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suit Mathematical Science and the Reconstitution of Experience in the Early Seventeen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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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eter Dear, "Jesuit Mathematical Science and the Reconstitution of Experience in the Early Seventeenth Century," SHPS 18 (1987), 133-175.

과학혁명기 '실험'의 의미는 쉽게 특징지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문제는 17세기 동안 '경험'이라는 개념이 새로운 목적에 맞도록 어떻게 재구성되는가에 있다. 스콜라 자연철학에서 경험은 일반적 진술(how things usually occur)인 반면, 17세기에 경험은 구체적 사건을 기술하는 진술의 형태를 띠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새로운 경험 개념이 자연철학의 핵심요소로 자리잡게 되는 과정을 예수회의 수리과학을 살펴봄으로써 살펴본다.

예수회 학자들의 수학의 지위를 높이기 위한 노력: 핵심 문제는 논증의 전제로서의 '경험'

예수회 학자들은 클라비우스의 영향 하에서 수학의 지위를 높이고자 노력했는데, 이런 노력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학문 모형 안에서 이루어졌다. 클라비우스는 수학의 유용성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이 자연학의 필수요소임(자연학에서 수학적 논증을 필수적으로 사용함)을 주장했다. 특히 수학은 원인에 대해 탐구를 하지 않음에도 확실한 논증을 제공함으로써 자연철학과 같이 자연세계를 다룰 수 있는 '진정한 과학'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클라비우스는 수학의 논리적 구조를 강조하는 한편, 응용분과(수학)를 과학의 일반 모형에 맞추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노력 자체를 볼 때 그가 수학의 과학적 지위를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블랑카투스는 기하학의 논증은 형상인과 질료인을 활용하고, 기하학이 기하학적 대상의 본질을 다룬다고 주장함으로써 수학의 논리적 구조에 대한 클라비우스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에서 수학을 진정한 과학으로 만들고자 했던 이들이 부딛혔던 문제는, 과학적 논증이 기초하고 있는 전제들의 확실성 문제였다. 실제적 관점에서, 경험적 원리들은 모든 이들이 그것의 진리에 동의할 때 명백한 것이었다. 이때의 경험적 진술은 스콜라적 의미로서, 경험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진술로 표현되었다. 공통된 경험을 통해 모두가 알 수 있어야 명백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스콜라 자연철학적 '경험' 개념

스콜라 자연철학적 의미에서 경험은 보편 진술의 형태를 띠는데, 단칭 진술은 명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지식은 공적이어야 했고, 개별적 경험은 공적이지 않아 과학적 논의의 요소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도토리는 보통 떡갈나무가 되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 설명될 필요도 있었다.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은 wx suppositione의 추론을 활용하여 도토리가 떡갈나무가 되는 것은 도토리의 본질로서 설명하고, 떡갈나무가 안 된 이유는 우연적인 방해물로서 설명했다. 후자의 설명은 도토리의 본성에 대해서는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이는 감각에 의해 습관적으로 공급되는 경험만이 과학적으로 유관성을 지님을 보여준다. 자연의 통상적 과정을 벗어나는 것은 monster로 이름 붙여졌다. 즉 경험이 말해주는 것은 'how nature usually behaved'였다. 이러한 스콜라적 경험 개념은 예수회에에서도 계승되었고, 개별 경험을 사용하는 것을 막는 요소가 되었다.

천문학 관찰의 문제

천문학에서의 관찰이 문제가 되었다. 블랑카누스는 망원경 관측을 중요시했는데, 그런 경험은 보편진술로 표현될 수는 있었지만, 그 경험은 망원경 관측자만의 것이었기 때문에 명백할 수 없었다. 사실상 천문학의 관찰자료는 기구의 도움을 받은 개별 관측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천문학은 언제나 정통 스콜라적 경험의 견해에 잠재적인 anomaly였다. 블랑카누스는 기존의 현상과 관측의 개념을 재정의했다. 그는 (단지 천체의 외양이 아니라) 모두에게 알려질 수 있는, 즉 명백한 것으로서 현상을 정의했다. 이것이 진정한 과학의 경험적 가정이었다. 그러나 덜 명백한 원리도 있는데, 이것이 관측이었다. 그는 현상과 관측을 인지적 지위에서 구별되는 것으로 놓았는데, 둘 다 보편진술로 표현되었지만, 전자는 명백한 반면 후자는 그렇지 않았고, 전자는 일상경험을 통해 획득되지만 후자는 이상적 경험에서 (기구를 통해) 구성되는 것이었다. 과학의 목표는 명백하고 공적인 지식, 논증되고 필연적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천문학을 문제거리로 만들었다. 그래서 경험적 가정이 명백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해졌다.

