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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지적유희’로서의 글쓰기

spain_Borges.hwp 1. ‘극도의 주관점 관념론’의 상상세계 ‘틀뢴’과 점차 ‘틀뢴’에 근접하는 현실

‘틀뢴’이라는 상상세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틀뢴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틀뢴에 있는 나라들은 본질적으로 관념적이다. 2) 틀뢴에서 지식의 주체는 하나이고 영원하다. (각주1)
틀뢴을 건설한 것은 우주의 현실을 모방한 인간의 작업이었겠지만, 허구의 틀뢴이 그것의 모태인 현실을 침식해 가면서 그것이 인간 자신들의 창조물이었다는 사실조차도 현실의 인간들은 망각하게 된다. 틀뢴이 현실의 일부가 되고 언젠가 현실 전체를 압도하게 된다면 어느 것이 진정한 현실이고 어느 것이 허구인가?(각주2) 점점 복잡해지고, 진리에 대한 확신이 사라져가는 세계에 대한 보르헤스적 해석이 아니었을까.

2. 지적 유희의 글쓰기

보르헤스는 상상세계 틀뢴에 대해 몇가지만을 묘사하였다. 나머지는 다른 백과사전에 담겨있다고 하면 끝이다. 물론, 묘사된 부분만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그럴듯한 묘사였다. 그러한 세계가 솔직히 있을 법하진 않지만, 논리적으로만은 있을 법도 하겠다는 상상을 하게 하며, 보르헤스의 지적유희는 나 또한 따라해보고 싶어지게 한다. (각주3)

3. 나가며

보르헤스의 지적유희 속에는 분명 진실이 담겨있다. 현실과 허구를 딱잘라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 현실을 완벽하게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 세상에 일치하는 것은 없다는 점 모두 사실이다. 이러한 선도적인 문제의식이 이후 많은 지식인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으며, 인식과 문학의 지평을 넓혀준 것 또한 사실이다. 진리에 대한 확신’에 가득찼던 근대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현실의 수많은 오류와 모순에 대해 그는 혐오했을 것이다. 그에 대한 반편향으로 그는 ‘알 수 없다’는 회의에 빠진다. 그렇다면 그에게 삶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진리’에 대한 겸손함이 필요해진 시기, ‘진리’를 완전히 부정해버린 그에게 남은 삶의 의미는 ‘즐긴다’ 뿐이 아니었을까. □

——————

1) 저자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책은 매우 드물다. 그들에게 있어 표절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모든 작품은 단 한 작가의 작품이며, 무시간적이고 익명이라는 생각이 확립되어 있다.

2) ‘보르헤스평론’, 김춘진

3) 다음은 소설의 한구절이다.
틀뢴의 학설들 중 <유물론>만큼 스캔들을 일으킨 학설은 없다. 한 유물론자가 한 개의 컵이란 궤변을 고안해 내었다. 이 유물론자는 다음과 같은 추론을 해낸다.
틀뢴의 언어는 그러한 역설이 설정되는 것을 거부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역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상식의 대변인들은 먼저 그 일화의 진실성을 거부했다. 물질이 연속적으로 존재한다는 궤변에 대해 틀뢴의 학자들은 엄밀한 논리를 동원하여 그 ‘오류’를 지적하려 하였다. 그들은 엄밀한 사고와는 거리가 먼 두 개의 신조어 ‘다시’와 ‘그(the)’라는 부사와 관사를 사용한 데서 온 언어적 오류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들에 의하면 <치웠다>가 <앞에 놓은> 상황 자체가, 그 궤변이 증명하고자 하는 것, 즉 처음과 나중 사이에 계속 컵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설정 자체가 이미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동등한 것>과 <일치하는 것>은 서로 별개의 것이라고 논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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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소설적 형상화와 『페스트』 모델

