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귀가

일요일 아침 9시에 집에서 나와 지금에서야 집에 들어왔다.

그저께 일요일
오전 10시 ; 과외
오후 1시 반 ; 과외
오후 5시 반 ; 저녁식사
오후 6시 반 ; 노래패 연습
오후 10시 ; 연습끝나고 밤새러 24동 연구실로

어제 월요일
밤새 자료실 쇼파에 누워 자다가 발제문 완성 못함
오후 1시 ; 과학철학 수업시간.. 발제 시작
오후 3시 ; 두번째 논문은 발제를 준비 못했다고 말함
오후 3시 1분 ; 잠시 동안의 정적이 흐른 후, 교수님이 “이런 일은 학부 때나… 대학원에서는…” 하셨다.
오후 4시 ; 논리철학 수업
오후 5시 반 ; 저녁 식사
오후 6시 반 ; 과학사 논문 리~딩
오후 7시 반 ; 과학사 논문 리~딩
오후 8시 반 ; 과학사 논문 리~딩
.
.
.
밤새 리~딩 및 요약문 작성(2시간 정도 수면)

오늘 화요일
오전 10시 ; 과학사 논문 리~딩 및 요약문 작성
오전 11시 ; 못다 읽은 논문에 대해서는 3차자료 참조하여 요약문 작성
(3차자료란 다른 수업참가자의 요약문.. 이러고 싶진 않았지만.. 밤새 논문 2개 반 읽고.. 나머지 2개는 결국 못읽었다. 이놈의 영어!!)
오후 1시 ; 요약문 완성
오후 2시 ; 과학사 수업
오후 5시 ; 저녁 식사
오후 7시 ; 과외
오후 11시 ; 귀가

방금 샤워하고 나오니 기분 좋다..
그러고보니 3일동안 매일 저녁 한끼밖에 안먹었네.. 하하..

나 이제 띵까띵까 대학원생 하지 말까보다..
실은 발제 못해가서 분위기 싸늘해지니까 나도 기분 상당히 나빠져버려서 말이지..
내가 지금 대학원 와서 모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_-

예전엔 노력도 안하고서도 열매는 따고 싶은만큼은 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런 자세로 계속 살다보니.. 딸 수 있는 열매가 점점 줄어들고..
저 높이 있는 열매는 딸 수가 없게 되어 버린 듯하다…
그러다 보니.. 삶의 자세가 ‘그놈의 열매 안따고 말지’로 변모해가기도 하지만..
글쎄.. 그래도 그러고 살기엔 내안에 뭔가 꿈틀대는 게 아직 있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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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통론2] 뉴턴주의의 사회적 의미: 3주차 요약문 – 클라크 vs 라이프니츠 논쟁을 중심으로

hs_3.hwp <과학사통론 II 3주차 요약문>
뉴턴주의의 사회적 의미 : Newton(Clarke)-Leibnitz Dispute

날짜 : 2004. 9. 14 | 이름 : 정동욱  | 담당교수 : 홍성욱

Leibnitz-Clarke 논쟁 (생략. Koyre 글에 자세히 담았음)
Alexander Koyre, “Leibnitz and Newton”

1차 제기
① 영국에서의 신앙심 쇠퇴는 뉴턴 탓인가?
② 공간은 신의 (지각을 위한) 기관인가?
③ 지속적으로 태엽을 감아주는 신은 과연 완전한가? 지적능력이 부족하지 않은가?

1차 답변
① 신앙심 쇠퇴는 사실이나, 그것은 유물론 탓임. 뉴턴의 수학적 원리는 유물론을 배격하는 이론임. (무한한 진공의 공간에 비해 작은 양의 물질을 전제하기 때문)
② 공간은 신의 기관이 아니며 신은 그러한 기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신은 어디에나 직접적으로 존재함으로써 지각할 수 있다. 공간은 어디에나 있는 신의 sensorium과 같다.
③ 신은 무질서로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영원히 작동하는 시계를 보존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신은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2차 제기
① ‘수학적’ 원리 자체가 유물론과 동일하며, 그 내용은 데모크리토스, 에피쿠로스, 홉스의 주장과 같다. 한편, 중요한 문제는 수학이 아니라 형이상학이며, 형이상학은 ‘충족적 근거의 원리’에 기초해야만 한다. (뉴턴의 수학적 원리의 내용이 그 원리에 위배된다는 함축)
첫째, 스피노자의 세계관과 유사하다.
둘째, 뉴턴의 신은 예지력이 없는 Socinians의 신과 매우 유사하다.
셋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도 진공을 인정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그들이 생각하는 물질의 양이 뉴턴보다 많다는 점뿐이다. 그러나 더 많은 물질은 신의 지혜와 힘을 행사할 더 많은 기회를 의미한다. 이는 진공이 불가능하다는 근거이다.
② Sensorium은 감각기관이다.
③ 신의 지속적인 (보존) 활동은 필요하다. 다만 세계는 더이상 고칠 필요가 없도록 창조되었을 뿐이다. 반면, 신이 세계를 계속 고쳐야 한다면, 그는 초자연적인 방법, 즉 기적을 통해서(그러나 기적을 통한 자연현상의 설명은 불합리하다) 또는 자연적인 방법을 통해 할 수 있다. 이 경우 신은 자연에 속한 존재인 anima mundi가 된다.

