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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커크 리치(Kirk Leech) / 번역 : 정동욱 (초벌 번역 상태의 글로 최종 출판된 버전과 다름)
커크 리치 지음, 정동욱 옮김, "강요된 원시상태", 「[[윤리적 관광: 누구를 위한 것인가?]]」, 『논쟁 없는 시대의 논쟁』 (이음, 2009)


유엔은 2002년을 국제 생태관광의 해로 지정했다. 유엔 지속가능한 개발 위원회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유엔은 유엔 환경프로그램(UNEP)과 국제관광기구(WTO)에 생태관광을 촉진하는 국제적인 활동을 수행하도록 위임했다. 생태관광은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진보적인 여행으로 얘기되는데, 이는 환경에 대한 인간의 영향에 주의하고 토착 공동체의 문화를 존중할 것을 강조한다. 생태관광의 옹호자들은 이를 통해 보호와 개발이라는 대립적인 요구를 해결하는 동시에 야생지역과 보호구역 ― 개발이 규제되는 지역 ― 에 대한 점증하는 요구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공원과 보호구역과 같이 사람이 없는 야생지역을 여행하는 기회는 생태관광 체험의 빠뜨릴 수 없는 미적 요소 중 하나이다. 이는 환경에 해를 입히거나 토착민의 삶을 ‘파괴’하지 않고서 우리에게 진짜 경험, 진정한 경험, 섬세한 경험을 제공한다고 얘기된다. 이는 오늘날 국제 여행객들에게 ‘진짜’, ‘자연의’, ‘지속가능한 경험’으로 간주된다.
== 번역 ==
{{제목|강요된 원시상태}}


생태관광은 그것이 가진 보호주의적 측면 덕분에 세계보호연합(World Conservation Union)과 세계야생동물기금(World Wildlife Fund)과 같은 국제 환경단체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환경단체의 지지자들은 생태적으로 파괴적인 인류의 영향 때문에 지구에 보호구역과 야생지역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생태계는 인간의 불법 행위의 무고한 희생자로, 그 해법은 지구상의 많은 지역에서 인간을 추방하거나 인간의 활동을 규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생태적으로 온화하고 경제적으로도 유익한 저영향 생태관광 활동의 강력한 지지자들이다.


개발과 관련하여, 생태관광은 겉보기에 정말 현지 사회에 이익을 주는 방법인 것처럼 보인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생태관광이 상당한 장점을 가진 틈새시장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 방문객은 더 많은 돈을 쓰고 더 오래 머묾으로써 현지인들에게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영국 국제개발부(DFID)는 ‘가난-지원 관광(pro-poor tourism)’이라 이름 붙인 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미국 국제개발처(USAID)도 동일한 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들은 생태관광을 대상 국가의 유용한 수입원 이상으로 보고 있는데, 그들이 보기에 생태관광은 대상 국가들의 경제와 기반 시설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가난-지원 관광’은 다양한 수입원을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방문객과 수입원을 유인하기 위해 생태관광은 아름다운 자연에 의존한다. 여행객들이 원하는 것은 ‘원시의 아름다움’이고, 그곳을 방문하기 위해 기꺼이 막대한 액수를 지불하려고 하기 때문에, 수입원은 그곳의 보존과 현지 주민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환경 보호의 주 수혜자가 될 것이고, 그들은 ‘주주’의 입장에서 환경 보호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얘기된다.
커크 리치(Kirk Leech) 지음


이러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문객수는 부정확하기로 악명이 높다. 관광의 몇 퍼센트가 생태관광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지에 관한 제대로 된 연구도 수행된 적이 없다. 그래도 몇몇 연구들이 확실히 보여준 바에 따르면, 자연을 찾는 관광객의 50%는 방문 기간 동안 자연공원이나 야생지역을 방문하려고 한다. 개별적으로 또는 소그룹을 지어 상대적으로 때 묻지 않은 자연 지역으로 여행하면서 자연 환경을 경험하고 현지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일은 지난 20년 사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북부와 남부 유럽의 대중적인 관광지에서 자연 관광지로 선호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호구역의 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세계의 3억 헥타르가 넘는 지역이 이제는 세계보호연합에 의해 야생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세계적으로는 야생지역, 공원, 성소를 포함해 5000개가 넘는 보호구역이 있다. 세계은행 등의 재정적 지원으로, 더 많은 땅이 야생지역이나 보호구역으로 지정되고 있다.
정동욱 옮김


이 글에서 나는, 보호 프로젝트를 위해 수많은 지역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일이 사실 오늘날 생태관광객들의 주요 목적지가 되고 있는 국가의 국민들에게 별 이익이 되지 않음을 주장할 것이다. 보호의 욕구, 그리고 생태관광의 욕구에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뿌리 깊은 냉소뿐만 아니라 계몽된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배타적 장소에 관한 19세기 식민주의적 관념이 채워져 있다. 생태관광 활동은 현지 사회에 장기적인 이익이 되지 않는다. 현지 사람들은 자기 땅에서 축출되거나, 자기 삶을 규제받고 있으며, 이들에게는 소규모 자연 중심 개발안에 기초한 미래만이 남아 있다. 이 모두는 보호주의적 꿈과 정신적 행복을 향한 서구의 낭만주의적 추구만을 만족시킬 뿐이다.


==성소, 성소==


성소(sanctuaries)는 우리가 그곳으로 도망치거나 그곳에 숨어서 자신을 회복하기 위한 장소이다. 이는 너무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 삶에 대한 정확히 21세기적인 반응이다. 세계의 야생지역들은 성소로 간주되며, 이 지역은 특권적인 서구 방문객들에게 야생의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을 경험하도록 해준다.  
유엔은 2002년을 국제 생태관광의 해로 지정했다. 그리고 유엔 지속가능한 개발 위원회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유엔 환경프로그램(UNEP)과 국제관광기구(WTO)에 생태관광을 촉진하는 국제적인 활동을 수행하도록 위임했다. 생태관광은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진보적인 여행이라고 이야기되며, 이는 환경에 대한 인간의 영향에 주의하고 토착 공동체의 문화를 존중할 것을 강조한다. 생태관광의 옹호자들은 이를 통해 보호와 개발이라는 대립적인 요구를 해결하는 동시에 야생지역과 보호구역 ― 개발이 규제되는 지역 ― 에 대해 점증해가는 요구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공원이나 보호구역과 같이 사람이 없는 야생지역을 여행하는 기회는 생태관광 체험에서 빠뜨릴 수 없는 미적 요소 중 하나이다. 이는 환경에 해를 입히거나 토착민의 삶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진짜 경험, 진정한 경험, 섬세한 경험을 제공해준다고 이야기된다. 오늘날의 국제 여행객들에게는 이것이 ‘진짜’, ‘자연의’, ‘지속가능한 경험’으로 간주된다.  


생태관광 회사의 여행 브로셔는 보통 ‘통상적인’ 휴가에 대해 ‘당신은 그 경험을 통해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당신은 떠나기 전과 같은 사람으로 돌아온다’면서 모욕하는 반면, 삶을 변화시키는 생태관광 경험을 격찬한다. ‘붐비지 않는, 잘 보존된 해안선이나 우림을 방문해서 당신 앞에 펼쳐진 자연의 경이를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는 현지인으로부터 가이드를 받는 것을 상상해 보라.’ ‘별빛이 쏟아지는 해변에서 전통 춤에 참여해 보라. 현지 가이드는 기꺼이 통역과 해석을 해줄 것이다.’ ‘그들의 집에서 현지인들을 만나는’ 기회도 덧붙여진다. 우리는 ‘진짜 보르네오 경험’을 할 수 있다. 아니면 ‘잉카인들이 밟았던 고대의 돌 위를 걷고 산길을 가로지를 수 있으며,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여 영혼에 울림을 주는 고대 의식 장소에서 휴식을 취할 있다.’ 또 아니면 ‘손상되지 않은 밀림을 찾고 있는 당신이 4일간의 패키지에서 그 순수한 형태의 자연을 경험하고 싶다면, 열대 우림 모험은 당신 것’이 될 수도 있다.
생태관광은 그것이 가진 보호주의적 측면 덕분에 세계보호연합(World Conservation Union)과 세계야생동물기금(World Wildlife Fund)과 같은 국제 환경단체의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환경단체의 지지자들은 생태적으로 파괴적인 인류의 영향 때문에 지구에는 보호구역과 야생지역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생태계는 인간이 저지르는 불법 행위의 무고한 희생자로서 지구상의 많은 지역에서 인간을 추방하거나 인간의 활동을 규제하는 것에서 그 해법을 찾을 있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은 생태적으로 온화하고 경제적으로도 유익한 저영향 생태관광 활동의 강력한 지지자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적인 세계를 떠나 성소를 갈구하지만, 사람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을 맛볼 수 있는 야생지역의 관념은 서구의 낭만주의적 환상이다. 게다가, 분명한 것은 이 지역의 보호가 현지 사회들의 엄청난 희생에 기초해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생태관광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땅에서 쫓겨나거나, 삶을 규제받거나, 혹은 테마공원의 엑스트라 역할을 강요받는다.  
개발과 관련하여, 생태관광은 겉보기에는 정말로 현지 사회에 이익을 주는 방법인 듯해 보인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생태관광이 상당한 장점을 가진 틈새시장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방문객은 더 많은 돈을 쓰고 더 오래 머묾으로써 현지인들에게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줄 것이다. 영국 국제개발부(DFID)는 ‘가난-지원 관광(pro-poor tourism)’이라 이름 붙인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역시 동일한 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들은 생태관광을 대상 국가의 유용한 수입원 이상의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들이 보기에 생태관광은 대상 국가들의 경제와 기반 시설을 개발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가난-지원 관광’은 다양한 수입원을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방문객과 수입원을 유인하기 위해 생태관광은 아름다운 자연에 의존한다. 여행객들이 원하는 것은 ‘원시의 아름다움’이고 그곳을 방문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막대한 액수를 지불하려 하기 때문에, 그 수입은 그곳의 보존과 현지 주민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환경 보호의 주 수혜자가 될 것이므로, ‘이해관계자’의 입장에서 환경 보호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줄 것으로 이야기된다.


야생지역에서 사람을 없애기 위한 싸움은 오래 전부터 시작된 일이다. 19세기 미국에서는, 야생을 현대의 성소 ― 인간 영혼의 갱생과 부활을 위해 비워져야 하는 사람 없는 장소 ― 로 보려는 운동과 분위기가 형성됐다. 존 뮈어(John Muir), 앨도 레오폴드(Aldo Leopold),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등의 미국 낭만주의자들이 주도한 이런 형태의 낭만주의는 산업화에 대한 반발의 일종이었다. 그들은 요세미티(Yosemite), 세쿼이아(Sequoia),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과 같은 야생지역에서 사람을 없애기 위해, 1872년 세계 최초의 보호구역, 옐로스톤 공원(Yellowstone Park)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쇼쇼니(Shoshone) 인디언 거주자들은 쫓겨났고, 3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미국 군대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뮈어와 그의 동료들은 자연 보호와 보존이 인간의 정신적, 신체적 행복에 유익할 것으로 보았지만, 쇼쇼니 인디언들은 분명 그 고려 대상 밖에 있었다.
이러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문객의 수는 부정확하기로 악명이 높다. 관광의 몇 퍼센트가 생태관광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지에 관한 제대로 된 연구가 수행된 적도 없다. 그래도 몇몇 연구들이 확실히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자연을 찾는 관광객의 50%는 방문 기간 동안에 자연공원이나 야생지역을 방문하려고 한다. 개별적으로 또는 소그룹을 지어 상대적으로 때 묻지 않은 자연 지역을 여행하면서 자연 환경을 체험하고 현지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일은 지난 20년 사이에 빠르게 증가해왔으며, 이는 사람들의 선호가 북부와 남부 유럽의 대중적인 관광지에서 자연 관광지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호구역의 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이제는 전세계에 걸쳐 3억 헥타르가 넘는 지역이 세계보호연합에 의해 야생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세계적으로는 야생지역, 공원, 성소를 포함해 5,000개가 넘는 보호구역이 있다. 세계은행 등의 재정적 지원에 힘입어, 더 많은 땅이 야생지역이나 보호구역으로 지정되고 있다.


이러한 추방관은 미국의 국립공원 개발의 관점이 되었고, 이후에는 전지구적 보호의 관점으로 채택되었다. 야생지역 및 현지 공동체 추방이라는 아이디어는 19세기 식민주의적 관념, 특히 영국의 관념과 매우 쉽게 통합된다. 뮈어의 입장은 사실상 전지구적 보호 진영의 본보기가 되었다.
이 글에서 나는, 보호 프로젝트를 위해 수많은 지역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일이 사실 오늘날 생태관광객들의 주요 목적지가 되고 있는 국가의 국민들에게는 그다지 이익이 되지 않음을 주장할 것이다. 보호의 욕구, 그리고 생태관광의 욕구에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뿌리 깊은 냉소뿐만 아니라 계몽된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배타적 장소라고 하는 19세기의 식민주의적 관념이 팽배해 있다. 생태관광 활동은 현지 사회에 장기적인 이익이 되지 못한다. 현지 사람들은 자기 땅에서 축출되거나 삶을 규제받고 있으며, 이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소규모 자연 중심 개발안에 기초한 미래뿐이다. 이 모두는 보호주의적 꿈과 정신적 행복을 향한 서구의 낭만주의적 추구만을 만족시켜줄 뿐이다.


==야생 보호구역이 현지 사회에 미치는 실제 영향==
=== 성소, 성소 ===
성소(sanctuaries)는 우리가 그곳으로 도망치거나 그곳에 숨어서 자신을 회복시키기 위한 장소이다. 그리고 이는 너무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삶에 대한 정확히 21세기적인 반응이다. 세계의 야생지역들은 성소로 간주되며, 이 지역은 특권적인 서구 방문객들에게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자연을 체험하도록 해준다.


보호구역은 현재 5000여개 정도로, 지구상에서 3%의 땅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공원, 야생보호구역, 성소들의 대다수는 원래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곳에 만들어진다. 남아메리카의 경우, 85%의 보호구역에 원래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의 경우, 3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500개의 국립공원과 성소 안에서 살고 있다. 오늘날 많은 보호구역들의 역사는 현지 사회 추방의 역사이자 점증하는 규제의 역사이다. 동부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면서 세렌게티 초원(Serengeti Plains)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호구역으로 만들었던 보호주의자 버나드 그지멕(Bernard Grzimek)은 1960년대에 마사이 원주민을 그들의 땅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었다. 그지멕은 국립공원이 효과를 보려면 원시적인 야생지역으로 고수되어야 하며 원주민을 포함해 어떤 사람도 그 안에 살면 안 된다고 믿었다. 탄자니아의 응고로고로산(Ngorongoro) 분화구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마사이족은 야생동물 보호구역 개발을 위해 지역을 떠나라는 압력이나 권유를 받았다. 이후 그들은 적절한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데 실패했고, 결국 그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추방 조치는 광범위한 비판을 받게 되었다.
생태관광 회사의 여행 브로셔는 보통 ‘통상적인’ 휴가에 대해서는 “당신은 그 체험을 통해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당신은 떠나기 전과 같은 사람으로 돌아온다”면서 모욕하는 반면, 삶을 변화시키는 생태관광 체험에 대해서는 격찬을 아끼지 않는다. “붐비지 않는, 잘 보존된 해안선이나 우림을 방문해서 당신 앞에 펼쳐진 자연의 경이를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는 현지인으로부터 가이드를 받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별빛이 쏟아지는 해변에서 전통 춤에 참여해보라. 현지 가이드는 기꺼이 통역과 해석을 해줄 것이다.” ‘그들의 집에서 현지인들을 만날’ 기회도 덧붙여진다. 우리는 ‘진짜 보르네오 체험’을 할 수 있다. 아니면 ‘잉카인들이 밟았던 고대의 돌 위를 걷고 산길을 가로지를 수 있으며,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여 영혼에 울림을 주는 고대 의식의 장소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그것도 아니면 “손상되지 않은 밀림을 찾고 있는 당신이 4일간의 패키지에서 순수한 형태의 자연을 체험하고 싶다면, 열대 우림 모험은 당신의 것”이 될 수도 있다.


