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STS라는 학문 분야

(경향신문 11월 26일자)

STS는 우리에게 조금은 낯선 학문 분야다.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를 줄인 말인데, 번역을 하자면 과학기술학 혹은 과학학이 된다. 필자는 예전에 한 신문 컬럼에서 내 전공을 소개하면서 “과학학 전공”이라고 쓴 적이 있었는데, 신문이 나온 뒤에 보니 이 말이 “과학 전공”으로 바뀌어 있었다. 과학학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던 기자나 데스크가 이를 과학으로 바꾼 듯싶었는데, 실소를 금할 수 없었던 해프닝이었다.

STS는 보통 과학기술사, 과학기술철학, 과학기술사회학, 과학기술정책학, 과학기술문화학과 같은 분야를 통합해서 지칭한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이 중요해지면서 과학기술의 역사와 철학은 물론, 과학기술과 사회와의 관련을 주로 다루는 분야이다. 보통 STS는 자연과학이나 공학을 공부한 학생이 대학원 과정에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훈련을 받으면서 전공하게 되는데, 소수지만 역사학이나 철학, 사회학을 공부하다가 과학과 관련된 주제에 흥미를 느끼고 STS로 전공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STS에서 다루는 연구 주제는 전통과학사부터 핵폐기물처리장을 둘러싼 갈등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양하다. 그렇지만 STS의 연구들은 모두 과학기술의 본질과 속성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을 지양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STS는 제대로 된 과학기술정책을 위한 ‘기초’의 역할을 한다.

또 STS가 제공하는 교육은 과학기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사회와 역사속의 과학기술의 역할을 인식시키며,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학생에게는 과학기술의 전문적인 내용에 대한 교육을 거치지 않고도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인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높여줄 수 있다. 한양대학교에서는 “과학기술의 철학적이해”라는 과목을 모든 대학생의 교양필수로 만들었고, 이를 위해서 이 수업을 매학기 48강좌씩 개설하고 있다. 사실 STS같은 수업이야 말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시민이 갖추어야 할 ‘핵심교양’이다.

미국의 경우 STS는 명문 사립대학과 주립대학 대학원에 학과의 형태로 확고하게 정착되었다. 이 학과들은 과학기술의 역사, 철학, 사회학, 정책학 등을 연구하는 독립된 교수진을 갖추고, 같은 대학의 자연과학자들이나 엔지니어들과 협동하고 소통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미국 과학사학회와 과학사회학회는 매년 1000명이 넘는 회원이 참석하는 대규모 학회로 발전했다. 이웃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국가의 재정 지원을 받는 STS연구소가 있고, 동경대와 동경공대를 비롯한 유수 대학에 STS 학과가 설립되어 이곳 교수들을 중심으로 활발한 연구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STS가 대학원에 협동과정 형태로 존재한다. 서울대학교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이 1984년에 문을 열었고, 고려대학교를 비롯한 몇몇 학교에도 관련 협동과정이 있다. 그렇지만 외국과 달리 한국 대학의 협동과정은 전임교수를 두지 않고 기존 학과에 속해있는 교수들이 짬을 내서 강의를 개설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국가나 학교의 지원도 거의 전무한 형태이다. 학과의 형태로 있는 경우는 전북대학교의 과학학과가 유일하다. 이렇게 STS분야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보니 과학관의 큐레이터(학예사)와 같이 STS전문 인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도 전공자들이 아직 진출을 하지 못하고 있다.

12월 8일부터 11일까지 한국, 중국, 대만, 일본 4개국의 동아시아 STS학회가 서울에서 열린다. “사회적으로 논쟁이 되는 과학과 기술”이라는 주제 하에 30여 편의 논문이 발표되는데, 이번 학회를 계기로 한국에서도 STS라는 학문분야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한 대학 구성원과 사회의 인식이 제고되었으면 한다. (홍성욱 / 서울대교수, 과학학)

————-
(전공을 과학학으로 한번 더 써 봤다. 이번에는 ‘과학학’이 ‘과학’으로 둔합하는 일은 없겠지…)  

정동욱 : 위에 오타가 있네요. (11.27 12:49)  
정동욱 : ‘과학기술의 본질과 속성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을 지양한다는’ -> 지향 (11.27 12:50)  
홍성욱 : 그러게 우째 이런 오타가… 내용이 정반대가 됐잖아 -_-;;; (11.28 09:42)

—————————————————-

선생님 미니홈피에 갔다가 답글을 달았더니..
친절하게 답글을 달아주셨다. -_-

Read More

분자생물학의 역사

hs_041130.hwp <과학사 통론 II 13주차 요약문>
분자 생물학의 역사(History of Molecular Biology)

날짜 : 2004. 11. 30  | 이름 : 정동욱  | 담당교수 : 홍성욱

Erwin Schrodinger, What is Life? The Physical Aspect of the Living Cell (Cambridge, 1944)