2차 답변
① 수학적 원리는 절대 유물론과 동일하지 않으며 전혀 반대이다.
첫째, 수학적 원리는 세계에 대한 순수 자연적인 설명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둘째, 충족근거의 원리는 맞다. 그러나, 충족근거가 단지 신의 의지일 수도 있다. (초기 위치 부여의 경우 신은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음)
② 신은 intelligentia mundana도 intlligentia supra-mindana도 anima mindana도 아니다. 신은 세계의 안에도 밖에도 모든 것 안에도 모든 것 위에도 존재하는 intelligence다. 신은 기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 Sensory라는 단어는 (감각)기관이 아닌 감각의 장소를 지칭한다. 또한 뉴턴은 장소가 sensoruum이라고 하지 않았다. 비교를 위해서만 썼을 뿐이다. 신은 모든 것을 그것에 존재함으로써 그것자체로써 지각한다.
③ 신의 개입은 신의 ‘영원한 계획’에 있는 것이다. 한편, 신의 활동은 자연스러운 것, 기적적인 것으로 구분될 수 없다. 기적을 통한 개입은 신의 지배를 배제하는 것을 뜻한다. 한편, 신의 개입 없이는 우주의 motive force는 감소하여 결국 사라질 것이다.

3차 제기
① 클락은 공간에 대해 실재하는 절대적 존재라고 했다. 이는 문제 소지가 많다.
첫째, 그러한 존재는 영원하고 무한해야 한다. 따라서 그것은 신 자체 또는 신의 속성 중 하나로 여겨진다.
둘째, 공간은 부분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그것은 신에 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셋째, 공간이 절대적으로 동질적이라 하면, 모든 점은 다른 점과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어떠한 물체를 특정한 곳에 위치시켰는지 근거가 있을 수 없다. 이로써 선택이 필요없는 공간과 시간의 상대성을 주장. 공간은 물체의 공존의 질서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시간은 계승의 질서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 근거가 없으면 선택을 할 수 없고, 선택을 할 수 없으면 하지 않는다. 동기 없는 선택은 진정한 자유와 반대되는 모호한 무차별이다.
② 지속적인 수리는 그의 기계의 비완벽성 뜻한다. 신은 그러한 불편을 피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취할 것이고, 그렇게 했다. ※ 이 또한 자기충족 요건 가정에 기반하고 있음.

3차 답변
① 공간은 존재가 아닌 무한하고 영원한 존재자의 존재의 속성이자 귀결이다.
첫째, 공간은 분할 불가능하다. 무한한 공간은 하나이다.
둘째, 공간과 시간의 상대성 논변은 모순을 야기한다.
※ 신은 선택의 자유가 있고, 선택의 근거나 동기가 꼭 필요하지는 않다.
② 어디에나 있는 존재자로서의 신은 모든것에 본질적으로 그리고 substantially 존재한다. 그의 (거기에서의) 존재는 거기서의 작용을 뜻한다. 그가 없으면 작용도 없다.
※ 거기에 없으면 아무것도 활동할 수 없다. 신 또한. 원거리 작용은 없다. 신 또한. 그러나 신은 어디에나 “거기에” 존재함으로써 그는 어디서나 작용할 수 있다.

