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과 젠더: 과학에서 유비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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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cy Leys Stepan, "Race and Gender: The Role of Analogy in Science", Isis 77 (1986), 261-177. 박민아, 김영식 편, 『프리즘: 역사로 과학 읽기』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에 번역 수록됨.


인종과 젠더

과학에서 유비의 역할


낸시 레이즈 스테판 (Nancy Leys Stepan)

정세권 역


은유(metaphor)는 문학이론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지만, 과학이론에서 은유 및 은유가 매개하는 유비(analogy)의 역할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중이다.[1] 과학에서 은유와 유비, 그리고 모형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는 한 가지 이유는 지적인 측면에서 과학이 누려온 특권적인 위상 때문이다. 과학은 전통적으로 비은유적․경험적․보편적인 지식의 창고로서, 정치적으로는 중립적인 지식으로 특권적 지위를 누려 왔다. 17세기 과학혁명기 동안 은유는 상상, 시적 환상이나 주관적 형상 심지어 거짓(untruthfulness)과 연결되었고, 진실되고 꾸밈없으며 객관적인 지식, 즉 과학 그 자체와는 대립적인 것이었다.[2]

20세기 논리실증주의자들도 역시 과학적 언어와 은유적 언어를 구별하였다.[3] 유비 혹은 유비에 기반한 모형이 자신들의 사고에서 중요하다고 과학자들이 주장할 때, 과학철학자들은 은유가 과학적 진술(utterance)에서 본질적이라는 과학자들의 주장을 기각하려 하였다. 프랑스의 이론물리학자 피에르 뒤엠(Pierre Duhem)은, 은유와 유비가 과학에서의 설명에 중요하다는 주장을 비판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에 의하면 과학의 목적은 모든 이론을 수학적 진술로 환원하는 것이었다. 즉 모형들은 과학적 발견 과정을 도울 수 있지만 일단 그 기능을 수행하고 나면 유비는 과학에서 비본질적인 것으로 버려질 수 있으며, 이론은 유비 없이도 홀로 유지될 수 있었다.[4]

과학과 은유 사이에 만들어진 이분법의 결과는, 명백하게 은유적 혹은 유비적인 과학은 “전과학(prescientific)” 혹은 “사이비과학(pseudo-scientific)”으로만 간주될 수 있으며 따라서 기각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5] 과학은 진실한 것(truthfulness) 혹은 경험적 실재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수많은 과학의 은유적 특성은 인정받지 못했다. 그리고 인정받지 못해왔기 때문에, 콜린 터베인(Colin Turbayne)이 지적한 바와 같이 과학에서의 모형은 “모형화된 것”으로 잘못 생각되기 쉬웠다. 콜린의 예를 들자면 자연은 은유를 통해 기계적인 것으로 보였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자연은 기계적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6]

그러나 최근 과학사학자들과 과학철학자들의 관심이 과학의 논리적 재구성에서 벗어나 문화 안에 존재하는 과학의 “자연주의적”(naturalistic) 관점으로 이동함에 따라, 과학에서 은유와 유비 그리고 모형의 역할이 인정받기 시작하였다.[7] 은유에 대한 최근의 저서에서 토마스 쿤(Thomas S. Kuhn)은 유비가 과학에서 근본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리차드 보이드(Richard Boyd)는 유비가 “하나의 과학 이론에서 대체할 수 없는 언어적 장치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하였다. 보이드에 의하면, “더 이상 적합한 문자상의 표현이 알려지지 않은” 이론적 주장을 표현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은유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8] 이제 어떤 과학철학자들은, 은유와 유비가 단지 과학적 발견을 위해 심리학적인 도움을 주거나 학습을 돕는 장치가 아니라 과학 이론의 구성요소라고 주장할 각오도 되어 있다.[9] 우리는 은유를 단순한 장식이나 시적 허구로 간주하는 것에서부터 과학 사상 그 자체에 본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까지 완전히 한바퀴 일주(一周)한 듯하다.

비록 과학에서 은유와 유비의 역할이 인정받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과학적 은유에 대한 엄밀한 이론들은 이제 막 다듬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 글의 목적은 생명과학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특정한 유비를 이용하여 그러한 이론들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과학적 유비의 문화적 원천에 관한 일련의 질문들, 과학적 추론에서 유비의 역할과 규범적인 귀결, 그리고 그것이 변하는 과정을 탐구할 것이다.

인종과 젠더: 강력한 과학적 유비

여기서 고찰할 유비는 인종을 젠더에 연결시킨 것인데, 이 유비는 19세기와 20세기 인간 변이에 대한 과학적 이론화 과정에서 전략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후기 계몽주의 시대부터 인간 변이를 연구한 학자들은 인종적 차이를 실재의 중요한 측면으로 제기하였고, 인종적 차이에 대한 광범위한 담론들이 정교해지기 시작하였다. 19세기에 들어 이러한 관심이 점점 성적인(sexual) 차이와 젠더상(gender)의 차이로 향하면서 젠더는 인종과 상당히 유사한 것이라고 이해되었다. 과학자들은 젠더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인종적 차이를 이용하였고 물론 그 역도 가능했다.

따라서 여성의 가벼운 뇌, 불완전한 뇌 구조는 열등한 인종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여성들의 지적 열등함이 설명되었다. 관찰을 해 보면 여성은 흑인처럼 폭이 좁고 어린애처럼 허약한 두개골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은 “우월한” 인종의 남성이 가지고 있는 더욱 건강하고 둥근 머리 특성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고등한 인종의 여성은, 그만큼 비대하게 돌출된 것은 아니지만 열등한 인종이 가지고 있는 원숭이같은 돌출된 턱과 유사한 아래턱 구조를 가지는 경향이 있었다. 여성과 열등한 인종은 독창적이기보다는 선천적으로 충동적이고 감정적이며 흉내내기 좋아하고, 백인 남성에게서 발견되는 추상적 추론을 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유비를 제시하였다. 진화론적 용어에서 여성은 남성의 “진보적 측면”에 비추어 볼 때 “보수적인 요소”였다. 고등한 인종의 남성들은 새로운 생물학적, 문화적 경향을 이끄는 반면, 여성은 열등한 인종에게서나 발견되는 한층 “원시적인” 특성을 유지하기 때문이었다.