실험의 문제

이는 천문학뿐 아니라 광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알 하젠 전통에서 '실험'은 인지적 범주가 아닌 '절차'였지만, Aguilonius와 Scheiner는 광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준을 만족하는 진정한 과학임을 보이고 싶었다. 아귈로니우스는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의 경험 개념을 사용했지만, 샤이너는 블랑카누스와 가까운 전략을 사용했다. 그는 블랑카누스의 관측을 경험으로 대체했는데, 이는 special empirics를 통해 구성되는 것으로, 보편진술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의 경험 개념은 'industry of special empirics' 없이는 명백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과학적 논증의 전제로서 의심할 수 없는 원리를 확립하고 싶어했던 그는 경험 대신 'abstruse and well-tired experiments'를 말했다. 그의 용어법에서 경험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경험인 반면, 실험은 경험이 구성되는 특정한 절차 혹은 수단이었다. 그는 과학적 논증의 전제로서 사용되는 원리들은 경험을 통해 정당화했다. 결국, 블랑카누스와 샤이너는 둘 다 수학의 과학적 지위를 강조했던 것이다. 샤이너는 특별한 empirics를 통해 구성된 지식과 명백한 현상을 구분하는데, 이는 블랑카누스의 구성된 관측과 명백한 현상과의 구분을 반영하는 것이고, 샤이너의 경험은 인공적인 실험들에서 구성되는 것이었다.

문제의 해법: 경험이 구성되는 과정 상세히 보여주기 + 자연/인공 구분 고수 + 목격자의 동원

문제의 '부분적인' 해답은 경험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과거에도 관측자료와 천문표 등을 상세히 기술했지만, 그것은 역사적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어떤 상황이 주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런 해답의 난점은, (a) 그런 경험적 지식의 생산이 관측자의 숙련과 사용하는 기구에 따라서 달리진다는 것, 그리고 (b) 그런 지식들이 도구적으로 구성되고, 경험이 empirics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어서, 자연적이지 않고 인공적이라는 것이었다. 예수회 수학자들은 두 가지 문제를 풀어야 했다. (1)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의 핵심인 인공/자연의 구분을 위협하는 문제와 (2) 과학적 전제가 명백해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시키는 문제였다.

  1. 예수회 수학자들은 수학과 자연학의 주제는 서로 다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역 구분을 고수함으로써, 인공/자연 구분의 문제를 피하려 했다. 수학은 자연의 양적 측면만을 다루기 때문에, 적법하게 자연적 과정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과 경계를 유지함으로써 mixed mathematical science에서의 논증의 견고함으로 보존하고(샤이너: 수학이 자연학보다 더 확실), 수학이 논증적 탁월성을 지닌다는 주장을 보호할 수 있었다. 수학이 원인을 다루지 않음으로써, 인공적으로 확립된 경험적 전제를 사용하는 것도 정당화할 수 있었지만, 그럴하도 해서 이것이 자연철학과 수학 사이의 위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연학에서 수학이 필수적이고, 수학적 발견과 논증에 빚지고 있다고 주장되었기 때문이다.(클리비우스, 샤이너) 그러나 수리과학에서 논증의 경험적 전제는 명백하지 않았고, 공적이기보다는 사적인 경험이어서 공적인 보증을 얻지 못하면 진정한 과학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과거 주석서를 통해 자신을 내세웠던 자연철학자들과 다리) 수학자들은 수학적 저술을 통해 사적 경험을 독자들에게 확장시킬 방법을 찾아야 했다.
  2. 보고서의 진실성을 보여주기 위해 수학자들은 문제를 기히학의 '작도' 문제 형태로 제시했다.(예. 광학 문헌) 기하학의 패러다임은 구성된 경험을 정당화하는 형식적 구조를 제공해주었다. 예를 들어, 자연학자를 자처했던 카베오(Cabeo)는 수학자들의 수사를 빌려오고, 아리스토텔레스의 demonstrative regress를 사용했다. 수학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기하학적 방법의 가치가 인정되었던 것이다. 특정한 실험에 너무 의존하지 않는 한, 기하학적 형식이 충분했지만, 논쟁이 될 때는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개별 사건들을 강조했다. 그라씨(Grassi)는 갈릴레오와 혜성에 관해 논쟁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역사적 사건'으로서 기술했다. 그리고 이런 역사적 사건과 개별 실험을 뒷받침하기 위해 목격을 인용한다. "경험적 전제는 명백해야 한다"는 조건이 거의 법적인 의미의 '증거'로 대체된 것이다. 증언이 문제가 되면서 그라씨는 목격자의 수를 늘리고 그들의 권위를 높이는 전략을 취하게 된다. 카베오의 사례도 흥미로운데, 그는 반복적인 실험을 통해 스콜라적 의미의 경험을 만들어내고, 경험의 사밀성을 목격을 통해 완화시키며, 목격자(의 감각인상)를 늘려 신빙성을 확보했다. 증언을 개별 사건과 연결하는 것이 그에게 중요한 방법론적 토대였던 것이다.