spain_Marquez.hwp 1. 마르께스의 정치적 기사들

마르께스의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는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콜롬비아 병사들을 취재하면서 얻어진 이미지가 소설로 결정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공산주의계 자유당원이었던 그는 1954년 12월 {엘 에스펙타도르}지의 기자로 활동할 당시 [한국에서 현실로]란 글을 게제한 바 있다. 여기에는 [평화의 희생자들, 참전 용사들], [훈장을 저당잡힌 영웅], [각각의 참전 용사들, 고독의 문제] 세 편의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 한편, 또다른 칼럼 중에는 [영웅들도 먹어야 산다]라는 취재기사를 쓰기도 했다. 가난이 극에 달해 훈장까지도 저당잡혀야만 했던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다룬 이 기사들은, 정부에 압력을 가해 참전 용사들의 조합을 결성하라며 “뭉치는 것만이 힘을 줍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세 편의 기사를 통해 볼 때,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참전용사들에 관한 글은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를 비롯해 그 이후에 전개되는 마르께스의 소설세계에 등장하는 참전용사들의 고독, 그들의 가난, 정부의 헛된 공약으로 판명되는 연금문제를 출발점으로 현실화되는 정치권력의 비판으로 나아가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폭력소설들에 대한 마르께스의 비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폭력현실을 다룬 작가들을 작가도 아니라며 강도높게 비판하였다. 그는 폭력 현실에 관해 쓴 작가들의 의지를 높이 사면서도, 이들의 소설은 소설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증인적이며, 따라서 이런 소설들이 문학적으로 형편없다고 단정짓는다. 그는 문학이 정치 고발이나 사회참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폭력에 관해 쓴 작가들이 소설을 잘 써야 한다는 문제는 도외시했을 뿐만 아니라, 글쓰기의 초보적 단계도 극복하지 못했다고 신랄하게 비판을 가한다.
마르께스는 그들의 가장 큰 실수는 폭력소설의 가장 근본적인 주제를 내표하는 생존자들의 드라마에 관해 걱정을 하는 대신, 범죄 사실을 이야기하고 죽은 사람들을 열거하는 데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불쌍하게 죽은 사람들은 단지 매장되는 것일 뿐 이미 소설 주제로 사용될 수 없다. 그러므로 생존자들을 도외시한 모든 문학은 기록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3. 카뮈의 {페스트}를 모델로

마르께스는 문학적 가능성을 가장 많이 제시하면서 훌륭한 문학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모델로 제안한다. 그러면서 카뮈의 소설에서 “드라마는 공동묘지라는 위장된 문으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페스트에 의해 포위된 도시에서 도망칠 수도 없이 푹푹 찌는 침실에서 얼음장 같은 땀을 흘리는 살아 있는 사람들”로 집약되어 있다고 밝힌다. 이렇게 마르께스는 피비린내 나는 폭력 현실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존자들의 행위와 그들의 활력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에서 그는 한국전쟁에서 죽어간 병사들을 대상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콜롬비아에 돌아와 처절한 삶을 살아야 했던 참전 용사들의 현실을 카뮈의 소설과 접목시킨다. 이것은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끝없는 저항과 굳은 희망, 그리고 삶에의 집착 및 그들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지 등을 주제로 전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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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의 서사시와 현실의 서정시의 경계

spain_Neruda.hwp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어간다. 그러나 단지 리얼리즘적이기만한 시인 역시 죽어간다”

1. 마추피추의 산정

(1)

허공에서 허공으로, 텅 빈 그물처럼,
나는 오갔다, 가을의 문턱에서
동전처럼 펴진 나뭇잎들이 이리저리 쓸려다니는,
거리와 대기 사이로 그리고 봄과 이삭들 사이로,
그건 마치 떨어지는 장갑 속인 양, 가장 큰 사랑이
길쭉한 달처럼 우리에게 건네주는 것.
(후략)

(12)

나와 함께 태어나기 위해 오르자, 형제여.

네 고통이 뿌려진 그 깊은 곳에서
내게 손을 다오.
넌 바위 밑바닥으로부터 돌아오지 못하리.
땅 속의 시간으로부터 돌아오지 못하리.
딱딱하게 굳은 네 목소리는 돌아오지 못하리.
구멍 뚫린 네 두 눈은 돌아오지 못하리.
대지의 밑바닥에서 나를 바라보라,
농부여, 직공이여, 말없는 목동이여.
수호신 구아나코를 길들이던 사람이여.
가파른 발판을 오르내리던 미장이여.
안데스의 눈물을 나르던 물장수여.
손가락이 짓이겨진 보석공이여.
씨앗 속에서 떨고 있는 농부여.
너의 점토 속에 뿌려진 도자기공이여.
이 새 생명의 잔에
땅에 묻힌 그대들의 오랜 고통을 가져오라.

