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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6장 “[[이상 현상 그리고 과학적 발견의 출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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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쿤, {{책|[[과학혁명의 구조]]}} 6장 “[[이상 현상 그리고 과학적 발견의 출현]]” 중에서 발췌.
  
 
... 산소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만약 둘 중 하나라면, 프리스틀리인가 라부아지에인가? 어느 경우이거나 산소는 언제 발견되었는가?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형태의 질문은 마찬가지로 제기될 것이다. 우선권과 발견 시기에 대한 판정으로서, 어떤 대답이 나오더라도 우리에겐 별 문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해답을 얻어내려는 시도는 찾고 있는 종류의 대답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발견의 본질을 밝혀줄 것이다. 발견이란 거기에 대해서 적절하게 질문이 제기되는 그런 유형의 과정이 아니다. 그런 물음을 묻게 된다는 사실은 발견에 매우 근본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과학의 이미지에서 좀 벗어난 증상이 된다. 산소의 실례를 다시 한번 보자. 프리스틀리가 산소를 발견했다는 주장은 후에 특이한 종으로 인식되기에 이른 기체를 먼저 분리해냈다는 데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프리스틀리가 얻은 시료는 순수하지가 못했다. 만일 불순한 산소를 얻은 것이 그것을 발견해낸 것이라면, 대기 중의 공기를 병에 담았던 사람은 모두 산소를 발견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만일 프리스틀리가 발견자라면 그 발견은 언제 이루어진 것일까? 1774년에 그는 자기가 언은 기체를 그가 이미 알고 있던 종인 아산화질소라고 생각했다. 1775년에는 그 기체를 플로지스톤이 빠진 공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아직 산소는 아니었고 플로지스톤 화학자에게는 심지어 전혀 예기치 못한 종류의 기체였다. 라부아지에의 주장은 보다 강점을 지시기는 하지만 여기서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만일 우리가 프리스틀리의 공로를 거부한다면, 마찬가지로 라부아지에가 그 기체를 "온전한 공기 자체"라고 보았던 1775년의 연구를 들어서 그에게 영예를 돌릴 수도 없다. 아마도 우리는 라부아지에가 단순히 그 기체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 기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던 1776년과 1777년의 연구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판정조차도 의심의 여지는 있는데, 왜냐하면 1777년과 그의 생애 마지막까지 라부아지에는 산소를 원자적 "산성의 원리"라고 주장했고 산소기체는 그 "원리"가 칼로릭, 즉 열소와 결합할 때에만 생성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1777년에도 산소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성의 원리라는 개념은 화학에서 1810년까지 소멸되지 않았고 칼로릭 개념은 1860년대까지 남아 있었다. 산소는 이들 연대들의 어느 시기보다 일찍이 표준적 화학물질로 자리잡았다.  
 
... 산소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만약 둘 중 하나라면, 프리스틀리인가 라부아지에인가? 어느 경우이거나 산소는 언제 발견되었는가?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형태의 질문은 마찬가지로 제기될 것이다. 우선권과 발견 시기에 대한 판정으로서, 어떤 대답이 나오더라도 우리에겐 별 문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해답을 얻어내려는 시도는 찾고 있는 종류의 대답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발견의 본질을 밝혀줄 것이다. 발견이란 거기에 대해서 적절하게 질문이 제기되는 그런 유형의 과정이 아니다. 그런 물음을 묻게 된다는 사실은 발견에 매우 근본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과학의 이미지에서 좀 벗어난 증상이 된다. 산소의 실례를 다시 한번 보자. 프리스틀리가 산소를 발견했다는 주장은 후에 특이한 종으로 인식되기에 이른 기체를 먼저 분리해냈다는 데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프리스틀리가 얻은 시료는 순수하지가 못했다. 만일 불순한 산소를 얻은 것이 그것을 발견해낸 것이라면, 대기 중의 공기를 병에 담았던 사람은 모두 산소를 발견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만일 프리스틀리가 발견자라면 그 발견은 언제 이루어진 것일까? 1774년에 그는 자기가 언은 기체를 그가 이미 알고 있던 종인 아산화질소라고 생각했다. 1775년에는 그 기체를 플로지스톤이 빠진 공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아직 산소는 아니었고 플로지스톤 화학자에게는 심지어 전혀 예기치 못한 종류의 기체였다. 라부아지에의 주장은 보다 강점을 지시기는 하지만 여기서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만일 우리가 프리스틀리의 공로를 거부한다면, 마찬가지로 라부아지에가 그 기체를 "온전한 공기 자체"라고 보았던 1775년의 연구를 들어서 그에게 영예를 돌릴 수도 없다. 아마도 우리는 라부아지에가 단순히 그 기체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 기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던 1776년과 1777년의 연구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판정조차도 의심의 여지는 있는데, 왜냐하면 1777년과 그의 생애 마지막까지 라부아지에는 산소를 원자적 "산성의 원리"라고 주장했고 산소기체는 그 "원리"가 칼로릭, 즉 열소와 결합할 때에만 생성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1777년에도 산소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성의 원리라는 개념은 화학에서 1810년까지 소멸되지 않았고 칼로릭 개념은 1860년대까지 남아 있었다. 산소는 이들 연대들의 어느 시기보다 일찍이 표준적 화학물질로 자리잡았다.  