슈뢰딩거는 그의 책에서, 첫째, 양자역학의 중요성, 둘째, 비주기적 고체로서의 유전물질, 셋째, 음의 엔트로피를 섭취함으로써 죽음을 유예하는 유기체의 본질, 넷째, 새로운 물리학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슈뢰딩거는 유전물질을 부호화되어 있는 정보를 담고 있는 물질로 보았으며, 그것은 아마도 ‘커다란 비주기적인 고체’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물질은 확률적 열운동으로부터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커야 하며, 엄밀한 질서를 지닌 분자구조여야 한다. 그러나 결정은 매우 규칙적인 구조이므로, 결정의 각 부위는 어느 면에서 모두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규칙적인 결정은 많은 정보를 부호화할 수 없다. 따라서 슈뢰딩거는 비주기적 고체에 승부를 걸었고, 그런 비주기적 형태는 생물의 발생을 통제하는 일종의 미시부호 ― 모스부호와 같은 ― 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주기적 고체의 양자 특성은 불연속적인 작은 변화들(양자도약), 즉 돌연변이들이 일어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돌연변이의 비율은 생존과 동시에 진화가 일어날 만큼의 적절한 수준이어야 한다고 예측했다.
한편, 슈뢰딩거에 의하면, “살아있는 유기체는 계속해서 자체 내의 엔트로피를 증가시켜 죽음을 뜻하는 최대 엔트로피의 위험한 상태로 다가가는 경향을 나타내게 된다. 그러므로 유기체는 환경으로부터 계속하여 음의 엔트로피를 얻어야 죽음에서 멀리 벗어나, 즉 살아 있을 수 있다. 음의 엔트로피는 우리가 곧 보게 되는 바와 같이 매우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유기체가 먹고사는 것은 음의 엔트로피이다.”

i) 사전적인 논의에서 질서와 확률적 열운동과의 관계를 논의하는 부분은 지금 봐도 인상깊은 서술이었음.
ii) 돌연변이를 설명하는 데에 양자역학까지 도입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 물론 나는 양자역학적이 매우 중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긴 하지만, 책에서 슈뢰딩거가 언급한 돌연변이에 대한 설명은 단순한 활성화에너지와 확률적 열운동 사이의 관계로도 충분히 설명 가능한 듯 보인다.
iii) 환원주의에 대해 : 그의 환원주의적 태도가 가장 잘 드러나 있는 부분 – “우리는 생명체가 보통의 물리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알아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살아 있는 유기체 안에서 개개 원자들의 행동을 규정하는 어떤 ‘새로운 힘’ 등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까지 물리학 실험실에서 검증했던 것과는 구성이 다르기 때문인지도 알아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열기관에만 친숙한 기술자가 전기모터의 구조를 검토한 뒤에 그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원리들을 좇아 그 모터가 작동하는 방식을 알아내려 하는 태도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기술자는 열기관의 솥에서 친숙해 있는 구리가, 모터에서는 코일에 감긴 길고 긴 선 모양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레버와 막대기 그리고 증기실린더에서 그에게 친숙해 있는 철은 여기에서 구리선 코일의 내부를 채우고 있다. 그 기술자는 똑같은 자연법칙에 따르는 똑같은 구리와 철이라고 확신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점에서 옳다. 충분히 그는 구성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보일러와 증기는 없더라도 스위치를 켬으로써만 돌기 때문에 유령이 전기모터를 작동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 슈뢰딩거는 발전기의 전기모터로부터 유령을 배제하였던 것과 같이 유기체에서 ‘생명력’을 배제하였다.
iv) 슈뢰딩거가 생각한 새로운 물리학이란 : 분명치는 않지만, 세포 내용물들의 행동으로부터 발전기에서 작용하는 전자기력과 같이 신기한 법칙들을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 듯(로버트 올비의 논문에서)
v) 슈뢰딩거의 결정론적인 귀결에 대해 : 결정론적인 물리학으로 환원된다고 생각했으므로, 그로 인한 당연한 귀결로 보임.

Horace F. Judson, “Reflections on the Historiography of Molecular Biology,” Minerva 18 (1980), 369-421

이 글은 분자생물학의 역사를 다룬 문헌들에 대한 코멘트라 할 수 있다.
이 글의 목적은 분자생물학의 성장을 특징짓는 사고의 변화에 대한 근본적인 성격을 규정짓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생물학의 역사가 물리학의 역사에 기반한 기존의 관점을 교정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

표준적인 관점과 그것의 단점 (Fleming과 Kendrew의 저작을 중심으로)
분자생물학의 성장에 대한 표준적인 관점은 몇가지 요소를 공유하고 있다. 첫째, 물리학자 또는 물리학 기반의 학자들의 이주(보어와 슈뢰딩거의 영향: 보어의 영향은 생물학에서의 새로운 법칙 발견 위함, 슈뢰딩거는 환원적 경향), 둘째, 그들의 기존학자들(생화학자 또는 미시-생물학자)에 대한 불신 및 그들이 가지고 온 새로운 의제(분자 구조가 생리학적 기능을 해명할 것이라는 명백한 생각과 함께 거대분자의 구조를 연구하기 시작 : 결정학 등), 셋째, 정보이론(information)과 분자구조이론(conformation)의 두 흐름의 합류, 넷째,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유전자가 단백질이라는 확신의 폐기
비판 : 처음 두 가지가 분자생물학 성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음은 명백하긴 함. 정보이론은 post hoc임. 단백질에서 핵산으로의 유전물질에 대한 방향전환은 (분자물리학이 아닌) 생화학 자체의 편견을 수정하는 일이었으며, 이를 해결한 것도 생화학자(Sanger와 Chargaff)들이었다.
1930년대, 생화학자들 사이에 단백질에 대한 강조. 단백질 없는 효소작용에 대한 Willstatter의 주장을 경멸하는 분위기. 핵산에 대한 방기(핵산은 4개의 염기가 단순반복적으로 결합된 물질이라 생각).