그대들의 피와 그대들의 주름살을 내게 보여다오.
내게 말해다오, 보석이 빛을 발하지 않았거나
땅이 제때에 돌이나 낟알을 건제주지 않아,
나 여기서 벌받아 죽었노라고.
그대들이 떨어져 죽었던 바위와
그대들을 못박아 매달았던 나무 기둥을 내게 가리켜다오.
그 오랜 부싯돌을 켜다오,
그 오랜 등불을, 그 오랜 세월 짓무른 상처에
달라붙어 있던 채찍을
그리고 핏빛으로 번뜩이는 도끼를.
나는 그대들의 죽은 입을 통해 말하러 왔다.
대지를 통해 흩뿌려진 말없는 입술들을
모두 모아다오.
그리고 밑바닥으로부터 얘기해다오, 이 긴긴 밤이 다하도록.
내가 닻을 내리고 그대들과 함께 있는 것처럼,
내게 모두 말해다오, 한땀 한땀,
한구절 한구절, 차근차근.
품고 있던 칼을 갈아,
내 가슴에, 내 손에 쥐어다오,
노란 광선의 강처럼,
땅에 묻힌 호랑이의 강처럼.
그리고 몇 시간이고 몇 날이고 몇 해고, 날 울게 내버려다오,
눈 먼 시대를, 별의 세기를.

내게 침묵을 다오, 물을 다오, 희망을 다오.

내게 투쟁을 다오, 강철을 다오, 화산을 다오.

그대들의 몸을 내 몸에 자석처럼 붙여다오.

나의 핏줄과 나의 입으로 달려오라.

나의 말과 나의 피로 말하라.

2. 파블로 네루다와 그의 시세계

파블로 네루다의 시세계는 매우 방대하다. 그의 전집에 실린 작품은 총 3,500쪽에 이르며, 또한 그가 스페인어권 리얼리즘 시를 대표하는 시인인 동시에 중남미 아방가르드의 일면을 대변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작품의 경향 또한 다양하다. 네루다는 그의 긴 창작 여정을 통해 우리에게 실로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사랑의 시인, 형이상학적 시인, 자연의 시인, 소박한 사물들의 시인, 중남미 역사를 노래하는 서사적 시인, 정치적 시인 ……. 그의 시세계란, 그의 말을 빌리면 “한 편의 긴 순환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초기,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하나의 절망의 노래}(1924)에서의 사춘기의 괴로운 열정과 우수는 {지상의 거처}(1933, 1935)에서 고뇌로 이행한다.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부차적인 차원으로 밀어내는 모더니즘의 미학, 항상적인 인간의 오류로 인한 비관주의가 이 시기의 시를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소외를 벗어나고자 고뇌하던 네루다는 스페인 내전(1936∼1939)을 거치면서, 역사를 끌어안기 위해 고독과 절망으로부터 멀어져갔다. 그의 말대로 “세계는 변했고 나의 시도 변했다”. ‘형이상학’ 대신 “거리의 피”를 노래하였고, 역사 속에서의 시의 역할에 대한 성찰을 통해 현실 지향적인 세계의 문을 열었다. 그 대표작인 …

3. [마추피추의 산정]의 구조와 그 속의 정치; 상상력의 서시사, 현실의 서정시

[마추피추의 산정]에서의 시적자아는 평면적 인물이 아니다. 실존적 고뇌로부터 개인적 진실의 발견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의 상실감으로부터 연대성을 통한 사회적 가치의 발견에 이르기까지 시적 자아의 진화과정이 제시된다. 즉, 후반부로 가며서 개인의식의 표현보다는 민중의 대변자로서의 사회적 기능이 강조됨으로써 개인적 자아가 사회적 자아로 확대되는 ‘성장소설’의 양상을 보여준다.
(1-5)에서는 자아는 과거 개인사에 대한 회고적 시각을 보여준다. 시적자아는 방향감각 없는 방황에 대해 얘기한다. 자연과 인간사회 사이의 대조적인 방식으로 비관적인 자아의 심정을 고백한다.

