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선’의 탄생 : 패러데이의 초기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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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욱, 『패러데이 & 맥스웰 : 공간에 펼쳐진 힘의 무대』 (김영사, 2010), 만남 2.

전기와 자기

18세기 당시 전기와 자기는 일반적으로 별개의 현상으로 취급되었다. 사실 전기와 자기는 비슷한 점이 별로 없었다. 전기의 전형적인 현상은 ‘찌릿’ 하는 쇼크와 ‘파밧’ 또는 ‘번쩍’ 하는 스파크(번개)인데 반해, 자기의 전형적인 현상은 ‘소리 없는’ 끌어당김과 밀어내기였다. 번개에 의해 나침반이 교란되거나 철이 자화된다는 보고가 있긴 했지만, 그것을 진지하게 전기와 자기의 상호 작용으로 해석한 사람은 없었다.

그중에서 먼저 사람들의 눈길을 끈 것은 전기였다. 손잡이를 돌려 마찰 전기를 일으키는 정전기 발생 장치(그림 2-1)와 생성된 마찰 전기를 모아둘 수 있는 라이덴 병(일종의 축전기, 그림 2-2)이 만들어지자 전기를 이용한 실험과 놀이는 일종의 유행이 되었다. 전기를 모아둔 라이덴 병에 바늘이나 손을 가까이 가져가 방전 스파크를 일으키거나, 사람을 직접 대전시킨 후 그와 ‘전기 키스’를 하는 등의 감전 놀이는 그중 일부에 불과했다. 그림 2-3 <전기 소년>은 당시 사람들이 전기를 가지고 어떻게 놀았으며 전기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림 <전기 소년>을 보면, 한 사람(B)이 정전기 발생 장치(A)의 손잡이를 돌려 장치의 유리구(C)와 접촉해 있는 소년(E)을 대전시키고 있다. 적당히 대전된 소년이 손을 뻗어 절연체 위에 서 있는 소녀(G)의 왼손에 가까이 가져가자 두 손 사이에서 스파크가 튀면서 소녀도 함께 대전된다. 스파크가 튄 직후, 대전된 소녀의 오른손 아래에 놓여 있던 종이조각들(H)이 손에 끌려 올라가게 된다.

이러한 실험들을 통해, 당시 많은 사람들은 전기가 물체 표면을 따라 흘러다니는 미세한 유체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앞의 실험에서 소년과 소녀 사이에서 발생한 방전 스파크는 두 사람의 손과 손 사이를 빠르게 통과하고 있는 전기 유체 입자들을 뜻했다. 다수의 학자들은 그 전기 유체가 플러스(+) 전기와 마이너스(-) 전기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으며, +전기와 -전기 사이에는 인력이 작용하고, 같은 종류의 전기 사이에는 척력이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해석에 의하면 그럼 2-3 속 대전된 소녀의 오른손과 그 아래의 종이조각 사이에는 인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1785년 프랑스의 학자 쿨롱은 대전된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과 척력이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과 똑같은 형태의 역제곱 법칙을 만족시킨다는 것을 정교한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즉 전하 사이에 작용하는 힘은 둘 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했던 것이다. 쿨롱의 성공에 힘입어 프랑스의 학자들은 전기 유체 입자 가설과 쿨롱의 역제곱 법칙을 받아들여 전기에 관한 정교한 수학적 이론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이들은 모든 전기 현상을 +전기 유체 입자와 -전기 유체 입자들의 다양한 배치에 따른 원거리 전기력의 결과로 환원하여 설명하고자 했다.

쿨롱 이후 전기에 관한 수학적 이론이 정립되자, 프랑스의 학자들은 자기 현상에 대해서도 유사한 종류의 이론을 세우기 시작했다. 전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전기 입자와 -전기 입자의 존재를 가정했듯이, 그들은 자석 내에 ‘N 자기’, ‘S 자기’와 같은 별도의 유체 입자를 가정하여 만유인력이나 전기력처럼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크기의 원거리 인력과 척력이 그 유체 입자들 사이에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르면, 전기와 자기는 별개의 유체 입자들에 의한 작용으로 간주되었고, 서로는 영향을 줄 이유가 없어 보였다.

전류가 나침반의 바늘을 움직이다

독일 자연철학주의자(naturphilosopher)들은 프랑스의 과학자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자연의 모든 힘이 통일되어 있으며 상호 변환될 수 있다는 다소 낭만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이들은 전기적 힘, 화학적 힘, 열, 빛 사이의 상호 영향이나 상호 변환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1800년에 발명된 볼타 전지는 전기 연구를 새로운 방향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전지는 지속적인 전기의 흐름, 즉 ‘전류’를 만들어낼 수 있었는데, 이 전류는 새로운 전기 실험들을 가능케 해주었다. 특히 전기 분해와 같이 전기와 화학 작용 사이의 상호 연관을 보여주는 최신 발견은 자연철학주의자들의 주목을 끌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전기와 자기 사이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추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추측은 독일의 대표적인 자연철학주의자 셸링(Friedrich von Schelling, 1775-1854)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덴마크의 한 과학자에 의해 사실로 밝혀지게 되었다.

1820년 7월, 코펜하겐 대학의 물리학 교수 한스 크리스티안 외르스테드(Hans Christian Øersted, 1777-1851)는 「전류가 자침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실험」이라는 제목의 라틴어 원고를 유럽의 학자들에게 돌렸다. 그 원고에는 전기와 자기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최초의 실험 결과가 담겨 있었다. 그의 기본적인 실험은 다음과 같았다. 나침반의 자침은 가만히 두면 북쪽을 가리킨다. 가만히 있는 자침 바로 위에 그와 나란히 남북 방향으로 전류가 흐르는 도선을 가져가면 자침의 N극이 (위에서 볼 때)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 서쪽을 향하게 된다. 반대로 도선을 자침 아래로 가져가면 자침의 N극은 (위에서 볼 때) 시계 방향으로 돌아 동쪽을 향하게 된다(그림 2-4, 2-5).

