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과학혁명의 지적, 사회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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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laist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10월 4일 (수) 16:5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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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봉국

과학의 역사에서 16-17세기는 격동의 전환기로서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흔히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의 시대라 불리는 이 시기 동안 유럽인들은 우주를 바라보는 관점과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추구했다. 그 결과 1700년경의 유럽인들은 1500년경 선조들의 것과는 크게 다른 지적인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아울러 세계를 바꿀 잠재력을 지닌 활동으로서의 과학의 힘과 역할 역시 과학혁명이 진행되는 와중에 근본적으로 재구성되었다.

전통적인 자연관

1500년경까지 유럽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을 좇아 자연을 바라보고 이해했다. 이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에는 지구가 있고 무수한 별들이 박혀 있는 항성천구가 유한한 우주의 최외각을 감싸고 있다. 지구와 항성천구 사이에는 달, 태양, 오행성이 부착된 투명한 천구가 양파껍질처럼 배치된다. 이중 지구에 가장 근접한 달의 천구는 지상계와 천상계를 나누는 경계가 된다.

지구 중심 우주관
지상계와 천상계는 구성원소와 근본원리가 다르다는 점에서 완전히 상이한 세계이다. 달밑세계인 지상계는 4원소인 흙, 물, 공기, 불로 이뤄져 있으며, 각 원소는 고유한 무게에 따라 본연의 위치를 갖는다. 가장 무거운 흙 원소가 있어야 할 자리는 우주의 중심이다. 나머지 원소인 물, 공기, 불도 무게 순서에 따라 흙 둘레를 차곡차곡 감싼다. 불완전한 지상계에서는 변화가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이것이 혼돈을 초래하지는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각 원소가 제 본연의 위치로 회귀하려는 경향은 변화가 지속되는 세계에 질서를 부여한다. 지상계와 달리, 천상계는 영원하고 불변하는 완벽한 세계이다. 이곳에서는 가장 완전한 운동인 등속원운동만이 영원히 계속된다. 이는 천상계를 이루는 제5원소인 에테르에 천구들을 회전하도록 만드는 속성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해는 서양세계에서 자연에 관한 정통 학설로 2천여 년 동안이나 군림했다. 현대과학의 세례를 받은 우리에게는 좀 어설퍼 보일 수 있지만, 이 학설은 제법 많은 자연현상에 대해 상식적면서도 그럴듯한 설명을 제공해준다. 왜 밤하늘의 별은 매일 뜨고 지는 한결같은 운동을 하는가? 영원히 지속되는 균일한 원운동이 에테르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지구는 우주의 한가운데 멈춰있을 수 있나? 우주의 중심을 향하는 흙(earth) 원소가 뭉쳐서 형성된 게 바로 지구(Earth)이기 때문이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이유는? 사과의 주성분인 흙과 물이 밑으로 떨어지는, 더 정확하게는 우주의 중심으로 가려는 본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호수에 던진 돌멩이는 밑으로 가라앉고, 불은 공기 위로 타오르며, 공기방울은 물 위로 떠오른다. 왜 그럴까? 스스로 답변하는데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직관적인 설명력은 아리스토텔레스 학설의 최대 강점이다.

고도의 체계성과 통일성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이 갖는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다. 천상계와 지상계를 구분하는 큰 틀 안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론, 운동론, 우주론은 서로 꼬리를 문 채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 물질의 본성은 물질 본연의 운동이 무엇인지를 규정하고, 이런 물질의 운동은 우주구조를 유지시키는 동력이 된다. 아울러 우주구조는 제 위치를 찾아가려는 물질의 본성에 구체적 의미를 부과한다. 이런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제공하는 많은 설명은 현상에 대한 개별적인 설명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된 이론체계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부산물이라 할 수 있다.

