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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주년 파티의 주요 장면들

이른 아침 미용실에 도착하기 전 사고가 하나 발생했다.  전철역에서 나와 택시를 타려는데 내 양복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전철을 타고 오는 동안 발표 ppt 만드는 데 정신이 팔려있다가, 역에 도착해서는 노트북만 챙기고 위에 올려두었던 양복은 두고 내린 것이다. 일단 시간에 맞춰 가야 하는 신부는 미용실에 먼저 보내고, 머리와 화장에 시간이 많이 들지 않는 나는 역에 되돌아가 역무원에게 사정을 얘기했다. 다행히 친절한 역무원께서 신속하게 조치를 취해주셨고, 돌아오는 전철의 기관사가 양복을 배달해주셨다.
역무원 왈 : “이런 일 자주 있어요. 대부분은 쉽게 찾아드리는데요, 가끔 잃어버린 카드나 열쇠 찾아달라고 하실 때는 정말 난감해요. 그래도 대부분은 찾아지더라구요.”
뒤늦게 도착한 미용실. 신부는 드레스를 입은 채 머리를 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어주기로 한 진희 누나도 잠시 후 도착했다. 이제부터 사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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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을 거의 마친 신부. 가슴에 있는 건 드레스에 화장이 묻지 않도록 붙여둔 티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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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와 화장을 마친 신랑. 신부를 기다리며 ppt를 작성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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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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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화장을 책임져 주신 분. 신부 화장과 똑같은 화장을 하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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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에게 티아라를 씌워주시는 부원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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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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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식이 진행될 트레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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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는 신부 대기실 대신 신랑과 함께 손님들을 접대했다. 사진의 손님은 노래패 후배 승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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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전용훈 선배를 호빗 신랑 신부가 맞이하고 있는 중.

잠시후 신랑 정동욱 군과 신부 박민아 양의 결혼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사회를 맡은 저는 신랑 신부와 같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오선실입니다. 신랑 신부의 연애 시작부터 결혼까지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쭈~욱 지켜본 인연으로 오늘 사회를 맡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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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맡은 선실이 누나
아시는 분도 있고 모르는 분도 있을 것 같은데,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는 신랑과 신부는 작년 2월에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미국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이 자리는 결혼식이라기보다는 한달 부족하기는 하지만, 결혼 1주년 기념 파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결혼식은 평소 보시던 결혼식과 좀 다를 것입니다. 주례 선생님도 따로 모시지 않았고 단체 기념 촬영도 따로 없습니다.
그래서 평소 결혼식을 기대하고 오셨던 분들께는 좀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축의금 내고 곧장 식사하러 갈 수 없다는 점이 평소 많은 결혼식을 다녀본 저로서는 가장 불만스러운 점이긴 합니다^^;; 물론 저는 오늘 사회를 맡았기 때문에 밥을 미리 먹지는 못하겠지만요.
하지만 신랑 신부가 하객 여러분과 함께 하는 결혼파티를 하고 싶어 준비한 자리라고 하니 배고픔을 조금만 참으시고 편안하게, 함께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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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직전. 나에게 매달린 아이는 조카 건웅이.
그럼 오늘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의 입장이 있겠습니다.
신랑 신부 나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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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스러운 미소로 입장중인 신랑 신부

대부분의 하객 여러분은 신랑이나 신부 중 한 명만 알고 오신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둘이 어떻게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한 궁금증을 가진 하객 여러분을 위해 신랑과 신부가 직접 자신들의 스토리를 여러분께 압축적으로 요약 정리해 드린다고 합니다. 신랑 신부 준비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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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섞는 선후배 사이에서 연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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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낀 손으로 종이가 잘 넘어가지 않아 버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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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t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한 두타타의 21주 초음파 사진

평소 이 부부는 결혼식의 주인공이 결혼당사자와 부모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답니다. 그래서 본인들의 결혼식에서는 부모님의 소감을 꼭 들어보고 싶고 당사자들도 꼭 한마디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 앞에서 부모님 자랑도 하고 싶었다고 하네요^^. 자식 자랑은 팔불출 중에 하나라지만, 부모님 자랑은 거기에 속하지 않겠지요?

