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hings Are"의 두 판 사이의 차이

31,585 바이트 추가됨 ,  2025년 11월 23일 (일)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14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번째 줄: 1번째 줄:
Percy W. Bridgman, The Way Things Are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59).
Percy W. Bridgman, The Way Things Are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59).


== 챕터별 ==
== 2장. 단어, 의미, 언어 분석 ==
단어의 의미에 대한 사용 이론과 유사한 견해를 제시하고, 이와 관련된 여러 논점들을 검토함.


=== 2장. , 의미, 언어 분석 ===
* 사고에 단어(언어) 필요? 불필요? 주제에 따라 다름. 운전할 때, 설계할 때 언어적 요소 거의 불필요. 그래도 의사소통에는 단어 필수적. 또 단어는 definiteness과 publicity를 가져서 분석 대상으로 알맞음.
말의 의미에 대한 사용 이론과 유사한 견해를 제시하고, 이와 관련된 여러 논점들을 검토함.
* 그런데 단어란? 구체적인 단어에서부터 시작해보자. 개별 단어는 다양한 형태로 구현 가능하다는 특징 있음.
* 이때 동일한 단어란? 철자가 다는 아님. 철자가 바뀌기도 하고, 의미가 바뀌기도 함. 단어의 동일성은 단어를 주고받을 때 이루어지는 활동과 관련되어 있음. 단어의 동일성 지각은 subconscious적인 노하우. 물체 지각처럼과 같은 언어적 지각(verbal perception)을 얘기할 수 있음.
* 언어적 의무감(verbal compulsion) : 감춰진 토톨로지 또는 토톨로지 비슷한 공유된 규약 반영. [선험적 종합 명제 같이 당연한 것. 장하석의 '존재론적 원리'와 유사]
* 언어적 지각 개인차 있을 수 있음.
* 단어의 의미는 의사소통의 방법으로서 사회적 상황에서의 기능과 같은 것. 단어의 의미를 그것의 사용을 통해 정의할 수 있을지도. 물론 사용의 동일성을 너무 넓지도 너무 좁지도 않게 규정해야.
* 사회적 상황에서 오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의미는 "성공적 의사소통"과 결부되어 있음. 그러면 성공적 의사사통을 판단하는 기준은? 모든 의도한 귀결 검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일부만 검사 가능. 나머지는 성공 희망할 뿐.
* 분석의 종착지는 ostensive? 이는 지나친 단순화.
* 의사소통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결과는 모종의 (명시적이든 홤축적이든) 활동. 이때 활동과 단어 사이의 관계는 자의적. 그것은 사회 및 역사에 의존. 코드표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있음. 의미의 활동적, 사용자 의존적 측면을 고려할 대, 단어의 의미를 묻기보다, 그 단어로 의도하는 바를 묻는 방식이 더 좋음. "단어 X는 무슨 의미인가?" 대신 " 나는 단어 X로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물론 실용적으로는 마치 단어가 의미를 가진 것처럼 취급해도 무방하지만.
* 의미의 제약 조건들 : 시간적 안정성, 공유성,  
* 단어 "나"의 분석 : 사용자에 따라 외연 달라짐. 그러면 "나"의 의미는 사용자에 따라 달라진다? 사용자와 지칭대상의 관계의 측면에서 의미가 동일하다고 봐야.. 즉 "나"의 의미는 관계적.
* 단어의 의미는 항상 애매하다. 보통은 맥락의 도움을 받아 의미 더 분명히 할 수 있음.
* 의견 불일치시 우선 의미 분명하게 벼리는 작업 필수. 특히 과학에서 중요. 수학적 관계식은 이에 큰 도움. 그러나 완벽하진 않음. 관게식의 각 변수의 의미(그 값을 결정하는 절차)가 분명치 않을 수 있기 때문! 이를 개선하려면? 조작 분석 필요. 조작 역시 일종의 활동이다.
* 조작 분석에 따라 알 수 있는 의미 일반의 추가적인 특징 : (1) 전체는 부분의 합 아님 (2) 진술의 형태에 따라 다른 조작 활동 결부됨(진술문, 의문문, 명령문).
*문법은 단어 조합 방식의 측면을 다루는 분야. 문법은 변화 가능하고 실제 사용 후에 확립. 단어가 먼저? 단어 조합이 먼저? 문법적 판단 능력은 언어적 지각 능력과 유사. 어느 정도 무의식적.
*언어간 번역의 어려움. 한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걸 다른 언어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기도 함. 분야마다 언어 다듬을 수 있음. 그래서 물리학의 언어, 생물학의 언어 등.
*언어간 체계. 한 언어의 원초 용어 분석 위해 메타 언어 필요. 우리는 이런 메타적 표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하나의 언어 내에서도 어떤 부분을 재귀적으로 언급할 수 있음. 말에 대한 말에 대한 말에 대한 .
*언어의 태생적 오용 가능성


