300캐시)가 적립되고, 초대한 사용자는 친구가 광고를 통해 적립하는 금액의 10%를 평생 무제한 적립받을 수 있습니다. 즉 친구를 가입시킬 때마다 곧바로 500캐시를 지급받던 건 없어졌습니다. 

돈을 얼마나 벌 수 있을까?

그러면 대충 얼마나 벌 수 있는지 궁금하실 것 같은데 저는 지금까지 6,500원 정도를 벌었습니다(아래 첫 번째 그림). 저는 광고 클릭에도 친구 초대에도 무척 소극적이었는데도 꽤 번 거죠. 근데 콩톡 자랑 이벤트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아래처럼 믿을 수 없는 금액을 번 사람도 있더라고요(아래 두 번째 그림).  

광고가 거슬리진 않을까?

형에게 광고가 뜨는 메신저라는 사업 기획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저도 광고가 눈에 거슬리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앱을 사용을 해보니, 광고의 크기도 작고 금방 사라지다보니 전혀 그런 생각이 안 들더군요. 오히려 사용자들은 더욱 많은 광고를 보여달라고 요구하나 봅니다.

보안은 믿을 만할까?

보안 문제는 저도 모릅니다. 아마도 서버는 국내에 있을 거고, 검찰이 요청하면? 어쨌든 이 문제에 민감하신 분들에게는 콩톡이 아마도 안심을 드릴 수 없을 거예요.

카톡이 있는데도 많이 사용하게 될까?

물론 카톡이나 문자 메시지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카톡의 단체 채팅방 사용자들이 모두 콩톡으로 옮겨오진 않거든요. 단체 채팅방을 이용하려면 여전히 카톡을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현재 부인님과의 대화는 대부분 콩톡으로 하고 있습니다. 원래 부인님과는 문자 메시지로만 대화를 했었는데, 기왕 하는 거 콩톡으로 하게 되더라고요. 근데 어차피 제 톡의 99%는 부인님과의 톡이므로, 제 통신 생활에서 콩톡은 벌써 카톡을 제친 셈입니다. 

또 다른 기능은 없을까?

콩톡에는 광고 말고도 다른 재밌는 기능이 있는데요. 바로 '마이콘'입니다. 마이콘은 사용자가 자신의 사진에 문구를 삽입해 직접 제작한 이모티콘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이게 뭐 별 건가 싶었는데, 한 번 맛을 들이니 꽤 재미가 있더라고요. 저는 아래와 같은 마이콘을 만들어서 사용 중입니다. 다 저의 아이들 사진을 이용해서 만든 거죠. 웃긴 사진을 이용하자니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뭐 재미가 있으니까요. 오히려 아이들도 자기 사진이 이용된 이모티콘을 보고서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어떻게 가입할 수 있을까?

현재는 콩톡에 가입만 해도 500캐시를 지급해 준다고 합니다. 

앱을 깔고 싶으신 분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해 보세요.

<CONG 초대장>

메신저, 그 이상의 혜택. 콩톡

추천인코드: W6CLGEM4
https://bnc.lt/m/BmfYFD7xBt

가입할 때 위의 추천인코드를 입력하면 저에게도 500캐시가 적립됩니다. 그럼 아무쪼록~~! 

글을 쓴 이후 가입시 혜택에 대한 CONG의 정책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가입할 때 추천인코드를 입력하면 1000캐시가 바로 신규 가입자에게 지급됩니다(추천인코드 입력 없이 가입하면 300캐시 지급). 또 추천인에게 적립해주던 500캐시는 없어지고 대신 초대 받은 가입자가 광고를 통해 적립하는 금액의 10%를 평생 적립받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초대 받은 가입자의 적립금에서 뺏어오는 것은 아닙니다). 

 

위의 경로가 불안할 경우 콩톡의 페이스북 페이지인 https://www.facebook.com/congtalk에서도 앱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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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워드프로세서(HWP, Hangul Word Processor)

이 글은 몇 년 전 <한/글 워드프로세서> 또는 <아래아한글>을 과학기술사물로서 전시하는 문제에 대한 자문 의뢰를 받고서 웹상에서 자료를 모아 정리해본 글이다. 얼마 전 엔씨소프트의 김태진이 한글과컴퓨터에서 일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글을 열어봤다가 하드에서 썩히기에는 아까운 것 같아 블로그에 올려보기로 했다. 블로그에 올리면서 일부 어색한 부분에 수정을 했다.

1. 기술적  특징

1) 강력한 한글 지원과 호환성

1989년 4월 24일 출시된 <한/글 1.0>은 모든 IBM 호환 PC에서 한글 문서를 편집하고 편집한 모양대로 인쇄할 수 있었던 한글 워드프로세서였다. <한/글>은 한글 카드가 없어도, 한글 DOS를 사용하지 않아도 작동했으며, 한글 모듈이 장착되지 않은 프린터로도 한글 문서를 편집한 모양과 똑같이 정확히 인쇄할 수 있었다.