4차 제기
① 선택 없이 작용이 없고, 결정동기 없이는 선택이 없고, 충돌하는 가능성 사이에 차이가 없으면 동기가 없다. 따라서 완전히 동일한 두개의 상황은 실재할 수도 가능할 수도 없다. 따라서 진공은 불가능하며, 공간은 물체의 기능일 뿐이다. 또한 물질(substance) 없이는 속성이 없다. 공간은 무엇의 속성인가? 공간이 절대적 실재라면, 신은 그것을 파괴할 수도 변경할 수도 없다. (인력의 문제 등에 대한 빈약한 반박들 계속됨. 뉴턴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반함)
※ 이런 식의 제기는 동일한 물체가 불가능하다는 라이프니츠의 말이 맞다면 창조도 불가능(입자론의 입장에서). 따라서 더이상 분할할 수 없는 입자 부정함.

4차 답변
① 공간은 어떠한 substance의 속성이 맞다. 그 substance가 바로 신이다. 한편, 진공에는 물질 외에 가능한 많은 다른 substance가 있을 수 있다. 이로써 공간은 부분으로 분할될 수 없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하나이기 때문이다.
② 진정한 운동은 절대운동이다. 절대공간과 절대시간 실재한다. (절대공간의 개념은 물질의 무한성을 피하기 위함이자 창조의 개념을 구제하기 위함이다)

5차 논쟁 (생략. 앞의 논쟁과 많은 부분 중복)

논쟁의 종결과 그 이후
라이프니츠의 죽음으로 논쟁은 끝이 났다. 이후 뉴턴과학과 뉴턴철학은 더욱더 많은 근거를 얻게 되었고, 점차 데카르트주의자들의 저항을 극복해갔으며, 18세기 말 뉴턴의 승리는 완결되었다. 뉴턴은 승리했지만, 뉴턴의 수학적 원리는 점차 이신론 또는 입자론(유물론)의 입장과 동화되어 자연화되었고, 형이상학적 근거들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된다.
인력의 문제 : 신의 작용이 아닌 자연의 작용으로 변모함. 인력의 원인은 단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됨.
공간의 문제 : 뉴턴이 말했던 속성은 그대로 남았지만, 거기서 신의 존재는 사라짐.
감소의 문제 : 뉴턴과학의 발전에 따라, 라이프니츠의 입장이 받아들여짐. moving force는 사라지지 않으며, 세계는 태엽을 감아줄 필요도 수리해줄 필요도 없어졌다.
신성의 문제는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100년이 지난 뒤, 라플라스는 나폴레옹의 ‘세계에서의 신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저의 세계에는 신이라는 가정이 필요치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Steven Shapin, “Of Gods and Kings: Natural Philosophy and Politics in the Leibnitz-Clarke Disputes”

미적분 발견에 대한 우선권 논쟁에서 시작된 라이프니츠와 클라크의 논쟁은 자연철학, 형이상학, 종교의 영역에까지 확장된다. 그들 논쟁의 주요한 쟁점은 세 가지 ― 신이 자연세계의 질서에 개입하는 방법, 진공의 가능성, 공간과 물질의 속성 ― 로 볼 수 있고, 그중 신학적 공리에 대한 견해차 ― 뉴턴의 신은 자율적 의지(will)가 강조된 신인 반면 라이프니츠의 신은 완벽한 지혜(wisdom)가 강조된 신이다 ― 가 근본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도의 분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들 사이의 형이상학, 신학, 자연철학 논쟁의 중요성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위해서는 당시 사회정치적 맥락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다. 다시 말해, 1680년에서 1720년 사이의 영국의 특수한 사회정치적 대립구도 하에서 특정 정치그룹들이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과정에 라이프니츠와 클라크의 논쟁이 존재했고, 그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만 그 논쟁의 진정한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1680년에서 1720년 사이의 영국의 정치적 쟁점과 대립구도
왕권계승의 정당성과 그것의 정치적 책임을 둘러싸고, 토리당, 휘그당 및 기타 급진파들의 대립이 형성되었다.
토리당 : 개인의 자유의지 부정, 완벽한 절대군주제 지지
(궁정)휘그당 : 개인의 자유 인정, 제한적인 군주제 지지 → 뉴턴의 견해와 유사성 존재
급진파 : 홉스주의자, 스피노자주의자, 공화주의자, 지방휘그 등 → 라이프니츠의 견해와 유사성 존재

결론
명예혁명 이후 주도권을 잡된 휘그주의적 저교회 분파는 급진적인 지방휘그나 자유사상가들이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왔다. 그 시기 휘그주의적 저교회 분파의 입장에 서있었던 클라크의 라이프니츠와의 논쟁은 급진적 자유사상가들에 대한 클라크의 정치적, 이론적 투쟁이기도 했다. 여기서 라이프니츠의 철학에 대한 정치적 이용은 라이프니츠의 의도와는 상관이 없다. 라이프니츠의 철학이 지방휘그의 정치적 입장의 관점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다는 증거 또한 없다. 그러나 특정 철학적 견해들은 영국 내 대립하는 각 사회그룹에 의해 사용되었고, 그들의 정치적 견해를 정당화하는 데에 일상적으로 이용되었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그 시기의 라이프니츠와 클라크의 논쟁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했다. 또 한편, 당시 철학의 사회적 이용은 그 자체로 평가적이진 않았을지라도 자연철학자의 판단에서 핵심을 차지했다.

