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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조화 : 그 의미와 인식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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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laist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4월 8일 (수) 14:22 판 (2.4 상호연관성: 그림 삽입)

정동욱,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조화 : 그 의미와 인식적 가치", 『과학철학』 24권 1호 (2021), 1-40. (편집중)

초록 : 이 논문에서 나는 조화에 기초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 체계 옹호 논변[조화 논변]을 분석하고 평가한다.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에서 그의 조화 논변은 세 가지 논변, 즉 (i) 우주 구조의 확정에 기초한 논변 (ii) 행성 천구들의 운동과 크기 사이의 단조 관계(조화의 원리)에 기초한 논변 (iii) 다양한 천문 현상들의 상호연관성에 기초한 논변으로 분석될 수 있는데, 나는 그의 세 번째 논변이 앞의 두 논변에 의존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또한 조화 논변에 대한 나의 논리적, 확률적 분석에 따르면, 태양 중심 체계의 조화는 그 체계의 참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간주되기는 어렵지만, 이해 가능한 천문학 이론을 추구한 일부 천문학자들에게는 그 체계에 기초해 탐구할 이유를 제공했다.

키워드 : 태양 중심 체계, 미적 가치, 통합성, 증거, 이해 가능성, 이론 수용

The Harmony of the Copernican System: Its Meaning and Epistemic Value

Abstract: In this paper, I analyse and evaluate Copernicus’s harmony arguments for his heliocentric system. His harmony arguments in De revolutionibus can be analysed by three meanings: the heliocentric system is true, because it exhibited (i) fixed ratios of planetary spheres, (ii) monotonic relation between motions and sizes of planetary spheres, and (iii) interconnectedness of various astronomical phenomena. My text analysis shows that the third argument depends on the first and the second argument. And my logical and probabilistic analysis on the harmony arguments shows that the harmony of the heliocentric system could not provide an evidential support for it, but could provide some astronomers who persued an intelligible astronomical theory with a reason to research on it.

Key words: Heliocentric system, aesthetic value, unification, evidence, conceivability, theory acception

감사의 글 : 이 논문은 2019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9S1A5B5A07110660). 또한 이 논문은 서울대학교 예술문화연구소 콜로키움(2019년 4월), 한국과학철학회 정기학술대회(2019년 7월, 2020년 7월),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콜로키움(2020년 12월)에서 발표한 내용들을 발전시켜 작성되었다. 오랫동안 품고 있던 투박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준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날카로운 지적을 해준 익명의 심사자들에게도 감사드린다.

본문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조화 : 그 의미와 인식적 가치

정동욱 (경상국립대 철학과)

1. 도입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는 1543년에 출판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1권 10장(1999, 32쪽)에서 자신의 태양 중심 체계 하에서는 “우주의 놀라운 대칭성과 함께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천구의 운동과 크기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발견하게 된다”라는 점을 강조하며 태양 중심 체계를 옹호했다.[1] 많은 학자들이 이 구절에 주목했지만, 역사학자와 철학자들의 관심은 살짝 달랐다. 역사학자들은 주로 코페르니쿠스가 ‘조화’를 통해 의도한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관심을 보인 반면, 철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가 얘기하는 ‘조화’가 과연 태양 중심의 체계를 수용하거나 믿을만한 이유를 제공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보였다.

흥미로운 것은 관심의 차이에 따라 그들이 주목하는 ‘조화’의 의미도 달라졌다는 점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정확한 의도에 집중할 때, 태양 중심 체계에서 발견되는 ‘조화’는 일차적으로 행성 천구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것의 회전 주기도 점점 증가한다는 의미였다. 반면 인식적 정당화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철학자들은 이러한 ‘조화’의 일차적인 의미가 미적인 장점일 뿐 인식적 장점이 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조화’를 단순성이나 통합적 설명력으로 해석하여 그것이 이론의 시험가능성이나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논변을 만들어내는 데 힘을 쏟았다.

나는 이 논문에서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조화’로부터 그 이론을 믿을 이유를 찾아내고자 했던 철학자들의 주된 시도가 실패했음을 보인 후, 나는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조화’가 가진 인식적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 코페르니쿠스가 말한 ‘조화’의 일차적인 의미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함을 보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론 선택의 문제가 단지 믿을 이유에 관한 문제로 환원될 수 없음도 확인될 것이다.

2. ‘대칭성’과 ‘조화’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의 서문에는 지구 중심의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의 여러 불만이 담겨 있었다. 그중 대칭성과 조화와 관련된 구절은 다음과 같다.

... 그들[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형태나 그 부분들의 불변의 대칭성과 같은 중요한 사항은 이해하거나 도출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한 화가가 각각 다른 모델로부터 각각 아주 잘 그려진 손, 발, 머리 등을 모아 자신의 그림을 완성하나 그것이 한 사람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과 같으며, 여기서 그 조각들은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그 결과물은 한 명의 사람이라기보다는 괴물이 될 것입니다. (Copernicus 1999, 7쪽)

코페르니쿠스에 따르면, 지구 중심의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으로는 “우주의 형태나 그 부분들의 불변의 대칭성”을 이해하거나 도출할 수 없다. 코페르니쿠스는 이를 미적으로 부조화스러운 그림에 빗대고 있는데, 그는 지구 중심 체계의 각 부분들이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아 그 결과물은 한 명의 사람이라기보다는 괴물”과 같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태양과 지구의 자리를 맞바꾼 태양 중심 체계의 장점을 다음과 같이 대비시킨다.

지구에 부여한 운동들을 가정하고서 오랫동안 많은 관측을 한 결과, 다른 행성들의 운동을 지구의 회전과 관련지은 후 각 행성의 공전에 맞춰 계산해 본다면 행성들의 모든 현상이 그로부터 곧장 따라 나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행성들과 천구들, 또는 하늘 그 자체의 순서와 크기가 서로 너무도 밀접하게 묶여 있어서, 그것의 어떤 부분도 다른 모든 부분과 우주 전체를 교란하지 않고선 변경될 수 없다는 것도 발견했습니다.(Copernicus 1999, 8쪽)

이러한 코페르니쿠스의 말에 따르면, 태양 중심 체계는 첫째, 지구의 운동을 고려함으로써 “행성들의 모든 현상이 그로부터 곧장 따라 나온다”는 장점이 있으며, 둘째, “그것의 어떤 부분도 다른 모든 부분과 우주 전체를 교란하지 않고선 변경될 수 없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태양 중심 체계의 장점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1권 10장에서도 다음과 같이 상술된다.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놓게 되면 거의 무한한 수의 천구로 인해 곤란해질 수밖에 없는데, 그보다는 이것[태양중심설로 인한 곤란]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쓸모없거나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도 만들어 내지 않으면서 여러 작용에 하나의 원인을 부여하길 좋아하는 자연의 지혜를 따르는 것이 낫다.(Copernicus 1999, 31쪽)

이러한 코페르니쿠스의 논변들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까? 1950년대까지의 가장 통속적인 해석은 태양 중심 체계에서는 지구 중심 체계에서 사용되던 수많은 주전원(epicycle)이 제거됨으로써 우주 체계의 단순성이 회복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깅거리치(Gingerich 1975) 등에 의해 강력하게 반박된 이래 힘을 점차 잃어 현재는 학술적인 가치를 완전히 잃게 되었다.[2] 역사학자들은 대칭성과 조화에 의거한 코페르니쿠스의 논변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나는 이를 세 가지로 구분하여 소개할 것이다. 첫 번째는 불변의 대칭성에 의거한 논변, 두 번째는 행성 천구의 크기와 운동 사이의 조화에 의거한 논변, 세 번째는 현상들 사이의 상호연관성에 의거한 논변이다.

