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내일 과학철학 통론 시험이라 학교에서 밤샐 듯.

족보에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나름대로 답변을 정리하고 있다.
모.. 족보라고 하는게.. 특별히 선생님의 출제유형을 반영하는 의미로서의 족보의 가치를 가지진 않는다. 왜냐하면 한 학기 공부한 부분에서 중요한 주제를 뽑으라면 당연히 뽑힐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렇게 질문의 형태로 문제가 나와있으니까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도 알겠고, 그렇게 한번 쭈욱 답변을 달다 보니까 한학기 동안의 강의를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언젠가 강의 끝나기 전에 정리를 해야지 했지만, 닥치질 않으니.. -_-;;; 닥치기 전까진 선뜻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 모두들 이해할 거라 생각한다. -_-  어쨌든 시험 때문이든 뭐 때문이든 이번 기회에 잘 정리해서 남겨야지..

시험 지나고 까먹지 말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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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통론2] 한 학기 총정리: 환원, 실재론, 확률이론

ps_2.hwp 「환원」

1. Nagel의 이론간 환원개념과 이에 대한 Feyerabend의 비판을 상술하고 편들어 논하거나 제 3의 견해를 제시하라.

Nagel에게 있어, 이론간 환원이란 이론간의 설명관계이다. 이는 ‘한 이론 T1이 다른 이론 T2를 설명할 때, T1이 T2를 환원한다’고 정식화할 수 있다. 여기서 도입되는 ‘설명’은 Hempel 식의 연역적 도출관계를 의미하며, T1이 T2를 연역적으로 도출해야 환원이 성립한다. 이러한 환원이 성립한다면, 과학이론은 후속이론에 의해 선행이론들이 포괄되는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진보하는 동시에 더욱더 체계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환원 관계가 성립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연결가능성(connectability)과 도출가능성(derivability)의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연결가능성의 조건이란 각기 다른 이론에 포함되어 있는 용어간에 의미가 불변하는 대응이 성립해야 함을 의미하고, 도출가능성의 조건이란 환원하는 이론이 환원되는 이론을 연역적으로 도출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Feyerabend는 Nagel의 환원개념의 두가지 조건 모두에 비판을 가한다.
첫째, 도출가능성의 조건은 부적절하다. Nagel이 homogeneous 형태의 환원으로 들었던 ‘갈릴레오의 이론과 케플러의 이론이 뉴튼의 이론으로 환원된다’는 사례를 살펴보자. 뉴튼의 이론은 갈릴레이의 낙하이론을 연역적으로 도출하지 않는다. 단지 근사적으로 ― 지표면에 근처에서 ― 만 비슷한 결론을 낼 뿐이다. 낙하의 가속도가 높이에 따라 변한다는 주장과 가속도가 일정하다는 주장은 완전히 다른 결론이다. 보통 후속이론이 등장하는 이유는 선행이론이 실패했기 때문이며, 후속이론은 선행이론의 잘못된 귀결까지 포괄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전면적인 포괄을 통한 환원은 방법론적으로 부적절하다.
둘째, 의미 불변 조건 또한 부적절하다. 도출가능성이 성립하려면 의미가 불변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만, Nagel이 환원으로 들었던 사례에서도 의미는 변한다. Nagel이 heterogeneous 형태의 환원으로 들었던 ‘열역학 이론이 기체운동 역학으로 환원된다’는 사례를 살펴보자. 여기서 ‘열역학적 온도’의 개념은 열역학 제2법칙을 함축하지만, ‘분자들의 평균운동에너지로 이해된 온도’는 열역학 제2법칙을 함축하지 않는다. 이론의 용어들은 자신이 기반한 이론의 내용을 함축하게 마련이기 때문에, 다른 이론에 기반한 용어들은 서로 의미가 다르다.
이러한 비판을 통해, Feyerabend는 ‘양립불가능한 이론간에 환원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낸다.

