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소화불량, 출간, 인라인

지난 주 하임이는 독감 판정을 받아 일주일 동안 유치원에 가지 못했습니다. 저도 수요일부터 열이 올라서 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아마 저도 독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하임이는 완치 의견서를 받아 어제부터 유치원에 등교하기 시작했고, 저도 일요일부터 컨디션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일요일 저녁으로 치킨을 맛있게 먹은 직후부터 어지럼증이 일어 또 다시 힘들게 한 주를 시작했습니다. 이유를 잘 몰라 살짝 겁이 나기도 했었는데, 이내 소화불량으로 인한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다만 체기가 없어지질 않아 기운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학교 가는 전철에서 잠시 세상이 노래지는 경험도 했고요. 다행히 지금은 모두 멀쩡해진 것 같습니다.

지난 주 목요일에는 제가 번역한 <코페르니쿠스 혁명> 10권이 집으로 배달되어 왔습니다. 오랜 기간 노력한 책이 출간되어 기분이 좋아야 했지만, 몸 때문인지 아니면 책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별로 기분이 나질 않았는데요. 어쨌든 출간 소식을 여기에도 적어야겠지요. 책은 각종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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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는 오랜만에 나름 화창한 날이 되어서 아이들과 집앞 꽁이길에서 인라인을 타고 놀았습니다.

 

 

하늘이에게도 하임이의 스케이트를 신겨 봤는데 무척 즐거워하며 걷더군요. 넘어져도 즐거워 하고요. 하늘이에게도 보호 장구를 사줘야겠어요.

 

 

 

≪코페르니쿠스 혁명≫ 역자 해설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번역본의 출간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현재 최종(?) 교정 작업 중이므로, 아마도 2월이나 3월에는 출간될 것 같습니다. 그 기념으로 제가 책 뒤에 덧붙인 역자 해설을 이곳에 올려봅니다.

 

Thomas S. Kuhn, The Copernican Revolution: Planetary Astronomy in the Development of Western Thought (Harvard  University Press, 1957)
Thomas S. Kuhn, The Copernican Revolution: Planetary Astronomy in the Development of Western Thought (Harvard University Press, 1957)

 

1957년에 출판된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토머스 쿤이 집필한 첫 번째 책이다. 이 책은 5년 뒤 출판한 ≪과학혁명의 구조≫와 함께 과학에 대한 통념을 허물고 새로운 과학관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과학적 변화의 일반적인 성격을 이해하기 위한 거대한 사례 연구로 기획되었으며, 그 내용은 쿤이 강의했던 하버드대학의 교양 과학 수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47년 가을 물리학 박사 과정에 있던 쿤은 하버드대학 총장 제임스 코넌트가 개설한 교양 과학 수업의 조교로 참여하면서 개인적인 ‘혁명’을 경험했다. 17세기 역학의 기원에 대한 강의를 준비해야 했던 그는 뉴턴 역학과의 비교를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을 읽다가 당혹감에 빠졌다. 뉴턴의 역학 체계로 교체되기 전까지 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서양 과학을 지배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가 너무나 엉터리로 보였기 때문이다. 쿤은 그런 엉터리 같은 내용이 사람들을 사로잡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글과 끈질기게 씨름했고, “어느 기록적인(매우 뜨거웠던) 여름 어느 날, 그러한 당황스러움은 한꺼번에 사라졌다”. 그날 그에게는 모종의 “개념적 재조정”이 일어났고, 이를 통해 그는 글 전체를 합리적으로 만들어 주는 이해 방식을 발견했다. 더 중요하게, 개인이 과거의 글을 이해하는 데 그러한 개념적 재조정이 필수적이라면, 그것은 역사적으로도 일어났어야 했다. 이는 쿤이 과학도로서 습득했던 과학 지식의 발전 방식인 축적에 의한 발전과 충돌했다. 1977년 저서 ≪본질적 긴장≫의 서문에서 스스로 회고한 바에 따르면,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음으로써 들춰낸 것은 인류가 자연을 보거나 그것에 언어를 적용하는 데서 이루어진 전체적인 종류의 변화로, 이는 지식의 추가나 단지 단편적인 오류의 수정으로는 적절히 묘사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만약 이러한 종류의 개념적 전환이 과학의 특징이라면, 과학 지식이 어떻게 발전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그림이 필요했다. 그가 보기에 이 그림을 추구하는 최선의 방법은 “과학사학자가 과거를 되찾는 데, 또는 반대로 과거에서 현재로 발전하는 데 필요한 근본적인 개념적 재조정”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1949년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쿤은 하버드대학 특별 연구원이 되어 아무런 제약 없이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과학사학자로 거듭났고, 1956년 UC 버클리로 옮길 때까지 하버드의 교양 교육 및 과학사 조교수로 재직하며 학부생을 위한 과학사 교양 수업을 꾸준히 강의했다. 그 수업의 내용은 차곡차곡 쌓여 바로 이 책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이루는 재료가 되었다. 그렇다면 쿤은 이 책을 통해 과학의 어떤 성격을 드러내고자 한 것일까? 그것은 네 가지 정도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과학은 혁명을 통해 비축적적으로 진보한다. 과학이 진보함에 따라 해명 가능한 현상들은 많아지지만 그것을 설명하는 과학의 개념들은 연거푸 파괴되고 대체된다.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이 얼마나 막강한 체계였는지를 보여 주는 동시에 그것이 결국에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 준다. 이를 통해 아무리 강력하고 그럴듯한 개념 체계일지라도 언젠가는 소임을 다하고 다른 개념 체계로 대체되기 마련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혁명적 교체 과정에는 끝이 없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믿고 있는 개념들 역시 종국에는 파괴될 것이다. 이러한 쿤의 관점에 따르면, 과학의 진보는 진리를 향해 수렴하지 않는다.