“한/글의 개발 당시 시중에 나와 있었던 보석글을 제외한 다른 워드프로세서들은 특정 회사의 컴퓨터에서만 동작하거나 한글 카드와 같은 별도의 장비를 갖추고 있어야만 했”다. 당시 가장 널리 사용되었던 <보석글>의 경우엔 한글 카드가 필요없긴 했지만, THP.COM이나 NKP.COM과 같은 별도의 한글 입출력 프로그램을 구동시킨 후 작동시켜야 했으며, 한글 모듈이 설치된 프린터가 아니면 인쇄를 할 수 없었다. 한글 모듈이 설치되어 있더라도 프린터가 특정 글꼴을 지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요구한 글꼴(예를 들어, 명조체) 대신 기본 글꼴(예를 들어, 고딕체)로 출력되기도 했다.

또한 당시 워드프로세서에서는 표현할 수 있는 한글에 한계가 많았다. <보석글>을 포함한 대부분의 한글 워드프로세서들은 제한된 완성형 글자만 표현할 수 있었고(예를 들어, ‘핤’과 같은 글씨는 입력할 수 없다), 특수문자나 고어 등의 표현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자체 한글 입력기, 자체 한글 코드와 자체 한글 글꼴, 자체 프린터 드라이버를 개발함으로써만 해결될 수 있었으며, 1988년 강태진이 제작한 <한글2000>은 처음으로 자체적인 한글 처리 기능을 내장함으로써 한글 처리에 관한 방향을 제시했고, 1989년 출시된 <한/글>은 그 방향을 이어받았다.

① 표현 가능한 모든 한글 지원

<한/글>은 완성형 코드로 표현할 수 없었던 11172자의 한글을 모두 표현할 수 있었으며, 한글 고어도 거의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다양한 한자와 외국어, 특수문자들을 표현하기 위해 <한/글>은 독자적인 코드를 개발해야 했는데, 이는 나중에 <한/글 2.0>에서 “한컴 2바이트 코드”로 완성된다.

② 한글 3벌식을 포함한 자체 자판 지원

<한/글 1.5x>는 2벌식 자판뿐 아니라 3벌식 자판도 지원했으며, 한글 고어도 자판 수준에서 지원했다. (‘ㅏ’를 두 번 눌러 ‘ㆍ’(아래아)를 표현하는 방식은 나중에야 구현된다.)

한글3벌식자판 한글고어자판

③ 다양한 자체 비트맵 글꼴 지원

<한/글>은 명조 고딕 샘물 필기(1.5판에서 추가) 4가지의 비트맵 글꼴을 지원했으며, 로마자는 명조, 고딕, 윗첨자, 아래첨자, 이탤릭, 필기체(1.5판), 타임즈(1.5판), 유니버스(1.5판) 글꼴을 지원했다. 이를 위해 <한/글>은 자체적으로 화면용 글꼴(*.SFT)과 인쇄용 글꼴(*.PFT)을 개발했으며, 덕분에 그래픽 카드나 OS, 프린터 종류에 상관없이 원하는 글꼴을 그대로 출력할 수 있었다. 다만 이 비트맵 글꼴들은 크기를 확대하면 깨지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고, 크기를 확대해도 깨지지 않는 벡터 형식의 글꼴은 나중에 <한/글 2.0>에서야 지원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글 1.x>에서는 글자의 확대 효과가 가로/세로 2배로만 제한되어 있었다.

④ Shift+Space를 이용한 편리한 자판 전환 (1.2판에서 추가된 기능)

<한/글>은 한글과 영문(또는 외국어)을 동시에 작성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키보드에서 손을 떼지 않고서 자판을 전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일반적인 키보드에서 한/영 전환키는 우측 하단에 조그맣게 위치했으나, 이를 누르려면 손이 키보드에서 떨어지게 되어 문서 작성에 지장을 초래한다. <한/글>에서는 이 전환키를 Shift+Space로 변경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⑤ 다양한 하드웨어 지원

<한/글>은 출시 당시부터 다양한 그래픽카드(허큘리스, CGA, EGA, VGA 등)를 직접 지원하여, 한글 카드가 없어도 거의 모든 컴퓨터에서 정상적인 화면을 얻을 수 있었으며, 한글 모듈이 없는 프린터에서도 화면 그대로 인쇄를 할 수 있었다. <한/글>의 문서들은 저렴한 EPSON 9핀 프린터에서도 모든 글꼴이 정확히 인쇄되었고(<보석글>의 경우, 9핀 프린터로는 고딕체만 지원), 1.5판에서는 도트 프린터에서도 그림을 인쇄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2) ‘위지위그(WYISIWYG/What You See Is What You Get)’ 방식의 워드프로세서