공원 설립의 표준 모형이 만들어짐으로써, 국립공원에서 사람을 추방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고, 이주는 공원 설립의 합법적인 요구 조건이 되었다. 사람들이 계속 있다고 해서 서구 보호주의자들의 감수성을 위협하는 것 외에는 위협하는 것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들의 존재가 생물학적 다양성에 위협이 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적인 세계를 떠날 수 있는 성소를 갈구하지만, 사람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을 맛볼 수 있는 야생지역이라는 관념은 서구의 낭만주의적 환상일 뿐이다. 게다가 분명한 것은, 이 지역의 보호가 현지 사회의 엄청난 희생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생태관광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땅에서 쫓겨나거나, 삶을 규제받거나, 혹은 테마공원의 엑스트라 역할을 강요받고 있다.  


카메룬(Cameroon)은 5분의 1이 넘는 땅이 공원에 바쳐진 상태이거나 그럴 준비 중에 있으며, 그 상당수는 생태관광에 사용되고 있다. 코럽(Korup) 국립공원은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살던 126000헥타르의 숲으로, 이 공원의 설립은 국제야생동물기금으로부터 경제적 개발과 보호를 통합한 모범적인 계획이라며 찬사를 받았다. 공원의 설립은 현지 사회의 이주를 뜻했고, 그 이주는 국제야생동물기금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그러자 이주 당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공원의 공공연한 목적을 위협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사결과들이 쏟아져 나왔다. 프레드 피어스(Fred Pearce)의 1999년 책 『녹색 첨병 ''The Green Warriors''』(Bodley Head)에서 한 목동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야생지역에서 사람을 없애기 위한 싸움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된 일이다. 19세기의 미국에서는, 야생을 현대의 성소 ― 인간 영혼의 갱생과 부활을 위해 비워져야 할, 사람이 없는 장소 ― 로 보려는 운동과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존 뮤어(John Muir), 앨도 레오폴드(Aldo Leopold),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등의 미국 낭만주의자들이 주도했던 이런 형태의 낭만주의는 산업화에 대한 반발의 일종이었다. 그들은 요세미티(Yosemite), 세쿼이아(Sequoia), 그랜드캐니언(Grand Canyon)과 같은 야생지역에서 사람을 없애기 위해, 1872년 세계 최초의 보호구역인 옐로스톤 공원(Yellowstone Park)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쇼쇼니(Shoshone) 인디언들이 쫓겨났고 미국 군대에 의해 3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뮤어와 그의 동료들은 자연 보호와 보존이 인간의 정신적, 신체적 행복에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쇼쇼니 인디언들은 그 고려 대상의 바깥에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 공원은 백인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들은 공원 내에서 여전히 사냥을 할 수 있으며, 그들이 원하는 것은 뭐든 할 수 있다. 당국에서 우리 사람들을 사냥이란 죄목으로 갑자기 감옥에 보내기 전까지 우리는 공원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다. 그제야 우리는 우리 가축을 죽이고 있는 야생 동물을 사냥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왜 아무도 우리의 생각을 묻지 않는가?
이러한 추방이라는 전망이 미국의 국립공원 개발의 관점이 되었고, 이후에는 전지구적 보호의 관점으로 채택되었다. 야생지역이라는 발상과 현지 공동체의 추방이라는 발상은 19세기의 식민주의적 관념, 특히 영국의 관념과 매우 쉽게 통합된다. 뮤어의 입장은 사실상 전지구적 보호를 외치는 진영의 본보기가 되었다.


현지 공동체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허용되는 경우, 그들의 삶은 심각하게 규제를 받는다. 세계야생동물기금은 사하라 사막 주변에 자연보호지역을 설립하는 데 관여했다. 그중 눈에 띄는 프로젝트는 니제르(Niger)의 사막 지역에 가까운 아이르 마시프(Air Massif)에 아이르 테네레(Air and Tenere) 국립 자연보호구역이다. 세계야생동물기금과 니제르 정부는 3000명의 지역 유목민들 ― 대부분은 투아레그족(Tuareg) 목동 ― 을 스위스 두 배 크기의 구역에 계속 살도록 놔두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냥이나 가축 보호와 같은 활동의 통제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에서 ‘개발’이란 10000km2의 땅 ― ‘엄격한 자연보호구역’이 되어 버린 ― 을 상실한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었다. 보호구역 내에서, 모든 사냥은 금지되었고 자칼 등의 육식동물로부터 가축을 보호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목축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이는 실질적인 희생이었다. 개발의 경우, 그 주요한 계획은 그 지역에 관광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세계야생동물기금의 한 대변인은 투아레그족이 거의 돈을 벌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야생 보호구역이 현지 사회에 미치는 실제 영향 ===
보호구역은 현재 5,000여 개 정도로서 지구상에서 3% 정도의 땅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공원, 야생보호구역, 성소들의 대다수는 원래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곳에 만들어진다. 남아메리카의 경우, 85%의 보호구역에 원래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의 경우에는 3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500개의 국립공원과 성소 안에서 살고 있다. 오늘날 많은 보호구역들의 역사는 현지 사회 추방의 역사이자 점증하는 규제의 역사이다. 동부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면서 세렝게티 초원(Serengeti Plains)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호구역으로 만들어낸 보호주의자 베른하르트 그르지멕(Bernhard Grzimek)은 1960년대에 마사이 원주민을 그들의 땅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르지멕은 국립공원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원시적인 야생지역으로 고수되어야 하며 원주민을 포함해 어떤 사람도 안에서 살면 안 된다고 믿었다. 탄자니아의 은고롱고로(Ngorongoro) 분화구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마사이족은 야생동물 보호구역 개발을 위해 그 지역을 떠나라는 압력과 권유를 받았다. 이후 그들은 적절한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데 실패했고, 그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추방 조치는 결국 광범위한 비판을 받게 되었다.


1994년 세계야생동물기금은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채택했다. ‘그는 그의 우림을 파괴하고 있다. 그를 멈추기 위해 당신은 군대를 보내겠습니까, 아니면 [기금을 모으기 위해] 인류학자를 보내겠습니까?’ 환경보호주의에 대한 비판가 톤 디엣츠(Ton Dietz)는 이것이 새로운 환경 규범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현지 사회를 곤궁에 빠뜨리고 범죄자로 만들어 버리는 ‘생태전체주의적 접근’이라며 비판한다(『자연 자원에 대한 권리 ''Entitlement to Natural Resources''』, International Books, 1996).
공원 설립의 표준 모형이 만들어짐으로써, 국립공원에서 사람을 추방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고 이주는 공원 설립의 합법적인 요구 조건이 되었다. 이 사람들이 계속 있다고 해도 서구 보호주의자들의 감수성 외에는 아무것도 위협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적어도 이들의 존재가 생물학적 다양성에 위협이 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카메룬의 [보존 및 관광] 프로그램은 뮈어식 보존 및 추방 프로그램의 윤리성을 재검토하게 해주었다. 환경이 인간의 이익보다 우선시됨에 따라 현지 사회가 점점 곤궁에 처하게 되었다는 증거는 계속 쌓여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발 진영에서는 보호의 필요성과 현지 사람들의 개발 요구를 화해시키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프로젝트와 귀결을 검토할 것이다.
카메룬(Cameroon)은 국토의 5분의 1이 넘는 땅이 공원에 바쳐진 상태이거나 그럴 준비 중에 있으며, 그 상당부분이 생태관광에 사용되고 있다. 코럽(Korup) 국립공원은 원래는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살아가던 126,000헥타르의 숲으로서, 이 공원의 설립은 국제야생동물기금으로부터 경제적 개발과 보호를 통합한 모범적인 계획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공원의 설립은 현지 사회의 이주를 뜻했고, 그 이주는 국제야생동물기금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그러자 이주당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공원의 공공연한 목적을 위협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조사결과들이 쏟아져나왔다. 프레드 피어스(Fred Pearce)의 1999년 책 『녹색 첨병』(''The Green Warriors'')[Bodley Head]에 등장하는 한 목동은 이렇게 이야기한다.<blockquote>이 공원은 백인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들은 공원 안에서 여전히 사냥을 할 수 있으며, 그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당국에서 우리 마을 사람들을 사냥이라는 죄목으로 갑자기 감옥에 보내기 전까지 우리는 공원의 존재도 알지 못했다. 그제서야 우리는 우리 가축을 죽이는 야생 동물을 사냥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왜 아무도 우리의 생각을 묻지 않는 것인가?</blockquote>현지 공동체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허용될 경우, 그들의 삶은 심각한 규제를 받는다. 세계야생동물기금은 사하라 사막 주변에 자연보호지역을 설립하는 일에 관여했다. 그중 눈에 띄는 프로젝트로는 니제르(Niger)의 사막 지역 근처 아이르 마시프(Air Massif)[아이르 대산괴]에 걸쳐 있는 아이르 테네레(Air and Tenere) 국립 자연보호구역이 있다. 세계야생동물기금과 니제르 정부는 3,000명에 달하는 그 지역 유목민들 ― 대부분은 투아레그족(Tuareg)에 속하는 목동들 ― 을 스위스 두 배 크기의 구역에 계속 살도록 놔두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냥이나 가축 보호와 같은 활동의 통제를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에서 ‘개발’이라는 것은 이제는 ‘엄격한 자연’이 되어 상실된 10,000km<sup>2</sup>의 땅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었다. 보호구역 내에서는 모든 사냥이 금지되었고 자칼 등의 육식동물로부터 가축을 보호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목축을 주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이는 실질적인 희생이었다. 개발이라고 할 때, 주요 계획은 이 지역에 관광을 도입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세계야생동물기금의 한 대변인도 막상 투아레그족은 거의 돈을 벌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생태관광의 문제==
1994년 세계야생동물기금은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채택했다. “그는 그의 우림을 파괴하고 있다. 그를 멈추게 하기 위해 당신은 군대를 보내겠습니까, 아니면 [기금을 모으기 위해] 인류학자를 보내겠습니까?” 환경보호주의 비판가 톤 디에츠(Ton Dietz)는 이것을 새로운 환경 규범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현지 사회를 곤궁에 빠뜨리고 범죄자로 만들어버리는 ‘생태전체주의적 접근’이라고 비판한다.<ref>『자연 자원에 대한 권리』(''Entitlement to Natural Resources''), International Books, 1996</ref>


생태관광과 공동체 관광의 언어는 단지 보호와 보존을 넘어서 현지 주주, 권한 이양, 개발, 공동체 참여까지를 포괄한다. 즉 이는 현지 사람들의 이익을 짓밟지 말아야 한다는 요구까지 고려한 접근법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많은 증거에 의하면, 현지 사람들과 비정부기구(NGO) 사이에 진정한 협력이 있다는 생각은 한참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카메룬의 [보존 및 관광] 프로그램은 뮤어식 보존 및 추방 프로그램이 갖는 윤리성을 재검토하게 해주었다. 인간의 이익보다 환경이 우선시됨에 따라 현지 사회가 점점 곤궁에 처하게 되었다는 증거는 계속 쌓여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발 진영에서는 보호의 필요성과 현지 사람들의 개발 요구를 화해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 프로젝트와 그 귀결을 검토해보겠다.


예컨대, 유엔 사회개발연구소의 프로젝트 책임자 크리쉬나 기미레(Krishna Ghimire)의 주장에 따르면, 잘 입증된 사례들에서 그러한 계획의 현지인 참여는 ‘현지 사람들에게 지속가능한 생계 대안을 제공하기보다는 주로 공원과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 고안되었다’(‘공원과 사람들 ''Parks and people''’, 『개발과 변화 ''Development and Change''』, 25, 1, 1994년 1월). 올레 카무아로(Ole Kamuaro)도 ‘현지 사람들은 생태관광 사업의 계획과 수행 과정에 거의 참여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생태관광: 자살인가 개발인가? ''Eco-tourism: Suicide or Development?''』, UN Non-Governmental Liason Service, 1996). 비판자들이 보기에, 생태관광은 야생지역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양자 모두에 대한 이상화된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 카무아로에 따르면, 생태관광 사업의 목적은 진정한 자연, 손 때 묻지 않은 자연에 대한 관광객의 향수어린 욕망을 자극하는 것으로, 이러한 목적 하에서 현지의 사람들은 관광객에게 발견될 수 있도록 제공된다. 토착민들이 생태관광 옹호자들의 환경적 관심을 공유하지 않거나 새로운 보호 테마공원의 배우가 되고 싶어 하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논의되지 않는다.
=== 생태관광의 문제 ===
생태관광과 공동체 관광의 언어는 단순한 보호와 보존을 넘어서 현지 이해 당사자, 권한 이양, 개발, 공동체 참여까지를 포괄하고 있다. 즉 이는 현지 사람들의 이익을 짓밟지 말아야 한다는 요구까지를 고려하는 접근법인 듯해 보인다. 그러나 많은 증거에 의하면, 현지 사람들과 비정부기구(NGO) 사이에 진정한 협력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한참 잘못된 것이라 생각된다.  


생태관광의 옹호자들도 현지의 적대감을 인식하고 있는데, 그들은 그 해답이 공동체 교육에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많은 현지 사회가 야생 보호라는 서구 보호론자들의 견해를 공유하지 않고 있으며 생태관광 디즈니랜드의 배우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날카 파묵스 공원(Nlaka'pamux)의 현지인 루비 더스탠(Ruby Dustan)은 자신이 수십 년 동안 살아온 땅인 캐나다 앨버타(Alberta)의 스타인 계곡(Stein Valley)에 대해 그러한 견해를 보여준다. ‘나는 스타인 계곡을 야생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고 그녀는 말했다. ‘아빠는 “거기는 우리의 식품 저장실이야”라고 말했었다... 일부 백인 환경보호주의자들은 어딘가가 야생지역으로 공표되면, 그곳은 연약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 안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사람들 머릿속의 낭만적 관념을 이루고 있는 그것은 우리 머릿속에서는 음식일 뿐이다’(M. Colchester, ‘자연 구하기: 토착민과 보호지역 Salvaging Nature: Indigenous Peoples and Protected Areas’ in K. B. Ghimire and M. P. Pimbert (eds), 『사회적 변화와 보존: 환경 정치학과 국립공원과 보호지역의 영향 ''Social Change and Conservation: Environmental Politics and the Impacts of National Parks and Protected Areas'', Earthscan, 1997). 학자 엘리자베스 켐프(Elizabeth Kempf)가 수행한 연구도 현지의 관점과 보호론자들의 관점 사이의 유사한 차이를 발견했다. 그녀가 인터뷰한 카메룬 파리(Fari) 국립공원의 한 목동은 ‘이 공원은 백인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들은 공원 내에서 여전히 사냥을 할 수 있으며, 그들이 원하는 것은 뭐든 할 수 있다. 당국에서 우리 사람들을 사냥이란 죄목으로 갑자기 감옥에 보내기 전까지 우리는 공원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다’고 설명했다(『토착민과 보호지역 ''Indegenous People and Protected Areas''』, Sieera Books, 1994).
예컨대, 유엔 사회개발연구소의 프로젝트 책임자인 크리슈나 기미르(Krishna Ghimire)의 주장에 따르면, 잘 입증된 사례들에서 그러한 계획의 현지인 참여는 “현지 사람들에게 지속가능한 생계 대안을 제공하기보다는 주로 공원과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 고안되었다”.<ref>‘공원과 사람들’(Parks and people, 『개발과 변화』(''Development and Change''), 25, 1, 1994년 1월</ref> 올레 카무아로(Ole Kamuaro) 역시 “현지 사람들은 생태관광 사업의 계획과 수행 과정에 거의 참여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ref>『생태관광: 자살인가 개발인가?』(''Eco-tourism: Suicide or Development?''), UN Non-Governmental Liason Service, 1996</ref> 비판자들이 보기에, 생태관광은 야생지역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양자 모두에 대한 이상화된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 카무아로에 따르면, 생태관광 사업의 목적은 진정한 자연, 손때 묻지 않은 자연에 대한 관광객의 향수어린 욕망을 자극하는 것으로서, 현지의 사람들은 이러한 목적 하에서 관광객에게 발견될 수 있도록 제공된다. 토착민들이 생태관광 옹호자들의 환경적 관심을 공유하지 않거나 새로운 보호 테마공원의 배우가 되고 싶어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거의 논의되지도 않는다.