이러한 실험 결과는 당시의 지식에 비추어볼 때 다소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중력, 전기력, 자기력 등 그동안 알려져 있던 원거리 작용은 모두 두 물체 사이의 직선 인력 또는 척력이었던 데 반해, 전류와 자침은 서로 잡아당기거나 밀어내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북 방향으로 흐르는 전류가 어떻게 동쪽이나 서쪽 방향으로 자침을 돌게 할 수 있을까? 외르스테드는 도선의 위아래 위치에 따라 자침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는 것을 보고서, “도선 주위의 소용돌이”를 떠올렸다. 그에 따르면, 도선 양쪽 끝에서 서로 다른 전기가 “전파”되어 오다가 만나면 “전기적 충돌(electric conflict)”에 의해 직진하지 못하고 서로를 “오른쪽으로 감는 나선형(dextrorsum spiral)”의 “소용돌이(vortex)”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 소용돌이가 도선의 위나 아래에 있는 자침의 N극과 S극에 따로따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외르스테드의 원고는 몇 가지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그의 원고에는 불친절하게도 그림이 하나도 없었다. 3차원 상에서 이루어지는 전류와 자기의 상호 작용 방식을 그림도 없이 온전히 전달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모호하고 사변적이었던 그의 해석은 오히려 사람들의 이해를 어렵게 했다. 특히, 도선 내 두 종류의 전기가 “분해”와 “재합성”을 반복하면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전파”되는 도중에 일어난다고 하는 그의 “전기적 충돌(electric conflict)” 개념은 오늘날의 우리뿐만 아니라 당시의 학자들에게도 무척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었다. 또한 그가 실험에 사용했던 약한 전지는 지구 자기에 의한 교란을 없앨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언제나 동서남북을 고려하면서 실험을 해야 했으며, 도선 주변의 “소용돌이”도 직접 눈으로 목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외르스테드의 발견 소식을 들은 유럽의 학자들은 외르스테드의 ‘소용돌이’ 해석을 버린 채 전자기 현상을 각자의 방식으로 재분석하기 시작했다. 그중 프랑스의 앙드레 마리 앙페르(André Marie Ampére, 1775-1836)는 두 가지 실험적 발견을 추가했다. 그는 나선형 전류가 막대자석을 흉내낼 수 있다는 점과 전류가 흐르는 평행한 도선이 서로 끌어당기거나(같은 방향으로 전류가 흐를 경우) 밀어낸다는(반대 방향으로 전류가 흐를 경우) 점을 발견했다(그림 2-6). 이로부터 그는 자석 내부에 원형 전류가 흐른다고 가정한 후, 전류와 전류, 전류와 자석, 자석과 자석 사이의 모든 상호작용을 도선과 자석 내부에 존재하는 미소 전류 요소들 사이에 작용하는 직선 인력들의 합력의 결과로 환원시키고자 했으며, 그 힘을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처럼 정확한 수학적 법칙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반면 영국의 데이비와 패러데이는 그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자기 현상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도선 주위에 원을 그리다

1820년 10월 1일, 데이비와 패러데이는 뒤늦게 외르스테드의 발견 소식을 전해 들었다. 외르스테드의 소식을 들은 다른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외르스테드와 앙페르의 실험을 반복하면서 현상에 대해 배워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앙페르처럼 수학적인 이론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신 그들은 외르스테드가 발견한 현상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주는 실험과 표상 기법을 마련하는 데 공을 들였다. 

데이비는 외르스테드의 실험이 분명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외르스테드는 도선 내의 전기적 충돌에 의해 도선 주위에 소용돌이가 나타난다고 설명했지만, 그의 실험은 도선 내의 전기적 충돌은 고사하고 도선 주위의 소용돌이도 만족스럽게 보여주지 못했다. 즉, 외르스테드가 실험으로 보여준 것만으로는 효과의 원인은 물론이고 효과 자체도 정확하게 묘사하기 힘들었다. 좀더 확실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데이비가 처음으로 한 일은 누워 있던 도선을 수직으로 세운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도선을 수평으로 눕혀놓았을 때보다 자침을 훨씬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다. 외르스테드가 도선의 위와 아래에 놓은 자침의 방향만 확인할 수 있었다면, 데이비는 도선 주위의 모든 위치에 자침을 놓고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림 2-7). 데이비는 여러 번에 걸친 자신의 관찰을 한 장의 종이에 압축하여 기록했다. 그는 자침의 운동 방식은 빼고, 자침이 결과적으로 정렬한 상태들만 모아 하나의 그림에 담았다(그림 2-8). 자침의 위치에 따른 자침의 정렬 상태가 하나의 종이에 담기고 나니, 전류와 자침 사이의 관계는 한층 더 가시화됐다. 그림 속의 자침들은 함께 모여 원을 그렸다.

데이비의 실험과 표상 방식이 현상의 원인에 대해서까지 말해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를 통해 그는 미묘하고 불안정했던 현상에 적어도 ‘원’이라는 확실한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누구나 그 현상을 관찰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외르스테드에게 ‘도선 주위의 소용돌이’는 하나의 해석에 불과했지만, 데이비에게 ‘도선 주위의 원형 작용’은 부정할 수 없는 실험적 사실이 된 것이다. 데이비는 철가루를 이용해 ‘도선 주위의 원형 작용’을 훨씬 더 쉽게 보여줄 수 있었다. 도선이 철가루를 끌어당긴다는 앙페르의 실험을 알고 있던 그는 이 실험을 자기 방식대로 살짝 변경했다. 그는 수직으로 세운 도선에 두꺼운 종이를 꽂고서 그 위에 철가루를 뿌려두었다. 도선을 전지와 연결한 후 종이를 살짝 쳤더니, 도선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동심원이 종이 위에 아름답게 펼쳐졌다(그림 2-9).