인간이란 무엇이었나? 상점과 기적소리 사이
그 열린 대화의 어느 곳에, 그 어느 금속성 움직임 속에
파괴될 수도, 죽어 사라질 수도 없는 삶이 살고 있었다?

세 행에서 암시된 사회적 소외와 개인적 고뇌, 인간의 운명적 고독, 홀로 있음의 의식 속에서 자아는 무너질 수 없는 하나의 벽이 된다. 여기에서 사회적 차원은 인간 조건의 본질을 이루지 못하고, 시인의 자아는 역사적인 것과의 연관 속에서 지각되지 않으며, 소외의 다양한 양상들은 죽음이라는 하나의 강박관념으로 흘러든다.
이러한 고독하고 절망적인 자아의 고뇌의 답이 마추피추의 잉카유적을 매개로 주어진다. 시4-5에서 자아는 인간 고독의 맨 밑바닥에 도달한 후에(“빵도, 돌도, 침묵도 없이, 홀로, / 내 자신의 죽음으로 죽어 나뒹굴었다”), 시 6에서 상징적인 마추피추로의 상승에 착수한다.

잃어버린 밀림의 거친 잡목덤불 사이
마추피추, 너에게로.
돌층계로 이루어진 고도,
마침내, 잠든 옷 속에 대지를 감추지 않은
것의 거처

역사적 유물의 영원성을 통해, 개인적 죽음을 극복하고, 집단적인 인간 속에서 인간의 삶을 영원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인간의 삶은 개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으며, 각각의 개인적 존재는 사회적 총체의 부분을 이룬다.
먼저, 마추피추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매우 서정적인 시구절로 노래하던(시9) 시적자아는 그 유혹에 머무르지 않고 아름다움을 건설한 노동자들의 예 고뇌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시적자아는 역사적 진실의 뿌리를 찾기 위해 잉카의 유적 속에 함축돼 있는 인간의 고통에 주목하며, 이것을 오늘과 모든 시대의 노동자들의 고통과 결합시킨다. 즉, 피착취계급의 연대에 이른다. 여기에서 원주민문화를 신성불가침한 초역사적 실체로 파악하는 낭만주의적 태도나 소재주의로 흐르는 모더니즘의 경향은 극복되며, 서정시와 서사시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마지막으로, 1인칭인 시적자아는 주관을 넘어 보다 객관적인 폭으로 확장시켜 ‘역사’를 이야기한다. 개인적 자아는 사회적 자아로 성장한 것이다.

나는 그대들의 죽은 입을 통해 말하러 왔다.
대지를 통해 흩뿌려진 말없는 입술들을
모두 모아다오.
그리고 밑바닥으로부터 얘기해다오, 이 긴긴 밤이 다하도록.

4. 나가며 ; 시 속의 정치

초석과 구리광산에서 실직된 수천의 노동자들의 수도에 도착했다. 시위와 뒤따르는 진압이 국가생활을 비극적으로 물들였다. 그 때부터 간헐적으로 내 시와 삶에 정치가 뒤섞였다. 내 시에서 거리로 향한 문을 닫는 것은 불가능했다. 젊은 시인의 가슴속에 있는 사랑, 삶, 환희 또는 비애를 향한 문을 닫는 것 또한 가능하지 않았던 것처럼. – Confieso que he vivido(1974)

시와 정치의 관계에 대해 네루다가 표현한 말이다. 1936년 이후, 시인 네루다와 투사 네루다는 분리할 수 없는 하나가 되었으며, 투쟁시의 전형이 된 그의 시는 더 이상 세계의 고통을 외면하는 도피처가 아니라 투쟁의 무기가 되었다. 레르난로욜라는 “네루다의 결정적인 칠레공산당 가입과 [마추피추의 산정]의 창작은 동일한 내적 사실의 두 표현이다. 둘을 서로 설명하고 보완한다”고 말한다.
사실상, (모든 문학에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정치성과 예술성은 동일시될 수도 없고, 적대적인 대립관계에 있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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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치안유지, 미군 떠나야 가능하다