세계야생동물기금에서도 ‘권한 이양’이나 ‘현지인 참여’에 관한 자신들의 주장이 과장되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프리카에서 국립공원을 장려하는 운동을 벌인지 25년이 지난 시점에서, 세계야생동물기금은 현지 사회가 그들의 사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조사를 수행했다. 프랑스 세계야생동물기금의 살리 잘레브스키(Sally Zalewski)는 서부 아프리카에서 현지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는 데 2년을 보냈다. 그녀의 연구가 발견한 것은 지금까지 출판된 적이 없는 것으로, 세계야생동물기금에 충격을 주었다. 그 조사에 따르면, 현지 사람들은 수많은 국립공원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그중 최고의 ‘모른다’ 수치(74%)를 기록한 사람들은 바로 동부 세네갈의 니콜라 코바(Nikola Koba) 국립공원에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발견은 세계야생동물기금을 이중으로 난처하게 했는데, 이동 교육 시설 중 하나가 수년 동안 탐바카운다(Tambacounda)에 있는 그 공원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는 세계야생동물기금의 판다 심벌조차도 현지 주민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잘레브스키에 따르면, 대부분의 주민들은 그 동물에 대해 궁금해 하면서, 그것이 어디에 사는지, 자기 나라에 사는 것인지, 또 먹을 수는 있는 것인지 도리어 질문을 했다고 한다.
생태관광의 옹호자들 역시 현지의 적대감을 인식하고 있는데, 그들은 그 해답이 공동체 교육에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많은 현지 사회가 야생 보호라는 서구 보호론자들의 견해를 공유하지 않고 있으며 생태관광 디즈니랜드의 배우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은라카파무크스 공원(Nlaka'pamux)의 현지인인 루비 더스탠(Ruby Dustan)은 자신이 수십 년 동안 살아온 땅인 캐나다 앨버타(Alberta)의 스테인 밸리(Stein Valley)에 대해 그러한 견해를 보여준다. ‘나는 스테인 벨리를 야생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그녀는 말했다. “아빠는 ‘거기는 우리의 식품 저장실이야’라고 말했었다. … 일부 백인 환경보호주의자들은 어딘가가 야생지역으로 공표되기만 하면, 그곳은 연약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 안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사람들 머릿속의 낭만적 관념을 이루고 있는 그것이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그저 음식일 뿐이다.”<ref>M. Colchester, ‘자연 구하기: 토착민과 보호지역’(Salvaging Nature: Indigenous Peoples and Protected Areas) in K. B. Ghimire and M. P. Pimbert (eds), 『사회적 변화와 보존: 환경 정치학과 국립공원과 보호지역의 영향』(''Social Change and Conservation: Environmental Politics and the Impacts of National Parks and Protected Areas''), Earthscan, 1997</ref> 학자 엘리자베스 켐프(Elizabeth Kempf)가 수행한 연구에서도 현지의 관점과 보호론자들의 관점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한 차이가 발견되었다. 그녀가 인터뷰한 카메룬 파리(Fari) 국립공원의 한 목동은 “이 공원은 백인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들은 공원 안에서 여전히 사냥을 할 수 있으며, 그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당국에서 우리 마을 사람들을 사냥이라는 죄목으로 갑자기 감옥에 보내기 전까지 우리는 공원의 존재도 알지 못했다”고 설명한다.<ref>『토착민과 보호지역』(''Indegenous People and Protected Areas''), Sieera Books, 1994</ref>


그러나 현지 사회가 생태관광객이 기대하는 대로 살기를 원치 않는다고 결정을 내리는 경우, 이는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 로버트 고든(Robert Gordon)의 연구에 따르면, 남부 아프리카의 칼라하리 겜복(Kalahari Gemsbok) 국립공원에 살고 있는 산족(부시맨)이 약간의 현대적 설비와 용품 ― 더 나은 집과 새로운 옷 ― 을 요청했을 때, 공원 관리인은 ‘구경겨리로서의 가치에 심각한 금이라도 가는 것처럼’ 화를 냈다고 한다(M. Colchester, ‘자연 구하기: 토착민과 보호지역 Salvaging Nature: Indigenous Peoples and Protected Areas’ op.cit에서 인용).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연기를 주문 받고 있는 것이다. 같은 공원을 조사하던 수 암스트롱(Sue Armstrong) 기자의 지적에 따르면, 평범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생태관광객들이 봤을 때 ‘그들의 첫 질문은 항상 부시맨은 어디에 있냐는 것이다’(‘땅을 잃은 땅의 사람들 A landless people of the land’, 『전자우편 & 가디언 ''Electronic Mail & Guardian''』, 1996년 7월 11일).
세계야생동물기금에서도 ‘권한 이양’이나 ‘현지인 참여’에 관한 자신들의 주장이 과장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프리카에서 국립공원을 장려하는 운동을 벌인지 25년이 지난 시점에서, 세계야생동물기금은 현지 사회가 그들의 사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조사를 수행했다. 프랑스 세계야생동물기금의 살리 잘레브스키(Sally Zalewski)는 서부 아프리카에서 현지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면서 2년을 보냈다. 그녀의 연구가 밝혀낸 내용은 아직까지 출판되지 않았지만 그 결과가 세계야생동물기금에 충격을 안겨주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 조사에 따르면, 현지 사람들은 수많은 국립공원의 존재를 아예 모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모른다’는 응답률이 가장 높았던(74%) 사람들은 바로 동부 세네갈의 니콜라 코바(Nikola Koba) 국립공원 가까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발견은 세계야생동물기금을 이중으로 난처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동 교육 시설 중 하나가 수년 동안이나 탐바카운다(Tambacounda)에 있는 그 공원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는 잘 알려져 있는 세계야생동물기금의 상징, 판다(panda) 역시 현지 주민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잘레브스키에 따르면, 대부분의 주민들은 그 동물에 대해 궁금해하면서, 그것은 어디에 사는지, 자기네 나라에서 사는 동물인지, 또 먹을 수는 있는 것인지를 도리어 질문했다고 한다.  


서바이벌 인터내셔널(Survival International)도 그들이 정말 ‘연기’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분명히 어떤 부시맨은 생태관광만 아니었으면 하지 않았을 연기를 하고 있다. 그들은 관광객이 통상 기대하는 역할을 연기하고 있다. ‘보츠와나(Botswana)에서 떨어진 부시맨의 캠프에서 일어난 일이다. 멀리서 몰려오는 먼지 구름은 (관광객) 차량이 도착했음을 말해준다. 사람들은 하던 일이 뭐든 모두 멈추고는 재빨리 티셔츠와 바지와 무명 원피스를 벗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Mowforth and Munt, 『관광과 지속가능성: 제3세계에서의 새로운 관광 ''Tourism and Sustainability: New Tourism in the Third World'', Routledge, 1998). 부시맨을 구경거리로 사용하는 것을 두고 학계의 모우포스(Mowforth)와 먼트(Munt)는 ‘동물원화(zooification)’라고 부른다.
그러나 현지 사회가 생태관광객이 기대하는 대로 살고 싶지 않다고 결정하는 경우, 이 결정은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 로버트 고든(Robert Gordon)의 연구에 따르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칼라하리 겜스복(Kalahari Gemsbok) 국립공원에서 살고 있는 산족(San)[부시맨]이 약간의 현대적 설비와 용품 ― 더 나은 집과 새로운 옷 ― 을 요청했을 때, 공원 관리인은 ‘구경거리로서의 가치에 심각한 금이라도 가는 것처럼’ 화를 냈다고 한다.<ref>M. Colchester, ‘자연 구하기: 토착민과 보호지역'(Salvaging Nature: Indigenous Peoples and Protected Areas) ''op.cit''에서 인용</ref>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연기할 것을 주문받고 있다. 같은 공원을 조사하던 수 암스트롱(Sue Armstrong) 기자의 지적에 따르면, 평범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생태관광객들이 봤을 때 ‘언제나 그들의 첫 질문은 부시맨은 어디에 있냐는 것이다’.<ref>‘땅을 잃은 땅의 사람들’(A landless people of the land), 『전자우편 & 가디언』(''Electronic Mail & Guardian''), 1996년 7월 11일</ref>


현지 사람들은 사실 생태관광의 장점에 대해 (그리고 그 장점을 취하려면 결국 ‘진짜 원주민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서도) 잘 아는 것처럼 보인다. 즉 생태관광은 그들에게 돈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그들이 그에 따른 대가에 적대적인 것 또한 그만큼 분명해 보인다. 케냐의 마사이족은 케냐 야생동물국장이 추진한 이주 계획에 반대했다. 그 이주는 그들을 목축에는 덜 의존하도록 해주겠지만 관광에는 더 의존하도록 만들 것이었다. 1999년 그들은 조지 몽비오트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의견을 말했다. ‘우리는 관광으로부터 돈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안다. 우리는 이미 관광객들이 우리 땅에서 천막을 치고 묵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맞다. 그들은 우리에게 수입을 가져다준다. 우리는 케냐 야생동물국로부터 그 말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은 리키 박사(Dr Leaky)에게 이것을 말해줬으면 한다. 우리는 이 관광객들에 의존해 살고 싶지 않다. 우리는 마사이족이며 우리는 목축을 원한다’(George Monbiot, ‘그런데 그것은 누구의 야생동물인가? Whose wildlife is it anyway?’, 『전자우편 & 가디언 ''Electronic Mail & Guardian'', 1999년 6월 9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공원들과 보호구역들 중 일부는 현지 사회의 엄청난 희생에 기초해 있었음이 밝혀졌다. 케냐의 야생동물 컨설턴트 디나이 버거(Dhynai Berger)는 마사이족이 생존을 위해 방물장수로 전락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보호구역에 대한 수 암스트롱 기자의 말에 따르면, 자기 자신이 중요한 구경거리인 부시맨은 사냥이 허용되지만 오직 활과 화살로만 사냥을 해야 한다. ‘사자는 밤이면 어김없이 그들의 당나귀와 염소를 잡아가지만... 부시맨은 그들을 사냥할 수 없다’(‘땅을 잃은 땅의 사람들 A landless people of the land’, 『전자우편 & 가디언 ''Electronic Mail & Guardian''』, 1996년 7월 11일).
서바이벌 인터내셔널(Survival International)그들이 정말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분명히 어떤 부시맨은 생태관광만 아니었으면 하지 않았을 연기를 하고 있다. 그들은 관광객이 통상적으로 기대하는 역할을 연기한다. “보츠와나(Botswana)에서 조금 떨어진 부시맨의 캠프에서 일어난 일이다. 멀리서 몰려오는 먼지 구름이 (관광객) 차량의 도착을 알려준다. 하던 일이 무엇이든 간에 사람들은 모든 일을 멈추더니 재빨리 티셔츠와 바지와 무명 원피스를 벗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ref>Mowforth and Munt, 『관광과 지속가능성: 제3세계에서의 새로운 관광』(''Tourism and Sustainability: New Tourism in the Third World''), Routledge, 1998</ref> 부시맨을 구경거리로 사용하는 것을 학계의 모우포스(Mowforth)와 먼트(Munt)는 ‘동물원화(zooification)’라고 부르고 있다.


케이프타운(Cape Town) 북부의 카가 카마(Kagga Kamma) 보호구역에서, 관광객은 부시맨 그룹이 전통 의식을 수행하는 것을 돈을 주고 볼 수 있다. 관광 외에는 경제적 기회가 거의 없는 부시맨들과 그 사춘기 아이들은 돈을 위해 맨살 옷을 입고 춤을 춘다. 그러나 한 오두막 주인은 그 그룹에 퇴짜를 놓았는데, 이유는 그들이 진품(진짜 원주민)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Eddie Koch, ‘이는 누구의 땅인가? Whose land is this?, 『전자우편 & 가디언 ''Electronic Mail & Guardian'', 1995년 2월 23일). 어떤 이들에게, 부시맨의 진품 여부는 문제가 아니었다. 모잠비크의 생태관광 프로젝트의 총지배인은 칼라하리 부시맨 몇몇을 모잠비크로 수입하고 싶어 했다. 그는 에디 코치(Eddie Koch)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지 사람들은 사실 생태관광의 장점에 대해 (그리고 그 장점을 취하기 위해서는 결국 ‘진짜 원주민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듯해 보인다. 즉 생태관광이 그들에게 돈을 가져다준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에 따른 대가에 적대적이라는 것 또한 그만큼이나 분명해 보인다. 케냐의 마사이족은 케냐 야생동물국장이 추진한 이주 계획에 반대했다. 이주를 하면 그들은 목축에는 덜 의존하게 되겠지만 관광에는 더 의존하게 될 것이었다. 1999년 그들은 조지 몽비오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관광으로부터 돈이 생길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도 알고 있다. 우리는 이미 관광객들이 우리 땅에서 천막을 치고 묵도록 해주었다. 그렇다. 그들은 우리에게 수입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우리가 케냐 야생동물국으로부터 듣고 싶은 말은 그것이 아니다. 당신이 리키 박사(Dr Leaky)에게 이렇게 전해줬으면 한다. 우리는 이 관광객들에게 의존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 우리는 마사이족이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목축이다.”<ref>George Monbiot, ‘그런데 그것은 누구의 야생동물인가?’(Whose wildlife is it anyway?), 『전자우편 & 가디언』(''Electronic Mail & Guardian''), 1999년 6월 9일</ref>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공원들과 보호구역들 중 일부는 현지 사회의 엄청난 희생에 기초해 있었음이 밝혀졌다. 케냐의 야생동물 컨설턴트인 디나이 버거(Dhynai Berger)는 마사이족이 생존을 위해 방물장수로 전락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보호구역에 대한 수 암스트롱 기자의 보고에 따르면, 자기 자신이 중요한 구경거리인 부시맨에게는 사냥이 허용된다. 단, 활과 화살만으로. “사자는 밤이면 어김없이 그들의 당나귀와 염소를 잡아가지만 … 부시맨은 그들을 사냥할 수 없다.”<ref>‘땅을 잃은 땅의 사람들’(A landless people of the land), 『전자우편 & 가디언』(''Electronic Mail & Guardian''), 1996년 7월 11일</ref>


