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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에 대한 짧은 후기

엄마와 유럽 여행을 다녀온 지 벌써 열흘이 훌쩍 지났다. 칠순의 엄마가 아들과 단둘이 열흘 동안 배낭 여행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행 초기부터 발가락에 물집이 잡혀 여행 내내 발가락에 밴드를 붙이고 다니셔야 했고, 입맛에 맞는 음식이 없어 영양 보충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엄마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대부분 수포로 돌아가는 바람에, 자포자기한 아들은 엄마를 “편식 대마왕”이라고 놀리며 어릴 때 엄마한테 받은 구박을 되돌려 주기도 했다.)

그래도 고생한 만큼 엄마는 좋은 구경으로 무척 즐거워 하셨고, 중간에 겪은 현금 도난 사건과 가방 분실 사건(가방은 다시 찾았다)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여행기는 하루씩 다시 정리해서 올리겠지만, 도대체 언제 올릴지 장담할 수 없어 일단 사진 몇 장만 공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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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 로마에서의 셀카들. 배경 같은 건 없다. 즐거우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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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 나보나 광장. 갑작스런 소나기에 광장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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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일,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서.

로마와 바티칸은 정말 멋진 곳이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의 비행과 시차로 지쳐 있던 엄마는 도착 바로 다음날 탄 오픈 투어버스에 앉아 밀려 오는 졸음을 참지 못하셨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의 바티칸 투어는 설명 욕심 많은 가이드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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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 밀라노 두오모 옥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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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 밀라노 두오모 앞에서

사실 이날은 완전 엉망인 날이었다. 이날 아침 두오모역에 도착해 바깥으로 올라가려던 찰나에 엄마 가방 속의 현금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두오모역까지 오는 동안 트램과 전철은 무척 한산했다. 아마도 우리가 전혀 눈치도 못챌 정도로 유능한 밀라노의 소매치기에게 당한 것 같았다. 그러나 엄마는 아무리 봐도 호텔에서 아침을 먹는 동안 누군가 방에 들어와 가방의 돈을 훔쳐간 것 같다며, 가방을 방에 두고서 식사를 한 것에 대해 자책했다. 나는 호텔방에 있는 돈을 훔쳐갔을 가능성은 적고 당연히 가방은 방에 두고 다니는 거라며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고 했지만 엄마에겐 그다지 위로가 될 수 없었다.

결국 우린 두오모 구경도 하지 못한 채 밀라노 경찰서에 가서 조서를 썼고, 호텔에 가서는 CCTV를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적어도 CCTV를 보고 나면 엄마의 의심과 자책이 사라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호텔 직원은 아침 시간에 CCTV 녹화를 하지 않아 영상이 없다고 했고, 엄마의 의심이 사라질 기회는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온 호텔 매니저는 우리의 사건을 보험사에 보고해 혹시라도(거의 가능성은 없지만) 호텔의 책임이 인정되면 보상을 해주겠다고 약속을 해주었고,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호텔에서 나와야 했다.

그 때가 벌써 오후 1시가 넘었을 것이다. 베른행 기차는 6시 30분으로 예약되어 있었고 이제 5시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다시 두오모로 가서 웅장한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의 푸드코트에서 점심을 먹었다(원래 여기서 쇼핑 또는 아이쇼핑을 하려고 했었으나 그 계획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정말 밥만 먹고 나왔다). 그래도 엄마는 이날 점심으로 먹은 스테이크를 가장 맛있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15유로 짜리 티켓 2장을 구입해 두오모 옥상에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 그러는 사이 엄마의 기분은 마법처럼 녹아 내렸다. 위의 사진은 바로 그렇게 나온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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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7일, 베른 크람 거리의 치트글로게 시계탑의 앞면과 뒷면을 배경으로