<한/글 1.0>은 ‘화면에 보이는 대로 출력이 가능한(WYISIWYG)’ 워드프로세서였다. 즉, 이는 문서를 편집하는 화면에서 표현된 글꼴, 문단형식, 페이지구성 등이 왜곡되지 않은 채 똑같이 출력되는 방식으로, 서식 태그(tag)를 직접 입력하여 글꼴이나 문단형식을 변화시키는 방식과 구별된다. 태그 입력 방식으로 문서를 편집하려면, 서식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부분에 정확한 태그 명령어를 입력하는 수고를 들여야 하는 동시에 편집 결과를 미리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위지위그’ 방식에서는 편집 명령어를 정확히 외우지 않고도 편집 메뉴를 이용해 서식을 변화시켜 편집 과정에서 그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둘의 차이는 아래의 예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위지위그 방식 : 진한 이탤릭 글자
  • 태그 입력 방식 : <b><i>진한 이탤릭 글자</i></b>

현재 대부분의 워드프로세서는 ‘위지위그’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1989년 당시 ‘위지위그’ 방식의 워드프로세서는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드물었다(<워드스타(WordStar)>가 ‘위지위그’ 방식의 워드프로세서라는 주장이 있긴 하지만 불완전했던 것으로 보이며, <워드퍼펙(WordPerfect)>은 1993년의 6.0 버전부터 텍스트 모드와 위지위그 방식의 그래픽 모드를 동시에 지원했으며, 1988년의 5.0 버전은 미리보기에서만 그 기능을 지원했다).

당시 대부분의 한글 워드프로세서들은 외국의 텍스트 모드 기반 워드프로세서를 한글화한 제품들이었는데, 삼보컴퓨터에서 보급한 <보석글> 역시도 프린터에서 지원하는 글꼴을 사용하려면 텍스트 문서 내에 제어명령을 첨가해야 했다. 반면 강태진의 <한글 2000>을 모태로 한 <한/글>은 애초에 그래픽 모드에서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사용자가 지정한 문단 형식과 문자 효과들을 그대로 화면에 보여주는 방식을 채택했으며, 자체 개발한 글꼴들도 화면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또한 그 화면은 그대로 프린터로도 출력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용자 환경은 쉽고 편리한 풀다운 메뉴와 결합하여 누구나 사용설명서 없이도 문서 편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3) F10 풀다운 메뉴와 다양한 단축키 동시 지원

<한/글>에서는 문서 편집과 관련된 다양한 명령을 풀다운(Pull Down) 메뉴를 이용해 제공했는데, 편집 화면에서는 문서와 몇몇 정보만 보여주다가 F10을 누르면 상단에 메뉴가 보이는 방식을 채택했다. <한/글>은 고급 사용자를 위해 다양한 단축키(예: 글자 모양 Alt+L)도 제공했는데, 메뉴 안에서도 알파벳을 이용한 단축키를 통해 커서 이동키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거의 모든 명령을 빠르게 시킬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지정된 블록의 글자에 그림자와 밑줄 효과를 주고 글꼴을 샘물체로 바꾸려면, Alt+L, S, U, K, S, D를 차례대로 누르면 됐다. 블록은 F3을 누른 후 커서를 이동하여 지정할 수 있었다.

새글자모양 새글자모양2

1.5판부터는 F4키를 이용해 세로줄을 따라 지정된 블록도 만들 수 있었다(아래 그림 참조).

F4블럭

4) 선 그리기 기능 지원

<한/글>은 간단하지만 유용한 선 그리기 기능을 제공했다. 표 기능이 없었던 <한/글>에서 선 그리기는 표를 대신 그릴 수 있는 기능으로 인기가 있었다. Alt+D를 통해 선그리기 모드에 들어갈 수 있었고, Alt+D를 통해 괘선의 종류도 바꿀 수 있었다. 1.2판부터는 선 그리기로 만든 그림을 보호할 수 있는 기능도 추가되어, 정말로 표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선그리기

5) 기타 기능

<한/글>에서는 내부에서 전자계산기와 달력, 전화번호부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달력 계산기 전화번호부

 

2. 역사적 가치

1) 한글의 완전한 기계화

<한/글>은 그 제품명에서부터 아래아(ㆍ)를 쓰고 있듯이, 컴퓨터상에서 고어를 포함해 모든 한글을 완전하게 구현했다는 자부심을 표현하고 있다. <한/글>의 개발자들은 조합형 한글이 지닌 잠재력과 장점 및 한글 창제의 원리를 그대로 기계적으로 구현하는 데 상당히 높은 가치를 두었는데, 그 때문에 이들은 당시 표준으로 채택되었던 완성형 코드 대신 조합형 코드를 선택하며 독자 코드 노선을 걸었다. 이는 개발자의 편의나 경제성을 넘어선 정치적, 문화적 판단이 반영되었음을 보여주는데, 실제로 <한/글>은 한글 기계화 운동과 꽤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다.