:내식대로 한다면, 나는 밖에서 몇몇 작은 애들을 여기로 데려올 것이다. 증기기관차에 탄 관광객이 창문 밖으로 코끼리와 코뿔소를 보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나면 그들은 다른 창문을 통해 허리에 간단한 옷을 걸친 작은 흑인 애들이 독화살을 들고 뛰어 다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코뿔소를 여기로 데리고 와서 그들을 멸종으로부터 구해내듯이, 왜 멸종해 가고 있는 작은 애들을 데리고 오는 것은 되는가.
케이프타운(Cape Town) 북부의 카가 캄마(Kagga Kamma) 동물 보호구역에서, 관광객은 부시맨 그룹이 전통 의식을 수행하는 모습을 돈을 주고 볼 수 있다. 관광 외에는 거의 대부분의 경제적 기회를 박탈당한 부시맨들과 그 사춘기 아이들은 돈을 위해 맨살을 드러내는 옷을 입고 춤을 춘다. 그러나 한 숙소의 주인은 그 그룹에 퇴짜를 놓았다. 그들이 진품(진짜 원주민)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말이다!<ref>Eddie Koch, ‘이는 누구의 땅인가?’(Whose land is this?), 『전자우편 & 가디언』(''Electronic Mail & Guardian''), 1995년 2월 23일</ref> 어떤 이들은 부시맨의 진품 여부에 개의치 않았다. 모잠비크 생태관광 프로젝트의 총지배인은 칼라하리 부시맨을 몇 명 정도 모잠비크로 수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에디 코흐(Eddie Koch)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blockquote>내식대로 해도 된다면, 나는 여기서 몇몇 작은 애들을 데리고 갈 것이다. 증기기관차에 탄 관광객이 창문 밖으로 코끼리와 코뿔소를 보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나면 그들은 다른 창문을 통해 허리에만 간단한 옷을 걸친 작은 흑인 아이들이 독화살을 들고 뛰어다니는 장면을 보게 될 것이다. 코뿔소를 여기로 데려옴으로써 멸종에서 구해내듯이 멸종해가고 있는 작은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이 될 이유는 무엇인가?<ref>Eddie Koch, ‘바로 여기에 꿈의 공원을 세우려 하는 텍사스인’(The Texan who plans a dream park just here), 『전자우편 & 가디언』(''Electronic Mail & Guardian''), 1996년 1월 18일</ref></blockquote>어떤 사람들은 더욱 운이 나쁘다. 지금은 태국에서 살고 있는 ‘긴 목으로 유명한’ 미얀마 출신 카레니 부족의 난민 여성들은 ‘인간 동물원의 구경거리가 되어’ 사실상 노예로서 살아가고 있다.<ref>‘놀라운 태국’(Amazing Thailand), 『BBC 세계 온라인』(''BBC World Service online''), 1999년 3월 21일</ref> 긴 목의 여성을 방문하는 일정은 코끼리를 타는 일이나 오래된 아편굴을 답사하는 일 등과 함께 패키지 관광의 일부이다. 그 여성들을 모두 수도 랑군으로 이주시켜 관광 명물로 살게 하려다 실패한 계획도 있었다. 세계은행은 1986년에서 1996년 사이에 3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기 땅에서 쫓겨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ddie Koch, ‘바로 여기에 꿈의 공원을 세우려 하는 텍사스인 The Texan who plans a dream park just here’, 『전자우편 & 가디언 Electronic Mail & Guardian』, 1996년 1월 18일


어떤 사람들은 더 운이 나쁘다. 지금은 태국에 살고 있는 ‘긴 목으로 유명한’ 미얀마 카레니 부족 난민 여성들은 ‘인간 동물원의 구경거리로서’ 사실상 노예로 살고 있다(‘놀라운 태국 Amazing Thailand’, 『BBC 세계 온라인 BBC World Service online』, 1999년 3월 21일). 긴 목의 여성을 방문하는 일정은 코끼리 타기나 오래된 아편굴 답사 등과 함께 패키지 관광의 일부이다. 그 여성들을 모두 수도 랑군에 이주시켜 관광 명물로 살게 하려다 실패한 계획도 있었다. 세계은행은 1986년에서 1996년 사이에 3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자기 땅에서 쫓겨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이것은 개발이 아니다 ===
비정부기구와 정부의 생태관광과 공동체 관광 옹호자들은 자신들이 개발을 촉진하고 토착민들을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적 다양성, 지속가능성, 적정기술이라는 말을 늘어놓음으로써 그들은 이 소규모 프로그램들이 개발도상국을 위한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개발도상국에서의 개발에 대한 새로운 정의로서, 그 정의에서 소규모 관광은 개발의 결핍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들에 전망이 없다는 것은 명백하며, 현실은 놀라울 정도로 터무니없다. 사실 많은 관광지 국가들에는 기초 기반 시설이나 실질적인 산업이 없고, 천연 자원을 이용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선택지도 없는 상태이다. 게다가 대규모의 근본적인 경제 발전을 옹호하던 사람들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이것은 개발이 아니다==
생태관광은 현지 사회와 자연의 관계를 고정시키며, 개발과 진보를 자연이나 농사에 의존하는 데서 벗어나게 해주기보다는 오히려 자연 자본에 더 의존하게 만든다. 이는 현지인들의 행복을 환경적 관심과 직결시킨다. 관광을 국가의 수입원으로 보는 점이나 사람들이 이런 유형의 휴가와 활동을 즐기는 것에 본질적으로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실질적인 개발의 방법으로 보는 것은 개발이 무엇인지에 대한 퇴화된 의미를 드러낼 뿐이다.


비정부기구와 정부의 생태관광과 공동체 관광 옹호자들은 자신들이 개발을 촉진하고 토착민들을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적 다양성, 지속가능성, 적정기술이란 말로, 그들은 이 소규모 프로그램들이 개발도상국을 위한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개발도상국을 위한 개발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그 정의에서 소규모 관광은 개발의 결핍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들에 전망이 없다는 것은 명백하며, 그 현실은 놀라울 정도로 터무니없다. 사실 많은 관광지 국가들은 기초 기반 시설이나 실질적인 산업이 없으며, 천연 자원을 이용하는 외에는 아무런 선택지가 없는 상태이다. 게다가 대규모의 근본적인 경제 발전을 옹호하던 사람들은 사라진지 오래다.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지기 위해, 개발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변화시켜야만 한다. 그런데 생태관광 프로젝트들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복종을 다짐한다. 그러한 정책은 당신을 당신의 땅에서 추방하거나 당신의 경제 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그다지 크지도 않던 수입마저 빼앗은 일에 대한 변명이 되지 못한다. 추방에 대한 보상으로 소규모 개발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불편한 현실이다. 이러한 접근은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사실상 동결시키는 것이며, 이는 이 사회가 환경 관리인이 되는 말고는 절대로 변화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강화하는 것이다. 지리학자이면서 생태관광에 대해 비판적인 짐 부처(Jim Butcher)에 따르면, “공동체 관광은 그들이 환경만 생각한다는 비난에 직면한 보호주의자들에게는 답을 제공해주지만, 개발 자체에 대한 질문에는 별다른 해답을 주지 않는다”.<ref>『관광의 도덕화』(''The Moralisation of Tourism''), Routledge, 2002</ref>


생태관광은 현지 사회와 자연의 관계를 고정시키며, 이는 개발과 진보를 자연이나 농사에 의존하는 데서 벗어나게 해주기보다는 오히려 자연 자본에 더 의존하게 만든다. 이는 현지인들의 행복을 환경적 관심과 직결시킨다. 관광을 국가의 수입원으로 보는 것이나 사람들이 이런 유형의 휴가와 활동을 즐기는 것에 본질적으로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실질적인 개발의 방법으로 보는 것은 개발이 무엇인지에 대한 퇴화된 의미를 드러낸다.
(아래에서 상술할) 남아프리카의 흘루흘루웨-움폴로지(Hluhluwe-Umfolozi) 국립공원과 벨리즈(Belize)의 사례에서도 드러나겠지만, 새로운 개발 방식을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생태관광 프로그램들이 관광지 국가들에 자유롭고 독립적인 선택권을 준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선진국와 개발도상국 사이의 관계는 정치와 경제 영역에서 불공평하게 기울어져 있다.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의 경제적 압력과 국제 비정부기구의 정치적 압력을 견뎌낼 수 있다는 생각은 바보 같은 발상일 뿐이다.


변화를 주기 위해, 개발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변화시켜야 한다. 그런데 생태관광 프로젝트들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복종을 다짐한다. 그러한 정책은 당신을 당신의 땅에서 추방하거나 당신의 경제 활동을 규제함으로써 별로 되지도 않던 수입마저도 빼앗은 일에 대한 변명이 되지 못한다. 추방에 대한 보상으로 소규모 개발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이러한 접근은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사실상 동결시키는데, 이는 이 사회가 환경 관리인이 되는 것 말고는 절대 변화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강화한다. 지리학자이면서 생태관광에 비판적인 짐 부처(Jim Butcher)에 따르면, ‘공동체 관광은 그들이 환경만 생각한다는 비난에 직면한 보호주의자들에게 답을 제공하지만, 개발 자체에 대한 질문에는 별로 답을 주지 않는다’(『관광의 도덕화 The Moralisation of Tourism』, Routledge, 2002).
==== 남아프리카의 흘루흘루웨-움폴로지(Hluhluwe-Umfolozi) 국립공원 ====
흘루흘루웨-움폴로지 국립공원의 관광객 브로셔에는 이 공원이 ‘다양한 동물과 새, 다양한 사진거리, 엄청나게 다양한 나무와 식물로 유명’하다고 되어 있지만, 남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명한 그 공원에 대한 존 비달(John Vidal)의 조사에 따르면 생태관광지로서의 공원 설립은 현지 사회에 무척이나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다.<ref>‘엄청난 거짓말 같은 사실’(A great white Lie), 『가디언』(''Guardian''), 2001년 12월 1일</ref>


(아래에서 상술할) 남아프리카의 흘루흘루웨-움폴로지(Hluhluwe-Umfolozi) 국립공원과 벨리즈(Belize)의 사례에서 드러나겠지만, 새로운 개발 방식을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생태관광 프로그램들이 관광지 국가들에 자유롭고 독립적인 선택권을 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선진국와 개발도상국 사이의 관계는 정치와 경제 영역에서 불공평하게 기울어져 있다.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의 경제적 압력과 국제 비정부기구의 정치적 압력을 견뎌낼 수 있다는 생각은 바보 같은 생각이다.
25,000헥타르의 사바나 지대는 원주민들의 전통적인 사냥터였으며, 그 전에는 줄루족(Zulu) 왕의 사냥터였다. 오늘날, 서구 관광객들은 화려한 호텔이나 덤불로 지어진 오두막에서 잘 수 있으며, ‘야생’을 관광하고, 서구의 많은 사람들이 숭배하는 매력적인 동물들 ― 사자, 표범, 코끼리, 코뿔소, 기린 ― 을 (랜드로버 차량 안에서 안전하게) 관찰할 수 있다.  


===남아프리카의 흘루흘루웨-움폴로지(Hluhluwe-Umfolozi) 국립공원===
그 지역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개발은 불법이다. 이곳에는 길도, 건물도, 전화도, 전선도, 우물도, 펌프도, 파이프도, 경작도, 개발도 없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살 수 없으며 법적으로는 차도 들어올 수 없다. 이 ‘원시’ 지역에 입장할 때, 당신은 엄격한 격식에 따른 에티켓을 지켜야만 한다. 백인 가이드는 당신에게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가르치고 의례적인 몇 마디를 시킨 후에 그 지역으로의 입장을 허가한다. 그리고는 비달이 지적하듯이, 인간의 모든 흔적을 지우기 위해 당신은 ‘당신의 똥을 땅에 묻어달라’는 요구를 받는다.


흘루흘루웨-움폴로지 국립공원의 관광객 브로셔에는 공원이 ‘다양한 동물과 새, 다양한 사진거리, 엄청나게 다양한 나무와 식물로 유명’하다고 되어 있지만, 남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명한 그 공원에 대한 존 비달(John Vidal)의 조사는 생태관광지로서의 공원 설립이 현지 사회에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을 보여준다(‘엄청난 거짓말 같은 사실 A great white Lie’, 『가디언 Guardian』, 2001년 12월 1일).
그러나 그 땅은 문화적 창조물이다. 이는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다. 그 땅은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땅과는 거리가 멀고, 그보다는 오히려 데번(Devon)의 에덴 센터(Eden Centre)만큼이나 인공적으로 통제되고 있다. 매력적인 동물들은 다른 많은 야생동물 보호구역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지역에서 수입되었고 일부는 돈을 위해 선발된 것으로서, 손때가 묻지 않은 동물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은 땅을 조각했고, 특정 종의 동물들이 번성할 수 있도록 풀을 불태웠으며, 현지인들이 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지역에 울타리를 쳤다.


25000헥타르의 사바나 지대는 원주민들의 전통적인 사냥터였으며, 그 전에는 줄루족(Zulu) 왕의 사냥터였다. 오늘날, 서구 관광객들은 화려한 호텔이나 부시 오두막에서 잘 있으며, ‘야생’을 관광하고, 서구의 많은 사람들이 숭배하는 매력적인 동물들 ― 사자, 표범, 코끼리, 코뿔소, 기린 ― 을 (랜드로버 차량에서 안전하게) 관찰할 수 있다.  
움폴로지 야생지역의 방문객이 찾고 싶어하는 것은 분명하다. 유명한 골프선수 게리 플레이어(Gary Player)의 동생 이언(Ian)의 말에 따르면 “야생이란 신성한 원형을 간직한 장소이다”. “이 지역은 현대의 사원이다. 사람들은 야생지역에서 살 수 없으며 다만 오고 갈 있을 뿐이다.”<ref>J. Vidal, op.cit</ref> 이들은 단순한 야생동물 애호가가 아니라, 이빨과 발톱이 달린 포악한 자연과 가까이 조우함으로써 삶을 향상시키는 경험을 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야생의 장소가 인간 의식에 미치는 정신적 영향은 공원이 마케팅 과정에서 가장 크게 내세우는 지점이다.


지역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개발은 불법이다. 이곳엔 길도, 건물도, 전화도, 전선도, 우물도, 펌프도, 파이프도, 경작도, 개발도 없다. 이곳엔 아무도 살 수 없으며 법적으로는 차도 들어올 없다. 이 ‘원시’ 지역에 입장할 때, 당신은 엄격한 격식에 따른 에티켓을 지켜야 한다. 백인 가이드는 당신에게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가르치고, 의례적인 몇 마디를 시킨 후에 그 지역으로의 입장을 허가한다. 그리고는 비달이 지적하듯이, 인간의 모든 흔적을 지우기 위해, 당신은 ‘당신의 똥을 땅에 묻어 달라’는 요구를 받는다.
위와 같은 목가적 신화를 성취하고 서구의 소비를 위한 ‘순수한’ 아프리카 경치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그 땅을 인간의 일상 활동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사람들을 국립공원 밖으로 이주시켜 공원에는 휴가 때에만 입장할 있게 하는 작업이 필수적이었다. 다른 정책들과 마찬가지로, 야생동물 보호는 언제나 폭력과 군사작전에 준하는 수준의 작전, (법적) 제제를 동반해서 시행되었다.