19세기 중반 독일의 선구적인 인종 연구가였던 칼 포크트(Carl Vogt)는, 여성의 두개골은 많은 측면에서 유아, 더 많은 점에서는 열등한 인종의 것과 비슷하며, 많은 열등한 인종들의 성인남성이 지닌 “출렁거리는” 복부는 아이를 많이 낳은 코카서스인종의 여성과 비슷하며, 그 남성들의 얇은 종아리와 평평한 넓적다리는 원숭이와 비슷하다고 주장하였다. 포크트의 이러한 주장은 인간의 차이를 연구하는 과학에서는 이미 상투적이었던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인종과 젠더 사이의 유비는 너무나도 근본적이었기 때문에, 성적인 차이를 설명할 때면 인종적 특성에 대한 주요한 해석방식이 항상 환기되었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이 인종을 별개의 “종”, 즉 교배를 해도 생존능력을 지닌 “잡종”을 만들 수 없는 그런 “종”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남녀의 차이를 분석하는 과학자들은 종종 여성들도 별개의 “종”을 형성한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자신들의 성에 합당한 경계를 넘으려고 할 때면, 과학자들은 이러한 여성들이 성심리적(psychosexual) 잡종으로 퇴화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성선택에 대한 다윈의 이론은 인종적, 성적 차이 양자에 적용되었고, 이는 미국의 에드워드 코프(Edward D. Cope)의 신라마르크주의도 마찬가지였다. 과학적 이론화 과정에서 젠더와 인종의 유사한 위치를 보여주는 최근의 확실한 예는 호르몬 생물학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세기 초 해부학자이자 인종연구가였던 아서 키스 경(Sir Arthur Keith)은 인종적 차이를 당시 새롭게 발견된 “내분비물” 혹은 호르몬의 병리적 장애로 해석하였다. 거의 같은 시기 성에 대해 솔직해야 한다면서 성다양성을 선구적으로 연구한 학자였던 해브록 엘리스(Havelock Ellis)는,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성심리적 구조에서 볼 수 있는 작지만 그에게는 소중했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내분비물을 이용하였다.

간단히 말해 열등한 인종은 인간종의 “여성적인” 형태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여성은 젠더적인 측면에서 “열등한 인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포크트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유비는 인종과 젠더 그 이상의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아주 복잡한 비교나 동일시(identification), 상호참조, 환기된 연관성과 관련된 얽히고설킨 일련의 유비를 통해 (신체적, 정신적, 계급적, 민족적) 다양한 차이들은 인간 변이를 연구하는 생물사회 과학(biosocial science)으로 수렴되었다. 소위 열등한 인종, 여성이라는 유비를 통해서 성적 일탈자, 범죄자, 도시 빈민, 그리고 정신이상자들은 어떻게든 생물학적으로 “별개의 인종”으로 그려졌다. 이들 별개의 인종과 백인남성의 차이, 별개의 인종 서로간의 유사성은 사회적 위계서열에서 그들의 상이하면서도 열등한 지위를 “설명하였다.”

유비에 기반하여 인종적, 성적 차이를 다루는 생물사회학의 체계적인 역사를 그리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오히려 인종-젠더 유비를 이용하여, 과학 그 자체 내에서 유비적 추론이 어떤 성격을 가지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과학에서 언제 어떻게 유비가 등장하였는가? 유비는 스스로의 과학적 권위를 무엇으로부터 획득하였는가? 유비는 어떻게 과학연구를 구체화하였는가? 많은 열등한 인종의 성인남성이 많은 자녀를 가진 코카서스 인종의 성인여성과 닮았다고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유사성이나 치환에 대한 어떠한 이론도 그러한 유비를 설명하지 못한다. 자연 속에서 과학자들이 발견했다고 여겨지는 닮음과 차이를 구성하는 데 있어 유비는 어떠한 도움을 주는가? 유비와 은유의 어떠한 이론들이 과학에 대한 비판적 연구에 가장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가?

과학적 은유의 문화적 기원

과학에서의 특정한 은유와 유비가 사회적으로 과학이 생산되는 것과 어떻게 관련되는가? 어떠한 이유로 특정한 유비는 선택되고 다른 것은 선택되지 않는가? 그리고 특정한 유비는 왜 과학자 공동체에 의해서 수용되는가? 이런 문제는 보다 면밀한 탐구가 필요한 주제들이다.

워렌 시블즈(Warren Shibles)에 의하면 문학작품에서 놀랄만한 은유는 “소나기처럼” 그냥 나타난다. 그러나 과학에서 은유와 유비는 임의적이지도, 단순히 개인적이지도 않다. 어떠한 은유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특정한 은유나 유비를 과학으로 받아들여지게 만드는 것은, 그 속에 “임의성”을 감지하게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스티븐 툴민(Stephen Toulmin)이 지적한 바와 같이, 과학에서 은유와 유비를 선택하는 데 있어 제약으로 작용하는 요인들은 매우 다양하다. 연구되는 대상의 성격(예를 들면 유기물 vs. 무기물), 이를 연구하는 과학 공동체의 사회적 구조(예를 들면 계급), 그리고 관련된 분야나 분과의 역사, 이 모든 것이 특정한 유비의 등장 및 그 성패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따금씩 은유는 놀랄만치 새롭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은유는 이미 그 문화 속에 존재하던 은유를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시키기도 한다.

인간의 차이를 연구하는 과학의 경우, 인간의 변이가 체계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18세기 후반의 과학자들이 사용한 유비는,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익숙해져 이미 문화적으로 승인받은 은유들의 산물이었다. 인간 변이와 차이는 “자연 바로 그 곳에서 그들이 실제 존재하는 그 자체로서” 경험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차이에 대한 경험과 이해를 구성하고 본질적으로도 차이의 대상을 창조하는 은유적 체계를 통해서, 그리고 그것에 의해서였다. 은유적 체계는, 계급과 인종 그리고 성별 사이의 차이, 문명인과 야만인 사이의 차이, 부자와 빈자, 아이와 어른 사이의 차이를 경험하고 “볼”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하였다. 샌더 길맨(Sander Gilman)은 자신의 책 『미치광이 바라보기(Seeing the Insane)』에서 “우리는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주위 세계의 표상을 통해 문화적으로 받아들일만한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법을 배운다”고 썼다.

인간의 차이에 대한 “근본 은유(root metaphors)” 중 많은 것들은 그 기원이 불분명하다. 라코프(G. Lakoff)와 존슨(M. Johnson)은, 문화의 근본적인 가치는 “보통 그 문화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개념의 은유적 구조“와 양립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놀랄 것도 없는 것이, 서양 문화에서 ”타자“ 혹은 ”열등한 사람“이라고 은유적으로 표현된 사회그룹들은 사회적으로 권리를 박탈당했다. 권리가 박탈된 이유는 각 집단마다 그리고 각 시기마다 다양했다. 이미 고대 그리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성적인“인 열등함을 근거로 삼아 여성을 노예에 비유하였다. 윈드롭 조단(Winthrop Jordan)은 중세 초기 흑백 사이에는 이진법과 같은 대립이 분명하게 정립되어 있었다고 설명하였다. 그에 의하면 검은 색은 비열함, 범죄, 사악함, 추함과 같은 것으로 인식되었던 반면 흰색은 미덕, 순수함, 신성함 그리고 아름다움과 동일시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검은 피부의 사람들은 원숭이에 비유되었고, 그들의 유아스러움, 야만성, 짐승과 같은 성격, 지나친 성적 행위, 지적 능력의 결여가 강조되었다. ”이디오피아인“, ”아프리카 사람“, 특히 ”호텐토트“는 백인 남성적이지 않은 모든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표현은 타자의 ”열등함“을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는 풍부한 유비적 원천을 제공하였다. 예를 들어 서양 문명에서 광기가 표상되는 것을 연구하면서 길먼은, 어떻게 흑인이라는 은유가 미친 사람을 설명하기 위해 차용되고 그 역과정도 성립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비슷한 유형의 유비 속에, 가난한 노동자들은 유럽의 ”야만인“으로, 범죄자는 ”니그로“로 표상되었다.

