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 아르바이트

지금 원주에서
아빠가 맡긴 교정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아빠가 맡긴 원고는 ‘문막읍사’

토요일은 와서 일 안하고 놀았고..
어제는 조금 해서 1장 마무리했고..
오늘도 겨우겨우 2장 교정을 마무리했다.
3, 4장이 남아있는데… 언제 다하고 서울 올라가려나…

교정이라는 게 참 고달픈게..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오자, 탈자만 보면 되는게 아니다.
글을 읽다보면 비문도 많고 글 앞뒤가 안맞아서
도대체 이걸 그냥 나둬야 하나 싶을 때가 많다.  
그걸 가지고 한참 고민하다보면 자연스레 잠이 온다. ㅡ.ㅡ;

게다가 내가 지금 교정보고 있는 대부분의 글들이 가치 없는 쓰레기글들이라는 점이 날 짜증나게 한다.  
문막읍에 관해 청탁받고 쓴 글들이라는 게
자기 경험이나 사료를 모아서 쓴 것이라기보다는
죄다 여기저기서 짜깁기한 글이다.  
게다가 서론은 왜그리 거창한지… ㅡ.ㅡ;

방금 한국전쟁 당시의 경험담들을 모은 부분을 읽었는데..
자기 경험을 솔직하고 진실어리게만 썼다면
“공산군”이니 “빨갱이”니 이런 표현은 용서해주련만…
괜히 교과서적인 내용을 집어넣어서 짜증나게 한다.
예를 들어 “6월 25일 국군들이 휴가를 떠난 사이 무방비상태의 일요일에 쳐들어왔다”거나 “오래전부터 기회를 노려 남침을 꿈꾸던 북한의 김일성” 등은 자기경험도 아니지 않은가. 단지 여기저기서 들었던 뻔한 내용을 자기 글에 집어 넣어 도리어 글의 진실성을 갉아먹어버린다.

에고…
힘들다..
내일은 이 교정일 끝내고 올라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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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이 요즘 학교에 다닌대요

학교에서 아는 후배에게 들었는데요.
사회학과 92학번 이적(본명이 뭐더라.. )이 요즘 학교에 다닌데요.
학기초엔 좀 많이 빠지다가 최근엔 꼬박꼬박 들어온다고 합니다.

수업시간에 돌리는 출석부의 이적 본명에는
누구의 소행인지는 모르겠으나 하트가 그려지기도 한대요. ^^;
그리고 어린 02, 03 여학생들로부터 싸인공세에 시달리면 그냥 무덤덤하게 해준대요.

나도 가서 싸인이나 받아볼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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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근대사회] 발제문 : 뉴튼주의와 계몽사조

newton.hwp 뉴튼의 생애와 과학
뉴튼(Isaac Newton, 1642 – 1727) : 당시의 경험과 이론 종합하여 [프린키피아] 출간. 고전역학의 완성. 운동의 3법칙과 역제곱(만유인력)의 법칙 정리. 미적분학 도입. [광학] 출간

뉴튼과학의 방법
가설의 배격 : 실험이나 관측에 의해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설명을 ‘가설’이라고 불렀고, 과학에 있어서 이같은 ‘가설’의 개입을 배격했다. 현상의 기술로 만족하고, 그 본질이나 원인 등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으려고 함. 그러나 보편중력을 발견하기 위해 그는 분명 가정 또는 ‘가설’을 세웠을 것이다. 다만 자신이 못 느낀 것일 뿐.
‘질문들’ : [과학] 끝부분에 포함된 ‘질문들’에서 뉴튼은 중력, 전기, 자기, 열, 불, 화학 현상 등 각각에 해당하는 고유한 ‘힘’들이 있으며, 그것들의 수학적 형태를 찾아내면 그러한 모든 현상들을 수학적으로 설명해낼 수 있을 것이라 피력했다.

18세기 과학에 미친 뉴튼과학의 영향
‘질문들’의 영향 : 18세기의 많은 과학자들을 ‘질문들’에서 제기한 현상들의 기본이 되는 힘과 작용들을 설정하고 수학적으로 표현하려 시도하였다.
뉴튼주의(Newtonianism)의 두가지 경향 : ① 아주 정확하고 수학적이며 기계적인 연구. 현상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려는 시도들 ② 경험적이고 상상적인 ‘힘’들을 포함하는 사색들.
과학에 대한 하나의 이미지 형성 : 서로 분리된 채 존재하던 자연세계에 대한 지식의 여러 분야들이 ‘뉴튼과학’이라는 기치 아래 단일한 방법, 단일한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과학’이라는 단일한 분야가 되었다는 생각이 자리잡게 됨.