장모님은 많은 나이에도 여전히 직장을 다니십니다. 젊은이들 못지않은 유능한 보험 설계사로서, 작년에는 우수한 실적에 대한 상으로 회사에서 제주도에도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아직도 보험이 없으신 분들은 식이 끝난 후 장모님과 상담을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장모님은 마음이 여리시고 눈물이 많으십니다. 마지막 남은 막내 딸 민아 씨를 제가 뺏어가는 것 같아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런 느낌 안 드시도록 노력하겠다는 말과 함께 마이크를 장모님께 넘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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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노란 머리의 이상한 학생을 처음 본 소감을 이야기중인 장모님
이제 신부 차례인데요.
이런 결혼식 선뜻 허락하시기 어려울텐데, 생각이 열려 있으신 아버님 어머님께서는 정말 쉽게 허락을 해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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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의 소개를 받고 일어서 손님들께 인사를 하고 있는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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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낭독을 마치신 아빠.
다음은 오늘의 신랑 신부와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친구가 한 마디를 하겠다고 합니다. 신랑과 신부의 대학원 후배이자 신랑의 룸메이트였으며, 신랑이 미국에 떠나 있는 동안 남은 원룸을 지키며 살다 이곳 트레인스에서 지난 8월 결혼을 올렸습니다. 2주만에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웨딩 플레너 님과 미용실 정보까지 그대로 전해준 정성욱군 덕이었다고 하네요. 그럼 정성욱 군의 얘기를 들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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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 들어보기 힘든 주례사를 해준 성욱군.
성욱군의 축사는 여기서 -> http://blog.naver.com/bamiya/130080287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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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욱이 얘기 재밌었다.
둘에게 거는 기대가 무척 큰걸요. 신랑과 신부의 부담감이 만만치 않겠어요. 신랑과 신부는 정성욱 군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겠어요? 그 약속을 노래로 확인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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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창중인 우리. 내가 한번 삑사리 냈다.
친구의 결혼에 대해 축하의 마음만 있는 건 아니겠죠? 신부와 함께 학부를 함께 보내며 오늘의 신랑보다도 함께 여행을 많이 다녔었던 이지혜 양이 한 마디를 올리고 싶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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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씨의 축사
떨리는 음성의 너무나 진솔한 축사였지만, 당시 너무나 길어지고 있던 결혼식이 걱정되던 우리는 지혜씨가 들고온 노란 종이의 개수에만 온 신경이 곤두섰었다.
지혜씨의 축사는 여기서 -> http://blog.naver.com/bamiya/130080290434
이번엔 신랑 친구 차례입니다. 2003년 봉천각이라는 집을 마련하고서 신랑과 함게 2년간을 동고동락하며 매일 밤을 지새웠던 장춘기 군이 한 마디를 올리고 싶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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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기의 축사도 재밌었다. 그리고 가슴이 아렸다.
앞에서 이러저런 얘기 많이 했으니 자기는 짧게만 얘기하겠다며 운을 뗀 춘기. 2주전 돌아가신 아버님이 예전에 춘기에게 결혼을 닥달하며 하셨던 말씀을 전해주었다.
“사람이 태어났으면 아는 낳고 죽어야지”
능숙한 동해 사투리와 함께 터진 이 말에 모든 사람들이 웃었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어쩌면 고아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결혼을 했기 때문에 부인도 생기고 아이도 생기고, 또 장모님, 장인어른까지 생겨 고아가 아닐 수 있게 되었다는 춘기의 말에 가슴이 살짝 아렸었다.
단순명쾌한 생물학적인 진리와 함께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춘기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이제 마지막 순서. 노래패 후배 종호의 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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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부르는가 싶더니, 중간에 갑자기 가사 쪽지를 컨닝했다.
그리고 이제 건배 제의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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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회자가 건배 제의를 하기로 했었는데, 예식 직전 홍성욱 교수님께 부탁하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앞에서 건배 제의를 위해 일어서신 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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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용 선생님
마치 미리 준비라도 해오신 것처럼 재미난 건배 구호를 가르쳐주셨다. 요즘 “사랑은 뜨겁게, 지구는 차갑게”라는 구호가 유행한다면서, 그 앞부분을 따서 구호를 외치셨다.
“사랑은 뜨겁게”
이제부터는 설명 없이 사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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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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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 없는 결혼식 준비 후기

결혼식 행사를 준비하면서 둘 사이에서 계속 갈등이 있었다. “정말 와보길 잘했다고 할만한 의미있고 재미있는 결혼식을 하자”와 “그래봐야 어차피 우린 이미 결혼했는데 결혼식이 의미있어봤자 별건가… 대충 하자” 사이에서 말이다. “사람들 앞에서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고 약속하는 자리”라는 컨셉은 잡혀 있었지만, 결국 식순에 무엇을 넣을지 고민하다보면 부모님 말씀, 우리 다짐, 친구 덕담, 축가, 노래와 같은 뻔한 것들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재밌게 해보려고 본식이 끝난 후 사람들이 밥을 먹기 시작하면 2부에서 질의 응답 시간도 가져볼까 했었지만, 일단 밥을 먹기 시작하면 장소가 소란스러워져 식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식장 직원의 얘기를 듣고 이 계획은 버려졌다.

