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secting the Holistic Picture of Scientific Change

ZoLAist's WikiNote
Pineman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1월 19일 (일) 22:42 판 (새 문서: Laudan, L. (1984), "Dissecting the Holistic Picture of Scientific Change" in his ''Science and Values'' (Chapter 4). Reprinted in Curd & Cover (eds.), ''Philosophy of Science: The Cen...)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Laudan, L. (1984), "Dissecting the Holistic Picture of Scientific Change" in his Science and Values (Chapter 4). Reprinted in Curd & Cover (eds.), Philosophy of Science: The Central Issues.

강규태 요약


과학적 변화의 단위에 대한 쿤의 견해

책의 앞 장들에서 라우든은 과학적 합리성에 대한 위계적 모형(hierarchical model)과 그물형 모형(reticulational model)을 대비시킨다. 그리고 이 장에서 라우든은 쿤의 주장이 위계적 모형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위계적 모형은 잘못되었다는 점을 들어 쿤을 비판한다. 따라서 라우든의 비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과학적 합리성에 대한 두 모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위계적 모형에 따르면 패러다임을 이루는 요소들은 사실적(factual), 방법론적(methodological), 가치론적(axiological) 층위로 나눌 수 있다. 사실적 층위에서 패러다임은 개념틀(conceptual framework)를 제공한다. 여기서 개념틀이란, 세계에 있다고 존재한다고 상정되는 대상들(entities)과 과정들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존재론에 의거한 개별 과학 이론들도 이 층위에 속한다. 더 높은 층위는 방법론적 층위이다. 이 층위에는 이론들 간에 선택을 위한 규칙들이 포함된다. 이런 규칙들은 실험을 설계할 때 어떤 기술(techniques)과 도구를 사용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사항과, 한 이론을 입증하는 증거는 무엇인지에 대한 규칙, 그리고 시험 가능성과 단순성 등의 인식적 가치에 대한 일반적 진술 등이 있다. 가장 높은 층위는 가치론적 층위이다. 이 층위에는 과학의 목표가 속한다. 쿤에 따르면 서로 다른 패러다임은 목표를 어느 정도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중복되는 경우는 없다. 쿤에 따르면 패러다임 변화는 선행 패러다임과 후행 패러다임 사이에 매우 커다란 단절을 일으키는데, 이는 사실적, 방법론적, 가치론적 층위 모두가 동시적으로 변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쿤은 패러다임의 구성요소들은 분리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패러다임이 전체론적(holistic)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이 모형은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위계적이다: 한 층위에서 의견 불일치가 발생하면, 그 불일치는 더 위의 층위에서 합리적으로 해결된다. 예를 들어 사실적 층위에서 어떤 이론을 선택할지에 대해 불일치가 일어나면, 그 불일치는 이론 선택의 방법론적 규칙을 제공하는 방법론적 층위에서 해결될 수 있다. 만약 모든 과학자들이 과학의 목표에 대해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 원리적으로는 논쟁이 해결될 수 있다. 그런데 가치론적 층위에서 불일치가 발생하면 그보다 더 위의 층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논쟁이 해결될 수 없다. 요약하면, 위계적 모형은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가진다. 첫째, 정당화는 하향식으로 이루어지고, 선형적이다. 즉, 가치론적 층위가 방법론적 층위를, 방법론적 층위가 사실적 층위를 정당화하지만 그 반대 방향은 불가능하다. 둘째, 가장 높은 층위인 가치론적 층위에서 합리적 정당화는 불가능하다. 과학의 목표에 대한 관점은 필연적으로 임의적이고 주관적이다.