2.1. 불변의 대칭성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놓게 되면 거의 무한한 수의 천구로 인해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언급은 행성들의 순서에 대해 논의하던 중에 나온 것이었다. 그 구절 바로 앞부분에서 그는 지구를 중심에 놓았던 과거의 학자들이 수성과 금성과 태양의 순서에 대해 확정하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지구 중심의 우주 체계에서 관측을 통해 도출할 수 있는 것은 각 행성의 주원(deferent)의 크기 대 주전원(epicycle)의 크기의 비율뿐이었다. 원한다면 그들은 관측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도 주전원과 주원의 크기를 둘의 비율만 유지한 채 마음대로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 주목한 마르텐스(Martens 2008, 263-264쪽)는 “거의 무한한 수의 천구”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의 언급이 지구 중심 체계의 복잡성이 아닌 그것의 불확정성과 지나친 유연성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3] 즉 지구 중심의 체계에서는 행성 천구의 크기들을 확정할 수 없으며, 따라서 행성들의 순서에 대한 논란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는 태양을 중심으로 한 지구의 운동을 가정함으로써 행성 천구의 크기를 곧바로 확정할 수 있었다. 만약 지구 천구의 크기[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를 1로 가정할 경우, 나머지 행성 천구의 크기는 표 1의 우측 열처럼 모두 확정된다.[4] 즉 코페르니쿠스가 “거의 무한한 수의 천구”를 통해 지구 중심 체계와 대비하고자 했던 태양 중심 체계의 장점은 행성 천구들의 순서와 크기를 확정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코페르니쿠스는 이를 통해 수성과 금성과 태양의 순서를 정하는 오래된 난제를 해결한 것으로 생각했으며, 그는 이를 태양중심설의 장점으로 명시적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코페르니쿠스가 사용한 용어 “대칭성(symmetry)”의 옛 의미를 통해 더욱 강화된다. 혼과 골드슈타인(Hon and Goldstein 2004)은 코페르니쿠스가 사용한 “대칭성”이 “적절한 비율”이라는 의미였음을 밝혀냈다. 그들에 따르면, 비트루비우스 등의 고대 그리스의 학자들은 “대칭성”을 그림이나 조각, 건축물과 같은 대상에 대해 “그것의 여러 부분들이 서로 적합한 비율로 구성되어 있음”이란 의미로 사용했는데, 코페르니쿠스는 그 의미의 “대칭성”을 자신의 태양 중심의 우주 체계에 적용함으로써 각 행성 천구들의 크기가 적합한 비율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특히 코페르니쿠스는 그 비율이 지구를 포함한 모든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가정과 몇 가지 관찰을 통해 각각 하나의 값으로 확정된다는 점(표 1)에 주목함으로써 지구 중심 체계에서는 “우주의 형태나 그 부분들의 불변의 대칭성”을 도출할 수 없다고 비판함과 동시에, 태양 중심 체계에서는 “우주의 놀라운 대칭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코페르니쿠스의 관점은 당대의 미술 이론과도 연관이 있다. 웨스트만(Westman 1975)은 ‘조화’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의 관점이 당시 르네상스 시대에 예술과 건축 등 전 분야에 걸쳐 널리 퍼져 있던 균형과 조화에 대한 관점과 같음을 지적했고, 토퍼(Topper 2007, 34쪽)는 당대 이탈리아의 예술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나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가 ‘아름다움’에 대해 언급한 구절들을 인용함으로써, 코페르니쿠스가 그와 유사한 미적 관점을 과학 이론에 적용했음을 지적했다. 예컨대 알베르티는 1452년 출판한 그의 『건축론(Ten Books on Architecture)』에서 “나는 아름다움을 모든 부분들의 조화로서, … 어떠한 추가나 삭제나 변경도 전보다 나빠지게 만들 뿐인 그러한 비율과 연결로 함께 결합되어 있는 상태로서 정의할 것이다”(Alberti 1955, 113쪽)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을 인물화에 적용할 때, 인물화가 아름답기 위해서는 몸을 구성하는 각 부분들이 적절한 비율로 함께 잘 결합되어 있어야 했다.

만약 코페르니쿠스가 이러한 아름다움에 대한 당대의 전체론적 관점을 공유하고 있었다면,[5] 각 행성들의 운동이 개별적으로만 모형화될 수 있을 뿐 함께 적절한 비율로 결합될 수 없었던 지구 중심 체계는 그에게 “마치 한 화가가 각각 다른 모델로부터 각각 아주 잘 그려진 손, 발, 머리 등을 모아 자신의 그림을 완성하나 그것이 한 사람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과 같으며, 여기서 그 조각들은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그 결과물은 한 명의 사람이라기보다는 괴물”처럼 보였을 것이다.[6]

표 1. 태양 중심 체계에서 발견되는 "불변의 대칭성"과 "행성 천구의 우동과 크기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
회전 주기 천구 반지름
수성 88일 0.4
금성 225일 0.7
지구 1년 1
화성 687일 1.5
목성 12년 5.2
토성 30년 9.5

2.2. 천구의 운동과 크기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

코페르니쿠스의 두 번째 논변은 ‘대칭성’에 의거한 첫 번째 논변의 연장선상에서 해석될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 중심 체계에서는 “우주의 놀라운 대칭성”뿐 아니라 “천구의 운동과 크기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조화로운 관계는 “천구의 운동과 크기 사이”의 관계로 매우 명시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웨스트만(Westman 1975)이나 골드슈타인(Goldstein 2002) 등의 역사학자들은 이를 쉽게 해석할 수 있었다. 즉 여기서의 조화로운 관계는 천구의 크기가 증가할수록 그 회전 주기도 함께 증가하는 ‘단조 증가(monotonic increase)’의 관계 또는 천구의 크기가 증가할수록 그 회전 속도가 감소하는 ‘단조 감소(monotonic decrease)’의 관계를 의미한다(이를 앞으로는 ‘조화의 원리’라고 부를 것이다.)

지구의 운동을 가정함으로써 확정된 각 행성 천구의 반지름[궤도 반경]은 이제 각 행성 천구의 회전 주기[공전 주기]와 비교될 수 있는데, 이 역시 표 1에 수록되어 있다. 표 1에 따르면, 태양 중심 체계에서는 행성 천구마다 하나의 회전 주기와 하나의 반지름이 결정되며, 그 회전 주기가 증가할수록 천구의 반지름도 증가한다. 사실 지구 중심 체계에서도 행성들의 순서는 행성의 회전 주기가 증가할수록 더 큰 천구를 가질 것이라는 오래된 직관에 의해 의존하여 결정됐다. 그러나 행성들의 순서가 그 주기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직관은 일부 행성들에 적용될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지구상에서 이루어지는 관찰에서 수성, 금성, 태양은 동일한 주기를 가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즉 어떠한 지구 중심 체계에서도 수성, 금성, 태양의 천구는 같은 회전 주기에도 불구하고 다른 크기를 가질 수밖에 없다.[7] 반면에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 체계에서는 표 1에서와 같이 모든 행성에 대해 천구의 회전 주기가 증가할수록 그 천구의 크기도 함께 증가한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코페르니쿠스는 태양 중심 체계에서는 “다른 방식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천구의 운동과 크기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Copernicus 1999, 32쪽)고 말한 것이다. 후에 케플러는 둘 사이의 정량적인 관계식, 즉 공전 주기의 제곱이 궤도 반경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케플러 제3법칙을 발견한 후 그에 “조화의 법칙”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이는 코페르니쿠스의 의도에 정확히 부합하는 이름이었을 것이다.

2.4 상호연관성

코페르니쿠스는 “천구의 운동과 크기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언급한 직후 다음과 같은 논변을 이어나갔다.

왜냐하면 이 덕분에 우리는 왜 목성의 순행과 역행은 토성보다는 크고 화성보다는 작게 보이는지, 어째서 금성의 순행과 역행이 수성보다 크게 보이는지, 어째서 이런 방향 전환이 목성보다 토성에서 더 자주 일어나고 수성에 비해 화성과 금성에서는 덜 자주 일어나는지, 또한 어째서 토성, 목성, 화성이 태양에 가려지거나 낮에 뜰 때보다 태양 반대편에 있을 때 지구에 더 가까운지, 또 특히나 화성이 밤새 빛날 때[즉 태양 반대편에 있을 때]는 그 크기가 목성과 비슷해서 목성과 화성을 단지 화성의 붉은색으로만 구분할 수 있지만, 다른 때에는 어째서 이등성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아 주의 깊게 그 운동 궤적을 쫓아야만 겨우 알아볼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현상은 동일한 원인에 의해 일어나는 것들로, 그 원인은 바로 지구의 운동이다.(Copernicus 1999, 32-33쪽)

이 세 번째 논변은 공통 원인 논변 또는 상호연관성 논변으로, 태양과 지구의 자리를 맞바꾸어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지구의 운동을 가정하면 지구 중심 체계에서는 무관해 보였던 수많은 현상들이 지구의 운동이라는 공통된 원인에 기인한 상호연관된 현상들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첫째로 태양 중심 체계에서는 행성의 겉보기 운동과 태양의 겉보기 운동 사이에 알려져 있던 특별한 관계를 지구의 운동이라는 공통된 원인에 기인한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위의 인용문에서 코페르니쿠스는 “어째서 토성, 목성, 화성이 태양에 가려지거나 낮에 뜰 때보다 태양 반대편에 있을 때 지구에 더 가까운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는 ‘외행성’으로 불린 화성, 목성, 토성이 오직 태양 반대쪽인 ‘충(opposition)’의 위치에 있을 때에만 역행을 하며 또한 지구에 가장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사실은 외행성뿐 아니라 내행성들도 태양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내행성’으로 불린 수성과 금성은 절대로 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이 행성들이 태양으로부터 벌어질 수 있는 최대의 각도를 ‘최대 이각’이라고 불렀는데, 내행성들은 태양 앞뒤의 최대 이각 사이를 주기적으로 왕복하는 셔틀처럼 운동했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 행성과 태양 사이의 관계
그림 1.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 행성과 태양 사이의 관계. (a) 내행성과 태양 사이의 관계. 내행성의 주원은 태양과 동일한 주기로 운동한다. 그래서 내행성 P의 주전원의 중심 C는 항상 지구와 태양을 잇는 선분 ES 위에 위치한다. 이러한 설정은 태양 주위를 셔틀처럼 왕복하며 전체적으로는 태양과 동일한 주기로 하늘을 도는 내행성의 겉보기 운동을 설명해준다. (b) 외행성과 태양 사이의 관계. 외행성의 주전원은 태양과 동일한 주기로 운동한다. 그래서 주전원의 중심과 외행성을 잇는 선분 CP는 언제나 지구와 지구를 잇는 선분 ES와 평행을 유지하며 돈다. 이러한 설정은 외행성이 역행을 할 때마다 행성이 태양 정반대편인 ‘충’의 위치에 있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림은 Martens 2000에서 가져옴.)