그리고 19세기 과학자들이 인종적 차이와 성적 차이 사이의 유비, 혹은 인종적 차이와 계급적 차이 사이의 유비를 제안했을 때, 그리고 그러한 유비를 기초로 하여 새로운 자료들을 만들기 시작하였을 때, 인간의 차이와 유사함에 대한 그들의 해석은 널리 수용되었다. 이는 당시의 문화적 기대치와 그들의 해석이 기본적으로 일치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특정한 과학에서 은유와 유비는 놀랄 정도로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다만 탐구되지 않아 흩어져 있었던 낡은 것이었다. 과학자들의 공헌은 지금까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진 유비를 자각된 이론으로 끌어 올린 것이었다. 또한 과학자들은 그 유비에 수반된 의미들을 확장했고 새로운 관찰과 비교를 통해 그 범위를 넓혔으며, 전문적인 언어와 새로운 기법을 통해 정확성을 부여하였다. 또 다른 성과는, 유비가 과학의 언어 속에서 “자연화”되면서 그 은유적 성격이 감추어진 것이었다.

잘 알려진 이러한 유비가 과학으로 정교해지는 과정에서, 그 선두를 달린 것은 인종에 대한 연구였다. 이는 부분적으로 흑백의 차이가 아주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 노예폐지운동으로 인해 인종적 차이 및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가 정치적으로 긴박해졌기 때문이었다. 인종에 대한 연구로부터 열등함과 원숭이 사이의 관련성이 제기되었다. 인간과 원숭이의 턱 돌출을 비교하여 얻어진, 자연에서의 위계서열을 나타내는 수치인 안면 각도를 이용하여 흑인이 백인종보다 원숭이에 훨씬 더 가깝다는 것이 제시되었다. 그 이후 이러한 수치는 유비적 과학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열등함의 표시로 굳어진 이후 안면 각도와 검은 색은 다른 열등한 집단과 인종을 설명하기 위해 유비적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다윈의 사촌이자 영국 우생학과 통계학의 선구자였던 프란시스 골턴(Francis Galton)은, 흑인과 원숭이의 턱을 사용하여 아일랜드 사람을 설명하였다. 그는 “감자 대기근 이후 아일랜드를 방문해 본 사람들은 대체로 아일랜드 사람들의 얼굴 유형에서 턱이 상당히 튀어나왔다는 사실, 다시 말해 아래턱의 돌출이 흑인에 매우 가깝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고 언급했다.

인간의 차이와 닮음에 대한 유비적 과학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인간의 두개골에 대한 측정과 체계적인 연구였다. 인간의 차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두개골이 중요했던 이유는 두개골이 뇌를 감싸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개골의 형태 및 크기의 차이가 지적, 사회적 행동에서 비슷하게 추측된 차이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추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유인원, 열등한 인종, 여성, 범죄자, 하층계급, 그리고 아이들 사이의 유비에 표면상 정확도를 제공한 것은, 두개골과 뇌의 무게, 그리고 대뇌 표면의 주름 등의 치수였다. 캘리퍼스(callipers), 두개측정기(cephalometer), 머리계측기(craniometer), 머리지지기(craniophores), craniostats, 정수리뼈 각도계(parietal goniometer) 등 새로운 측정기술을 제공한 사람들은 바로 인종을 연구하던 과학자들이었다. 1840-1850년대부터 과학자들은 작은 안면각도, 이에 상응하는 가벼운 뇌, 앞으로 돌출한 아래턱, 그리고 고도의 지적 능력이 위치할 것이라 생각되었던 앞이마 중앙의 불완전한 발달을 여성, 범죄자, 백치, 그리고 타락한 사람들의 특성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특성들은 모두 인종적 과학에서 나온 것이었다. 폴 브로카(Paul Broca) 사후 프랑스의 선구적인 인류학자였던 폴 토피나르(Paul Topinard)는 1870년, 수많은 과학자들이 수십 년에 걸쳐 수집한 말그대로 수백 개에 이르는 두개골과 뇌로부터 인종적, 성적 차이에 관한 데이터를 모을 수 있었다. 이것은, 코카서스 인종의 여성이 남성보다 턱이 더 튀어 나왔으며 아래턱은 원숭이와 닮았다는 결론, 그리고 “영국이나 스코틀랜드” 출신 여성의 가장 큰 두뇌조차 아프리카 남성과 비슷하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함이었다. 일단 인체측정학이라는 새로운 과학에 의해 여성이 열등한 인종과 실제로 유사하다는 사실이 제시되고 이것이 본질적으로 인종주의적인 유비가 됨에 따라, 여성에게 특수한 특성과 성격들은 반대로 열등한 인종을 유비적으로 이해하는 데 사용될 수 있었다. 그러한 유비는 이제 경험적 실재와 과학적 이론의 무게를 지니게 되었다. 백인 여성과 흑인 사이 혹은 범죄자와 흑인 사이의 유사성은 어쨌든 해당 개인 “속에 들어 있는” 자연의 실재들이었다.

은유적 상호작용

지금까지 은유와 유비가 19세기 인간의 차이를 연구하는 과학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살펴보았다. 이제 질문은 얼마만큼의 역할을 담당했는가이다. 여기서 나는 은유가 과학 그 자체로, 다시 말해 은유가 없으면 과학이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기능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은유와 유비는 과학의 구성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과학사학자들이 했던 바와 같이 여기서 나는 막스 블랙(Max Black)이 주장한 은유의 “상호작용” 이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 글에서 논의하는 은유 및 이를 통해 중개되는 유비는 상호작용하는 은유로서 기능했기 때문이고, 상호작용하는 은유라는 용어로서 은유와 유비를 생각하는 것은 과학에서 은유와 유비의 역할을 분명히 해주기 때문이다.