Avery와 때이른 발견에 대한 관념(Dubos와 Wyatt, Stent, 그리고 Hotchkiss의 저작을 중심으로)
Avery는 박테리아 연구. 박테리아 종 내에 다양성 발견.(1920년대) 특정 세포 환경에서 무독성의 박테리아가 유독성의 박테리아로 변형되어 증식되는 것 발견. 박테리아의 유전형질을 변형시키는 원리는 DNA밖에 없음을 발견(1930년대부터 인식) 그러나 Dubos는 왜 Avery가 발표(1944년)를 연기했는지에 대해 별 언급이 없다.
Wyatt는 Avery 연구논문에 대한 참조 분석(citation analysis)을 통해, Avery의 연구가 당시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무시되었다는 주장을 했고, Stent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오해이다. 파지(phage) 그룹 및 될브릭은 Avery의 발표 전부터 그의 연구에 관심을 가졌고, 1943년에서 1948 사이에 세계 유전학의 최고학자들은 Avery의 연구를 정확히 이해하고 받아들였음이 분명하다. Hotchkiss가 보이길, 될브릭은 당시의 역설적인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한편으로는 DNA의 분명한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DNA가 바보같은 물질(stupid substance)라고 생각했다”

Chargaff의 비극
DNA가 바보같은 물질이 아님을 밝힘. DNA의 화학적 구성을 밝힘. 그러나 자신의 귀결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함. 즉, 첫째, DNA의 4가지 염기의 비율이 한 종에서는 똑같고, 다른 종에서는 다르며, 몇가지 종들간엔 유사하다는 것 발견. 둘째, A-T, G-C의 비율이 1:1임을 밝힘.
Chargaff는 Watson과 Crick이 이중나선 모형을 만드는 데 자신의 영향을 축소시켰다고 주장. 그러나 사실 Chargaff이 DNA의 구조에 대해 많이 고민한 것은 사실이지만, DNA가 두 가닥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음. Watson과 Crick이 얘기한 염기-쌍과 상보성은 Chargaff가 도달하지 못한 구조적, 삼차원의 결론을 표현하는 개념으로, Chargaff는 그러한 개념을 먼저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즉, DNA 모형을 만든 것은 Chargaff의 규칙(염기 1:1)이 아니며, 오히려, 규칙(염기-쌍 규칙)을 만든 것이 모형이다. Watson과 Crick의 DNA 모형 자체가 바로 유전자에 대한 풀리지 않는 설명을 해결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화학적 특성과 생물학적 특성

서열 가설(Sequence Hypothesis)과 중심 교의(Central Dogma) : 57년 Crick의 논문에서
서열 가설 : DNA의 염기서열이 특정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에 대한 부호이다.
중심 교의 : 단백질에 들어간 정보는 다시 나오지 못한다.
그 당시 나타나서 오늘날까지도 지배적인 연구 프로그램을 선언한 것이라 할 수 있음. 기저에 있던 생각을 처음으로 명확히 표현한 것임.

한 가닥의 역사
DNA의 에 대한 관심 이후 처음엔 한 가닥의 나선형 구조라 생각(Furberg).
Hotchkiss의 4염기설 분석 : 관측 및 실험을 통한 비율값이 아니라, 단지 자의적인 4염기설 이론에 의해 도출된 계산값임을 밝힘
염기서열이 곧 20가지의 아미노산과 대응될 것이라 예상. 2개의 염기로는 부족. 3개의 염기로는 남음. 염기서열에 시작과 끝을 알리는 부호도 포함될 것으로 생각.
단백질과의 관계에서, DNA의 번역 직접? 또는 매개체? 단백질과 DNA 사이의 매개체는 RNA로 밝혀짐
그러나 Portugal과 Cohen의 RNA에 대한 서술 순서는 역사적 발견과 정반대임. 문제 있음.

Rosalind Franklin에 대한 과도한 평가
Franklin의 친구, Sayre의 Franklin 전기에서 남성적 과학자 사회에서 Franklin이 무시되었다는 주장. 너무 과도한 주장임.
Franklin은 탄원이 필요없는 훌륭한 과학자임. 다만, Wilkins 등과 마찬가지로 DNA의 구조가 2중나선이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임.

편집상의 그리고 학문상의 와해
Olby의 저술. 수많은 오타와 시간배열 잘못. Franklin을 다루는 부분에서 중요한 부분(그녀가 DNA 나선에 대해 둘 혹은 그 이상이라고 믿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부분)을 빼먹으며, 이미지 왜곡시킴. 편집상의 문제도 있겠지만, 학문적으로도 완전히 문제가 있는 저술임. Fleming이나 Kendrew의 진술을 단지 장식적으로만 차용.
“패러다임 전환”의 문제. 30년대에서 50년대 사이에 생화학 내의 각종 선입견들이 변화한 것은 사실. 그러나 Olby는 단순히 단백질→핵산으로의 유전자 개념 변화만을 다룸. 한편, Olby는 Central Dogma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 정확히 말해, Central Dogma는 ‘획득형질이 유전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재표현임

과학의 변형
패러다임의 혁명적 전환은 생물학의 역사에 맞지 않음.
과학의 발전방식 : 새롭고 또한 변칙적인 발견은 국소적인 방식으로 이용되다가, 확장되면서 새로운 긴장과 또다른 발견 초래함.
오늘날의 생화학의 발전은 과학변화에 대한 대안적인 기술 제공.
이 과정의 한 양상 : 가설적인 긴장(tention of the tentative) – 새로운 설명, 새로운 사실 관계 등에 대한 심리적 태도
긴장 (기존에 것에 근처에 나타난) 새로운 것에 대한 효과 → 다른 관계들과 재조정 유발 → 때로 원래의 영역에서 멀리 떨어진 놀라운 귀결을 동반하기도 함
이러한 설명방식에는 혁명을 언급하면서 무시되는 ‘모험의 보수성’을 보여줌. (새로운 이론은 적어도 기존의 성공적인 이론에 의해 정당화되어야만 함. 예: 보어의 대응원리)

