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Watt to Clausius: The Rise of Thermodynamics in the Early Industrial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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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S. L. Cardwell, From Watt to Clausius: The Rise of Thermodynamics in the Early Industrial Age (Ithaca, New York: Cornell University Press, 1971).

마이어와 퍼거슨의 서평

  • Otto Mayr, Isis, Vol. 64, No. 3 (1972), pp. 451-452.
  • Eugene S. Ferguson, Science, New Series, Vol. 175, No. 4023 (1972), pp. 745-746.

마이어(Otto Mayr)가 보기에, 카드웰(D. S. L. Cardwell)의 주장은 “열역학(의 개념과 문제, 관심)은 18, 19세기 동력 기술에 기원을 두고 있을 뿐, 뉴턴주의와는 실제로 아무 관계가 없다”로 요약될 수 있다. Mayr는 Cardwell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고 손을 들어주면서,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 와트 이후 증기기관이 점점 완전해져가는 동시에 열역학적 문제들이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탐구되는 시기에 대한 서술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마이어에 따르면, 이 책은 두가지 서술 원칙을 따르고 있다. 첫째로, 칼로릭 이론으로부터 열에 대한 동역학적 관점과 열역학의 두 근본법칙에 이르는 점진적인 진화를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둘째, 주요인물을 중심으로 연대순으로 평이하게 서술한다. 마이어는, 이러한 주요인물 중심의 연대기식 서술방식으로 말미암아, 연속적인 개념 발전을 보기 위해서는 관련 개념이 나온 앞부분을 매번 들춰봐야 할 뿐만 아니라 전체 요지도 파악하기 힘들다는 불평을 한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카드웰의 책은 열역학의 역사를 모두 다룬 책이 아니란 점이다. 이는 스스로도 밝힌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푸리에의 이론은 매우 간략히 압축되어 소개되었고, 에너지론은 전혀 나오지 않았으며, 플로지스톤 이론은 주석 정도로만 처리되어 있다. (이는 기대에 따라 실망스러운 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을 지적하자면, 1820년대 이후 열역학을 수용하고 그것을 명료화하는 데 일조하는 기술의 모습이 전혀 묘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인지, 퍼거슨(Eugene S. Ferguson)은 열역학의 형성과정에서 1820년 정도까지는 기술이 중요했지만, 그 이후에는 기술이 별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이어는 당시 영구기관에 관한 논의에서 열역학 제 1,2법칙의 중요성이 부각되었을 것이며, 칼로릭 이론의 약점도 “regeneration"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선명하게 부각되었을 것이란 점을 지적한다.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듯하다.) 한편, 카르노 사이클의 진정한 중요성은 19세기 말까지 인식되지 않았었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마스덴의 서평

  • Ben Marsden, Notes and Records of the Royal Society, Vol. 58, No. 3 (2004), pp. 318-320.

추도사의 성격도 띠고 있는 마스덴(Ben Marsden)의 서평은 최근 과학사학계의 눈에서 카드웰을 평가하고 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카드웰은 현재의 역사서술 경향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첫째로, 그는 기술과 과학을 엄격히 분리하여 그 둘 사이의 상호작용을 살핀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러한 엄격한 구분 자체가 의심받고 있다. 둘째로, 그는 과학기술에 대해 ‘발전’이나 ‘방해물’ 등의 표현을 자주 쓰고 있지만, 현재 그런 표현은 더 이상 과학사학계에서 쓰이지 않는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역사적 행위자에 대한 명시적 평가도 현 시점의 눈에는 거슬릴 수 있다.

쿤이 과학적 실천, 변화 및 ‘발견’에 대한 특정한 모형을 제안했던 것과 달리, 카드웰은 그러한 모형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그의 작업이 가지는 역사서술의 함의(historiographic implications)에도 관심이 없었다. 또한 7,80년대 많은 학자들의 사회적, 문화적 전향에도 그는 그 길을 좇아가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에서, 마스덴은 그의 글이 학문적이기보다는 박학다식한 아저씨의 글처럼 읽혀진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스덴은 “카드웰의 책으로 다시 돌아가 그가 손수 그린 밑그림 위에서 작업하는 독자가 자기만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