=== 3장. 보다 기초적인 방법론 ===
== 3장. 보다 기초적인 방법론 ==


==== 조작 일반 ====
=== 조작 일반 ===


* 활동, 수행, 조작 (vs. 발생) : 이들은 목적과 수행자 필요.
* 활동, 수행, 조작 (vs. 발생) : 이들은 목적과 수행자 필요.
23번째 줄: 40번째 줄:
*위의 얘기들은 장하석이 "인식적 반복의 방법(epistemic iteration)"이라고 부른 방법을 떠올리게 함.   
*위의 얘기들은 장하석이 "인식적 반복의 방법(epistemic iteration)"이라고 부른 방법을 떠올리게 함.   


==== 좋은 조작과 규약 ====
=== 좋은 조작과 규약 ===


* 과학은 감각들 사이의 상관관계 이용하면서 시작하며, 그 덕분에 우리가 다루어야 할 복잡성 감소(e.g., 세계의 기하학적 측면 → 위치들 → 특정 준거틀에 기초한 좌표).
* 과학은 감각들 사이의 상관관계 이용하면서 시작하며, 그 덕분에 우리가 다루어야 할 복잡성 감소(e.g., 세계의 기하학적 측면 → 위치들 → 특정 준거틀에 기초한 좌표).
32번째 줄: 49번째 줄:
*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중력장을 기하학의 문제로 환원시키는데, 만약 이것이 전부라면 힘은 순수 규약일 뿐이 되는 것인가? 그러나 브리지만은 공간을 휘게 하려면 뭔가가 또 있어야 한다는 점에 호소하여, 즉 곡률을 만들어내는 추가적인 방법이 있다느 점에 호소하여 힘에 (어느 정도의) 물리적 실재성 부여할 수 있다고 주장.  
*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중력장을 기하학의 문제로 환원시키는데, 만약 이것이 전부라면 힘은 순수 규약일 뿐이 되는 것인가? 그러나 브리지만은 공간을 휘게 하려면 뭔가가 또 있어야 한다는 점에 호소하여, 즉 곡률을 만들어내는 추가적인 방법이 있다느 점에 호소하여 힘에 (어느 정도의) 물리적 실재성 부여할 수 있다고 주장.  


==== 같은 결과를 얻는 다른 경로들 ====
=== 같은 결과를 얻는 다른 경로들 ===


* 앞의 소절과 이 소절의 내용은 장하석이 중첩결정(overdetermination)이라고 정식화한 얘기의 출처로 보임.
* 앞의 소절과 이 소절의 내용은 장하석이 중첩결정(overdetermination)이라고 정식화한 얘기의 출처로 보임.
* 열전도 방정식 "Q=k∇T"의 사례 : 열전도율 k는 Q/∇T로 정의?
* 열전도 방정식 "Q=k∇T"의 사례 : 열전도율 k는 Q/∇T로 정의될 뿐? No, k가 Q, T, 물질의 위치 등의 변화에 무관한 불변성(invariance)을 띤다는 것을 알게 되면, k에 대한 중첩결정 가능해지고, 열전도율은 순수 규약이 아닌, 물질의 고유한 속성처럼 취급될 수 있음. 그럼 이번엔 열 유동량 Q는?
*열전도율의 복잡성 : 열 전달은 적어도 두 가지 독립적인 과정(전도와 복사)을 통해 이루어짐. 그러면 열전달 방정식을 통해 구한 열 전도율 k는 새로운 요소들을 고려함에 따라 바뀌어야 함. (과학 법칙들의 규약적 성격을 인지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답으로도 볼 수 있음)
*중첩 결정은 검증 방법으로도 사용 가능. 단순 반복도 검증에 기여(시간 무관성 입증). 순수 ad hoc은 왜 문제? 중첩결정 불가능하므로 그 구성물이 "실재하는" 무언가와 대응하는지 검증할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