Evelyn Fox Keller, “Physics and the Emergence of Molecular Biology: A History of Cognitive and Political Synergy,” Journal of the History of Biology 23 (1990), 389-409

물리학이 분자생물학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 기술적, 지적 기여 외에도 다른 종류의 기여 ― 즉 물리학과 물리학자가 분자생물학의 성공에 사회적 권위와 같은 것을 제공함으로써 더욱 중요한 공헌을 했음 ― 가 존재하며,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함. 그러한 권위는 물리학의 기술적 도구적 능력으로부터 얻어지나, 점점 그것을 넘어서서 발전하게 되며, 이는 생물학의 성격과 목표를 재구성하는 사회적 과정에 도입된 효과적인 자원이 된다. 이러한 (물리학으로부터의) 수입은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 ― ①물리학의 의제 적용 ②물리학자들의 언어와 태도 수입 ③물리학자들의 이름 수입 ④심지어는 (물리학의) 순수한 전문기술조차 수입. 즉, 20세기 물리학과 물리학자들의 사회적 권력의 물질적 토대를 수입함으로써, 물리학의 대담함까지도 수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자극되었다.
저자는 물리학과 초기 분자생물학의 접합이 지식과 권력 사이의 관계에 대해 (베이컨적이면서 푸코적인) 이중적 관계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을 주장하려 함.

분자생물학이란 무엇인가?
분자생물학은 DNA를 유전의 물질적 기반으로서 간주함으로써 시작? 분자생물학이란 DNA 내의 유전 정보의 분자 구조와 활성에 대한 연구를 지칭. 세 가지 결정적인 개념적 전환 ― ① 생명의 본질에 대한 재배치. 생명 활동의 중심을 개체나 세포가 아닌 유전물질, 즉 유전자에서 찾음. ② 생명의 재정의. 유전자 내에 부호화된 정보의 지령으로 재정의. ③ 생물학의 목적 전환. 관찰 → 실험과학, 묘사 → 통제 ― 에 의해 특성화되는 생물학의 한 하위분과.
위의 전환 과정에서, 물리학과 물리학자의 역할은?

워렌 위버(Warren Weaver)
분자생물학이란 용어를 만들어 냄. 1930년대 록펠러 재단의 자연과학 분과의 지도자. 물리학, 화학, 수학을 생물학 문제에 응용하는 역할. 물리과학의 지적, 기술적 능력을 생물학에 수입. 실험 물리학에 많은 부분 의존. 아직까지 생물학에 필요한 충분한 자극을 제공해주지는 못하였음.

뮐러(H. J. Muller)
물리학자라기보다는 생물학자. 그럼에도 그가 물리학을 고려할 때에는 고전 전자기 이론 정도가 아닌 물리학의 최신 이론, 특히 핵물리학을 지표로 삼았다. 본인은 고전 유전학자일 뿐이었지만, 앞으로의 개념적 혁명에 도움을 주었음.
생물학사에서 그의 중요성은 위에서 언급한 세가지 전환을 전제한 분자생물학 프로그램에 일찍부터 강하게 고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변이를 양자론에 의해 설명하는가 하면, 특히 생명의 궁극적 입자로서 유전자를 강조했다. 생물학의 주요문제에 생물학 뿐만 아니라 물리학자들 또한 참여할 것을 주장. 그러나 그의 주장은 주의를 끌지 못했다. 권위가 부족했기 때문.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
1944년, ‘생명이란 무엇인가?‘ 출판. 생명의 특징을 ’여러 세대에 걸쳐 그것의 구조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유전 물질의 특정한 능력‘으로 간주. 유전자를 (열운동에 견딜만한) 안정적인 물질로 간주. 될브릭의 ’비주기적 고체‘라는 용어 차용. 뮐러와 같이 불연속적인 변이에 대해 양자이론을 통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 예측.
슈뢰딩거의 언어는 뮐러의 것과 다름. “부호”, “부호-문자”, “패턴”, “질서로부터의 질서”와 같은 놀라운 신뢰성, 통계역학의 법칙으로부터의 탈출 등의 그의 이론적 용어 사용. 한편, 생명의 중심적인 문제에 관한 해결책이나 유용한 연구에 대한 제시는 하지 않음.
보어와 달리, 물리학과 생물학의 개념적 통일 가능하다고 공언. 생물학계에 큰 파장 일으킴과 동시에, 분자생물학에 대한 관심 유도. 유전정보에 관한 물리적 기초를 찾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과 희망 던져줌.
즉, 슈뢰딩거의 실질적 기여는 ‘내용’보다는 ‘목표설정’과 ‘태도’임.
한편, 왓슨과 크릭이 물리학에 (기술적으로) 도움을 요청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의 권위를 얻기 위해서였음.

