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힘의 선으로 채운 패러데이

PhiLoSci Wiki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인쇄용 판은 더 이상 지원되지 않으며 렌더링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브라우저 북마크를 업데이트해 주시고 기본 브라우저 인쇄 기능을 대신 사용해 주십시오.

작성자 : 정동욱

도입

패러데이가 그려진 영국의 20파운드 지폐(2000년까지 발행)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는 19세기 영국의 과학자로, 영국에서는 20파운드짜리 지폐에도 그려져 있었을 정도로 인기 있는 과학자이다. 그는 왕립연구소의 화학 실험 조수로 과학자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하여 압력을 이용한 기체액화법과 전기분해 법칙을 발견했으며, 오늘날 전동기와 발전기의 기초가 되는 전자기 회전 현상과 전자기 유도 현상을 발견하는 등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과학적 발견을 남겼다. 이후 그는 전기와 자기 작용이 공간에 펼쳐진 역선을 따라 점진적으로 전달된다는 기발한 개념을 발전시킴으로써, 현대 전자기장 이론의 기초를 마련했다.

패러데이는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당시 비슷한 환경의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간신히 기본적인 교육만 받은 후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 생계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만 했다. 실제로 13살의 패러데이는 서점의 심부름꾼으로 들어가 일을 시작했고, 1년 뒤부터는 같은 서점에서 7년짜리 제본공 도제살이를 했다. 기적 같은 행운으로 21살에 왕립연구소의 화학 실험 조수가 되었을 무렵, 패러데이의 이력이라고는 서점의 제본공 도제 과정을 수료한 것과 서점의 한 단골 고객이 개설한 값싼 강연 코스를 수료하고 매주 그 토론모임에 출석한 것이 전부였다. 이처럼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패러데이는 어떻게 전자기의 시대를 밝힌 수많은 발견을 남길 수 있었을까?

험프리 데이비의 도제 화학자

패러데이의 스승 험프리 데이비

패러데이를 실험 조수를 뽑은 왕립연구소의 험프리 데이비는 당시 화학 분야의 떠오르는 별이었다. 1800년 볼타에 의해 전지가 발명되고 곧이어 물의 전기분해가 발견되자, 데이비는 이 연구에 뛰어들어 ‘전기화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물 이외에 여러 물질을 전기 분해하는 데 성공한 데이비는 모든 화학 결합의 본질이 전기력에 있을 것이라는 대담한 주장을 하며 화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데이비의 조수로 일하면서, 패러데이는 데이비로부터 체계적인 화학 분석 기법을 전수받는 동시에, 전기와 화학 사이의 깊은 연관을 고민했던 데이비의 새로운 세계관에도 자연스럽게 발을 담글 수 있었다. 또한 당시 화학이란 분야는 고등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패러데이에게 무척이나 잘 맞는 학문이었다. 화학에서는 단순 연산을 넘어서는 복잡한 수학이 필요하지 않았으며, 대신 손으로 하는 실험과 주의 깊은 관찰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프랑스의 물리학자들은 모든 물질 사이에는 수학적인 법칙으로 표현될 수 있는 몇 가지 종류의 원거리력이 작용한다고 ‘이론적으로’ 가정한 후, 그 이론에 맞춰 현상을 수학적으로 설명하곤 했다. 데이비는 이런 프랑스식 연구 방식에 반대하며 이론이 실험에 우선시되는 것을 경계했는데, 이러한 태도는 패러데이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왕립연구소의 지하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고 있는 패러데이 : 실험실은 주로 화학 약품들로 가득 차 있지만, 오른쪽 구석 테이블 주변에는 정전기 발생 장치(책상 아래 손잡이가 있는 장치)와 라이덴병(책상 위 금속구가 달린 병)을 비롯한 전기 실험 장치들도 보인다(출처: 해리엇 무어의 1850년경의 그림)

1825년 ‘실험실 책임자’가 됨으로써 도제 화학자로서의 과정을 공식적으로 마친 패러데이는 2년 뒤 《화학적 조작》이라는 화학 교과서를 출판했다. 화학 원소 및 화합물의 성질을 묘사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일반적인 화학 교과서와 달리, 이 책은 어떻게 실험을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물질에 대한 가설은 철저히 배제되었고, 어떠한 실험을 통해 어떠한 결과를 관찰할 수 있는지만이 차례차례 제시되었다. 모든 화학적 지식은 그가 제시한 실험 절차를 따라감으로써만 얻어졌다. 이는 바로 패러데이가 왕립연구소에서 훈련받는 동안 습득한 과학의 방법과 지식의 총체였다. 그리고 이는 패러데이가 계속 수행하게 될 전자기 연구의 방법과 내용을 결정지었다.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는 실험적 탐색가

외르스테드의 발견 : 남북 방향을 가리키고 있던 자침 위에 그와 평행한 방향으로 전류가 흐르는 도선을 가져가면 자침의 N극이 (위에서 볼 때)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 서쪽으로 향하게 된다.