2017년 10월 4일 (수) 16:56 기준 최신판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6장 “이상 현상 그리고 과학적 발견의 출현” 중에서 발췌.

... 산소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만약 둘 중 하나라면, 프리스틀리인가 라부아지에인가? 어느 경우이거나 산소는 언제 발견되었는가?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형태의 질문은 마찬가지로 제기될 것이다. 우선권과 발견 시기에 대한 판정으로서, 어떤 대답이 나오더라도 우리에겐 별 문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해답을 얻어내려는 시도는 찾고 있는 종류의 대답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발견의 본질을 밝혀줄 것이다. 발견이란 거기에 대해서 적절하게 질문이 제기되는 그런 유형의 과정이 아니다. 그런 물음을 묻게 된다는 사실은 발견에 매우 근본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과학의 이미지에서 좀 벗어난 증상이 된다. 산소의 실례를 다시 한번 보자. 프리스틀리가 산소를 발견했다는 주장은 후에 특이한 종으로 인식되기에 이른 기체를 먼저 분리해냈다는 데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프리스틀리가 얻은 시료는 순수하지가 못했다. 만일 불순한 산소를 얻은 것이 그것을 발견해낸 것이라면, 대기 중의 공기를 병에 담았던 사람은 모두 산소를 발견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만일 프리스틀리가 발견자라면 그 발견은 언제 이루어진 것일까? 1774년에 그는 자기가 언은 기체를 그가 이미 알고 있던 종인 아산화질소라고 생각했다. 1775년에는 그 기체를 플로지스톤이 빠진 공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아직 산소는 아니었고 플로지스톤 화학자에게는 심지어 전혀 예기치 못한 종류의 기체였다. 라부아지에의 주장은 보다 강점을 지시기는 하지만 여기서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만일 우리가 프리스틀리의 공로를 거부한다면, 마찬가지로 라부아지에가 그 기체를 "온전한 공기 자체"라고 보았던 1775년의 연구를 들어서 그에게 영예를 돌릴 수도 없다. 아마도 우리는 라부아지에가 단순히 그 기체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 기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던 1776년과 1777년의 연구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판정조차도 의심의 여지는 있는데, 왜냐하면 1777년과 그의 생애 마지막까지 라부아지에는 산소를 원자적 "산성의 원리"라고 주장했고 산소기체는 그 "원리"가 칼로릭, 즉 열소와 결합할 때에만 생성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1777년에도 산소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성의 원리라는 개념은 화학에서 1810년까지 소멸되지 않았고 칼로릭 개념은 1860년대까지 남아 있었다. 산소는 이들 연대들의 어느 시기보다 일찍이 표준적 화학물질로 자리잡았다.

산소의 발견과 같은 사건들을 분석하는 데에는 분명히 새로운 용어와 개념이 요구된다. 의심의 여지 없이, "산소가 발견되었다"라는 글귀는, 본다는 것에 대한 우리의 통상적인 관념과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것도 일회적인 단순 행위라고 암시함으로써 오해를 유발한다. 이것이 바로, 보거나 만지는 것처럼 발견하는 것도 똑 떨어지게 한 사람 손으로 어느 순간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쉽사리 생각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발견을 한 순간의 일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며, 한 사람에 의한 것으로 돌리는 것도 흔히 마찬가지이다. 셸레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1774년 이전에는 산소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해도 무방하며, 아마도 1777년쯤 또는 그 직후에 산소가 발견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한계 또는 그 비슷한 여러 한계 내에서 발견의 시기를 잡으려는 시도는 어쩔 수없이 임의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 까닭은 새로운 종류의 현상을 발견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복합적인 사건으로서, 무언가가 있다는 것과 그것이 무엇인가를 둘 다 확인하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만일 산소가 우리에게 플로지스톤 빠진 공기였다면, 언제 발견했는지는 모르는 채로라도 주저없이 프리스틀리가 그것을 발견했다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관찰과 개념화, 사실과 이론으로의 동화, 이 두 가지가 서로 발견 과정에 밀접하게 얽혀 있다면 발견은 하나의 진행 과정이며 시간이 소요되어야만 한다. 관련되는 개념적 범주가 모두 미리 갖추어진 경우, 즉 현상이 새로운 유형이 아닌 경우에 한해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과 그것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일이 함께 즉각적으로 한순간에 일어날 수 있다.

