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gic of Discovery: An Analysis of Three Approaches

PhiLoSci Wiki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인쇄용 판은 더 이상 지원되지 않으며 렌더링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브라우저 북마크를 업데이트해 주시고 기본 브라우저 인쇄 기능을 대신 사용해 주십시오.

Curd, Martin V., “The Logic of Discovery: An Analysis of Three Approaches”, in T. Nickles (ed.), Scientific Discovery, Logic, and Rationality, 201-219.

일상 언어에서 ‘발견’은 보통 ‘성공’ 단어이지만, 과학적 이론의 ‘발견’에 대한 논의에서는 그러한 함축이 적음. 그래서 T의 발견은 T의 참과 무관한 것으로 설정.

이론 생성 기간 : 한 과학자가 한 문제에 대해 최초로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때부터 그 이론(‘완료된 연구 보고서’)이 최초로 과학 저널에 출판되기에 적합한 형태로 쓰여지기까지. 이론 생성 기간 동안에는 아직 시험되지 않음. 어떤 의미에서? 이론으로부터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결과를 도출해내고, 통제된 실험 하에서 이러한 새로운 예측이 얻어지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것으로서의 시험이 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사실 이론은 발표되기까지 통상 제약조건들(자료, 사실, 잘 확립된 법칙과의 일관성 등)을 만족하도록 구성되었지만, 이 제약조건을 통과한 것은 커드의 의미에서 시험을 통과한 것은 아님.

  • 커드 논문의 약한 고리 : 제약조건 통과는 왜 시험이 아닌가? 왜 새로운 사실 예측 및 실험을 통한 조사에서만 정당화가 이루어지고, 그 이전의 제약조건 통과에서는 정당화가 이루어지지 않는가? 특히 뒤에서 언급될 귀추적 추론에서는 추구의 논리에 해당하는 사전 평가(경제성 평가)의 정당화만 이루어지고, 새로운 예측에 의한 시험에서는 인식적 정당화까지 이루어지는 것인가? 사실 귀추적 추론과 HD 입증의 논리적 구조는 사실상 같지 않은가? 왜 하나는 추구의 정당화만 이루어지고, 다른 하나는 인식적 정당화까지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는가?
  • 이론 발표 이전에 새로운 예측을 해서 실험적으로 확인하기도 함.

어쨌든 그렇게 시험의 의미를 좁혀서 시험이 이루어지기 전 이론을 명료화하기까지의 이론 생성 기간을 정식화 하고 나면, 이 기간과 관련된 (A) 사전 평가의 논리와 (B) 이론 생성의 논리를 구분지어 생각해볼 수 있음. 사전 평가의 논리는 ‘가설의 제안이 걷잡을 수 없이 범람하여 우리를 침수’시키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 커드는 “일련의 한정된 경험적 자료들이 주어지면, 그 자료들을 연역해낼 수 있는 잠재적으로 무수히 많은 대안적 가설들이 늘 존재한다”면서 “우리의 지적, 재정적 밑천은 유한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가설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것을 무시해야 하는지 결정할 방법이 필요하다”고 주장.

  • 그러나 여기서도 문제. 일련의 경험적 자료들을 연역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을 진지하게 추구할 만하다는 것이 커드식 귀추적 추론. 그런데,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그러한 가설은 무수히 많음. 그중에서 무언가를 골라내는 방법이 필요하다면 그 방법은 귀추적 추론이 아님.

가능한 사전 평가의 논리는 (A1) 개연성의 논리와 (A2) 추구의 논리가 있다. 이러한 사전 평가의 논리는 가설의 생성되었음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생성의 논리는 아님. 그렇다면 두 가지 사전 평가 중에서 추구의 논리가 과학적 탐구에 실천적 유관성 가짐. 왜? 참의 개연성을 말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는 반면, 어떤 가설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방법은 있기 때문.

