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실재적 가정은 정당화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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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의 철학 기말보고서 (정말 허잡하니 왠만하면 읽지 말길)

반실재적 가정은 정당화되는가? 반실재적 가정의 두가지 역할과 둘 사이의 긴장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2004-20309 정동욱 | 담당교수 : 이상욱 | 제출일 : 2004. 6. 19


1. 들어가며

경제학에는 몇 가지 반실재적 가정이 있지만,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가정들에 대해 큰 문제를 느끼지 않고 있는 듯하다. 한편,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을 때마다 그들은 몇가지 표준적인 답변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곤 하는데, 그들의 정당화 논변에는 묘한 긴장관계가 숨어있다. 이 글에서는 반실재적 가정의 사용을 정당화하는 프리드만(Milton Friedman)의 논의를 정리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바탕으로 이론에서 반실재적 가정이 수행하는 일반적인 역할을 두가지로 정리하고, 두 역할이 단순한 병렬관계가 아닌 협력 또는 긴장관계임을 밝힐 것이다.

이 글은 반실재적 가정의 사용을 비판하는 글이 아니다. 프리드만의 논의대로 반실재적 가정은 이론작업에서 상당히 유의미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반실재적 가정이 잘못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반실재적 가정의 유의미한 역할과 강점을 이용하는 데에서 나타난다. 어떠한 가정이 현실의 특성을 정말 잘 포착해낼 때, 우리는 종종 그것에 만족하고 자리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이 있다. 특히 인간사회를 다루는 사회과학에서는, 인간본연의 본성 하나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요소들이 복잡한 연관을 맺고 있다. 경제학이 ‘합리적 행위자’에 대한 가정만으로도 많은 설명을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설명실패의 사례도 상당하다. 이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


2. 경제학의 반실재적 가정들

경제학은 합리적 선택이론에서 출발하며, 여기서 전제하는 합리적 행위자는 다음의 가정 위에 있다. a1, 모든 정렬된 선호도(fully ordered preferences). a2, 완전한 정보(complete information). a3, 완벽한 계산능력(a perfect internal computer) 그리고 이러한 가정 위에서, b1, 합리적 행위자는 자신만의 기대효용 극대화를 추구한다. 한편, 경제학은 이러한 가정에, c1, 자유경쟁시장 또는 c2, 독점시장 등의 환경을 더한다. 이러한 가정들이 현실과 맞지 않음을 여기서 자세히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글의 논지 또한 이 가정들과 현실을 비교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가정에서 출발하여, 상당히 그럴듯한 경제학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경제학 하면 떠오르는 수요공급 곡선 또한 위의 가정을 기초로 도출되며, 그것이 어느 정도 경제현상에 대한 설명력을 가진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3. 프리드만의 정당화 근거

