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mpiricist Temper Regnant: Theoretical Physics in the United States, 1920-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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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 Schweber, "The Empiricist Temper Regnant: Theoretical Physics in the United States, 1920-1950," HSPS 17(1) (1986), pp. 55-98

1920년대부터 미국의 물리학은 변화하기 시작. 20년대부터 이론 물리학이 서서히 성장해가긴 하지만, 그것이 독자적인 분야로 정립하기보다는 실험과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 상호발전하게 되었다고 함. 당시 이론물리학이 발전하게 된 이유로는 물질 이론이 정교화해감에 따라 이론물리학자들의 유용성이 인정되면서 그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점과 유럽에서 물리학자들이 대거 망명해온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경험주의적, 실용주의적인 철학, 대학의 학부제도, 그리고 당시의 전쟁 상황은 이론 물리학을 실험 및 실용성과의 밀접한 연관 속에서 발전시키게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발전으로, 이론 물리학은 순수학문으로 인정받는 한편, 미국 물리학에서 이론과 실험간의 긴밀한 협동은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된다.

1. 철학적 개요

  • 실용성! [철학, 이론 -> 실험] 보다는 [실험 -> 철학, 이론 적용]
  • 문화적 요인 있을 것. 사회적 부의 창출에 대한 요구. (역사적으로도 이론보다는 실험이 발달).
  • 조작주의. 관측결과가 ‘의미’에 영향. -> 오펜하이머에 영향
  • 설명(explanation)보다 기술(description) 강조. (특히 빛의 이중성에 대해)
  • 이론의 철학적 해석보다는 현상에 대한 설명(기술)과 예측에서의 유용성 강조 (특히 양자역학에서)

2. 제도적 요인

  • 대학 내에 이론분야와 실험분야가 한 학부에 함께 속해있음.
  • 이론 물리학자도 실험 관심. 실험 물리학자도 이론의 중요성 인식 -> 유럽의 학자들 초청 강연. 이론과 실험을 배우는 학생들 유럽으로 유학 과정 이수.

3. 30년대

  • 30년대 물리학 성장 두드러짐.
  • 30년대 초, 이론 물리학자들이 대학에 정착. 대학원생 꾸준히 양성. 이론 물리학도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섬. (예: 미시건 대학의 이론 물리 심포지엄 개최) 한편, 유럽의 물리학자들 미국으로 대거 망명해옴. 그러나 그들은 미국의 분위기를 바꾸기보다는 그 분위기에 동화해감.
  • 한편, 핵물리학의 발전은 이론과 실험의 관계가 매우 밀접해지는 계기가 되었음.

4. 오펜하이머와 그의 학파

  • 오펜하이머는 원래 이론 물리학자. 그러나 실험 물리학과의 협동 연구의 중요성 간파. 특히 전쟁 기간 중 맨하탄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으면서, 이론과 실험을 조화시키는 방법 완전히 체득. 이러한 오펜하이머 지도 아래 많은 대학원생 양성됨. 이론과 실험 사이의 긴밀한 관계는 자리를 잡게 됨.
  • 이러한 사례는 20-50년대 미국 물리학의 변화를 대표하는 사례라 할 수 있음.

5. 전쟁과 전쟁 이후의 기간

  • 전쟁이 대학의 연구 형태에 큰 영향을 미침.
  • 연구의 대형화 (로렌스 실험실 등)
  • 이론 물리학자들에 대한 존경 -> 이론 물리학이 순수 학문으로서 인정. (파인만의 QED)
  • 한편, 이론 물리학자들은 실험과의 협동 강조했으며, 전시의 이론과 실험의 긴밀한 협동은 전후 미국에서 자리를 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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