그러나 땅은 문화적 창조물이다. 이는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다. 그 땅은 야생의 길들여지지 않은 땅과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데번(Devon)의 에덴 센터(Eden Centre)만큼이나 인공적으로 통제된다. 매력적인 동물들은 많은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다른 지역에서 수입되었으며, 일부는 돈을 위해 선발된 것으로 손때 묻지 않은 동물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은 땅을 조각했고, 특정 종이 번성할 수 있도록 풀을 불태웠으며, 현지인들이 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지역에 울타리를 쳤다.
군사적인 밀렵반대 운동에는 환경단체들이 관여했다. 1989년, 세계야생동물기금은 상아 밀렵꾼을 단속하기 위한 돈을 케냐 정부에 공급했다. 돈은 차보(Tsavo) 국립공원에서 밀렵 단속 작전에 사용되는 다섯 대의 비행기를 가동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후 기자들의 보도에 따르면, 밀렵꾼에 대한 ‘강경한’ 금지 캠페인은 정찰 비행기, ‘무장 헬리콥터’, 현지 밀렵 감시인을 끌어들임으로써 “사살 명령에 따르는 준군사적인 전투병을 양성했다”. 30명이 넘는 밀렵꾼이 사살되었다. 한 기자의 말에 따르면, “이는 그린피스(Green Peace)라기보다는 그린베레(Green Beret)[미군 소속의 특전부대]에 가까웠다”.<ref>F. Pearce, 『녹색 첨병』(''The Green Warriors''), Bodley Head, 1991에서 인용</ref>


움폴로지 야생지역의 방문객이 찾는 것은 분명하다. 유명한 골프 선수 게리 플레이어(Gary Player)의 동생 이언(Ian)의 말에 따르면, ‘야생은 신성한 원형을 간직한 장소이다.’ ‘이 지역은 현대의 사원이다. 사람들은 야생지역에 살면 안 되며, 다만 오고 갈 수만 있다’(J. Vidal, op.cit). 이들은 단순한 야생동물 애호가가 아니라, 이빨과 발톱의 포악한 자연과 가까이 조우함으로써 삶을 향상시키는 경험을 구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야생의 장소가 인간 의식에 미치는 정신적 영향은 공원이 마케팅에서 가장 크게 내세우는 지점이다.
==== 벨리즈(Belize) ====
『벨리즈 만들기: 주변부에서의 세계화』(''The Making of Belize: Globalization in the Margins'')[Bergin & Garvey, 1998]에서 앤 서덜랜드(Anne Sutherland)는, 벨리즈가 제조 산업 기반의 경제를 전혀 발전시키지 않았으며 결국 근대성의 결여로 인해 산업 사회의 고객을 위한 생태관광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그 나라의 관광이 번성하게 된 것은 명백하게도 그 나라가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 벨리즈는 생태관광에 의해 좌우되는 나라가 되었으며, 이 생태관광은 현지인들에 이익을 주기보다는 외국 관광객의 요동치는 변덕에 의존하는 제한된 형태의 경제 개발에 그들을 묶어두고 있다.


위와 같은 목가적 신화를 성취하고 서구의 소비를 위한 ‘순수한’ 아프리카 경치를 보존하려면, 반드시 땅을 인간의 일상 활동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사람들을 국립공원 밖으로 이주시켜, 그 공원에는 휴가 때에만 입장할 수 있게 해야 했다. 다른 정책들과 마찬가지로, 야생동물 보호는 언제나 폭력과 준-군사작전, (법적) 제제를 동반했다.
세계 최고의 야생 보호구역 중 하나라는 벨리즈의 명성은 1980년대에 형성되었다. 1981년 벨리즈가 독립하자, 국제 환경단체들이 나라에 입성했다. 새롭게 건립된 이 나라는 제한된 경제적 기반만을 가진 채 사실상 전혀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이것이 ‘새로운 환경 전도사들’에게는 탐스러우면서도 만만한 선택지를 제공했던 것이다. 그들은 정부에 로비를 벌이거나 재정적 동기를 제공하면서 정부를 회유했고, 그들의 방식을 정부부서에 밀어넣는 데에 성공함으로써 환경법안의 작성 권한뿐만 아니라 공원과 보호구역의 운영 권한까지 확보하고 말았다. 재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취약했던 이 신생국가는 환경보호주의자와 생태관광업자들의 유혹을 거부하기 힘들었다.


환경단체들은 군사적인 밀렵반대 운동에 관여했다. 1989년, 세계야생동물기금은 케냐 정부에 상아 밀렵꾼 단속을 위한 돈을 공급했다. 그 돈은 차보(Tsavo) 국립공원에서 밀렵 단속 작전에 사용되는 다섯 대의 비행기를 가동하는 데 들어갔다. 이후 기자들의 보도에 따르면, 밀렵꾼에 대한 ‘강경한’ 금지 캠페인은 정찰 비행기, ‘무장 헬리콥터’, 현지 밀렵 감시인을 끌어들여 ‘사살 명령에 따르는 준군사적인 전투병을 양성했다.’ 30명이 넘는 밀렵꾼이 사살되었다. 한 기자의 말에 따르면, ‘이는 그린 피스(Green Peace)보다는 그린 베레모(Green Beret)에 가까웠다’(F. Pearce, 『녹색 첨병 The Green Warriors』, Bodley Head, 1991에서 인용).
엄청나게 짧은 기간 동안에, 벨리즈의 방대한 지역이 보호구역으로 전환되고 현지인들의 접근은 제한되었다. 1993년까지 6,000km<sup>2</sup>가 넘는 땅이 보호구역으로 전환되었는데, 이는 전국토의 3분의 1이 넘는 면적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벨모판(Belmopan) 자연사박물관의 존 호웰(John Howell)은 국토의 50%를 보호구역으로 바꾸고 싶어했다. 이 모든 개발의 결과, 벨리즈의 상당부분은 보호구역과 그 주변의 생태관광 지역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는 벨리즈를 이상적인 생태관광지로 만들었고 이곳에서 올바른 생태적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관광은 금지되었다.


===벨리즈(Belize)===
1990년대 초에는, 『론리플래닛』(''Lonely Planet''), 『러프 가이드』(''Rough Guide'')와 같은 관광 가이드북이나 잡지 『시에라 클럽』(''Sierra Club'') 등의 책자들에 벨리즈가 실리기 시작했다. 윤리적 생태관광을 위한 비밀스런 장소에서 가장 선호되는 관광지로 전환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이제 벨리즈에는 매년 벨리즈 인구보다 더 많은 방문객이 입국하고 있다. 1993년의 방문객수는 260,056명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벨리즈 인구보다 55,000명이 많은 수이다. 2000년의 추정치에 따르면, 벨리즈 경제에서는 ‘서비스’ 분야가 차지하는 비율이 GDP의 58%나 되었으며 이 ‘서비스’ 분야의 상당 부분은 관광 산업이다.<ref>『CIA 세계 팩트북』(''CIA World Factbook''), 2001</ref> 벨리즈에서 관광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벨리즈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관광부 장관이 곧 환경부 장관인 나라라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관광과 환경의 연결고리를 벨리즈는 영구히 고착시킨 셈이다.


『벨리즈 만들기: 주변부에서의 세계화 The Making of Belize: Globalization in the Margins』(Bergin & Garvey, 1998)에서, 앤 서덜랜드(Anne Sutherland)는 벨리즈가 제조 산업 기반의 경제를 전혀 발전시키지 않았으며, 근대성의 결여로 인해 결국 산업 사회의 고객을 위한 생태관광지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그녀는 그 나라의 관광이 번성하게 된 것이 정확히 그 나라가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벨리즈는 지금 생태관광에 의해 좌우되는 나라가 되었는데, 이 생태관광은 현지인들에 이익을 주기보다는 그들을 외국 관광객의 요동치는 변덕에 의존하는 제한된 형태의 경제 개발에 묶어두고 있다.
벨리즈는 윤리적 관광의 낙원을 창조했다는 극찬을 받았고, 『카리브 해와 세계』(''Caribbean and World'')라는 잡지에서는 벨리즈를 1995년의 생태관광지로 선정했다. 여행사, 관광객, 개발업자들은 벨리즈를 자신들이 선택한 모습으로 창조하고 또 재창조하는 데 공을 들였다. 공원, 보호구역, 관광 리조트가 벨리즈의 땅과 경제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발이 벨리즈인들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세계 최고의 야생 보호구역 중 하나라는 벨리즈의 명성은 1980년대에 형성되었다. 1981년 벨리즈가 독립하자, 국제 환경단체들은 그 나라에 입성했다. 이 새롭게 건립된 나라는 제한된 경제적 기반만 가진 채 사실상 전혀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이는 ‘새로운 환경 전도사들’에게 탐스러우면서 만만한 선택지를 제공했다. 그들은 정부에 로비를 벌이거나 재정적 동기를 제공하면서 정부를 회유했고, 그들은 그들의 방식을 정부부서에 밀어 넣는 데 성공하여, 환경법안 작성 권한뿐 아니라 공원과 보호구역의 운영 권한까지 따냈다. 나라는 재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취약했던 터라 환경보호주의자와 생태관광업자들의 유혹을 거부하기 힘들었다.
외국 자금의 유입으로 이익을 얻은 이들도 있었다. 이제 벨리즈 경제에서 관광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농업에 버금간다. 그러나 벨리즈를 생태관광지로 만드는 일은 방대한 지역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그곳에서 현지 공동체를 쫓아내거나 그들의 활동을 통제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었다. 보호주의자인 앨런 라비노비츠(Alan Rabinowitz)는 『재규어: 벨리즈 정글에서의 투쟁과 승리』(''Jaguar: Struggle and Triumph in the Jungles of Belize'')[Arbor House, 1986]에서, 세계 최초의 재규어 보호구역인 콕스코움(Cockscomb) 보호구역에서 2년 동안 재규어를 구하는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현지 마야 사람들이 도움을 주었다고 칭찬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오만한 보호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재규어의 미래를 보호하기 위해 자연보호구역을 건립하려면 현지의 마야인들이 그들의 땅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엄청나게 짧은 기간 내에, 벨리즈의 방대한 지역은 보호구역으로 전환되었고, 현지인들의 접근은 제한되었다. 1993년까지, 6000km2가 넘는 땅이 보호구역으로 전환되었는데, 이는 전국토의 3분의 1이 넘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것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벨모판(Belmopan) 자연사 박물관의 존 호웰(John Howell)은 국토의 50%를 보호구역으로 바꾸고 싶어 했다. 이 모든 개발의 결과, 벨리즈의 상당부분은 보호구역과 주변의 생태관광 지역으로 이루어지게 되었고, 이는 벨리즈를 이상적인 생태관광지로 만들었으며, 이곳에서 올바른 생태적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관광은 금지되었다.
많은 환경주의자들은 벨리즈에서 인디언 집단을 추방하고 생태관광으로 전환하는 이 프로젝트를 환영했다. 미국의 주요 환경단체 중 하나인 지구감시 연구소(Earthwatch Institute)는 그 프로젝트가 매우 성공적이었다면서, 이를 통해 ‘삶을 영위하는 파괴적인 방식’이 생태관광으로 대체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들은 “현지인들도 처음에는 적대적이었지만, 현지 학교의 교사를 보호구역 관리인으로 고용한 이후 점차 생태관광의 경제적 이익을 보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ref>Earthwatch Institute, ‘낙원으로 가는 두 장의 표. 생태관광은 환경의 은혜인가 쓸데없는 일인가?’(Two Tickets to paradise. Is eco-tourism an environmental boon or boondoggle?), 1996년 11/12월호</ref> 자기 땅을 빼앗긴 인디언들은 이제 자신들이 쫓겨난 땅을 방문하고 있는 관광객들을 보호구역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벨리즈 원산물로 보일 법한 것들을 아무거나 만들어서 팔고 있다. 만약 프로젝트로부터 무엇인가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이 있었더라면, 원주민들이 (원래 살던 곳을 떠나) 마야까지 흘러 내려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1900년대 초에는, 『외로운 행성 Lonely Planet』, 『러프 가이드 Rough Guide』와 같은 관광 가이드북과 『시에라 클럽 Sierra Club』 잡지 등의 책자들이 벨리즈를 발견했다. 윤리적 생태관광을 위한 비밀스런 장소에서 가장 선호되는 관광지로의 전환은 순식간이었다. 이제 벨리즈는 벨리즈 인구보다 많은 방문객을 매년 받고 있다. 1993년 방문객수의 추정치는 260,056명인데, 이는 벨리즈 인구보다 55,000명이 많다. 2000년 추정치에 따르면, 벨리즈 경제에서 ‘서비스’ 분야가 차지하는 비율은 GDP의 58%나 되었는데, 이 ‘서비스’ 분야의 상당 부분은 관광산업이다(『CIA 세계 팩트북 CIA World Factbook』, 2001). 벨리즈에서 관광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벨리즈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관광부 장관이 곧 환경부 장관인 나라라는 사실에서도 드러나는데, 벨리즈는 관광과 환경의 연결고리를 영구히 고착시킨 셈이다.
벨리즈 태생의 작가인 서덜랜드(Sutherland)는 서구 환경단체들 ― 그녀는 그들을 ‘새로운 전도사’라고 지칭한다 ― 을 소름끼쳐 했다. 그들이 기독교 분파가 전도하던 복음 대신에 환경적 열정을 전도하고 다닌다면서 말이다. 그들은 현재 벨리즈 토지의 40%를 소유하고서, 자연을 관찰하거나 고고학 유적지를 방문하러 오는 생태관광객과 윤리적 관광객들을 위해 그 땅을 보호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이 생계를 위해 하던 전통적인 활동들이 이제는 범죄가 되었다는 사실을 벨리즈 현지 사회가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벨리즈는 윤리적 관광의 낙원을 창조했다는 극찬을 받았고, 『카리브 해와 세계 Caribbean and World』 잡지에서는 벨리즈를 1995년의 생태관광지로 선정했다. 여행사, 관광객, 개발업자들은 벨리즈를 자신들이 선택한 모습으로 창조하고 또 재창조하는 데 공을 들였다. 공원, 보호구역, 관광리조트는 벨리즈의 땅과 경제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발이 벨리즈인들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1993년 유엔 계발계획(UNDP)은 37%가 넘는 벨리즈 인구가 생계를 위해 해안지역에 의존하고 있다는 보고를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해안지역의 보호를 주장하면서 그것이 생태관광 모험의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라고 했다. 아프리카의 야생동물 공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벨리즈에서도 개발을 억제하고 현지인들을 그들의 땅에서 쫓아내는 데에는 군사적 방법이 동원되었다. 1997년 2월 21일, 벨리즈 군대는 과테말라 국경 인근의 마을을 에워싸고 현지인들의 작물을 파괴했다. 보호구역에서 농사를 지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떤 이들은 외국 자금의 유입으로 이익을 얻었다. 이제 벨리즈 경제에서 관광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농업에 버금간다. 그러나 벨리즈를 생태관광지로 만드는 일은 방대한 지역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그곳에서 현지 공동체를 쫓아내거나 그들의 활동을 통제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었다. 보호주의자 앨런 라비노비츠(Alan Rabinowitz)는 『재규어: 벨리즈 정글에서의 투쟁과 승리 Jaguar: Struggle and Triumph in the Jungles of Belize』(Arbor House, 1986)에서, 세계 최초의 재규어 보호구역인 콕스콤브(Cockscomb) 재규어 보호구역에서 2년 동안 재규어를 구하는 활동을 하는 데 현지 마야 사람들이 도움을 주었다며 칭찬을 한다. 그러나 많은 오만한 보호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재규어의 미래를 보호하기 위해 자연보호구역을 건립하려면 현지의 마야인들이 그들의 땅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현지인 애들버트 터커(Adalbert Turker)가 쓴 아래의 시는 궁지에 몰린 사람들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blockquote>재규어의 이름으로,


많은 환경주의자들은 벨리즈에서 인디언 집단을 추방하고 생태관광으로 전환하는 이 프로젝트를 환영했다. 미국의 주요 환경단체 중 하나인 지구감시 연구소(Earthwatch Institute)는 그 프로젝트가 매우 성공적이었다면서, 이를 통해 ‘삶을 영위하는 파괴적인 방식’이 생태관광으로 대체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들은 ‘현지인들도 처음에는 적대적이었지만, 현지 학교 교사를 보호구역 관리인으로 고용한 이후 점차 생태관광의 경제적 이익을 보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Earthwatch Institute, ‘낙원으로 가는 두 장의 표. 생태관광은 환경의 은혜인가 쓸데없는 일인가? Two Tickets to paradise. Is eco-tourism an environmental boon or boondoggle?’, 1996년 11/12월호). 자기 땅을 빼앗긴 인디언들은 이제 자신들이 쫓겨난 땅을 방문하고 있는 관광객들을 보호구역 밖에서 기다리다가, 벨리즈 원산물로 보이는 것들을 아무거나 만들어 팔고 있다. 만약 그 프로젝트로부터 얻는 뭔가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이 있었다면, 원주민들이 (원래 살던 곳을 떠나) 마야까지 흘러 내려가진 않았을 것이다.  
제발 내게 약간의 땅을 남겨주세요.