시험 전에 개연성을 판단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반대 논변 : 가설 H가 참이라면 (1) 내적 모순 없음, (2) H의 귀결들 중 어떤 것도 거짓 아님 (3) 다른 참인 진술들과 일관적임. 그러나 이는 필요조건일 뿐 H의 진리를 보장하지 못함. 또한 개연성 판단도 불가능. 경험적 제약조건을 만족하는 H1에 대해, 그와 양립불가능하지만 같은 정도의 경험적 적합성을 갖는 H2 만들 수 있음. H1이 H2보다 개연성이 높다거나 더 참일 것 같다는 주장은 어떤 토대 위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음. 단순성이나 설명력 역시 진리와 무관. 귀납 논리를 개발하기 위한 시도도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실패. 이러한 실패는 개연성이나 참일 법함을 사전 평가의 논리에서 사용하는 것을 불리하게 만듬.

  • 경험적 제약조건을 개연성 판단의 기준으로 사용할 수 없다면, 새로운 예측에 의한 시험은 어떤 종류의 평가인가? 그 역시 마찬가지의 논리에 의해 개연성 판단의 기준으로 사용 불가능한 것 아닌가?

(B) 이론생성의 논리의 세 가지 가능한 의미 : (B1) 사소하지 않은 가설을 만들어낼, 아마도 알고리즘적인, 절차 (B2) 과학자의 발견 과정에 대한 역사적 이야기 (B3) 과학자들이 가설들을 추론할 때 사용하는 추론들의 분류와 분석, 그리고 왜 이런 추론들이 합당한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정당화. 즉 발견 과정에 대한 “합리적 재구성”. 이론으로의 추론이 합리적으로 재구성될 때, 그 추론의 정당화는 결국 사전 평가의 논리에 의존할 것이며, 그 사전 평가의 논리 중 가능한 것은 추구의 논리임. 즉 추구의 논리가 발견의 논리의 핵심임.

  • 커드의 논리에 따라 추구의 논리가 발견의 논리의 핵심이라면, 추구의 논리는 발견을 넘어서는 전체 과학의 논리의 핵심이 될 것임. 어쩌면 그것이 포퍼의 반증주의의 정수를 이어받는 것일 수도.

가설연역론의 관점

가설연역론자들은 발견의 논리 부정. 그들에 따르면 이론과 가설은 단지 추측. 따라서 발견의 문제는 심리학적 문제에 불과. 그러나 이들이 부정한 것은 이론 생성의 논리이지, 사전 평가의 논리가 아님. 게다가 포퍼와 헴펠은 사전 평가의 기준을 제안하기도 했음. 포퍼가 내세운 과학의 조건인 (1) 내적 일관성 (2) 경험적 성격 (3) 지식의 성장을 위한 함의는 사전 평가의 논리로도 해석될 수 있음.

이론 생성의 논리는? 이론 생성의 논리가 있을 법한 심증이 있기도 함. 이론 생성의 논리가 없다면 (랜덤으로 타자를 쳤다면, 혹은 침팬지가 타자를 오랫동안 쳐서) 셰익스피어 전집이나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 등이 나올 수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가설연역론자들은 이론 생성의 논리를 거부하는 설득력 있는 논증을 가지고 있음. 첫째, (귀납주의적) ‘발견 기계’ 반론 혹은 ‘고안의 논리’ 불가능성으로부터의 논증. 이론적 선입관 없이 수집된 사실로부터 참된 과학 이론을 추론해주는 알고리즘은 없으며, 그러한 발견 기계는 원리적으로 불가능.[1] 이러한 논증은 귀납주의적 발견 기계로서의 이론 생성의 논리를 부정. 그러나 개념적 혁신과 연관되지 않는 경우(케플러의 세 번째 법칙, 멘델레예프의 원소 주기율표, 수소 스펙트럼선에 대한 발머의 공식 등)는 알고리즘적인 발견이 가능할 수도 있음. 그러나 개념적 혁신을 동반한 발견의 경우는?