천문학 혁명: 천상의 재배치

16세기에 들어서자 이렇듯 안정적이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체계에 작은 균열이 발생한다. 기존 관념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우주체계가 폴란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에는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 있으며, 태양이 있던 자리에는 지구와 그 주위를 회전하는 달이 놓인다. 아울러 지구는 축을 중심으로 1일 1회전하는 자전 운동과 1년을 주기로 태양 주위를 도는 공전 운동을 한다. 왜 코페르니쿠스는 이토록 이질적인 우주체계를 제안했던 것일까? 태양중심설은 천문학 분야를 개혁하고자 하는 비교적 작은 열망이 낳은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천문학은 심오한 원리를 다룬다기보다는 “현상을 구제하기” 위한 도구적인 학문으로 여겨졌다. 등속원운동이 천상계의 본성이라는 관념은 대부분의 천체의 운동에 잘 부합했지만 예외가 없었던 건 아니다. ‘떠돌이별’인 오행성은 ‘항성(고정된 별)’과 달리 이동 속도가 변하고 방향도 바뀌는 등 등속원운동에서 벗어난 운동을 한다는 점에서 큰 골칫거리였다. 천문학은 이런 행성의 복잡한 운동을 기술하는 데에 목표를 둔 특화된 학문이었는데, 그 기초는 고대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마련했다. 그는 주전원(epicycle), 이심(eccentric), 등각속도점(equant)과 같은 기법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하여 행성의 운행을 설명하는 천체모델을 고안했다. 아울러 이 모델은 중세 및 르네상스기를 거치면서 관측데이터에 더 잘 부합하는 형태로 조금씩 개량되었다.

정확성을 기하려면 더 많은 주전원을 더 정교한 방식으로 조합해야 했는데, 이러다보니 천체모델은 갈수록 복잡해졌다. 코페르니쿠스는 이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진정 천체의 운행이 이렇듯 복잡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일까? 차라리 태양과 지구의 위치를 바꾸고 지구에 운동을 부여하는 게 더 나아보였다. 이렇게 하면 기존 우주체계가 지니는 복잡성 중 많은 부분이 해소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중심설이 지니는 몇 가지 장점을 적극 설파했다. 실제로 태양중심설은 행성의 역행운동이나 내행성의 최대이각 같은 현상을 지구중심설에 비해 훨씬 간단하게 해명할 수 있었다.

역행운동의 설명방식 : 프톨레마이오스(왼쪽)와 코페르니쿠스(오른쪽)

하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천체모델이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천체는 등속원운동 한다”는 고대의 관념을 충실히 계승했는데, 단순 원운동만으로는 행성의 궤도를 설명할 수 없었기에 결국은 원운동을 조합할 수밖에 없었다. 주전원과 이심은 계속 필요했으며, 이런 점에서 코페르니쿠스의 모델은 비록 프톨레마이오스의 모델보다는 나아졌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복잡했고 또 부정확했다. 행성궤도의 정확한 계산과 예측이라는 본연의 목표에 완전히 부합하는 천문학은 더 후대에 등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천체는 등속원운동 한다”는 종래의 관념을 깨뜨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케플러는 각 행성이 따르는 궤도는 원이 아니라 타원이며 이동 속도마저 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여섯 개의 타원과 면적속도 일정의 법칙만으로 지구를 포함한 오행성의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길이 비로소 열린 것이다.

역학 혁명: 새로운 운동 이론의 등장

태양중심설은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의 천문학적 성취에 힘입어 점진적으로 수용되어 나갔지만, 이에 대한 저항 또한 만만치 않게 일어났다. 무엇보다도 태양중심설은 운동학적인 측면에서 너무나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지구가 그토록 빠르게 움직인다면, 왜 우리가 그 운동을 느끼지 못하겠는가?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면, 어찌 수직으로 쏘아올린 포탄이 제자리에 떨어질 수 있겠는가? 지구의 운동은 직관적으로 납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상계와 천상계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종래의 관념 역시 태양중심설을 수용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었다. 태양중심설이 사실이라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구가 지상계인가, 아니면 우주의 중심인 태양이 지상계인가? 이는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다. 지구가 우주의 외각에 있고 태양이 그 중심을 차지한다면, 당시의 통념상 무거운 물체는 지구가 아니라 태양을 향해야만 했다. “사과는 왜 떨어지는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너무도 쉽게 답변했던 질문이 풀기 힘든 미스터리로 부상하는 순간이다.