일단 사회자, 덕담을 부탁할 친구 세 명, 그리고 축가를 불러줄 노래패 후배를 섭외했다. 그리고 우리도 노래를 한두 곡 부를 계획이었다. 양측 부모님 모두에게도 덕담을 부탁했고, 시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던 아빠한테는 시를 부탁했다. 엄마한테도 덕담을 해달라고 그렇게 졸라댔건만, 자기는 사람들 앞에서 얘기 못한다고 끝까지 손사레를 쳤다. 그리고 우리도 결혼 1년 생활 보고도 하고 마지막에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도 하는 것으로 대충 계획을 짰다. 시작과 끝을 어떻게 할까도 꽤 큰 고민이었다. 입장과 마지막 행진을 할까 말까. 입장을 안 하면 어떻게 시작하지? 행진을 안 하면 어떻게 끝을 맺지? 2주 동안 이렇게 저렇게 순서도 바꿔보고 뺐다 넣었다를 거듭하다 예식 하루 전에야 아래와 같은 최종안이 나왔다.

  1. 신랑 신부 입장
  2. 신랑 신부의 연애 및 결혼 생활 소개
  3. 양가 부모님 말씀 및 축시 낭독
    – 신부측 어머니의 말씀 (신랑의 장모님 소개)
    – 신랑측 부모님의 말씀과 축시 낭독 (신부의 시부모님 소개)
  4. 신랑 신부를 모두 아는 성욱의 한 마디
    – 둘의 결혼에 거는 기대와 바램
  5. 신랑 신부의 노래
    – 해바라기의 ‘행복을 주는 사람’
  6. 신랑 신부의 친구들의 덕담
    – 신부 친구 지혜
    – 신랑 친구 춘기
  7. 노래패 후배들의 축가
    – 쿨의 ‘아로하’
  8. 신랑 신부의 마지막 감사 인사 및 건배

입장을 안 하고 시작하는 방법을 오래 고민해봤지만, 어차피 신랑 신부가 등장하긴 해야겠기에 그냥 입장을 하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행진하는 건 내가 무척 싫어해서, 대신 하객들께 절을 할까 어쩔까 고민을 하다가 예식 이틀전 사회를 보기로 한 선실이 누나가 건배 제의를 하는 것으로 끝을 맺자고 제안을 해서 그동안의 고민이 깔끔하게 해결되었었다. 그런데 당일 식장측에서 식 중간에 테이블마다 맥주를 돌리는 게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우여곡절 끝에 앞쪽 테이블에만 맥주를 돌려주는 것으로 합의를 봄으로써 겨우 문제가 해결되었다.

애초에 생각하고 있었던 신랑 신부의 다짐 발언은 너무 발언이 많은 것 같아서 뺐다. 게다가 우리 이미 결혼해서 살고 있는 마당에 무슨 “다짐”인가 싶기도 하고, 또 손발이 오그라드는 다짐을 할 것 같기도 해서 빼기로 결정했다. 원래 2부에 넣으려고 했던 노래패 축가는 2부 행사가 무산되면서 식 마지막 부분에 넣었다. 그러면서 애초에 우리가 마지막에 부르려고 했던 정태춘 박은옥의 “사랑하는 이에게”는 빼기로 했다. 원래 느끼하게 부르면서 하객들도 함께 부르도록 유도하려고 했던 곡인데, 제대로 분위기가 날지 예측도 안되고 노래도 너무 많은 것 같아서 결국 빼기로 했다.

