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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7일 (수) 12:54 판
Kareem Khalifa, Understanding, Explanation, and Scientific Knowle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7), Ch. 6.
칼리파는 "왜 p인지에 대한 이해가 p에 대한 근사적으로 참된 설명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지 않는다"라는 비-사실주의(Non-Factivism)을 논박하며, 준-사실주의(Quasi-Factivism, 단순히 비-사실주의의 부정)를 주장한다.
칼리파는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일단 다음의 세 가지 명료화를 통해 논의를 세팅. 첫째, 비-사실주의자들은 이해가 거짓된 설명에 기반함을 가정하다고 가정할 것이다. 둘째, 이런 정식화는 너무 쉬운 반례들(예 : 동일한 현상에 대한. 참된 설명과 거짓된 설명을 모두 믿지만 이해는 후자에만 기초하는 사람)에 직면하는데, 이는 일단 무시할 것이다. 셋째, 준-사실주의와 비-사실주의의 논쟁에서 관건이 되는 근사적 참의 대상은 "q가 왜 p인지 설명한다"는 형태의 문장들이다(과학적 실재론 논쟁에사 중립성 유지 위함).[1]
역사적 논증
여기서의 핵심 타켓은 데 레흐트(De Regt 2015). 데 헤르트의 논변은 아래와 같이 정식화될 수 있다.
- 역사적 논증
- H1. 일부 과거의 과학자들은 현상에 대한 거짓된 설명을 믿고 있었다.
- H2. 그럼에도 이 과학자들은 왜 현상이 그러한 성질을 가졌는지에 대한 모종의 이해를 가졌다.
- NF. 따라서 왜 p인지에 대한 이해는 p에 대한 근사적으로 참된 설명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지 않는다. [159쪽 오타 있음]
데 레흐트의 핵심 사례는 플로지스톤 이론가들이 거짓된 설명을 믿었지만, 금속이 녹슬거나 물체가 타는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이해를 가졌다는 것이다. 칼리파는 이를 아래와 같이 공략한다. 칼리파에 따르면, 플로지스톤 이론가들은
- 왜 금속이 녹스는지에 대한 [반실재론적 '이해가능한'/실재론적이든 '진정으로 지칭적인'] 참된 설명을 믿고 있었거나(설명적 반론)
- 현상에 대한 왜-이해(understanding-why)가 아닌 어떻게-이해(understanding-how)만을 가졌거나(잘못된 이익 반론)
- 왜 금속이 녹스는지에 대한 최소 이해에 미달하는 원시적 이해(proto-understanding)만을 가졌다(올바른 방향 반론).
코멘트 : 그래서 칼리파는 세 가지 반론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는가? 이런 식의 "1 아니면 2 아니면 3" 식의 반론은 반대를 위한 반대처럼만 보임.
이상화 논증
각주
관련 항목
- ↑ 칼리파에 따르면, 자신의 틀에서, 실재론적 존재론적 기준을 택하든, 반실재론적 존재론적 기준을 택하든, 프톨레마이오스식 설명들은 거짓이고, 전기저항에 기초한 설명들은 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