지구 중심의 주원(deferent)-주전원(epicycle) 체계에서 이 현상들은 태양과 동기화된 주원 또는 주전원을 통해 설명됐다(그림 1). 우선 내행성인 수성과 금성의 주원은 태양과 동기화된 운동을 한다(그림 1a). 즉 태양과 동기화된 주원은 주전원의 중심 C를 항상 지구와 태양을 잇는 선분 ES 위에 위치하도록 유지시켜주며, 주전원의 회전은 행성을 태양 앞뒤로 왕복하도록 만든다. 수성과 금성의 최대 이각 차이는 주원에 대한 주전원의 크기 비율 차이로 설명되는데, 수성은 금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주전원/주원 비율을 가지기 때문에 작은 최대 이각을 가진다. 한편 외행성인 화성, 목성, 토성은 그 주전원이 태양과 동기화된 운동을 한다(그림 1b). 즉 주전원의 중심으로부터 행성을 잇는 선분 CP는 항상 지구와 태양을 잇는 선분 ES와 평행을 유지하며 회전함에 따라, 행성이 주원의 가장 안쪽을 도는 순간 그 행성은 역행을 하는 동시에 태양 정반대편인 ‘충’의 위치에 있게 된다. 이로써 외행성이 역행을 할 때마다 태양 정반대편에 위치하는 이유가 설명된다.[8]

반면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 체계는 지구를 포함한 각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점을 이론의 핵심 가설로 삼기 때문에, 태양을 공전 중인 지구에서 관측된 각 행성들의 겉보기 운동이 지구에서 관측된 태양의 겉보기 운동(실제로는 지구의 공전)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이론의 필연적인 귀결이 된다. 만약 어떤 행성의 천구가 지구의 천구보다 작다면, 지구에서 보기에 그 행성은 마치 태양을 따라다니며 그 앞뒤를 특정한 주기로 왕복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며, 따라서 그 행성의 겉보기 주기는 태양의 겉보기 주기와 일치해야 할 것이다. 한편 어떤 행성의 천구가 지구의 천구보다 크다면 지구의 운동은 그 행성보다 빠를 것이고, 지구가 그 행성을 따라잡을 때마다 역행 운동이 나타나게 된다. 태양을 도는 지구가 외행성을 따라잡는 순간은 태양-지구-외행성이 일렬로 배치되는 순간이므로, 외행성의 역행이 태양 정반대편에서만 일어난다는 관찰은 태양 중심 체계로부터 곧바로 도출된다. 즉 태양 중심 체계에서 태양의 겉보기 운동과 동기화된 행성의 겉보기 운동들은 관찰자가 있는 지구의 공통된 운동을 반영한 결과로서 간단히 설명된다.

태양 중심 체계의 높은 상호연관성은 행성들의 역행 주기와 밝기 변화 등에서도 드러난다. 앞서 인용한 구절에서 코페르니쿠스는 역행 주기와 밝기 변화가 모두 화성>목성>토성, 금성>수성의 순서로 나타난다는 현상들을 언급하면서, 태양 중심 체계에서는 그 현상들의 원인이 모두 지구의 운동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9] 어째서 그러한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 체계에서 행성들은 태양으로부터 멀리 있는 행성일수록 공전 주기도 크다. 이러한 태양 중심 체계에서, 공전 중인 지구상의 관찰자에게 행성의 역행 주기와 밝기 변화는 다음과 같이 결정된다. 첫째, 행성의 역행 주기는 지구의 공전 주기와 행성의 공전 주기의 차이가 작을수록 커진다. 그런데 행성 천구의 크기가 증가할수록 회전 주기도 함께 증가한다는 ‘조화의 원리’에 따르면, 지구에 가까운 행성일수록 주기가 지구의 주기와 비슷해지므로, 행성의 역행 주기는 지구에 가까운 행성일수록 커지고 지구에서 멀어질수록 짧아진다. 둘째, 행성의 밝기에서 중요한 요인은 지구와의 거리로, 가 클수록 행성의 밝기 변화도 극심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비율은 지구에 가까운 행성일수록 크므로, 행성의 밝기 변화 역시 지구에 가까운 행성일수록 커진다.

이로써 행성들에 대한 다양한 관측 현상들은 태양 중심의 체계에서 3번째 행성으로 공전 중인 지구에서 관찰되었다는 공통된 원인에 기인한 것으로,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갖게 되어 그중 한 가지만 변경될 수 없다. 예컨대 어떤 행성이 태양 정반대편에 위치할 수 있다면, 그 행성은 바로 그 위치에서 역행을 해야 한다. 태양 정반대편에서 순행 중인 행성은 있을 수 없다. 또한 어떤 행성의 역행 주기가 목성보다 크다면 밝기 변화도 목성보다 커야 한다. 밝기 변화는 그대로 둔 채 역행 주기만 바꿀 수 없다. 즉 태양 중심 체계에서 역행 주기와 밝기 변화 사이에서 관찰된 상관 관계는 우연적인 관계가 아니다. 그것들은 공통된 원인에 기인한 필연적인 관계이다.

행성들에 대한 관측 현상들 사이의 이러한 밀접한 상호연관성은 앞서 알베르티가 얘기했던 아름다움의 정의와도 일맥상통한다. 그에게 아름다움이란 “어떠한 추가나 삭제나 변경도 보다 나쁘게 만들 뿐인 그러한 비율과 연결로 함께 결합되어 있는 상태”이다. 만약 코페르니쿠스가 이러한 관점을 공유했다면, 코페르니쿠스는 관측에 따라 자유롭게 수정될 수 있는 지구 중심 체계보다, “모든 행성들과 천구들, 또는 하늘 그 자체의 순서와 크기가 서로 너무도 밀접하게 묶여 있어서, 그것의 어떤 부분도 다른 모든 부분과 우주 전체를 교란하지 않고선 변경될 수 없[는]”(Copernicus 1999, 8쪽) 태양 중심의 체계가 미적으로 더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3. 조화와 증거

위와 같은 해석은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중심설을 어떤 방식으로 정당화하려고 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인식적 정당화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철학자들에게 ‘대칭성’이나 ‘조화’와 같은 개념에 의존한 코페르니쿠스의 논변은 심각한 골칫거리였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중심설의 미적 장점만을 언급했을 뿐 인식적 장점을 언급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첫 번째 논변은 인식적 정당화로 간주되기 어려운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 코페르니쿠스 논변에 따르면, 지구 대신 태양을 중심에 두면 행성 천구의 크기가 확정되어 각 행성 천구의 크기가 적절한 비율을 갖춘 하나의 체계를 이룰 수 있다. 즉 태양 중심 체계에서는 행성 천구들의 크기 비율이 불변의 비율로 확정되는 반면, 지구 중심 체계에서는 행성 천구들의 크기 비율이 확정되지 않는다. 이것이 장점이 될 수 있는가? 만약 우리가 우주로 나가고자 할 때, 행성간 거리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이론은 우리의 우주 여행에 실용적인 지침을 제공할 것이며, 행성과의 거리를 잴 수 있는 다른 방법이 강구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론에 대한 시험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험을 통과하기 전까지, 그 가능성 자체는 이론의 참일 가능성을 높여주지 못한다. 즉 이론의 높은 구체성은 그 이론이 참일 경우 그것의 활용 가능성을 높일지언정, 그 이론을 믿을 이유는 제공하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오히려 낮추는 것처럼 보인다.[10]

코페르니쿠스의 두 번째 논변에 따르면, 행성 천구의 회전 주기가 증가할수록 행성 천구의 크기도 함께 증가하는 조화로운 우주가 완성된다. 그러나 왜 우주는 그러한 ‘조화의 원리’에 부합하는 형태로 존재해야 하는가? 천구의 크기는 다르지만 회전 주기가 같은 행성 천구가 있으면 왜 안 되는가? 혹시 코페르니쿠스는 너무 “단조”로운 미적 취향을 가진 데다, 세계가 자신의 미적 취향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에 불과한 것 아닐까? 세계가 ‘조화의 원리’를 따라야 할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 한 그의 논변은 미완성으로 보인다. 특히 특정한 형이상학을 전제하지 않고자 하는 현대의 인식론자들에게 이는 심각한 결함이었다.