Margaret C. Jacob, The Newtonians and the English Revolution,
ch. 5 “The Boyle Lectures and the Social Meaning of Newtonianism”

보일강좌의 배경 – 뉴턴주의를 옹호한 성직자들의 공통된 관념
① 신의 의지에 조화롭게 작용하는 우주는 사회적․정치적 안정과 유사하다는 관념 공유
② 한편으로는 무신론, 이신론, 반종교론 등의 위협에 대항해야 한하는 관념 공유
③ 명예혁명 이후 사회적 상황에 맞는 새로운 사회철학 필요성 공유

보일강좌에 참여한 성직자들이 사용한 뉴턴주의의 구체적 내용
① 우주의 질서는 신의 의지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안정적으로 그 위계질서가 유지된다
② 뉴턴의 물리 이론과 운동법칙은 자연에 대한 신의 섭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Clarke)
③ 운동법칙에 의해 통제되는 자연세계 속에서 정치적 세계의 모델을 발견할 수 있다
④ 자연의 질서가 신의 의지에 의하여 통합적이고 조화로운 것과 같이, 사회의 질서도 조화롭게 유지되어야 한다
⑤ 인간은 (신의 의지에 의하여) 사소하고 하찮은 물질을 지배한다
⑥ 신에 대한 인간의 복종, 물질에 대한 인간의 우위와 같이, 상층에 대한 복종과 위계질서가 잡힌 사회형태를 조화로운 사회이다

보일강좌의 사회적 역할
① 교회의 도덕적 권위 회복과 정치적 영향력 유지
② 뉴턴의 자연철학을 (온건)휘그주의 이데올로기와 통합하여 정치적 사회적 안정 도모

Toulmin, Cosmopolos (Chapter 3, The Modern World View)

1. “국민국가의 유럽”이라는 새로운 체제의 형성
1600년까지만 해도 봉건적 질서에 의해 유지되었던 유럽의 주요국가는, 종교전쟁이라는 엄청난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1650년 경 국민국가의 체제를 정립하게 된다. 그 시기 국민국가가 역점을 두었던 과업은 첫째 안정, 둘째 종교적 통일과 관용이었다. 이때부터 영국과 프랑스는 ‘국민적’ 발전의 전형을 보여준다. 영국은 잠시 동안의 공화정을 거쳐 입헌군주제의 길을 걸었고, 프랑스는 절대왕정의 길을 걸었다.
새로운 정치체제의 정립에 조응하여 새로운 종류의 사회적 관계 ― 계급사회 ― 도 형성되기 시작했다. 수직적으로 구획된 중세(당신의 주인은 누구인가? 당신은 누구의 사람인가?)와 달리 ‘주인없는 사람들’의 수평적인 사회계급 형성은 사회적 안정과 충성에 대한 위협으로 뚜렷하게 부상하게 되었다. 한편, 국민다운 국민에 대한 관념 형성되기 시작하며, 왕권은 상송적 봉건 영지의 법적 계승권이 아닌 국민이나 민족의 상징이라는 관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한편, 새롭게 형성된 국민국가 내에서 개인들 및 공동체들 사이의 관계를 지배할 ‘새로운 원리’의 정립이 필요했다.