상호작용하는 은유라는 표현을 통해 블랙은, 보통 그런 식으로 연결되지 않는 서로 다른 사물들 혹은 사물들의 체계들을 연결시켜 인식적이고 감정적인 관계로 만드는 그런 은유를 말하고자 했다. 블랙은, 은유의 “치환”이론을 반대한 리차드(I. A. Richard)의 생각을 따른다. 리차드는, 은유가 두 가지 사물에 대한 실제적인 어떤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고 주장한 이론, 다시 말해 은유란 문자 그대로의 비유이며 시의 경우 문자상의 바꾸어 말하기일 수 있다는 이론에 반대하였다. 리차드는 대신 “은유를 사용할 때 우리는 상이한 사물들에 대한 두 가지 생각이 함께 작동할 수 있도록 하며, 이 두 가지의 생각이 하나의 단일한 단어나 문구로 지탱될 수 있도록 한다. 여기서 그 단어나 문구의 의미는 두 가지 생각이 상호작용한 결과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블랙은 “가난한 사람들은 유럽의 흑인들이다”이라고 하는 은유에 상호작용 이론을 적용하였다. 이를 통해 블랙은, 리차드의 주장 즉 “유럽의 빈자와 미국의 흑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함께 작동하며’ ‘상호작용하여’ 그 상호작용의 결과인 의미를 만들어 낸다”는 주장을 설명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그 속의 의미나 인식적인 내용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은유는 결코 문자 그대로의 비유 혹은 “비슷한의” 진술로 환원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의미는 은유의 두 성분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새로운 의미”는 어떻게 생기는가? 여기서 블랙은, 엄격히 말해 은유의 한쪽 편에만 속할 수 있는 “관련된 문구의 체계”가 상호작용하는 은유에서는 다른 편에도 적용된다고 설명하면서 리차드의 주장을 보충하였다. 그리고 그는, 은유를 효과적이게 만드는 것은 “그 문구들이 진짜라는 사실이 아니라, 그것들이 쉽고 자유롭게 환기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라고 부연하였다. 혹은 마리 헤스(Mary Hesse)가 『과학에서 모형과 유비(Models and Analogies in Science)』에서 쓴 바와 같이, 이러한 함의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정해진 언어 공동체에 아주 공통적인 것이며, 이해받기를 원하는 화자가 미리 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어진 예에서 “유럽의 빈자”는 “흑인”에만 엄격하게 적용될 수 있는 용어로 이해되고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그 결과 빈자는 “별개의 인종”, 유럽 문명 한가운데 존재하는 야만인으로 이해된다. 역으로 “흑인”은 진보를 향한 행진에서 지체된 상태로 묶여있는, 무능하고 게으르며 술에 찌든 사회찌꺼기로 이해된다. “야만성”과 “무능함”이라는 생각 모두, 은유 그 자체가 작동할 수 있는 익숙한 의미체계에 속해 있는 것이다.

블랙의 주장은, 상호작용과 환기된 관련성을 통해 하나의 은유를 구성하는 각 부분들이 변한다는 것이다. 각각의 부분은 어떤 독특한 방식으로 다른 것과 더욱 비슷하게 보인다. 블랙은 주로 문화의 일상적 은유 및 그 문구의 연관성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문구의 연관성 대신 은유는 더욱 특별하게 구성된 의미체계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은 자연에 대한 경험적 탐구 및 전문화된 용어 및 기술(technology)의 화법을 도입하여 바로 그런 의미체계를 만드는 데 분주하다. 사실 은유를 과학의 목적에 적합하도록 만드는 것은, 새로운 의미체계, 새로운 가설, 따라서 새로운 관찰을 연상시키는 그 능력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19세기 인간의 차이에 대한 유비적 과학의 경우, 열등한 인종과 여성을 연결시키는 유비를 통해 환기된 의미체계는 사회적 열등함에 관한 일반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인체측정학과 의학적, 생물학적 연구를 통해 수년간 발달된 한층 정교하고 전문화된 것이기도 하였다. 1860-1870년대 인체측정학, 생물학, 의학 문헌에서 “여성”과 “열등한 인종”이 유비적으로 그리고 상투적으로 결합되었을 때, 은유적 상호작용은 닮음과 차이에 관한 복잡한 의미체계 혹은 한층 전문적인 언어와 관련되었다. (예를 들어 1878년 폴 토피나르가 인용한 바 있는 상이한 인종의 신체 치수들 중에는, 땅에서 견봉(肩峰, acromion)까지의 높이, 상과(上顆, epicondyle), 요골의 경상돌기(the styloid process of the radius), 대퇴골 상부의 돌기(大轉子, great trochanter), 그리고 안쪽 복사뼈(internal malleolus) 등이 포함되어 서로 비교되고 있다). 유비에 의해 환기된 의미체계는 상대적인 건강과 질병 문제(흑인과 여성은 백인남성보다, 특히 아무런 구속이 없을 때 정신병과 신경쇠약 증상을 더 많이 보인다고 생각되었다), 성적 행동의 문제(“열등한 인종”의 여성과 “우등한 인종”의 하층계급 여성, 특히 매춘부일 경우, 기형적 두개골이나 치아같은 병리적, 퇴행적 증상뿐만 아니라 짐승같은 성격, 성적 난잡함을 보인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신체적, 도덕적으로 “유아적인” 특성의 문제를 포함하였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19세기 유비적 추론에 근거하여 과학자들이 발달시킨 인간집단에 대한 의미체계의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머리의 모양과 뇌의 크기였다. 흑인과 여성, 하층 계급 그리고 범죄자는 뇌가 가볍다거나 두개골이 작다고 추정되었다. 1859년 파리 인류학협회(the Société d'Anthropologie de Paris)를 창립한 폴 브로카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일반적으로 뇌는 노년기보다 중년기의 어른이, 여성보다는 남성이, 평범한 재능의 사람보다는 탁월한 재능을 지닌 사람이, 열등한 인종보다 우등한 인종이 더 크다. … 다른 것들이 동등할 때 지능의 발달과 뇌의 용량 사이에는 놀랄만한 상관관계가 있다.”

이와 같이 뇌와 두개골의 유사성에 근거한 전문적인 의미체계는 1830년대 골상학 문헌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비록 여성과 흑인 사이의 유비가 그 이전부터 있어 왔지만, 자연에서 여성의 지위 그리고 남성과의 생물심리학적 차이에 대해서는 주로 생식기능과 성적 특성이라는 용어를 통해 논의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유비는 흑인 여성(성적 특성의 “표시”) 및 하층계급의 혹은 “퇴화한” 백인여성과 관련되었다. 모든 인종의 남성들은 자궁을 가지고 있기 않기 때문에, “열등한” 인종의 남성과 “고등한” 인종의 여성을 비교할만한 체계적인 혹은 확실하게 과학적으로 정당화된 근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1820년대부터 골상학자들은 개인과 집단들의 두개골 형태의 차이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두개골이 뇌 속에 자리잡은 다양한 정신기관들을 충실히 반영하는 기호라는 믿음, 그리고 뇌 기관의 차이가 인간 행동의 차이를 설명한다는 믿음에 바탕한 것이었다. 두개골 구조에 근거하여 여성과 열등한 인종이 직접 비교된 것은 골상학 문헌에서 거의 처음 등장하였다. “기관학”(Organology)에서 골상학자들은 “다산성”(philoprogenitiveness)의 기관 혹은 “자손에 대한 사랑”을 유발하는 기능에 특히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기관과 기능은, 후두부의 상층부가 더욱 발달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훨씬 더 발달되었다고 생각되었다. 프란츠 조셉 갈(Franz Joseph Gall)에 의하면, 동일한 돌출이 원숭이에게서도 발견되며 흑인남녀에게서 특히 잘 발달되었다고 생각되었다.

1840~1850년대 무렵 골상학이라는 과학은 쇠락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골상학자들이 주장한 뇌 기관들이 신경생리학자들이 기술한 뇌 해부학의 구체적인 모습과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뇌의 해부학적 구조 및 기능에 관한 골상학자들 특유의 결론은 거부되었을지라도, 개인 및 집단의 기능 차이가 머리 형태 및 크기의 차이 때문이라는 원리는 거부되지 않았다. 이 원리는, 두개골의 용량에서든 안면 각도에서든, 혹은 뇌 부피와 무게에서든 간에 타고난 재능의 참된 지표를 제공할 수 있는 어떤 수치가 발견될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또한 이 원리는 이러한 수치들을 이용하면 여성과 열등한 인종들이 자연의 등급에서 비슷한 지위를 차지한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라는 주장의 기초가 되었다(“등급” 그 자체가 물론 은유적인 구성물이었다).