프리드만은 경제학 이론에서 반실재적 가정이 필수적이며 그것이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다음의 근거로 정당화한다. 첫째, 프리드만의 입장에서, 이론은 그 이론이 설명하고자 하는 현상들의 집합에 대한 예측력에 의해서만 평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가설은 증거에 의해 절대 입증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이는 증거와 정합적인 가설은 무한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론이 전제하는 가정들이 어떠하든, 현상에 대해 잘 설명하고 예측할 수만 있으면 성공적인 이론이라는 것이다. 둘째, 일반적으로, 중요한 이론일수록 더욱더 반실재적 가정이 필요하다. 이유는 간단한데, 적은 것으로 많은 것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중요한 이론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상을 둘러싼 복잡하고 세세한 요소들 속에서 보편적이고 결정적인 요소를 뽑아내어 그것만으로 타당한 설명과 예측을 할 수 있을 때 중요한 이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완전 경쟁’ 또는 ‘완전 독점’에 대한 가정은 그 자체로 반실재적이지만, 그 둘의 이상적인 상태에 대한 이해에 기반해서만 ‘불완전 경쟁’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이론이 되기 위해, 그 이론의 가설은 가정의 측면에서 거짓일 수밖에 없다. 셋째, 반실재적 가정은 자연과학에서도 쓰인다. 프리드만은 자유낙하 법칙에도 ‘진공’이라는 반실재적 가정이 들어있음을 예로 든다. ‘진공상태에서 낙하하는 물체의 낙하거리는 s=½gt2로 결정된다’라는 낙하법칙에서 ‘진공상태에서’라는 가정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우선 그 가정은 ‘진공상태에서 낙하하듯이(as if)’의 의미를 가진다. 위의 법칙은 “대부분의 경우 낙하하는 물체의 낙하거리는 ‘진공상태에서 낙하하듯이’ s=½gt2로 결정된다”고 재진술될 수 있는데, 이때의 ‘진공상태에서’라는 가정은 공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으며, 실제 낙하하는 환경과의 근사적 일치를 말해줄 뿐이다. 우리가 위의 공식을 수용하는 이유는 우리가 진공상태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공식이 평상시 잘 작동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의 해석에 의하면, ‘진공’이라는 가정은 위 공식의 적용범위를 한정해준다. 깃털의 경우 공기압력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게 되어, 위 공식이 잘 들어맞지 않게 된다. 이 경우 때문에 우리가 위의 공식을 폐기해야 하는가? 가정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공식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프리드만은 그렇게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진공상태에서’라는 가정에 의해, 깃털의 사례는 공식의 적용범위 밖의 영역이 되며, 따라서 공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프리드만은 반실재적 가정에 대해 ‘~처럼’으로 해석하면 이론의 해석이 매우 자연스러워진다고 말한다. 이미 위에서 진술한 예에 덧붙여, 나뭇잎의 밀도 예를 든다. ‘나뭇잎이 자신이 받는 햇빛의 양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것처럼, 또는 나뭇잎이 햇빛의 양을 결정하는 물리법칙을 아는 것처럼 나뭇잎의 밀도가 형성된다’는 가설을 세워보면, 이 가설에 문제가 있는가? 프리드만은 (유사)자연선택설과의 비교를 통해, 전자의 가설이 일반성의 기준에 비추어보면 후자에 못미치는 가설일 수 있지만, 예측력의 측면에서는 손색이 없다고 말한다. 한편 이 나뭇잎의 ‘햇빛-최대화’ 가설은 자연선택에 의해 일정정도 정당화될 수 있다.

프리드만은 위의 논의를 기반으로 경제학의 가정들이 어떻게 해석되며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해명한다. 기업들이 ‘자신의 기대이익(return)을 최대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그 시도의 성공에 필요한 자료를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자료들을 통해 완벽한 계산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가설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기업가들이 이러한 가정 ‘그대로’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이익-최대화’ 가설은 위의 나뭇잎의 ‘햇빛-최대화’ 가설과 같은 역할을 한다. 또한 ‘자연선택’의 과정은 이 가설을 일정정도 정당화하는데, 위의 가정은 일종의 ‘생존조건’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위 가설은 수많은 적용에 의해 경험적으로 정당화된다는 점이다.


4. 프리드만의 논의에 대한 고찰

프리드만이 자연과학의 사례로 든 ‘자유낙하 법칙’의 사례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법칙에서 ‘진공상태에서’라는 가정은 정말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프리드만은 ①현실과의 근사로서의 역할과 ②이론적용범위 한정으로서의 역할 두가지를 들었다. 내가 보기에 이 두가지 역할은 결국 한가지 역할을 의미한다. ‘자유낙하 법칙’을 단지 근사로서의 이론으로 이해하는 한, 근사의 오차가 크게 나타나는 사례가 있을 수 있고 그 사례에 대해 적용범위 바깥의 사례로 본다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런데 ‘자유낙하 법칙’은 ‘진공’이라는 반실재적 가정을 왜 했을까? 위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면 단지 ‘공기압력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경우에’라고만 하면 되지 않았을까? 또는 아예 아무 가정을 하지 않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하필 부담스러운 ‘진공상태’를 가정한 것일까? 그것은 ‘자유낙하 법칙’이 추상화된 이론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 가정 없이 s=½gt2이라고만 했으면, 이 공식은 다분히 ‘근사적이기만 한’ 공식이다. 그러나 ‘진공상태’를 가정하는 순간 그 공식은 하나의 추상이 되며, 개별 낙하 현상들은 이 추상화된 법칙의 여러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 된다. 이 관계를 도식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ⅰ) 근사로서의 이론 : 낙하 현상 ≒ 낙하 법칙 ⅱ) 추상화된 이론 : 낙하 법칙(중력의 영향) + 주변 요소의 영향 = 낙하 현상