==== 검증 조작 ====
=== 검증 조작 ===


==== 동일성 판단 조작 ====
* 검증은 인간적. 특히 사적.
* 검증은 애매한 개념. 검증 절차는 유일하지 않음.
* (반증과 달리) 검증(입증)은 확실성 주지 않음. 검증 과정에서 동일한 실수 반복 가능성 항상 있기 때문.
* 이웃이 한 말에 대한 검증 : "다시 얘기해 주세요." 등
* 검증은 무엇에 대한 검증? 진리에 대한 검증? No. 진리는 불필요. "진리"는 언어적 인공물일 뿐.
* 진술 자체에 대한 검증 vs. 진술이 가리키리는 사실에 대한 검증 : 두 검증의 맥락이 다름. 과학은 주로 후자의 관심
* 심리적 주장, 논리적 주장 등의 검증 사례(pp. 60-61)
* 과거의 사건에 대한 진술 검증의 간접적, 추론적, 전체론적 성격
* 검증 방법으로서의 공공성과 합의 직관적. 그러나 모두가 속을 가능성 있음.
* 자기 의심
* 검증은 확실성보다는 개연성만을 제공. 그러나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이 "개연적" "지식"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분해 불가능한 "개연적-지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음. 현 지식의 개연성에 대한 수치적 평가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도 오산.


==== 미래와 기다림의 조작 ====
=== 동일성 판단 조작 ===


==== 프로그램 ====
* "동일한"이란 말 언제 하나? 그 적용대상 다양.
* 완벽히 동일한 사례는 없음. 우리는 차이 인지 못하거나 무시할 때 두 대상이 동일하다고 말함.
* 동일성은 원초적이면서 목적 상대적 개념
* 나의 동일성을 설명하기 위한 "ego"는 언어적 인공물


==== 조작 수행자의 역할 ====
=== 미래와 기다림의 조작 ===


==== 조작의 수준들 ====
* 미래의 조작적 의미는? 아마도 기다림이라는 조작과 관련. 그런데 기다림은 적법한 조작? 아닌 듯.
* 브리지만에게 모든 의미는 현재적 의미를 가리킴. 그래서 기다림 조작은 배제. 그러면 미래와 관련된 진술의 의미는 어떻게 분석?
* "기대"와 연결지는 방법 : 미래를 얘기할 때마다 불확실한 기대를 가지므로. 그래서 미래에 발생하는 일은 기대와 무관하게 수용하는 태도를 가짐. 또한 미래에 관한 진술은 진술이라기보다 "유사-진술"이라고 봐야. 현재로서는 검증 방법이 없으니까!
 
=== 프로그램 ===
 
* 미래에 관한 진술의 의미를 포착하는 더 좋은 방법은 행위의 프로그램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기.
* 프로그램이란? 조작수행(instruction)의 연쇄 및 조건적 분기(if문).
* 그러면 미래에 관한 진술은 나의 프로그램에 관한 진술로 해석 가능!
* 프로그램을 통한 분석의 장점 : 반사실적 진술에 의미 부여 가능! "메리가 지난주에 집에 왔더라면 나는 그녀에게 키스를 했을 텐데."라는 진술은 지난주 나의 프로그램에 관한 실제 사실에 관한 (참된) 진술일 수 있다.
* 프로그램 vs. 믿음 or 다짐(commitment) or 신념(faith) : 과학자가 자연법칙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나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고도, 과학자들이 자연법칙의 존재에 대한 가정을 최선의 내기로 가지는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음. 이때 best bet은 faith가 아님 (근데, 현대 베이즈 결정 이론가들에 따르면 belief가 결국 bet으로 정의되는 것 아닌가?)
* 너무 먼 미래는? 내 자손의 프로그램 수행으로? 미래에 관한 진술의 간접적 특징 강조될 필요 있음. "나는 지구상의 생명이 모두 죽은 뒤에도 지구는 자전할 거라고 믿는다"라는 문장은 지구 자전에 관한 현재 수용된 방정식이 생명체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과 관련되어 있음.
* 이런 식의 조작적 분석에 대해 불만족스러워하는 사람들 있을 것. "사후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어"라는 말은 그저 나의 교회 다니기 및 악행 금지 프로그램과 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뭔가 더 있어야 하지 않은가? 브리지만의 답변 : 도대체 뭐가 더 필요한가?
* 무한 개념 분석 : 무한이 수를 생성하는 프로그램의 수행. 멈추지 않는 속성은 무한 수의 속성이 아니라 수 생성 프로그램의 속성.
 
