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07 미야의 방황과 하얀거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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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밤 밖에서 미야 소리가 나길래 나가 봤더니, 성당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자동차 밑에서 미야가 야옹거리고 있었다. 미야가 좋아할만한 캔으로 유혹해서 데려오려고 하니까 또 열심히 도망을 친다. 어쩔 수 없이 캔을 놔두고 방에 돌아와서 창밖으로 지켜보다가 안 오길래 티비를 보며 있다가 새벽에 다시 밖을 내다보니 캔이 사라졌다. 아마 미야가 가져가서 먹었겠지? 아님 딴 고양이가?

미야를 찾는 건 어렵지 않은데, 잡는 게 문제다. 가까이 오더라도 워낙 재빠른 녀석이기 땜에 내가 조금만 잡으려는 자세를 취하면 잽싸게 도망쳐버린다. 집이 1층이었을 때에는 자기가 알아서 들어왔는데 말야. 배고프거나 화장실 가고 싶을 때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화장실은 밖에서 해결하고 와도 되는데 말이지 -_-; 어쨌든 집에만 일단 들어오면 나한테서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이리저리 놀아달라고 애교를 부린다. 지금은 2층이라 올라오고 싶어도 못 올라오는 건가... 어쨌든 창문은 열어두고 있지만 과연 올라올 수 있을지...

근데 왜 집이랑 밖이랑 나를 대하는 태도가 확 바귀는 거야! 못된 녀석!

미야를 기다리며 하얀거탑 1편부터 8회까지 봤다. -_-;; 이건 모 사람을 확 빨아들이는 게 장난아니더만. 근데 이 드라마 정말 동아시아(한국과 일본)적이다. 그래서인지 "정치"는 "권력 획득"으로만 묘사되고, "~을 위한"이 빠진 정치가 당연한 듯 그려지고 어떤 면에서는 정당화되기까지 한다. 그에 대한 반편향으로 올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하고, 중립을 지켜야 하는 양. 예컨대 드라마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그려지는 오경환 교수는 대쪽일 뿐 정치를 하지 않는다.

즉 이 드라마에서 정치와 올바름은 대립물이다. 정치를 위해서는 올바름을 버려야 하고, 올바름을 위해서는 정치를 버려야 한다.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꼭 올바르게 살라고 요구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정치는? 필요악이 된다. 사실 이런 구도는 '정치'라고 하는 것에 대한 이상한 왜곡을 초래한다. 정치를 "어떠한 목적을 위해" 권력을 잡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목적이 중요하지 않을까? 또 그 목적에 비추어 권력을 잡는 방법도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정치에서 원래 중요하지 않은 것인 양 쏙 빠지고, 오로지 권력을 위한 더러운 투쟁만 남아 버린다. "다른" 정치에 대한 배려가 아쉽다.

장준혁에 대한, 권력을 향해 돌진하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 이것이 이 드라마의 가장 탁월한 면이란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사실 우린 그동안 그런 사람의 내면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로지 "나쁜 놈"이라는 생각 외에는. 그러나 이 드라마를 통해서 우리는 그를 평범한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정말로 그와 같이 생각하고 분노하고 오기를 부리고 남을 무너뜨리고 싶어진다. 그러나 이해와 용서는 다른 문제.

심심풀이로... 정치의 정의 문제. 내가 생각하기에, 아주 넓게 봤을 때, 정치는 "어떤 효력을 발휘하기 위한 말과 행동"이다. 어떤 말과 행동이 어떤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실제로 어떤 효력을 가지기도 한다. 그것이 나는 정치라고 생각한다. 가끔 우리는 겉다르고 속다른 말과 행동을 "정치적"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나는 이것이 위의 정의에 비추어 꽤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정치적 효과를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보통 순진한 사람이라고 일컬어지며 종종 정치적이지 못한 사람으로도 말해진다. 이것도 대충 맞는 표현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런 식의 구분은 왜곡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봤을 때, 모든 말과 행동은 정치적 효과를 지닌다는 점에서 정치적이다. 그러나 모든 말과 행동이 정치적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며, 또한 그 염두에 둔 효과가 항상 실제로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제대로 된 인간이기 위해, 나는 정치적 효과를 상당히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모르거나 염두에 두지 않는 사람은 무식하거나 경솔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정치적 효과를 염두에 둔다는 것이 겉다르고 속다른 것으로 귀결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든지 겉과 속이 일치한 정치적 행동도 가능하다. 가장 정치적이면서 가장 솔직한 인간의 가능성을 믿는다.

ps. 하얀거탑에는 겉다르고 속다른 인간들이 정말 많이 나오는데, 그들의 말과 행동은 정말 예술이다.

하루 뒤 하얀거탑 15회까지 시청 소감

위의 평가는 좀 과도한 평가인 듯. 몰라.. 어쨌든 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