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uzzle about Belief

크립키는 이름과 믿음에 대한 하나의 퍼즐을 제시한다. 크립키는 믿음과 이름에 대한 모든 철학적 이론은 이 퍼즐을 풀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약

배경: 치환(substitutivity) 원리의 실패

이름에 대한 이론은 Millian과 Frege-Russellian으로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밀의 이론에 따르면, 이름은 지시체를 지시할 뿐, 그밖의 언어적 기능은 갖지 않는다. 이름의 의미는 지시체에 의해서 남김없이 파악된다. 그러나 F-R에 따르면, 하나의 이름은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뜻으로 사용될 수 있다.

밀의 이론에 따르면, 같은 대상을 지시하는 고유명사들은 진리값의 변경없이 상호대체(치환) 가능하다. 그러나 믿음 맥락에서 이 주장은 유효하지 않다. "존스는 샛별이 아침에 뜬다고 믿는다"와 "존스는 개밥바라기가 아침에 뜬다고 믿는다"의 진리치는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존스는 키케로가 대머리라고 믿는다"고 말하면서 "존스는 툴리가 대머리가 아니라고 믿는다"고도 말할 수 있다. 실제로 키케로와 툴리는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밀의 이론에 대한 반례로 간주되어 왔다.

크립키가 보기에, 믿음 맥락에서의 치환 실패는 밀의 이론에 불리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F-R을 직접적으로 지지하는 논변은 아니다. 먼저, 이름을 축약된 기술구로 간주하는 이론에 대해 다양한 반론들이 제기되어 왔다. 또한 믿음 맥락에서의 치환 실패가 뜻의 차이에 의해서 설명되는지도 불분명하다. 문제는 기술구가 한정적이지 않을 때 발생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키케로와 툴리에 대해 각각을 구별하여 지시에 성공할 정도로 지식이 많지 않다. 그렇다면 치환의 실패를 설명할만한 뜻의 차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탈인용 원리(DP)와 번역 원리(TP)

크립키는 문제가 있는 밀의 치환 원리를 버리고, 탈인용 원리와 번역 원리를 제안한다. 이 원리는 언뜻 보기에 거부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이 거부하기 힘든 두 원리를 적용하면 위에서 언급했던 동일한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DP는 진지한 동의와 믿음을 연결하는 원리로 다음과 같다.

(DP) If a normal English speaker, on reflection, sincerely assent to 'p', then he believe the p.[1]

이때, 'p'는 지시사, 대명사를 포함하지 않는 모호하지 않은 문장이어야 한다. 'on reflection'에 의해 부주의한 동의를 배제하고,'sincerely'에 의해 거짓말이나 연출된 상황을 배제한다. 이렇게 볼 때, 이 원리는 자명해보인다. 다음으로 TP는 아래와 같다.

(TP) If a sentence of one language expresses a truth in that language, the any translation of it into any other language also express a truth (in that oter language).

물론 우리의 일상적 번역 활동은 TP를 위배하기도 한다. 그러나 번역이 의미를 보존하는 것으로 이해된다면, 진리치도 보존해야 하고, 따라서 TP는 거부하기 어려운 자명한 원리가 된다.

퍼즐

피터는 평범한 영어 화자라고 하자. 그는 영국에 살고 한국어는 모른다. 그가 'Seoul'에 관해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Seoul is pretty"라고 말했다고 하자. 그가 이 말에 진지하게 동의한다면, 우리는 (DP)와 (TP)에 의해 "피터는 서울이 예쁘다고 믿는다"고 추론할 수 있다. 나중에 그가 세계를 떠돌다 서울에 와서 사람들과 사귀면서 한국어를 배웠고, 그 도시가 '서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가 직접 본 서울은 별로 매력적이지 않아서 "서울은 예쁘지 않다"는 한국어 문장에 동의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는 (DP)에 의해 "피터는 서울이 예쁘지 않다고 믿는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그런데 피터는 여전히 자신이 사는 곳이 영국에서 보았던 사진 속의 도시라는 것을 모른다. 그는 여전히 "Seoul is pretty"라고 표현했던 자신의 믿음을 수정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피터가 모순적인 믿음을 갖는다고 얘기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크립키가 구성한 퍼즐이다.

  • 피터는 서울이 예쁘다고 믿으면서, 서울이 예쁘지 않다고 믿는다.

피터는 그가 'Seoul'이라고 불렀던 도시는 예쁘다고 믿고, 그가 '서울'이라고 부르는 도시는 예쁘지 않다고 믿는다. 이는 상황에 대한 정확한 기술이다. 그러나 크립키가 보기에 이는 퍼즐에 대한 답은 아니다.