한글 타자기 자판 연구와 세벌식 자판 보급과 한글 기계화 계몽 운동을 벌이던 공병우 박사는 1988년 문을 연 한글문화원에서 80년대 중반부터 매킨토시 컴퓨터를 직접 활용하여 한글 글자꼴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한글문화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던 국어교사 출신의 박흥호와 함께 3벌식 자판 배열을 완성했으며, 3벌식입력기 소프트웨어를 만들기도 했다. 또한 그는 <한글 2000>의 개발자인 강태진과 <한/글 1.0>의 개발자가 될 정내권, 이찬진 등과 교류를 맺고 있었으며, 그 인연으로 이찬진은 1990년 10월 9일 한글문화원의 작은 방에 한글과컴퓨터를 설립했다. 같은 시기 한글문화원의 박흥호도 한글과컴퓨터에 입사했는데, 그해 말 출시된 <한/글 1.5>에는 3벌식 자판이 추가되었다.

한글 기계화 계몽 운동가들은 한글 창제의 원리에 주목하여 초성, 중성, 종성을 구별한 3벌식 자판을 보급하는 데 주력했고, 탈네모꼴의 3벌식 글꼴을 완성하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탈네모꼴의 3벌식 글꼴이 교육에 효과적이고 가독성이 좋다고 주장했으며, 무엇보다 기계화가 용이해서 시각문화를 높이 발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러 실험 끝에 1984년에는 잡지 <샘이 깊은 물>의 제호를 위해 디자인된 샘물체(샘이깊은물)가 보급되었고, 1985년에는 안상수체가 발표되었다. 1989년 출시된 <한/글 1.0>에서는 3가지 한글 글꼴을 제공했는데, 명조체와 고딕체, 그리고 바로 샘물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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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한글 기계화 및 한글 계몽운동과 깊은 관련을 맺고 시작된 <한/글>의 개발자들은 조합형 완성형 코드 논쟁에서 일관되게 조합형을 지지했으며, 당시 많은 사람들이 조합형 지지자가 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한/글>은 많지는 않더라도 3벌식 자판 사용자를 키워냈고, 탈네모꼴 글꼴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보급되는 데 기여했다.

2) 절대적 점유율과 유사 표준 워드프로세서로서의 정착

<한/글>은 1989년 발매 이후 상당 기간 동안 거의 모든 컴퓨터 사용자가 사용한 워드프로세서였다. 발매 1년 후 1990년 <한/글>의 점유율은 70%를 넘어섰고, 대당 47,000원이었던 <한/글 1.0>의 판매 수익 5천만원으로 이찬진은 1990년 10월 9일 한글과컴퓨터를 설립할 수 있었고, 이듬해에는 매출 10억원을 기록했다. 92년 발매된 <한/글 2.0>은 두 달 동안 3만 개가 팔리는 인기를 누렸고, 이후 97년까지 <한/글>의 점유율은 70%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물론 이 점유율은 불법복제를 통한 사용자를 모두 포함한 수치이다.

한글점유율
손영길, 석영욱, 정우식, 박수영, “㈜한글과 컴퓨터: 제2의 신화창조를 위하여”, 제2회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경영사례연구센터 주최 전국 대학(원)생 사례개발경진대회 우수상 수상작, 37쪽에서.

90년대 중반 MS의 윈도우가 IBM PC의 표준적인 운영체제로 자리 잡으면서, 사무용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도 MS 오피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지긴 했지만, <MS 워드>는 <한/글>의 점유율을 쉽게 넘어서지 못했다. 1998년 한글과컴퓨터가 재정위기를 겪고 경영진이 교체되는 사태를 겪은 이후에도, 여전히 한국에서는 워드프로세서라고 하면 <한/글>을 떠올릴 정도로 <한/글>은 막대한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 이렇게 자국 워드프로세서가 MS 워드보다 높은 점유율을 누리는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높은 점유율은 <한/글>의 더 많은 보급에도 영향을 주었다. 초기의 PC 사용자들은 <한/글>의 강력한 한글 구현 능력과 위지위그 편집 기능의 매력에 <한/글>을 사용했다. 그러나 일단 다수의 PC 사용자들이 <한/글>을 이용해 hwp 문서를 작성하다보니, hwp(Hangul Word Processor의 약자)라는 확장자를 가진 문서는 한국 내에서 광범위하게 유통되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이 작성한 hwp 문서를 열어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글>을 설치해야 하는 순환이 만들어졌다. 또한 일단 <한/글>의 메뉴 구성과 단축키 환경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은 다른 방식의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하는 데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더 좋은 기능이 있는 워드프로세서를 접하더라도 <한/글>의 익숙함을 버리기는 쉽지 않았다. MS 워드의 끈질긴 공세에도 불구하고 <한/글>이 현재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한/글> 자체의 꾸준한 기능 개선 노력과 사용자들의 한글 애국주의뿐 아니라, 절대적 점유율에 기반한 <한/글>의 선점 효과도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심지어 <한/글>은 현재 관공서와 교육기관의 공식 문서 포맷으로 지정되어, 초기의 선점 효과는 제도화된 독점으로 발전한 듯한 인상도 주고 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자리 잡은 워드프로세서들과 호환되지 않는 <한/글>의 높은 국내 점유율은 국내 문서와 외국 문서 사이의 단절 문제를 초래하기도 했으며, 자체 코드 노선을 걸어온 <한/글>은 html 등의 다른 형식의 문서로 변환될 때에도 일정한 한계를 보였다.