보통 환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과학의 ‘진보’ 또는 ‘통합’의 실마리가 환원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환원개념 없이는 과학의 진보를 설명할 수 없는가? 대체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과학의 ‘진보’는 설명될 수 있다. 후속이론이 왜 선행이론보다 나은가? 그것은 후속이론이 선행이론을 포괄하기 때문이 아니라, 선행이론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나왔기 때문이다. 해당시기 드러난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는 이론은 수용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문제점만 해결하면 수용되는가? 그렇지는 않다. 선행이론이 그동안 나름대로 잘 수행해왔던 역할을 후속이론도 해내야 한다. 오히려 환원은 이것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Nickles가 제안한 비주류적 환원 개념이 이를 뜻한다고 할 수 있는데, 후속이론이 선행이론이 나름대로 잘 수행해왔던 역할 또한 잘 수행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즉 후속이론을 정당화할 때 환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STR을 처음 접한 학생이 보통 무엇부터 해보는가? STR 공식에서 (v/c→0)의 극한값을 구하고서 그 값이 CM의 결과와 같음을 확인하고는 ‘신기하게도 들어맞는군’ 하며 안심을 한다. 그 식에 표현된 용어들의 의미가 같은지 다른지는 그의 안심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경우 학생은 STR을 CM으로 환원해 STR을 정당화해본 것이라고 말해야 적절하다.
완벽하진 않은 입장이지만, 과학의 진보의 거시적인 과정은 ‘대체’를 선행이론의 문제점 해결을 통해 이루어지며, 환원은 새 이론의 수용과정에서 그것의 정당화를 위해서 비주류적인 형태로 이루어질 뿐이라고 생각한다.

2. 과학혁명기의 경쟁이론들간에 공약불가능성이 성립한다는 쿤의 주장을 설명하고, 이러한 주장과의 연관 속에서 이론간 환원가능성에 대해 논하라.

공약불가능성이란, 각 이론이 기반해있는 패러다임이 다르면 둘 사이에 공통적으로 쓰이는 용어의 의미도 다르다는 개념이다. 이 개념을 곧이곧대로 밀고 나가면, 상이한 패러다임에 기반한 이론들 사이에는 소통 및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 이론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하진 못할지라도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으며 또한 이론간 비교작업도 수행한다. 이러한 직관으로 ‘공약불가능성’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쿤은 자신의 입장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며, ‘국소적 공약불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그의 ‘국소적 공약불가능성’에 의하면 의미가 불변하는 것이 있게 되고, 이론간 비교 및 소통도 일정정도 가능하게 된다.
‘국소적 공약불가능성’을 받아들이게 되면, 환원은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이에 대해서는 환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될 것이다.
Nagel 식으로 환원을 이론간의 연역적 도출관계로 좁게 정의한다면, 환원은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론간 연역적 도출관계는 ‘모든’ 용어의 의미불변을 전제하는데, 쿤의 경우 분명 의미가 변하는 용어들이 있다고 이야기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원의 조건을 완화시켜 환원을 좀더 넓게 정의한다면 환원은 가능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Kemmy & Oppenheim의 ‘동일한 관찰대상을 설명하는 두 이론 사이의 간접적 관계’로서의 환원은 인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쿤이 수용하고 있는 관찰의 이론적재성이라는 성질 때문에 ‘동일한 관찰대상’이라는 조건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서로 다른 두 이론의 관찰은 자신의 이론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엄밀하게 보면 ‘동일한 관찰대상’은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Kuhn에게 K&O의 환원개념은 받아들일 수도 못받아들일 수도 있는 가변적인 것이다.
Khun이 환원에 대해 가변적일 수 있다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Khun 등의 비판을 수용한 완화된 환원개념이 점점 처음의 날카롭게 정의되었던 의미가 퇴색되고 별 쓸모없는 개념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우려는 실제로도 나타나고있는데, Schaffner의 GR 모형을 보더라도 자신은 당시의 비판을 다 수용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에도 GR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었고, 결국 최종적으로 내놓은 GRR 모형은 누더기에 가까워 보인다.
Khun의 진정한 입장은 환원개념의 수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1번 참조.

3. 환원에 대한 Schaffner의 일반적 모형과 그것이 등장하게 된 배경 및 그 한계를 논한 후,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하는 대안을 제시하고 그를 옹호하라.