추상화라고 하는 작업의 본질은 현상으로부터 ‘다른 요소’들을 제거하고 ‘특정한 요소’만을 뽑아내는 것이다. 이 작업을 통해서 우리는 현상으로부터 우리가 꼭 보고자 하는 요소만을 볼 수가 있다. 위의 낙하법칙에서 ‘진공’이라는 가정을 통해 뽑아낸 것은 ‘중력만의 영향’이다. 여기서 ‘진공’이라는 가정은 반실재적 가정이 아니라 추상화의 도구이다. 또한 그것을 통해 만들어낸 낙하법칙은 더이상 ‘적용범위’의 한계를 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력’이라는 요소에 다른 요소 ― 밝힐 수만 있다면 ― 를 결합하면 모든 낙하 현상을 완벽하게 밝힐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업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① ‘적용범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추상화 작업이 필요하고, ② 다른 요소들이 그리 쉽게 밝혀지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③ 서로 다른 요소의 결합 또한 간단히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리학의 경우, 이러한 작업이 매우 잘 이루어진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물리학에서는 서로 다른 영향들이라고 하더라도 하나의 공통된 표현인 힘(Force) 또는 에너지(Energy)를 통해 호환 가능하기 때문이다. 위의 낙하법칙을 더 일반화하기 위해서는, 뉴튼역학을 적용해야 한다. 중력의 영향을 F=mg로 설정하고, 공기 저항력의 영향을 F=­kv로 설정한 후, 둘을 결합하여 운동방정식을 만든 후 해를 구하면 된다. 여기에 다른 영향이 있으면 그 모든 영향을 F=…의 식으로 표현한 후 운동방정식에 추가하기만 하면 된다.

프리드만이 이론의 이러한 특성을 모르는 것 같지는 않다. 그가 언급한 부분을 보면 분명히 추상화의 얘기를 하고 있다. ‘불완전 경쟁’ 상태에 대한 분석을 위해서는 ‘완전 경쟁’과 ‘완전 독점’ 상태에 대한 분석이 필수적이라고 언급한 부분을 보면, 프리드만은 확실히 추상화의 특성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프리드만은 다시 ‘~처럼(as if)’의 논의 또는 ‘적용범위의 문제’로 후퇴해버리는데, 이는 왜일까? “반실재적 가정을 ‘~처럼(as if)’으로 해석하자”는 제안은 매우 그럴듯하지만,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인상을 풍긴다. 프리드만은 ‘~처럼(as if)’의 논의를 통해 반실재적 가정의 그럴듯한 해석방법을 보여주면서, 반실재적 가정에 기반한 모델이 현실을 정말로 근사적으로 반영하고 그것의 핵심적인 특성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고 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반실재적 가정을 ‘해석하는 방법’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처럼(as if)’로 해석하더라도 정말 그처럼 결과가 나타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프리드만 본인이 얘기했듯이, 이론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의 해석방법이 아니라 그것의 설명력 또는 예측력이다. 다시 말해, 문제가 되는 것은 ① 반실재적 가정이 현실의 결정적인 특성을 반영하는가 또는 ② 다른 영향은 무시할 만한 수준의 영향인가이다. 프리드만은 경제학이 높은 설명력을 가진다고 얼버무리고 있지만, 실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경제현상을 관찰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경제학의 현실 설명력에 대해서는 여러 문제제기가 계속되고 있으며, 설명실패의 원인으로서 이론의 가정을 문제삼는 것은 매우 정당하다. 깃털의 자유낙하는 왜 법칙을 따르지 않는가? 이에 대해 “진공상태라는 가정으로 인해 무시해버린 공기의 영향이 깃털에는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닌가”라고 문제제기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당하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따라 깃털에 미치는 공기의 영향을 추가적으로 고려하고자 하는 것 또한 매우 자연스러운 연구자세이다. 다만 그것을 설명할 길이 없어, 깃털의 사례를 예외조항으로 만들어야 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이론의 한계일 뿐이다. 그런데, 경제학에서는 ‘과학’이라는 명목 아래, 그러한 문제제기들을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곤 한다. 위에서 나는 추상화의 작업을, 현상으로부터 ‘다른 요소’들을 제거하고 ‘특정한 요소’만을 뽑아내는 작업이라고 했으며, 이 작업을 통해서 우리는 현상으로부터 우리가 꼭 ‘보고자 하는’ 요소만을 볼 수가 있다고 했다. 이 때 그 ‘특정한 요소’가 상당히 중요한 요소일 경우 ‘다른 요소’들을 간과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태도이다. 그러나 ‘다른 요소’들을 간과해도 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며, 그 어려움을 회피하면서 현상을 ‘특정한 요소’만으로 설명하려고 할 때, 오히려 그 이론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게 된다. 때로는 현상을 이론에 끼워맞추기도 한다. 나는 현재의 경제학이 그러한 위험에 빠져있다고 생각한다.