1821년 한 지인으로부터 전자기 연구 현황을 개괄하는 글을 부탁받고서 「전자기에 관한 개략적 역사(Historical Sketch of Electromagnetism)」라는 논문을 준비하게 된 패러데이는 데이비의 표상 기법을 거의 그대로 차용했다. 그는 축에 두꺼운 종이 원판을 꽂고서, 그 원판에는 자침을 대신하는 화살표들을 그려 넣었다(그림 2-10). 화살표는 아주 좋은 도구였다. 화살표의 머리는 N극으로, 꼬리는 S극으로 정함으로써, 평범한 선분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자침의 극성을 정확하게 전달해줄 수 있었다. 그는 이를 발전시켜 데이비의 원판 대신에 간단한 코르크 원통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는 도선을 대신하는 코르크 원통의 바닥과 윗면에는 그와 연결시킬 전지의 양쪽 극을 의미하는 P(+극)와 N(-극)을 적은 후, 측면에는 자기 작용의 방향을 의미하는 화살표 하나를 그려 넣었다(그림 2-11). 이 코르크 원통은 도선의 양끝을 전지의 +극(P)과 -극(N)에 연결하면 그 주위에 코르크 원통 측면에 그려진 화살표 방향으로 자침이 정렬한다는 전류의 자기 작용 규칙을 담고 있었다. 

데이비의 원판과 패러데이의 코르크는 3차원 상에서 일어나는 전자기 작용의 방향 규칙을 쉽게 기억하고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기억보조장치(mnemonic device)’라 할 수 있다. 즉 데이비와 패러데이는 말로 전달하기 어려운, 그래서 본인들도 기억하기 어려운 현상의 규칙을 그림이나 물체에 새겨 넣었던 것이다. 그들은 조금씩 실험을 변경할 때마다 이 장난감 같은 장치를 옆에 두고서 자신이 예측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사용했다. 앙페르와 같은 당대의 학자들도 비슷한 장치를 개발했으며, 오늘날의 학생들도 비슷한 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사실 오늘날의 학생들은 패러데이의 코르크보다 더 쓰기 좋고 휴대하기 편한 ‘기억보조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바로 오른손이다. 전류의 방향으로 오른손의 엄지를 댄 후, 나머지 손가락으로 도선을 감싸기만 하면 도선 주변의 자침이 어느 방향으로 정렬할지 바로 알아낼 수 있다(그림 2-12).

이러한 데이비와 패러데이의 실험 방식과 ‘기억보조장치’는 그들이 현상을 이해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실에 매단 자침을 마치 도선 주위에 펼쳐진 힘의 배치를 탐색하는 관측 도구처럼 활용했다. 그래서 그들이 종이 원판과 코르크 원통에 결과적으로 그려낸 화살표는 단지 도선 주위에 배치된 자침의 정렬 상태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 원형으로 정렬된 힘의 배치까지도 보여주는 것처럼 보였으며, 따라서 전류 주위의 원형 자기 작용은 데이비와 패러데이에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처럼 보였다.

자석과 도선을 회전시키다

자침과 철가루에 의해 만들어지는 원형 이미지는 강한 호소력을 지녔지만, 전류와 자기 사이의 상호작용 중에는 간단히 ‘전류 주위의 원형 자기 작용’으로 규정되기 어려운 현상들이 있었다. 일찍이 외르스테드는 전류가 흐르는 도선이 주위에 있는 자침을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는 현상을 보고한 바 있으며, 앙페르는 전류가 철가루를 끌어당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데이비도 이러한 사실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수직으로 세운 도선의 한편에 자침을 가까이 가져가면 자침이 밀려나지만, 다른 편에 가져가면 잡아당기는 것을 관찰했다. 즉, 경우에 따라 전류와 자침 사이에는 원형 작용 외에도 인력과 척력이 작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데이비는 전류와 자침 사이의 이러한 인력과 척력 현상을 자신의 ‘원형 작용’ 구도 내에 포섭하고 싶었다. 그에 따르면, 전류가 흐르는 동안 도선은 일시적으로 자석이 되었다. 다만 그 도선은 일반적인 막대자석과 달리 “도선을 둘러싼 일종의 자기 회전”을 발휘했다. 이러한 데이비의 가설은 전류와 자침이 서로를 잡아당기거나 밀어내는 현상을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림 2-13을 보자. 세로로 세워진 도선의 단면을 위에서 내려다본다고 생각해보자. 그림에서 전류는 종이를 뚫고 아래에서 위로 흐르고 있으며, 데이비의 가설에 따르면 도선 주위에는 반시계 방향의 자기 회전이 존재하게 된다. 만약 자침을 A에서와 같이 도선에 의한 자기 회전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가져가면 자침은 도선으로부터 척력을 받게 된다. 반대로 자침을 B에서처럼 도선에 의한 자기 회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가져가면 자침은 도선으로부터 인력을 받게 된다. 즉 그는 도선과 자침 사이의 인력과 척력을 자석 두 개를 가로로 가까이 가져갈 때 벌어지는 상황(그림 2-14)에 빗대어 이해한 것이다.