따라서 특정한 형이상학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코페르니쿠스의 논변을 긍정적으로 생각한 현대의 인식론자들은 주로 코페르니쿠스의 세 번째 논변에 주목했다. 마르텐스(Martens 2009)는 통합성과 조화에 근거한 코페르니쿠스의 세 번째 논변이 증거적 논변으로 의도되었다고 주장했으며, 글리모어(Glymour 1980, 6장), 포스터(Forster 2004), 소버(Sober 2015, 1장), 마이어볼트(Myrvold 2003) 등은 코페르니쿠스의 세 번째 논변에 대한 논리적, 확률적 분석을 통해 태양중심설의 이론적 통합성과 조화가 미적인 장점일 뿐 아니라 진정한 인식적 장점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이들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마르텐스(Martens 2008)와 마이어볼트(Myrvold 2003)의 논의에 기초하여 정리한 후 그 한계를 밝힐 것이다.

3.1. 상호연관성의 차별화 부재[11]

마르텐스(Martens 2008)는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높은 상호연관성 덕분에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 비해 시험가능성이 높았다고 주장한다. 코페르니쿠스 체계에서는 과거 무관해 보였던 현상들이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그중 일부에 대한 관측 결과는 다른 관측 결과를 도출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예컨대 코페르니쿠스 체계에서는 지구가 외행성을 따라잡을 때마다 외행성의 역행 운동이 나타난다는 점을 이용하여, 태양의 황도 주기(siderial period, 태양이 황도상의 같은 별자리로 돌아오는 주기; 실제로는 지구의 공전 주기)와 외행성의 평균 황도 주기(행성이 황도상의 같은 별자리로 돌아오는 평균 주기; 실제로는 행성의 공전 주기)에 대한 관측 결과로부터 외행성의 역행 주기를 아래와 같이 도출할 수 있다.

(RH)

이러한 이론적 예측치는 실제 관측치와의 비교를 통해 시험될 수 있다. 반면 지구 중심의 주원-주전원 체계에서는 그러한 도출이 일어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각 행성 천구들은 서로 무관하기 때문이다. 설사 완성된 체계에서 화성의 주전원의 주기가 태양의 황도 주기와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둘의 일치는 지구 중심 체계에 대한 시험을 제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지구 중심 체계는 둘의 일치를 이론적 귀결로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태양 중심 체계에서는 행성의 밝기 변화가 목성보다 크다는 정보를 통해 그 행성의 역행 주기가 목성보다 클 것이라는 것을 도출할 수 있으며, 이는 관측 결과와 비교하여 시험될 수 있다. 반면 지구 중심의 주원-주전원 체계에서는 그러한 것을 도출할 수 없다. 따라서 그러한 예측의 성공은 태양 중심 체계에 증거를 제공하지만 지구 중심 체계에는 증거를 제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12]

이러한 이해 방식에서는 행성에 대한 관측 결과들이 태양 중심 체계와 지구 중심 체계에 서로 다른 뒷받침을 제공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다소 성급하다. 만약 애초에 행성의 운동이 태양과 동기화되도록 설정된 지구 중심 체계와 태양 중심 체계를 비교한다면, 앞서 보였던 차별화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태양 중심 체계의 기본틀을 이라고 두고, 각 행성의 운동이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주원-주전원 체계로 묘사되는 지구 중심 체계의 기본틀을 이라고 두고, 각 행성마다 주원 또는 주전원이 태양과 동기화된 지구 중심 체계를 이라고 하자.

의 경우, 태양은 원점에 위치하고 모든 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등속 원운동한다. 따라서 특정 시각 에 행성 의 위치는 극좌표상에서 로 표현될 수 있다. 이때 , 이라는 조건 외에는 아무런 제약 조건을 가지지 않으며, 그들의 구체적인 값은 관측을 통해 확정된다.

의 경우, 지구는 원점에 위치하며, 각 행성의 위치는 극좌표상에서 아래와 같이 기술될 수 있다.

 : 주원의 반지름,  : 주원의 각속도,  : 주원 회전각의 초기값

 : 주전원의 반지름,  : 주전원의 각속도,  : 주전원 회전각의 초기값

이때 이론적 제약 조건은 두 가지뿐이다. 첫째, 주원이 주전원보다 커야 하고(), 둘째, 주전원의 회전이 주원의 회전보다 빨라야 한다(). 이 제약 조건 하에서, 그들의 구체적인 값은 관측을 통해 얻어진다.

이제 각 행성마다 주원 또는 주전원이 태양과 동기화되어 회전한다는 보조 가설을 덧붙인 지구 중심 체계를 이라고 두자. 만약 태양의 운동이 극좌표상에서 로 기술된다면, 은 과 아래의 보조가설 의 결합인 가 된다.

주원의 회전이 태양의 회전과 동기화되어 있거나

주전원의 회전이 태양의 회전과 동기화되어 있다.

마르텐스(Martens 2009), 마이어볼트(Myrvold 2003), 글리모어(Glymour 1980, 5장), 소버(Sober 2015, 1장)처럼 더 높은 상호연관성 또는 더 높은 시험가능성에 의한 더 많은 뒷받침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태양 중심 체계 을 지구 중심 체계 과 비교한다. 예컨대, 두 이론 내에서 특정 행성의 황도 주기()와 역행 주기(), 그리고 태양의 황도 주기()라는 세 가지 관측 결과 사이의 상호연관성은 서로 차별화된다. 예컨대  하에서는 세 관측 자료는 특정한 관계식을 만족해야 하지만,  하에서는 그러한 관계를 만족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세 관측 자료의 집합 은 그것이 에 의해 요구되는 관계를 만족하는지에 따라 에 대한 시험을 제공하지만 에 대한 시험을 제공하지 않으며, 가 그러한 관계를 만족할 경우 세 관측의 집합은 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보다 시험을 통과한 에 훨씬 더 많은 증거적 뒷받침을 제공한다.

이러한 논변은 확률적으로도 재구성될 수 있다. 일단 위에서 서술된 세 관측 자료 사이의 상호연관성은 아래와 같이 표현될 수 있다.[13]

만약 , , 을 가정한다면, 아래와 같이 두 이론의 가능도의 차이가 도출된다.

이러한 가능도의 차이에 의해 에 의한 두 이론의 확률 증가율은 아래와 같은 부등식을 만족해야 한다.[14]

즉 에 의한 의 확률 증가율은 의 확률 증가율보다 훨씬 크다. 따라서 동일한 증거로부터 태양 중심 체계 은 보다 훨씬 많은 증거적 뒷받침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이어볼트와 소버 등이 제시한 이러한 확률적 분석이 타당하더라도, 그 분석의 한계는 금방 노출된다.

그 한계를 이해하기 위해 이번에는 태양 중심 체계 의 비교 대상으로  대신 을 채택해 보자. 과 은 모두 태양과 동기화된 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성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서로 다른 가정을 도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행성마다 태양과 동기화된 운동을 하는 원이 하나씩 있다고 가정한 반면, 코페르니쿠스는 모든 행성의 겉보기 운동이 태양을 도는 지구의 운동에 의해 동일한 방식의 영향을 받는다고 가정한 것이다. 따라서 프톨레마이오스 체계 에서는 좀더 빠른 주전원의 회전이 주원을 한 바퀴 따라잡을 때마다 행성의 역행이 일어난다는 점과 외행성의 경우 주전원의 회전이 태양의 회전과 동기화되어 있다는 점에 의해 아래의 관계식이 성립한다.

(RG)

이 관계식 RG는 에서 성립하던 관계식 RH와 동일하다. 결국 관측 자료 는 두 체계 과  하에서 정확히 동등한 정도의 상호연관성을 가지며, 동등한 시험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결국 에 의한 두 이론의 확률 증가율도 동일해진다.

