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원
환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철학적 관심이 되어 왔다. 통시적 측면에서 환원은 과학 이론의 변화와 관련되었는데, (표준 모형 하에서) 선행 이론의 후속 이론으로의 환원은 과학의 (점진적) 진보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징표로 이해되었다. 한편, 공시적 측면에서 환원은 다양한 학문 분과들 사이의 관계와 관련되었는데, 상위 분과의 기초 분과로의 환원은 (인식론적으로) 통일과학 또는 (존재론적으로) 통일된 세계의 징표로 이해되었다.
조심해야 할 점은, 이론간 환원을 제안하는 철학자들이 모든 과학적 변화를 '환원'이라는 개념으로 포괄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역학체계가 뉴턴 역학체계로 환원되었다고까지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보통 이 경우는 '대체'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갈릴레오의 낙하법칙이나 케플러의 3가지 법칙은 뉴턴 역학에 의해 환원되었다고 말하고 싶어하며, 열역학이 통계역학으로 환원되었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즉, '환원'이라는 개념을 제안한 철학자들은 후속 이론이 선행 이론들을 포괄해가며 진보해가는 점진적인 변화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 변화의 불연속성에 주목한 쿤(Thomas S. Kuhn)이나 파이어아벤트(Paul Feyerabend)같은 이들에게, '환원' 개념은 과학의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개념으로 보였는데, 이 지점에서 비판과 반비판이 이루어졌다.
한편 철학자들이 주목하는 환원은 많은 경우 영역 확장적이다. 네이글(Ernest Nagel)이 제안한 표준 모형 하에서, 한 이론은 더 포괄적인 이론에 포섭됨으로써 환원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설명적인 통합과 존재론적인 단순화가 이루어지고, 이는 과학의 통일이라는 이상과 연결된다. 과학의 통일이라는 이상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그 이상이 과학적 성찰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미쳐온 영향을 부정할 수는 없다. 상대적으로 자율적이었던 이론이 다른 포괄적인 이론에 일부 흡수되거나 통합되는 일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물리화학, 분자생물학이라는 분과 이름만 보아도, 이러한 현상이 현대 과학 활동의 일상이 되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에 대해 일부 철학자들은 심리학, 생물학 등의 상위 분과가 보다 기초적인 분과로 환원되어 종국에는 물리학으로 완전히 환원될 것이라거나 적어도 그러한 환원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흔히 이러한 입장을 환원주의라 부르는데, 이러한 입장은 철학적인 논쟁과 더불어 분과간의 자율성을 둘러싼 광범위한 논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상위 분과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창발(emergence)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가 하면, 과학의 비(非)통일성을 강조하는 카트라이트(Nancy Cartwright), 갤리슨(Peter Galison) 등의 일군의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환원과는 대별되는 과학 발전의 그림이 제시되고 있다.
이론간 환원
이론간 환원에 대해 처음으로 정식화된 모형을 제시한 철학자는 논리경험주의의 전통속에서 환원을 일종의 연역법칙적 설명으로 보았던 네이글(Ernest Nagel)이다. 여기서는 네이글이 제시한 환원 모형과 그 성립조건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파이어아벤트(Paul Feyerabend)의 비판과 섀프너(K.F. Schaffner)의 대안을 살펴본다.
네이글의 표준 모형
네이글에 따르면, 이론간 환원이란 이론간의 설명관계이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환원은 하나의 탐구 영역에서 확립된 이론이나 일련의 실험법칙을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통) 다른 어떤 영역에서 정식화된 이론으로 설명하는 일이다. [r]eduction ... is the explanation of a theory or a set of experimental laws established in one area of inquiry, by a theory usually though not invariably formulated for some other domain."(Nagel, 1961, p. 338) 여기서 사용된 '설명'은 헴펠의 연역법칙적 설명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이를 반영하면 환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도식이 성립하게 된다.
- T의 법칙들로부터 T'의 법칙들을 도출할 수 있을 경우, 오직 그 경우, T는 T'을 환원한다.
