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서스와 진화론자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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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다윈와 맬서스를 분리하려고 했다. 이것은 로날드 믹이 편집한 『맬서스에 대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견해』가 보여주듯이 맬서스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노선으로 남아 있다. 『모던 쿼털리』의 한 논문이 이 입장을 포여준다. 파이프(Pyfe)는 마르크스는 맬서스가 부르조아 사기꾼임을 폭로했고 맬서스 이론이 {{"|인간의 고통을 자연현상의 작용에 의한 것으로 설명하려 함으로써 인간의 고통이 정치체계의 결함 때문임을 위장하는 것을 돕는다}}고 주장했다. 자본가와 제국주의자에게 신맬서스주의 이론의 가치는 {{"|사이비과학적 '법칙'을 세움으로써 절망적으로 낮은 생활수준의 진정한 원인으로부터 주의를 돌리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맬서스 이론에 반대했을까? 초기 개량론자들이 그랬던 것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개선을 제한하고, 필연적인 진보적 변화의 메커니즘으로서가 아니라 거의 피할 수 없는 진보의 장애로서 경쟁을 강조했던 것이다. 파이프는 소련에서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환경에 대한 인간의 통제의 무한한 가능성들 -- 한때 추론된 믿음이자 예측이었던 -- 이 실현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다윈와 맬서스를 분리하려고 했다. 이것은 로날드 믹이 편집한 『맬서스에 대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견해』가 보여주듯이 맬서스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노선으로 남아 있다. 『모던 쿼털리』의 한 논문이 이 입장을 포여준다. 파이프(Pyfe)는 마르크스는 맬서스가 부르조아 사기꾼임을 폭로했고 맬서스 이론이 {{"|인간의 고통을 자연현상의 작용에 의한 것으로 설명하려 함으로써 인간의 고통이 정치체계의 결함 때문임을 위장하는 것을 돕는다}}고 주장했다. 자본가와 제국주의자에게 신맬서스주의 이론의 가치는 {{"|사이비과학적 '법칙'을 세움으로써 절망적으로 낮은 생활수준의 진정한 원인으로부터 주의를 돌리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맬서스 이론에 반대했을까? 초기 개량론자들이 그랬던 것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개선을 제한하고, 필연적인 진보적 변화의 메커니즘으로서가 아니라 거의 피할 수 없는 진보의 장애로서 경쟁을 강조했던 것이다. 파이프는 소련에서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환경에 대한 인간의 통제의 무한한 가능성들 -- 한때 추론된 믿음이자 예측이었던 -- 이 실현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19세기의 논쟁을 특징지었던 사회 이론과 진화 이론의 밀접한 결합에 대한 20세기의 견해들은 『모던 쿼털리』의 지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실제로는 생물학적 유전 법칙에 관한 아주 최근의 논쟁으로 서서히 전환되었다. .. 스펜서는 조건반사에 관한 파블로프의 고전적 연구에 영감을 제공했다. 그리고 소련에서 왓슨과 크릭의 유전자 암호 해독을 포함한 진화의 다윈적 설명이 교육되고 관련된 과학적 주제들을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이었다. 그때까지는 동물(그리고 인간)의 본질이 획득형질의 {{'|라마르크주의적}}인 유전에 의해서 변화한다는 믿음이 정설이었다. 1948년에 소련 과학아카데미의 간부회의의 한 성명이 {{'|라카르크주의}}의 러시아적 해석 -- 리센코와 미쿠린의 유전 이론 -- 이 {{"|변증법적 유물론과 인민을 위해 자연을 개조한다는 혁명적 원리에 기초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이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소련의 유전학자들이 이 입장으로부터 일관된 후퇴를 시작했을 때, 기울어져가는 정통 이론의 한 평가는 미쿠린주의의 옹호자들이 {{"|그것에 반대되는 유전 이론은 제국주의적 부르주아의 반동적 이데올로기와 연결된 사이비과학적, 관념론적 발전의 개념이라고 주장한다}}고 지적했다. 