Schaffner의 일반적 환원모형은, Nagel의 ‘연역적 도출관계’로서의 환원모형에 대해 Feyerabend와 Khun 등의 비판을 받아들이면서도 환원의 개념을 살리기 위한 일환으로 등장했다. 이론간의 용어의 동일성이 보장되지 않고, 이론간의 연역적 도출이 보장되지 않더라도, 후속이론이 선행이론과 어떠한 관계가 있으면, 그 관계를 환원이라 정의하려는 작업이다.
이 작업의 핵심 문제의식은 Nagel의 환원개념인 ‘T1이 T2를 설명한다’의 의미를 ‘T1이 T2가 왜 성공적이었는지 또는 실패했는지를 설명한다’로 이해함으로써 연역적 도출 관계의 오류를 피해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Nagel식 환원의 조건인 연결가능성의 조건과 도출가능성의 조건을 완화하는 작업을 한다. 여기서 그는 T2*의 개념을 도입한다. T2는 T2*와 유사관계(strong analogy & positive analogy)로서 비형식적으로(nonformal) 대응되고 T1은 T2 대신 T2*를 연역적으로 도출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T2*가 T2보다 더 정확하며, T1이 T2(의 성공 또는 실패)를 설명하면 T1은 T2를 환원한다. 이것이 바로 일반적 환원 모형이다.
이러한 환원 모형은 T2와 T2* 사이의 analogy의 관계에 대한 애매한 기준에 가장 큰 결함이 있다. 무엇을 strong analogy 또는 positive analogy로 볼 것인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 David Hull은 T2*와 T1 사이에도 연역적 도출관계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한편, Nickles에 의하면 그의 환원모형은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비주류적 환원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
무엇을 대안으로 제시할 것인가? 1번 참조.

「실재론」

1. 과학적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에서 귀추적 추론의 역할에 대한 찬반 양론을 소개하고 편들어 논하라.
(과학의 성공을 설명한다는 과학적 실재론자들의 주장과 그 논거를 가능한 자세히 상술한 후, 이를 비판/옹호하라.)

‘과학이론에 대한 실재론적 입장을 취하지 않고서는 과학의 기대이상의 성공을 설명할 수 없으며, 우주적인 우연의 일치를 믿어야 한다’는 Smart의 언급은 과학적 실재론자들의 직관을 잘 보여준다. 이론의 용어들과 그것들의 관계가 실재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과학이 그리 잘 들어맞겠는가. 과학의 성공을 단지 우연의 일치라고만 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실재론자들은 실재론의 핵심주장을 ①이론 용어의 지시적 성공(SR1)과 ②이론의 근사적 참(SR2) 등으로 정리한 후, “(위의 핵심주장을 함축하는) 과학적 실재론이 과학의 성공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최초의 비판은 ‘SR1로 과학의 성공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부터 시작하였다. Lauden은 실재론자들의 위 주장을 Hempel 식으로 해석했고, SR1이 성립하지만, 과학의 성공이 성립하지 않는 사례들을 보였다. 그는 실재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도입되었던 ‘관용적 지시론’의 허점 ― ‘지시’와 ‘기술’이 분리될 수 있기 때문에, ‘지시’에 성공적이더라도 ‘기술’면에서, 즉 예측, 설명에서 실패하기 쉬운 ― 을 이용하여, 많은 사례들을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Lauden 식의 비판은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실재론자들은 ‘SR2가 SR1과 함께 만족되면 과학의 성공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주장은 Hempel식 해석으로는 도저히 반례를 찾기 어렵다.
이에 대한 비판은 실재론자들의 주장을 ‘SR1과 SR2에 대한 성립 없이 과학의 성공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해석할 때 가능한데, 한때는 성공적이었지만 SR1 또는 SR2가 성립되지 않는 과학이론이 있음을 보이면 된다. 플로지스톤 이론이나 에테르 이론은 한때 성공적이었지만 지금은 지시하는 대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러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이러한 비판은 실재론자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되고, 실재론자들은 ‘최근의 이론에 대해서만’ 실재론을 주장하는 것으로 후퇴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또한 ‘지금 성공적인 이론도 미래에 지시하는 대상이 없는 것으로 밝혀질 수 있다’는 비관적 귀납에 의해 정당성을 보장받기 어렵다. 이러한 비관적 귀납을 통한 비판은 실재론자들에겐 매우 강력한 비판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van Fraassen은 완전히 새로운 형식으로 비판을 가하는데, 과학적 실재론 없이도 과학의 성공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성공적인 이론만 살아남았기 때문에 현재의 이론이 성공적인 것이다’라는 명제를 통해 대안적인 설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러한 대안적인 설명의 존재가 실재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2. van Fraassen의 관찰가능/불가능 구분과 이를 토대로 한 반실재론의 옹호논변을 설명하고, 그에 대한 실재론자의 대응방안 한가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편들어 논하라.