벨리즈 태생의 작가 서덜랜드(Sutherland)는 서구 환경단체들 ― 그녀는 그들을 ‘새로운 전도사’라고 부른다 ― 을 소름끼쳐 했는데, 그들은 기독교 분파가 전도하던 복음 대신에 환경적 열정을 전도하고 다녔다. 그들은 현재 벨리즈 토지의 40%를 소유하고서, 자연을 관찰하고 고고학 유적지를 방문하러 오는 생태관광객과 윤리적 관광객들을 위해 그 땅을 보호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벨리즈 현지 사회는 그들이 생계를 위해 하던 전통적인 활동들이 이제는 범죄가 되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게 되었다.
나비의 은총으로


1993년 유엔 계발계획(UNDP)은 37%가 넘는 벨리즈 인구가 생계를 위해 해안지역에 의존하고 있다는 보고를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해안지역의 보호를 주장하면서 그것이 생태관광 모험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아프리카의 야생동물 공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벨리즈에서도 개발을 억제하고 현지인들을 그들의 땅에서 쫓아내는 데 군사적 방법이 동원되었다. 1997년 2월 21일, 벨리즈 군대는 과테말라 국경 인근의 마을을 에워싸고서 현지인들의 작물을 파괴했다. 보호구역에서 농사를 지었다는 이유로.
내게도 1에이커(acre)만 남겨주세요


현지인 아달버트 터커(Adalbert Turker)가 쓴 아래의 시는 궁지에 몰린 사람들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내 친구 히카티 거북(hiccatee)에게도요.


:재규어의 이름으로,
어째서 내가 문제가 된 걸까요
:내 약간의 땅도 보호해 주세요.
:나비의 은총으로
:내게도 약간의 땅을 남겨 주세요
:내 친구 히카티 거북(hiccatee)에게도요.
:어째서 내가 문제가 된 거죠
:최근에서야
:환경을 말하면서
:인간을 잊은 거죠
:재규어의 이름으로
:그리고 비비의 이름으로
:보호구역에서 약간의 땅을
:벨리즈의 남자와 여자에게 남겨 주세요
:그리고 일부는 벨리즈의 어린이에게도요.
:우리는 보호구역 바깥의 비비와 같죠
:가장자리의 가장자리, 그 끝에 있으니까요
::In A. Sutherland, 『벨리즈 만들기: 주변부에서의 세계화 The Making of Belize: Globalization in the Margins』, 1998 (Bergin & Westport)


서덜랜드가 물었듯이, ‘벨리즈의 이 모든 보호구역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최근


==결론==
환경을 말하면서


생태관광의 옹호자들은 생태관광을 보존과 개발이라는 상충하는 요구와 압력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한다. 생태관광은 보호구역에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면서, 동시에 현지 사회에는 관광산업에 참여하고 환경 관리인이 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보상을 한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생물학적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 현지 사람들을 그들의 땅에서 쫓아내려고만 하는 과거의 생각보다 진일보해 보이지만, 두 개념은 모두 실제로는 현지 사회를 자연환경에 의존하도록 하는 동시에 지속가능성을 위한 제한된 개발의 전망 아래 묶어두고 있다. 이러한 부분적이고 퇴화된 의미의 개발 개념은 현지 사회에 장기적인 이익이 되지 못한다. 외국인 방문객에 의해 생기는 수입으로 현지 사회가 이익을 얻는 것에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러나 이를 현지 사회의 (유일한) 개발 방식으로 보면서, 그들의 실제 사회적 처지를 변화시키는 모든 시도를 제한하는 것은 원시상태를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인간을 잊었나 봐요


== 함께 보기==
재규어의 이름으로
 
그리고 비비 원숭이의 이름으로
 
보호구역에서 약간의 땅을
 
벨리즈의 남자와 여자에게 남겨주세요
 
그리고 벨리즈의 어린이에게도요.
 
우리는 보호구역 바깥의 비비와 같아요.
 
가장자리의 가장자리, 그 끝에 있으니까요
 
서덜랜드(A. Sutherland), 『벨리즈 만들기: 주변부에서의 세계화』(''The Making of Belize: Globalization in the Margins'')[Bergin & Westport, 1998]에서</blockquote>서덜랜드가 물었듯이, ‘벨리즈의 이 모든 보호구역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 결론 ===
생태관광의 옹호자들은 생태관광을 보존과 개발이라는 상충하는 요구와 압력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한다. 생태관광은 보호구역에 대해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면서, 동시에 현지 사회에는 관광 산업에 참여하고 환경 관리인이 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보상을 한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생물학적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 현지 사람들을 그들의 땅에서 쫓아내려고만 하는 과거의 생각보다 진일보한 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개념 모두 현지 사회를 자연환경에만 의존하도록 만드는 동시에 지속가능성을 위한 제한된 개발의 전망 아래 묶어둘 뿐이다. 이러한 부분적이고 퇴화된 의미의 개발 개념은 현지 사회에 장기적인 이익이 되어주지 못한다. 외국인 방문객에 의해 생기는 수입으로 현지 사회가 이익을 얻는 것에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러나 이를 현지 사회의 (유일한) 개발 방식으로 보면서 그들의 실제 사회적 처지를 변화시킬 수 있는 모든 시도를 제한하는 것은 원시상태를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 주 ===
<references />
 
== 관련 항목 ==
「[[윤리적 관광: 누구를 위한 것인가?]]」 목차
{{윤리적 관광 목차}}
{{윤리적 관광 목차}}
 
[[분류:윤리적 관광]]
[[분류: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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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윤리적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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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10일 (목) 13:35 기준 최신판

커크 리치 지음, 정동욱 옮김, "강요된 원시상태", 「윤리적 관광: 누구를 위한 것인가?」, 『논쟁 없는 시대의 논쟁』 (이음, 2009)

번역

강요된 원시상태


커크 리치(Kirk Leech) 지음

정동욱 옮김


유엔은 2002년을 국제 생태관광의 해로 지정했다. 그리고 유엔 지속가능한 개발 위원회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유엔 환경프로그램(UNEP)과 국제관광기구(WTO)에 생태관광을 촉진하는 국제적인 활동을 수행하도록 위임했다. 생태관광은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진보적인 여행이라고 이야기되며, 이는 환경에 대한 인간의 영향에 주의하고 토착 공동체의 문화를 존중할 것을 강조한다. 생태관광의 옹호자들은 이를 통해 보호와 개발이라는 대립적인 요구를 해결하는 동시에 야생지역과 보호구역 ― 개발이 규제되는 지역 ― 에 대해 점증해가는 요구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공원이나 보호구역과 같이 사람이 없는 야생지역을 여행하는 기회는 생태관광 체험에서 빠뜨릴 수 없는 미적 요소 중 하나이다. 이는 환경에 해를 입히거나 토착민의 삶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진짜 경험, 진정한 경험, 섬세한 경험을 제공해준다고 이야기된다. 오늘날의 국제 여행객들에게는 이것이 ‘진짜’, ‘자연의’, ‘지속가능한 경험’으로 간주된다.

생태관광은 그것이 가진 보호주의적 측면 덕분에 세계보호연합(World Conservation Union)과 세계야생동물기금(World Wildlife Fund)과 같은 국제 환경단체의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환경단체의 지지자들은 생태적으로 파괴적인 인류의 영향 때문에 지구에는 보호구역과 야생지역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생태계는 인간이 저지르는 불법 행위의 무고한 희생자로서 지구상의 많은 지역에서 인간을 추방하거나 인간의 활동을 규제하는 것에서 그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은 생태적으로 온화하고 경제적으로도 유익한 저영향 생태관광 활동의 강력한 지지자들이다.

개발과 관련하여, 생태관광은 겉보기에는 정말로 현지 사회에 이익을 주는 방법인 듯해 보인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생태관광이 상당한 장점을 가진 틈새시장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방문객은 더 많은 돈을 쓰고 더 오래 머묾으로써 현지인들에게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줄 것이다. 영국 국제개발부(DFID)는 ‘가난-지원 관광(pro-poor tourism)’이라 이름 붙인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역시 동일한 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들은 생태관광을 대상 국가의 유용한 수입원 이상의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들이 보기에 생태관광은 대상 국가들의 경제와 기반 시설을 개발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가난-지원 관광’은 다양한 수입원을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방문객과 수입원을 유인하기 위해 생태관광은 아름다운 자연에 의존한다. 여행객들이 원하는 것은 ‘원시의 아름다움’이고 그곳을 방문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막대한 액수를 지불하려 하기 때문에, 그 수입은 그곳의 보존과 현지 주민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환경 보호의 주 수혜자가 될 것이므로, ‘이해관계자’의 입장에서 환경 보호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줄 것으로 이야기된다.

이러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문객의 수는 부정확하기로 악명이 높다. 관광의 몇 퍼센트가 생태관광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지에 관한 제대로 된 연구가 수행된 적도 없다. 그래도 몇몇 연구들이 확실히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자연을 찾는 관광객의 50%는 방문 기간 동안에 자연공원이나 야생지역을 방문하려고 한다. 개별적으로 또는 소그룹을 지어 상대적으로 때 묻지 않은 자연 지역을 여행하면서 자연 환경을 체험하고 현지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일은 지난 20년 사이에 빠르게 증가해왔으며, 이는 사람들의 선호가 북부와 남부 유럽의 대중적인 관광지에서 자연 관광지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호구역의 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이제는 전세계에 걸쳐 3억 헥타르가 넘는 지역이 세계보호연합에 의해 야생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세계적으로는 야생지역, 공원, 성소를 포함해 5,000개가 넘는 보호구역이 있다. 세계은행 등의 재정적 지원에 힘입어, 더 많은 땅이 야생지역이나 보호구역으로 지정되고 있다.

이 글에서 나는, 보호 프로젝트를 위해 수많은 지역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일이 사실 오늘날 생태관광객들의 주요 목적지가 되고 있는 국가의 국민들에게는 그다지 이익이 되지 않음을 주장할 것이다. 보호의 욕구, 그리고 생태관광의 욕구에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뿌리 깊은 냉소뿐만 아니라 계몽된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배타적 장소라고 하는 19세기의 식민주의적 관념이 팽배해 있다. 생태관광 활동은 현지 사회에 장기적인 이익이 되지 못한다. 현지 사람들은 자기 땅에서 축출되거나 삶을 규제받고 있으며, 이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소규모 자연 중심 개발안에 기초한 미래뿐이다. 이 모두는 보호주의적 꿈과 정신적 행복을 향한 서구의 낭만주의적 추구만을 만족시켜줄 뿐이다.

성소, 성소

성소(sanctuaries)는 우리가 그곳으로 도망치거나 그곳에 숨어서 자신을 회복시키기 위한 장소이다. 그리고 이는 너무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삶에 대한 정확히 21세기적인 반응이다. 세계의 야생지역들은 성소로 간주되며, 이 지역은 특권적인 서구 방문객들에게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자연을 체험하도록 해준다.

생태관광 회사의 여행 브로셔는 보통 ‘통상적인’ 휴가에 대해서는 “당신은 그 체험을 통해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당신은 떠나기 전과 같은 사람으로 돌아온다”면서 모욕하는 반면, 삶을 변화시키는 생태관광 체험에 대해서는 격찬을 아끼지 않는다. “붐비지 않는, 잘 보존된 해안선이나 우림을 방문해서 당신 앞에 펼쳐진 자연의 경이를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는 현지인으로부터 가이드를 받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별빛이 쏟아지는 해변에서 전통 춤에 참여해보라. 현지 가이드는 기꺼이 통역과 해석을 해줄 것이다.” ‘그들의 집에서 현지인들을 만날’ 기회도 덧붙여진다. 우리는 ‘진짜 보르네오 체험’을 할 수 있다. 아니면 ‘잉카인들이 밟았던 고대의 돌 위를 걷고 산길을 가로지를 수 있으며,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여 영혼에 울림을 주는 고대 의식의 장소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그것도 아니면 “손상되지 않은 밀림을 찾고 있는 당신이 4일간의 패키지에서 그 순수한 형태의 자연을 체험하고 싶다면, 열대 우림 모험은 당신의 것”이 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적인 세계를 떠날 수 있는 성소를 갈구하지만, 사람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을 맛볼 수 있는 야생지역이라는 관념은 서구의 낭만주의적 환상일 뿐이다. 게다가 분명한 것은, 이 지역의 보호가 현지 사회의 엄청난 희생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생태관광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땅에서 쫓겨나거나, 삶을 규제받거나, 혹은 테마공원의 엑스트라 역할을 강요받고 있다.

야생지역에서 사람을 없애기 위한 싸움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된 일이다. 19세기의 미국에서는, 야생을 현대의 성소 ― 인간 영혼의 갱생과 부활을 위해 비워져야 할, 사람이 없는 장소 ― 로 보려는 운동과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존 뮤어(John Muir), 앨도 레오폴드(Aldo Leopold),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등의 미국 낭만주의자들이 주도했던 이런 형태의 낭만주의는 산업화에 대한 반발의 일종이었다. 그들은 요세미티(Yosemite), 세쿼이아(Sequoia), 그랜드캐니언(Grand Canyon)과 같은 야생지역에서 사람을 없애기 위해, 1872년 세계 최초의 보호구역인 옐로스톤 공원(Yellowstone Park)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쇼쇼니(Shoshone) 인디언들이 쫓겨났고 미국 군대에 의해 3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뮤어와 그의 동료들은 자연 보호와 보존이 인간의 정신적, 신체적 행복에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쇼쇼니 인디언들은 그 고려 대상의 바깥에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추방이라는 전망이 미국의 국립공원 개발의 관점이 되었고, 이후에는 전지구적 보호의 관점으로 채택되었다. 야생지역이라는 발상과 현지 공동체의 추방이라는 발상은 19세기의 식민주의적 관념, 특히 영국의 관념과 매우 쉽게 통합된다. 뮤어의 입장은 사실상 전지구적 보호를 외치는 진영의 본보기가 되었다.

야생 보호구역이 현지 사회에 미치는 실제 영향

보호구역은 현재 5,000여 개 정도로서 지구상에서 3% 정도의 땅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공원, 야생보호구역, 성소들의 대다수는 원래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곳에 만들어진다. 남아메리카의 경우, 85%의 보호구역에 원래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의 경우에는 3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500개의 국립공원과 성소 안에서 살고 있다. 오늘날 많은 보호구역들의 역사는 현지 사회 추방의 역사이자 점증하는 규제의 역사이다. 동부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면서 세렝게티 초원(Serengeti Plains)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호구역으로 만들어낸 보호주의자 베른하르트 그르지멕(Bernhard Grzimek)은 1960년대에 마사이 원주민을 그들의 땅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르지멕은 국립공원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원시적인 야생지역으로 고수되어야 하며 원주민을 포함해 어떤 사람도 그 안에서 살면 안 된다고 믿었다. 탄자니아의 은고롱고로(Ngorongoro) 분화구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마사이족은 야생동물 보호구역 개발을 위해 그 지역을 떠나라는 압력과 권유를 받았다. 이후 그들은 적절한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데 실패했고, 그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추방 조치는 결국 광범위한 비판을 받게 되었다.

공원 설립의 표준 모형이 만들어짐으로써, 국립공원에서 사람을 추방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고 이주는 공원 설립의 합법적인 요구 조건이 되었다. 이 사람들이 계속 있다고 해도 서구 보호주의자들의 감수성 외에는 아무것도 위협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적어도 이들의 존재가 생물학적 다양성에 위협이 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카메룬(Cameroon)은 국토의 5분의 1이 넘는 땅이 공원에 바쳐진 상태이거나 그럴 준비 중에 있으며, 그 상당부분이 생태관광에 사용되고 있다. 코럽(Korup) 국립공원은 원래는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살아가던 126,000헥타르의 숲으로서, 이 공원의 설립은 국제야생동물기금으로부터 경제적 개발과 보호를 통합한 모범적인 계획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공원의 설립은 현지 사회의 이주를 뜻했고, 그 이주는 국제야생동물기금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그러자 이주당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공원의 공공연한 목적을 위협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조사결과들이 쏟아져나왔다. 프레드 피어스(Fred Pearce)의 1999년 책 『녹색 첨병』(The Green Warriors)[Bodley Head]에 등장하는 한 목동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공원은 백인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들은 공원 안에서 여전히 사냥을 할 수 있으며, 그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당국에서 우리 마을 사람들을 사냥이라는 죄목으로 갑자기 감옥에 보내기 전까지 우리는 공원의 존재도 알지 못했다. 그제서야 우리는 우리 가축을 죽이는 야생 동물을 사냥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왜 아무도 우리의 생각을 묻지 않는 것인가?