=== 조작 수행자의 역할 ===
 
=== 조작의 수준들 ===
 
== 5장. 물리과학의 일부 측면들 ==
물리과학은 어떤 특징이 있는가?
 
* 과학자가 과학의 최종 산물에서 사라진다. 즉 과학적 보고는 특정 개인에 의존하지 않는 방식으로(impersonal way) 기술된다. 그래서 과학자 개인의 동기나 사회적 영향에 대한 고려도 배제된다. 과학의 개념에 사회적 책임을 포함시키는 것은 혼동만 야기하기에, 과학과 사회는 분리시키는 것이 좋다.<ref>과학자도 사회적 가치를 과학자로서 고려해야 한다는 러드너(Rudner 1953)의 주장에 정확히 반대한 것임. 1947년에 브리지만이 쓴 두 편의 글을 참고할 수 있다. "Scientists and Social Responsibility", The Scientific Monthly (1947); "Science and Freedom Reflections of a Physicist", Isis (1947). 이를 다룬 논문은 https://philarchive.org/archive/JALBAT </ref>
* 과학은 합의에 높은 가치를 두지만, 여기에는 제한이 있다는 데 주의해야 한다.<ref>합의를 과학의 중요한 특징으로 제시했던 쿤이 떠오르는 구절이다.</ref> 첫째, "유능한 사람"으로 제한된다. 둘째, 합의는 참을 보장하지 못한다. 합의의 원인인 문화적, 생물학적 공통점 때문일 수도 있다.
* 과학에서는 측정과 실험이 중요하다. 그리고 여기에는 도구(instrument)의 사용이 깊게 관련되어 있다. 물론 측정, 실험, 도구 모두 사람과 관련되어 있지만, 이 장에서는 이 주제들을 가능한 비개인적인 방식으로 다룰 것이다.
 
=== 실험의 역할 ===
실험은 크게 (1) 새로운 현상의 발견과 (2) 이해 증진의 도구로서 역할을 한다.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는 데 실험이 필수인 것은 아니지만, 실험의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다. 한편 실험의 이해 증진 역할도 빼놓을 수 없는데, 흔히 변수의 세심한 통제를 통해서 이해를 제공한다. 그러나 혹자는 실험의 이런 역할을 너무 과대평가한다. 허튼(Hutten)의 최근 저서 The Language of Physics는 실험이 항상 가설의 시험과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하지만, 모든 실험이 가설의 시험을 목적으로 하진 않는다. 실험을 할 때 어떤 예측을 하더라도, 그 예측을 검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 예측과 어긋나는 일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실험은 큰 가치가 있다.
 
실험의 한 가지 보편적 특징은 재현가능성에 대한 요구이다. 재현 불가능한 실험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 실험 중인 과학자는 특정한 대상이나 상황보다는 대상이나 상황의 유형을 다룬다고 할 수 있다.
 
=== 도구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 ===
tool과 instrument 구분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님. 실험 도구(instrument)는 현재 여기의 특정한 조건을 '고립'시킴으로써 그 조건에 의미를 부여한다. 자나 시계처럼 특정 조건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도록 만들어진 도구도 있지만, 계산원처럼 사람이 포함되는 도구도 가능하며, 과거의 조건들에 누적해 반응하는 도구도 가능하다.
 
도구는 일상적인 감각 세계를 확장시켜주는 역할을 하곤 한다. 그런데 그러한 확장은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한 가지 방법만으로는 정당화되지 않지만, (독립적인) 두 가지 방법으로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by two method of getting to the terminus) 가능하다.<ref>장하석은 이를 '중첩결정'(overdetermination) 개념으로 일반화한다.</ref> 예컨대, 확대경으로 개별 섬유가 꼬아져 있는 걸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밧줄을 우리가 직접 꼬아서 만들었다는 점에 기초해 그 관찰이 일상적 감각 세계의 확장임이 정당화될 수 있다.<ref>이언 해킹의 격자 논증이 떠오르는 구절이다.</ref> 마이크로미터는 촉각적 세계의 확장이고, 증폭기는 청각 세계의 확장이다. 이러한 확장은 언제나 제한된 확장이고, 비판적 검토 없이 그러한 확장이 무한정 이어질 거라 가정하면 안 된다(난장이 인간, 로렌츠의 전자 이론 등은 무비판적 확장의 대표 사례). 최근, 최소 길이, 최소 시간 등의에 대한 논의는 이러한 상황을 깨달았음을 보여주는 징표이지만, 그들의 구체적인 제안들은 아직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 측정과 측정도구 ===
도구적으로 확장된 감각 세계가 맨 감각 세계와 얼마나 유사한가? 예컨대 하위시각(subvisual) 세계도 일상 감각 세계의 기하학처럼 유클리드적일까? 이에 답하려면 측정과 측정 도구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
 