이러한 등식은 관측 자료에 무엇을 대입하든 달라지지 않는다. 과 마찬가지로 은 관계식 RG를 이용해 외행성의 황도 주기와 태양의 황도 주기로부터 그 행성의 역행 주기를 도출할 수 있다. 또한 은 화성과 목성의 역행 주기의 상대적 차이로부터 화성과 목성의 밝기 변화의 상대적 차이를 과 동일하게 도출할 수 있다.[15] 심지어 우리가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여 그 행성의 황도 주기가 토성보다 크다는 것을 관측한 가상의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은 그 행성의 역행 주기가 토성의 역행 주기보다 짧지만 1년보다는 길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으며, 그 행성의 밝기 변화가 토성보다 적을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이는 태양 중심 체계 이 할 수 있는 예측과 동일하다. 즉 행성의 위치와 밝기 변화와 관련하여, 은 과 정확히 동일한 상호연관성을 갖추고 있으며, 따라서 행성에 관한 모든 동일한 관측 자료로부터 과 동일한 확률 증가를 얻는다.[16]

마이어볼트(Myrvold 2003, 416쪽)는 적절한 사전 확률을 설정하는 방법을 제안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는 의 설정이 올바른 설정이라고 가정한다. “(역행 운동을 비롯한) 행성의 겉보기 경로에 대한 정성적인 정보는 포함하지만, 행성 주기의 정확한 값이나 역행에 관한 상세한 정보는 포함하지 않은 배경 지식”(413쪽) 하에서 태양 중심 체계 과 지구 중심 체계의 기본틀 을 일단 동등하게 놓고서 시작해야 공정한 비교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이런 식으로 설정하면 이 을 포함하기 때문에 인 동시에 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태양 중심 체계 과 프톨레마이오스 체계 의 확률이 증거에 의해 동일한 비율로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의한 의 사후 확률은 의 사후 확률보다 클 수밖에 없다.

if , then  

그러나 마이어볼트의 주장은 쉽게 정당화될 수 없다. 태양 중심 체계 과 프톨레마이오스 체계 은 모두 태양과 동기화된 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행성 운동의 정성적인 정보를 포함하는 배경 지식 하에서 각자의 가정을 도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프톨레마이오스는 행성마다 태양과 동기화된 운동을 하는 원이 하나씩 있다고 가정한 반면, 코페르니쿠스는 모든 행성의 겉보기 운동은 태양을 도는 지구의 운동에 의해 동일한 방식의 영향을 받는다고 가정한 것뿐이다. 따라서 기하학적인 관점에서만 보자면, 과 은 동일한 배경 지식 하에서 동일한 설명력을 갖고 있는 이론으로, 비슷한 사전 확률을 가지는 것으로 가정해볼 수도 있다. 심지어 과 이 각 행성의 운동을 묘사하는 데 필요한 매개변수의 수를 비교하는 방법을 통해서는 의 사전 확률이 의 사전 확률보다 낮아야 한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은 행성의 운동을 극좌표 로 묘사하므로, 행성마다 관측 자료를 통해 확정되어야 할 자유로운 매개변수가 3개[, , ]이다. 반면 은 행성의 운동을 극좌표 로 묘사한다. 단, 태양과의 동기화 가설 S, 즉  또는 이라는 제약으로 인해 행성마다 2개씩의 매개변수가 태양의 매개변수에 매여 있기 때문에, 실제로 자유로운 매개변수는 행성마다 4개[, , ,  또는 , , , ]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매개변수의 수로 분석된 이론의 단순성과 이론의 논리적 확률을 분석한 포퍼(1994, 160쪽)의 분석을 따를 경우, 자유로운 매개변수의 수가 하나 더 많은 의 확률이 의 확률보다 높다. 다른 조건이 같을 경우, 매개변수가 많은 이론은 매개변수가 적은 이론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유연하게 포섭할 수 있기에 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매개변수가 적을수록 그 이론은 더 구체적인 주장을 하게 되고, 구체적인 주장을 할수록 틀릴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석에 따라 태양 중심 체계 과 프톨레마이오스 체계 의 사전 확률을 로 가정하면, 행성에 대한 임의의 관측 자료 에 의한 두 체계의 확률 증가율은 똑같더라도, 의 사후 확률은 보다 높을 수 없고, 을 논리적으로 포함하는 지구 중심 체계 의 사후 확률보다 높을 수 없다.

if , then   

물론 이러한 분석은 가설들의 사전 확률을 공정하게 부여하기 위한 여러 직관적인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분석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의 방식으로 사전 확률을 부여해야 한다는 마이어볼트의 제안은 힘을 잃는다. 결국 높은 상호연관성을 가진 태양 중심 체계가 동일한 증거에 의해 지구 중심 체계보다 더 많은 뒷받침을 받기 때문에 태양 중심 체계를 수용해야 한다는 논변은 이러한 사전 확률의 문제로 인해 정당화되지 못한다.

3.2. 물리적 그럴듯함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과 의 사전 확률을 차별화하려면 수학적 근거를 넘어서는 물리적 그럴듯함이 필요하다. 그리고 물리적 그럴듯함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은 코페르니쿠스의 동기가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과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과의 불일치에 있었다는 여러 연구 결과와도 잘 부합한다.[17]

태양 중심 체계의 물리적 그럴듯함이 드러날 수 있는 첫 번째 측면은 행성 천구들의 동기화 메커니즘 문제이다. 지구 중심 체계 은 각 행성마다 태양과 신비스럽게 동기화된 운동을 하는 원이 하나씩 필요한 반면, 은 그러한 신비스럽게 동기화된 운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은 물리적으로 부자연스러운 체계를 만들어내는 반면 은 물리적으로 자연스러운 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코페르니쿠스는 분명 그러한 직관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어째서 토성, 목성, 화성이 태양에 가려지거나 낮에 뜰 때보다 태양 반대편에 있을 때 지구에 더 가까운지 ...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현상은 동일한 원인에 의해 일어나는 것들로, 그 원인은 바로 지구의 운동이다.”(Copernicus 1999, 33쪽)라는 코페르니쿠스의 언급은 그가 분명 태양과 동기화된 행성의 겉보기 운동에 대한 태양 중심 체계의 설명을 더 우월한 것으로 간주했음을 알려주며, 그 우월성은 아마도 그것의 물리적 “원인”이 더 자연스럽다는 점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를 태양 중심 체계의 장점으로 볼 경우,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 체계 역시 약간의 결함에 빠진다. 왜냐하면 코페르니쿠스 체계 역시 정확히 동기화된 원들을 다수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는 행성의 겉보기 부등속 운동을 등속 원운동의 결합으로 해명하기 위해, 행성마다 ‘투시 커플(tusi couple)’이라는 두 개의 미세 주전원을 도입했다. 투시 커플 중 첫 번째 미세 주전원은 주원과 동일한 각속도로 (주원의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고, 두 번째 미세 주전원은 그 2배의 각속도로 (첫 번째 미세 주전원의 반대 방향으로) 회전한다. 코페르니쿠스를 포함해 다수의 천문학자들은 이를 통해 부등속 운동을 제거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지만, 새롭게 추가한 미세 주전원들의 동기화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18]

물론 한 행성의 운동을 구성하는 여러 원들 사이의 동기화는 서로 다른 두 행성의 운동을 담당하는 천구들 사이의 동기화에 비해 덜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모종의 연결된 메커니즘을 상상할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서로 떨어져 존재하는 두 원 사이의 연결 메커니즘을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투시 커플의 존재는 태양 중심 체계의 물리적 장점이 코페르니쿠스의 모형에서 완전하게 구현되지 못했음을 말해주며, 만약 이 장점을 진지하게 고려한 학자라면 이를 구현하기 위해 투시 커플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힘을 쏟을 가능성이 있다.

태양 중심 체계의 물리적 그럴듯함이 드러나는 두 번째 측면은 ‘조화의 원리’에 있다. 코페르니쿠스 본인의 상호연관성 논변을 다시 살펴보자.

이로써 우리는 이러한 천체들의 배열 아래 놓여 있는 우주의 놀라운 대칭성과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천구의 운동과 크기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덕분에 우리는 왜 목성의 순행과 역행은 토성보다는 크고 화성보다는 작게 보이는지, 어째서 금성의 순행과 역행이 수성보다 크게 보이는지, ...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현상은 동일한 원인에 의해 일어나는 것들로, 그 원인은 바로 지구의 운동이다.(Copernicus 1999, 32-33쪽)

상호연관성 논변의 핵심으로 여러 번 인용되었던 이 문단의 첫 문장은 ‘대칭성’과 ‘천구의 운동과 크기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결국 지구 중심 체계 과 태양 중심 체계 의 차별성은 각 가설에 기초한 우주 체계가 조화의 원리에 부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에 행성 관측 결과를 결합하면 위의 인용문에 있는 모든 현상들을 수학적으로는 도출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설명해내는 우주 체계는 조화의 원리에 부합할 수 없다. 반면 에 행성 관측 자료를 결합하면 조화의 원리에 부합하는 우주 체계를 만들어내고 다시 그것을 통해 위의 인용문에 등장하는 현상들을 도출한다. 즉, 코페르니쿠스에게 중요한 것은 현상들의 수학적 상호연관성 그 자체가 아니라 적절한 원리에 기초한 상호연관성이었던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상호연관성 논변을 이렇게 해석하고 나면, 그의 논변은 시험, 관찰, 논리에만 근거한 것이 아니라 ‘조화의 원리’라는 형이상학적 혹은 물리적 원리에 근거한 논변이 된다. 그렇다면 우선 조화의 원리를 정당화해야 하는데, 코페르니쿠스는 철학자들이 이를 예전부터 받아들여왔다는 점과 광학의 원리에 호소하여 정당화했었다.