한정기술구를 이용한 해법과 그 난점

한정기술구 이론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한정기술구 이론에 따르면, 이름은 한정기술구의 축약본이다. 즉 피터는 현재 각 이름에 대해 다른 한정기술구를 부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Seoul'과 '서울'이라는 각 이름은 현재 피터에게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피터가 "Seoul is pretty"와 "서울은 예쁘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은 피터가 모순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게 된다. 후에 피터가 두 이름의 유일하게 규정적인 속성(uniquely identifying property)을 알게 된다면 두 믿음 중 하나를 자연스레 포기하게 될 것이다. 이제 퍼즐은 해결되었는가?

만약 피터가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임을 안다면, 또는 서울이 경복궁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정말 문제가 해결되는가? 피터가 그와 같은 유일규정 속성을 '서울'과 연결했다고 하자. 그러면 동일한 속성들로 정의된 '서울'과 'Seoul'을 같은 도시의 이름이라고 생각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피터는 여전히 '대한민국'과 'Korea'를 다른 나라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한정기술구는 문제를 이동시킬 뿐 해결하지 않는다.

기술구 이론가는, "만일 이름이 동일한 유일규정 속성에 의해 정의되고 나면" 이름은 믿음 맥락 하에서 진리값의 변경 없이 상호교환가능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첫째, 전제조건이 만족되지 않을 수 있다. 즉 속성집합이 유일하게 한 대상을 식별하지 못할 수 있다. 둘째,) 조건이 만족되더라도 규정 속성에 속하는 이름들을 다시 정의해야 하고, 이런 과정은 무한히 반복될 수 있다. 무한퇴행을 막을 궁극적인 단계에 도달하리라는 것은 기술구 이론가들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피터는 정확히 동일한 규정 속성들의 집합으로 'Seoul'과 '서울'을 배우더라도, 피터가 그 규정 속성들의 영어 이름과 한글 이름을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 한 퍼즐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진정한 번역 [약간 내용에 의심이 감]

다른 해법은 번역의 적절성을 의심하는 것이다. 즉, 'Seoul'은 '서울'의 옳은 번역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번역은 엄밀히 말해 개인적 언어(방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어서, 결국 우리는 피터의 믿음을 진술하지 못한다고 보면 어떨까? 이는 일상적인 번역 활동에도 부합하지 않는 극약처방이다. 그러나 크립키는 한 언어만 고려하는 경우에도(즉, 번역이 불필요한 경우에도) 퍼즐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인다.

DP만을 이용한 퍼즐 (번역 원리가 불필요한 경우)

동욱이가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한 'Paderewski'라는 사람을 유명한 피아니스트로 알았다고 하자. 그는 "Paderewski는 음악적 재능이 있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고, 우리는 (DP)에 의해 "동욱이는 Paderewski가 음악적 재능이 있다고 믿는다"라고 추론할 수 있다. 나중에 TV에서 'Paderewski'라는 이름의 폴란드 정치인의 내한 소식을 들었다고 하자. 동욱이는 그 정치인의 음악적 재능에는 회의적일 것이고, "Paderewski는 음악적 재능이 없다"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우리는 또 (DP)에 의해, "동욱이는 Paderewski가 음악적 재능이 없다고 믿는다"라고 추론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동욱이가 모순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번역 원리를 적용하지 않고서도 똑같은 퍼즐이 구성되는 것이다.

결론

모든 진리 이론이 거짓말쟁이 역설을 다루어야 하듯이, 믿음과 이름에 관한 모든 이론은 이 퍼즐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이 퍼즐이 진정한 퍼즐이라면, 인과적 지시 이론에 불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술적 지시 이론에 유리한 것이라고도 쉽게 말할 수 없다. 기술적 지시 이론에는 심각한 반론들이 제기되어 왔으며, 이 논문에서 제시한 퍼즐 또한 기술구 이론에 따른 뜻의 차이로 해결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퍼즐이 어느 쪽에 유리한지는 분명치 않다. 피터의 사례를 통해 분명해진 것은, 믿음을 부여하는 우리의 일상적인 장치가 엄청난 부담 아래 놓여 있어 붕괴할지도 모르는 그러한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다.

평가

각주

  1. 이 원리는 쌍조건문으로 만듦으로써 강화된 형태로 만들 수도 있다. 그 경우 우리는 화자가 'p'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p임을 믿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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