이라크 내에 크고 작은 전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를 누구는 테러라 하고 누구는 항전이라 하고 있지만…

소식통에 의하면, 지난 5월 1일 이라크전 공식종결 이후 현재까지 미군의 사망자는 84명이라고 한다. (이라크인의 피해는 이보다 훨씬 심하리라 예상한다.) 지난 18일에는 하루에만 11명의 미군이 죽은데다, 송유관 시설에 대한 폭탄테러까지 있었다고 하니, 이라크의 앞날을 누구도 쉽게 예측하기 힘들 것 같다.

이라크가 원래 테러가 빈번하던 불안정한 곳이었나? 절대 그렇지 않다.
아니면, 이라크에서 그동안 미국에 테러를 저질러왔나? 후세인과 알카에다와의 관련성 없음은 이미 미국의 럼스펠드마저도 인정해버린 상황이다.

결국 미군과 이라크인 사이의 불상사의 원인은 명분없는 이라크전이다. 미군이 점령군으로 그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크고작은 폭탄테러의 이유란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에 이라크 치안유지를 위해 추가파병을 요청했다고 한다. 치안유지가 지금 왜 안되고 있는건데? 이유로 정말 모르는건가? 점령미군의 존재 자체가 문제 아닌가. 미군이 사라지는 것이 바로 이라크치안유지의 1차 전제조건이다.
물론 물량으로 해결하겠다면 모… 그런 방법도 없지 않겠지만, 감수해야할 인명피해가 너무 심각하지 않은가. 치안유지를 위해 불필요한 인명피해를 만들 필요는 없다. 게다가 그럴 명분이 지금 미국에게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애초에 테러근절을 명분으로 벌어진 이라크전쟁이었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 하나는
그들이 벌인 전쟁이 오히려 테러의 위협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내 테러방지 업무량은 이라크전 이전에 비해 줄기는커녕 더욱 급증해있는 상황일게다. 왜? 자기들도 찔리는게 있으니까 두렵지 않겠는가.
앞으로 9.11테러보다 무시무시한 테러가 또다시 일어날까 두렵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난 그 원인을 미국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미국은 전쟁을 위한 증거조작 등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무엇보다도 무고한 이라크 민중들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테러를 없애는 유일한 방법이다!!!

근데 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추가파병 요청 얘기나 짓껄이는 것이야!
사고는 자기들이 쳤지만, 뒷감당이 안되니 도와달라고?

더 이해가 안되는 건 이런 상황에서
떡고물이라도 받아 먹겠다며 추가파병에 헤죽대는 한국의 어떤 인간들.
한국 젊은이들의 개죽음을 ‘국익’이라고 부르는 인간들.

귀신은 뭐하는지 몰라. 저런 인간들 안잡아먹고!!

아래 진중권이 며칠전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했던 얘기를 옮겨본다.

————–

– 이라크 추가파병,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하지 말아야 한다고 보십니까.

하면 안 되죠. 절대로 안 됩니다. 그 동안 미군이 전쟁 명분으로 내걸었던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어제는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이제야 후세인과 알 카에다 사이에는 아무 연관도 없다고 자백하더군요. 외려 드러난 게 있다면 미국과 영국이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증거를 조작했다는 겁니다.

게다가 이 어처구니 없는 전쟁에서 7천명에 달하는 무고한 이라크 민간인들이 사망했습니다. 한 사람의 무덤이 1미터의 폭을 차지한다면 이렇게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무덤을 한 줄로 이어놓을 경우 7km에 달하게 됩니다. 도대체 거기에 뭐 하러 갑니까? 무덤에 참배나 하러 간다면 모를까….

한 마디로 이번 전쟁은 부당한 침략전쟁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은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파병을 하려면 먼저 헌법부터 고쳐야 합니다. 가령 ‘대한민국은 침략전쟁을 부정한다. 단, 미국이 요청할 때는 예외로 한다.’