van Fraassen이 보기에, 실재론자들은 관찰영역에 대한 검증을 통해, 관찰영역을 넘어서는 영역에 대한 이론적 진술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관찰영역을 넘어서는 영역에 대한 이론적 진술에 대해 진리판별이 가능하다고 하는 실재론자들의 입장은 인식론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론의 미결정성, 즉 경험적으로 동등한 관찰귀결들에 대해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여러 이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관찰행위는 연속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관찰 가능/불가능의 구분은 인위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van Fraassen은 이에 대해 존재론적 구분은 인위적이지만 인식론적 구분은 필요하다며 반박하는데, 여기서 그는 관찰 가능/불가능 구분을 다음과 같이 정식화한다. 대상이 자기 앞에 놓일 때 도구를 이용하지 않고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은 관찰가능한 대상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 관찰불가능한 대상이다. 인간의 감각기관 이외의 도구를 이용한 관찰은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경험주의 전통의 그가 가진 직관인 듯하다.
이에 대해 실재론자는 관찰가능/불가능 구분의 인위성을 파고들어가거나, 이론미결정성의 문제를 파고들 수 있다.
전자의 경우 관찰가능/불가능의 구분기준에 대한 논란을 둘러싸고 세세한 논쟁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며, 엄밀하게 따지면 인간의 감각을 통한 관찰조차도 신뢰할 수 없다. 오히려 인간의 관찰행위 자체만으로는 인식론적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하며 실재성 판단도 할 수 없다. 따라서, 관찰 가능/불가능 구분에 대한 논쟁은 실재론/반실재론 어디에도 더 많은 근거를 제공해준다고 할 수 없다.
결국, 반실재론 비판의 핵심은 이론미결정성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이론미결정성이란 ‘경험적으로 동등하면서도 서로 상충하는’ 이론들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여기서 ‘동등성’의 개념을 ‘국지적 동등성’과 ‘전면적 동등성’으로 나누어 살펴보아야 한다.
‘국지적 동등성’은 쉽게 인정할 수 있다. 당대의 경험적 증거상 우열이 가려지지 않는 이론들이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16세기 지동설, 천동설 논쟁 등은 그 시대에 있어서 경험적으로 동등한 이론들간의 대립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어느 시점 이후 판가름이 난 것이며, 그것은 한 시점의 국지적 동등성이 이후 시점에서 파괴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일단 이는 실재론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은 ‘전면적 동등성’이다. 이에 의하면 어떠한 (관찰)진술의 집합도 서로 다른 (논리적으로 상충하는) (이론적) 진술들로부터 귀결될 수 있다. 하지만, 첫째로 과학의 이론은 의미론적 해석을 포함하는 것으로 어떠한 형식의 이론에 대해 임의의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둘째로 경험적으로 동등한 여러 이론들이 ‘동일한 이론의 다른 표현’이 아닌 진정 ‘다른 이론’인지를 판별하기 어렵다. 아직은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려우므로 유보해두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기치 못한’ 증거에 의한 ‘동등성’ 파괴 문제이다. 과학자들은 어떠한 경험진술이 특정 이론의 경험적 귀결인지 판정하기 위해 이러저러한 보조가설을 교체해가며 이용한다. 그런데, 보조가설의 교체는 이론의 경험적 귀결 집합을 변경시키며, 이론에 ‘예기치 못한’ 증거를 안겨준다. 즉, 이러한 사실은 일시적으로 동등했던 두 이론에 대해 언젠가는 반드시 그것들을 결정적으로 구분시켜줄 새로운 증거가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논리적 귀결에 있어서는 동등하지만 증거상으로는 동등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의 논의에서 한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첫째, 관찰행위 외에 실재성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 둘째, 국지적 동등성/이론미결정성 문제만으로도 그것에 비관적 귀납을 적용하면 현재 이론들의 실재성이 정당화되기 어려울 텐데, 이는 극복 가능한가? 셋째, 전면적 동등성 또한 그것의 파괴를 쉽사리 장담할 수는 없는데, 이는 극복 가능한가?