데이비의 동료 학자 윌리엄 하이드 울러스턴(William Hyde Wollaston, 1766-1828)도 ‘자기 회전’ 가설을 선호했다. 그는 ‘자기 회전’ 가설을 앙페르가 발견했던 도선과 도선 사이의 인력과 척력을 설명하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그림 2-15). 왼쪽 그림처럼 같은 방향으로 전류가 흐르는 경우, 두 도선의 측면에는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자기력이 작용하여 서로 잡아당기며, 이와 반대로 오른쪽 그림처럼 반대 방향으로 전류가 흐르는 경우, 두 도선 사이에는 같은 방향으로 회전하는 자기력이 작용하여 서로를 밀어낸다. 울러스턴은 자기 회전 가설을 발전시켜 전류가 흐르는 도선이 강한 자석에 의해 제자리에서 회전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기도 했다. 그의 예측을 확인하기 위해 데이비와 울러스턴은 실험을 해보았지만 실패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부주의한 관찰에 있었다.

1821년 9월 3일, 논문 「전자기에 관한 개략적 역사」를 준비하고 있던 패러데이는 이를 위해 외르스테드, 앙페르, 데이비가 했던 실험들을 하나씩 자기 손으로 직접 해보던 중, 도선과 자침 사이의 상호작용에 관한 데이비의 관찰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림 2-16을 보자. 그림 2-13의 A처럼 도선과 자침이 서로 밀어내는지를 확인하는 실험에서(그림 2-16가), 자침의 양쪽 끝은 데이비의 말대로 도선 근처에서 척력을 받았지만(①과 ④), 자침의 가운데 부분은 오히려 인력을 받았다(②와 ③). 또 그림 2-13의 B처럼 도선과 자침이 서로 끌어당기는지 확인하는 실험에서(그림 2-16나), 자침의 양쪽 끝은 도선 근처에서 인력을 받았지만(⑤와 ⑧), 자침의 가운데 부분은 반대로 척력을 받았다(⑥과 ⑦).

이러한 패러데이의 실험은 전류 주위의 원형 작용을 드러내기 위해 수행했던 데이비의 실험 방법을 거의 그대로 따라한 것이었지만, 그 목적은 조금 달랐다. 데이비는 도선 주위의 여러 위치에 따른 자침의 ‘최종 정렬 상태’를 기록하고자 했다면, 패러데이는 도선 주위의 여러 위치에 따른 자침의 ‘움직임’을 기록하고자 했다. 그는 도선의 왼편 오른편에 자침의 여러 부위를 가져가면서 자침의 움직임을 살폈고, 그 실험 결과를 인력을 받는 네 군데(그림 2-16의 ②③⑤⑧)와 척력을 받는 네 군데(그림 2-16의 ①④⑥⑦)로 정리할 수 있었다.

패러데이는 이 어지러운 실험 결과를 하나의 그림에 담을 수 있는 기막힌 방법을 고안했다. 하나의 자침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인력을 받는 네 곳(A)과 척력을 받는 네 곳(R)을 그려 넣은 것이다(그림 2-17). 원래의 실험에서 패러데이는 도선을 고정시킨 채 그 주위에 자침의 위치를 변경해가면서 자침의 운동을 살폈지만, 그 실험 결과는 정반대로 정리한 것이다. 그의 새로운 그림에서 자침은 고정된 채 그 주위 여덟 군데 위치에 놓인 도선이 인력이나 척력을 받아 움직이게 되었다. 

패러데이는 이 그림에 재밌는 덧칠을 했다. 그는 자침 주변의 R과 A들을 화살표로 이어 두 개의 원을 만들어낸 후, 두 원의 중심에 점을 찍고는 그곳을 “진짜 극(true pole)”이라고 표시했다(그림 2-18). 그는 ‘진짜 극’을 중심으로 한 원형의 화살표를 통해 도선의 회전 운동을 그려낸 것이다. 이제 그는 도선과 자침 사이에 작용하는 복잡한 인력과 척력 관계를 단순한 회전 운동의 일부로서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그림 2-19). 만약 이러한 회전 운동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라면, 전류와 자기 사이의 인력과 척력이란 개념은 불필요하게 될 것이었다.

정말로 이러한 회전이 나타날까? 패러데이는 도선을 둥글게 구부려 만든 회전 크랭크에 전지를 연결한 후(아래는 +극, 위는 -극), 크랭크 중심에 자석을 가져갔다. N극을 가까이 가져갔더니 크랭크는 N극을 중심으로 (위에서 내려다 볼 때)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 자석에 부딪혔고, S극을 가까이 가져갔을 때에는 S극을 중심으로 (위에서 내려다 볼 때) 시계 방향으로 돌아 자석에 부딪혔다(그림 2-20). 그림을 통해 예측했던 것과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이다. 자석에 부딪히지만 않는다면, 도선은 자석의 극을 중심으로 회전할 것이 분명했다.

그림 2-21. 패러데이의 전자기 회전 장치.

자석에 부딪히지 않고도 도선이 계속 회전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며칠 뒤 그는 이를 실제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그림 2-21). 해법은 간단했다. 자석과 도선을 평행하게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림 2-21의 오른쪽 장치를 보자. 우선 도선의 윗단은 공중에 매달고 도선의 아랫단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면서도 전류가 통할 수 있도록 수은에 담갔다. 도선이 수은에 너무 잠겨 운동이 방해되지 않도록 도선 아랫단에는 코르크도 끼워두었다. 수은이 담긴 그릇 한 가운데에는 자석을 세워놓았다. 이제 수은을 전지의 +극에 연결하고 공중에 매단 도선의 위쪽 끝을 전지의 -극에 연결하기만 하면 도선은 자석의 극을 중심으로 회전하게 된다. 실제로 그가 만든 장치에서는 고정된 자석 주위를 도는 도선(그림의 오른쪽)뿐 아니라, 고정된 도선 주위를 도는 자석(그림의 왼쪽)도 세트로 만들었다. 만약 왼쪽 장치에 전지의 -극을 연결하고, 오른쪽 장치에 전지의 +극을 연결한다면, 그리고 양쪽 장치의 자석 모두 N극이 위쪽을 향하고 있다면, 왼쪽 장치의 자석은 (위에서 내려다 볼 때) 시계 방향으로, 오른쪽 장치의 도선은 (위에서 내려다 볼 때)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할 것이다. 