둘째, 과학 연구는 개념 체계 또는 전통의 도움을 받아 수행된다. 어떤 개인도 기존 개념 체계로부터 한 번에 벗어날 수 없으며, 코페르니쿠스 역시 태양과 지구의 자리를 바꾼 것 외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 전통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개념 체계는 우리에게 다양한 현상에 대한 통합적인 설명과 심리적 만족감을 제공할 뿐 아니라, 미지의 것을 예측하고 탐지하는 강력한 도구로서 연구의 길잡이가 된다. 좋은 개념 체계는 좋은 연구 문제를 제공하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제공한다. 따라서 개념 체계의 경쟁은 단지 현재의 설명력이 아니라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에 달려 있다. 이론의 ‘정확성’, ‘일관성’과 같은 익숙한 가치 외에 ‘생산성(fruitfulness)’이라는 낯선 가치를 중시했던 쿤의 독특한 관점은 여기서 출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이라는 유명한 개념으로 발전한다.

셋째, 과학혁명은 입증이나 반증의 논리로 진행되지 않는다. 이론과 관찰의 불일치는 전통을 파괴하는 혁명의 궁극적 원천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불일치는 언젠가는 기존의 전통 내에서 해결될 일시적인 불일치로 간주된다. 따라서 이론과 관찰의 불일치 자체는 혁명의 동기나 호소력을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어떻게 시작될 수 있었을까? 쿤은 코페르니쿠스의 동기를 설명하기 위해 그가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은 전문적인 천문학자로서 하늘의 기하학적 조화에 집착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점은 코페르니쿠스 체계에 대한 독특한 수용 과정도 설명해 준다. 그다지 정확하지도 단순하지도 않았던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는 그것의 기하학적 조화를 알아본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호소력이 있었고, 그러한 소수의 노력 덕분에 결국 다수에게 수용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혁명 초기에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수용 여부는 미적 취향의 문제가 되었다.

넷째, 과학의 한 분야는 다른 분야의 사상들과 얽혀 있다. 천문학은 기본적으로 좁은 분야에 속한 전문가들의 활동이긴 하지만, 물리학, 우주론, 종교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천문학의 일부 내용이 바뀌면 물리학과 우주론, 심지어 종교의 내용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한 변화가 완수되기 전까지 천문학의 혁신은 저항을 받는다. 이는 코페르니쿠스에 대한 당시 유럽 사회의 저항이 왜 그렇게 극렬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촉발된 변화가 왜 그렇게 광범위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쿤에 따르면,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코페르니쿠스가 야기한 수많은 천문학 바깥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도중에 완성됐다. 따라서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출판된 1543년에 시작되긴 했지만, 그 혁명은 그로부터 150년 뒤에나 종결될 수 있었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코페르니쿠스만의 혁명이 아니었다.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은 독자라면, 쿤이 제시한 ‘정상과학→위기→과학혁명→새로운 정상과학’의 발전 단계가 이 책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서술되길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기대는 합당하며 어느 정도는 충족될 것이다. 단, 혁명의 전조를 알리는 ‘위기’에 대한 묘사는 쉽사리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1543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출판되기 전까지 당대의 천문학의 상황을 위기로 인식한 사람은 코페르니쿠스를 제외하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에서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의 위기와 가장 근접한 묘사를 찾는다면, 프톨레마이오스의 후계자들이 그 체계에 주전원을 추가해 체계의 복잡성을 증가시켰다는 지적이 전부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지적조차도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코페르니쿠스 이전까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 대한 수정 시도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며, 코페르니쿠스가 활동하던 16세기 초 사람들은 프톨레마이오스의 고유한 체계에 기초한 천문표를 여전히 사용했다. 천문학 이론을 이용해 천문표를 계산하던 사람을 제외하면, 천문학 이론 자체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연구자’ 자체가 극히 희박했던 것이다. 어쩌면 코페르니쿠스는 16세기 초 유럽에서 천문학의 상태를 온전히 이해한 유일한 천문학 ‘연구자’였을지 모른다. 쿤에게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당시 천문학 연구자 공동체의 구성원은 코페르니쿠스 한 명이나 다름없었으므로, 그의 개인적인 위기의식 표명은 공동체 전체의 위기로 간주될 수 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한편, 이론 선택의 문제가 미적 취향의 문제일 수 있다는 쿤의 주장은 엄청난 논쟁을 야기했다. 과학의 합리성을 부정하고 상대주의를 옹호하는 주장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후에 쿤은 자신이 상대주의자가 아니며 이론 선택은 분명히 정확성, 단순성, 정합성, 생산성과 같은 합리적인 가치에 호소해 이루어진다고 했지만, 이론 선택 과정에 주관적인 요소가 일정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과학자들이 위의 가치들을 존중하는 데 모두 동의하더라도 개인들은 다른 이론을 선택할 수 있다. 개인마다 이론의 단순성이나 생산성에 대해 조금씩 다른 판단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각 항목의 상대적인 중요성에 대해서도 다른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이 코페르니쿠스의 체계가 별로 단순하지 않다고 판단할 때, 케플러는 매우 단순하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또 케플러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이론의 단순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 편이었다. 이러한 개인들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미적 취향’의 차이로 본다면, 케플러는 당대의 평균과는 꽤 동떨어진 취향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만약 16, 17세기의 모든 과학자가 평균 취향에 따라 획일적인 선택을 했다면, 코페르니쿠스 이론처럼 이단적인 이론은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했을 것이다. 즉, 쿤에게 개인들의 취향 차이 혹은 주관적인 요소는 혁명을 가능케 하는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설명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이 쿤의 철학적인 견해를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책으로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자체로 훌륭한 역사서이자 대중과학서다. 이 책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의 상당 부분을 그대로 인용함으로써 코페르니쿠스 본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줄 뿐 아니라 코페르니쿠스 체계에 대한 유럽인들의 다양한 반응들 역시 당시 대중 작가들과 성직자들의 입을 빌려 매우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또한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비롯해 역사적으로 등장한 다양한 이론과 방법들을 상세하면서도 명료하게 설명해 준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정교하게 그려진 독창적인 다이어그램들은 어쩌면 이 책의 가장 큰 기여 중 하나일 수 있는데, 그의 다이어그램들은 교육적인 목적으로 수없이 복제되었을 것이다.