2. 1660-1720: 보편교회 Ecumenism을 구상한 라이프니츠
17세기 사회 재건 사업의 두가지 과제는 첫째, 서로 다른 신학적 입장과 종교로 인해 반목해온 국민들 사이에서 대화의 통로를 회복하는 문제, 둘째, 봉건적 관계로부터 벗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안정적이고 통합적인 사회관계를 재정립하는 문제였다.  
이러한 과제에 대해, 데카르트가 이성적 방법이 종교적 대립을 피해 확실성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라 희망했던 것과 유사하게, 라이프니츠는 보편언어 이론이 정치적 신학적 마찰을 일고에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했으며, 이를 위해 수학적 상징체계를 도입하려 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그는 모든 경쟁적인 교리가 공유하고 있는 ‘충족이유의 원리’에 의존하여 유럽의 신앙체계를 통합하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3. 1660-1720 : 뉴턴과 새로운 코스모폴리스
여러 국가, 다양한 종파에 소속된 ‘석학들’에게 확신을 심어줄만한 지식체계 정립하여 공통의 세계관을 유지하는 일에 있어서, 실질적으로는 라이프니츠보다는 뉴턴이 더 큰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데카르트, 뉴턴, 라이프니츠는 일련의 공통된 관념을 공유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상당히 이분법적인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으며 근대적 믿음들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그 대략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자연에 해당하는 관념으로는 ① 자연은 창조시부터 작동된 불변 법칙들에 의해 지배된다 ② 자연의 근본 구조는 불과 몇천년 전에 정립되었다 ③ 물리적 자연의 대상들은 비활동적은 물질로 구성된다 ④ 창조 시에 하느님은 자연물들을 안정된 위계로 묶었는데, 이 위계서열 내에서 ‘보다 높은 것들’의 체계는 ‘보다 낮은 것들’의 체계와 결합한다 ⑤ 사회에서의 ‘행동’이 그러하듯이 자연에서의 ‘운동’은 아랫쪽으로, 말하자면 ‘보다 높은’ 피조물로부터 ‘보다 낮은’ 피조물들에게로 진행한다. 한편 인간에 해당하는 관념으로는 ① 인간에게 ‘인간다운’ 면이 있다면 그것은 이성적 사고나 행동의 능력이다 ② 합리성과 인과성은 서로 다른 규칙에 따른다 ③ 사고와 행동은 인과적으로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인과적 심리과학에 의해서는 설명될 수 없다 ④ 인간은 자연의 물리체계처럼 안정적인 체계를 사회 안에도 정립할 수 있다 ⑤ 따라서 인간은 두가지 생명이 혼합된 생을 영위하는 바, 일부는 이성적이며 일부는 인과적이다. 이성적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삶은 지적 혹은 영적이지만, 감정적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삶은 육체적 혹은 육욕적이다 ⑥ 감정은 이성의 작용을 방해하며 왜곡하는 특성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이성이 신뢰받고 고양되어야 마땅하다면, 감정은 불신되고 제한되어야 마땅하다.
이러한 믿음들은 ‘타당성’을 충실하게 검증받은 적이 없었다. 이들은 ‘공리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지적 비계들(intellectual scaffoldings)’이라고 보아야 한다. 즉, 과학자들이 근대 물리학을 구성한 ‘골격’이었다. 사실상 근대의 비계는 일련의 잠정적이자 사변적인 절반진리들로 구성된 것이었으며, 이성주의 철학자들의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근대의 비계는 논리적 증명뿐만 아니라 사실적 근거마저도 결여한 것이었다.

4. 1720-1780 : 근대성의 외전들
1700년대 이래로 새로운(뉴턴식) 자연관의 폭발적 수용은 ‘원전 외부’의 다른 요인들에 의존한다. 실제로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이해한 사람은 드물었다. 여기서 ‘폭발적 수용’이라고 하는 것은 다소 과장이긴 하다. 새로운(뉴턴식) 자연관(세계상)은 17세기 말 급성장한 진보성향의 소수 엘리트층에게만 유포되고 지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유포된 관념은 바로 「(국제관계에 있어서의) 안정과 (사회 계급들 간의) 위계의 원리를 하나님의 계획의 모든 구석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러한 자연관은 인간관이자, 과학적 장치일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인 장치였으며, 이를 빌어 주권 국민국가의 정치질서를 정당화할 수 있었다.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이 1700년 경에 대중적 지지를 획득한 – 또한 그 덕택에 ‘실질적으로 정립되는’ –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 과학적 세계관은 행성운동이나 조류의 간만을 훌륭하게 설명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국가의 정치체계의 정당성을 부여했던 것이다.