데이비의 철가루와 자침의 이미지를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관찰되었던 ‘전류 주위의 자기 회전’은 드디어 패러데이의 전자기 회전 장치를 통해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게 되었다. 회전이 실제로 구현됨에 따라, 그는 전류와 자기 사이의 인력/척력을 모두 회전 운동의 일부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한 어조로 밝힐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탈리아의 과학자 드라리브(Gaspard de La Rive, 1770-1834)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저는 도선에 의한 자침의 끌림과 반발이 모두 기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운동은 끌림이나 반발도 아니며, 어떤 인력이나 척력의 결과도 아닙니다. 그것은 도선이 가진 어떤 힘의 결과로, 이 힘은 자침의 극을 도선 가까이 잡아당기거나 또는 멀리 밀어내기보다 원형으로 끝없이 회전하도록 하며, 이 회전 운동은 전지가 작동하는 동안 계속됩니다.

패러데이는 이러한 결론을 서둘러 논문으로 출판했다. 논문 출판 이후 데이비와의 관계가 급속히 나빠지긴 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패러데이의 발견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전자기 회전을 액면 그대로 보는 것을 불편해했다. 뉴턴의 가르침을 배운 학자들이 보기에 전기 유체 입자는 전기 유체 입자끼리, 자기 입자는 자기 입자끼리 상호작용하는 것이 마땅했다. 게다가 직선 인력/척력이 아닌 회전이라는 상호작용은 자연에 존재하는 기본적인 작용으로 간주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프랑스의 앙페르는 패러데이가 발견한 전자기 회전을 분석하기 위해, 자석 내부에 원형 전류가 흐른다고 가정한 후 도선과 자석 내부의 전류 요소들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과 척력들의 합력을 계산해야 했다.

반면 패러데이는 전자기 회전이라는 현상을 액면 그대로 취급하길 바랐다. 그는 자신의 전자기 회전 장치가 보여주는 그대로, 전류와 자기가 서로 원형의 상호작용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했다. 전기 유체나 자기 유체에 대한 뉴턴주의적인 관념을 증명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을 뿐 아니라 현상을 정해진 수학적 형식에 맞추어 설명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패러데이가 뉴턴주의적인 선입관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데다 “불행하게도 수학적 지식과 추상적 추론을 손쉽게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던 탓”이기도 했지만, 데이비 밑에서 화학자로서의 도제 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수학보다 실험과 관찰을 중시하라는 가르침을 배운 탓이기도 했다.

물론 패러데이에게도 이론적인 선입관이 있었다. 그는 독일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스승 데이비로부터 자연의 힘들이 통일되어 있고 상호 전환될 수 있다는 독일 자연철학주의의 믿음을 배웠으며, 화학 작용과 전기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데이비의 전기화학 연구에 익숙했다. 따라서 전류와 자기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패러데이에게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며, 앙페르처럼 자석을 전류 현상으로 환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데이비의 가르침에 따르면, 서로 다른 물질 사이의 상호작용은 각 물질이 발휘하는 ‘힘’의 통일성과 상호 전환에 의해 설명될 수 있었다.

전자기 회전을 발견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패러데이에게 가장 중요했던 이론적인 선입관은 바로 ‘힘’과 그 ‘힘의 배치’라는 관념이었다. 패러데이는 나선형으로 감은 도선으로 자석을 흉내낼 수 있다는 앙페르의 발견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앙페르는 이 사실로부터 자석이 전류로 만들어졌다고 추론한 반면, 패러데이는 도선과 자석 모두 그 주위에 같은 종류의 힘, 즉 자기력을 발휘한다고 추론했다. 즉 패러데이에게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물질들이 만들어낸 힘의 배치였다. 물질의 내부 구성은 그것이 만들어낸 힘에 비해 부차적이었다. 패러데이의 실험은 바로 그 힘의 배치를 탐색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역사상 최초의 전동기로 간주되는 패러데이의 전자기 회전 장치는 전류 주위에 원형으로 정렬된 자기력의 배치를 드러내주는 장치라 할 수 있다. 힘의 배치라는 패러데이의 관념은 그로부터 10년 뒤 전자기 유도 연구 과정에서 ‘자기 곡선(magnetic curve)’이란 이름으로 보다 선명한 개념으로 다시 등장하게 된다.

자기로 전류를 만들어내다

1820년 외르스테드에 의해 전류의 자기 작용이 발견된 후, 많은 학자들은 그 반대의 작용도 존재할 것이라 추측했다. 전류가 자석처럼 자기력을 만들어낸다면, 반대로 자석이 전류를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자기의 전류 효과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들의 노력은 10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모두가 지쳐 포기할 무렵, 패러데이가 그 효과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효과는 패러데이로 하여금 공간에 ‘힘의 선’을 그리도록 인도했다.

1831년 8월 29일, 패러데이는 철로 만들어진 고리에 절연 피복으로 감싼 두 개의 코일 A와 B를 여러 겹으로 촘촘하게 감은 후(그림 2-22), 코일 A를 검류계에 연결하고 남은 코일 B를 전지에 연결했다.

바로 [검류계] 바늘에 상당한 효과가 나타남. 바늘이 흔들리다 결국 원래 위치에서 멈움. ⋯ 전지와의 연결을 끊을 때, 또다시 바늘이 요동침.