현지 공동체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허용될 경우, 그들의 삶은 심각한 규제를 받는다. 세계야생동물기금은 사하라 사막 주변에 자연보호지역을 설립하는 일에 관여했다. 그중 눈에 띄는 프로젝트로는 니제르(Niger)의 사막 지역 근처 아이르 마시프(Air Massif)[아이르 대산괴]에 걸쳐 있는 아이르 테네레(Air and Tenere) 국립 자연보호구역이 있다. 세계야생동물기금과 니제르 정부는 3,000명에 달하는 그 지역 유목민들 ― 대부분은 투아레그족(Tuareg)에 속하는 목동들 ― 을 스위스 두 배 크기의 구역에 계속 살도록 놔두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냥이나 가축 보호와 같은 활동의 통제를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에서 ‘개발’이라는 것은 이제는 ‘엄격한 자연’이 되어 상실된 10,000km2의 땅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었다. 보호구역 내에서는 모든 사냥이 금지되었고 자칼 등의 육식동물로부터 가축을 보호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목축을 주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이는 실질적인 희생이었다. 개발이라고 할 때, 그 주요 계획은 이 지역에 관광을 도입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세계야생동물기금의 한 대변인도 막상 투아레그족은 거의 돈을 벌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994년 세계야생동물기금은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채택했다. “그는 그의 우림을 파괴하고 있다. 그를 멈추게 하기 위해 당신은 군대를 보내겠습니까, 아니면 [기금을 모으기 위해] 인류학자를 보내겠습니까?” 환경보호주의 비판가 톤 디에츠(Ton Dietz)는 이것을 새로운 환경 규범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현지 사회를 곤궁에 빠뜨리고 범죄자로 만들어버리는 ‘생태전체주의적 접근’이라고 비판한다.[1]

카메룬의 [보존 및 관광] 프로그램은 뮤어식 보존 및 추방 프로그램이 갖는 윤리성을 재검토하게 해주었다. 인간의 이익보다 환경이 우선시됨에 따라 현지 사회가 점점 곤궁에 처하게 되었다는 증거는 계속 쌓여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발 진영에서는 보호의 필요성과 현지 사람들의 개발 요구를 화해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 프로젝트와 그 귀결을 검토해보겠다.

생태관광의 문제

생태관광과 공동체 관광의 언어는 단순한 보호와 보존을 넘어서 현지 이해 당사자, 권한 이양, 개발, 공동체 참여까지를 포괄하고 있다. 즉 이는 현지 사람들의 이익을 짓밟지 말아야 한다는 요구까지를 고려하는 접근법인 듯해 보인다. 그러나 많은 증거에 의하면, 현지 사람들과 비정부기구(NGO) 사이에 진정한 협력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한참 잘못된 것이라 생각된다.

예컨대, 유엔 사회개발연구소의 프로젝트 책임자인 크리슈나 기미르(Krishna Ghimire)의 주장에 따르면, 잘 입증된 사례들에서 그러한 계획의 현지인 참여는 “현지 사람들에게 지속가능한 생계 대안을 제공하기보다는 주로 공원과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 고안되었다”.[2] 올레 카무아로(Ole Kamuaro) 역시 “현지 사람들은 생태관광 사업의 계획과 수행 과정에 거의 참여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3] 비판자들이 보기에, 생태관광은 야생지역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양자 모두에 대한 이상화된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 카무아로에 따르면, 생태관광 사업의 목적은 진정한 자연, 손때 묻지 않은 자연에 대한 관광객의 향수어린 욕망을 자극하는 것으로서, 현지의 사람들은 이러한 목적 하에서 관광객에게 발견될 수 있도록 제공된다. 토착민들이 생태관광 옹호자들의 환경적 관심을 공유하지 않거나 새로운 보호 테마공원의 배우가 되고 싶어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거의 논의되지도 않는다.

생태관광의 옹호자들 역시 현지의 적대감을 인식하고 있는데, 그들은 그 해답이 공동체 교육에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많은 현지 사회가 야생 보호라는 서구 보호론자들의 견해를 공유하지 않고 있으며 생태관광 디즈니랜드의 배우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은라카파무크스 공원(Nlaka'pamux)의 현지인인 루비 더스탠(Ruby Dustan)은 자신이 수십 년 동안 살아온 땅인 캐나다 앨버타(Alberta)의 스테인 밸리(Stein Valley)에 대해 그러한 견해를 보여준다. ‘나는 스테인 벨리를 야생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그녀는 말했다. “아빠는 ‘거기는 우리의 식품 저장실이야’라고 말했었다. … 일부 백인 환경보호주의자들은 어딘가가 야생지역으로 공표되기만 하면, 그곳은 연약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 안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사람들 머릿속의 낭만적 관념을 이루고 있는 그것이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그저 음식일 뿐이다.”[4] 학자 엘리자베스 켐프(Elizabeth Kempf)가 수행한 연구에서도 현지의 관점과 보호론자들의 관점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한 차이가 발견되었다. 그녀가 인터뷰한 카메룬 파리(Fari) 국립공원의 한 목동은 “이 공원은 백인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들은 공원 안에서 여전히 사냥을 할 수 있으며, 그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당국에서 우리 마을 사람들을 사냥이라는 죄목으로 갑자기 감옥에 보내기 전까지 우리는 공원의 존재도 알지 못했다”고 설명한다.[5]

세계야생동물기금에서도 ‘권한 이양’이나 ‘현지인 참여’에 관한 자신들의 주장이 과장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프리카에서 국립공원을 장려하는 운동을 벌인지 25년이 지난 시점에서, 세계야생동물기금은 현지 사회가 그들의 사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조사를 수행했다. 프랑스 세계야생동물기금의 살리 잘레브스키(Sally Zalewski)는 서부 아프리카에서 현지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면서 2년을 보냈다. 그녀의 연구가 밝혀낸 내용은 아직까지 출판되지 않았지만 그 결과가 세계야생동물기금에 충격을 안겨주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 조사에 따르면, 현지 사람들은 수많은 국립공원의 존재를 아예 모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모른다’는 응답률이 가장 높았던(74%) 사람들은 바로 동부 세네갈의 니콜라 코바(Nikola Koba) 국립공원 가까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발견은 세계야생동물기금을 이중으로 난처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동 교육 시설 중 하나가 수년 동안이나 탐바카운다(Tambacounda)에 있는 그 공원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는 잘 알려져 있는 세계야생동물기금의 상징, 판다(panda) 역시 현지 주민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잘레브스키에 따르면, 대부분의 주민들은 그 동물에 대해 궁금해하면서, 그것은 어디에 사는지, 자기네 나라에서 사는 동물인지, 또 먹을 수는 있는 것인지를 도리어 질문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지 사회가 생태관광객이 기대하는 대로 살고 싶지 않다고 결정하는 경우, 이 결정은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 로버트 고든(Robert Gordon)의 연구에 따르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칼라하리 겜스복(Kalahari Gemsbok) 국립공원에서 살고 있는 산족(San)[부시맨]이 약간의 현대적 설비와 용품 ― 더 나은 집과 새로운 옷 ― 을 요청했을 때, 공원 관리인은 ‘구경거리로서의 가치에 심각한 금이라도 가는 것처럼’ 화를 냈다고 한다.[6]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연기할 것을 주문받고 있다. 같은 공원을 조사하던 수 암스트롱(Sue Armstrong) 기자의 지적에 따르면, 평범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생태관광객들이 봤을 때 ‘언제나 그들의 첫 질문은 부시맨은 어디에 있냐는 것이다’.[7]

서바이벌 인터내셔널(Survival International)도 그들이 정말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분명히 어떤 부시맨은 생태관광만 아니었으면 하지 않았을 연기를 하고 있다. 그들은 관광객이 통상적으로 기대하는 역할을 연기한다. “보츠와나(Botswana)에서 조금 떨어진 부시맨의 캠프에서 일어난 일이다. 멀리서 몰려오는 먼지 구름이 (관광객) 차량의 도착을 알려준다. 하던 일이 무엇이든 간에 사람들은 모든 일을 멈추더니 재빨리 티셔츠와 바지와 무명 원피스를 벗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8] 부시맨을 구경거리로 사용하는 것을 학계의 모우포스(Mowforth)와 먼트(Munt)는 ‘동물원화(zooification)’라고 부르고 있다.

현지 사람들은 사실 생태관광의 장점에 대해 (그리고 그 장점을 취하기 위해서는 결국 ‘진짜 원주민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듯해 보인다. 즉 생태관광이 그들에게 돈을 가져다준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에 따른 대가에 적대적이라는 것 또한 그만큼이나 분명해 보인다. 케냐의 마사이족은 케냐 야생동물국장이 추진한 이주 계획에 반대했다. 이주를 하면 그들은 목축에는 덜 의존하게 되겠지만 관광에는 더 의존하게 될 것이었다. 1999년 그들은 조지 몽비오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관광으로부터 돈이 생길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도 알고 있다. 우리는 이미 관광객들이 우리 땅에서 천막을 치고 묵도록 해주었다. 그렇다. 그들은 우리에게 수입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우리가 케냐 야생동물국으로부터 듣고 싶은 말은 그것이 아니다. 당신이 리키 박사(Dr Leaky)에게 이렇게 전해줬으면 한다. 우리는 이 관광객들에게 의존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 우리는 마사이족이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목축이다.”[9]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공원들과 보호구역들 중 일부는 현지 사회의 엄청난 희생에 기초해 있었음이 밝혀졌다. 케냐의 야생동물 컨설턴트인 디나이 버거(Dhynai Berger)는 마사이족이 생존을 위해 방물장수로 전락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보호구역에 대한 수 암스트롱 기자의 보고에 따르면, 자기 자신이 중요한 구경거리인 부시맨에게는 사냥이 허용된다. 단, 활과 화살만으로. “사자는 밤이면 어김없이 그들의 당나귀와 염소를 잡아가지만 … 부시맨은 그들을 사냥할 수 없다.”[10]

케이프타운(Cape Town) 북부의 카가 캄마(Kagga Kamma) 동물 보호구역에서, 관광객은 부시맨 그룹이 전통 의식을 수행하는 모습을 돈을 주고 볼 수 있다. 관광 외에는 거의 대부분의 경제적 기회를 박탈당한 부시맨들과 그 사춘기 아이들은 돈을 위해 맨살을 드러내는 옷을 입고 춤을 춘다. 그러나 한 숙소의 주인은 그 그룹에 퇴짜를 놓았다. 그들이 진품(진짜 원주민)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말이다![11] 어떤 이들은 부시맨의 진품 여부에 개의치 않았다. 모잠비크 생태관광 프로젝트의 총지배인은 칼라하리 부시맨을 몇 명 정도 모잠비크로 수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에디 코흐(Eddie Koch)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식대로 해도 된다면, 나는 여기서 몇몇 작은 애들을 데리고 갈 것이다. 증기기관차에 탄 관광객이 창문 밖으로 코끼리와 코뿔소를 보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나면 그들은 다른 창문을 통해 허리에만 간단한 옷을 걸친 작은 흑인 아이들이 독화살을 들고 뛰어다니는 장면을 보게 될 것이다. 코뿔소를 여기로 데려옴으로써 멸종에서 구해내듯이 멸종해가고 있는 작은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이 안 될 이유는 무엇인가?[12]

어떤 사람들은 더욱 운이 나쁘다. 지금은 태국에서 살고 있는 ‘긴 목으로 유명한’ 미얀마 출신 카레니 부족의 난민 여성들은 ‘인간 동물원의 구경거리가 되어’ 사실상 노예로서 살아가고 있다.[13] 긴 목의 여성을 방문하는 일정은 코끼리를 타는 일이나 오래된 아편굴을 답사하는 일 등과 함께 패키지 관광의 일부이다. 그 여성들을 모두 수도 랑군으로 이주시켜 관광 명물로 살게 하려다 실패한 계획도 있었다. 세계은행은 1986년에서 1996년 사이에 3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기 땅에서 쫓겨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것은 개발이 아니다

비정부기구와 정부의 생태관광과 공동체 관광 옹호자들은 자신들이 개발을 촉진하고 토착민들을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적 다양성, 지속가능성, 적정기술이라는 말을 늘어놓음으로써 그들은 이 소규모 프로그램들이 개발도상국을 위한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개발도상국에서의 개발에 대한 새로운 정의로서, 그 정의에서 소규모 관광은 개발의 결핍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들에 전망이 없다는 것은 명백하며, 그 현실은 놀라울 정도로 터무니없다. 사실 많은 관광지 국가들에는 기초 기반 시설이나 실질적인 산업이 없고, 천연 자원을 이용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선택지도 없는 상태이다. 게다가 대규모의 근본적인 경제 발전을 옹호하던 사람들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생태관광은 현지 사회와 자연의 관계를 고정시키며, 개발과 진보를 자연이나 농사에 의존하는 데서 벗어나게 해주기보다는 오히려 자연 자본에 더 의존하게 만든다. 이는 현지인들의 행복을 환경적 관심과 직결시킨다. 관광을 국가의 수입원으로 보는 점이나 사람들이 이런 유형의 휴가와 활동을 즐기는 것에 본질적으로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실질적인 개발의 방법으로 보는 것은 개발이 무엇인지에 대한 퇴화된 의미를 드러낼 뿐이다.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지기 위해, 개발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변화시켜야만 한다. 그런데 생태관광 프로젝트들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복종을 다짐한다. 그러한 정책은 당신을 당신의 땅에서 추방하거나 당신의 경제 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그다지 크지도 않던 수입마저 빼앗은 일에 대한 변명이 되지 못한다. 추방에 대한 보상으로 소규모 개발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불편한 현실이다. 이러한 접근은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사실상 동결시키는 것이며, 이는 이 사회가 환경 관리인이 되는 것 말고는 절대로 변화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강화하는 것이다. 지리학자이면서 생태관광에 대해 비판적인 짐 부처(Jim Butcher)에 따르면, “공동체 관광은 그들이 환경만 생각한다는 비난에 직면한 보호주의자들에게는 답을 제공해주지만, 개발 자체에 대한 질문에는 별다른 해답을 주지 않는다”.[14]

(아래에서 상술할) 남아프리카의 흘루흘루웨-움폴로지(Hluhluwe-Umfolozi) 국립공원과 벨리즈(Belize)의 사례에서도 드러나겠지만, 새로운 개발 방식을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생태관광 프로그램들이 관광지 국가들에 자유롭고 독립적인 선택권을 준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선진국와 개발도상국 사이의 관계는 정치와 경제 영역에서 불공평하게 기울어져 있다.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의 경제적 압력과 국제 비정부기구의 정치적 압력을 견뎌낼 수 있다는 생각은 바보 같은 발상일 뿐이다.