고대의 철학자들은 행성들의 순서를 그 회전 주기에 따라 정하고 싶어 했다. 그 근거로 그들은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는 멀리 있을수록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유클리드의 『광학』에서 증명된) 사실을 제시한다. 그들은 달이 지구에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가장 작은 원을 돌기 때문에 가장 짧은 시간에 궤도를 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긴 시간 동안 가장 큰 원을 도는 토성을 가장 높은 곳에 둔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목성을, 또 그 아래에는 화성을 둔다.(Copernicus 1999, 28쪽)

코페르니쿠스는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구 중심의 체계에서 수성-금성-태양은 그 회전 주기가 동일하기 때문에 조화의 원리에 따라 순서를 정할 수 없다. 그 점은 지구 중심 체계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일까, 아니면 조화의 원리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일까? 코페르니쿠스는 전자라고 생각했으나, 논리적으로는 후자도 가능하다. 게다가 코페르니쿠스가 최종적으로 제안하는 ‘천구의 운동과 크기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는 물체가 관찰자로부터 “멀리 있을수록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광학적, 인식적 원리가 아니며, 천구의 크기가 커질수록 정말로 그것의 절대적인 속도가 느려진다는 존재론적 원리이다. 따라서 이 원리를 통해 지구 중심 체계를 비판하려면 그 원리를 수용해야 하는 추가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혹시 조화의 원리를 뒷받침해줄 더 근본적인 원리는 없을까? 물론 존재한다. 만유인력에 기초한 뉴턴의 물리학이 그것이다. 그의 물리학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행성의 운동이 조화의 원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거의 연역적으로 도출할 수 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가 활동하던 16세기에 뉴턴의 물리학은 등장조차 하지 않았으며, 등장했다 하더라도 그의 물리학은 코페르니쿠스의 조화의 원리를 뒷받침하기보다 오히려 그로부터 뒷받침되어야 하는 처지였을 것이다.

16세기 당시 자연의 작동에 대한 지배적인 이론은 뉴턴의 물리학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이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이 담고 있는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고려하느냐에 따라 천문학 이론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만약 천구의 영원한 원운동이라는 내용만을 고려할 경우,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와 코페르니쿠스 체계 모두 허용한다. 그런데 ‘등속’ 원운동의 원리를 강조할 경우,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은 부등속 운동을 허용하는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보다 등속 원운동만을 사용하는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좀 더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동심 천구 이론’이라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고려하면,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은 주전원을 사용하고 있는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와 코페르니쿠스 체계 모두 반대할 것이다. 그리고 지상계와 천상계의 작동 원리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내용을 고려하면,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은 지상계와 천상계의 구분을 깨뜨리는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전혀 수용할 수 없으며, 그나마 지구 중심의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 호의적일 것이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 자체는 우주가 조화의 원리를 만족하든 만족하지 않든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19] 

결국, 당시의 관점에서 우리는 코페르니쿠스가 기대고 있는 조화의 원리를 정당화해줄 경험적 증거도 이론적 토대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코페르니쿠스가 강조한 ‘조화’를 그냥 무시해 버려야 할까? 도대체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조화’는 과학적 탐구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던 것일까?

4. 도구 vs. 이해

3절에서 나는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조화’가 그 체계를 믿을 이유를 제공하는지에 대해 논리적, 확률적 관점에서 논의했으며, 이에 대해 부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이는 16세기 당시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진정으로 믿은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했다는 사실과도 잘 부합한다. 즉 태양 중심 체계가 참이라는 코페르니쿠스의 논변이 다른 학자들을 설득하는 데 별로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코페르니쿠스를 포함해 태양 중심 체계를 신봉한 극소수의 16세기 학자들을 비합리적인 사람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 그렇다면 ‘조화’가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믿을 이유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3장의 결론을 유지하면서도, 코페르니쿠스와 그의 지지자들을 비합리적인 인물로 만들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

토머스 쿤(1997)은 다양한 가치에 의한 이론 선택 방식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누구나 단순성, 정확성, 정합성, 다산성, 넓은 적용범위 등의 공유된 가치를 추구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기왕이면 여러 현상을 통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단순한 이론을 선호하고, 기왕이면 관측 자료와 잘 일치하는 정확한 이론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모두 일치한다. 그런데 쿤은 공유된 가치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의 이론 선택이 불일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경쟁 이론 과  가운데 단순성은 이 보다 우월하고 정합성은 가 보다 우세하다면, 과학자들은 어떤 이론을 선택해야 할까? 다른 조건이 같다면, 단순성을 매우 중시하는 과학자는 을, 정합성을 매우 중시하는 과학자는 를 선택할 것이다. 즉 과학자들이 추구하는 가치의 목록이 일치하더라도 과학자마다 각 가치에 부여하는 가중치가 다르기 때문에, 과학자들의 이론 선택이 불일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코페르니쿠스 혁명에 적용하면, 단순성을 중시한 극소수의 학자들만이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선택하고, 단순성을 크게 중시하지 않았던 대부분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를 선택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러한 쿤의 설명은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둘러싼 선택이 어떻게 불일치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들의 상반된 선택이 어떤 의미에서 모두 합리적일 수 있는지를 해명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쿤의 설명은 몇 가지 약점을 가진다. 첫째, 쿤은 과학자들이 왜 단순한 이론을 추구해야 하는지 해명하지 않고 있다. 그는 단순한 이론에 대한 추구를 과학의 당연한 가치처럼 취급하고 있지만, 많은 철학자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지 않는다.[20] 둘째, 코페르니쿠스 체계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보다 단순하거나 통합적이라는 직관은 잘못되었다. 3절에서 살펴보았듯이, 두 체계는 수학적인 관점에서 동일한 상호연관성 또는 동일한 통합성을 갖추고 있다. 코페르니쿠스 체계가 더 단순하거나 통합적이라는 생각은 ‘조화의 원리’에 부합하는 우주 체계가 더 자연스럽다는 물리적 직관을 끌어들여야만 한다. 셋째, 당시 천문학자들의 이론 선택은 코페르니쿠스 체계가 참이냐, 프톨레마이오스 체계가 참이냐와 같은 이분법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사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가 참”이라는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오랫동안 유럽의 학자들은 주원-주전원 및 이심과 대심을 사용하는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를 믿지 않은 채 행성의 위치를 계산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해왔으며, 참된 우주 체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동심 천구 체계를 추구하거나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을 보다 그럴듯한 물리적 모형으로 변형시키고자 했다.[21] 즉 이론의 수용/거부는 단지 믿느냐 마느냐의 문제보다 복잡했으며, 코페르니쿠스 체계에 대한 수용과 거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웨스트만(Westman 1975)에 따르면, 16세기 비텐베르크 지역의 대다수 천문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의 수학적 모형을 높이 평가하고, 가르치며, 천문표 계산에도 사용함으로써 태양 중심 체계의 확산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태양 중심의 우주 체계를 믿지는 않았다. 즉 그들은 태양 중심 체계를 믿지 않으면서도 도구로서는 수용한 셈이었다. 그들은 코페르니쿠스가 대심을 제거하고 등속 원운동을 복원한 점을 높이 평가한 반면, 태양 중심 체계의 ‘조화’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반면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조화에 설득되거나 영향을 받은 유럽의 학자는 레티쿠스, 티코, 마에스틀린 정도에 그쳤다.

이러한 이원화된 수용은 16세기 천문학의 목표에 대한 상이한 견해를 반영한다. 당시 대다수의 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이 대체로 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천문학에 대해서는 도구주의적 목표를 추구했다. 즉 그들에게 천문학은 행성의 겉보기 위치를 계산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며, 그 역할만 잘 수행한다면 참이든 거짓이든 상관이 없었다. 그들에게 코페르니쿠스 체계는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와 성능 차이가 거의 없는 도구로서, 그것을 사용하고 가르칠 이유가 있었다. 게다가 코페르니쿠스 체계는 등속 원운동만을 사용하기에, 계산상의 이점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조화’는 행성의 위치를 계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기에 무시되었다. 또한 그들은 코페르니쿠스 체계가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과 심각한 충돌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둘 사이의 충돌을 해소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즉 그들은 물리적으로 이해 가능한 천문학 이론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있었다.[22]

반면 코페르니쿠스를 비롯해 일부의 천문학자들은 물리적으로 이해 가능한 천문학을 추구했다. 이들은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대칭성’과 ‘조화’를 높이 평가하고, 그것을 통해 신의 설계 방식을 이해하게 되었다거나 참된 우주 구조를 깨달은 것처럼 얘기했다.[23] 그들은 이해 가능한 천문학을 추구했기 때문에 천문학과 물리학 사이의 충돌에 민감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양쪽을 조금만 수정하면 둘 사이의 충돌을 해소할 수 있을 거라 낙관했지만, 그가 만들어낸 태양 중심 체계는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과 근본적으로 충돌했다. 따라서 그의 지지자들은 태양 중심 체계가 참이라면 근본적으로 다른 물리학이 필요함을 인식했다. 즉 16세기 대부분의 천문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에 대한 믿음에 기초하여 물리적으로 이해 가능한 천문학 이론의 달성을 불가능한 목표로 생각한 반면, 코페르니쿠스의 지지자들은 태양 중심 체계의 조화에 기대어 새로운 물리학을 추구하게 된 셈이었다.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이원화된 수용 방식은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탄생 과정에서 이미 예고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물리적으로 이해 가능한 천문학을 추구했던 코페르니쿠스는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과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 사이의 불일치에 기인한 불만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태양 중심 체계를 고안하게 됐다. 즉 그는 천구의 등속 원운동을 복원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대심을 제거한 체계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태양 중심의 조화로운 체계를 발견했다. 이후 그는 ‘등속 원운동의 복원’과 ‘태양 중심 체계의 조화’ 모두를 자신의 이론의 장점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가 내세운 두 장점은 함께 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등속 원운동의 복원’은 천상계의 완전성과 딱딱한 천구에 기초한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을 더욱 철저하게 구현하려는 동기에 기인했지만, ‘태양 중심 체계의 조화’는 오히려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법적으로 다루는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과의 이별을 필요로 한 것이다.