검류계 바늘이 움직였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점이 패러데이의 기대를 벗어나긴 했지만, 어쨌든 검류계 바늘이 움직인 것은 확실했다. 잠깐 동안이지만 분명 코일 A에 전류가 유도된 것이었다.

패러데이는 이 현상을 1차 회로(코일 B)의 전류에 의한 ‘자기력’이 2차 회로(코일 A)에 전류를 유도한 것으로 해석했다. 만약 그의 추측이 맞다면, 자석만으로도 전류가 유도될 수 있어야 했다. 1831년 9월 24일, 패러데이는 움직이는 자석을 가지고 코일에 전류를 유도시키는 실험을 했지만 실패했다. 같은 날 그는 철심에 코일을 감아 검류계에 연결한 후, 철심의 양쪽 끝을 각각 막대자석과 맞붙였다(그림 2-24). 그가 자석을 철심에서 떼거나 댈 때마다 코일에 연결된 검류계의 바늘이 움직였다. 그리고 10월 17일, 패러데이는 속이 빈 원통형 철심에 코일을 두텁게 감은 후 그 안에 막대자석을 찔러 넣음으로써 유도 전류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그림 2-25). 그는 “자기로부터 전기로의 분명한 전환”을 확인한 동시에 최초의 발전기를 발명한 셈이었다.

10년 동안이나 찾아 헤매던 이 효과를 패러데이가 발견한 비결은 무엇일까? 사실 패러데이도 실패를 겪었다. 1825년 11월 패러데이는 두 개의 도선을 가지고 1831년 8월에 했던 실험과 비슷한 실험을 했었다. 그는 도선에 전지를 연결하면 그 전류에 의한 자기력이 옆의 도선에 전류를 유도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두 도선을 평행하게 놓아도 보고 나선형으로 감아 시도해 보아도 검류계의 바늘은 꿈쩍도 하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1825년에는 보이지 않던 효과가 어떻게 6년 뒤에는 보이게 되었을까? 

우선 패러데이는 1차 코일 B를 전지에 연결하기 전에 2차 코일 A를 검류계에 연결함으로써, 전지를 연결하는 ‘순간’의 검류계 반응을 볼 수 있었다. 이는 예상치 못했던 행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모든 경우의 수를 확인하고자 했던 그의 치밀한 탐색의 결과이기도 했다.

또한 1831년 패러데이는 자신의 실험에 피복으로 절연된 코일과 철심을 도입함으로써, 전자기 효과를 눈에 띄게 증폭시킬 수 있었다. 조지프 헨리(Joseph Henry, 1797-1878) 등이 고안한 전자석 개량법으로부터 힌트를 얻은 것이다. 그는 8월 29일의 실험에서 피복으로 절연시킨 두 개의 코일을 같은 철심에 감음으로써, 전지와 연결한 1차 코일 B의 자기 효과를 증폭시킴과 동시에 검류계와 연결한 2차 코일 A의 민감성을 증폭시킬 수 있었다. 이후 9월과 10월의 자석을 이용한 전류 유도 실험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철심과 절연 피복의 공이 컸다.

하지만 패러데이가 발견한 전자기 유도는 애초의 예상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는 자기력의 영향을 받는 도선에 지속적인 전류가 유도될 거라 기대했지만, 그가 발견한 유도 전류는 일시적이었다. 일정한 전류가 흐르고 있는 회로나 가만히 정지해 있는 자석은 전류를 유도하지 못했다. 유도 전류는 오직 1차 회로를 전지와 연결하거나 끊는 ‘순간’ 또는 자석을 움직이는 ‘동안’에만 잠깐 발생했다가 사라졌다. 패러데이는 이러한 유도 전류의 ‘순간성’에 어리둥절했다. 게다가 회로와 전지의 연결을 ‘끊을’ 때 전류가 유도되는 건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죽어가는 전류가 무슨 힘이 있다고 옆의 도선에까지 전류를 유도하는 것일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 패러데이는 ‘전기적-긴장 상태(electro-tonic state)’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그는 1차 회로가 전지와 연결되어 있는 동안 1차 회로가 만들어내는 자기력에 의해 2차 회로가 ‘전기적-긴장 상태’라는 독특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고 가정했다. 그러면 1차 회로가 끊어질 때 그 긴장 상태가 풀어지면서 반대 방향으로 일시적인 전류가 만들어지는 것이 설명될 수 있었다. 고무줄을 생각해보면 패러데이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손으로 고무줄을 잡아당기면 잠깐 동안 줄이 늘어나지만, 이내 외력과 탄성력이 평형을 이루면서 더 이상 늘어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 고무줄이 처음의 고무줄과 같은 상태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이 고무줄은 팽팽한 ‘긴장’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고무줄을 당기던 손의 힘을 풀면, 고무줄은 금새 원래의 길이로 줄어든다. 이처럼 외력의 존재가 고무줄 내부에 팽팽한 긴장 상태를 만들어내듯이, 자기력의 존재는 도선 안에 일종의 긴장 상태, 즉 ‘전기적-긴장 상태’를 만들어 낸다. 힘의 도입 또는 제거는 그 긴장을 더하거나 풀어주게 되고, 이때 고무줄이 늘어나거나 줄어들 듯이 전류가 흐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전기적-긴장 상태’라는 개념은 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 연구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실험적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자기 유도를 일으키는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을 가정하지 않고서도 모든 전자기 유도 현상을 완벽하게 묘사할 수 있는 대안적인 방법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자기 곡선 자르기’ 규칙이 바로 그것이다.