3) 소프트웨어 벤처 시대의 개막

<한/글>과 한글과컴퓨터는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개발만으로 수익을 남기기 시작했다는 데에도 큰 의의가 있다. <한/글 1.0> 출시 당시, 한국에서 소프트웨어는 컴퓨터 제조사들의 판매 보조 수단이거나 아마추어들의 취미거리로 여겨졌다. 삼보컴퓨터에서 보급한 <보석글>은 자신들이 조립 생산하는 컴퓨터와 한글 모듈을 장착해 수입 판매하는 EPSON 프린터의 판매를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개발만을 통해 수익을 남기는 업체는 당시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소프트웨어는 복사해서 사용한다는 인식이 너무나 강하게 자리 잡고 있던 시기였기에, 프로그래밍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도 소프트웨어를 일반인에게 직접 팔아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기는 힘들었다.

1989년 당시 서울대를 졸업한 이찬진이 ‘서울대 컴퓨터연구회(SCSC)’에서 만난 김형집, 우원식, 김택진 등과 함께 <한/글>을 개발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 소프트웨어로 수익을 남길 수 있다는 생각은 진지하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글 1.0>은 1989년 발매 이후 1년 동안 엄청난 불법복제의 환경 속에서도 5000만원이라는 상당한 수익을 올렸고, 그 돈으로 1990년 설립한 한글과컴퓨터는 91년에는 10억, 93년에는 100억이라는 매출을 올렸다. 이를 통해 한글과컴퓨터와 이찬진 사장은 소프트웨어로도 엄청난 수익을 남길 수 있다는 소프트웨어 벤처 신화를 남겼고, 이러한 희망 속에서 소프트웨어 벤처에 뛰어드는 후배들이 더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4) PC 사용자의 확대

80년대 초 소프트웨어 애호가들이나 게임 매니아들의 전유물이었던 PC는 점점 많은 사무용 소프트웨어의 개발 덕분에 점점 일반 사용자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애플II의 경우, <비지캘크>라는 스프레드쉬트와 <워드스타>라는 워드프로세서가 ‘킬러앱’의 역할을 했고, IBM PC의 경우, <LOTUS-123>이라는 스프레드쉬트와 MS에서 개발하기 시작한 오피스 프로그램들이 그 역할을 했으며, 매킨토시의 경우, 아도비의 <포토샵>을 비롯한 탁상 출판 프로그램들이 그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다소 특수하다.

한국에서는 <한/글>과 같은 편리하고 강력한 한글 워드프로세서가 개발되기 전까지, PC는 일반 사용자에게 다가설 수 없었다. PC를 구입할 때 몇몇 사무용 프로그램들이 제공되고 게임을 구입해 할 수 있었지만, 그 사무용 프로그램들은 많은 경우 특정한 직업군을 제외하면 불필요했고, 컴퓨터 게임은 즐겁긴 하지만 유용해 보이지 않았으며, 당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하는 <보석글> 역시도 컴퓨터를 구매할 다른 이유가 없는 사람에게까지 그것을 극복할만한 충분한 매력을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모든 IBM 호환 PC에서 작동하고 저렴한 도트 프린터에서도 인쇄를 할 수 있으면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한/글>이 등장하자, IBM 호환 PC는 복잡한 전자기기에 관심이 전혀 없는 일반인에게까지 매력적인 제품이 될 수 있었다. 즉 <한/글>은 한국에서 PC의 대중화에 기여한 일등공신 중 하나로 볼 수 있으며, IBM 호환 PC의 한국적 킬러앱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오히려 <한/글>은 다른 형식의 PC 구입을 방해하는 효과를 가지기도 했다. 상당 기간 동안(거의 현재까지 대부분의 기간 동안) <한/글>은 IBM 호환 PC에서 DOS나 윈도우 운영 체제 내에서만 동작했기에, <한/글>에서 만들어진 문서를 열어 봐야 하는 거의 모든 한국 사람들은 IBM 호환 PC를 떠나서 애플 컴퓨터를 구입하거나 리눅스와 같은 운영체제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특정한 목적에서 매킨토시와 같은 다른 PC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DOS나 윈도우가 설치된 IBM PC도 별도로 사용해야 했다. 현재도 많은 국내 애플 PC 사용자들은 윈도우 환경을 별도로 설치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한/글>이었고, 다른 하나는 전자금융이다(현재는 맥용 <한/글>이 판매되고 있다).