부디 이 멋진 책을 읽고 다채로운 즐거움을 함께 맛보길 바란다.

최근 근황

1. 번역 완료

 

토머스 쿤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초역 원고를 어제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원래 지난 2월까지 보내겠다고 한 원고였는데 한참이 미뤄졌네요. 부인님도 한 번 봐주겠다고 했고 원래 한 번은 검토하고 보내는 게 맞을 것 같지만, 그러다 보면 또 한두 달이 훌쩍 지날 것 같아 그냥 보내버렸습니다. 교정지가 오기 전까지 저도 따로 검토를 해서 교정지에 반영을 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번역에서 가장 어려웠던 번역어는 ‘thought’이었던 것 같습니다. ‘Western thought’, ‘scientific thought’ 등으로 책에서 엄청나게 많이 등장하는 단어였는데요. 이 책의 맥락상 ‘사상’이라고 하면 딱 맞는 번역이겠지만, 한국어에서 ‘사상’이라고 하면 매우 거창한 뉘앙스가 있잖아요. 그래서 ‘서구 사상’이라고 하면 꽤 그럴듯하지만, ‘과학 사상’이라고 하면 좀 어색한 느낌이 있지요. 그래서 문맥에 따라 ‘사상’이라고도 했다가 ‘사고’나 ‘사고방식’으로 번역을 하긴 했는데, 별로 만족스럽지가 않네요. 교정지가 오기 전까지 고민이 마무리되길 빕니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Copernican’이나 ‘Aristotelian’과 같은 형용사의 번역이었습니다. 이러한 형용사는 코페르니쿠스나 아리스토텔레스 본인을 지칭하기보다 코페르니쿠스적이거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것을 지칭합니다. 그래서 ‘-의’로 번역하면 간혹 오해를 초래할 수 있더군요. 그렇다고 위의 단어가 나올 때마다 ‘-적’이란 어미를 적으면 문장이 아주 안 예뻐집니다. 다행히 몇몇 구절에서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처럼 어미 없이 써도 괜찮을 때도 있었지만, 다른 많은 부분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아 무엇보다도 책의 부제를 만족스럽게 번역하질 못했는데요. 

 

The Copernican Revolution: Planetary Astronomy in the Development of Western Thought

코페르니쿠스 혁명 : 서구 사상의 발전과 행성 천문학

 

어때요? ‘in’을 살리려면 문장이 복잡해져서 그냥 포기하고 ‘과’로 해버렸습니다. 혹시 ‘in’의 의미를 살리면서 문장을 아름답게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분들은 의견 부탁 드려요.

 

2. 첫 대중 강연

 

김영사의 지식인마을 시리즈 중 한 권인 <패러데이&맥스웰> 덕분에 난생 처음으로 대중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식인마을 40권 완간 기념 2차 강연회라고 하는데요. 저는 7월 17일 정독도서관에서 “전류계와 전압계가 없던 시절의 전기 과학”이란 주제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이 제 강연을 들으러 올지 무척 궁금하네요. 참고로 제 부인님은 이번주 목요일(7월 10일)에 강연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