측정은 수를 이용한 대상의 기술(description)인데, 이것이 성공적이려면 (다른 측정에 의해서도) 반복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측정 과정이 자기자신을 먹고 살 수도 있다(feed on itself). 새 측정 방법의 발명은 기술되어야 할 새로운 특징을 도입하도록 만든다(예 : 순간 속도). 또한 측정은 항상 대상이나 사건의 일부 측면에 대한 기술일 뿐이다. 그리고, 수치를 할당하는 과정은 측정 조작과 조작 대상 사이의 모종의 관계를 전제하는 규칙을 요구한다.<ref>이는 장하석이 "법칙에 의거한 측정의 문제"(problem of nomic measurement)로 명명한 문제이다.</ref> 또, 측정 조작은 보통 도구 사용과 관련되는데, 측정 도구는 범위가 제한되며, 독립적으로 반복사용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유형의 도구들은 그것이 측정하는 대상의 속성을 동일하게 가진다(예 : 자는 대상의 길이를 재는 도구이지만, 자도 길이가 있다).
 
물리적 측정 조작(operation)은 보통 모종의 수학적 연산(예컨대 덧셈)과 동형적이고, 이는 측정 결과에 대한 수학적 연산을 허용해줌으로써 유용하다. 물론 덧셈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측정도 있는데(예 : 모스 경도), 이것이 과연 측정에 해당하느냐는 순전히 언어적 문제, 즉 우리가 정의하기 나름인 문제이다.
 
측정의 또다른 언어적 측면이 있는데, 우리는 측정할 때 측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곤 한다. 예컨대 자로 측정할 때, 무엇을 측정하는지 묻는다면, "길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길이"란 무엇인가? 이는 우리가 수행하는 측정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가? 하지만 "길이"처럼 명사형의 이름으로 그것을 부른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가 수행하는 측정 절차의 축약 너머 무언가가 추가되진 않는 것 같다. 어쩌면 이는 상황의 단일한 특징을 뽑아내어 명사로 표현하길 좋아하는 인도-유럽어의 사고 경향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대상의 길이는 대상의 길이 측면에 대한 측정 절차와 관련된 수치, 또는 대상의 길이 측정 조작을 수함으로써 얻어지는 수치이다.
 
길이와 달리 시간은 대상보다는 사건의 측면에 대한 측정 조작과 관련된 수치로, 길이와 마찬가지로 덧셈 연산 가능하다. 그런데 경험의 시간은 비가역적이고 회복불가능하다. 그래서 엄밀하게 말하면 오직 시간 간격만이 측정되고 연산된다.
 
이제 도구에 대해 얘기해보자. 도구마다 정밀성이 다르다. 최소 눈금 이하는 관측 때마다 달라질 수 있지만, 반복 측정 결과를 통계적으로 처리하여 어림될 수 있다. 도구의 불완전성은 다양한 방법으로 개선할 수 있다. 눈금을 날카롭게 바꿀 수 있고, 온도 등에 따른 변동가능성이 작은 물질을 사용할 수도 있고, 이를 통해 "오차"를 줄여 "더 좋은" 측정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개선은 "올바른" 또는 "참된" 길이를 가정한다. 그러나 양자 현상은 이러한 "참된" 길이 자체에 대한 가정을 의심하게 만든다. 길이가 요동치지 않는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참된 길이" 개념은 전-양자 시대의 유물로서, 최선의 도구를 계속 개선할 수 있었다는 사실의 (정당화되지 않는) 외삽처럼 보인다. 또는 그 파생상품이 수학적 이론에도 있다. 수학적 방정식의 좌변과 우변을 정확히 일치시키는 값이 "참된" 값이라고 가정된다. 물론 이에 대한 실험적 증명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양자 현상은 이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양자 이론도 "참된" 길이 개념을 사용하지 않나?
 