퍼즐 조각의 해체

쿤의 주장대로 과학적 변화가 전체론적이라면, 이론 선택이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여러 과학자들이 서로 다른 패러다임 하에서 서로 다른 평가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한 패러다임이 다른 패러다임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 합의된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패러다임이 그 패러다임은 만족시키지만 다른 패러다임은 만족시키지 못하는 평가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그 평가 기준을 통한 이론 평가는 순환적이 된다. 결국 쿤이 말하는 것은 패러다임 간의 논쟁이 합리적으로 종식될 수 없고, 외적 요인으로만 종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쿤은 논쟁이 어떻게 종식되는지에 대해 정합적인 설명을 내놓지는 못했다. 저자인 라우든은 쿤의 주장이 이론 변화에 대한 규범적 혹은 합리적인 설명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실제 과학사를 올바르게 기술하지도 못했다고 주장한다. 패러다임 간 논쟁의 종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쿤의 주장에서 두 가지를 수정해야 한다. 첫째, 과학적 합리성에 대한 위계적 모형은 그물형 모형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즉, 사실적, 방법론적, 가치론적 층위 간의 정당화는 선형적으로, 하향식으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상호 관계를 맺고 있다. 둘째, 과학적 변화가 전체론적이지 않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즉, 패러다임의 각 층위는 독립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수정 사황을 받아들이면, 이론 변화를 합리적인 과정으로 간주할 수 있다. 쿤이 잘못된 주장을 한 것은 그가 과학적 변화를 충분히 정밀하게 분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짧은 시간 간격으로 분석해보면, 각 층위의 변화는 동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한 층위에서의 변화가 먼저 있고, 그로 인해 다른 층위가 변화하는 식으로 순차적으로 변화가 일어난다. 예를 들어 더 나은 방법론이 발견되면 방법론적 층위가 변하고, 그 새로운 방법론에 맞추어 사실적 층위에 속한 이론이 변한다. 그리고 사실적 층위에서의 새로운 발견이 가치론적 층위가 달성 불가능한 것임을 밝힘으로써 가치론적 층위를 변화시킬 수 있다. 요약하자면, 거시적으로 보면 쿤의 주장대로 과학적 변화가 근본적이고 불가해한 것으로 보이겠지만, 사실 미시적으로 보면 합리적 사건의 연속인 것이다. 과학적 변화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상은 과학사에 부합한다. 다른 층위와 독립적으로 방법론적 층위만 변화한 예를 살펴보자. 과거에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관찰 불가능한 대상를 배제했으며, 관찰 가능한 대상에만 귀납법을 적용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19세기 말에는 관찰 불가능한 대상을 상정하는 가설-연역법이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방법론적 변화는 당시의 과학 혁명과 별 관련이 없다. 한편으로 다른 층위와 독립적으로 가치론적 층위만 변화한 예도 있다. 과거에는 오류 불가능한 확실한 지식의 추구가 과학의 목표로 여겨졌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그것은 불가능하며, 개연성이 높은 이론을 추구하는 것이 과학의 목표라는 좀 더 완화된 견해로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도 다른 층위의 변화와 독립적이었다. 쿤의 주장대로 변화가 모든 층위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니다. 세 층위가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완전히 분리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특정 층위에서 의견 불일치가 발생한다고 해서 그것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른 층위에서 공유된 가치를 통해 불일치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만약 불일치가 완전히 해결될 수 없더라도, 공유된 가치에 어긋나는 많은 이론들은 배제할 수는 있다. 아직 쿤의 주장이 완전히 반박된 것은 아니다. 쿤은 공유된 가치가 [있더라도] 의견 불일치가 합리적으로 해결되지 못한다는 점을 여러 논증을 통해 보였다. 라우든은 다음 절에서 그 논증들을 반박한다.


방법론에 대한 쿤의 비판

쿤은 적절한 증거와 방법론적 기준이 있더라도 경쟁 패러다임들 중에 특정 패러다임이 월등히 낫다는 점을 보이기에는 불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국소적 미결정성(local underdetermination)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쿤은 이런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네 가지 논증을 제시한다. (c. f. 전국적 미결정성: 증거에 의해 특별히 더 지지를 받고 있는 이론을 결정할 수 없다.)