1850년대 여성 두개골 치수는 인종과 유비적으로 결합된 두개골 측정학 및 젠더 과학에서 기정사실화되었다. 포크트의 『인간에 대한 강연(Lectures on Man)』는, 서로 다른 인종의 남녀 두개골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치수들에 대해 길게 논의하였다. 그의 데이터는, 상대적으로 작은 여성의 뇌는 열등한 인종의 뇌와 유사하며, 그 작은 크기는 두 집단이 지적으로 열등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포크트는 또한 유럽에서 인텔리겐차와 상층 계급이 가장 큰 뇌를 가졌고 농부들이 가장 작은 뇌를 가졌다고 결론지었다.) 브로카도 포크트와 비슷한 관심을 가졌다. 브로카 역시 지적 능력의 부족과 이로 인한 사회적 열등함은 “고등한” 인종의 남성에 비하여 여성과 “열등한” 인종의 뇌가 작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서로 다른 인종에 속한 남녀의 상이한 두개골 용량을 조사한 과학자들의 기발한 결론은, 남녀의 머리 크기 차이가, 유럽인처럼 “문명화된” 종족은 가장 크게, 야만종족은 가장 작게 되면서 역사적으로 점점 벌어져 왔다는 것이었다.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계속 증가한 성별 차이는 진화적인 선택압(selective pressure)에 기인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선택압은 흑인보다는 백인에게,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더 큰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야만적인 남성이 야만적인 여성을 닮은 정도에 비해, 문명화된 유럽의 여성들은 문명화된 유럽남성과 훨씬 덜 닮았다. 열등한 종족의 남녀 신체와 뇌가 아주 비슷하다는 “발견”을 통해 과학자들은 흑인 남성과 백인여성을 직접 비교할 수 있었다. 남성은 자신이 속한 종의 양쪽 성 모두의 대표로 간주될 수 있었고, 흑인 여성은 성적 특성만 아니라면 지능에 대한 유비적 과학에서 실질적으로 무시될 수 있었다.

상호작용적인 은유가 의미의 체계를 결합시키기 때문에, 이전에는 은유 속에서 하나의 대상에만 연결되던 다른 특성들이 그밖의 대상들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여성과 인종 사이의 유비가 과학 속에서 근거를 찾았기 때문에, 여성은 열등한 인종들과 다른 점에서도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턱 돌출도였다. 턱 돌출도는 아래턱의 돌출 및 열등함을 나타내는 수치였다. 여성과 열등한 인종은 유비적으로 결합됨에 따라, 여성의 “턱 돌출도”에 대한 자료가 수집되었고 “우수한” 인종의 여성은 이러한 열등함의 기호와 연결되었다. 예를 들어 해브록 엘리스는 19세기 후반 남녀 차이에 대한 성서라고 할 수 있는 『남성과 여성(Man and Woman)』에서, 홀쭉하게 돌출한 유럽여성의 턱을 고등 진화의 특성이 아니라 열등한 종족의 특성이라고 언급하였다. 비록 백인 여성에게 이러한 특성은 열등한 인종과는 달리 “독특하게 매력적”이라고 부연했지만 말이다.

길쭉한 얼굴과 짤막한 얼굴, 긴 머리카락과 짧은 머리카락 등과 관련된 열등한 인종과의 유비를 통해서, 일련의 또 다른 함축적 의미들이 여성에게 부여되었다. 아프리카인들은 유럽인들보다 전체적으로 길쭉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따라서 이러한 특징은 열등함을 표시하는 것으로 널리 해석되었다. 별로 놀랄 것도 없이 엘리스는, 전반적으로 여성과 범죄자, 타락자, 정신이상자와 선사시대 인종들은 흑인처럼 뇌 발달의 초기 단계(그 의미상, 훨씬 원시적인 단계)를 나타내는 아주 좁고 길쭉한 머리를 가지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다.

유비, 그리고 새로운 과학적 지식의 창조

여성과 열등한 인종을 연결하는 은유와 유비 속에서 과학자들은 기존에 알려져 있지 않았던 유사성의 지점들을 보게 되었다. 뇌 무게와 체형에 관한 통계학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여성은 좀더 “그럴싸한” 흑인이 되었다. 그렇다면 남은 질문, 어떠한 종류의 “그럴싸함”이 연관되었는가?

여기서 다시 은유의 상호작용 이론이 빛을 발한다. 블랙이 말한 바와 같이 유사성의 개념은 모호하다. 혹은 스탠리 피시(Stanely Fish)가 말한 바와 같이 “유사성은 누군가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확립해야 하는 무엇이다.” 은유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다. 은유는 그것에 의해 결합되는 두 가지 사물의 어떠한 구조적 유사성을 함축한다. 그 유사성은 은유적 혹은 유비적 글을 읽은 독자들에게 새로울 수도 있지만 문화적으로 이해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영국 백인여성과 아프리카 남성 사이에는, 혹은 “범죄형 인간”과 “야만인” 사이에는 명확하게 유사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비슷한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이는 은유가 우리의 문화적, 언어적 체계와 너무 밀접하게 얽혀 있어서 분명한 은유적 특성을 잃어버렸거나 “자연”의 일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은유 자체의 도움으로 구성되는 유사성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은유 때문이다. 블랙이 주장한 바와 같이, 은유는 실재의 특징들을 “선택하고 강조하고 억압하고 조직한다.” 이러한 은유를 통해서 우리는 은유의 대상이 되는 두 주제 사이의 새로운 연결을 보게 되고, 지금까지 간과되었던 구체적인 것들에 주목하게 되며, 다른 방식으로 봤을 때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취급되던 인간경험의 어떤 측면들을 강조하게 되고, 열등함을 나타내는 “기호” 속에 새로운 특징을 만들어 내게 된다. 예를 들어, 남녀 아래턱 모양 사이에 존재한다고 여겨지던 차이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은, 열등한 인종과 여성을 결합시키는 은유였다.

그리고 은유는 유사성을 구성하는 스스로의 능력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한다. 은유나 유비를 통해 작동하게 되는 모든 범위의 유사성은 곧바로 알 수도 없고 반드시 순식간에 예측가능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은유는 “발견”을 허용하며 경험적 연구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생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성과 인종을 연결하는 은유가 없었다면, 여성의 신체(사지의 길이, 골반의 넓이, 두개골의 형태, 뇌의 무게와 구조)에 대한 많은 자료들은 열등함의 표시으로서의 중요성을 잃었을 것이고, 앞서 설명한 방식대로 수집되거나 기록되거나 해석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실 인간 집단들 사이의 “차이” 및 유사함과 관련된 유비가 없었다면, 인류학, 범죄학, 젠더 과학과 같은 수많은 거대프로젝트들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비는 연구를 이끌고 새로운 가설을 낳으며, 새로우면서도 보통은 전문적인 언어들의 확산에 일조했다. 유비는 인간변이에 대한 탐구대상을 구성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탐구대상은 모든 인종들(슬라브인, 지중해인, 스코틀랜드인, 아일랜드인, 황인종, 흑인, 백인, 그리고 적색 인종) 뿐만 아니라 “유아”와 “광인”과 같은 사회 집단이었다. 유비는, 이러한 사회적 집단과 관련해서 무엇이 문제인지, 이들의 어떠한 측면들을 더 조사할 필요가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종류의 측정과 자료들이 과학적 탐구에 중요한지를 정의했다.