Lily E. Kay, “Cybernetics, Information, Life: the Emergence of Scriptural Representations of Heredity,” Configurations 5 (1997), 23-91

1950년대, 분자생물학 광범위한 변화 겪음 : 인공지능, 정보 이론, 컴퓨터와의 연계 속에서 스스로를 의사소통(communication) 과학으로 묘사하기 시작.
Jacob : “오늘날 유전은 정보, 메시지, 부호의 용어로 기술된다.” 또는 “유전 기능 – 컴퓨터의 메모리”. “조직, 세포, 분자 – 의사소통 망에 의해 통합”.
Aspay : 2차 대전 이후에야, 정보가 처음으로 과학적 연구에 적합한 물리적 파라미터이자 수학적으로 정의된 개념이 됨.
저자의 입장 : 유전을 정보의 용어로 기술하게 된 것은, 유전학 내부의 논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1950년대 이래 발전해온 정보이론에서 온 것임.
이 글은 정보 담론의 생산에 대해 진단. 1940년대에서 1950년대 중반까지의 새로운 장의 출현을 다룰 것임. 그것의 범위와 한계를. 첫째, Wiener의 cybernetics의 성장, 둘째, 의사소통의 수학적 이론과 Shannon, 셋째, von Neumann에 의해 체계화된 컴퓨터 이론과 자동자(automata) 이론, 넷째, Quastler의 생물학(과 유전)을 정보과학으로 개작하려는 시도에 대해서 살펴볼 것임.

저자는 정보이론의 발전에 대해
– Wiener. 전쟁시기 포격 계산 과정에서 새로운 계산기 고안 → 정보전달과 작동체계로 이해. 생물학의 행동주의(behaviorism)와 연결. 유기체는 부호화된 메시지의 집합체, 즉 사이보그라는 개념 도입. 군사적 ‘통제’ 개념과 cyvernetics의 ‘정보전달’ 개념 동질화
– Shannon. 정보이론 일반화. bit 개념 도입. 정보의 양을 수학적으로 규정. 유기체의 정보전달도 기계적 정보전달과 비슷할 것. 정보 개념에서 의미론적 가치가 완전히 사라짐.
– von Neumann. 생물학적 자동자 이론. 기본 요소와 그것들로 구성된 시스템 구분. 유전자는 ‘information tape’
– Quastler. 생물학을 완전히 정보과학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시도. 정보를 통해 생물학적 특이성(specificity)의 정도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주장.

1950년대 ‘정보’ 개념은 광범위한 분야에 인식론적, 기술적(description) 틀 제공하는 한편, 그 자체로 독자적인 학문으로 성장. 그럼으로써 분자생물학의 이론 및 실천의 구성요소가 됨. 한편, 복잡한 ‘정보’ 담론은 당시의 사회적 맥락(통제무기 및 자동화된 통제시스템에 대한 추구), 문화적 맥락(행동주의의 수용, 의미론의 사장 등 당시 학술문화적 분위기) 등에서 구성되었으며, 이러한 ‘정보’ 담론이 분자생물학과 전후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연결하는 매개로 작용했음.

Diane B. Paul, “Eugenic Anxieties, Social Realities, and Political Choices,” Social Research 59 (1992), 664-683

생명의학의 발전이 “새로운 우생학”을 부추길 것인가? 많은 사람이 그럴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우생학의 부활에 대해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수준에서의 경계의 목소리는 높지만, 우생학이 지니는 구체적인 의미와 그것이 왜 나쁜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분석이 없다. 이 글의 목적은 우생학에 대한 뻔한(일반적인) 인식 ― 우생학을 의도, 강제, 사회적 정책 등과 관련짓는 생각 ― 이 잘못되어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우생학의 다양한 의미
시각에 따라 다양한 정의 가능. 의도 vs 결과.
우생학은 과학으로서 정의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 목적을 가진 행위자와 관련된다고 가정되는 것이 일반적. 즉, 우생학은 과학이자 동시에 (누군가의) 목적적 행위이다.
이 때, 행위자를 사회, 국가, 조직 등으로 보는 경향에 의하면, 우생학은 특정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정책에 가까움. (사회적 동기 중요) 그러나 우생학을 결과적인 용어로 정의한다면, 행위자는 개인 수준으로 내려가고, 이 경우 각각의 개인들의 행위에 따른 비의도적인 결과 초래(“back door” eugenics) 가능. (개인적 동기보다는 전체적인 결과가 중요) → 최근 들어, 전자보다는 후자에 대한 예측이 상대적으로 높아짐.
지금까지 우생학이냐 아니냐를 의도/결과로 경계짓는 방식에 대해 살펴봤다면(즉, 문제가 있다는 결론), 이에 덧붙여, 우생학이냐 아니냐를 “강제적/자발적”, “사회적/개인적”이라는 구분을 통해 경계짓는 방식에 대해 살펴보겠다. (결국, 우생학을 의도, 강제, 사회로 연결시키는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보이려고 함)

우생학과 강제
우생학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간주하고, 강제가 아닌 교육, 설득, 권유의 방식으로 실행된다면? 자발적인 환경에서, 능동적 우생학은 배제하고 수동적 우생학만을 장려한다면? 이 경우 우생학으로의 “뒷문”은 없다. 경로는 여성의 태아에 대한 검사와 낙태 선택에만 의존.
정책이 강제적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님. (사실 결정에 가치중립적인 방법이란 없음.) 전통적인 자유주의자 또는 현재의 보수주의자에게 위와 같은 방식은 강제가 아니지만, Green 전통의 자유주의자 또는 사회주의자에게 위의 방식은 강제와 같다.
결국, “강제가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한다 하더라도, 강제 또는 자발의 의미에 대해 근본적인 충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아예 반대로 태아 검사와 낙태를 모두 금지시킨다면? 이번엔 여성의 선택에 대한 자율성을 건드리게 된다.