1. 공유된 기준의 애매성 논증 쿤: 경쟁 패러다임의 옹호자들에 의해 공유된 방법론적 규칙이나 기준이 애매하다. 따라서 동일한 기준을 공유하는 과학자들도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할 때에는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단순성이라는 기준을 공유하는 과학자들이 서로 다른 이론을 선택할 수 있다. 쿤은 모든 이론 선택 사례가 주관적인 요소와 객관적인 요소의 혼합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라우든의 반론: 쿤의 주장은 몇몇 우연적인 사례로만 뒷받침되어서는 안 된다. 쿤은 모든 이론 선택의 사례에 자신의 논증이 적용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쿤은 방법론적 규칙이 그 본성상 애매하다는 점을 밝혀야 한다. 이는 명백히 틀렸는데, 전혀 애매하지 않은 방법론적 규칙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론이 내재적으로 정합적이어야 한다[이론 내에 논리적 모순이 없다]는 기준, 이론이 다른 분야에서 수용된 이론들과 논리적으로 일관되어야 한다는 기준 등은 전혀 애매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연역적으로 완결되어 있어야 한다, 통제된 실험을 거쳐야 한다, 사용-참신한 예측을 산출해야 한다는 등의 규칙은 애매하지 않다.

2. 집합적인 비일관성 논증 쿤: 과학자들이 가치들 각각에는 동의하더라도, 그 가치들 간에 충돌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 각 과학자가 어떤 가치를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이론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모든 과학자들이 단순성과 정확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합의한 경우라도, 한 이론은 더 단순하지만 다른 이론은 더 정확한 경우 과학자들마다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일은 우연적으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받아들이는 규칙이나 기준의 집합이 갖는 본질적인 특성이다. 라우든의 반론: 가치들 간의 비일관성이 본질적인 특성이라고 말할 근거는 없다. 오히려 일관된 방법론적 기준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쿤의 주장을 거부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밀이 제시한 방법론적 규칙들(일치법, 차이법 공병법 등)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에서 많이 사용되는데, 그것들 간의 충돌은 존재하지 않는다. 3.변화하는 기준 논증 도펠트(Gerald Doppelt)가 해석한 쿤: 규칙이나 기준은 각 패러다임에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 어떤 기준에 대해 한 패러다임의 옹호자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반면 다른 패러다임의 옹호자들은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따라서 논쟁의 해결은 합리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라우든의 반론: 쿤의 주장대로, 과학자들이 서로 다른 방법론을 지지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방법론적 층위에서의 불일치가 다른 층위에서의 불일치와 항상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패러다임을 옹호하는 과학자들이 동일한 평가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한편으로는 동일한 패러다임의 옹호자들이 다른 기준을 가질 수도 있다. [이와 같이 과학자들 간에 방법론에 대한 논쟁이 존재하더라도 다른 층위에서는 공유된 가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논쟁의 합리적인 해결이 가능하다.]

4. 문제-가중치(problem-weighting) 논증 도펠트(Gerald Doppelt)가 해석한 쿤: 서로 다른 패러다임의 옹호자들은 어떤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문제가 더 중요한지에 대해 서로 다른 가중치를 부여한다. 따라서 한 문제를 해결한 것이 이론을 얼마나 지지하는가에 대해 의견 불일치가 존재할 수 있다. 각 패러다임의 옹호자들은 자신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점에서 그들이 옹호하는 패러다임이 가장 나은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불일치는 과학 외적 기준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라우든의 반론: 과학철학의 증거 이론은 한 증거에 어느 정도 인식적 가중치를 부여할 수 있는지를 다룸으로써 증거의 의의에 대한 평가를 탈주관화한다. 따라서 증거 이론을 통해 한 문제를 해결하는 어떤 이론의 능력이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다른 이론의 능력보다 더 인식론적으로 의의가 있는지 평가할 수 있다. 쿤의 생각과 달리, 한 이론이 특정 문제를 풀기 위해 만들어졌을 때, 그 이론이 그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점은 그 이론을 강하게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특정 패러다임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문제를 그 패러다임이 풀 수 있다고 해서, 그 패러다임이 입증되는 정도를 과대평가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