이제 발견에서는 개념적 동화라는 확장된 ...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자. 그러면 발견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포함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해서는 아직 보편적인 해답이 제시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산소의 경우에 대답은 ‘그렇다’가 틀림없다. 라부아지에가 1777년부터 줄곧 그의 논문에서 공표한 내용은 산소의 발견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연소에 관한 산소 이론이었다. 그 이론은 매우 광범위하기 화학의 계통적 재구성에서의 쐐기가 되었던 까닭에 보통 화학혁명이라고 불린다. ... [그러나] 산소의 발견 자체는 화학 이론 변화의 원인이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라부아지에는 새로운 기체를 발견하기 훨씬 이전부터 플로지스톤 이론에 무언가 잘못이 있으며, 연소 중인 물체가 대기중의 어떤 성분을 흡수한다는 두 가지 사실을 이미 깨닫고 있었다. 그는 이미 1772년에 프랑스 아카데미의 원장에게 기탁한 봉인된 노트에 그러한 기록을 남긴 바 있었다. 산소에 대한 연구가 기여한 것은 무언가가 잘못된 것 같다는 라부아지에의 초기의 느낌에 훨씬 더 구체적인 형태와 구조를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라부아지에에게 그가 발견하도록 이미 마련되어 있던 것 — 연소가 대기로부터 제거시키는 물질의 본질 — 을 일러주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렇게 미리 인지했던 것은 라부아지에가 프리스틀리와 같은 실험을 하면서도 프리스틀리는 볼 수 없었던 기체를 볼 수 있게 해준 중요한 요인이었음에 틀림없다. 바꾸어 말하면, 라부아지에가 보았던 것을 보기 위해서 패러다임의 대폭 수정이 필요했다는 사실은 프리스틀리가 그 긴 생애 동안 어째서 그것을 볼 수 없었던가를 설명하는 주된 이유임에 틀림없다.

... 이러한 똑같은 특성이 지각 과정 자체의 성격에 내재한다는 증거도 있다. 심리학 이외의 분야에서 훨씬 잘 알려질 만한 이유가 충분한 심리학의 실험에서, 브루너와 포스트먼은 실험 대상자들에게 트럼프 한 벌을 잠시 조정해서 보여주고 가려내게 했다. 대부분의 카드는 정상적인 것이었으나, 몇 장은 이상스럽게 만들어서, 예컨대 스페이드의 6을 빨강으로, 하트의 4를 검정색으로 만들었다. 한 차례 실험은 한 사람에게 카드 한 장씩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점차로 횟수를 늘려서 보여주었다. 매번 패를 보여줄 때마다 실험 대상자에게 무엇을 보았느냐고 묻고, 연달아 두 번을 옳게 맞추는 경우 한 차례가 종료되는 식이었다.

아주 잠깐 보는 것으로도 대부분의 피실험자들은 거의 모든 카드를 알아보았고, 좀더 시간을 늘린 결과 피실험자들은 카드를 모두 알아보았다. 이 과정에서 정상적인 카드에 대해서는 보통 옳게 맞추었으나, 이상한 카드는 거의 예외 없이 외관적인 망설임이나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정상적인 카드로 알아보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검정색 하트 4는 스페이드 4 또는 하트 4라고 대답했다.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그것은 기존의 경험이 마련해준 개념적 범주 중 하나에 즉각적으로 들어맞았던 것이다. 피실험자들은 자기들이 대답했던 것과 다른 카드를 보았다고는 아무도 말하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이상스런 카드를 점점 자주 보여줌에 따라서, 피실험자는 망설이기 시작했고 이상의 감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빨강 스페이드 6을 여러 번 보여주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건 스페이드 6인데,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한걸, 검정색에 붉은 테두리를 둘렀나.” 더 자주 보여주는 것은 보다 오랜 망설임과 혼돈을 초래하다가 드디어 어느 시점에서, 때로는 아주 갑자기, 대부분의 피실험자가 망설이지 않고 제대로 맞추게 되었다. 더욱이 이상스런 카드를 두세 개 써서 이런 실험을 한 후에는, 그들은 다른 이상한 카드에 대해서 더 이상 별 어려움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몇몇 사람은 그 범주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

하나의 은유로서 또는 그것이 정신의 본질을 반영한다는 이유 때문에 이러한 심리학의 실험은 과학적 발견의 과정에 대해서 신통하리만큼 간단하고 수긍이 가는 도식적 설명을 제공한다. 트럼프 실험에서와 마찬가지로, 과학에서는 신기한 새로움은 예측되었던 바에 거스르는 저항에 의한 엄청난 난관을 뚫고 비로소 출현하게 된다. (끝)

책의 목차

과학혁명의 구조

  1. 서론 : 역사의 역할
  2. 정상과학으로 가는 길 (2-5장 발췌)
  3. 정상과학의 성격
  4. 퍼즐 풀이로서의 정상과학 (발췌)
  5. 패러다임의 우선성
  6. 이상 현상 그리고 과학적 발견의 출현 (발췌)
  7. 위기 그리고 과학 이론의 출현
  8. 위기에 대한 반응
  9. 과학혁명의 성격과 필연성 (번역)
  10. 세계관의 변화로서의 혁명 (발췌)
  11. 혁명의 비가시성
  12. 혁명의 완결 (발췌)
  13. 혁명을 통한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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