계몽사조
뉴튼과학이 ‘가설’이나 ‘독단'(dogma) 없이 수학적, 합리적, 경험적, 실험적 방법만을 사용했다는 믿음과 그렇게 함으로써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었다는 믿음이 18세기 철학자, 사상가, 문인들에게 퍼짐. 한마디로 ‘과학적’인 방식을 이용하면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이전의 미신, 무지, 독단 등으로부터 ‘계몽’될 수 있다고 생각함. 계몽사조 : 특히 자신들이 ‘계몽’된 사람들이라고 지칭하며, 과학적 방식을 통한 ‘계몽’을 통해 사회가 진보한다는 믿음을 가짐. 현재의 권위, 비리 등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임.

과학과 계몽사조
볼테르 : 프랑스의 상류계층은 편견과 독단에 젖어 있었고, 하류계층은 무지와 미신에 싸여 있었다. 이러한 나쁜 요소들이 교회와 관습에 바탕한 것으로 생각하고, 이러한 나쁜 요소들의 정반대로서 뉴튼과학을 소개하려 한 것. 뉴튼과학에는 편견이나 독단 없이 경험과 이성에 바탕해서 세상을 보여줄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백과사전파 : 지식의 수집을 넘어, 객관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의 사고의 형태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것을 추구. [백과전서]에 담긴 여러 항목들에는 ‘뉴튼과학’의 정신을 자주 표방하였다.

과학지상주의에 대한 반작용
낭만주의 :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현상으로, 과학에 대한, 특히 수학화되고 기계론적이 된 과학이 인간의 욕구와 감정 등과는 무관해지고 자연으로부터 조화, 생명, 신비, 멋 같은 것들을 제거해 버린 데 대한 반응.
정치적 과격파(자코뱅 등)들의 반과학적 태도 : 과학이 너무 어려워지고 전문화되어서 지적 엘리트의 전유물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권력과도 결탁해서 통제와 억압의 수단으로 사둉되게 되었다는 생각에서 생겨난 태도.
역설적으로 이러한 과학지상주의에 대한 반작용은 결국, 과학의 높아진 위상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별 중요성 없이 행해지던 과학이라는 활동이 이제는 사회의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고, 근대사회의 구성원들은 어떤 방향으로든 그것에 대해 반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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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과 운동의 차이

1. 수업준비시간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과학고. 기숙사 학교다.
아침을 6시 반에 먹고 7시 20분에 0교시가 시작한다.

어느날 아침 7시 7분.
아침을 먹고 식당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교감이 지나가다 TV를 보고 있는 나를 보고 윽박을 지른다.
“수업에 안들어가고 뭐하는거야!”
“수업은 20분에 시작하는데요.”
“뭐야! 지금 너 혼자 TV 보고 있잖아. 지금은 수업준비시간이잖아. 이 놈이 올라가라면 갈 것이지 말이 많아!”

황당해서 아무말도 못한 채 식당에서 나와, 혼자 욕을 해댔다.

아침 조회시간. 얼굴이 굳은 담임이 교실에 들어왔다.
“정동욱, 너는 7시 20분까지를 무슨 시간을 생각하냐?”
“아침에 TV 본 것 때문에 그러세요?”
— 아 실수 —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거의 쉬는 시간으로 생각하는데요. 수업준비도 하구요.”
담임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진다.
“그 시간 수업준비시간 아니예요!”
“따라와!”

거의 ‘니 죄를 알렸다’ 분위기였다.
잘못 안했다고 끝까지 우기다가
열라 맞은 후에
비굴하게 “잘못했습니다” 해버렸다.

나중에 형이 이렇게 말했다.
“임마, 처음 그렇게 맞을려면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말든가. 아니면 처음부터 잘못했다고 해서 맞지 말든가. 한심하게 그게 뭐냐?”

형 말이 맞다.
지금에 와서 그 때를 돌아보면 비슷한 일들이 몇번 더 있다.

2. 모의고사 보는 날 아침

모의고사 보는 날 아침 0교시 보충수업시간.
선생님이 보충수업 대신 자율학습을 하라고 했다.
나는 평소 자율학습 시간에 하듯이 미니카세트를 틀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선생님이 내 옆에 오더니
“이게 뭐냐?”
“카세트 들으면서 공부하고 있는데요.”
“지금 보충수업시간이잖아.”
“자율학습 하라면서요.”

그때는 참 분위기 파악을 못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정말 심했던 것 같다. 아무때나 말대답해서 사소한 일 크게 만드는 데 재주가 좋았다. ㅡ.ㅡ;

마찬가지로, 잘못 안했다고 우기다 엄청 맞고서 잘못을 시인했다. 한심한 녀석같으니라고.