천문학의 목표,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에 대한 믿음의 정도, 태양 중심 체계의 조화에 대한 태도는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편의를 위해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에 대한 믿음의 정도를 독립적인 요인으로 두고 생각해보자. 만약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을 높은 정도로 신뢰한다면, 그는 코페르니쿠스 체계가 천구의 원운동을 복원하는 모형을 썼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과 근본적인 차원에서 불일치하기 때문에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참된 체계로 믿을 수 없다. 따라서 그는 물리적으로 이해 가능한 천문학을 포기하고, 도구주의적으로만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수용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코페르니쿠스 체계에 부합하는 새로운 물리적 원리를 탐구할 동기를 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에게 코페르니쿠스 체계는 참이 아니므로, 그에 부합하는 물리적 원리가 있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 부합하는 물리적 원리도 탐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도 참이 아니기에 그에 부합하는 물리적 원리가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어떤 이유에서든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에 대한 신뢰가 줄어든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에게 코페르니쿠스 체계가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과 근본적으로 충돌한다는 점은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거짓을 증명해주지 못한다. 코페르니쿠스 체계는 참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애초에 천문학을 도구로만 생각한다면 이 점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만약 이해 가능한 천문학을 목표로 삼고 있다면 이 점은 매우 중요해진다. 코페르니쿠스 체계에서는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 천구의 크기가 커질수록 회전 속도가 줄어드는 ‘조화’로운 관계가 성립한다. 만약 코페르니쿠스 체계가 참이라면, 그러한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어주는 물리적 원인도 찾을 가능성이 있다. 즉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조화’는 이러한 단서와 희망을 통해 그에게 코페르니쿠스 체계에 기초하여 물리적 탐구를 추구할 이유를 제공한다.

그러나 자신의 취향에 따라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 기초하여 물리적 탐구를 추구할 사람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진 않다. 왜냐하면 ‘조화’가 부족한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는 코페르니쿠스 체계에 비해 그러한 희망과 단서를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의 요지는 프톨레마이오스 체계가 조화롭지 않기 때문에 참일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 아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는 조화롭지 않기 때문에, 그 체계가 참이라 하더라도 우리에게 그에 부합하는 물리적 작동 원리를 찾아낼 희망과 단서를 덜 제공한다는 것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조화’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의 ‘부조화’는 둘 중 어느 천문학 체계에 기초하여 물리적 탐구를 추구할지에 대한 희망과 단서 면에서 비대칭성을 만들어내고, 이는 차별화된 추구의 이유를 만들어낸다.[24]

요컨대 코페르니쿠스가 강조했던 ‘조화’는 태양 중심 체계를 믿을 보편적인 이유를 제공하지 못한 반면, 물리적으로 이해 가능한 천문학을 추구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에 대한 믿음이 줄어든 사람에게는 태양 중심 체계에 기초하여 물리적 탐구를 추구할 이유를 제공했다. 그렇다면 당시 그러한 탐구를 추구한 사람이 정말로 있는가?

케플러가 그에 속한다. 당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딱딱한 천구의 존재가 당시 티코 브라헤의 혜성 관측으로 인해 의심을 받는 상황이었다. 이해 가능한 천문학을 추구했던 케플러는 천구 대신 행성 운동의 대안적인 원인을 모색해야 했다. 이때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의 ‘조화의 원리’를 단서로 그 원인을 찾아냈다. 조화의 원리에 따르면 태양을 중심으로 큰 원을 도는 행성일수록 행성의 속도가 일관되게 줄어들었는데, 이를 단서로 그는 태양이 행성 운동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태양으로부터 멀어질수록 태양이 미치는 힘이 줄어들기 때문에 행성의 속도가 줄어든다고 생각하면 조화의 원리가 쉽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양이 행성 운동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자, 그는 모든 행성의 공전 궤도면이 태양의 중심을 관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것만으로도 행성의 위치 계산을 상당 부분 개선할 수 있었다. 또한 이는 하나의 행성이 태양을 도는 동안에도 태양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빨라지고 태양과의 거리가 멀어지면 느려진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유명한 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과 타원 궤도의 법칙의 발견을 이끌었다.[25]

이러한 간략한 서술을 통해 케플러가 코페르니쿠스의 올바른 계승자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며, 이해 가능성이란 목표만이 과학의 올바른 목표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천문학에 대한 도구주의적 목표와 이해 가능성이란 목표는 모두 허용되는 목표였으며, 코페르니쿠스 체계에 대한 두 가지 수용 방식 모두 허용됐다. 다만 적절한 시기에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 ― 특히 딱딱한 천구의 존재 ― 에 대한 의심이 증가했고, 그런 상황에서 코페르니쿠스 체계에 기초하여 이해 가능한 천문학을 추구한 이들의 탐구가 운 좋게 엄청난 성과를 남겼을 뿐이다. 어쩌면 두 가지 수용 방식의 공존이 천문학과 물리학의 진보를 가능케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5. 결론

나는 이 논문에서 조화에 기초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 체계 옹호 논변의 정확한 의도와 인식적 가치를 분석했다. 우선 코페르니쿠스의 논변은 첫째, 행성 천구들간 크기 비율의 확정(대칭성)에 의거한 논변, 둘째, 행성 천구의 크기와 운동 사이의 단조 관계(조화의 원리)에 의거한 논변, 셋째, 다양한 현상들의 상호연관성에 의거한 논변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나의 분석에 따르면 세 가지 논변은 별개의 논변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논변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 대신 태양을 우주의 중심에 두면, 첫째, 행성 천구들의 크기 비율이 확정되며(대칭성), 둘째, 그렇게 확정된 행성 천구의 크기와 천구의 회전 속도 사이에 단조 관계가 성립하며(조화의 원리), 셋째, 그렇게 성립하는 단조 관계에 의거하여 다양한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태양 중심 체계가 옳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렇다면 ‘조화’에 의거한 코페르니쿠스의 논변은 코페르니쿠스 체계에 대한 인식적 정당화를 제공하는가? 일부 철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조화’를 단순성이나 통합적 설명력으로 해석하여 그것이 이론의 시험가능성이나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논변을 만들어내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러나 나는 태양 중심 체계의 비교 대상으로 단순한 지구 중심 체계() 대신 행성의 운동이 태양과 동기화된 지구 중심 체계()를 선정할 경우, 그들의 시도가 모두 실패한다는 점을 보였다. 코페르니쿠스 체계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의 수학적 상호연관성은 동일하며, 둘 사이의 유의미한 차이는 결국 ‘조화의 원리’를 만족하는지의 여부에만 의존했다.

따라서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정당화는 ‘조화의 원리’의 정당화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16세기 당시에 코페르니쿠스의 조화의 원리를 정당화해줄 합의된 물리적 혹은 형이상학적 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조화는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믿을 이유를 제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코페르니쿠스 체계가 조화의 원리에 부합한다는 점은 이해 가능한 천문학 이론을 추구했던 일부 학자들에게 그러한 우주 체계의 작동 원리를 발견할 희망과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추구의 이유를 제공했다. 이러한 나의 논변은 과학의 목표가 다원적임을 전제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보다 심도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각주