자기 곡선을 자르면 전류가 유도된다

그림 2-26. 패러데이의 1831년 전자기 유도 논문에 실린 자기 곡선 그림. 자기력을 표상하는 선의 그림이 패러데이의 논문에 수록된 것은 이곳이 처음이다. (출처 : 패러데이, 『전기에 관한 실험 연구』 1권, plate 1)

전자기 유도에 관한 일련의 연구를 마무리한 11월 그는 왕립학회 모임에서 자신의 발견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는데(이는 이듬해 『철학회보(Philosophical Transaction)』에 실림), 이는 이후 25년간 30편이 넘도록 이어지게 될 그의 시리즈 논문 『전기에 관한 실험 연구(Experimental Researches in Electricity)』의 첫 작품이 되었다. 이 논문에서 패러데이는 처음으로 ‘자기 곡선(magnetic curve)’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전자기 유도를 설명하는 데 실질적으로 사용한다. 여기서 ‘자기 곡선’이란 자석이나 전류 주위에 철가루나 자침에 의해 그려지는 선을 의미한다(그림 2-26). 사실 철가루에 의해 그려지는 이러한 선은 영국의 학자들 사이에서 이미 익숙한 그림이었다. 그들은 자석과 전류 주위의 자기력을 표상하기 위해 그 그림을 광범위하게 사용해왔다. 10년 전 패러데이도 전류 주위에 만들어지는 철가루의 원형 배치에 이끌려 전자기 회전을 발견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 그림에 ‘자기 곡선’이라는 이름을 붙여 현상을 설명하는 데 실질적으로 이용한 것은 패러데이의 1831년 전자기 유도 논문이 처음이었다. 왜냐하면, 전자기 유도의 조건과 그에 의한 유도 전류의 방향을 묘사하는 데 있어 ‘자기 곡선 자르기’라는 규칙만큼 경제적이면서 효과적인 규칙이 없었기 때문이다.

패러데이가 이 ‘자기 곡선 자르기’라는 전자기 유도 규칙을 고안한 데에는 ‘아라고의 원판’이라 불리는 현상에 대한 실험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프랑스의 학자 프랑수아 아라고(Francois Arago, 1786-1853)에 의해 발견된 현상으로, 회전하는 구리 원판이 자석 근처에서 그 회전 속도가 느려지는 현상을 말한다. 구리 원판이 일시적으로 자화되어 일어난 현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었지만, 자석의 영향을 받지 않는 구리 원판이 어떻게 자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한 사람은 없었다.

1831년 전자기 유도를 발견한 패러데이는 ‘아라고의 원판’의 일시적인 자화가 자석에 의해 원판에 유도된 전류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 추측을 확인하기 위해, 그는 거대한 자석 양극 사이에 구리 원판을 놓고 원판의 두 지점을 검류계와 연결시켰다. 원판을 회전시켰더니 검류계의 바늘이 움직였다. 즉 ‘아라고의 원판’이 유도 전류에 의한 현상이라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패러데이의 탐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패러데이는 검류계와 연결시키는 지점을 다양하게 바꿔가면서 확인한 결과, 원판에 생성된 유도 전류의 방향이 원판의 직경 방향이라는 것, 즉 원판의 운동 방향과 ‘수직’이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그림 2-27). 이로부터 그는 자기 작용의 방향, 원판의 운동 방향, 원판에 생성된 유도 전류의 방향 사이의 기하학적인 관계를 일반적인 규칙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자기 곡선 자르기’ 규칙이었다. 그 규칙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았다. 도선이 자기 곡선을 가로지르면, 도선이 자기 곡선을 가르는 방향과 수직이 되는 방향으로 전류가 유도된다(그림 2-28). 이는 오늘날 ‘플레밍의 오른손 법칙’이라 불리는 규칙과 사실상 동일하다(그림 2-29).

이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응용될 수 있었다. 자석의 운동에 의해 도선에 전류가 유도되는 경우, 이는 자석과 함께 움직이던 자기 곡선이 도선에 잘리면서 그 수직 방향으로 유도 전류가 생성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그림 2-30). 또한 ‘자기 곡선 자르기’ 규칙은 1차 회로를 전지에 연결하거나 끊을 때 발생하는 유도 전류를 설명하는 데에도 적용되었다. 패러데이의 묘사에 따르면, 1차 회로를 전지와 연결하면 자기 곡선이 스스로 “도선에서 나와 팽창”하고, 전지와의 연결을 끊으면 자기 곡선이 “수축”하여 도선에 “되돌아간다”(이러한 패러데이의 묘사는 오늘날의 설명과 맞지 않는다는 데 유의할 것). 이렇게 1차 회로에서 나오던 자기 곡선은 2차 회로에 의해 잘리면서 전류를 유도하고, 1차 회로로 되돌아가던 자기 곡선은 반대로 잘리면서 반대 방향의 전류를 유도하게 된다(그림 2-31).

이러한 방식의 묘사를 통해, 패러데이는 모든 종류의 전자기 유도 현상을 “자기 곡선 자르기” 규칙으로 통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유도 전류는 가만히 있는 자석 주위에 펼쳐진 자기 곡선을 움직이는 도선이 자르거나, 자석에 의해 움직이게 된 자기 곡선이 가만히 있는 도선에 잘리거나, 혹은 1차 회로를 전지에 연결하거나 끊을 때 “팽창”하거나 “수축”하는 자기 곡선이 도선에 잘리면서 발생했다.