– (위 질문과 관련해) 이라크 추가 파병이 국익에 부합한다는 주장에 대해 동의하십니까.

지난 번 파병 때도 그런 농담하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자, 이라크에 파병했지요? 국익에 몇 달러나 도움됐습니까? 그 분들이 말하던 이라크 특수는 어디에 있나요? 우리 병력 보내서 몇 달러 벌었답니까? 그때 파병해서 우리가 받은 건 딱 하나, 추가 파병 요구입니다. 이번엔 전투병력으로, 그것도 여단에서 사단 규모로 말이지요. 미련한 짓 한 겁니다.

만약에 지난봄에 파병을 거부했다면, 지금쯤 인심 쓰는 척하고 “유엔 결의가 있을 경우에 한해 공병 정도는 보내는 것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 생각 없이 호들갑 떨며 파병하자고 했던 대통령 이하 관료들, 여야 정치인들, 그리고 특히 보수언론들, 반성해야 합니다.

미국의 요구대로 1만 명을 보낼 경우 1년에 최소 1조2천억에서 최고 3조5천억까지 든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반면 우리 기업이 이라크에 진출해 3조 5천억을 벌려면 도대체 자동차를 몇 대를 팔아야 하고, 건물을 몇 채를 지어야 합니까? 더군다나 정작 이라크 재건을 위한 건설 프로젝트에는 같이 참전했던 영국 기업까지도 따돌리고 혼자 독식한 게 미국입니다. 거기서 우리가 받아먹을 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게다가 우리 군대가 파견될 경우 가장 위험한 지역인 북부 니네베와 모술에 투입되어, 가장 위험한 작전을 수행하는 강습사단을 대신할 거라 하더군요. 즉 재산상의 손실 뿐 아니라 자칫하면 커다란 인명 손실까지 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이걸 ‘국익’이라고 강변하는 분들에 계신다면, 아마 그 분들은 우리와 국적이 다를 겁니다. 미국 국적을 갖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걸 국익이라고 부르나요?

– (위 질문과 관련해) 미국측의 파병요청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한미동맹관계에 있어, 북핵 문제 해결 등에 있어 어떤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보십니까.

미국측의 파병요청을 거부할 경우 한미동맹에서 신기원을 이룩하는 거죠. 그 동안 말이 ‘동맹’이지 우리가 일방적으로 당해왔습니다. 한국 경제력과 함께 이제 국제적 위상도 높아졌으니, 이런 일방적인 관계에도 이제 약간의 변화를 줄 때가 됐습니다.

아울러 북핵문제와는 이번 사안은 아무 관계도 없지요. 우리가 이라크에 파병을 하든 안 하든, 미국이 핵 개발하는 나라에 대한 정책이나 전략의 기조를 바꿀 수는 없는 겁니다. 그건 미국이라는 나라의 안보와 직결된 문제인데, 그 큰 문제가 기껏 1개 사단 병력 파병 여부에 영향을 받으면, 얼마나 받겠습니까? 또 우리가 실제로 파병을 해도 미국은 북에 대해 전쟁도 불사한다는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지 않았던가요?

물론 외교관계가 일시적으로 냉냉하고 껄끄러워지긴 하겠지요. 외무부에 계신 분들은 좀 곤혹스럽기도 할 것이구요. 하지만 그 분들에게 국민들이 세금으로 봉급 드릴 때에는 바로 그런 일을 ‘외교적’으로 해결하라고 드리는 겁니다. 미국의 요구라면 다 받아들일 것이라면, 외무부에 굳이 미국 담당 부서를 두어서 세금 낭비할 필요 없지요. 게다가 부시 정권은 영원한 게 아니죠. 그 터프 가이, 재선 가도에 빨간 불 커졌고, 이 친구랑 전쟁 일으켰던 강경파들은 꼬리 내린 상태입니다.