아마 식순을 보면 눈치를 챘겠지만, 정말 “말”이 많았다. 사람들에게 3분 정도로 얘기를 부탁했지만 모두가 장문의 종이를 들고 나타났다는… 보통 결혼식은 주례가 한 명이지만, 우리 결혼식은 주례가 장모님, 아빠, 성욱, 지혜, 춘기 다섯 명이었다. 장모님은 그렇게 말씀 안하신다고 하시더니, 마이크 안드렸으면 큰일 날 뻔 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이크를 놓지 않으셨었다. 그리고 성욱은 어느 결혼식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아니 지금까지 본 주례사 중 가장 훌륭한 주례사를 해주었다. 지혜씨도 소녀와 같은 감수성으로 아줌마가 될 신부에게 아름다운 말을 선사해주었고, 춘기도 가슴이 아리면서도 웃음이 묻어나는 축사를 전해주었다. 우리는 친구들에게 별 생각없이 부탁을 했고 때로는 “저지 발언”처럼 각본에 따를 것을 요구했던 반면, 친구들은 우리의 각본을 거부하고 자신의 한마디를 위해 진솔한 고민을 해주었던 것이다. 너무나 고마운 친구들이었다.^^

우리 연애 및 결혼 생활 소개를 맨 앞에 넣은 건, 이 예식이 사실상 결혼 1주년 파티라는 것을 처음부터 명백하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손님 중에 우리 대학원 동료들을 제외하면 신랑이나 신부 한 명만 알지 둘 모두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테니, 둘의 연애 및 결혼사는 손님들에게 의미있는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신랑 친구가 결혼식에 와서 신부가 대체 누군지(친구 결혼식 가서 배우자에 대해 전혀 모르고 오는 일은 정말 허다하지 않나?), 또 둘이 어떻게 사귀고 결혼하게 되었는지 알고 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꽤 의미있는 결혼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의 연애 및 결혼 1년 생활 보고는 완성도가 무척 떨어졌다. 사실 준비할 시간이 너무 없었다. 사회자에게 부탁할 멘트는 이틀전부터 준비해서 당일 미용실에서 완성을 했지만, 우리 발표 ppt는 새벽 전철에서부터 만들기 시작해서 미용실에서 겨우 완성을 했으니 말이다. 우리 발표를 좀더 정성들여 준비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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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에서 발표 ppt와 멘트를 작성중인 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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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 완성한 사회자 멘트를 급히 사회자에게 메일로 보내고 있는 신랑

실제 결혼식 진행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결혼 1주년 파티의 주요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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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준비 후기

지난 1월 30일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 혹은 결혼 1주년 기념식을 무사히 마쳤다. 원래는 여기 쓸 말이 참 많았었는데,시간이 지날수록 귀찮기도 하고 기억도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더 귀찮아지고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1. 결혼식을 “하기”로 결정하기

귀국하고서 일주일이 지난 1월 둘째주 토요일 원주, 결혼식을 언제 어디서 하겠냐는 부모님의 질문에 안하면 안 되겠냐는 얘기를 던졌다. 사실 한국에 오기 전 우리는 주례 없는 소박한 결혼식을 할 생각을 가졌다가, 한국에 돌아올 날이 다가올수록 결혼식에 대한 맘이 점점 식어갔다. 형식적인 결혼식은 하기 싫었지만, 그렇다고 의미 있는 결혼식을 하려고 하니 준비할 게 너무 많아 보였다. 하객은 최소한으로 부르고 싶었지만, 막상 결혼식을 하게 되면 우리 맘대로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어물쩡 넘어가길 바라며 원주 부모님 앞에서 그렇게 폭탄 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전에는 주례 없이 어떻게 결혼식을 하고 싶다더니 왜 갑자기 안 한다고 그러냐?”고 부모님이 물으셨고, 나는 “그냥 귀찮아서”라고 얘기했다. 더 이상의 긴 얘기 없이 토요일은 그냥 그렇게 넘어갔지만, 다음날 정신을 차리신 부모님은 “결혼식은 해야지” 하며 우리의 대답을 계속 기다렸다. 심하게 다그치시진 않았지만, 엄마랑 아빠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고 거실엔 침묵이 이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조금만 철면피 깔고 참았으면 결혼식을 아예 안할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인데, 그 잠시 동안의 무거운 침묵을 못이긴 나는 결국 “결혼식 할게요”라고 답해버렸다. 원주에서 허락을 받는다고 해도 인천의 장모님 앞에서도 똑같은 일을 반복할 것을 생각하니 끝까지 우길 힘이 나질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내 부모님한테 No 하는 건 쉬워도 장모님께 No 하는 건 정말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소동 덕분에 소득은 있었던 것 같다. 결혼식을 안할까봐 걱정이 되었던 엄마가 “그럼 원주에서 말고 너희들이 하고 싶다던 서울역에 있는 그 예식장에서 해. 원주에서는 버스 한 대만 대절할게”라며 협상 카드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 협상 카드 때문에 결혼식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후 결혼식 준비는 엄마의 협상안대로 진행되었다.