우생학과 사회적 목적
종종, 어떠한 정책을 우생학으로 간주하는 이유는 그 방법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근본적 이유(목적) 때문이다.
2차대전 이후, 우생학은 불명예를 얻었다. 그러나 많은 유전학자들은 여전히 인류의 생물학적 질을 높이는 것이 가치있는 목적이라 확신하고 있으며, 우생학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목적을 중립화시키는 방법을 찾았고, 그로부터 유전 상담이나 태아식별 등의 의학기술이 출현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을 인정하는 많은 사람들 역시 “우생학”은 증오한다. 이 상황은 도대체 뭔가?
유전학자들의 연구의 변화 : 사회적 유전자 풀의 질 향상 → 가족, 개인의 안녕.
과거의 (나쁜) 사회적 우생학에서 새로운 (좋은) 개인적 우생학으로 전환된 것인가?
개인적/사회적 구분이 좋다/나쁘다의 기준이 될 수 있는가? 그 구분은 분명치 않다. 그러나 개인적인 선택 또한 사회적인 결과를 초래하며 결국 사회적인 문제라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할 만 하다. 또한 최근 극단적인 개인주의적 윤리관이 예전의 윤리관을 대체해감에 따라 태아 진단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지진아에 대한 부모의 불임술 요구 사례는 어떠한가? 또한 자녀출산에 대한 선택권의 문제는 어떠한가? 또한 성감별 출산의 문제는 어떠한가? 개인의 자율적인 선택권은 점점 확대되어 가고 있는 추세. 하지만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

출산, 국가, 그리고 시장
개인의 자율적인 선택이 사회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Wright는 국가가 출산의 선택에 개입하는 것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가장 위험하다고 말함.
개인의 자유로운 행위를 중시했던 Mill도 사적인 출산과 양육의 문제가 사회적 문제라는 점 인정.
하지만 아동 노동 및 아동 학대의 경우에는 ‘한 개인에 의한 다른 개인(아동)의 이익 및 자유 침해’의 문제로 사회적 개입의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출산의 문제는 같은 방식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출산 결정의 사회적 효과에 대한 평가는 개인마다 다를 것임. 어떠한 정책이든 어느 한 편의 가치를 옹호하게 마련이며, 사회적 대립 형성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갈등은 출산 결정을 개인에게 맡김으로써 해소될 수 있긴 하지만, 보통 정치의 영역이 감소하면 시장이 확장되기 마련이다.
생명 의학의 발달에 따른 쟁점들은 매우 다루기 어렵다. 개인에게 모든 것을 맡길 경우 사회적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에 대해 정치가 관여하지 않을 경우, 궁극적으로는 시장이 모든 것을 점령하게 된다.

Susan Wright, “Recombinant DNA Technology and its Social Transformation, 1972-1982,” Osiris 2 (1986), 303-360

1972년, DNA 재조합에 의한 유전자 조작의 가능성이 처음 얘기되었을 당시만 해도, 분자생물학은 주로 순수 연구에 치중되어 있었다. 1970년대 동안 DNA 재조합 기술의 실용적 잠재력이 드러남에 따라, 분자생물학에 대한 사적인 지원이 증가하기 시작한다. 많은 분자생물학자가 사기업과의 밀접한 연관 속에서 발전. 대학도 다국적기업들(화학, 석유, 제약)과 연구 계약 맺음. 연구의 실용적 이익은 빠르게 상업적 후원의 근본적인 이유가 되어감. 원래 분리되어 있던 “기초”와 “응용” 연구는 인슐린이나 인터페론과 같은 상업적으로 중요한 물질을 생산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빠르게 융합. DNA 재조합 기술의 이용이 일차적인 상업적 목적이 되어감에 따라 연구 규범과 관행도 변화. 즉 기초연구 영역에 있었던 것이 사회적 변형을 크게 겪게 됨.
이러한 변화증상은 1970년대 말에서 1980년 초의 기간에 잘 드러남. 이 글은 변화의 과정을 진단하고, 그것을 추동한 사회적, 기술적 조건을 정의하고자 한다. 주요 질문 : 왜 이러한 변화가 불쑥 나타나게 되었는가? 왜 분과 구성원들로부터 거의 저항을 받지 않았는가? 주장 : 1970년대 초, 분자생물학의 특정한 기술적 사회적 특성이 실용적 적용에 알맞게 무르익어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 부족. 그 기간의 경제 및 정치적 환경에 대한 설명 필요. 특히 국가에 의한 강력한 상업화 유인책에 대한 설명 필요. 추가적으로 대기업의 역할에도 관심. 70년대 말 80년대 초, 작은 유전공학 기업이 자신을 그 분야의 선도적인 위치로 정립하려고 했고, 이것이 일차적인 빠른 상업화의 추진력으로 보임. 이러한 기업은 인적으로는 대학에 재정적으로는 다국적 기업에 많이 의존함. 1980년대 초까지 실질적인 통제권은 작은 유전공학 기업보다는 다국적 기업에 있었음.
편의상 구분했던 “기술적”, “사회적” 구분 오해의 소지 있음. 분자생물학에서의 기술과 사회는 매우 밀접히 엮여있음. 분석적으로만 구분 가능. 실재적으로, 기술적 발전은 사회적 이해관계에 강한 영향 받아왔고, 사회적 이해관계는 기술 발전에 의해 형성되어 왔다.
DNA 재조합 기술 발전의 연속적인 다음 상태는 기술적 혁신과 투자한 산업, 재정적 영역의 반응 모두와의 관련 하에 결정됨. 따라서 설명 소스 다양. 연구논문, 신문기사 등등. 이러한 자료들은 기본적으로 수렴.
DNA 재조합 기술에 대한 상업적 반응에 대한 설명은 각종 산업 자료에 의존. 기술발전에 대한 설명보다는 불완전. 여기서는 분자생물학에 대한 상업적 이해의 효과에 집중.
DNA 재조합 기술의 위험성에 대한 역사적 논쟁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음. 정부정책과 연관되고, 이것이 또한 투자계획에 영향을 주긴 하지만, 그것은 발전에 중대한 장애가 아니었음. 투자자의 주된 관심은 기술의 실현가능성, 시장의 크기, 투자에 대한 이윤이었지 정부의 규제가 아니었다. 정부의 기술의 안정성에 대한 통제는 사적인 자발적인 영향을 넘지 못했으며, 기술 발전에 따라 (정부통제는) 사라져갔다. 일반적으로, 기술의 위험성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상업적 발전의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1. 유전 공학에 대한 기대, 1952-1970
왓슨과 크릭의 DNA 구조 발견 이후, 이론적 발전도 성취. DNA 조작 기술 예상. 그러나 아직까지 실제로 적용가능한 응용 기술은 등장하지 않음. 연구 자금의 투입 필요. 미국의 경우 국가적 지원이 커짐. 의학의 발전에 대한 기대 때문.