– 파병 여부를 언제쯤 결정해야 한다고 보시고, 어떤 식으로 (예를 들어 국민투표 등) 결정이 되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결정 안 하는 게 최고로 좋지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문제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가능한 한 시간을 질질 끄는 게 최선입니다. 또 이때 국민들은 가능한 한 요란하게 파병반대 목소리를 내서, 우리 정부에게 변명할 거리를 마련해줘야 하구요. 그래야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내놓을 카드가 생기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파병반대 성명을 낸 360개 시민단체의 행동이야말로 인류의 양심에도 부합하고, 우리 국익에도 부합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기어이 파병문제를 결정해야 한다면, 이건 어디까지나 헌법 관련 사안이므로 민주노동당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최소한 ‘국민투표’는 거쳐야 합니다.

– UN 결의안으로 다국적군 파병이 결정될 경우,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유엔에서 그런 결의가 내려진다면, 그 결의는 파병의 정당성을 증명해 주는 게 아니라 유엔의 무능을 증명해줄 뿐입니다. 언제 미국이 유엔의 말을 들었습니까? 전쟁할 때는 유엔을 무시하더니, 뒤치닥거리 할 때 유엔을 내세우는 건 또 뭡니까? 한 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지요. 파병을 주장하는 분들도 ‘유엔의 결의’ 여부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더군요.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합니다. 명분 없는 전쟁에 참전할 때 쓰는 편법인데, 6.25때 중공군처럼 우리도 자발적인 의용군을 조직해 보내는 겁니다. 마침 지난 번 파병 때에 ‘우리를 파병해 달라’고 했던 우익단체가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또 8.15 광복절 날 엉뚱하게도 시청 앞에서 성조기를 흔들어대던 분들, 바로 그런 분들을 묶어서 파병하는 겁니다. 예비군복이 다들 갖고 계실 테고, 중고 M16 구입할 경제력은 갖고들 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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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륙과 케케묵은 텍스트들: 지적 패러다임의 변화, 그 험난한 삽질의 과정을 아는가

texts.hwp 내부를 볼 수 없는 블랙박스에 무언가를 넣고 손만을 이용해 그 안에 있는 물체를 맞추는 게임을 한다고 하자.
게임의 참가자들은 손에서 느껴지는 온갖 감각을 활용하여 물체를 맞추려 할 것이다. 생김새, 촉감, 크기 등을 종합한 후에 “이것은 무엇이다”라고 맞추면 된다. 그러나, 과연 게임 참가자들은 게임이 진행되는 순간 경험한 자신의 감각만으로 물체를 맞출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물체를 맞추기 위해서는 한가지가 더 필요하다. 학습을 통한 기존의 지식 없이는 블랙박스 안의 물체를 맞출 수 없다. ‘이러이러하면 이것이고, 저러저러하면 저것이다’라는 기존의 지식과 현재의 경험이 결합될 때만 블랙박스의 물체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레몬을 모르는 어린아이가 블랙박스에 들어있는 레몬을 맞출 수는 없다. 아마도 그 어린아이는 “못생긴 귤”이라고 답하지 않을까. 무언가 불만족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 “저렇게 못생긴 귤도 있나보다”라고 자기가 알고 있던 귤에 대한 지식에 조금의 변형을 줄지도 모른다. 물론 어른이 “저건 레몬이란다”라고 설명해주면 아이는 쉽게 “네 알겠습니다” 하고 넘어갈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해줄 수 있는 어른이 없거나, 또는 어른이 말해주는 것이 자꾸만 자신의 감각경험과 배치된다면?

신대륙을 발견하고, 기존의 지식과 어긋나는 사실들을 발견하고, 기존의 지식에서 설명해주지 않은 각종 새로운 것들과 현상들을 마주하게 된 유럽인들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려 노력했을까.
가장 일차적인 노력은 기존의 텍스트들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그들이 참조할 수 있는 모든 텍스트들을 동원하여 퍼즐맞추기를 하거나 덧붙이기를 한다. 그렇게 기존의 텍스트들은 덕지덕지 짜맞추어진 누더기가 되어가지만, 그들은 쉽사리 그들의 고전을 포기하지 못한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보다 플라톤을 보고 데모크리토스를 보고 이리저리 텍스트들을 조합한다. 그리고 도저히 설명이 안되면 “그 문구는 상징일 뿐이었어”라고 후퇴한다.
성서의 가계보를 투철하게 믿어왔던 유럽인들은 신대륙의 인디언들을 어떻게든 그 안에서 설명하려 해보지만, 도저히 안되겠다 싶은 시점에서 성서의 이야기를 ‘실재’에서 ‘상징’으로 퇴각시킨다. (성서는 점점 상징의 문제, 해석의 문제로 후퇴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크리스천으로 살고 있다. 지금의 크리스천은 500년전의 크리스천과 어떤 면에서는 전혀 다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똑같다. 핵심적 문제의식만 살아남아 전수되고 있다고 해야할까. 핵심적 문제의식을 무엇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 종파가 나뉘어지고 서로 싸우기도 하지만.)