재정리

과학혁명기 '실험'의 의미 쉽게 특징지어지지 않았음. 이는 '경험' 개념 때문. 이 글은 예수회 수학자들이 수학의 지위를 높이려는 과정에서 '경험' 개념이 어떻게 변화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기구를 통한 관찰과 실험이 어떤 방식으로 정당화되었는지 검토하고 있음. 특히 예수회 수학자들은 영국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의 틀 내에서 진행.

수리과학의 지위를 높이려는 예수회 수학자들(클라비우스, 블랑카누스)의 시도 있었음. 수학의 논리적 구조에 의한 논증적 확실성은 인정받음. 그리고 자연학에서 그러한 수학적 논증 (항상?) 사용됨. 따라서 수학은 진정한 과학. 그러나 논증의 경험적 전제가 의심받음.

스콜라 철학적 의미에서 '경험'은 모든 이가 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명백한 것으로서, 보편진술로 표현되는 것. 즉 '경험'은 "How nature usually behave"에 대한 것. 그러나 (수학적) 기구(e.g., 망원경)를 통한 관측이나 실험(e.g., 광학)에서의 경험은 그러한 기준에 비추어 문제의 소지가 있었음. 그 경험은 일회적일 뿐더러, 인공적 기구 또는 절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었기 때문.

이에 대해 블랑카누스 또는 샤이너는 경험과 현상을 구분한다. 이들에게 현상은 명백한 것이지만, 경험은 인공적인 실험(절차)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된다. 이 때 현상은 구제되지만, 경험은 여전히 경험은 구제되지 못함. 이 문제의 부분적인 해법은 그 경험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것. 그러나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경험이 아닌 보편적 경험으로서 표현. 어떻게? "..하면, ...된다" 식으로. 그럼에도 그것이 (자연학의) 논증의 전제로 사용될 수 있느냐는 여전히 문제가 될 수 있었음. 특히 '인공적 경험' 문제.

이에 대해 예수회 수학자들은 수학과 자연학의 주제가 다르다는 전통적인 구분을 고수함으로써, 자연/인공의 문제를 피해감. 수학은 원인을 다루지 않으므로, 인공적으로 확립된 경험적 전제를 사용하는 것이 허용된다는 식의 주장. 그럼으로써 수학의 논증적 확실성까지도 보호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수학/자연학 위계 인정한 것 아님. 여전히 자연학은 수학의 논증을 필수적으로 사용하므로, 수학은 자연학과 어깨를 나란히 함.

또한 경험적 전제의 공적 보증을 얻기 위한 노력. 기하학의 '작도' 식으로 문제 표현. 그럼에도 잘 설득이 안 되는 문제의 경우에는, 개별 경험을 '역사적 사건'으로 기술.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목격 인용. 목격자 수 늘리기. 때로 반복 실험을 통해 스콜라적 의미의 경험에 가깝게 만들려는 시도(카베오). 이런 식으로 증언과 개별 사건을 연결시키거나 반복 실험을 통해 개별 경험의 안정성을 높임으로써 개별 경험의 사밀성과 일회성 극복하고 신빙성 확보하는 방법이 만들어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