2. 결혼식 날짜와 장소 결정하기

 우리가 결혼식을 치룬 트레인스라는 예식장은 원래 하우스맥주를 파는 레스토랑 겸 호프집인데, 주말엔 소규모 결혼식이나 돌잔치 예약을 받아 행사를 도와주고 뷔페를 제공한다. 대학원 후배 성욱이와 자경이, 그리고 승현이 형도 지난 8월에 그곳에서 결혼식을 했다. 결혼식을 하기에는 조금 어둡고 칙칙한 감이 없지 않아 있는 곳이었지만, 일반 예식장 분위기가 심하게 나지 않으면서 그 정도로 저렴한 곳은 그곳밖에 없어보였다. 보통 하우스 웨딩 업체는 일반 예식장보다 비싼 데다, 우리는 예쁘고 저렴한 장소를 알아보기 위해 발품을 팔 정성이 없었다.  

결혼식을 하기로 결정한 다음날, 그곳에 전화를 걸어보니 우리가 예식을 원했던 2월에 한달 동안 내부 공사를 한다고 했다. 난감했다. 장소 찾으러 또 귀찮게 알아봐야 하나? 인터넷으로만 찔끔 검색하면서 하루 이틀을 그냥 보내는 사이, 걱정이 된 엄마가 나한테 전화를 했다. “내가 거기에 전화해보니까 1월 마지막주 토요일이랑 일요일은 예약이 없대. 그때라도 할래? 어떻게 할래?” 아하 1월 말에 결혼식을 한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고 있었다. 1월 말이라… 지금은 1월 13일. 2주 남짓 남은 시점이었다. “잠깐만. 민아씨랑 상의해보고 다시 전화할게.” 사실 그때 난 옛 룸메이트 춘기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서 친구의 차를 타고 동해로 가고 있었다. 마침 차가 문막 휴게소에 들렀다. 나는 부인님과 전화로 상의한 후 엄마한테 전화했다. “결혼식 1월 30일 낮에 거기서 할게!”

바로 다음날 부인님과 나는 장모님과 함께 서울역 트레인스에 찾아가 계약을 해버렸다. 

3. 양측 부모님 사이에서 조율하기

결혼식이 결정되자 양쪽 어머님들이 모두 바빠지셨다. 예물과 예단을 안하기로 이미 얘기를 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얘기는 나오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없애지는 못했다. 장모님께서는 새 양복을 하나 해주시겠다고 나를 양복점으로 데려가셨다. 코트도 해주시겠다는 걸 “코트는 비슷한 게 있어서 괜찮다”고 사양했더니 그러면 콤비라도 입어보라고 하셔서 결국 콤비도 하나 장만하게 되었다. 그에 질세라 원주 엄마도 신부 새옷 해입어야 한다면서 돈을 부쳐주셨다. 엄마는 코트는 당연히 받는 거라며 나를 다그치는가 하면, 직접 신부를 옷가게에 데려가 옷 사주는 생색을 못내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결국 엄마랑 나는 이것 때문에 말다툼을 하기도 했다.

어느날 장모님께서는 전화로 원주집 주소를 물어보셨는데, 원주에 이불을 보내신다는 것이었다. 당황한 나는 그러실 필요 없다고 했는데도 장모님은 막무가내셨다. “주소 빨리 불러” 하며 다그치시는 장모님께 나는 결국 주소를 불러드리고 말았다. 다음날 나는 원주 엄마로부터 이불을 받았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는 걱정스런 전화를 받아야 했다. 선물 받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면서도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특히 이런 의례를 앞두고서는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장모님께서 이불 보내는 건 막을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참 장모님께 약하다.