5) 불법복제 문제의 공론화와 국가 대표 소프트웨어의 보호

<한/글>은 국내에서 너무나 높은 점유율을 누린 소프트웨어였다. 그렇기에 1998년 6월 15일 한글과컴퓨터 사장 이찬진이 회사의 재정 악화로 인해 <한/글>의 프로그램 소스를 MS에 넘기고 더 이상의 개발과 판매를 포기하는 대신 MS에서 2천만 달러 투자를 받기로 한다는 기자회견을 했을 때(이하 ‘한컴 사태’), 사람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의 모든 한국인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회사가 단기부채 100억원 때문에 부도 직전에 놓였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1988년 한컴 사태에는 IMF라는 어려운 금융 환경과 무리한 사업 확장 등 여러 원인이 있었으나, 당시 많은 사람들은 두 가지를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했다. 하나는 ‘불법복제’였고, 다른 하나는 ‘MS의 공세’였다.

첫째로, <한/글>은 모두가 사용하는 국산 대표 소프트웨어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 위기는 프로그램의 질과 같은 내적인 문제라기보다 한국의 ‘불법복제’라는 환경의 문제를 부각시켜주었다. 한컴 사태 이후 ‘불법복제’ 문제는 여러 수준에서 전보다 훨씬 진지하게 다루어지게 되었고, 이 사건은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구입 증가, 정부의 불법복제 단속 강화, 소프트웨어 업체의 수익모델 다각화 등이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둘째로, <한/글>은 국산 대표 소프트웨어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것의 포기는 국가적 손실로도 여겨졌다. 이는 일부 감정적인 판단이기도 했지만, 합리적인 경제적 판단이기도 했다. 당시 벤처기업협회 이민화 회장(메디슨)은 “우리 국민들이 다시 MS워드를 배울 경우 재교육 비용에 3천억원, 한글문서 교체 비용으로 1천억원, MS워드 구매 비용으로 1천억원 등 적어도 5천억원 이상의 국가적 손실이 발생한다. 하지만 아래아한글을 보완하고 발전시켜나가는 비용은 50억원이면 충분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국민주 모금 20억원과 메디슨의 50억원 등 100억원을 한컴에 투자하는 대신 MS와의 합의는 간신히 파기되었다. 이후에도 한컴은 여러 번의 위기를 겪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시장 논리 대 국가 대표 소프트웨어 보호라는 논쟁 구도는 계속 재발했다. 이는 <한/글>이 국가 인프라의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다.

 

3. 사회문화적 영향력

1) 타자에서 워드프로세서로

<한/글> 덕분에 타자 자격증은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으로 바뀌었으며, 점차 그런 자격증은 거의 무의미해졌다. <한/글>은 초창기부터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에 깊이 관여했는데, 한글과컴퓨터는 92년 시작된 대한상공회의소 주관 워드프로세서 국가자격검정 시험을 후원했으며, <한/글>을 이용한 편집 교본을 직접 제작 출판하는 한편, 워드프로세서 시험 준비 학원을 직접 모집하기도 했다.

점차 타자 자격증보다는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이 필요해지는 시대가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글>은 자격증 없이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기 때문에 그 자격증은 점차 유명무실한 자격증이 되고 말았다. 즉 워드프로세서의 사용은 자격이 있는 전문가의 몫이 아니라 일반인의 몫이 된 것이다.

2) 제한적인 탁상 출판의 확대

<한/글>이 점점 많이 보급되고 그것을 이용한 편집 방법이 널리 알려짐에 따라, 보고서, 논문, 유인물, 자료집, 시험지, 프린트물, 학급신문 등을 <한/글>로 직접 편집해서 인쇄하는 일이 많아졌다. 과거 타자나 등사를 통해 이루어졌을 비전문적인 인쇄물이 모두 컴퓨터상에서 <한/글>로 편집되어 출력된 후, 복사되거나 인쇄업자에게 맡겨져 인쇄되었다. 전문 인쇄업자나 출판업자가 만들어낸 인쇄물을 제외한 거의 모든 문서들이 <한/글>로 제작되었고, 아마추어적인 편집에 기반한 인쇄물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한글과컴퓨터는 1992년 탁상 출판을 염두에 두고 벡터 형식의 글꼴(확대해도 깨지지 않는 글꼴)과 수식편집기 및 다단 편집 등의 다양한 편집 기능을 추가한 <한/글 2.0>을 발표했다. 다양한 기능의 추가로 사용자들은 다양한 편집기능을 사용하며 전보다는 멋진 인쇄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지만, <한/글>은 여러 기능적인 한계로 인해 전문적인 출판 시장으로까지는 확대되지 못했다. 즉 <한/글>이 한국의 탁상 출판 문화에 미친 영향은 막대했지만, 매킨토시와 어도비(adobe)가 이루어낸 것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3) 한국인만의 <한/글>