이는 대체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에 내재된 고도의 체계성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과 운동론은 서로 긴밀히 결부되어 있었기에, 전통적인 우주구조가 해체되는 순간 운동에 관한 종래의 설명들도 그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태양중심설이라는 새로운 우주체계가 원활히 수용되려면, 그에 걸 맞는 새로운 운동이론이 함께 마련돼야 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천문학 혁명’은 ‘역학 혁명’을 잉태하고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갈릴레오의 역학 연구는 태양중심설을 수용할 때 생기는 운동학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본격적인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수직으로 쏘아 올린 포탄은 왜 제자리에 떨어지는가?” 이에 대한 답변으로 갈릴레오는 ‘관성 개념’을 제안했다. 운동하는 물체는 외부에서 그 운동을 멈추게 하지 않는 이상 계속 운동한다. 포탄은 이미 지구의 운동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포탄이 제자리로 떨어진다 하여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구의 운동을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운동의 ‘상대성 원칙’ 때문이다. 운동은 운동을 하지 않는 물체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나타날 뿐이며, 물체와 운동을 함께 하고 있으면 그 물체의 운동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갈릴레오의 답변이었다.

과학혁명을 마무리한 인물로 평가되는 뉴턴 역시 비슷한 측면에서 조명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뉴턴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인력을 가정한 후, 이 힘을 통해 행성계의 운동을 기술한 케플러의 세 가지 법칙을 모두 유도해낸 것이다. 그는 이 인력이 태양과 행성 사이에서만 제한적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온 우주의 모든 쌍의 질량을 가진 물체 사이에서 작용하는 보편적인 힘이라고 선언했다. 아울러 이러한 ‘만유인력’에 입각해 행성의 궤도운동뿐만 아니라, 지상계에서의 물체의 운동, 바다의 조석 현상, 지구의 세차운동 등을 성공적으로 설명해 낼 수 있었다. 이러한 뉴턴의 성취에 담긴 함의가 무엇인지는 시간을 들여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

앞서의 질문을 뉴턴에게 한번 던져보자. “사과는 왜 떨어지는가?” 뉴턴의 답변은 명쾌하다. 지구가 사과를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는다. 사과를 떨어뜨리는 지구의 인력은 저 멀리 있는 달에도 마찬가지로 작용하며, 천상계의 물체를 지구 주위로 회전하도록 만든다. 뉴턴은 단일한 원리, 단일한 법칙으로 지상계의 역학과 천상계의 수리 행성천문학을 통합했고, 2000년 동안이나 유지되던 천상계와 지상계의 구분을 완전히 타파했다. 뉴턴이 과학혁명을 완수한 인물로 평가되는 이유이다.

