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uble in the Earthly Paradise
- Joan Cadden, “Trouble in the Earthly Paradise: The Regime of Nature in Late Medieval Christian Culture,” in L. Daston ed., Moral Authority of Nature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4), pp. 207-231.
보통 자연은 ‘필연’에, 인간은 ‘자유’에 대응되곤 한다.
욕망은 도덕, 정의가 성립하기 위한 필연적 요소이지만,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잠적인 위험요소.
Chauder의 “새들의 의회”라는 시에서, 자연물은 자연스러움, 완벽함, 위계질서를 보여주는 반면, 인공물(비너스 상)은 좋은 욕망과 나쁜 욕망을 둘다 보여준다. 자연물의 욕망은 축복이자 즐거움(즉, 질서)이지만, 인간의 욕망은 무질서, 죽음으로도 귀결될 수 있다.
poetry-allegorical-vernacular-court society vs. prose-philosophical-university
양쪽 문화 서로 얽혀있었음. 세속과 종교, 학문 세계.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의 자유. 기독교의 자유의지 개념.
신의 이성 -> 자연 -> 가치, 덕, 규범
신의 이성 -> 인간의 이성적 판단 및 자유 부여
자연은 도덕의 원천이 될 수 있는가?
인간의 이성은 자연(신?)이 부여한 인간의 본성. 그러나 타고난 본성만으로는 개인들을 칭찬하거나 비난할 수 없음. 따라서, 도덕은 자연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나올 수 없음. 도덕은 지식보다는 행동(habitus). 도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행동(또는 기독교의 자유의지)이 강조되어야 함. 자연의 필연성으로는 윤리학 성립할 수 없음.
자연은 도덕의 모범(standard)가 될 수 있는가?
자연이 도덕의 원천(source)가 될 수는 없지만, 모범은 될 수 있지 않을까?
개별 vs 보편.
개별적인 자연물은 그 보편적인 본성이 절대적으로 발현되는 것이 아님. 자연물도 본성에 반하는 행동 가능. (eg. 강제적인 운동) 한편, 내적으로도 본성에 반할 수 있음.(eg. 개별 인간들의 선택에 의한 것. 흔히 질병의 원인으로 도입됨) 즉, 본성은 내적/외적 이유로 깨질 수 있음. 본성(자연스러움)은 (과도/결여 사이의) 균형과 연결.
인간됨의 본성을 따라 균형을 맞추는 것은 좋음. 그렇지 못하면 나쁨.
보통 ‘야만스러움’이라는 것은 인간 본성의 결여를 뜻함.
도덕적 결함으로 보이는 사람에 대해, 그것을 개인의 선택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그 개인의 본성으로 볼 것인가?
개인 및 집단의 다양한 본성 vs 인간전체의 본성.
개인의 본성과 그 개인이 속한 보편적 종의 본성은 같은가? 모호하다. 만약 도덕적 결함으로 보이는 문제에 대해 그것이 개인의 선택이라면 진짜 도덕적 평가를 내릴 수 있겠지만, 만약 그것이 그 개인의 타고난 본성이라면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보면, 자연 또한 모호하다. 자연물의 욕망이 실현은 곧 본성의 실현? 아니다. 자연물의 욕망도 상충. 자연 또한 도덕의 모범도 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자연주의적(특히 진화적) 윤리학은 한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