5. 반실재적 가정의 역할

지금까지의 논의를 기반으로, 반실재적 가정의 역할을 정리해보자.

첫째, (반실재적) 가정은 이론과 현실의 근사적 일치를 상정한다. 수많은 근사적 이론들에는 그 법칙이 적용되는 범위를 한정하는 가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가정에서는 그 법칙이 완벽하게 적용되리라고 예상되는 이상적인 상태를 상정하곤 하는데, 그렇게 상정한 이상적인 상태가 바로 반실재적 가정이다. 이러한 이론에서, 현실은 반실재적 가정이 상정한 이상적인 상태과 근사적으로 일치한다고 간주되며, 자신의 가정에 위배되는 현실은 적용범위 바깥의 영역이 된다.

둘째, 반실재적 가정은 이론 추상화의 도구이다. 첫째의 역할에서 함축하는 것과 달리, 어떤 이론들은 자신의 가정에 위배되는 현실을 설명한다. 그러한 이론의 대표적인 예는 ‘관성의 법칙’이다. 관성의 법칙에서도 ‘마찰이 없는’ 상태를 가정한다. 그러나 위에서와 달리, 관성의 법칙은 반실재적 가정에서 상정하는 이상적인 상태와 현실이 근사적으로 일치한다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현실조건은 관성의 법칙이 가정하는 것에 위배되며, 그러한 조건에서 물체의 운동은 자기 상태를 유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관성의 법칙을 수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마찰이 없는’ 상태에 대한 반실재적 가정은 오로지 추상화의 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며, 그러한 추상화를 통해 운동의 본질을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관성의 법칙은 가정이 설정한 적용범위를 뛰어넘어 일반적 법칙을 지향한다. 또한 관성의 법칙은 다른 운동법칙과의 결합을 통해, 적용범위의 한계를 뛰어넘어 다양한 운동현상에 대한 설명을 시도할 수 있다.