동질적 환원
- 네이글은 환원되는 이론의 용어가 환원하는 이론에 속해있는지에 따라, 환원을 두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환원하는 이론 T에 없는 용어를 환원되는 이론 T'가 사용하지 않으며, T'의 용어들이 T에서와 (근사적으로) 같은 의미로 이해된다면, T에 의한 T'의 환원은 '동질적(homogeneous)'이다.(e.g., 뉴턴 역학에 의한 갈릴레오의 낙하이론의 환원, 뉴턴 역학 이론에 의한 케플러 행성 이론의 환원) 네이글은 이러한 환원이 여러 면에서 오해없이 잘 이해될 수는 있겠지만, 철학적으로는 그리 흥미로운 점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질적 환원
- 네이글에게 보다 흥미로운 경우는 "이질적(heterogeneous)" 환원, 즉 환원하는 이론 T(e.g., 통계역학)에 없는 용어(e.g., 온도)를 환원되는 이론 T'(e.g., 열역학)에서 사용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환원은 특히 거시과학과 미시과학 사이의 환원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데, 이 경우 이질적으로 보였던 두 속성(e.g., 운동에너지와 온도)이 환원으로 인해 동화됨으로써, 설명적 통합과 존재론적 단순화가 이루어지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환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존재론적 문제와 같은 많은 난점이 있다.
- 네이글은 T의 이론적 가정에 등장하지 않는 용어가 T'에 포함되어 있더라도, 연결가능성 조건과 도출가능성 조건을 만족하면, 이질적 환원이 성립한다고 보았다.
- (예) 고전 열역학은 기체 운동론 및 통계역학으로 환원된다.
- (연결가능성 조건) 온도(열역학의 용어) ≡ 분자들의 평균 운동에너지(기체 운동론 및 통계역학의 용어)
- (도출가능성 조건) 기체 운동론과 통계역학으로부터 보일-샤를 법칙 도출
- (예) 고전 열역학은 기체 운동론 및 통계역학으로 환원된다.
네이글의 표준 환원 모형은 그 옳고 그름을 떠나, 논리경험주의자들의 프로젝트를 위한 구체적 방식을 제공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파이어아벤트의 비판
파이어아벤트는 네이글이 제안한 연역적 환원이 실제로 역사적으로 성립해왔는지, 그리고 그러한 환원이 방법론적으로 바람직한 것인지, 두 측면에서 네이글의 연역적 환원 모형을 비판한다.
연역적 환원의 역사적 사례가 없다
파이어아벤트는 네이글이 명백한 환원의 예로 제시했던 것들에서도 연역적 환원이 성립하지 않음을 보인다.
- 갈릴레오의 낙하 이론 vs. 뉴턴의 역학 이론
- 파이어아벤트에 따르면, 뉴턴의 역학 이론으로부터 갈릴레오의 낙하 법칙이 연역적으로 도출되지 않는다. 갈릴레오의 낙하법칙에서 물체는 등가속도로 낙하하지만, 뉴턴의 역학이론으로부터 엄밀하게 도출된 낙하법칙에서 물체는 등가속도로 낙하하지 않는다. 즉 뉴턴의 역학이론은 갈릴레오의 낙하법칙과 배치되는 귀결을 낳는다.
- 그렇다면 네이글은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네이글이 보기에 갈릴레오의 낙하법칙과 뉴턴의 낙하법칙은 경험적 차원에서는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즉 h/R≪1이라는 조건이 성립하는 실제 지표면상에서, 갈릴레오 이론 하에서의 가속도값과 뉴턴 이론 하에서의 가속도값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다.
- 그러나 파이어아벤트가 보기에, 그 가속도는 "숫자상으로는 비슷할지 몰라도 개념적으로는 완전히 다르다."
- 임페투스 이론 vs. 뉴턴의 역학 이론
-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이론에 따르면, 물체가 운동하려면 꼭 원인(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투사체의 경우, 그 물체는 손에서 떠난 이후 더이상 힘을 받지 않지만 계속 운동을 진행한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페투스 이론은 물체를 던질 때 가해진 힘이 던져진 이후에도 물체에 계속 남아 있어서 물체가 계속 운동하게 해준다고 제안한다. 물체 속에 각인된 그 힘을 임페투스라 불렀는데, 그 임페투스가 남아있는 한 물체는 계속 운동하고 임페투스가 소진되면 물체는 정지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외력을 받지 않는 진공 속에 놓인 물체의 임페투스는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법칙적 진술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임페투스 이론은 뉴턴의 역학 이론으로 환원될 수 있는가?
- 선택지 1: '임페투스=운동량'으로 놓기 -> 임페투스는 운동의 "원인"에 해당하지만, 운동량은 운동의 "결과"에 가깝다. 즉 두 용어는 개념이 다르다.