1821년 9월, 패러데이는 도선과 자석이 서로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현상을 구현했다. 이 전자기 회전 현상은 1년 전 덴마크의 과학자 외르스테드에 의해 발견된 전류와 자기 사이의 상호작용의 구체적인 사항들을 실험적으로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패러데이는 전지에 연결한 도선을 세로로 세워 고정한 후 그 주위의 여러 위치에 따른 자침의 움직임을 샅샅이 탐색한 결과, 도선과 자침의 상호 작용이 서로를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는 작용이라기보다는 서로를 원형으로 회전시키는 작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곧바로 그는 이를 실제로 구현하는 전자기 회전 장치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패러데이의 전자기 회전 장치 : 양쪽 컵에는 전류가 흐를 수 있는 수은을 담고, 왼쪽 장치는 자석을 컵 아래에 묶고 도선을 고정시킨 반면, 오른쪽 장치는 도선을 위에 매달고 자석을 컵에 고정시켜 두었다. 양쪽 컵의 수은을 전지의 양극에 연결하면, 왼쪽 장치의 자석과 오른쪽 장치의 도선이 회전하게 된다.

모든 자연 현상을 그 구성 입자들 사이의 상호 인력/척력의 수학적인 합력으로 계산하는데 익숙했던 당시의 학자들은 전류와 자기 사이의 상호 회전이라는 자연 현상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반면, 그러한 물리적 선입관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던 패러데이는 그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실험적 탐색을 수행할 수 있었다. 게다가 “불행하게도 수학적 지식과 추상적 추론을 손쉽게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던” 패러데이는 수학적이거나 추상적인 지식보다 실험을 통해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지식을 선호했다. 이는 또한 데이비 밑에서 화학자로서의 도제 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받은 가르침이기도 했다. 이러한 패러데이의 특성은 그가 기존 관념에 의해 쉽게 예측되기 어려웠던 여러 현상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중요한 특성이었다.

패러데이에게 실험은 이론의 진위 여부를 시험해주는 보조적인 도구가 아니었다. 실험 도중에는 이론적으로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때로는 상식적으로 너무 당연해 보이는 것조차 위반하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실험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패러데이는 이론은 최소화하는 대신 실험의 탐색 능력을 최대화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제 갓 연구가 시작되어 아직 미성숙한 상태에 있었던 전자기 분야에서 패러데이의 탐색 실험 전략은 특히 유효했다.

혁명적인 사변을 끈기 있게 밀고 나간 이론가

물론 패러데이도 이론을 추구했다. 그가 보기에, 자신이 발견한 전자기 회전은 당시 별 의심없이 받아들여지던 원거리 작용의 원리와 잘 어울리지 않았다. 당시 원거리 작용의 전형으로 여겨지던 중력, 정전기력, 자기력은 모두 두 물체 사이의 직선을 따라 작용하는 인력이나 척력이었던 데 반해, 전류와 자석 사이의 상호 작용은 서로를 회전시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앙페르는 자석 내부에 원형 전류가 흐른다고 가정하면 전자기 상호작용이 전류 사이의 직선 인력/척력의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패러데이는 앙페르의 복잡한 수학적 이론을 이해할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실험적으로 전혀 확인되지 않은 자석의 내부 전류를 이론에 도입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기 곡선 자르기 규칙 : 움직이는 도선이 자기 곡선을 가로지르면, 도선이 자기 곡선을 가로지르는 방향과 수직이 되는 방향으로 전류가 유도된다.

10년 뒤, 1831년 패러데이는 전자기 유도를 발견하고 그 규칙을 밝히는 과정에서 ‘자기 곡선(magnetic curve)’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된다. 패러데이의 정의에 따르면, 공간에 그려진 자기 곡선은 만약 그 공간에 자침이 놓이면 자침이 가리키게 될 방향을 보여주는 가상의 선을 의미했다. 전자기 유도는 도선이 그 가상의 선을 가로지를 때 일어났으며, 그에 의한 유도 전류는 도선이 선을 가르는 방향과 수직으로 생성됐다. 즉 전류가 유도되는 지점에서 도선의 운동, 유도 전류, 자기 곡선의 방향은 모두 수직을 이루었다. 10년 전 발견한 전자기 회전과 마찬가지로, 이런 전자기 유도 작용의 기하학적 특성은 직선 원거리 작용의 원리와 잘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이러한 결과로부터 그는 전기와 자기 작용이 매질이나 공간에 의해 매개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소리나 빛이 매질을 통해 점진적으로 전달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쉽게 증명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기에, 패러데이는 이를 평생의 기획으로 삼아 끈기 있게 연구를 수행해야 했다.