<한/글>은 사실상 한국인만 사용하는 프로그램이지만, 워낙 당연하게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다보니 <한/글>로 작성한 hwp 문서를 외국인들에게 보냈다는 실수담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해외취업 이력서나 해외대학 원서 등을 hwp 문서로 보내거나 심지어 해외 바이어에게 제품 소개서를 hwp 문서로 보낸 일화들이 수두룩하다. 이는 <한/글>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한국적 문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거의 최근까지 hwp 문서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프로그램은 <한/글>과 <한/글 뷰어>뿐이었기 때문에, hwp 문서를 당연한 듯 공유하는 한국의 문화는 국제적인 교류 과정에서 가끔씩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나 2013년부터는 한글이 hwp 문서 양식을 공개함으로써 MS 워드와 같은 워드프로세서에서도 hwp 읽기와 편집을 지원하게 되었고, 이러한 문제는 차츰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부록1. 1980년대 대표적인 워드프로세서 비교

 

WordStar

애플II, 도스 등의 환경에서 작동. 텍스트 모드에서 작동. 콘트롤 키를 사용한 다양한 커서키 이동과 제어명령. 그리고 콘트롤 키와 여러 키의 조합을 통해 편집 기능 표시. 80년대 초중반까지 워드프로세서 시장 지배

WordPerfect

텍스트 모드에서 작동. 다양한 단축키를 통해 편집 1986년 4.2버전부터 인기 얻음. 자동 문단 번호 기능, 주석 삽입 기능 제공. 88년의 5.0 버전에서는 미리보기 기능을 제공. 도스용 5.1버전(1989년 11월 6일 출시)이 가장 성공적이었는데, 처음으로 풀다운 메뉴 제공하여 단축키들과 병용. (한/글 1.x와 매우 유사한 작업환경 제공)

<워드퍼펙(WordPerfect)>은 1993년의 6.0 버전부터 텍스트 모드와 위지위그 방식의 그래픽 모드를 동시에 지원. 그래픽 모드의 편집화면에서는 글꼴과 여러 효과들을 편집 중에 그대로 보여준 반면, 텍스트 모드에서는 미리보기를 할 때에만 출력 결과를 볼 수 있었다.

워드퍼펙

HWP

1989년 4월 출시. 풀다운 메뉴 제공. 그래픽 모드에서 작동하며 위지위그 편집 기능 제공.

hwp

MS Word

1983년 PC World 11월호에 묶여 배포. (그 해 윈도우에서 워드 작동 시연) 마우스를 이용한 위지위그 편집 기능 제공. 실행취소, bold, italic, underlined text 변경 바로 보여줌. 글꼴은 바꾸지 못함. 그러나 UI가 당시의 대표적인 워드프로세서인 WordStar와 달라 인기 얻지 못함(UI 때문만은 아닌 듯. 작업 성능이 너무 느렸던 것으로 추측됨). 1985년 2.0버전부터는 MAC용을 중심으로 개발됨(80년대 동안 MAC용 판매량이 Dos용 판매를 앞섬). 1987년 3.0(그리고 3.01) 출시. 당시 MAC용 워드프로세서에서 최강자로 군림. 1992년 5.1 for MAC은 매우 인기있는 워드프로세서였음. (당시 도스용은 MAC용을 DOS용으로 변형한 것에 불과?)

윈도우용 워드는 1989년 처음 출시. 윈도우 3.0의 출시와 함께, MS 워드는 곧장 IBM 호환 PC용 워드프로세서 시장의 선두주자가 됨. 1991년에는 DOS용 워드도 윈도우 프로그램 같은 UI로 교체. 1993년에는 6.0 출시. 자동교정, 자동형식 기능 등 제공하여 좋은 평을 받음. 초보적인 탁상 출판 가능.