간단히 말해 은유는 연구 프로그램으로서 기능했다. 여기서 유비는 토마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에서 상세히 설명한 과학적 “패러다임”이라는 생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사실 쿤 그 자신은 가끔 패러다임이 확장된 은유같은 것이라고 기술한다. 그리고 쿤은 “블랙이 은유의 기능에서 분리시켜 버린, 동일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유사성을 창조하는 과정이 과학에서의 모형의 기능에 있어 또한 필수적”이라고 주장하였다.

과학에서 새로운 종류의 지식을 창조할 수 있는 유비의 능력은, 인과관계에 대한 과학자들의 이해를 체계화하는 방식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헤스(Hesse)는, 과학적 은유가 서로 다른 주제를 결합시킴으로써 단순한 구조적 유사함 이상을 함축한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의 차이를 연구한 과학의 경우, 유비는 열등한 인종과 여성 사이의 유사함 및 이 두 집단과 남성의 차이에 대해 하나의 비슷한 원인을 넌지시 비추었다. 골상학자들에게 원숭이와 흑인, 그리고 여성에게서 볼 수 있는 다산성을 표시하는 거대한 기관의 원인은 타고난 뇌의 구조였다. 진화론자들에게 성적, 인종적 차이는 변이 및 선택과 관련된 느리고 적응적인 변화의 산물이었으며, 그 결과는 여성 및 열등한 인종의 작은 뇌와 열등한 재능, 고등한 인종의 남성에게서 볼 수 있는 고등 지능과 진화적으로 발달한 특성들이었다. 배리 반즈(Barry Barnes)는 여기서 논의되고 은유 혹은 유비와 관련된 일종의 “재기술(redescription)”을 “설명”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이러한 종류의 재기술은 독자가 실재의 한 측면을 다른 언어로 이해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유비, 그리고 지식의 억압

과학에서 상호작용적인 은유의 기능과 관련해서 특히 중요한 것은, 은유에 의해 암시된 유사성과 맞지 않는 인간 경험에 대한 정보를 무시하거나 심지어 억압하는 그 능력이다. “유사성을 창조하는” 능력을 통해 은유는, 은유와 양립하는 실재의 측면들을 과학자들이 선택하도록 영향을 미친다. 종종 이러한 선택과정은 상당히 무의식적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특히, 해부학자와 인류학자들이 인간 우열을 나타내는 바람직한 등급이라고 증명될 법한 수치들을 무의식적으로 탐구하고 선택하는 과정에 대해 말하고 있다. 또한 굴드는 바라던 결과를 얻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어려움을 그들이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굴드는 인간의 차이에 대한 폴 브로카의 연구를 면밀하게 검토하였는데, 왜냐하면 브로카는 과학자 공동체 내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었고 수치의 정확도에 있어 하나의 본보기였기 때문이었다. 굴드에 의하면, 브로카가 비판받을 수 있는 것은 그의 수치 그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브로카가 인간 변이에 대한 유비적 과학 속에 이미 “포함되어 있던” 유사성을 만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수치들을 조작했던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비록 당대의 다른 과학자들이 여성의 적은 뇌 무게가 어쨌든 부분적으로는 더 작은 신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뇌 무게로 여성의 열등함을 결론짓는 것은 여성의 적은 체중을 감안한 어떠한 교정도 하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브로카는 또한 큰 뇌를 가졌지만 야만적 지능을 가진 곤란한 경우를 자신의 계산에서 삭제함으로써, 혹은 자신의 수집품 중 고등한 인종에서 종종 등장하는 작은 뇌의 “천재들”을 어떻게든 설명함으로써, 머리 크기에 기초한 재능의 등급을 “구제”할 수 있었다.

자연에서는 측정과 비교를 위해 “주어진” 지표들이 따로 없기 때문에(굴드가 말한 바와 같이, 말 그대로 수천 가지 다른 종류의 치수들로 이론적으로는 인간의 신체를 만들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차이에 대한 자신들의 연구에서 어떠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남성들에 비해 열등한 인종이나 여성들이 서로 더 가깝다거나, 원숭이 혹은 아이와 같은 다른 “열등한” 그룹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비교의 지표들을 과학자들이 선택한다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선택과 관련된 전략들은 때로는 희극적이다. 예를 들어 브로카는, 상완골(humerus, 팔꿈치에서 어깨에 이르는 뼈)에 대한 요골(radius, 팔꿈치 아래 두 개의 뼈 중 삼각기둥을 모양을 한 바깥쪽 뼈)의 비율을 측정하면서 높은 비율은 곧 원숭이의 특성이라고 추론하였다. 그러나 원했던 수치가 나오지 않자 그는 측정을 그만두었다. 굴드에 의하면, 브로카는 심지어 인간의 차이와 열등함을 측정하는 당대 가장 각광받았던 방법, 즉 뇌 무게 측정을 포기하였다. 왜냐하면 황인종이 이러한 측정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열등한 종이 작은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자연의 일반적 법칙”에 예외적인 것이었다. 브로카는 작은 두뇌를 가진 천재를 다룰 때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종류의 그럴싸한 논거를 가지고 이 곤란한 현상을 어떻게든 다루고자 하였다. 브로카는, 뇌 무게의 등급은 최하급에서만큼이나 최상급에서도 잘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비록 적은 뇌 무게가 항상 열등함을 나타낸다고 하더라도, 큰 뇌 무게가 그 자체만으로 혹은 저절로 반드시 우월함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사실 체중과의 비율로 따져볼 때 여성의 뇌 무게가 남성보다 더 무겁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것이 분명 남성보다 여성에게 상대적인 유리함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랄 것도 없이 그들은 다른 수치를 구하려 하였다. 프랑스의 과학자 레옹스 피에르 매누브리에(Leonce Pierre Manouvrier)는 대퇴골 무게 대비 뇌 무게 비율을 사용하였다. 이 비율은 원하던 결과를 제공하였고 관련된 유비들을 확실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었지만, 당시 어떤 과학자는 이를 “독창적이고 멋지지만 일반 상식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간주하기도 하였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더욱 터무니없는 것은, 엘리스가 언급한 이탈리아 학자 두 명의 연구였다. 이들은 사람 발가락의 “물건을 쥐기에 적당한 특성”(원숭이와 같이)을 이용하여 인간 집단들을 비교하였고, 이러한 특성이 백인 남성보다는 정상적인 백인 여성에게서 더 심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범죄자들, 매춘부, 백치, 그리고 당연하게도 열등한 인종들에게서 매우 두드러진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사실 과학에서 유비가 지니는 사회적 힘(과학적으로 풍성한 결실을 맺는 것은 아닐지라도)은, 유비가 관련된 과학자 공동체의 승인을 잃지 않으면서도 정보를 무시하고 해석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에 있는 듯하다. 추상적인 수준에서 어떤 이들은, 이 글에서 논의하고 있는 유비, 즉 개념의 분명한 왜곡이 유지될 필요가 있는(20세기 후반을 살고 있는 우리의 눈으로 봤을 때의 왜곡) 유비가 과학자들에 의해 꽤나 빨리 포기되었다고 예상할 것이다. 그러나 상호작용적인 은유와 유비는 실재의 어떤 측면에 대해서는 탐구자의 관심을 이끌지만 다른 측면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은유와 유비는 은유적 기대치들을 확증해주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양산할 수 있다. 또한 은유와 유비는 그러한 기대치들을 위협하는 실재의 또 다른 측면에 대해서는 관심을 다른 쪽으로 유도할 수도 있다. 인종과 젠더 사이의 유비에 깔려 있는 문화적 편견이 널리 승인되었기 때문에, 그 유비는 오랫동안 과학에서 유지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여성과 열등한 인종을 서로서로 혹은 원숭이와 더 가깝게 만드는 유사점과 차이점들 바로 그 곳으로 관심을 유도함으로써, 인종과 젠더에 대한 은유는 자료를 만들어 냈고 그 자료 중 상당수는 새로운 것이었다. 그리고 이 자료는 그 은유 및 은유가 만들어낸 관련된 함의들에 적합한 것이었다. 은유와 양립불가능한 실재 혹은 인간경험의 다른 측면들은 무시되거나 “보이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수십 년 동안 아래턱 모양을 근거로 흑인이 원숭이와 닮았다고 주장되었던 반면, 백인남성의 얇은 입술이 원숭이와 닮았다는 유사성은 무시되었다.