젊은 아인슈타인이 특허국에서 일했던 베른은 너무 예쁜 곳이었다. 피터 갤리슨의 논문(아인슈타인의 시계들의 그림 14)에 나온 바로 그 장소에서 엄마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무작정 찾아가 본 곰공원도 재밌었고 장미공원에서 한눈에 내려다 본 베른의 모습도 너무 예뻐서 엄마가 무척 좋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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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융프라우에서. 합성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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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융프라우의 깃발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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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피르스트산 산책로에서. 뉴욕에서 온 어떤 한국인 가족이 요즘은 뒷모습이 유행이라며 이렇게 찍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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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피르스트산 산책로 옆의 꽃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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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꽃 구경 중인 엄마

융프라우와  피르스트산 하이킹은 이번 여행의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그곳은 정말로 그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다. 엄마도 너무 신나 하셨고 만화 같은 사진도 여럿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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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 취리히의 스위스 국립 박물관에 왔다. 설명을 듣고 있는 귀여운 아이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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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 Zeughauskeller에서 점심을 먹었다. 손님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고, 1487년에 지어졌다는 설명문을 읽고서 또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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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 취리히 대학 로비. 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건 소방관을 주제로 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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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 취리히 대학 동물학 박물관. 오래된 동물지 속의 동물들을 모티브로 한 전시가 진행중이었다.

취리히는 이번 여행의 종착지였다. 7월 1일은 비행기를 타러 가야 하는 날이었는데 그냥 가기가 아쉬웠다. 그래서 아침 일찍 취리히 연방 공과 대학에 구경을 갔다. 취리히 연방 공과 대학은 아인슈타인이 다녔던 대학. 취리히 연방 공과 대학은 취리히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있었고, 마침 그 옆의 취리히 대학 로비에서는 학생들의 전시가 진행 중이라 재미있는 구경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침 9시에 문을 연 취리히 대학의 동물학 박물관에서는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던 흥미로운 컨셉의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아침 8시부터 10시까지의 아주 짧은 구경이었지만, 그냥 공항에 갔더라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

이제부터 구체적인 여행기는 앞으로 찔끔찔끔 올릴 예정. 기대는 안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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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의 유럽 여행 첫 날

올해 칠순을 맞이한 엄마와 단둘이 유럽 여행을 왔다. 로마로 들어와 열흘 뒤쯤 취리히로 나가는 여정. 이를 위해 우리는 일단 인천에서 러시아항공을 타고 모스크바를 경유해 로마까지 왔다. 대략 9시간 비행 3시간 환승 후 다시 5시간 비행의 힘든 여정. 더구나 칠순의 엄마에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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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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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항공의 개인지급품. 담요, 베개, 슬리퍼에 안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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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항공스럽지 않은 러시아항공의 화려한 개인 디스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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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볼 수 없었다. 우리줄 3좌석 모두 안 되길래 원래 안 되나보다 했다가, 남들 다 멀쩡히 영화 보는 걸 보고서 나중에 승무원 불러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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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기내식. 비프 오어 치킨? 엄마는 비프. 밥과 함께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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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기내식. 비프 오어 치킨? 나는 치킨. 누들과 함께 나왔다. 참고로 첫 번째 기내식은 피시(아마도 대구) 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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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식을 뜯고 있는 엄마. 엄마는 첫 번째 기내식에 만족스러워 했으나 갈수록 점점 실망스러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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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공의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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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쪽 구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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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공항에 착륙한 비행기. 날씨 완전 멋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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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공항 로마행 비행기 게이트 잎에서. 환승 시간이 짧아 살짝 걱정했었는데 시간이 완전 남아돌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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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공항에서 공항 철도를 탔다. 10시 23분 출발이라던 기차는 55분이 되어서야 출발! 나 완전 화났음ㅋㅋ 그러나 대부분의 승객은 당연한 듯 가만히 있었고 한 외국인 승객만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역무원과의 대화 중 좌절한 그의 말 : 이게 just bad luck이라고? 잇츠 마이 폴트였단 말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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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테르미니역 도착!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50분! 엄마 고생했습니다.

로마의 숙소에 도착한 엄마랑 나는 완전 녹초 상태. 자고 일어나면 원기를 회복하고 로마의 시내를 돌아다닐 예정이었는데, 벌써 깨서(현재 현지시각 새벽 5시) 이 글을 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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