두 가지로 정리한 반실재적 가정의 역할은 상호모순적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별개의 역할로 볼 수만은 없다. 어떤 이론은 첫째의 역할만 하는 가정만을 쓰고, 다른 어떤 이론은 둘째의 역할만 하는 가정만을 쓰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분리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이론은 현실을 근사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임과 동시에, 동시에 현상에서 추상적인 속성을 뽑아낸 모델이기도 하다. 4절에서 설명한 ‘자유낙하 법칙’은 해석에 따라 전자로도 해석될 수 있고, 후자로도 해석될 수 있다. 단순한 가정이 아닌 반실재적 가정은 그 특성상 ‘추상화의 도구’로 쓰일 가능성을 항상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식행위의 본성상, 우리는 구체적인 개별현상을 바라볼 때, 그것을 보편적인 것의 특수한 사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곤 하는데, 개별현상에서 보편적인 것을 뽑아내는 과정은 분명 ‘추상화’의 과정이지만, 그 추상화를 위해서는 ‘근사’적인 아이디어가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근사’로서의 이론에서 ‘추상화’된 이론으로의 성격변화는, 일반적으로 그 이론의 적용범위 확장을 가져온다. 물론 이론의 적용범위 확장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쉽게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4절에서 언급했듯이 ① ‘적용범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추상화 작업이 필요하고, ② 다른 요소들이 그리 쉽게 밝혀지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③ 서로 다른 요소의 결합 또한 간단히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학의 많은 반실재적 가정에 기초한 경제학 모델은, ‘근사’로서의 이론의 성격과 ‘추상화’로서의 이론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적용범위 확장의 가능성 ― 불완전 경쟁, 불완전한 정보 등에 대한 설명 가능성 ― 을 가지고 있다. 이중에서 ‘불완전 경쟁’ 상황에서의 경제현상에 대한 설명은 ‘완전경쟁’과 ‘완전독점’에 대한 설명을 기초로 나름대로 하려고 노력하는 듯하다. 그러나 ‘불완전한 정보’ 상황에서의 경제현상에 대한 설명은 아직 못하고 있는 듯하며, 엄두도 못내는 상황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경제학에 ‘정보차단’과 같은 요소를 추가적으로 결합하는 방법이 매우 난감하기 때문이다. 정성적이고, 공약불가능해보이는 요소들의 결합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6. 결론

재미난 실험들의 사례를 보면, 합리적 선택이론에 기초한 게임이론은 인간보다 동물에 훨씬 더 잘 적용이 된다고 한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합리적 선택 이론이 상당히 유의미한 이론이라는 것이다. 동물들이 합리적 행위자의 가정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며, 그 이론이 동물 행동의 예측에 쓸모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하지만 합리적 선택 이론을 인간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요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게임이론이 인간에 잘 적용되지 않는 원인이 사회의 복잡성 때문인지 인간의식의 복잡성 또는 성찰성 때문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명백한 것은, 인간과 합리적 행위자는 근사적으로 일치한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합리적 선택이론에 기초한 경제학이 전체 사회의 경제현상을 다룬다고 할 때, ‘합리적 행위자’라는 가정만으로는 설명이 불충분한 것이 당연해 보인다. 따라서, 지금은 어려울지 모르지만, 또는 앞으로도 계속 어려울지 모르지만, 경제현상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찾아서 결합시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맑스의 ‘구체에서 추상으로, 추상에서 구체로’라는 언명은 바로 이러한 노력을 뜻한다. 단순히 현상에서 하나의 특성을 잘 포착해낸 것에 만족하고 그것에 머무른다면, 그것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왜곡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경제학이 진정 실제 현상을 정확히 설명하고자 한다면, 그 현상에 영향을 주는 주요한 ― 전부는 아닐지라도 ― 요소들을 결합시켜야만 할 것이다. 한다. 그것이 비록 힘든 작업일지라도 말이다. □


참고문헌

- Milton Friedman, "The Methodology of Positive Economics", M&M (eds) pp. 647~660


후기

처음 ‘반실재적 가정’을 소재로 보고서를 작성하려고 했을 때에는, 프리드만의 주장을 몇가지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자유낙하 법칙에 대한 사례부분을 읽고서, 프리드만이 반실재적 가정이 ‘추상화의 도구’로서 이용된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비판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보고서를 쓰기 위해 프리드만의 주장을 앞에서부터 다시 읽는 과정에서 프리드만도 그점을 분명히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엄청난 수렁에 빠진 기분이었지요. 하지만 시간은 하루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주제를 바꾸기도 난처했고, 결국 처음의 주제를 약간만 수정하여 밀고 나가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다 작성하고 보니, 사회과학의 철학 보고서임에도 사례들이 전부 자연과학의 사례인 것과, 경제학이 주제임에도 경제학 얘기는 거의 한 줄도 없는 것, 그리고 참고문헌이 프리드만의 논문 딱 한편이라는게 약간 민망하게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제 능력상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알기에, 용감하게 내고 이제는 방학을 즐기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