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에 대한 스티븐 호킹의 불만

단순하고 순진해 보이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호소력이 느껴졌다.^^
나의 믿음(My Beliefs)
 
오늘밤에는 제가 믿고 있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신에 대한 저의 신념을 들으려는 희망으로 이 자리에 오셨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저의 연구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즉 궁극의 이론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현실적으로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러한 문제를 탐구해야 하는 사람들, 즉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현대의 이론물리학에서 이루어진 발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학적 기초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과학철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철학자들보다는 나은 과학적 기초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물리학자로서는 대부분 실격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이론의 수립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대신 과학의 철학에 대해 쓰게 된 것이지요.
 
그들은 지금도 상대론이나 양자역학과 같은 금세기 초기의 과학 이론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물리학의 최첨단 이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제가 철학자들을 지나치게 혹평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지금까지 저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저의 연구방법은 순진하기 짝이 없고 세련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유명론자(唯名論者)라든가, 개념 도구주의자, 실증주의자, 실재론자, 그리고 그 밖의 무슨무슨 ‘주의자’라는 이름으로 불려왔습니다. 그런 식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저의 연구 방법을 경멸함으로써 반론을 제기하는 방법으로 보입니다.
 
여러분이 저의 연구 방법에 어떤 이름표를 붙일 때 거기에 어떠한 점이 잘못되어 있다고 말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슨무슨 ‘주의’가 어떤 치명적인 오류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이론 물리학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철학자나 과학사가(科學史家)들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낸 범주 속에서 사고하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이나 하이젠베르크 그리고 디랙이 자기 자신이 실재론자인지 개념 도구주의자인지 생각해보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들이 관심을 가졌던 문제는 당시의 기존 물리학 이론들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 스티븐 호킹, <우주에도 생명이 존재하는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