무시될 수 없는 정반대의 증거들이 나오면, 이러한 증거들은 은유 속에 함축되어 있는 기본적인 가치판단을 표현하기 위해 종종 재해석되었다. 굴드는 작은 얼굴 혹은 털이 없는 것과 같은 유아의 특징이 어른에게 계속 남아 있는 유태성숙(neoteny)을 그 예로 제시한다. 열등함에 대한 유비적 과학의 핵심적인 특징은, 성인 여성과 열등한 인종들이 백인 남성들에 비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훨씬 더 아이와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굴드는 20세기 초 유태성숙이 진화 과정의 긍정적인 특성으로 인식되었다고 설명한다. “최소한 한명의 과학자, 해브록 엘리스는 이 분명한 의미에 굴복하여 여성의 우월함을 인정하였지만 그럼에도 흑인에 대해서는 우물쭈물하면서 비슷한 고백을 하지 않았다.” 반면 1920년까지 와서도 네덜란드 과학자 루이스 보크(Louis Bolk)는, 관련된 자료를 “재고찰”하고 결국 백인보다 흑인이 유년기의 가장 유리한 특성들에서 더 많이 이탈하였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백인 남성의 우월함과 흑인 및 여성의 열등함이라는 기본적인 가치판단을 구제하고자 하였다.

반복하자면, 은유와 유비는 원래부터 존재하던 특성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특성을 “구성하는” 것을 거들기 때문에, 은유는 자신을 확증할 수 있는 데이터를 만들고 외관상 모순적인 데이터를 조정한다. 따라서 자연은 은유를 통해 보여지고, 은유는 과학의 논리 그 자체의 일부가 된다.

변하는 은유

『은유의 신화(The Myth of Metaphor)』라는 책에서 터베인은, 과학사학자와 과학철학자들이 해야 할 중요하면서도 시급한 임무는 과학에서 은유를 탐색하는 것이라고 제안한다. 과학에서 은유가 익숙해지고 평범해지면 그 은유적 성격이 사라지고 문자 그대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탐색은 필수적이다. 인간의 차이에 관한 유비적 과학은 특히 놀랄만한 사례이다. 19세기 후반 “열등한 인종”, “원숭이” 그리고 “여성”과 관련된 유비가 너무나도 익숙해지고 실로 자명해졌다. 이 때문에 엘리스는 인간종의 남녀 차이에 대한 연구에서 아무런 언급없이 한편으로 “어린이” 다른 한편으로 “원숭이”, “야만인”, “노년의 인간”이라는 것을 “전형적인 여성”을 측정하기 위한 기준으로 간주하였다. 과학의 언어는 객관성의 언어 및 실재와 동일시되기 때문에, 은유가 독단적인 것으로 변하거나 문자 그대로의 진실 혹은 비은유적인 것처럼 보이는 경향은 특히 과학에서 강하다.

은유가 지적인 결과에 더하여 사회적, 도덕적 결과를 지니지 않는다면, 과학에서 실재를 표현하는 은유의 혼란스러움은 덜 중요할 수도 있다. 과학에서의 패러다임이나 모형, 유비에 대한 논의들을 보면 은유적, 유비적 과학의 이러한 측면은 종종 간과된다. 이들 논의는 과학을 행함에 있어 지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적 구성물로서의 은유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은유는 그 이상의 것을 수행한다. 은유는 우리의 관념과 행동을 만드는데, 이 관념과 행동들은 은유와 일치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예를 들어 19세기 생물사회학적 과학들에서는 인종, 젠더, 계급 차이와 관련된 유비가, 인종 및 젠더와 관련된 현상 그 자체를 영속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사회적 결과를 낳았다. 서로 같지 않다는 것은 자연의 “사실”이지 사회 권력관계의 작용이 아니라는 근거를 들면서 과학자들은, 여성과 “열등한 인종”을 위해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는 노력들에 저항하고 자신들의 저항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러한 유비를 사용하였다.