측정의 확실성은? 우리가 가진 측정 도구의 최소 눈금을 고려한 반복 측정의 하단과 상단을 통해, 어떤 물체의 길이가 확실히 1피트와 2피트 사이라고 말해도 될까? 적어도 우리는 가우스 오차 이론을 문자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발생하는 수학적 불확실성은 거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론에 따르면 그 길이 주장이 거짓일 확률은 조금이지만 남아있지만, 이러한 극단은 경험적 근거가 없다.
 
=== 도구적으로 확장된 세계 ===
도구적 확장된 세계의 한계 : 유클리드적 성질 10<sup>-13</sup>cm까지는 연장됨. 미시적 길이의 조작적 의미는 계속 바뀌며, 중국에는 거시적으로 축정된 양의 함수가 그것을 대체해도 특정한 방정식이 만족된다는 의미만 남는다. 하이젠베르크 길이 10<sup>-23</sup>cm, 에딩턴 길이 10<sup>-43</sup>cm에 이르면 그것의 모든 물리적 의미가 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지각의 시간은 역학의 시간과 거의 유사(10<sup>-8</sup>초), 이 범위에서 수정 시계의 진동은 탄성에 대한 일반적인 역학 방정식 모두 만족. 원자 시계는 전기동역학 방정식의 시간으로, 이는 더 정확함. 일상적 시간은 부정확하고 수치화되지 않은 채 전후 관계로만 특성화됨. 이는 온도의 경우와 유사.
 
생리학적 온도는 더 따뜻한, 더 차가운 관계에 의해서 규졍. 이는 그보다 더 정확한 수치 온도계의 온도로 전환될 수 있음. 이때 새 온도의 추가적인 요구조건은 열역학 제2법칙. 즉 온도는 제2법칙이 만족되도록 정의됨! 그러나 이 진술의 규약적 성격은 제2법칙이 모든 물질에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에 의해 제거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간은 뉴턴 역학이 만족되도록 정의된 것으로도 볼 수 있고, 뉴턴 역학의 보편적 타당성 덕분에 우리는 그것을 순수 규약으로 다루진 않는다. 특정한 시스템에서 뉴턴역학이 유지되도록 만들어진 시계가 다른 시스템에서도 뉴턴 역학 만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뉴턴 역학이 만족되도록 시계를 만들라"라는 주문에 구체적인 내용이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고, 그 시계의 보편적 성공(다른 시스템에서의 뉴턴 역학의 만족)에 의해 그 시계를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작은 시간 간격에서, 10<sup>-8</sup>초보다 작은 시간 간격에서, 우리는 뉴턴 역학 대신 전기동역학을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시간을 재정의하여 원자시계를 제작한다. 10<sup>-10</sup>초나 더 작은 시간 간격의 의미는 원자핵에 대한 이론과 실험에서의 정합성에 간접적으로 의존한다. 그러나 더 작은 시간은? (질문만 하고 답은 안함)
 
일반화 시도 : 첫째, 시간의 본성에 관한 질문은 다른 종류의 것들과 분리 불가능하다(의미 전체론). 둘째, 심리적 시간은 부정확하고, 이를 도구적으로 확장된 시간으로 해결하고 설명할 수 있지만, 시간 개념에서 내적 경험과의 관련성을 끊을 수는 없다. 우리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우리의 지각의 세계이며, 심리적 현재는 도구적 세계의 이상화된 확장의 현재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어쩌면 물리학자들에 말대로, 공간과 시간은 불연속적이고, 자연적 최소 단위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의 의미는 무엇이며,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실험적으로 알 수 있는가? 그것을 검증하고자 하는 시도는 매우 어려운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요컨대, 도구는 우리에게 어떤 종류의 정보를 제공해줄수 있는가? 도구는 얼마나 도구 자신에 의해 윤색된 것을 우리에게 제공하는가? 혹은 도구는 얼마나 도구 자신과 독립된 무언가를 드러내 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특정한 범위의 현상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일상에서는 그러한 질문이 중요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범위에서는 관측 도구와 관측 대상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그리고 때로는 일상적인 수준에서도 둘의 분리가 부적절한 상황이 존재한다.
 