5. 이성주의로부터의 이단계 후퇴
근대의 과학과 철학은 탈역사적인 추상화 작업이 아닌, 역사적 상황의 산물이다. 1600년대의 혼란스러웠던 종교적 정치적 분쟁은 베이컨식 경험주의의 자신감을 쇠퇴시키고 ‘수학적 확실성’에 대한 모색에 무게를 더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뉴턴이 제시한 완전한 (수학적) 자연질서는 안정과 위계를 갈구하는 그 시대의 엘리트들에게 사회 질서를 정당화해주는 ‘코스모폴리스’를 제공해줌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다.
즉, 과학의 성공은 이 설명의 능력뿐만 아니라 정치적 고려에도 의존했다. 지난 세기의 과학적 활동은 오늘날과 전혀 다르게 수행되었다. 예컨대 뉴턴 시기의 과학적 관념은 16세기 인문주의자(베이컨)들의 권고를 무시한 채, 실천적 결실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유리된 채 성장했다. 과학자들은 베이컨의 정신을 거부하였으며, 기술의 편에서가 아니라 신학의 편에서 과학을 추구했다. 일반독자들 또한 새로운 과학이념의 코스모폴리스적 함축이 주목거리였다. 즉, 정치적 의무며 사회구조 등과 관련된 코스모폴리스적 주제들이 독자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다. 이제 과학사 연구에 꼭 추가해야 할 질문이 있다. 첫째, 특정한 시대의 과학자들, 그리고 과학의 독자들에게는 과연 무엇이 ‘현안’이었던가? 둘째, 무엇이 새로운 과학이념을 ‘상식’으로 통용될 만큼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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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우..

띵까띵까 대학원생도 발제 앞엔 어쩔 수 없다..
오늘 과외 2개 하고 7시부터 10시까지 공연 연습하고선…
낼 발제 땜에 24동 연구실(?)에 올라왔다..
도대체 무슨깡으로 아직까지 하나도 안봤을까..
한숨만 나오누나..

내일 발제는 1학기 때 읽은 것도 있고 아는 내용이라 어떻게든 해갈 것 같지만..
더 걱정인 건 모레 수업 과학사 통론이다.
악명높은 홍성욱 교수가 학생 모두에게 커리에 대한 요약문을 제출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발제자 외의 수업 참가자들도 모두 발제문 비스무리한 걸 써서 내야한다는 뜻..
분량도 원서 200페이지가량 되는데.. 도대체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정말 난감하다.
조금 읽은 부분은 재밌긴 한데.. 어쨌든 영어라 힘들어 죽겠다 -_-

라이프니츠와 클락(뉴튼의 제자)의 논쟁..
라이프니츠가 뉴튼의 신은 ‘매일 태옆을 감아주는 신’이라고 비난하고..
클락은 ‘그러면 너네 신은 아무것도 안하는 명목상의 신’이라고 비난하고.. -_-;;

어쨌든 잼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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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누리] 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 위장폐지 기도 by 김정진

10일자 한겨레신문에 열린 우리당의 아래와 같은 국가보안법 폐지안이 공개되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열린 우리당은 국가보안법을 위장폐지하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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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내란목적단체조직죄 신설(안 제87조의 2)
–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지휘통솔체계를 갖춘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내란죄에 의하여 처단(수괴는 사형, 무기, 중요임무종사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이상의 징역. 단순참가자는 5년 이하의 징역)
– 이에 대한 예비, 음모, 선전선동을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함.

O 내란목적단체 선전선동죄 신설(안90조 제3항)
–  국헌을 문란하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내란목적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선전, 선동한 자를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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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열린 우리당의 형법개정안은 두가지 중대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국가보안법 제7조의 사실상의 존치이다.

  국가보안법의 대표적 악법조항이 제7조이고, 사건 수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열린우리당안은 사실 상 제7조를 존치시키는 안이다.

  즉,  내란목적단체는 이적단체(국가보안법 제7조 제3항)와 요건이 동일하고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한다는 의미가 현행 국가보안법 제7조의 “국가변란 선전ㆍ선동”을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한다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체제비판적인 단체에 대해서도 그 단체가 구체적인 폭력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처벌할 수 있어 현재 국가보안법 상 이적단체 적용과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또한,  내란목적단체나 그 구성원의 활동을 선전, 선동한다는 조항도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 고무, 선전, 선동한다는 현행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과 다르지 않다.  즉, 찬양,고무가 삭제되기는 하였지만, 예를 들어 일정한 주장을 수차례 반복한 경우에는 선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체제비판적인 단체의 활동에 대해서 몇 차례 찬성발언을 하여도 이는 선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제7조 제1항도 존치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둘째, 형량이 오히려 강화되었다.

  국가보안법 상 이적단체 구성, 가입은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나 내란목적단체 조직은 사형, 무기, 5년 이상의 징역까지 가능하고,  국가보안법 상 찬양, 고무, 선전, 선동죄는 7년 이항의 징역에 처하나 내란목적단체를 선전선동한 경우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다.