난 그때 왜그리 말대답을 많이 했을까.
첫째는 분위기 파악을 잘 못해서였을테고..
둘째는 자족적이었다는 데에 있는 것 같다.

불합리한 처사에 대든다는 건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시도 때도 없이 사소한 일에 분위기 파악 못한 채 말대답을 하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행동들은 전혀 불합리한 학교생활을 개선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되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불합리한 일에 대들었다’는 나 혼자만의 자족적인 행동에 불과했었던 건 아닌지..  (앞글과 비슷한 결론이군)
뭐.. 그 때 그 시절 나만 그랬겠나. 불쌍한 청소년들이여~~

일탈행동이란 ‘맘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 잠시 탈출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결국엔 제 인생에 전혀 도움이 안된채 제자리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사회변화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반면 운동이란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때나 쓸데없이 혼자서 사고를 치진 않는다. 실패하더라도 성과를 남기고 지속시켜야만 한다.
(때론 일탈행동들이 쌓이고 쌓여 문제상황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 때는 그런 생각을 하기엔 너무 어렸을게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도 내 자신이 운동을 한다고 생각했음에도 그 차이를 깨닫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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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란

1. 과거 후배들과의 전형적인 대화

“힘들어요.”
“뭐가?”
“남는게 없어요. 사람들의 호응도 없고… 성과도 안남아요.”
“너무 기대치가 높은거 아냐? 한번의 사업으로 사람이 쉽게 바뀌진 않지. 꾸준히 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닐까.”
“글쎄요.”
“목표를 좀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잡고 해봐. 그리고 좀 열심히 하고말야.”
“…”

성과가 안보인다며 떠나갔던 수많은 후배들에게 나는 너무 기대치가 높아 실망이 큰 것뿐이라며 열심히 해보라고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말이 되는 얘기였나 모르겠다. 오히려 아무런 성과도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나는 무엇을 보며 운동해왔던 걸까.

돌이켜보건대, 아무런 성과도 보이지 않는데 힘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일해왔던 내가 더 이상한 녀석이 아니었을까.
난 왜 운동을 했지? 난 운동을 해오면서 아무런 기대도 없이 했던 건 아닐까. 단지 내가 맡은 일을 열심히 수행했다는 ‘자족감’에 빠져있었던 건 아닌지…

운동이란 말 그대로 “변화”가 목적이다. 사람을 변화시키든 사회를 변화시키든 말이다. 아무런 변화의 기대도 없이 운동한다는 것은 형용모순이다. 기대했던 변화가 없을 때 실패감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함에도, 나는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해왔다. 단지 “다음에 더 잘해야지” 되새기는 게 고작이었다.

2. 선배와의 전형적인 대화

“왜 운동을 하려고 하냐?”
“글쎄요. 좋아서요.”
“뭔가 근거가 있을게 아니냐?”
“저는 그냥 좋아서 하는 거고… 사회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대학 6년 동안 저 대화는 약간의 형태를 바꾸어가며 계속되었었다.
시기마다 좀더 구체적인 내용이 담길 때도 있긴 했지만, 기본적인 대화내용은 저것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 지금 누가 나에게 “운동을 왜 하려고 하냐?”라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생각해봐도, 위의 대답을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아무리 봐도 뭐 생각이 없는 녀석이다. 계획도 없고, 지향도 뚜렷하지 못하면서 무슨 운동을 하겠다고… 운동이 뭐 그리 쉬운줄 아나? 하고 싶다면 실현하기 위한 계획이 있어야 마땅하다. 누구를 좇아가면 그냥 뭐가 될 상황도 아닌 현실에서, 이런 정신상태로는 운동을 해봐야 큰 의미를 남기는 일을 하긴 어렵지 않을까.

“그래도 어떻게 되겠지”
쉬운 대답이다. 내 낙천성은 어떤 상황에서도 힘빠지지 않고 꿋꿋이 버티게 해주는 큰 장점이다. 게다가 이러한 낙천성은 “내가 좋아서 운동을 앞으로 하겠다”는 별 근거도 계획도 없는 빈말에 나에게만은 신뢰감을 제공한다. ‘감’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

대학생활 6년간을 지배해온 ‘운동’에 대해 느끼는 단상들이다. 지난 6년간 내가 해왔다고 주장하는 ‘운동’이란 게 단지 ‘자족적인 일중독’에 불과할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그래도 ‘앞으로 운동을 계속할 것 같다’는 근거없는 믿음이 나에게 있다. 근데, 앞으로도 ‘자족적인 일중독으로서의 운동’을 하면 안될텐데 말이다. 어떻게 벗어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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