정리하자면, 우리가 교과서에서 지면부족을 이유로 몇가지로 요약정리하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지적 패러다임의) 전환은 그야말로 삽질의 연속이었다. 신대륙 발견 200년이 지나서야, 베이컨은 우리가 고대사람들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다고 인정했다. 그걸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은 너무나 험난했다.

베이컨은 후퇴에 후퇴며 본래의 의미를 상실해버린 케케묵은 텍스트들을 조롱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계 여러 지역에 관해서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은 단지 자그마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 물론 신대륙의 여러 지역에 관해서는 심지어 소문이나 믿을 많나 근거를 통해서라도 알 턱이 없었다… 지금 보면 교외의 소풍 정도로나 간주될 데모크리토스, 플라톤, 피타고라스의 나들이가 그 당시에는 무슨 대단한 것인 양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리고서 또 베이컨은  “작업과 그 작업으로 드러난 결과는 그 자체로서 철학적 진리를 지탱해주고 보증해 준다”고 말한다.

무지와 편견으로 가득찬 케케묵은 텍스트들을 벗어버리고 실제 경험을 관찰하고 추론해야만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베이컨은 옳다. 하지만, 경험만이 진리를 제공한다는 베이컨조차도 자신의 생각들을 케케묵은 텍스트들 중 몇으로부터 참조해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참조 없이는 베이컨은 죽을 때까지 그러한 혁명적인 입장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베이컨이 강조했던 ‘추론’이란 과거의 지식과 자기경험의 연관방식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베이컨은 틀렸다.

블랙박스 실험을 좀더 확대하여, 시간을 두고 많은 관찰과 맛도 볼 수 있게 해보자. 보다 많은 어린아이에게 실험해보자. 언제가 피실험자 중 블랙박스에 있는 레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는 아이가 생겨날 수 있다. 아마 그 아이는 이렇게 이야기 하겠지. “못생긴 귤같지만 귤과는 다르다. 맛도 다르고 껍질 두께도 다르며, 색깔도 좀 다르다. 다른 종이며 ***라고 이름 붙이면 될 것이다.”라고… 레몬을 귤이 아닌 무엇이라고 설명하는 그 아이는 그것을 자신이 알고 있는 ‘귤’과의 비교 속에서, 그리고 지금까지의 해석틀인 맛, 두께, 색깔들로 그것을 설명하려 할 것이다. 결국 그 새로운 해석 또한 과거의 지식과 어떻게든 연관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레몬을 이용한 블랙박스 사고실험은 솔직히 너무 단순해서, 패러다임의 전환 즉 새로운 지식체계의 수용을 설명하기엔 부족한 면이 많다. 아마 거대한 지식 체계에 대한 설명을 위해선 좀더 복잡한 지식형태와 좀더 복잡한 인간구성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지식 수용과정에 대한 한 단면 정도는 보여주는 듯. -_-;

과거의 사유방식 ―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방식이라 하더라도 ― 과 문제의식들은 현재 우리가 사고하는 데 어쩔 수 없이 차용될 수밖에 없는 굴레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수용하며 변해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랍고도 재밌는 일이 아닐까. 갑자기 생물진화 가설의 ‘돌연변이’가 떠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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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적 패러다임 전화기의 그 삽질의 과정을 지루하다 싶을 만큼 매우 길게 서술해놓았다. 그러나 저자가 책의 두께를 줄이고 짧은 말로 “지적 패러다임의 과정은 200여년이나 걸렸고, 매우 힘든 과정이었다”고 정리했다면 우리는 그 말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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