  1.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의 영문 번역본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가장 권위 있는 버전은 에드워드 로젠(Edward Rosen)의 번역본이다. 그의 번역본은 1978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코페르니쿠스 전집의 일부로 처음 출판된 뒤, 1992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재출간되었으며(Rabin 2019, Bibliography), 1999년에는 CD-ROM의 형태로도 출판되었다(Evans 2000). 책을 쉽게 구하기 어려운 독자들을 위해, 이 논문에서는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의 구절을 인용할 때마다 디지털화된 1999년 판의 페이지를 적을 것이다. 이 논문의 모든 인용문은 영문 번역본으로부터 이 논문의 저자가 한국어로 번역하였으며,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1권 전체에 대한 한국어 번역은 http://zolaist.org/wiki/index.php/De_Revolutionibus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쿤(2016, 2장 6절)은 이러한 해석을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한편 코페르니쿠스가 수많은 주전원을 제거하고자 하는 동기가 없었다는 점이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발단에 함의하는 바에 대해서는 정동욱&정원호(2020)를 참고하라.
  3. 마르텐스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코페르니쿠스의 제자 레티쿠스와 코페르니쿠스의 추종자 케플러가 “[지구중심설에서는] 천구의 도입에 제한이 없다”라고 언급한 뒷부분의 구절을 인용한다. 레티쿠스는 곧이어 “[지구중심설에서] 천구와 주전원의 상호 비율을 유지한 채 토성을 태양 아래 위치시키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동일한 가설[지구중심설] 하에서는 행성 천구의 공통된 척도를 확립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케플러는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는 “원의 도입에 극단적인 자유”가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4. 태양 중심 체계에서 행성 천구의 크기가 확정되는 방법에 대해서는 쿤(2016), 5장과 정동욱&정원호(2020)을 참고하라.
  5. 토퍼(Topper 2007, 34쪽)는 코페르니쿠스의 생존 기간(1473-1543)과 그의 이탈리아 유학 기간(1496-1503)뿐 아니라 그가 아마추어 화가였다는 점에 착안하여, 코페르니쿠스가 아름다움에 대한 당대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관점을 공유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6. 이러한 해석은 이 구절에 대한 쿤의 해석과는 충돌한다. 쿤(2016, 266-271쪽)은 그 “괴물”을 난립한 프톨레마이오스식 체계‘들’의 산만함으로 해석한 반면, 나는 지금 이 구절을 지구 중심 체계의 각 행성들이 잘 결합되지 못해 단일한 우주 체계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지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Gingerich(1975, 89-90쪽)도 이와 거의 동일한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7. 따라서 프톨레마이오스는 『행성들의 가설』에서 행성 천구가 정확히 주전원의 크기만큼 두꺼워야 한다는 ‘겹겹의 천구(nested spheres)’ 가정을 추가적으로 도입함으로써만, 수성, 금성, 태양의 순서를 정당화할 수 있었다. 그 구체적인 정당화 논변은 Carman(2009)을 참고할 것.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행성들의 가설』을 구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8.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강의를 위해 작성했던 정동욱(미출판원고)을 참고하라.
  9. 코페르니쿠는 “금성의 순행과 역행이 수성보다 크게 보이는지”처럼 역행의 거리도 강조하고 있으나, 이는 약간 더 복잡하기 때문에 설명을 생략한다.
  10. 게다가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 체계도 ‘겹겹의 천구’ 가설을 도입함으로써 태양 중심 체계만큼 구체화될 수 있다는 점도 코페르니쿠스에게 불리한 요소이다. 코페르니쿠스는 구체화된 버전의 지구 중심 체계가 수록된 프톨레마이오스의 『행성들의 가설』을 입수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11. 이 소절은 정동욱(2018), 6장에서 시도한 ‘반사실적 베이즈주의 증거 이론’의 사례 연구를 다듬고 발전시킨 것으로, 거의 그대로 가져온 문장도 있음을 밝힌다.
  12. 이러한 방식의 재구성은 사용-참신한 예측의 성공 대 포섭의 구도와도 동일한데, 예측주의자인 워럴(Worrall 2010)은 바로 이러한 근거에서 코페르니쿠스 체계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 비해 더 많은 뒷받침을 받는다고 주장했으며, 구두끈 입증 이론을 이용한 태양 중심 체계와 지구 중심 체계에 대한 글리모어(Glymour 1980, 5장)의 분석 역시 사실상 이러한 취지로 볼 수 있다.
  13. 마이어볼트(Myrvold 2003)는 로그를 활용한 통합성 지수를 이용하여 이러한 상호연관성을 정량화하고, 그것이 증거가 가설을 뒷받침하는 데 일부 요소를 구성함을 보이고자 했는데, 이 글의 수식들은 그의 수식과 형태가 다소 다르지만 그 의도는 일치한다.
  14. 소버(Sober 2015, 1장) 역시 태양 중심 체계의 단순성이 담당하는 역할을 이러한 가능도의 차이 및 그로 인한 확률 증가율의 차이로 해석하고 있다.
  15. H0에서 외행성 의 밝기 변화는 행성과 지구의 공전 반지름의 합[최장 거리]과 차[최단 거리]의 비율 에 의존하고, 에서 외행성 의 밝기 변화는 주원과 주전원의 반지름의 합[최장 거리]과 차[최단 거리]의 비율 에 의존한다. 그런데 에서 관측 자료에 의해 결정되는 값인 은 에서 동일한 관측 자료에 의해 결정되는 값인 와 항상 동일하기 때문에, 이든 이든 행성의 주기에 대한 정보로부터 그 행성의 밝기 변화를 추론한 결과는 동일할 수밖에 없다.
  16. 이러한 증거적 동등성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와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기하학적 동일성을 통해서도 이해될 수 있다. 즉 두 체계는 지구상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행성 관측에 영향을 주지 않은 채 상호 변환 가능하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정동욱&정원호(2020), 42-44에 수록된 “부록 1.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와 코페르니쿠스 체계 사이의 변환”을 참고하라.
  17. 이에 대한 고전적인 연구로는 Heidelberger(1976)를 들 수 있으며, 정동욱&정원호(2020)는 이러한 논의들을 종합하여 그 철학적 함의를 고찰하고 있다.
  18. ‘투시 커플’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Swerdlow(1973)와 Clutton-Brock(2005)을 참고하라. 한국어로 된 짧은 설명은 정동욱&정원호(2020), 특히 45-46쪽의 부록 2를 참고할 수 있다.
  19. 이에 대한 한 가지 유명한 해법은 당시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 이외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다른 근본적인 원리에 호소하는 것이다. 실제로 쿤(2016, 4장 4절)은 코페르니쿠스가 당대 일부 지역에서 유행하던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으로 “단순한 산술적·기하학적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과 “태양이 우주의 모든 주요 원리와 힘의 원천”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주장했으며, 송상용(1972, 39-41쪽)은 코페르니쿠스가 등속원운동에 집착하고 단순성과 조화를 추구한 동기를 설명하기 위해 그를 신플라톤주의자 또는 피타고라스주의자로 묘사했다. 이는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가진 특징들을 완벽하게 정당화해줄 수 있는 완벽한 원리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코페르니쿠스에 대한 신플라톤주의의 영향력을 과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abin 2019, 2.2절과 각주6). 예컨대 등속 원운동과 단단한 천구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의 믿음은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으로도 쉽게 설명되며, 대칭성과 조화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의 강조는 이 논문의 2.1절에서 지적했듯이 당대 예술가들에게 공유되었던 미적 관점의 영향으로 설명 가능하다.
  20. 단순성에 대한 논의는 Baker (2016)을 참고하라.
  21.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에 대한 일반적인 수용 방식에 대해서는 정동욱&정원호(2020), 4.1절을 참고하라.
  22. 이러한 천문학에 대한 도구주의적 태도는 과학 일반에 대한 도구주의와 구분될 필요가 있다. 16세기의 천문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의 근사적 참을 의심하지 않았으며, 행성들이 천구에 박혀 원운동한다는 점도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천문학에 대한 그들의 도구주의적 태도는 천문학이 참된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과 심각하게 충돌한다는 인식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Barker & Goldstein (1998) 참고.
  23. 그들은 천문학 이론이 참이기 위해 적어도 ‘참된’ 물리학 이론이나 ‘참된’ 형이상학 이론 또는 ‘참된’ 신학 이론과 정합적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실재론자’로 분류되곤 한다. 그러나 ‘참된’ 물리학 이론, ‘참된’ 형이상학 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조건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그들의 추구 방식이 경험적 자료와의 일치를 가장 중시하는 도구주의적 추구 방식에 비해 ‘참’에 도달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인지는 분명치 않다. 따라서 그들이 ‘참’에 대한 갈망을 명시적으로 언급했다 하더라도, 중립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은 ‘도구’로서의 이론보다 ‘이해’를 위한 이론을 추구한 것으로 분류될 수 있다.
  24. 과학적 탐구는 결국 새로운 지식의 생산을 요구한다. 과학자들은 단지 주어진 이론들 중에 무엇이 가장 믿을만한지 평가하고, 그중 가장 믿을만한 것을 골라 가르치는 사람들이 아니다. 과거보다 현대에 더욱 강조되는 특성이긴 하지만, 과학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탐구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어떤 이론이 참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아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이 새로운 지식의 발견을 낳을 희망과 단서를 준다면, 과학자는 그 이론이 참이란 가정에 기초하여 탐구할 좋은 이유를 가지게 된다. 나는 이러한 과학의 특성을 쿤(1997)이 강조한 ‘다산성(fruitfulness)’로부터 이끌어냈다.
  25. 케플러의 탐구 동기와 방법론에 대해서는 Martens(2000)를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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