과학에서 은유를 적발하고 폭로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스스로가 은유에 의해 이용되거나 희생되거나 혹은 휘말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인간의 차이를 다루는 유비적 과학의 희생양은, 여성 및 “열등한” 인종이라고 개념화된 인간 집단이었다. 이들이 은유를 사용하는 과학자 공동체에서 배제되는 것은 상당 부분 노동의 사회적 분화 즉, 천성적인 열등함에 대한 과학적 이론을 양산했던 것과 동일한 노동의 사회적 분화의 단편이었다. 바로 이러한 배제 때문에 자연적 불균등함에 대한 은유를 확인하고 조사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인종과 젠더 사이의 유비가 결국 기각되었다는 사실은(비록 20세기에 와서야 그렇게 되었지만), 과학에서 은유가 어떻게 변하는가 하는 흥미로운 질문을 낳는다. 왜냐하면 만약 은유가 과학의 논리적 구조의 일부라면, 은유의 변화는 과학의 변화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1962년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를 출판한 이래로 변화의 문제는 과학에 대한 주요 이론에서 중심적인 것이었다. 쿤의 공헌은, 하나의 패러다임(과학자 공동체의 믿음, 가치, 기술들로 정의되는)이 다른 것으로 대체되는 과정이 매우 복잡한 역사적 사건이라는 사실, 즉 한 패러다임의 증가된 합리성이나 이해가능성 혹은 다른 패러다임보다 나은 논리 등에 관련된 간단한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의 연구는 과학적 이론과 경험적 실재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하나의 패러다임이 수용되고 다른 것은 거부되는 근거에 대하여, 그리고 변화의 뿌리에 대하여 중요한 질문들을 제기하였다. 쿤은 패러다임라고 하는 것이 사실 실재의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 복잡한 인간의 구조물이라고 주장하였다. 무엇보다 쿤은, 모든 과학적 지식이란 과학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과학자들이 배우는 “이론과 법칙들 속에 새겨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과학자 공동체를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혁명에 대한 쿤의 고유한 설명은 사회학자보다는 “주지주의자”의 경향으로 나아갔다. 쿤은, 과학적 패러다임이 그 내에서 수수께끼 풀이라는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변칙사례를 만들고, 그 변칙사례가 당시 패러다임을 붕괴시키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였다. 스스로 인정했듯이 쿤은, 과학에서 새로운 은유가 발생하고 그 결과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질 때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요인이 담당하는 역할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쿤 연구에 자극을 받기도 한 최근의 과학사 및 과학사회학 연구들은, 은유와 유비를 만들고 거부하는 과정에서 과학적 존재로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존재로서의 과학자 공동체 그 자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앞으로는 면밀한 역사적, 사회학적 탐구를 통해 자연의 특정한 표상 혹은 은유가 과학자 공동체의 사회 구조(계급구성, 전문직업적 사회화, 이해관계 등)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특정한 과학 공동체 혹은 학파가 주창한 근본은유는 불충분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 이유는 은유에 의해 만들어진 자료가 그 은유에 단지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이유로 인해서 사회형태가 변하고 실재 혹은 인간경험의 새로운 측면들이 중요해지면서 “눈에 보이게 되고”, 새로운 은유가 도입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차이에 대한 유비적 과학에서 일어났던 변화들을 다룬 이 연구는 방금 언급한 방식을 따라 이루어졌다. 말하자면 정치적, 사회적 삶에서의 변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과학에서 제안된 인간의 유사성과 평등함에 대한 새로운 은유와 밀접하게 결합되었고, 이러한 은유는 차이와 불평등함에 대한 은유와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은유적 변화라는 주제는 분명 더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소결

이 글에서 나는 특정한 은유적 혹은 유비적 과학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제기된 문제들 중 몇 가지만을 지적하였다. 완결성 혹은 이론적 종결을 추구할 마음은 없다. 나의 의도는 과학에서 은유와 유비가 작동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다. 또한 일련의 특정한 은유와 유비가 인간 변이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과학적 문헌들이 왜 비은유적으로 “읽혀왔는지”, 이것의 과학적, 사회적 결과는 어떠했는지에 대한 역사적인 이유를 지적하고자 노력하였다.

어떤 이들은 내가 “명백히 비과학적이었던” 유비적 과학을 다룸으로써 과학에서의 은유와 유비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당시 참여자들에게는 분명 비과학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그들이 19세기와 20세기 초 생물학과 인간과학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들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차이에 대한 유비적 과학에서 진실이었던 것은 과학에서 다른 은유와 유비에서도 마찬가지로 진실일 것이라는 사실을 다른 연구들이 보여줄 것이다.

나의 의도는 또한 은유에 대한 이론들이 인문학에서만큼이나 과학에서도 결정적이라는 것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은유들이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우리가 과학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통로인 은유를 밝히기 위해서는 과학에서의 은유에 대한 엄밀한 이론이 필요하다.

주석

  1. 은유란 이름이나 기술적(descriptive) 용어를, 서로 다르지만 유사한, 그러면서도 그 용어가 적절하게 들어맞는 어떤 대상에 이입시키는 비유적 용법이다. 막스 블랙(Max Black)에 의하면 “모든 은유는 유비 혹은 구조적 대응을 중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Max Black, "More About Metaphor," in Metaphor and Thought, ed. Andrew Ortony (Cambridge Univ. Press, 1979), pp. 19-43. 중 특히 p.31. 이 글에서는 은유(metaphor)와 유비(analogy)를 호환 가능한 용어로 사용했다.
  2. G. Lakoff and M. Johnson, Metaphors We Live By (Chicago/London: Univ. Chicago Press, 1980), p.191. 과학에서의 은유를 비본질적이라거나 해로운 것이라고 비판하는 과학자들의 공격은 과학혁명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 A. J. Ayer, Language, Truth and Logic (New York: Dover, 1952), p.13.
  4. 뒤엠에 대해서는 Carl H. Hempel, Aspects of Scientific Explanation and Other Essays in the Philosophy of Science (New York: Free Press, 1965), pp. 433-477을 참조할 것. 헴펠은 “유비 및 유비적 모형에 대한 모든 언급들은 과학적 설명에 대한 체계적 언술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뒤엠의 견해에 동의하였다(p.440).
  5. 이 점에 대해서는 Jamie Kassler, "Music as a Model in Early Science," History of Science, 1982, 20:103-139를 참조할 것.
  6. Colin M. Turbayne, The Myth of Metaphor (Columbia: Univ. South Carolina Press, 1970), p.24.
  7. 은유와 과학에 대한 일반적인 연구로는 Philip Wheelwright, Metaphor and Reality (Bloomington: Indiana Univ. Press, 1962); Max Black, Models and Metaphor (Ithaca, N. Y.: Cornell Univ. Press, 1962); Mary Hesse, Models and Analogies in Science (Notre Dame, Ind.: Univ. Notre Dame Press, 1966); Richard Olson, ed., Science as Metaphor (Belmont, Calif.: Wadsworth, 1971); W. M. Leatherdale, The Role of Analogy, Model and Metaphor in Science (Amsterdam: North-Holland, 1974); Ortony, ed., Metaphor and Thought (각주 1 참조); Roger S. Jones, Physics as Metaphor (Minneapolis: Univ. Minnesota Press, 1982) 등이 있다. 그리고 Warren A. Shibles, Metaphor: An Annotated Guide and History (Whitewater, Wisconsin: Language Press, 1971)는 은유와 언어 그리고 실재의 일반적인 문제들에 대해 광범위하게 설명해주는 지침서이다.
  8. Thomas S. Kuhn, "Metaphor in Science," in Metaphor and Thought, ed. Ortony, pp. 409-419. 그 중 특히 p.414; Richard Boyd, "Metaphor and Theory Change: What Is 'Metaphor' a Metaphor For?" ibid., pp. 356-408. 특히 p.360.
  9. 과학에서 유비의 중심적인 위치를 옹호하는 내용은 N. R. Campell, "What Is a Theory" in Reading in the Philosophy of Science, ed. Baruch A. Brody (Englewood Cliffs, N.J.:Prentice-Hall, 1970), pp.252-267을 참조할 것. 시블즈(Shibles)는 “각각의 과학계는 다양한 담론의 세계로 팽창되는 수많은 기본적인 은유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한다(Metaphor, p.3.).

관련 항목

프리즘: 역사로 과학 읽기

박민아, 김영식 편, 『프리즘: 역사로 과학 읽기』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2013).

  • 머리말

제1부 과학혁명의 또 다른 면모

제2부 실험의 권위

제3부 생물학과 사회의 상호작용

  • 낸시 레이즈 스테판, 인종과 젠더: 과학에서 유비의 역할 (정세권 옮김)
  • 피터 보울러, 진화론의 사회적 함의들 (정세권 옮김)

제4부 20세기 과학

제5부 동아시아 사회 속의 과학

기타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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