=== 장 개념 ===
측정도구와 대상을 분리시킬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장' 개념을 들 수 있다. 장은 도구적으로 정의되고 측정되는 물리량인 한편, 원거리 작용과 달리 인접 작용의 매개체로서도 간주된다. 이때 두 가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 첫째, 도구적으로는 원거리 작용과 매개를 통한 작용이 구분되지 않는다. 도구를 통한 장 측정 결과는 원거리 작용으로도 설명되기 때문이다.
* 둘째, 측정도구는 도구의 존재와 독립적인 상태를 얼마나 드러낼 수 있느냐의 질문과 관련되어 있다. 장 측정을 위해 테스트 전하를 해당 위치에 위치시키면 장은 그로부터 영향을 받고, 테스트 전하는 그렇게 변화된 주위의 장으로부터 "맥스웰 응력"을 받는다. 응력의 차이는 전하에 작용하는 힘으로 드러나는데, 신기하게도 그 힘은 테스트 전하를 놓기 전의 전기장과 전하량의 곱과 같다. 그런데 이것은 전혀 신기한 일이 아는데, 왜냐하면 맥스웰 응력은 정확히 그렇게 값이 유지되도록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테스트 전하가 "정말로" 원래의 장을 변화시켰는지, 맥스웰 응력이 "물리적 실재"하는지도 도구적으로는 답할 수 없다. 맥스웰 응력은 종이와-연필 수준에서만 의미를 가질 뿐, 실험적으로는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ref>비슷한 주장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논문이 있었음.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1676749</ref> 
 
테스트 전하가 테스트 전하 도입 전의 상태에 대해 말해줄 수 없다는 앞서의 결론은 원거리 작용의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 테스트 전하 도입 전에 거기에 아무 것도 없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테스트 전하가 받는 힘이 원거리 작용이 아니란 걸 도구적으로는 알 수 없다.
 
중력의 경우, 장을 통한 작용보다 원거리 작용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한 가지 측면이 있다. 뉴턴은 구형 물체를 중심의 한 점처럼 취급할 수 있다는 것을 도출할 때, 중력이 다른 물체에 의해 교란되지 않는다는 가정을 사용했다. 즉, 그 수학은 어떤 것도 중력 차폐(gravitational shielding)로 간주하지 않으며, 이 수학을 사용하면 중력 차폐를 보이는 도구적 방법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중력 작용이 매개를 통한 전파된다면 중력 차폐 같은 일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물론 현재 그에 대한 관찰 증거는 없다. 나는 이러한 관찰의 정밀성이 그렇게 큰 것 같지는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의는 흥미로울 것 같다. 전자기학의 큰 성공도 (최종 결과에서 상쇄되는) [전기]장 개념의 역할이 (중력에서의 적분이 상쇄되는 동일한 방식으로) 지적 구성물임을 시사하는 것 아닐까?
 
"우리의 조작이 과학적 맥락에서 유의미하려면 그것은 언어적 수준에만 머물지 않고 궁극적으로 도구적 수준에서 나타날 수 있어야 한다." 장 개념 및 원거리 작용에 완전한 도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나는 그 둘이 여전히 말로만 구별되고 있을 뿐이라는 의심을 하게 된다.
 
== 6장. 심리학의 가장자리 ==
 
=== 일부 내성적 단어에 대한 상세한 분석 ===
내성적 단어들의 의미를 분석하면서, 그것의 사적 요소와 공적 요소를 분석한다.
 
* '자아', '의지', '마음', '영혼' : 이해 불가능한 단어들로서 분석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 의식적(conscious) : 매우 사적.
* 인지하는(aware) : '의식적'과 유사
* 감각질(quality of sensation) :
* 감각(sensation)
* 고통(pain)
* 생각하다(think)
* 마음(mind)
* 자유의지(free will)
* 지각(perception)
* 동기, 의도, 목적, 소망, 욕구
* 죽음
* 가치
* 수용
* 믿음
* 죄책감
* 증명
 
브리지먼에 따르면, 사적 요소와 공적 요소의 상대적 비율은 자기 마음 상태에 대해 이웃을 속이는 어려움에 의해 추정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성공적으로 속였는지에 대한 판단 역시 사적이기에, "진정한 마음 상태"는 사적인 관계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이 부수적으로 드러난다.
 