1830년대 중반 패러데이는 가장 기초적인 전기 현상인 정전기 유도에 대한 연구로 돌아갔다. 정전기 유도는 이미 전하들 사이의 원거리 인력/척력으로 잘 설명되고 있었지만, 패러데이는 정전기 유도가 분극 상태의 인접한 매질 입자들에 의해 연쇄적으로 전달되는 작용일 것이라는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정전기 유도 능력이 매질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전기 유도 용량의 측정)과 정전기 유도의 경로가 매질의 영향으로 휘어진다는 점을 실험을 통해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패러데이의 실험 결과를 수많은 직선 원거리 작용들의 합력으로 재해석할 수 있었던 주변의 학자들은 패러데이의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패러데이의 ‘인접한 입자들을 통한 작용’ 개념은 원거리 작용을 거부한다고 하면서도 ‘가장 인접한 입자들 사이의 원거리 작용’을 허용하는 개념적인 모순을 안고 있었다. 주변의 냉담한 반응과 스스로의 개념적 모순을 인식한 패러데이는 더욱더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1844년 「전기 전도와 물질의 본성에 대한 사변」이라는 글에서, 패러데이는 물질을 공간에 펼쳐진 힘의 선들(lines of force)의 수렴점으로 간주했다. 힘의 선과 물질은 각각 그물의 끈과 매듭에 비유됐다. 이에 따르면 서로 떨어진 물질들 사이의 상호 작용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물의 모든 매듭들이 끈을 통해 연결되어 있듯이, 모든 물질은 힘의 선들을 통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착상은 물질 사이의 상호작용이 인접한 물질들을 거쳐서 전달된다는 점도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 그물에서 일어나는 국소적인 움직임은 끈을 통해 인접한 매듭들에 차례차례 영향을 주면서 전달되어 그물에 있는 모든 매듭에 영향을 주게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계에서 일어나는 국소적인 작용은 힘의 선을 통해 인접한 물질들에 차례차례 영향을 주면서 전달되어 저 멀리 떨어진 물질에까지 모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변적인 ‘힘의 선’ 개념은 이후 자기 작용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더욱 구체적인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자성체와 반자성체 : 자성체(m)는 주변보다 자기력선을 더 많이 통과시키는 반면, 반자성체(dm)는 주변보다 자기력선을 덜 통과시킨다. 이 상태에서 자성체는 상대적으로 자기력선이 밀집한 오른쪽으로, 반자성체는 상대적으로 자기력선이 희박한 왼쪽으로 운동하게 된다. (그림은 패러데이가 물체 주변의 철가루 배치를 관찰하여 일기장에 직접 그린 것임)

자기 작용에 대한 연구 과정에서, 패러데이는 힘과 물질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물질들은 자기력선을 투과시키는 능력에 따라 자성체와 반자성체로 나뉘어졌으며, 각 물질들은 더 이상 인력/척력에 의해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물체는 힘의 전달을 방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한다’는 일반적인 원리 하에서, 자기력선들은 자신이 가장 잘 통과할 수 있는 길을 찾아 재배열했으며, 서로 다른 자기력선 투과율을 가진 물질들은 자기력선의 통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주변의 물질들과 자리를 바꾸었다. 다소 생소한 설명 방식이긴 했지만, 이는 실험을 통해 확인되는 자성체와 반자성체의 모든 행동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탁월한 이론이었다.

패러데이의 원숙해진 ‘장(field)’ 개념에서 힘의 선은 가장 근본적인 물리적 실체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에 따르면, 전하는 전기력선의 양쪽 말단을 뜻했으며, 자극은 자기력선 투과율이 서로 다른 매질의 경계면을 의미했다. 또한 빛은 힘의 선이 진동할 때 나타나는 파동으로 간주되었다. 즉 그가 그리는 세계 속에서는 힘의 선이 없으면 다른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었으며, 세계의 모든 존재와 작용은 힘의 선을 통해 연결되고 통일되었다.

결론

패러데이가 수많은 발견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기존 관념에 얽매이기보다 면밀한 실험적 탐색을 수행했기 때문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새로운 관념을 끈질기게 추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새로운 관념은 초기에는 어렴풋한 형태로 거의 증거도 없는 상태였지만, 수십 년 동안의 끈질긴 노력 끝에 그는 상당히 통합적인 형태의 독자적인 이론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으며, 원거리력 이론과 맞붙기 위한 실험적 증거도 꽤 확보할 수 있었다. 물론 패러데이는 자신의 새로운 이론적 체계를 다른 학자들에게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대신 ‘작용을 매개하는 힘의 선’이란 패러데이의 생각은 맥스웰에게 계승되어 보다 정교한 전자기장 이론으로 발전한 후에나 학계에서 진지하게 고려되기 시작했으며, 1887년 헤르츠가 전자기파를 직접 발생시키고 검출하는 데 성공했을 때 드디어 수용될 수 있었다.

관련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