3. Hacking의 존재자 실재론과 그 논거를 가능한 자세히 설명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라.

Hacking은 위의 세가지 질문에 일정한 답변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Hacking의 존재자 실재론은 인과적 지시론의 통찰을 물려받았다. 인과적 지시론에 의하면 이론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 이론들이 공통된 객관 세계에 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의미론적 근거가 있다. 지시 reference의 부분에서 그러하며, 관련 믿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시를 고정적으로 유지되도록 하는 것은 용어와 지시 대상 간의 인과적 연관이라고 설명된다. 예를 들어 전자에 대하여 톰슨, 로렌츠, 보어, 밀리컨 등이 모두 다른 이론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대상에 대해 말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언급이 궁극적으로 공통적인 대상과의 인과적 관계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Hacking은 위와 같이 ‘이론 초월적 기준’을 제시하는 인과적 지시론의 통찰을 발전시킨다. Hacking과 Cartwright에 따르면 인과적 설명에서 해당 존재자를 보다 확신할 수 있는데, 그것은 원인으로서의 존재자(와 그것의 인과작용)가 ‘산출’의 메커니즘을 갖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Hacking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전자의 실재성에 대해 완전히 확신하는 것은 자연의 다른 가설적 부분에 개입하기 위하여 전자의 잘 알려진 인과적 성질들을 사용하는 새로운 장치를 반복저긍로 만들어 낼 때, 그리고 대부분 성공적으로 만들어 낼 때이다.’ 즉, Hacking의 결론은 이론적 존재자의 존재론적 신분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 대한 실험적 조작가능성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전적으로 이론 독립적인 실험적 기준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Hacking이 자세히 PEGGY II 실험과정을 서술함으로써 논란의 여지를 없애려 했다. 즉, PEGGY II 실험에서 전제된 지식은 실험적 존재자 및 실험장치와 관련된 하위의 인과 원리와 잘 입증된 현상법칙 등 그 참임이 실증적, 실천적으로 명백한 것들뿐이라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도구로 사용된 전자의 실재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Hacking의 입장은 지금까지의 실재성 기준과 다른 기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생소할 수 있지만, 상당히 직관적으로 그럴듯한 입장이다. 또한 실재성 논의에 중요한 통찰을 던진다고 보인다. 실재성 또는 진리의 판별은 ‘의식에 반영된 세계에 대한 지식’과 ‘의식 외부의 실제 세계’와의 비교를 뜻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교에 초월적인 기준은 가능하지 않다. 둘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실천적으로 세계에 개입해야만 한다.

4. van Fraassen의 구성적 경험론과 Giere의 구성적 실재론의 주요유사점과 차이점을 논하고 두 입장을 비판하라.

「확률」

1. 확률해석에서 무차별의 원리가 사용되는 방식들을 구체적인 예를 통해 설명하고 그 문제점들을 논하라.

무차별의 원리란 각 경우에 대해 ‘어떤 것을 선호할 이유가 없거나(인식론적으로), 두 경우 중 하나를 더 야기할 원인이 존재하지 않을 때(존재론적으로)’ 그 경우들을 동일한 가능성의 경우들로 취급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주사위의 각 면들에 대해 무차별의 원리를 도입하면, 각 면의 확률은 동일하게 1/6의 값을 가진다. 다음의 예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신이 존재하느냐 마느냐에 대해 무차별의 원리를 도입한다면, 각 경우는 동일하게 1/2의 확률값을 가지는 것으로 취급할 수 있다.
이러한 무차별의 원리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발생한다.
첫째, 각 경우의 가능성이 같다는 근거가 없는 경우에 확률값을 정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편향된 주사위의 경우, 우리는 무차별의 원리를 도입할 수 없으며, 각 면에 대한 확률값을 정할 수 없다. 이러한 생각을 엄밀하게 따지면 실재하는 모든 주사위에 대해서도 같은 주장을 할 수 있고, 결국 주사위의 각 면에 대한 확률값은 관념적으로 정의된 완벽한 정육면체의 주사위에 대해서만 정해질 수 있다.
둘째, 하나의 상황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무차별의 원리를 도입하면 확률값이 달라진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해보자. 1mile을 1분-2분에 달린 자동차가 있다. 그 자동차의 평균시속이 40mile/h – 60mile/h일 경우와 그 자동차가 1분-3/2분에 달렸을 경우는 논리적으로 동치이다. 그러나, 첫번째 경우에서 속력에 대해 무차별의 원리를 도입하여 확률을 구하면 2/3가 되고, 두번째 경우에서 시간에 대해 무차별의 원리를 도입하여 확률을 구하면 1/2이 된다. 결국, 같은 경우에 대해 다른 확률값이 도출되므로 모순이다.
셋째, 하나의 상황을 설명하는 용어가 다르면 확률값이 달라진다. 이론의 입증의 정도를 다루기 위해 카르납이 고안한 regular c-함수의 경우 각 ‘기술’에 대해 무차별의 원리를 도입하는데, 이 경우 확률은 ‘기술’의 수에 의존한다. 결국, 다른 언어를 가진 집단은 하나의 상황에 대해 다른 확률값을 도출하게 된다.
위의 문제점들은 ‘무차별의 원리의 선험성’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각 경우의 가능성이 동일한지 알 수 없음에도 선험적으로 같다’고 규정하는 무차별의 원리의 선험성이 그 근본적인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범위 외?」