경험의 재정의: 발견을 통한 지식의 누적적 진보

과학혁명기에 이뤄진 변화 중에서 천문학 혁명에서 역학 혁명으로 이어지는 과학 내용상의 변화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게 전부인 것은 아니다. 이 시기에는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 자연을 대하는 태도, 과학을 행하는 바람직한 방법을 두고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데아를 강조한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에 뿌리를 둔 경험이 모든 지식의 토대이자 원천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럼에도 과학혁명기 새로운 과학의 주창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경험의 가르침을 무시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언뜻 부당해 보이는 이런 종류의 비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실마리는 경험의 의미 자체가 17세기에 들어서 크게 달라졌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경험이란 “무거운 물체는 떨어진다”거나 “모든 별은 동천에서 떠서 서천으로 진다”처럼, 자연의 일상적 모습에 관한 보편적인 진술을 의미한다. 일상에서 무수히 발생하여 누구에게나 친숙한 현상이라는 점에서, 경험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중요한 것은, 이미 알려진 보편적인 현상들이 “왜” 일어나는지를 해명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자연 전체의 인과구조를 논리적으로 밝혀내는 것이다. 중세인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험 그 자체를 확보하기 위해서 애써 노력할 필요는 없었다. 사물이 실제로 어떠한가에 대한 일반화된 진술로서의 경험은 이미 고대의 권위자에 의해 주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보다는 완전하고 왜곡되지 않은 원전의 인용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경험의 의미는 과학혁명기에 접어들면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일상적이고 친숙하며 보편적인 현상보다는 새롭고 신기하며 특이한 현상으로 경험의 강조점이 점차 이동했다. 이는 시대적인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 유럽의 팽창과 신대륙의 발견은 서구인들의 폐쇄적인 세계관을 뒤흔들어 놓았다. 탐험가들이 먼 나라에서 얻은 낯선 경험들에 관한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오면서, 이 시기 서양세계에서는 인간 경험의 지평이 현저히 확장되었다. 아울러 신대륙에서 발견된 새로운 동물, 식물, 광물은 유럽인들이 자연세계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고안해낸 기존의 분류체계에 혼란을 야기했다. 이는 비단 자연사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았다. 여행가들이 배를 타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해 진기한 물건들을 수집해 왔듯이, 과학자들은 인간의 미약한 감각을 보완할 수 있는 정밀 관측기구를 활용해 새롭고 신기한 자연현상을 발견하고 있었다. 갈릴레오는 직접 고안한 망원경을 사용하여 고대인이나 중세인은 전혀 몰랐던 여러 천문현상을 관측했는데, 이 중 몇몇은 기존 자연관과 우주론에 균열을 내는 효과를 발휘했다.

이들이 보기에, 경험은 이미 주어진 것일 뿐 그 원인을 해명하는 게 관건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접근방식은 지적인 오만함에서 비롯된 섣부른 판단일 뿐이었다. 자연의 통상적 모습에 근거를 둔 종래의 지식체계는 이 시기 이뤄진 몇몇 새로운 발견들만으로도 그 힘을 잃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자연에는 이미 알려진 사실들보다는 미지의 사실이 훨씬 더 많다. 자연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자연세계에 대한 생생한 기록과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발견이 우선 축적되어야 한다. 당장은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새로운 발견을 통한 경험의 확장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며, 이를 통해 과학은 누적적으로 진보한다. 이 시기에 정밀 관측기구가 크게 각광받았던 이유는 그것이 이러한 경험의 확장을 도모할 수 있게 해주는 주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천체망원경은 너무 멀리 있어 볼 수 없는 대상을, 현미경은 너무 작아 볼 수 없었던 미시세계를 인간의 눈에 드러내 주었다. 아울러 과학혁명기 과학자들은 자연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특수한 현상을 기구를 활용해 인위적으로 창출하기 시작했고, 이를 자연을 연구하기 위한 방편으로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실험과학의 부상이다.

실험과학의 부상 : 인간 자연에 개입하다!