이처럼 열린 우리당은 사실 상 국가보안법을 위장폐지하려고 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대국민 사기극을 즉각 중단하고, 국가보안법을 조건없이 폐지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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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친일문제와 근대화론에 접근하기: 원재형 홈피에서 퍼옴 by 칸막이

[딴지일보] 친일 문제와 근대화론에 접근하기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필자도 어렸을 적 오락실을 다녔다. 당시 오락실엔 <겔러그>나 <보글보글> 같은 후대에까지 회자되는 명게임들이 있었지만, 필자가 심취했던 것은 <서유기>라는 게임이었다. 손오공과 저팔계가 악당들을 물리치며 서천으로 가는 게임. 그 중 처음 만나는 보스는 무슨 해적 두목같이 생긴 놈들이었는데, 필자는 이들을 물리치는 게 상당히 힘들었다.



어느 날인가 필자의 플레이를 보며 뒤에 서있던 껄렁껄렁한 동네 엉아 한 명이 스르륵 필자를 밀쳐내더니, ‘내가 깨줄게’ 하면서 플레이를 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보스를 깨긴 했지만 그 인간은 손오공이 죽어 넘어갈 때까지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필자는 오매불망 보고 싶어하던 뒷 스테이지를 볼 수 있었건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이 시키가 내 돈 내고 내가 오락하는데, 왜 뺏는거야! 그러나 쌈을 못했던 필자는 그저 맘속으로만 억울하고 서러울 뿐이었다.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게 있다. 역사 발전의 본질이 경제적 측면에 있다고 보았을 때 일제 강점기는 나름대로 ‘진보’적 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말은 바른 말이다.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 강점기 사람들의 삶의 질을 따져본다면 오히려 후자가 나았다고 할 수 있다. 근대적 교육을 위한 학교 세워줬지, 교통과 산업 발전을 위한 철도 만들어 줬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공장 세워줬지, 건강 생각해서 근대식 병원 세워줬지…



아닌 말로 일제 강점기가 혼란으로 점철된 대한제국보다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미개한 중세 봉건적 상태에 놓여있던 ‘조센진’들은 선진국 일본의 지도에 의해 비로소 근대화되었다. 처음에는 일본의 선의를 곡해하고 독립 만세 운동이니 무장 투쟁이니 하며 반발을 하기도 했지만 종국에는 수그러들었다.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고 하는 자들의 상당수도 구질구질한 3류 독립국보다는 세계에서도 인정해주는 대일본 제국 신민으로의 삶이 가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적극 협조해 주었다.



간간이 일본을 반대하는 반인륜적 테러 행위들이 있기는 했지만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전반적으로 성공적이었다. 일제 시기 말기에 이르러서는 대다수 조선인들도 일본의 반도 지배를 인정하고 납득했다. 일본의 대한제국 접수과정이 폭력적이었다는 흠집 따위는 그런 것으로 무마되고 남음이 있다. 일본은 조선인들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것은 ‘합의된’ 식민지 지배였다.



만약 위와 같이 주장하는 인간이 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려는가?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은 일본에 의해 근대화되었다. 그런데 이처럼 구구절절 맞는 주장에 대해서 우리는 어째서 짜증과 분노를 느끼는 것일까? 그리고 일본 정치인 입에서 나오는 위와 같은 류의 주장을 단호히 망언이라 규정하는 것일까?



아무리 때깔 좋은 근대화라고 해도 내 자유의지의 존엄함보다 우선일 수는 없다. 확실히 대한제국은 무능한 정부였다.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못해보고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길 정도니 이처럼 무능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무능한 정부라 해도 가능성은 가지고 있다. 그래, 이 모지리같던 애들이 어느 순간 정신 바짝 차리고 어느 순간 일본 뺨 칠 정도로 능력을 발휘해 효율적인 근대화의 길을 걸었을 수도 있다. 갑오농민 전쟁 때처럼 개화된 시민의식을 가진 민중들의 힘으로 정부를 개혁해 냈을 수도 있다. 임요환이가 누구나 졌다고 생각했던 도진광과의 경기에서 기적같은 역전을 했던 것처럼, 창의력 제로의 모지리라고 무시 받던 땡삼이가 깡통과 우유팩에 쉬야를 받아내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처럼! 그리고 필자가 아무리 게임에 재능이 없어도 <서유기>의 해적 두목 스테이지를 스스로의 힘으로 클리어 했을 수도 있는 것처럼! 이것이 바로 역사의 가능성이다.