그리고 Win95와 함께 win95용 word95(office95에 포함) 출시(win 6.0, dos 6 버전의 워드 6.0과 거의 흡사)

84년 출시 도스용 워드 1.1과 2.0은 좋은 평을 받지 못함. 위지위그 등의 기능 혁신 칭찬. 그러나 매우 느린 작동 혹평. 아래 링크, 192쪽.

http://books.google.co.kr/books?id=UCIvSU6Y2GAC&lpg=PP1&pg=PP1&redir_esc=y#v=onepage&q&f=false

 

부록 2. 한/글 워드프로세서(HWP, Hangul Word Processor) 초기 연표

한/글 1.x

  • 1989년 4월 24일 최초의 상용버전 1.0 출시 (5.25인치 2D(360KB) 플로피디스크 3장)
  • 1989년 6월 1.1판 출시
  • 1989년 12월 1.2판 출시
  • 1990년 6월 1.2L판 출시
  • 1990년 9월 1.3L판 출시
  • (1990년 10월 한글과컴퓨터 설립)

한/글 1.5x

  • 1990년 12월 20일 1.5판 출시 (5.25인치 2D(360KB) 5장)
  • 1991년 1월 1.51판 출시
  • 1991년 11월 18일 1.52판/1.53D 출시

한/글 2.x (디지털 탁상 출판을 염두에 둔 워드프로세서)

  • 1992년 7월 27일 2.0 전문용 출시
  • 1992년 9월 21일 2.0 일반용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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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로 만들어본 LED 시뮬레이션

최근 과천과학관 전자기 유도 관련 전시에 대한 자문 비슷한 일을 했습니다.

전시물 설명 패널도 작성해주고, 영상물 시나리오를 만드는 일을 했는데요.

어떤 결과물은 제가 원하는 만큼의 퀄리티가 나오지 않아 아쉬움이 남더군요.

그래서 한번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이건 스크래치라고 하는 프로그래밍 툴을 이용해서 제작해본 건데요.

 

 

LED 회로를 작동시키고 싶다면 스위치를 클릭해 보세요.

LED의 속박된 전자들을 보고 싶다면 LED를 클릭해 보세요.

 

근데 아쉽게도 아이패드나 아이폰으로는 아마 보이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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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모의고사 언어영역 지문 만들기

수능 모의고사를 만드는 업체로부터 컴퓨터 관련 언어영역 지문을 검토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내 학부 전공을 아는 대학원 후배가 연결해줬는데, 재미있어 보여 그냥 하겠다고 했다.

학부 전공이 가끔씩은 이렇게 쓸모가 있을 때가 있다. ㅎㅎ

 

내가 검토한 지문은 EBS 문제집에서 사용된 지문과 연계하여 새로 만들어낸 지문이었다.

실제 수능에서 그런 식으로 문제가 출제되기 때문에 그렇게 모의고사 문제를 만든다고 한다.

 

글을 읽어본 후 글에 문제가 많다고 검토 의견을 보냈더니 새로 써 달란다. 매우 급하단다.

 

지문을 새로 쓰고 문제를 두 개 만들어주면 **만원을 준다고 하는데, 앞부분을 제대로 못 들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다시 물어봤는데, 또 똑같은 부분을 못 알아들었다.

 

또 물어볼 수가 없어서, 그냥 ‘네’ 하고 하기로 했다. –_-;;

 

그래서 월요일에 만들어 보냈다.

근데 어젯밤엔 갑자기 정답과 해설을 써달라고 해서 오늘 아침에 뚝딱 만들어 보냈다.

 

근데 아직까지도 통장번호를 안 물어본다. –_-;;

 

ps. 이번 기회에 EBS 문제집 언어 영역의 지문들을 보게 됐는데, 과학이나 기술과 관련된 지문이 꽤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글을 제시한 후, 그 글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물어보는 문제가 출제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제트기류’에 관한 글이 제시된 후, 다음과 같은 문제가 출제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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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가 언어 영역 문제라는 게 포인트! 제시된 지문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풀 수 있는 문제다.

내가 만든 지문과 문제도 이런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런 식의 지문이 늘어난다는 건 바람직한 변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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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ows Live Writer 테스트

현재 이 블로그는 설치형 텍스트큐브인데요. 기본으로 제공하고 있는 에디터가 무척 불편합니다. 특히 작은 화면의 넷북을 사용하는 입장에서, 에디터가 불편하다는 점은 글쓰기를 망설이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글을 덜 쓰는 것 같기도 해요. 핑계겠죠? ㅎㅎ

 

어쨌든 데스크탑에서의 보다 손쉬운 블로깅을 위해 Windows Live Writer를 설치해 봤습니다. 지금 글을 작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면, 매우 훌륭한 사용자 환경을 제공하는 것 같아요. 특히 실제로 블로그에 보여질 화면 그대로의 편집창에서 글을 편집할 수 있다는 점이 놀랍네요. 아래의 스크린샷을 보세요. 제목과 본문 편집창이 보이는 화면 그대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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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훌륭하죠? 이 글이 정말 제대로 올라갈지 정말 궁금하네요. 자 그럼 확인해 볼까요?

 

————

 

임시저장 후 확인해보니 본문이 삽입한 스크린샷이 정말 그대로 삽입되는군요. 감동입니다.

유투브 동영상도 잘 올라갈지 궁금하네요.

 

까치야 까치야 이리와. 하임이가 보고싶대!

 

동영상도 잘 올라갔겠죠?

이렇게 좋은 도구가 있다고 제가 글을 열심히 쓸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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