발견 기계 반론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이 가설들을 주장할 때 사용하는 추론들의 분류와 분석, 그리고 왜 그 추론들이 합당한 것인지에 대한 해명’으로서의 이론 생성의 논리는 (개념적 혁신을 동반한 발견의 경우에도) 옹호 가능. (1) 과학적 발견은 ‘유레카 순간’처럼 제거될 수 없는 심리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논리적 분석에 저항적이라는 반론과 (2) 발견 과정은 비명제적 과정을 포함하지만, 발견의 논리는 명제들 사이의 명제적 관계와 관련되기 때문에 실제 발견과 발견의 논리는 비동형적이라는 반론이 있지만, 이는 발견의 논리가 일련의 심리적 사건을 일일이 설명하려고 의도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반론을 벗어날 수 있음. 발견의 논리는 역사적 기술이 아니라 규범적이고 비판적인 작업으로서 발견 과정에 대한 ‘합리적 재구성’을 제공. 즉 발견의 논리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정당화의 맥락 안에 위치한 이론 생성 기간에 대한 합리적 재구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귀납확률론의 관점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이라는 용어를 도입한 라이헨바흐에게 둘의 구분은 시간적 구분이 아님. 전자는 심리적 기술, 후자는 논리적 관계로서의 ‘합리적 재구성’. 과학철학은 정당화의 논리에만 관련.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논리이기 때문. 핸슨은 라이헨바흐의 논리적 구분을 시간적 구분으로 오해. 사실 라이헨바흐는 과학적 발견에 대한 합리적 재구성이 가능하다고 생각. 그리고 그 합리적 재구성은 귀납의 원리로 정리될 수 있다고 생각. 즉 아인슈타인의 발견은 의식적인 귀납 추론 수행의 결과가 아닐지라도, 그 발견은 시험되기 이전에 이미 알려져 있던 사실들과의 귀납적 관계에 의해 그럴 듯하거나 개연적인 것으로 합리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귀납적 전개가 알려진 사실로부터 새로운 이론을 이끌며, 그 과정에서 이론은 귀납적 지지를 얻는다. 이를 통해 얻은 이론은 단순한 추측이 아니다. 또한 시험을 거치면 그 이론은 더 높은 귀납적 지지를 획득한다. (즉 발견 과정의 합리적 재구성으로서의 논리는 시험 과정의 합리적 재구성으로서의 논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

커드의 해석에 따르면, 라이헨바흐가 발견의 논리로 제안한 것은 사전 평가의 논리와 이론 생성의 논리임. 또한 그의 사전 평가의 논리는 시험하기에 앞선 사전의 그럴듯함에 대한 개연성의 논리로서 귀납적 확률에 의해서 완전히 표현됨. 그러나 그의 주장은 두 가지 결점이 있음. (1) 귀납 논리는 이론 생성의 논리로서 부적당. 왜냐하면 어떤 새로운 이론은 기존의 자료와 법칙과 양립불가능해서, 그래서 피설명항의 그릇됨을 함축하기도 함. 귀납 논리로는 이러한 이론을 인도할 수 없다. (2) 귀납 논리는 사전 평가의 논리로 실패. 왜냐하면 (확률에 대한 상대 빈도 해석 하에서) 가설에 확률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이 (아직) 없음. (*이에 따르면 귀납 논리는 사후 평가로도 부적당한 것 아닌가?) 요컨대, 라이헨바흐는 이론 생성 과정이 합리적 재구성에 의해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으며, 그 점이 과학철학자의 작업이라고 말한 점에서 타당, 그러나 그 논리가 개연성의 논리인 귀납 논리에 의해 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부적절.

  • 라이헨바흐의 논리는 모두 귀납적 논리임. 라이헨바흐에게 예측 시험 여부는 논리와 무관. 그런데 커드는 그것을 시험 이전에 이루어지는 사전 평가와 시험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후 평가로 억지로 구분. 그렇다면, 커드는 귀납적 논리에 기반한 사전 평가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시험에서 이루어지는 귀납적 지지는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가설에 대한 귀납적 지지의 확률을 부정하는 커드의 입장에 비추어 새로운 예측에 의한 시험은 포퍼식 용인에 불과? 그러나 커드는 “이론이 시험되기 전에는, 그것이 참이거나 참에 가깝다고 믿을 설득력 있는 근거를 우리가 아직 가지고 있지 않다고 인정하는” 얘기를 통해 이론이 시험되면 참이거나 참에 가깝다고 믿을 설득력 있는 근거를 가지게 된다고 주장하는 듯. 그렇다면 어떻게?
  • 커드의 경우, 사전 평가든 사후 평가든 평가는 귀납적이기보다 설명적 관계에 의존할 듯.