그런데 일본은 ‘니들은 절대 못해. 니들끼리는 희망이 없어’ 하면서 그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박탈해 버린 것이다. 우리가 열 받아야 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지들이 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지고지순한 가능성을 박탈해 놓고 자기 덕분에 잘 살게 되었느니 어떻느니 하면서 나불대냐 말이다.




 



같은 관점을 다른 경우에 대입해 보자. 박정희가 한 짓이 일본 애들이 한 짓이랑 쌍둥이처럼 똑같다. 누가 일본군 장교 출신 아니랄까봐 논리 구조가 딱 그 짝이다. ‘장면 정부는 무능해서 안 되. 내가 근대화 해주께’ 그러더니 합법적인 정부를 총칼로 찍어누르고 지가 정부를 꾸린다.



박정희 시대, 확실히 성공적인 근대화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정희를 긍정하게 된다면 일제시기를 긍정 못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박정희가 한 일을 장면이 못할 이유가 있나? 대한제국이 성공적인 근대화에 성공했을지 여부를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장면 정부가 성공적인 산업 근대화에 성공했을지 여부 역시 아무도 모른다. 그 길을 걸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가능성을 원천 박탈한 건 바로 박정희다. 우리가 박정희에 분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하나의 가능성을 짓밟아 버렸다. 합법적인 정부 하에서의 민주적 절차에 따른 산업 근대화. 그 가능성을 우리는 영원히 상실해야만 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박정희가 근대화에 성공했으니까 긍정적으로 봐줘야 한다는 조갑제 식의 논리는 무책임하다. 모든 사안이 결과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면, 지금 당장 쿠데타가 일어난다고 해도 논리상 막을 수가 없다. 그 쿠데타가 경제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나쁜 결과를 가져올 지는 10년, 20년 후에야 판가름 날 테니까. 결과론에 입각해 판단을 내리자는 이야기는 지금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아무 것도 하지말고 가만히 있자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박정희가 근대화를 시켜줬기 때문에 훌륭한 인물이라고 하는 이들은 자신의 주장이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망언과 똑같은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정통성 있는 정부와 인간의 자유 의지보다 외형적 근대화와 먹고사는 문제를 우위에 놓는다는 점에서 박정희의 지배와 일제 식민지 지배는 정확히 일치하고 있으니까.



요즘 친일청산법 문제 때문에 국회가 시끌시끌한 모양이다. 박정희가 친일 부역자 조사 범주에 들어가는 바람에 그분 따님께서도 심기가 불편하신 모양이고. 돌아가는 모양새로 보건대 논리나 합리성과는 담을 쌓은 그들도 일제 강점기의 근대화론과 박정희 시대의 근대화론 사이의 끈끈한 유사성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고 보인다. 식민지 시대의 근대화 주체와 박정희 시대의 근대화 주체가 상당부분 겹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겠다. 문제는 일제시기 친일파에 대해서는 격렬한 증오감을 표출면서도 박정희에 대해서는 막연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당수의 국민이다.



오랜 기간 정책적으로 장려된 국가주도의 민족주의 교육으로 인해 마땅히 같은 선상에 놓여 비판받아야 할 소위 ‘근대화 주체 세력’은 각기 다른 평가를 받게 되었다. 한쪽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고 악당들에게 봉사한 후안무치한 인간 말종들로, 한쪽은 자기 무덤에 침이 뱉어질 것을 각오하고 다수를 위해 악역을 감수했던 의지의 인물들로.



그러나 두 집단이 본질적으로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이상 평가에 있어서도 일관성이 적용될 필요가 있다. 역사를 반성의 도구로 삼는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마음 내키는 시점에 멋대로 선을 긋고 그 이전과 이후의 사안에 대해 각기 다른 기준으로 평가를 하려 든다면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를 향한 방향타로서의 역사 활용은 물 건너가는 것이다.



우리의 지난 흔적을 합리적이고도 일관적인 기준을 통해 냉엄하게 직시하고 평가하자. 그리한다면 친일 부역자 재조사 문제는 단순한 한풀이나 마녀 사냥, 정치적 공세 수단으로의 활용을 넘어서 내면화된 진정한 근대화를 향해 나아가는 디딤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초딩 때의 오락실 사건이 못내 억울한
칸막이(khanmagi@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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