앞서 설명했듯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의 일상적 움직임을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런 자연관에 따르면, 실험을 하는 행위는 자연을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자연은 그 정의상 ‘자연스러운 상태’에 있을 때에만 그 본연의 모습을 우리에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자연에 개입해 들어가는 실험은 자연을 인위적인 효과로 오염시키는, 다시 말해 자연을 ‘비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버릴 우려가 있다. 자연을 탐구하는 바람직한 방법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놔둔 채 그 내적 속성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것이었다. 이렇듯 ‘자연’과 ‘인공’을 엄격히 구분하는 관념은 중세 시대까지 널리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과학혁명기에 들어서자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서 큰 변화가 나타난다. 자연과 인공의 구분은 점차 희미해졌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효과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했다. 실험과학의 필요성을 강변한 베이컨은 자연현상을 자연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현상, 보기 드문 자연의 실수나 돌연변이, 인간이 자연에 노력을 가해 만들어낸 현상으로 분류했다. 베이컨은 그간 학자들이 첫 번째 부류만을 자연으로 여기고 나머지 현상들, 특히 세 번째 부류를 소홀히 다뤄왔음을 문제 삼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사람이 자극 받기 전까지 그 사람의 성격을 잘 알 수 없듯이, 자연이 자유로운 상태에 있을 때에는 그 본성과 원리가 실험을 통해 인위적 자극을 가할 때만큼 완전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베이컨의 언급은 과학혁명기에 풍미한 지적인 감수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연에 내재된 법칙을 발견하려면, 실험기구로 베일에 감춰진 자연의 본모습을 들춰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선언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옮겨졌다. 로버트 보일의 공기펌프 실험은 기구의 힘으로 압착해 주형을 뜬 ‘변형된 자연’을 통해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공기펌프가 창출한 진공이라는 인위적 공간은 보일이 공기의 본성을 탐구할 수 있게 해주는 이상적인 무대가 되었다. 이를 통해 보일은 공기의 탄성력을 연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체의 부피와 압력에 관한 일반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련의 실험들 중에서도, 보일이 “으뜸가는 결실”이라 자평한 한 “진공 속 진공” 실험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 실험에서 보일은 토리첼리의 장치(훗날 수은주 기압계로 활용되는 장치)를 펌프의 유리구 용기 안에 집어넣었다. 펌프로 용기 속 공기를 빼내기 시작하자 수은주는 점차 강하했고 진공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거의 바닥까지 내려갔다. 반대로 밸브를 열어 공기를 유입시키자 수은주는 다시 상승했다. 일전에 파스칼은 수은주의 상승 이유가 공기의 무게(혹은 압력) 때문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입증하고자 퓌드돔 봉우리에 오른 적이 있다. 예상대로 900미터에 이르는 정상에 도착하자 희박해진 주변 공기 탓에 수은주는 8센티미터 정도 내려갔다. 보일의 실험은 이런 파스칼의 시연을 실험실에서 재현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둘 사이에는 적잖은 차이도 존재한다. 파스칼의 등산을 대체한 보일의 공기펌프는 자연에 대한 손쉬운 통제를 가능하도록 해주었다. 이제는 자연적인 발생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원하는 현상을 실험기구로 만들어내면 되었다. 더 나아가 보일은 자신의 실험이 토리첼리의 장치를 퓌드돔 봉우리를 넘어서 대기권 꼭대기까지 가져갔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 지를 보여준다고 언급했다. 실험기구의 힘을 빌려 현실적으로 관찰 불가능한 자연현상을 창출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결론

16-17세기 서양 문화에서는 우주와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을 두고 큰 변화가 진행되었다. 기존 우주체계와는 전혀 모습이 다른 새로운 우주체계가 등장했고, 이내 이런 우주체계에 걸 맞는 새로운 운동이론이 고안되었다. 아울러 천문학과 역학 분야에서 거둔 개혁의 성공에 발맞춰 세세한 변화들은, 종래의 전통적인 자연학을 완전히 대체하는 근대적인 형태의 과학이 등장할 수 있게 해줬다. 물론 과학혁명의 효과는 과학 내용상의 변화에 국한되지 않았다.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 현상을 기술하는 방식, 경험을 대하는 태도에서 일어난 변화는 훨씬 더 폭 넓고 근본적인 것이었다.

더 읽을거리

과학의 역사와 문화」, 『과학교양』 (과학중점고등학교 교과서). 한국과학창의재단, 2010.

  1. 17세기 과학혁명의 지적, 사회적 의미 (김봉국)
  2. 18세기 라부아지에와 화학연구의 새로운 방법 (오승현)
  3. 19세기 물리학의 탄생 (정동욱)
  4. 19세기 다윈주의 진화론의 등장과 그 사회적 함의 (정세권)
  5. 20세기 유전학: 멘델에서 인간게놈프로젝트까지 (정성욱)
  6. 과학의 제도적 기반 (정동욱)
  7. 과학과 문화의 상호 작용 (조수남)
  8. 산업혁명을 통해 본 과학과 기술의 상호작용 (서민우)
  9. 과학과 제국주의 (정세권)
  10. 과학과 여성 (박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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