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Innovation to Use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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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vid Edgerton, “From Innovation to Use: ten eclectic theses on the history of technology”
  • 2008. 9. 18. 토론문


사용-기술과 기술의 사용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또 기술 그 자체는?

발제문은 기술의 사용과 사용-기술을 구분하는 데 실수를 범하고 있다(발제문 첫 문단의 마지막 문장). 에저튼은 주로 사용-기술을 강조했으며, 기술의 사용과는 구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에저튼도 이를 상술해주지 않고 있다. 추측을 하자면, 기술의 사용은 주어진 기술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면, 사용-기술은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쓰인 것 같다. 특히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 더 이상 기술로 보이지 않는 ‘사물’들에 대한 관심이 이와 많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또 ‘기술 그 자체’는 사용-기술과 동일한 것인가? 아니면 구분되는 것인가? 에저튼은 이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을 한 채 지나가고 있다.

에저튼은 혁신과 사용을 이분법적으로 보았는가? 또 옛 기술과 새 기술을 이분법적으로 보았는가?

발제문은 에저튼이 혁신과 사용을 이분법적으로 보았고, 더 나아가 발명과 혁신의 역사를 기술의 역사에 결코 결합시키지 말아야 한다고까지 말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에저튼의 주장이 아니다. 첫째, 에저튼은 발명과 혁신의 역사를 기술사에서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전체 기술사의 극히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사용-기술에 대한 탐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에저튼은 사용-기술에 대한 탐구가 혁신에 대한 새롭고 더 포괄적인 이해를 제공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i) 우리가 역사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혁신의 사례들은 모두 현재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기술의 전사이다. 즉 혁신 연구는 현재의 성공적 사용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ii) 기술 발명 & 혁신 → 사용의 단선적 그림에서 벗어나 사용에 의한 피드백을 통한 점진적인 혁신 및 ‘learning by doing’과 ‘learning by using’ 유형의 지식 획득과 기술발전에도 주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인공물을 스스로 만들었음에도 그에 대해 완벽히 알지 못할 수 있다. ‘doing’과 ‘using'은 그 인공물에 대한 체계적인 또는 대개는 암묵적인 지식들을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통로이다.

발제문은 에저튼이 옛 기술과 새 기술을 이분법적으로 보았다고 적고 있지만 오히려 에저튼은 그것을 반박하고자 하는 것 같다. 그는 두 가지 정도를 의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역사가들이 새 기술의 출현에만 관심을 두고, 기술의 지속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예컨대 바이커의 자전거 연구는 1890년에서, 베이클라이트 연구는 1920년, 형광등 연구는 1945년에 끝난다. 즉 기술 선택에 성공하여 확산에 성공하는 초기 단계까지만 서술한 후 끝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전거나 베이클라이트나 형광등은 역사가들의 시각에서 옛기술이 된 것이다. 그러나 자전거와 베이클라이트와 형광등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사물’로서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즉 이들 기술은 여전히 현재의 기술인 것이다! 에저튼은 이것을 지적하고자 했던 것이다. 둘째, 오래 전에 발명된 기술이라도 그것은 현재까지 끊임없이 유지, 보수, 리모델링, 재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자전거나 형광등은 옛 기술이 아니라 현재의 기술이다!

혁신 없이는 밋밋한 역사 서술이 될 것인가?

이것은 사전에 재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다만 그럴 위험이 있다는 것도 인정을 해야겠다. 그러나 분명 사용-기술의 역사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몇몇 주요 발명과 혁신 이외의 기술의 다양한 측면들을 발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면 에저튼의 기획은 어떤 탐구 영역을 여는가? 그리고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i) 산업에서의 기술 채택 및 확산 연구 (ii) 비서구 지역, 여성, 노동자, 흑인 등과 기술 (iii) 사물의 유지, 보수, 리모델링, 재사용, 재활용의 역사(예: 집, 다리, 배의 역사) → 이러한 과정은 물질문화에서 근본적이었음 (iv) 비가시적인 기술(혁신) (v) 농업, 석탄 채굴, 철강, 직조 등의 오래된 산업에서의 기술(혁신) (vi) 그리고 또 어떤 것들을?

(iv)와 (v)는 에저튼의 탐구 기획에 일부를 분명히 이루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이 어떻게 해서 ‘혁신 연구’와 구별되는 ‘사용-기술 연구’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단지 그동안 주목받지 않았다는 것 외에 말이다.

“옛 기술이 알고보니 중요했다” 또는 “사용이 알고 보니 혁신보다 중요했다” 식의 정해진 결론으로 나가지 않는 식으로 가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 각 사례 연구들은 그 자체의 독자적인 결론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동안 비주류에 있던 대상을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료의 문제가 걸림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를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The Shock of the Old를 보면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을 듯.

기술결정론에 대한 에저튼의 입장은 무엇이며, 기술의 사회적 영향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가?