요컨대, 패러데이는 전자기 유도라는 실험적 발견을 확장하여 그동안 설명되지 못하고 있던 ‘아라고의 원판’을 설명하는 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거꾸로 ‘아라고의 원판’에 대한 실험적 탐색을 통해 모든 종류의 전자기 유도를 묘사할 수 있는 ‘자기 곡선 자르기’라는 일반적인 규칙까지 얻을 수 있었다. 얼마 후 패러데이는 이 ‘자기 곡선 자르기’ 규칙을 확장하여 ‘단극 유도(unipolar induction)’라는 현상을 예측하고 발견하는 데에도 성공했다(그림 2-32). 이러한 성공으로부터 패러데이는 자신의 실험에 큰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실험은 수학 앞에서 기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실험은 정말 수학과 대적할 만합니다. ⋯⋯ 나는 수학이 많은 것을 예측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 전자기 회전과 전자기 유도에서처럼 계산이 준비되어 있었음에도 그 사실들은 예측되지 않은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때로 아라고 현상에서처럼 사실이 알려져 있을 때에도 계산은 그것의 진정한 본성을 드러내는 데 불충분했습니다. 다른 사실이 도움을 주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여기서 “다른 사실”이란 바로 ‘전자기 유도’를 뜻했다.

공간에 ‘힘의 선’을 채우기 시작하다

1820년 외르스테드가 발견한 전자기 현상은 뉴턴의 ‘원거리 직접 작용’ 개념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전류가 자침을 움직이는 방식이 지금까지 알려진 원거리 작용과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전류와 자침 사이의 상호 작용은 둘 사이의 직선 인력이나 척력으로는 설명되기 힘들어 보였다. 외르스테드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전류 주위에 “오른쪽으로 감는 나선형의 소용돌이”가 형성되어 자침을 움직인다고 제안했고, 영국의 학자 데이비와 울러스턴은 전류 주위에 자침과 철가루가 원형으로 정렬한다는 관찰을 근거로 전류 주위의 “자기 회전”를 제안했다. 그리고 패러데이는 전자기 회전 장치를 실제로 만들어냄으로써 전류 주위에 원형으로 배치된 자기력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자기력의 배치라는 개념은 전자기 회전의 발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아직까지 ‘힘의 선’에 해당하는 개념은 등장하지 않았다.

패러데이가 ‘자기 곡선’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한 것은 전자기 유도 연구 과정에서였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전자기 유도의 규칙을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서였다. 패러데이의 정의에 따르면, 공간에 그려진 ‘자기 곡선’은 그 공간에 자침이 놓이면 그 자침이 가리키게 될 방향을 보여주는 가상의 선을 의미할 뿐이었다. 전자기 유도는 도선이 그 가상의 선을 가로지를 때 일어났으며, 그에 의한 유도 전류는 도선이 그 선을 가르는 방향과 수직으로 생성됐다. 이는 전자기 유도에 대한 아주 멋진 규칙으로서, 패러데이는 이 규칙을 통해 전자기 유도의 조건과 그에 의한 유도 전류의 방향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에 의하면 자기 곡선은 공간에 존재하는 실체일 필요가 없었다. 가끔 패러데이는 자기 곡선이 “팽창”하거나 “수축”한다는 식의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는 공간에 그러한 건이 정말로 존재해서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기 곡선이 단지 자기력의 배치를 보여주기 위한 표현일 뿐이라고 말했다. 실험가로서 패러데이는 자신의 연구를 실험의 테두리 안에 묶어두고자 했고, 공식적으로 그의 자기 곡선은 전자기 유도의 규칙을 효과적으로 공식화하기 위한 간단한 표상 도구일 뿐이었다.

그림 2-33. 전기, 자기, 운동이 맺는 상호작용의 기하학적 질서. 패러데이는 전기, 자기, 운동이라는 세 가지 작용을 3차원상에 직교하는 세 직선과 대응시켰다. z축 방향의 자기 작용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y축 상의 도선의 운동은 x축 방향의 유도 전류를 만들어내고, y축 상의 전류는 x축 방향의 운동을 만들어낸다. (출처 : 『패러데이의 일기』 1권, 1832년 3월 26일, 425쪽)

그러나 ‘자기 곡선’을 이용한 전자기 유도 규칙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자기 곡선 덕분에 모든 종류의 전자기 유도 현상은 완벽한 질서를 얻었다. 패러데이는 그 질서를 1821년 발견한 전자기 회전에까지 확장시켰다. 1832년 3월 그의 일기장에는 그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일기장에서 그는 전기, 자기, 운동이라는 세 가지 작용을 3차원 상에 직교하는 세 직선과 대응시킨 후, 셋 중 어느 두 가지의 작용은 나머지 하나의 작용을 그림에 대응된 직선의 방향으로 일으킬 것이라고 적었다. 구체적으로 말해, z축 방향의 자기 곡선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y축 상의 도선의 운동은 도선의 운동은 x축 방향의 유도 전류를 만들어내고, y축 상의 전류는 x축 방향의 운동을 만들어낸다(그림 2-33). 전자는 전자기 유도의 원리이고, 후자는 전자기 회전의 원리이다. 이로써 전자기 회전과 전자기 유도는 동일한 기하학적 질서를 부여받은 셈이었다.

‘자기 곡선’이 전자기 현상에 부여한 너무나 조화로운 질서 때문에, 패러데이는 자기 곡선이 실제 물리적 과정에서 인과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즉 자기 곡선이 전자기 유도와 전자기 회전을 실제로 일으키는 매개자일 것이라고 의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실험가로서 그는 자신의 사변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1832년 3월 왕립학회 서기에게 밀봉된 노트를 맡겼다. 이 노트 안에는 소리나 빛이 매질을 통해 점진적으로 전파되듯이, 자기력과 전기력도 ‘힘의 선’을 통해 점진적으로 전파되어 멀리까지 전달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었다. 이 조심스러운 착상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념의 출발점이 되었는데, 그는 공간에 ‘힘의 선들’을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패러데이 & 맥스웰의 목차

정동욱, 『패러데이 & 맥스웰 : 공간에 펼쳐진 힘의 무대』 (김영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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