=== 내성의 세계의 본성 ===
내성의 세계는 언어로 표현되고 공표되긴 하지만, (1) 그에 대한 언어화에는 한계가 있으며, (2) 검증이란 조작이 적용될 수 없다. 특히 처음 발생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동일 결과에 이르는 두 번째 방법이 없다. 발생 자체가 검증될 수 없다면, 과거 사건의 존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 (양자론이나 전기 엔지니어링의 관점에서도) 내성의 세계와 공적(일상) 세계의 질적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
 
내성적 보고의 현재적 중요성 : 행동주의자를 비롯한 환원주의자들은 내성적 경험의 원리적 환원가능성(원자적 분석의 충분성 논제)을 받아들임으로써, 내성적 세게와 공적 세계 사이의 차이를 사소하게 취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성적 보고 없이 심리학자들은 그 존재를 추측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내성의 도움을 거부하는 것은 오만이며, 환원주의적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e.g., 근본적으로 단순한 경험의 지각 가능성에 대한 탐구 및 지각과 인지의 연관성의 도움 가능성).
 
나의 내성 관찰과 동료의 내성 관찰의 이분법 : 나 자신의 내성 관찰을 보고할 때 "의식적인", "느낌", "감각", "목적" 등의 단어를 사용하라. 즉 이런 단어는 내가 나 자신의 내성 관찰을 언급하고 있음을 알리는 것. 반대로 동료가 그런 단어를 언급할 때마다, 나는 그가 자신의 내성적 경험을 언급하고 있다고 통보받는 셈이다.
 
투영 조작과 유사성 가정 : 내성 관찰 어휘를 사용하는 개인들의 의사소통과 상호 이해는 서로의 게임을 스스로 플레이해보는 투영 조작(operation of projection)에 의존하며, 이는 우리가 서로 유사하다는 가정에 의존한다.
 
=== 합의의 논리 ===
이 소절에서는 유사성 가정의 타당성에 대해 검토한다. 우선 일상생활의 사실적 상황이나, 산술, 논리적 추론의 결과에 대해서, "정신적으로 유능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합의가 가능하다. 그러나 사회과학 대학원생 7명과 진행한 사회적 개념들(공동체, 도덕, 정당화, 권리 등)에 대한 조작적 분석을 통한 합의 가능성 검토 세미나 결과는 매우 회의적이었고, 이로부터 브리지먼은 개인적 과학을 도출한다. 그는 모든 모든 사람이 수용할 수 있는 명시적으로 공식화된 조작의 측면에서 단어들의 의미를 분석하려고 시도했고, 만약 합의에 도달할 수 없을 경우, 모든 사람이 수용할 수 있는 용어로 불일치의 본질을 공식화하려고 노력했다. 세미나 경험의 교훈들은 아래와 같다.
 
* 언어적 배경의 엄청난 복잡성과 불일치
* 분석의 완전성 확신의 어려움 : 예컨대 지시적 정의는 유한한 사례의 문제와 지시 측면 모호성의 문제로 약점 분명.
* "사회" 개념의 불합의 : 개인주의적 분석에 다수가 동의했으나, 소수는 동의하지 않았고, 불일치의 이유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식화 실패.
* 합의를 위해서는 단어에 동반된 불필요한 지적 짐(intellectual baggage) 대부분 버려야. redundancy가 성공적 통신 확률을 높인다는 지적이 있으나, 이러한 비유가 항상 적용되진 못함.
* 조작적 분석의 성찰성 : 분석 행위 자체가 개인의 단어 사용에 영향을 주게 됨
* 서로 다른 배경의 개인들 조작적 분석에 의한 개념 합의 불가능 → 교육과 성장 배경 통제 요구.
 
이를 통해 브리지먼은 합의의 가능성이 신기루라고 말하며, 이는 개인적 과학과 1인칭 보고의 필요성을 강조해준다고 말한다.
 
=== 유아론의 문제 ===
이러한 연장선 상에서, 브리지먼은 세계의 다원성을 주장한다. 세계의 수는 개인의 수에 대응한다. 이는 유아론을 낳으며, 터무니없다고 여겨진다. 브리지먼의 변호는 자신의 유아론은 "사적인 수준에서 공적 또는 외부 세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석할 필요성" 하에서만 유아론적이라고 말한다. 내가 나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볼 때 제시되는 세계는 다원적이지만, 이러한 다원성은 무해하며 불가피하다. 반면에 모든 세계를 하나의 기원에서 봐야 한다는 점에서 세계의 통일성이 회복된다.(인식론적 다원주의, 존재론적 일원주의?)
 
== 주 ==
<references />
[[분류:과학철학]]
[[분류:과학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