귀추론의 관점

퍼스는 다음의 세 가지 견해에 동의한 것으로 보임. (1) 귀추는 이론 생성의 논리이다. (2) 발견은 제거될 수 없는 심리학적 요소를 포함한다. (3) 귀추는 사전 평가의 논리이다. (1)과 (3)의 견해가 화해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퍼스 역시 이론 생성의 알고리즘이 있다고 생각 안함. 그렇다면 그가 귀추적 추론으로 의도한 이론 생성의 논리는 합리적 재구성으로서의 생성 논리일 것임. 또한 퍼스는 귀추적 추론이 의도하는 사전 평가의 논리가 개연성의 논리인 것처럼 보이도록 주장했는데, 이는 귀추에 의한 개연성 주장이 너무 방만하다는 비판에 직면(애친스타인 1970, 1971). 그러나 퍼스의 의도를 추구의 논리로 해석하면, 그러한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음(정말?) 그 추구의 근거가 단지 ‘일단’인 이유는 (1) 더 나은 설명적 가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2) 다른 추구의 근거도 있다는 점에서. 퍼스가 구체적으로 논의한 요소로는 단순성, 비용, 그리고 A의 추구가 과학의 다른 부분들에 대해 갖는 함축. 이 요소들을 전부 ‘탐구의 경제성’이라는 이름 아래 묶었음. 그래서 “과학적 귀추의 규칙들은 탐구의 경제성에 전적으로 기초해 있어야 한다.”(7.2220, n. 18). [이러한 언급은 퍼스의 귀추를 추구의 논리로 해석하는 증거가 됨]. 예컨대 단순성은 참의 표시가 아니라, 작업하기 쉽고 시험하기 쉬운 이론을 선호한다는 뜻일 뿐이다.

  • 정말 백만불을 제안받았다는 가설이 내가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잘 설명해준다는 근거로 그 가설을 추구할 근거가 있는가? ‘일단(prima facie)’ 추구할 근거가 있는 것이므로 괜찮은 건가?

물론 퍼스는 귀추가 개연성의 논리를 위한 열쇠라는 점을 단념하지 않았음. [아마도 실재론에 대한 귀추적 추론과 거의 비슷한 착상일 듯] 그러나 귀추가 개연적인 이론을 이끈다는 주장은 정당화되지 못함. 이를 정당화하는 그의 논변 역시 귀추적 추론에 의존. 따라서 그의 정당화 논변은 귀추의 (참된 이론 생성에 대한) 성공을 독립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사용될 수 없음.

결론

사전 평가의 논리나 이론 추론의 합리적 재구성으로 이해된 발견의 논리가 불가능하다는 논증 (아직) 없음. 퍼스의 통찰에 대한 해석로부터 얻은 커드의 주장은, 사전 평가의 논리 중에서 유일하게 작동할 수 있는 개념은 추구의 논리이고, 이론 생성 기간을 합리적으로 재구성하여 이론으로의 추론을 정당화해주는 것도 바로 추구의 논리이다. 즉 이론으로의 추론을 최초로 정당화해주는 요소와 일단 생성된 이론 중에서 추구할 만한 이론을 결정할 때 사용하는 요소는 동일하다.

각주

  1. 이유는? (1) 탐구를 안내하는 사전 가설 없이는, 유관한 사실을 골라낼 수 없음. (2) 이론은 가용한 자료들에 의해 미결정되므로, 자료로부터 생성된 자료에 부합하는 이론의 참을 보장할 수 없음. (3) 중요한 이론적 발견은 알고리즘을 따라서는 수행될 수 없는 창조성과 개념적 혁신을 본질적으로 포함하고 있음.

관련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