남아프리카의 흘루흘루웨-움폴로지(Hluhluwe-Umfolozi) 국립공원

흘루흘루웨-움폴로지 국립공원의 관광객 브로셔에는 이 공원이 ‘다양한 동물과 새, 다양한 사진거리, 엄청나게 다양한 나무와 식물로 유명’하다고 되어 있지만, 남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명한 그 공원에 대한 존 비달(John Vidal)의 조사에 따르면 생태관광지로서의 공원 설립은 현지 사회에 무척이나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다.[15]

25,000헥타르의 사바나 지대는 원주민들의 전통적인 사냥터였으며, 그 전에는 줄루족(Zulu) 왕의 사냥터였다. 오늘날, 서구 관광객들은 화려한 호텔이나 덤불로 지어진 오두막에서 잘 수 있으며, ‘야생’을 관광하고, 서구의 많은 사람들이 숭배하는 매력적인 동물들 ― 사자, 표범, 코끼리, 코뿔소, 기린 ― 을 (랜드로버 차량 안에서 안전하게) 관찰할 수 있다.

그 지역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개발은 불법이다. 이곳에는 길도, 건물도, 전화도, 전선도, 우물도, 펌프도, 파이프도, 경작도, 개발도 없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살 수 없으며 법적으로는 차도 들어올 수 없다. 이 ‘원시’ 지역에 입장할 때, 당신은 엄격한 격식에 따른 에티켓을 지켜야만 한다. 백인 가이드는 당신에게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가르치고 의례적인 몇 마디를 시킨 후에 그 지역으로의 입장을 허가한다. 그리고는 비달이 지적하듯이, 인간의 모든 흔적을 지우기 위해 당신은 ‘당신의 똥을 땅에 묻어달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러나 그 땅은 문화적 창조물이다. 이는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다. 그 땅은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땅과는 거리가 멀고, 그보다는 오히려 데번(Devon)의 에덴 센터(Eden Centre)만큼이나 인공적으로 통제되고 있다. 매력적인 동물들은 다른 많은 야생동물 보호구역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지역에서 수입되었고 일부는 돈을 위해 선발된 것으로서, 손때가 묻지 않은 동물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은 땅을 조각했고, 특정 종의 동물들이 번성할 수 있도록 풀을 불태웠으며, 현지인들이 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지역에 울타리를 쳤다.

움폴로지 야생지역의 방문객이 찾고 싶어하는 것은 분명하다. 유명한 골프선수 게리 플레이어(Gary Player)의 동생 이언(Ian)의 말에 따르면 “야생이란 신성한 원형을 간직한 장소이다”. “이 지역은 현대의 사원이다. 사람들은 야생지역에서 살 수 없으며 다만 오고 갈 수 있을 뿐이다.”[16] 이들은 단순한 야생동물 애호가가 아니라, 이빨과 발톱이 달린 포악한 자연과 가까이 조우함으로써 삶을 향상시키는 경험을 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야생의 장소가 인간 의식에 미치는 정신적 영향은 공원이 마케팅 과정에서 가장 크게 내세우는 지점이다.

위와 같은 목가적 신화를 성취하고 서구의 소비를 위한 ‘순수한’ 아프리카 경치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그 땅을 인간의 일상 활동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사람들을 국립공원 밖으로 이주시켜 그 공원에는 휴가 때에만 입장할 수 있게 하는 작업이 필수적이었다. 다른 정책들과 마찬가지로, 야생동물 보호는 언제나 폭력과 군사작전에 준하는 수준의 작전, (법적) 제제를 동반해서 시행되었다.

군사적인 밀렵반대 운동에는 환경단체들이 관여했다. 1989년, 세계야생동물기금은 상아 밀렵꾼을 단속하기 위한 돈을 케냐 정부에 공급했다. 그 돈은 차보(Tsavo) 국립공원에서 밀렵 단속 작전에 사용되는 다섯 대의 비행기를 가동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후 기자들의 보도에 따르면, 밀렵꾼에 대한 ‘강경한’ 금지 캠페인은 정찰 비행기, ‘무장 헬리콥터’, 현지 밀렵 감시인을 끌어들임으로써 “사살 명령에 따르는 준군사적인 전투병을 양성했다”. 30명이 넘는 밀렵꾼이 사살되었다. 한 기자의 말에 따르면, “이는 그린피스(Green Peace)라기보다는 그린베레(Green Beret)[미군 소속의 특전부대]에 가까웠다”.[17]

벨리즈(Belize)

『벨리즈 만들기: 주변부에서의 세계화』(The Making of Belize: Globalization in the Margins)[Bergin & Garvey, 1998]에서 앤 서덜랜드(Anne Sutherland)는, 벨리즈가 제조 산업 기반의 경제를 전혀 발전시키지 않았으며 결국 근대성의 결여로 인해 산업 사회의 고객을 위한 생태관광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그 나라의 관광이 번성하게 된 것은 명백하게도 그 나라가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 벨리즈는 생태관광에 의해 좌우되는 나라가 되었으며, 이 생태관광은 현지인들에 이익을 주기보다는 외국 관광객의 요동치는 변덕에 의존하는 제한된 형태의 경제 개발에 그들을 묶어두고 있다.

세계 최고의 야생 보호구역 중 하나라는 벨리즈의 명성은 1980년대에 형성되었다. 1981년 벨리즈가 독립하자, 국제 환경단체들이 그 나라에 입성했다. 새롭게 건립된 이 나라는 제한된 경제적 기반만을 가진 채 사실상 전혀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이것이 ‘새로운 환경 전도사들’에게는 탐스러우면서도 만만한 선택지를 제공했던 것이다. 그들은 정부에 로비를 벌이거나 재정적 동기를 제공하면서 정부를 회유했고, 그들의 방식을 정부부서에 밀어넣는 데에 성공함으로써 환경법안의 작성 권한뿐만 아니라 공원과 보호구역의 운영 권한까지 확보하고 말았다. 재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취약했던 이 신생국가는 환경보호주의자와 생태관광업자들의 유혹을 거부하기 힘들었다.

엄청나게 짧은 기간 동안에, 벨리즈의 방대한 지역이 보호구역으로 전환되고 현지인들의 접근은 제한되었다. 1993년까지 6,000km2가 넘는 땅이 보호구역으로 전환되었는데, 이는 전국토의 3분의 1이 넘는 면적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벨모판(Belmopan) 자연사박물관의 존 호웰(John Howell)은 국토의 50%를 보호구역으로 바꾸고 싶어했다. 이 모든 개발의 결과, 벨리즈의 상당부분은 보호구역과 그 주변의 생태관광 지역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는 벨리즈를 이상적인 생태관광지로 만들었고 이곳에서 올바른 생태적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관광은 금지되었다.

1990년대 초에는, 『론리플래닛』(Lonely Planet), 『러프 가이드』(Rough Guide)와 같은 관광 가이드북이나 잡지 『시에라 클럽』(Sierra Club) 등의 책자들에 벨리즈가 실리기 시작했다. 윤리적 생태관광을 위한 비밀스런 장소에서 가장 선호되는 관광지로 전환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이제 벨리즈에는 매년 벨리즈 인구보다 더 많은 방문객이 입국하고 있다. 1993년의 방문객수는 260,056명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벨리즈 인구보다 55,000명이 많은 수이다. 2000년의 추정치에 따르면, 벨리즈 경제에서는 ‘서비스’ 분야가 차지하는 비율이 GDP의 58%나 되었으며 이 ‘서비스’ 분야의 상당 부분은 관광 산업이다.[18] 벨리즈에서 관광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벨리즈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관광부 장관이 곧 환경부 장관인 나라라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관광과 환경의 연결고리를 벨리즈는 영구히 고착시킨 셈이다.

벨리즈는 윤리적 관광의 낙원을 창조했다는 극찬을 받았고, 『카리브 해와 세계』(Caribbean and World)라는 잡지에서는 벨리즈를 1995년의 생태관광지로 선정했다. 여행사, 관광객, 개발업자들은 벨리즈를 자신들이 선택한 모습으로 창조하고 또 재창조하는 데 공을 들였다. 공원, 보호구역, 관광 리조트가 벨리즈의 땅과 경제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발이 벨리즈인들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외국 자금의 유입으로 이익을 얻은 이들도 있었다. 이제 벨리즈 경제에서 관광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농업에 버금간다. 그러나 벨리즈를 생태관광지로 만드는 일은 방대한 지역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그곳에서 현지 공동체를 쫓아내거나 그들의 활동을 통제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었다. 보호주의자인 앨런 라비노비츠(Alan Rabinowitz)는 『재규어: 벨리즈 정글에서의 투쟁과 승리』(Jaguar: Struggle and Triumph in the Jungles of Belize)[Arbor House, 1986]에서, 세계 최초의 재규어 보호구역인 콕스코움(Cockscomb) 보호구역에서 2년 동안 재규어를 구하는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현지 마야 사람들이 도움을 주었다고 칭찬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오만한 보호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재규어의 미래를 보호하기 위해 자연보호구역을 건립하려면 현지의 마야인들이 그들의 땅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많은 환경주의자들은 벨리즈에서 인디언 집단을 추방하고 생태관광으로 전환하는 이 프로젝트를 환영했다. 미국의 주요 환경단체 중 하나인 지구감시 연구소(Earthwatch Institute)는 그 프로젝트가 매우 성공적이었다면서, 이를 통해 ‘삶을 영위하는 파괴적인 방식’이 생태관광으로 대체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들은 “현지인들도 처음에는 적대적이었지만, 현지 학교의 교사를 보호구역 관리인으로 고용한 이후 점차 생태관광의 경제적 이익을 보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19] 자기 땅을 빼앗긴 인디언들은 이제 자신들이 쫓겨난 땅을 방문하고 있는 관광객들을 보호구역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벨리즈 원산물로 보일 법한 것들을 아무거나 만들어서 팔고 있다. 만약 그 프로젝트로부터 무엇인가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이 있었더라면, 원주민들이 (원래 살던 곳을 떠나) 마야까지 흘러 내려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벨리즈 태생의 작가인 서덜랜드(Sutherland)는 서구 환경단체들 ― 그녀는 그들을 ‘새로운 전도사’라고 지칭한다 ― 을 소름끼쳐 했다. 그들이 기독교 분파가 전도하던 복음 대신에 환경적 열정을 전도하고 다닌다면서 말이다. 그들은 현재 벨리즈 토지의 40%를 소유하고서, 자연을 관찰하거나 고고학 유적지를 방문하러 오는 생태관광객과 윤리적 관광객들을 위해 그 땅을 보호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이 생계를 위해 하던 전통적인 활동들이 이제는 범죄가 되었다는 사실을 벨리즈 현지 사회가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93년 유엔 계발계획(UNDP)은 37%가 넘는 벨리즈 인구가 생계를 위해 해안지역에 의존하고 있다는 보고를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해안지역의 보호를 주장하면서 그것이 생태관광 모험의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라고 했다. 아프리카의 야생동물 공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벨리즈에서도 개발을 억제하고 현지인들을 그들의 땅에서 쫓아내는 데에는 군사적 방법이 동원되었다. 1997년 2월 21일, 벨리즈 군대는 과테말라 국경 인근의 마을을 에워싸고 현지인들의 작물을 파괴했다. 보호구역에서 농사를 지었다는 이유에서였다.

현지인 애들버트 터커(Adalbert Turker)가 쓴 아래의 시는 궁지에 몰린 사람들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재규어의 이름으로,

제발 내게 약간의 땅을 남겨주세요.

나비의 은총으로

내게도 1에이커(acre)만 남겨주세요

내 친구 히카티 거북(hiccatee)에게도요.

어째서 내가 문제가 된 걸까요

최근

환경을 말하면서

인간을 잊었나 봐요

재규어의 이름으로

그리고 비비 원숭이의 이름으로

보호구역에서 약간의 땅을

벨리즈의 남자와 여자에게 남겨주세요

그리고 벨리즈의 어린이에게도요.

우리는 보호구역 바깥의 비비와 같아요.

가장자리의 가장자리, 그 끝에 있으니까요

서덜랜드(A. Sutherland), 『벨리즈 만들기: 주변부에서의 세계화』(The Making of Belize: Globalization in the Margins)[Bergin & Westport, 1998]에서

서덜랜드가 물었듯이, ‘벨리즈의 이 모든 보호구역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결론

생태관광의 옹호자들은 생태관광을 보존과 개발이라는 상충하는 요구와 압력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한다. 생태관광은 보호구역에 대해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면서, 동시에 현지 사회에는 관광 산업에 참여하고 환경 관리인이 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보상을 한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생물학적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 현지 사람들을 그들의 땅에서 쫓아내려고만 하는 과거의 생각보다 진일보한 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개념 모두 현지 사회를 자연환경에만 의존하도록 만드는 동시에 지속가능성을 위한 제한된 개발의 전망 아래 묶어둘 뿐이다. 이러한 부분적이고 퇴화된 의미의 개발 개념은 현지 사회에 장기적인 이익이 되어주지 못한다. 외국인 방문객에 의해 생기는 수입으로 현지 사회가 이익을 얻는 것에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러나 이를 현지 사회의 (유일한) 개발 방식으로 보면서 그들의 실제 사회적 처지를 변화시킬 수 있는 모든 시도를 제한하는 것은 원시상태를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1. 『자연 자원에 대한 권리』(Entitlement to Natural Resources), International Books, 1996
  2. ‘공원과 사람들’(Parks and people, 『개발과 변화』(Development and Change), 25, 1, 1994년 1월
  3. 『생태관광: 자살인가 개발인가?』(Eco-tourism: Suicide or Development?), UN Non-Governmental Liason Service, 1996
  4. M. Colchester, ‘자연 구하기: 토착민과 보호지역’(Salvaging Nature: Indigenous Peoples and Protected Areas) in K. B. Ghimire and M. P. Pimbert (eds), 『사회적 변화와 보존: 환경 정치학과 국립공원과 보호지역의 영향』(Social Change and Conservation: Environmental Politics and the Impacts of National Parks and Protected Areas), Earthscan, 1997
  5. 『토착민과 보호지역』(Indegenous People and Protected Areas), Sieera Books, 1994
  6. M. Colchester, ‘자연 구하기: 토착민과 보호지역'(Salvaging Nature: Indigenous Peoples and Protected Areas) op.cit에서 인용
  7. ‘땅을 잃은 땅의 사람들’(A landless people of the land), 『전자우편 & 가디언』(Electronic Mail & Guardian), 1996년 7월 11일
  8. Mowforth and Munt, 『관광과 지속가능성: 제3세계에서의 새로운 관광』(Tourism and Sustainability: New Tourism in the Third World), Routledge, 1998
  9. George Monbiot, ‘그런데 그것은 누구의 야생동물인가?’(Whose wildlife is it anyway?), 『전자우편 & 가디언』(Electronic Mail & Guardian), 1999년 6월 9일
  10. ‘땅을 잃은 땅의 사람들’(A landless people of the land), 『전자우편 & 가디언』(Electronic Mail & Guardian), 1996년 7월 11일
  11. Eddie Koch, ‘이는 누구의 땅인가?’(Whose land is this?), 『전자우편 & 가디언』(Electronic Mail & Guardian), 1995년 2월 23일
  12. Eddie Koch, ‘바로 여기에 꿈의 공원을 세우려 하는 텍사스인’(The Texan who plans a dream park just here), 『전자우편 & 가디언』(Electronic Mail & Guardian), 1996년 1월 18일
  13. ‘놀라운 태국’(Amazing Thailand), 『BBC 세계 온라인』(BBC World Service online), 1999년 3월 21일
  14. 『관광의 도덕화』(The Moralisation of Tourism), Routledge, 2002
  15. ‘엄청난 거짓말 같은 사실’(A great white Lie), 『가디언』(Guardian), 2001년 12월 1일
  16. J. Vidal, op.cit
  17. F. Pearce, 『녹색 첨병』(The Green Warriors), Bodley Head, 1991에서 인용
  18. 『CIA 세계 팩트북』(CIA World Factbook), 2001
  19. Earthwatch Institute, ‘낙원으로 가는 두 장의 표. 생태관광은 환경의 은혜인가 쓸데없는 일인가?’(Two Tickets to paradise. Is eco-tourism an environmental boon or boondoggle?), 1996년 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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