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마르시대 독일의 수학과 물리학에 적대적인 지적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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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어만, 폴 (1984), “바이마르 시대 독일의 수학과 물리학에 적대적인 지적 환경”, 김영식 (ed.), 『역사 속의 과학』. 창작과비평, 316-334.

1. 서론

막스 재머는 ‘19세기 후반의 몇몇 철학사상들(우연론, 실존주의 등)이 현대 양자이론의 새로운 개념형성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양자역학(1925년경)과 위의 철학사상은 시간적으로 25년이라는 간격이 있다. 그 기간사이에 많은 독일어권 물리학자들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연구내용상의 발전과는 관련없이’ 인과율을 거부했다.

필자는 사회학적 접근법을 이용해, 그 변화를 인과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설명을 위해서는, 독일의 당시 지적환경을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마땅하다. 바이마르의 지적환경은 물리학, 특히 인과율에 적대적이었다. 독일의 패전 이후, 바이마르의 지적 경향은 신낭만주의적 실존주의의 ‘생의 철학’이었고, 분석적 합리성, 정밀과학은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수학자와 물리학자는 이러한 환경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일반적인 반응은 ‘과학 내부로 그리고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사회 속으로 자신들을 가두어 버리며 그 분야들의 전통적인 이데올로기를 재확인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대적 환경에의 적응도 서서히 이루어진다. 특히 그들과 그들 분야의 지위가 낮아지고 있을 때에는 무언가 대항할 수단을 취해야만 한다. 그러한 대항수단은 일반적으로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를 대중의 변화된 가치와 조화되도록 하는 시도가 될 것이다.

독일 과학자들은 강연이 많았는데, 그러한 강연에서 과학자들은 실증주의적 개념들을 거부하고, 과학연구에 대한 공리주의적 정당화를 거부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과학활동의 가치와 가능성 자체마저도 거부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과학자 사회의 적응은 ‘이데올로기’ 차원에만 한정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실질적인 ‘학문적 내용’에까지 미쳤던 것일까?

필자는 물리학에서 인과율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독일 물리학자들의 적응 노력의 결과라고 확신하고 있다. 당시 독일의 물리학자는 대중에 대한 자신의 이미지를 개선시키려고 했다면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인과율, 엄격한 결정론을 제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2.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에 의해 인식되어진 형태

적대적 환경과 그에 대한 적응의 예시들 소개.

3. 다른 동시대인들에 의해 확인된 형태

루카치는 “(독일에서) 전후에 널리 읽힌 부르조아지의 세계고나에 관한 문헌은 거의 전부가 ‘생의 철학’적이었다”고 말했다. 생의 철학이란 실증주의에 대한 완전한 거부, 기계적인 것보다는 유기적인 것을, 죽은 것 대신 산 것을, 인과율 대신에 가치․목적․목표 등의 개념을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사고형태이며, 이것이 거부하는 것은 ‘인과적 해석의 기계론과 결정론이고, 연역 논리 체계, 합리주의와 형식주의’였다.

생물학에서는 신생기론, 심리학에서는 게슈탈트주의가 등장하는데, 이 또한 ‘생의 철학’과 많은 연관관계가 있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