획득 형질의 유전에 대한 리센코-미쿠린주의 신봉자들과 신다윈주의 유전학자들 사이의 불일치는 {{"|단일 체제 안에서의 두 가지 관점 사이의 반목}}이 아니었다. {{"|그것은 두 체계, 두 이데올로기 사이의 계급투쟁}}이었다. {{"|부르주아 과학자들의}} 이데올로기는 {{"|그들로 하여금 객관적 자연법칙들을 발견하는 것을 전혀 불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그들은 말하자면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에 상응하게 이 법칙들을 왜곡하고 '사이비과학적, 반동적' 유전학 -- 유전에 대한 유전자 이론 -- 을 창조하도록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강요받는다.}} 이것은 20세기에서도 잘 입증된 과학적 발견들을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심한 예이다. 그러나 그것은 국제적인 스캔들이기도 했다. 왓슨과 크릭이 그들의 {{'|사이비과학적}}이고 {{'|반동적}}인 발견들로 노벨상 수상이 확실해졌을 때 소련에서는 마침내 현대유전학의 발전을 허용하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래의 역사학자들은 현재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이미 확립되었다고 믿는 생명과학과 사회과학의 정연한 구분을 지금보다 덜 절대적으로 볼 수도 있는 일이다.
19세기의 논쟁을 특징지었던 사회 이론과 진화 이론의 밀접한 결합에 대한 20세기의 견해들은 『모던 쿼털리』의 지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실제로는 생물학적 유전 법칙에 관한 아주 최근의 논쟁으로 서서히 전환되었다. .. 스펜서는 조건반사에 관한 파블로프의 고전적 연구에 영감을 제공했다. 그리고 소련에서 왓슨과 크릭의 유전자 암호 해독을 포함한 진화의 다윈적 설명이 교육되고 관련된 과학적 주제들을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이었다. 그때까지는 동물(그리고 인간)의 본질이 획득형질의 {{'|라마르크주의적}}인 유전에 의해서 변화한다는 믿음이 정설이었다. 1948년에 소련 과학아카데미의 간부회의의 한 성명이 {{'|라마르크주의}}의 러시아적 해석 -- 리센코와 미쿠린의 유전 이론 -- 이 {{"|변증법적 유물론과 인민을 위해 자연을 개조한다는 혁명적 원리에 기초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이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소련의 유전학자들이 이 입장으로부터 일관된 후퇴를 시작했을 때, 기울어져가는 정통 이론의 한 평가는 미쿠린주의의 옹호자들이 {{"|그것에 반대되는 유전 이론은 제국주의적 부르주아의 반동적 이데올로기와 연결된 사이비과학적, 관념론적 발전의 개념이라고 주장한다}}고 지적했다. 획득 형질의 유전에 대한 리센코-미쿠린주의 신봉자들과 신다윈주의 유전학자들 사이의 불일치는 {{"|단일 체제 안에서의 두 가지 관점 사이의 반목}}이 아니었다. {{"|그것은 두 체계, 두 이데올로기 사이의 계급투쟁}}이었다. {{"|부르주아 과학자들의}} 이데올로기는 {{"|그들로 하여금 객관적 자연법칙들을 발견하는 것을 전혀 불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그들은 말하자면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에 상응하게 이 법칙들을 왜곡하고 '사이비과학적, 반동적' 유전학 -- 유전에 대한 유전자 이론 -- 을 창조하도록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강요받는다.}} 이것은 20세기에서도 잘 입증된 과학적 발견들을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심한 예이다. 그러나 그것은 국제적인 스캔들이기도 했다. 왓슨과 크릭이 그들의 {{'|사이비과학적}}이고 {{'|반동적}}인 발견들로 노벨상 수상이 확실해졌을 때 소련에서는 마침내 현대유전학의 발전을 허용하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래의 역사학자들은 현재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이미 확립되었다고 믿는 생명과학과 사회과학의 정연한 구분을 지금보다 덜 절대적으로 볼 수도 있는 일이다.


=== IX. 결론 ===
=== IX. 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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