- 선택지 2: '임페투스=힘'으로 놓기 -> 둘다 원인에 해당하지만, 양적으로 불일치한다. 예컨대 물체가 등속직선운동을 하는 경우, 임페투스는 0이 아니겠지만 힘은 0이 된다.
- 즉 임페투스 이론은 뉴턴의 이론으로 환원 불가능하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이론에 따르면, 물체가 운동하려면 꼭 원인(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투사체의 경우, 그 물체는 손에서 떠난 이후 더이상 힘을 받지 않지만 계속 운동을 진행한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페투스 이론은 물체를 던질 때 가해진 힘이 던져진 이후에도 물체에 계속 남아 있어서 물체가 계속 운동하게 해준다고 제안한다. 물체 속에 각인된 그 힘을 임페투스라 불렀는데, 그 임페투스가 남아있는 한 물체는 계속 운동하고 임페투스가 소진되면 물체는 정지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외력을 받지 않는 진공 속에 놓인 물체의 임페투스는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법칙적 진술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임페투스 이론은 뉴턴의 역학 이론으로 환원될 수 있는가?
- 고전 열역학 vs. 기체 운동론 및 통계역학
- 네이글은 고전 열역학의 용어 '온도'와 기체 운동론 및 통계역학의 용어 '분자들의 평균 운동에너지' 사이에 '≡' 관계가 성립되므로, 전자의 이론이 후자의 이론으로 도출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파이어아벤트는 두 용어의 의미가 다르므로 '≡'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 파이어아벤트에 따르면 용어의 의미는 그 용어를 포함한 이론 내에서만 파악된다. 이렇게 볼 때, 고전 열역학 이론의 '온도' 개념은 비가역성을 주장하는 '열역학 제2법칙'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기체 운동론과 통계역학의 기반이 되는 뉴턴 역학의 법칙들은 모두 가역적이다. 가역적인 법칙으로부터 비가역적인 것이 도출될 수는 없다.
- 고전 역학 vs. 상대론적 역학
- '비상대론적 질량'은 물체의 내적 성질이며, 물리계가 고정되어 있는 한 값이 변하지 않는다. 반면 '상대론적 질량'은 물체와 관찰자 사이의 (상대적) 관계이며, 관찰자와 물체 사이의 상대적 운동에 의해 값이 변한다.
- 즉 비상대론적 질량과 상대론적 질량은 개념적으로도 양적으로도 다르므로, 고전 역학은 상대론적 역학으로 환원될 수 없다.
연역적 환원과 의미불변 조건은 방법론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보통 후속이론이 등장하는 이유는 선행이론이 실패했기 때문이며, 후속이론은 선행이론의 잘못된 귀결까지 포괄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네이글의 환원 모형은 선행이론의 법칙을 연역적으로 도출할 것을 주장함으로써, 선행이론의 귀결들을 후속이론이 포괄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즉 선행이론의 잘못된 귀결까지도 후속이론이 포괄해야만 환원이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셈이다. 그러나 그런 환원은 방법론적으로 부적절하다.
선행이론이 잘 설명하던 영역에 대해 후속이론 또한 잘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선행이론이 잘 설명하지 못한 영역에 대해서 후속이론은 다른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선행이론이 두 영역을 모두 관장하는 법칙을 갖고 있을 경우, 후속이론은 그 법칙을 연역적으로 도출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선행이론의 잘못된 귀결까지 포괄해버리기 때문이다.
후속이론은 선행이론과 일관될 필요가 없다. 네이글이 제안한 도출가능성 조건은 선행이론의 잘못을 계속 유지할 것을 주장하므로 부적절하다. 그것의 전제조건에 해당하는 의미 불변 조건 또한 필요하지 않다.
쿤의 견해와 연관성
섀프너의 일반적 환원(GR) 모형
스클라(Sklar)의 구체적 접근
처칠랜드의 공진화 모형
섀프너의 일반적 환원-대체(GRR) 모형
분과간 환원
분과간 환원은 이론간 환원과 관심의 측면이 분명 다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예컨대 네이글의 표준적 환원 모형에 따르면, 과학은 후속 이론이 선행 이론을 포괄하는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진보하는 동시에 더욱더 체계화(통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분과간 환원에 대해 정식화된 모형을 제시한 것은 퍼트남(H. Putnam)과 오펜하임(P. Oppenheim)에 의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