2. 첫 번째 유전자 접합 실험, 1969-1973
세포에 DNA 삽입하는 기술 개발. 플라스미드와 바이러스 이용하는 방법. 특정 효소의 DNA 자르고 붙이는 작용 발견. Lederberg 박테리아에서의 유전자 접합 실험 성공. 이러한 실험은 기초, 응용 양면 지님.
i) 기술 : 유전공학에서의 많은 연구 성과 나타남. 산업적 응용 가능성 인식 시작.
ii) 사회적 반응 : 유전자 접합 실험 성공에 대해, 유전공학의 발전가능성과 산업적 응용 가능성 인식. 우려의 목소리도 있음. 연구범위 제한의 의견도 나옴. 그러나 기술 발전. 영국의 ICI는 대학과 협동연구 시작. 이후 많은 대학들도 따라함.
iii) 언론 : 1974년 이전까지는 거의 관심 없음. 1974년 New Scientist에 실린 기사 이후로 상황 달라짐. 그 이후 DNA 재조합 기술의 상업적 이용 가능성에 대한 기사가 유명 언론에 여럿 실리는 한편, 그 위험성에 대해서도 함께 다룸.

3. 상업적 미래에 대한 전망, 1974-1976
i) 기술적 발전 : NIH에서 거금의 예산을 동원하여 여러 프로젝트 수행. control, amplification, generalization, expression의 목표. 5가지 기술(새로운 vector 조립, 클로닝을 위한 DNA preparation, 특정 단백질 포함한 박테리아 콜로니 선별, 분자적 수준에서 DNA 규정, vector로의 정확한 DNA 절편 삽입)
ii) 상업적 반응 : 일반적으로 조심스러웠음. 기업에서 이 분야에 대해 흥미를 가지긴 했지만, 투자액 적음. 대학의 연구 상황 보아가며 판단 유보.

4. 유전공학의 사업 무대(arena)으로의 진입, 1976-1979
i) 기술적 발전 : 1977년, intron의 발견. 고등생물의 유전자 구조가 박테리아와 다름. 유전공학에서 기술적 장애물?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동물 단백질을 박테리아로부터 합성하는 데 성공. 이러한 기술과 함께 유전자 접합, 합성, 클로닝 등의 기술도 더욱 발전. 성장호르몬, 인슐린, 인터페론 등의 생산에 관련된 유전자를 포함하여 다양한 동물 유전자에 대한 표현 가능해짐.
ii) 상업적 반응 : somatostatin 실험 이후 많은 자본 유입. 기존의 대기업(Standard Oil of India 등)의 참여 뿐만 아니라 신생기업(Genex 등)도 생겨나 경쟁에 참여함. 대기업은 방어적 자세. 신생기업 모험적 투자. 치열한 경쟁으로 유전공학 고도 성장 거듭.
iii) 새로운 연구 풍조 : 전통적인 순수 연구의 흐름에서 벗어나 기업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연구 풍토가 생겨남.

5. “클로닝 골드러시”, 1979-1982
i) 정치경제적 환경 : 새로운 기술을 통제하려는 정부와 의회 vs 자유로운 연구와 기술혁신. 후자의 승리? 1979년 정책 변화. 기술혁신을 촉진, 대학과 산업의 연결 강화. 컴퓨터, 전기통신, 항공기, 제약 등의 새로운 산업 각광받는 상황에서, 유전공학도 관심의 초점이 됨.
ii) 기술적 발전 : 민간 투자 급증. 새로운 구조의 Z-DNA 발견. 진핵세포에 관한 많은 양의 새로운 이해 얻음. “생물학 혁명”
iii) 상업적 이해 : 높은 수익률. 높은 투자율. 경쟁 치열. 전문 인력에 대한 수요 증가와 공급의 부족. 1979년 이후, 정부의 강력한 후원. 발전 가속화(특히 미국). 82-84년에 이르면 소강상태로.
iv) 상업적 이해의 확장 : 1979-1984 기간 동안, 유전공학의 상업적 개발 경쟁은 대학실험실이나 유전공학회사의 범위를 넘어 확장. 거대기업, 투자자, 대학, 주, 주정부 등으로 확장.

6. 새로운 생물학의 사회적 기초
상업적 이해관계의 영향으로, 지식은 공공 재산이라기보다는 사적 재산이라는 인식 굳어짐. 연구의 성과는 특허. 비밀주의 확산. 대학은 공적 이익과 사적 이익 사이에 갈등. 내용에 있어서도, 기초 연구와 응용 연구를 통합. 그 경계를 모호해짐.

