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appraisal of the Role of the Universities in the Scientific Revolution
- John Gascoigne, "A Reappraisal of the Role of the Universities in the Scientific Revolution"
과학혁명에 대한 일반적 평가에 따르면, 과학의 새로운 움직임은 거의 전적으로 대학 바깥에서 이루어진 반면, 당시 대학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기초한 스콜라철학을 고집하면서 새로이 등장하는 과학에 저항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개스코이뉴는 대학의 역할을 재조명하면서 당시 대학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일색만은 아니었고 새로운 움직임을 철저히 외면한 것도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대학은 새로운 변화의 압력에 적응하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새로운 흐름을 전파하고 보급하는 역할도 담당했다. 통설과는 달리, 대학은 과학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지적 환경을 제공했다.
코페르니쿠스 천문학 전파의 주체로서의 대학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은 당시 대학에서 교육되었고, 또 토론되었다. 티코 브라헤와 케플러가 코페르니쿠스를 알게 된 것도 대학을 통해서였다. 특히 비텐베르크의 멜랑크톤 그룹은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을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고, 대학 내에서 천문학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다만, 그들은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을 실재에 대한 진리로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현상을 설명(구제)해주는 가능한 대안(가설)로만 여겼고, 심지어는 코페르니쿠스 우주론을 반대하면서도 그것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천문학은 대학의 이러한 방식의 수용 덕분에 널리 전파될 수 있었다.
데카르트주의와 대학의 개방성
데카르트주의는 대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체계의 대안으로서 논의되었고 얼마간 수용되었다. 개스코이뉴는 이를 통해 대학의 개방성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호이겐스나 뉴턴이 데카르트 철학을 배운 것도 대학에서였고, 이를 통해 그들은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었다. 고도로 조직화된 데카르트주의가 스콜라적 자연철학을 대체하면서, 고전의 권위에 의존하던 대학의 학문적 성격도 약화되었으며, 실험과 수학에도 보다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수학의 지위 상승과 예수회 대학
수학은 중세 대학에서 그 역할이 상대적으로 경시되어 왔으나, 인문주의와 라무스주의, 그리고 수학종사자들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인해 수학 교수좌가 늘어나면서 연구도 활발해지고 그 지위도 상승하였다. 과학혁명기 수학의 변화는 예수회 대학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클라비우스의 영향 아래 예수회 수리과학자들은 수학의 지위를 높이고자 했다. 물론 이런 노력이 아리스토텔레스적인 학문 틀을 벗어나는 시도는 아니었다. 클라비우스는 수학 자체의 유용성을 강조하면서도, 수학이 자연학(자연철학)의 필수요소이고 철학의 한 부분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수학은 확실한 논증을 제공함으로써 자연철학과 같이 자연세계를 다룰 수 있다고 보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수학은 원인에 대해 탐구하지 않으면서도 "진정한 과학"이 될 수 있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클라비우스는 수학의 논리적 구조를 강조하는 한편, 응용분과(수학)를 과학의 일반 모형에 맞추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노력 자체가 그가 수학의 과학적 지위를 인정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간주했다.
예수회 수리과학자들이 중요시한 수학은 좁은 의미의 수학뿐 아니라 여러 수리과학분야를 포함했는데, 천문학을 가장 고귀한 분야로 여겼으며 1610년대 초 갈릴레오의 발견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기도 했다. 한편 신교의 학문 세계, 특히 독일과 네덜란드의 대학들에서는 라무스가 수학의 실용성을 주장하면서 수학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라무스는 라이덴 대학의 스넬에게도 영향을 주었는데, 스넬은 측지학과 항해술 등 수학의 공리주의적 성격에 관심을 가졌다. 실용적 수학에 대한 스넬의 기여는 항해술 등의 발전으로 인한 수학자의 수요 증가에 대해 대학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논리학을 강조하던 대학은 점차 수학을 강조하게 되었고, 이러한 변화는 수학뿐 아니라 그것에 기초한 천문학의 발전에도 도움을 주었다. 대학에서 수학과 자연철학이 수렴해가면서 수학의 지위는 점차 높아졌다. 그 속도는 매우 느렸지만, 대학이 과학혁명에 의해 생겨난 지적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대학 의학부의 역할
개스코이뉴는 특히 대학의 의학부를 과학혁명기 중요한 제도적 기초로서 강조했다. 대학은 전통적인 갈레노스 해부학 및 생리학과 단절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물리과학에서의 변화가 주로 대학 외부에서 일어났고 대학은 외부의 변화에 적응했던 것에 반해, 생물학과 의학에서의 변화는 거의 전적으로 대학의 맥락 안에서 이루어졌다. 의학부는 과학종사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고, 경험적 연구를 위한 시설과 연구 공간(해부극장, 식물원, 화학실험실 등)을 제공했다. 또한 의학부는 과학교육을 담당하면서 다른 분야의 발전에도 기여했는데, 생리학, 식물학, 동물학, 화학 등을 강의했고 이 분야들이 대학에서 자리잡는 데 도움을 주었다.
결론: 과학혁명의 대학의 역할
- 당대 대부분의 과학자들에게 대학은 기본적인 교육을 제공했다. 이는 과학단체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 새로운 지식의 유입이 느리게 일어나기는 했지만, 일단 대학에 유입된 지식은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고 사회적 재정적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 대학은 해부학 극장이나 식물원과 같은 설비들과 망원경, 공기펌프 등의 값비싼 장비들을 제공함으로써 직접적으로 물질적 지원을 하기도 했다.
- 대학은 상당수의 과학자들을 고용함으로써 후원자가 적은 당시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론 과학혁명기에 주로 과학연구가 수행된 곳은 과학단체였다. 그러나 대학과 과학단체는 경쟁적이기보다는 상보적이었다. 과학단체가 새로운 연구를 수행하고 촉진하는 곳이었다면, 대학은 그들이 그런 연구를 하기 위한 기본적인 교육을 제공해주었고 일단 확실히 인정받은 연구에 대해서는 영예를 부여하고 정당화해주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