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 측정의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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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계는 가느다란 관에 유체를 넣은 기구로, 온도계 속 유체의 높이는 온도를 나타낸다. 이때 온도계의 0℃와 100℃는 각각 물의 어는점과 끓는점으로 정의되고, 그 사이의 온도는 두 점을 100등분한 눈금에 의해 정의된다. 이러한 온도계에는 온도계 속 유체의 부피 팽창률이 온도와 무관하게 일정하다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다.

법칙에 의거한 측정의 문제와 혼합법

이 가정은 온도계에 넣을 유체를 선택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0℃와 100℃를 각각 물의 어는점과 끓는점으로 맞추어 둔 수은 온도계와 알콜 온도계와 물 온도계를 이용하여, 얼음물에 열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며 물이 끓을 때까지 물의 온도를 재보자. 그러면 온도계들은 <표>와 같이 같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온도를 가리킨다. 아래의 <표>에 따르면, 낮은 온도 구간에서는 온도계 속 유체의 부피 팽창률이 수은>알콜>물인 반면, 높은 온도 구간에서는 부피 팽창률이 수은<알콜<물의 순서로 바뀐다. 그렇다면 어느 유체가 온도에 대해 일정한 부피 팽창률을 가졌을까? 불행히도 우리는 각 유체의 부피를 온도와 비교하지 못한다.

수은 알콜
0 0 0
25 22 5
50 44 26
75 70 57
100 100 100


철학자 장하석에 따르면, 이 문제는 “법칙에 의거한 측정의 문제”에 해당한다. 우리는 온도 T를 측정하고자 하지만, 온도 T는 직접 관찰할 수 없기에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유체의 부피 V를 통해 추론해야 하다. 그런데 그 추론을 위해서는 T와 V 사이의 법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 법칙은 경험적으로 알아낼 수 없다. 왜냐하면 이를 위해서는 유체의 부피 V뿐 아니라 측정하고자 하는 미지의 온도 T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따르면, 우리는 세 온도계 중 참된 온도를 말해주는 온도계를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과학자 들룩(De Luc)은 ‘혼합법’을 통해 이 난관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는 100℃의 물(끓는물)과 0℃의 물(얼음물)을 x:100-x의 부피비로 섞으면 x℃가 될 것이라는 가정을 이용하여 혼합된 물의 온도에 대한 이론치를 먼저 계산한 후, 그 이론치와 가장 근접한 눈금을 가리키는 온도계를 선택했다. 그의 실험은 명백하게 수은 온도계의 손을 들어주었다. 수은 온도계로 측정된 온도는 이론치보다 거의 흡사한 반면, 다른 온도계로 측정된 온도는 이론치보다 확연히 낮았다.

그러나 들룩의 혼합법은 온도의 이론치를 계산하기 위해 정당화되지 않은 이론적 가정을 사용하고 있었다. 들룩은 물 1kg의 온도를 1℃ 증가시키는 데 필요한 열량, 즉 물의 비열이 온도와 상관없이 일정하다고 가정했다. 쉽게 말해, 들룩은 100℃의 물과 0℃의 물을 1:1로 섞으면 둘 사이에 동일한 열량이 교환되어 50℃가 되어야 한다고 가정했지만, 0℃의 물을 50℃로 데우기 위해 필요한 열량이 100℃의 물을 50℃로 식히기 위해 뺏어야 하는 열량과 똑같다는 것은 단지 가정일 뿐이었다.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대안이 없었기에 수은 온도계를 지지하는 들룩의 논증은 광범위하게 수용됐다.

수은 온도계 대 공기 온도계 : 비교가능성 시험과 단일값의 원리

이후 과학자 게이 뤼삭은 다양한 종류의 기체 부피를 수은 온도계로 측정한 온도와 비교함으로써, 0℃와 100℃ 이내에서 기체의 종류에 상관없이 기체의 부피가 온도가 1℃ 증가할 때마다 0℃의 부피의 1/270만큼씩 증가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수소든 산소든 만약 0℃에 270ml의 부피였다면, 10℃에는 280ml가 되고, 50℃에는 320ml가 되고, 100℃에는 370ml가 되었다. 이로써 기체 또는 기체의 혼합물인 공기가 온도계의 유체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 수은 온도계를 통해 정당화될 수 있었다. 그러나 100℃ 너머에서는 수은 온도계와 공기 온도계가 확연히 다른 온도를 나타냄에 따라, 공기 온도계와 수은 온도계 중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발생했다.

과학자 빅토르 르뇨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교가능성 시험’을 수행했다. 이 시험은 같은 종류의 여러 온도계들이 같은 상황에서 서로 같은 온도를 가리키는지 확인하는 시험이었는데, 이 시험에서 수은 온도계는 탈락하고 공기 온도계는 통과했다. 서로 다른 수은 온도계들은 사용된 유리의 종류에 따라, 심지어는 같은 종류의 유리를 사용한 온도계 사이에서도, 200℃ 너머에서 1℃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이는 서로 다른 수은 온도계로 잰 온도값들이 같은 온도로 간주될 수 없음을 말해주며, 결국 수은 온도계는 상호 비교가능한 측정 장치로 인정될 수 없었다. 반면 공기 온도계는 유리의 종류가 달라지든 온도계 속 공기의 밀도가 달라지든 그 눈금이 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공기 온도계는 상호 비교가능한 측정 장치로서, 서로 다른 공기 온도계에서 측정된 온도값은 서로 같은 온도로 간주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르뇨는 공기가 수은보다 온도계의 유체로 우수하다는 것을 보일 수 있었지만, 공기 온도계의 눈금이 참된 온도를 나타낸다고는 주장하지 않았다.

철학자 장하석은 아무런 이론적 가정도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르뇨의 시험에 ‘단일값의 원리’라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었음을 밝혀냈다. 이 원리에 따르면, 자연의 물리량은 동일한 상황에서 단 하나의 값만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이 원리가 경험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만약 어떤 물체를 세 개의 수은 온도계로 동시에 측정했더니 200℃, 199℃, 201℃를 나타냈다고 해보자. 이 측정 결과와 충돌한다는 이유로 ‘단일값의 원리’를 부정할 사람이 있을까? 오히려 우리는 ‘단일값의 원리’에 의지하여 수은 온도계들 중 둘 이상이 잘못된 온도를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장하석은 과학이 경험만으로는 수행될 수 없음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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