7. 결론
위와 같은 이유와 과정에 의해, 분자생물학은 상업과의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 빠른 성장과 내용적 변형을 겪게 됨.

Read More

어제 ansa가 얘기꺼냈던 디버깅과 탐정놀이

어제 방에서 ansa가 김전일과 디버깅 얘기를 꺼냈는데..
부족한 기억력으로 말미암아 얘기를 완성시키지 못했었다.
아쉬움이 남아.. ica의 홈에서 검색해서 퍼왔다.

—————————————————

디버깅 기법을 탐정들의 스타일에 따라 분류해 봤습니다.

– 하드보일드형

모든 문장과 문장 사이에 printf를 추가한다.
어떤 문장이 문제를 일으키는지 끈기 있게 추적한다.
한줄씩 따라가다보면 문제가 되는 문장을 찾을 수 있기 마련이다.

가끔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것을 잊지 않는다.
잠은 사무실에서 아무렇게나 자는 편이 좋다.

– 안락의자형

가만히 앉아서 모니터를 뚫어져라 응시한다.
전혀 움직이지 않고 몇시간이고 코드를 쳐다본다.
가끔 혼자서 뭐라고 중얼중얼 거리기도 하는데 옆사람은 못알아 듣는다.
그러나 갑자기 마구 타이핑을 하더니 버그를 잡아낸다.

다 좋은데 옆에서 보기엔 미친것 같다.

– 완전범죄형

프로그램을 짤 때 부터 애시당초 머리속으로 무척 많은 생각을 한다.
코드 한줄 한줄 마다 모든 부가효과(side effect), 예외상황(exception), 잘못된 입력을 염두에 둔다.
심지어 멀티 슬레드 코드로 사용되는 경우도 생각하고, 에러 리턴 코드도 구조적으로 만든다.

버그없는 코드는 완전범죄만큼이나 불가능 하다.
결국엔 항상 사소한 것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 CSI 과학수사대형

소스 디버거의 브레이크 포인트는 기본이다. 조건부 브레이크-포인트는 물론이요 스택 트레이스를 한다.
퓨리파이어 같은 소프트웨어로 메모리 leakage도 검사한다.
gprof나 VC-profiler로 프로그램의 병목도 찾아낸다. spy++같은 것도 능숙하게 사용한다.

다른 사람보다 항상 제일 늦게 디버깅을 마친다.

– 미스 마플형

엔지니어들이 디버깅하다 안되서 휴게실에 나가 담배를 태운다.
이런저런 문제점들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쓰레기통 비우던 아줌마가 말한다.

“그럴땐 대게 클래스 destructor에서 널 포인트를 지우는 바람에 그렇게 되는데…”

– 명탐정 코난형

디버깅을 시작한다.
어려운 코드를 들여다 보니 잠만온다.
일어나면 코드가 디버깅 되어 있다.

옆에서 네이버 지식인을 습격하고 있는 초딩이 의심스럽다.

– 소년탐정 김전일형

버그의 원인이 될만한 모듈을 고립시킨다.
코드를 고치려다 버그가 하나 더 발생한다.
버그가 하나 더 발생한다.
버그가 하나 더 발생한다.
이건 연쇄 버그다.
시스템이 크래쉬 한다.

….어쨌거나 버그는 이 안에 있다.

Read More

032.jpg

노래패 연습실


36동(공전 있는 건물) 지하에 노래패 연습실이 생겼다.
완벽한 방음시설과 초대형 냉난방공기청정 기계가 갖춰진 연습실이 생겼단 말이다.
연습실 바로 옆에 진동연구 실험실이 있음에도 우리는 합주를 할 수 있다.
드럼을 마구 때려도 밖에서는 ‘동~동~’ 소리로밖에 안들린다. 후훗 ;;;

정말 이런 곳을 따내는 건 참 어려우면서도 쉬운 일이다.
암만 요구해도 이리 미루고 저리 미루면서 안 해주다가
어떻게 공대 학장인지 부학장 귀에 들어가서
‘그거 좀 만들어줘라.. 36동 지하에 창고자리가 남으니 거기에 만들면 되겠네’
한마디가 나오면 일사천리로 해결되어버린다.

어쨌든..
엊그제 연습실 완공 기념 고사를 지내고.. 자축 파티를 열었다.
2학기 페이퍼 제출하고 나면 노땅들끼리 정기적으로 합주를 해야겠다.
아자아자!!!

ps)
노래패에 진정한 프로페셔널이 가입했다.
인맥을 통해 디자인학부의 누님 한 분이 가입을 했는데..
무슨 파트를 할 줄 아냐고 했더니..
키보드랑 보컬을 쫌 해봤고.. 드럼이랑 베이스를 배우고 싶어서 들어왔단다.
그래서 밴드활동을 해본거냐고 했더니..
좀 난감해하면서.. 라인기획이라고 아냐고 묻네.
그 기획사에서 제작한 앨범의 코러스나 백보컬을 했단다.
노이즈 음반의 백보컬은 거의 도맡아 했고.. 각종 댄스곡들 작곡해 팔기도 했다나..
물어본 나로서도 민망해서.. 아.. 그.. 그렇군요.. 했다.. -_-;

Read More

수금 성공

빚쟁이들은 들으시오~
이번주 드디어 과외비 수금에 성공했소..
목요일에 하나.. 오늘 두개.. 총합 비밀.. -_-;
허나 이번달 생계를 위해서 일시불로 갚긴 힘들고..
반정도씩 갚도록 하겠소. 하하..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