혁신결정론과 기술결정론 구분하면서, 혁신결정론에 대해서는 거의 오류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기술결정론에 대해서는 아직 사용-기술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경험적 탐구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경험적 탐구를 위한 기술 영향 평가 방식으로, 경제사에서 쓰이는 방법을 채택하는데, ‘대안’과 ‘기회 비용’을 고려한 (반사실적인 상상을 동원해) 비교 평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안’에 대한 고려 없이 단지 널리 사용되는 정도만 고려했을 때에는 “클립 없이는 관료제가 무너질 것이다”와 같은 엉뚱한 생각에 빠지게 될 수 있다.

에저튼은 몇 가지 사례 연구에 비추어 볼 때 몇몇 새 기술(증기기관, 철도)이 등장하면서 당시에 미친 사회적 영향은 생각보다 과장된 것이 많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옛 기술이 미친 사회적 영향은? 아마도 이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과소평가되어 왔다고 말하고 싶어 할 것 같다. 에저튼은 오래된 기술들이 장기간 우리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 또는 우리에게 가하고 있는 제약을 본격적으로 탐구하자고 제안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이러한 의미에서 기술결정론은 변화나 방향에 관심이 없음). 이렇게 본다면, 에저튼은 기술결정론에 상당한 의미 부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혁신결정론은 오직 빠르게 혁신이 이루어지는 현대 사회에만 적용된다”라는 에저튼의 구절은 무슨 뜻인가? “현대 사회에만 적용되고 잘 설명된다”는 뜻인가? 아니면 “현대사회만 적용되지만 그것도 잘 설명하지 못한다”는 뜻인가?

에저튼 논의에 영향을 준 사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 계량 경제학 및 경제사의 전통
  • 변화란 일부에서 일어날 뿐, 대부분은 지속된다는 견해
  • 장기간 지속되는 것들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과 제약이 생각보다 크다는 견해.

지식 & 기술, 사용 & 혁신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나?

knowledge in the making : 과학 but 모든 지식은 아님.
knowledge in use >> knowledge in the making.
making 중인 지식은 과학으로 생각되지만, 나머지 지식들은 우리 주변의 ‘상식’이 됨.
technology in the making : 혁신 but 모든 기술은 아님.
technology in use >> technology in the making
making 중인 기술은 ‘기술’로 인식되지만, 나머지 기술들은 우리 주변의 ‘사물’이 됨.
그러나 이 ‘사물’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루는 구조의 일부가 됨.
[지식의 혁신 → 기술의 혁신 → 경제의 성장(혁신)]의 오류 지적. 그 대신 아래처럼 생각.
[지식의 이전 및 사용 → 기술의 혁신] & [기술의 이전 및 사용 → 경제의 성장]
[지식의 사용 →feedback 지식의 혁신] & [기술의 사용 →feedback 지식과 기술의 혁신]

지금까지의 기술사가 혁신과 새 기술의 출현에 치중되어 서술된 이유는 무엇인가?

새로운 기술의 출현이 우리 사회를 바꿀 것이라는 기술적 미래주의 때문이다. 이러한 혁명적, 미래지향적인 수사학은 1900년대 이래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오래된’ 사고방식으로, 이는 우리의 행동과 사고에 영향을 주고, 다시 과거의 기술을 서술하는 기술사에서도 ‘혁신’을 강조하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사실 이들의 과거 주장은 현실과 큰 간극이 존재했으며, 그래서 현재의 미래주의적 주장은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위해 자기 주장의 역사를 부정해야 한다. 에저튼은 이러한 반복적인 실패와 그럼에도 끊임없이 계속되는 ‘오래된’ 굴레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발제문에는 “혁신에 대한 강조가 과거와 현재에 관한 연구뿐만 아니라 미래의 예측에서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적고 있는데, 이는 에저튼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큰 관련이 없다.

발제문에는 없지만 흥미로운 에저튼의 주장들

국가사에서 특히 혁신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혁신이 국가의 경제 성장을 추동한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한 국가의 사용 기술은 대부분 수입된 기술이다. 기술 이전은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에서 선진국으로도 이루어지며, 그것이 더 흔하고 중요하다. 이러한 기술의 국제적 성격은 혁신이 국가의 경제 성장을 추동한다는 믿음에 타격을 줄 수 있다. 국가가 사용하는 기술 중 대부분은 외국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국가의 기술 혁신과 국가의 성장률은 긍정적 상관관계가 없다.

“혁신 연구는 미래에 의해 체계적으로 편향되어 있다. 우리는 나중에 (확산에) 성공한 혁신에 관해 연구한다. 우리는 나중에 지배적이 된 유형의 혁신 기관(예컨대 산업체 연구소)의 전사를 연구한다. 그리고 나중에 전형적이 된 과학-기술 관계에 관해 연구한다.”

1900년대 이래, ‘발명의 발명’, ‘발명의 산업화’, ‘혁신의 루틴화’가 일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