 결혼식에서 폐백도 없애기로 했다. 시댁 어른들께만 인사를 드리는 것이 문제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혼식 끝나자마자 손님들 모르는 장소에서 한복 갈아 입고는 또다른 결혼식을 해야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원주 부모님께서는 우리가 “우린 폐백 안해” 라고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말씀드렸더니 “얘네들은 자기들 맘대로야” 하면서도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셨는지 그냥 넘어가셨다. 그런데 갑자기 장모님께서 폐백은 해야 한다고 우기셔서 무척 난감했다. 나름 머리를 쓴다는 게 “폐백 하려면 신부측 어른들도 폐백 받으셔야 해요” 했더니, 장모님께서는 “그럼 요즘은 다들 그렇게 하지” 하셔서 우리를 더욱 난감하게 만드셨다.

많은 경우 장모님께서는 나와 민아씨에게 “되도록이면 시댁 어른들 말씀대로 해라”고 하셨는데, 아마도 우리가 시댁 어른들과 자꾸만 부딪혀서 혹시 민아씨가 미움받지 않을까, 혹시 나중에 말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결국 폐백 문제는 “시댁에서는 이미 폐백 안하는 걸로 알고 계신다”고 말씀드려서, 겨우 장모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

양측 어머님들은 이것저것 불안한 것이 많으셨다. 당시 살림집에 살림을 채워넣어야 하는 시점에서, 장모님은 이불, 베개, 식기, 가구 등등등을 빨리 사주시겠다며 보채셨다. 우리는 느긋하게 맘에 드는 거 찾아서 사겠다고 했지만, 장모님께서는 신혼 살림을 장만하는 일을 본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가끔은 맘에 드는 물건도 없는 상황에서 너무 서두르시는 장모님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했다.  

한편 원주 엄마는 결혼식 행사 진행에 대한 불안감이 크셨다. 예식장소는 비좁지 않은지, 버스는 한 대만 대절하기로 했지만 혹시 사람들 다 못타서 욕을 먹지는 않을지, 손님들이 식당에 앉은 채로 예식이 진행된다고 하는데 소란스럽지는 않을지, 얘네들이 식을 알아서 준비한다고 하는데 혹시 어른들 보기에 너무 장난스럽지는 않을지 등등등… 엄마는 하루가 멀다하고 우리에게 전화를 해 사소한 준비상황까지 체크하는 바람에, 우리의 스트레스 지수를 증폭시켰다.

이렇듯 사소한 일들로 감정이 긁히는 일이 잦아졌고, 그 스트레스로 인해 서로에게 짜증을 부리는 일도 많아졌다. 아마 결혼식을 하기로 결정하고서부터 결혼식까지의 약 2주간은 우리 둘이 지금까지 함께 살면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고 서로에게 예민하고 날카로웠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어쩌면 결혼식을 더 늦게 했다면 서로 싸우는 기간도 연장되지 않았을까? 2주 안에 결혼식을 해치우겠다고 했던 결정은 정말 탁월한 결정이었던 것 같다.

4. 친구들 연락하기

 결혼식 날짜와 장소가 정해진 후, 가장 중요한 일은 청첩장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연락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최소로 부르기로 했다. 지금 대학원 친구들의 경우엔 게시판에 공개적으로 결혼식 소식을 올렸지만, 그 외의 경우엔 평소에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술자리를 함께 하던 친구들에게만 연락을 돌렸다. 과와 고등학교 동기들은 메일링리스트가 있어서 간단히 모두에게 연락을 돌릴 수 있었지만, 단체 메일은 보내지 않았다. 고등학교 친구의 경우엔 엄마를 통해 결혼식 알게 되는 친구들도 있을텐데 어쩌나 고민이 되긴 했는데, 누구 한 명한테 연락을 하기 시작하면 다른 친구들에게도 다 연락을 돌려야 할 것 같아서 결국 연락을 포기했다. 미안하게 되었지만, 결혼식 했다는 소식 이제라도 알려야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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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근황

1. 귀국

1월 2일 귀국했다.
귀국 직전 방문했던 뉴욕 여행 사진을 올린다는 게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나버렸다.
2. 살림집 마련
인천 부평구에 부인님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해서, 1월 23일부터 살기 시작했다.
학교가 너무 멀다. (-_-;)(;-_-)
3. 결혼 1주년 기념식
1월 30일 결혼(1주년 기념)식을 했다.
후기를 적는다는 게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나버렸다. -_-;;
4. 축농증, 비염, 코중간뼈 교정 수술
2월 18일 오전에 입원해서 21일(어제) 아침 퇴원했다.
수술이 혹시 아프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살짝 무서운 것 빼고는 아프진 않았다.
당분간은 계속 병원에 다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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