1. 논리경험주의자들의 이론관을 배경으로 하여 관찰적/이론적 용어의 구분 및 그 의의를 논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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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에서 …

과외 갔다 오는 전철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을 봤다.
그는 프로페셔널하게 구걸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지도 멀쩡했고.. 말도 잘했고.. 나름대로 젊은 사람이었다.

그의 스토리는 이랬다.
아내와 2살 먹은 딸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서 직장을 다니다 짤렸고, 노점상 하다가 그것도 망했고.. 지금은 수입이 없어 방세 4달치 밀린 데다가 뭔가 사먹을 돈도 없는 상황이랬다.

그런 스토리를 말하며,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했다.
“오늘 2만원만 벌어 가려 합니다. 선생님들 제발 도와주십시오.”

구체적인 그의 사정과 돈의 목적과 목표액까지 말해주니까, 진짜 내 마음이 동했다. 그의 가족이 처한 곤경이 눈에 보이는 듯도 했고.. 한 달 전쯤, TV에서 보여주었던 빈곤가정의 처지가 떠오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봐도 예전보다 지금이 더 살기 어려워진 게 분명해 보인다.
예전에 이런 식으로 구걸하는 사지멀쩡한 사람은 못봤던 것 같은데…
이정도의 경제력 가진 나라 중에 이렇게까지 복지가 엉망인 나라가 있을까?
짜증.. 짜증.. 짜증..

에고.. 근데 내가 지금 남 걱정할 때인가…
그 사람을 보니 덜컥 나에 대한 걱정도 든다.
물론 ‘설마설마’ 하고 있긴 하지만.. 그 사람도 자기가 그렇게 될 줄 알아겠나…

내 지갑에 돈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주었을텐데.. 정말 땡전한푼 없었다. -_-

정말 위험해보이지 않은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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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동연짱 우산씌워주다

비가 내리는 금요일 낮이었다.

공깡에서 밥을 먹고 오면서 돈을 뽑으러 학관 농협인출기 앞에 줄을 서려다, 농협 왼편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옛 동연짱을 발견했다. (여기서 옛동연짱이란 얼굴 까맣고 긴.. 그러니까 너무 열심히 활동을 해서 어디서나 나타난다던 동연짱으로, 99들이 그를 일컬어 1호, 2호, 3호 분신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했던 동연짱 말이다. -_-)

그는 인출기 줄에 사람이 붙을 때마다 안절부절했다. 줄을 서야 하나 줄을 서면 비를 맞아야 하기 때문에 못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점심시간이라 줄은 줄어들지 않을 듯 했고, 이러다간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인출기에 접근할 수 없을 듯 했다.

결국, 내가 말을 걸었다. 돈을 뽑으려는 거면, 우산을 씌워주겠다고.. 그렇게 우린 우산을 같이 썼고, 그도 무사히 돈을 뽑았다. 안면이 있을 법도 한데, 그는 나를 못 알아보는 듯 했다. 뭐 어떠냐.. 유명해지려고 운동한 게 아니니.. -_-;

어쨌든.. 그 사람은 요즘도 많이 고생하는 듯했다. 전날 저녁부터 내린 비임에도 우산이 없는 걸 보니 말이다. 아직도 학교에서 사는 모양이다. 나랑 동갑 또는 같은 97학번인 걸로 알고 있는데.. 아직도 학생운동 한다고 있는 걸 보면 안타깝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음냐.. 어쨌든 나름대로 이쁘게 봐주고 싶다.

밥은 먹고 다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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