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undations of Modern Science in the Middle 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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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핵심 질문: 과학이 중세 시기의 발전 없이 12세기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면 17세기 과학혁명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아니오. 중세는 17세기 과학혁명이 일어나는 데 중요한 역할 수행. 중세는 과학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contextual precondition' 마련.

중세의 유산

  • 개별 정밀 과학들(수학, 천문학, 정역학, 광학): 과학혁명에 내용적인 영향 주지 못함.
  • 지적 전통을 마련한 중세 대학의 출현: 세계사적으로 어떤 곳에서도 출현하지 못했던 가장 안정적이면서 자율적인 제도 출현. 즉 후원자의 변덕에 좌우되지 않는 그러한 제도로서의 대학 출현. 또한 서유럽의 안정적인 공통의 지적 기반 마련하는 역할 했음. 유럽의 모든 지식인들은 학부 교양필수로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철학, 논리학, 수학을 배웠음.
  • 자연철학: 모든 과학의 어머니로서, 중세 시기 자연철학이라는 종합적 과학 형성.
  • 종교와 자연철학의 충돌을 중재한 신학자 겸 자연철학자 출현: 자연철학은 신학과 항상 충돌할 위험 있었으며, 실제로도 충돌했음. 그러나 유럽에서는 신학자 겸 자연철학자라는 중재자가 있었다. 유럽의 신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자연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둘 사이의 충돌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 중세 자연철학과 과학의 언어: 번역과정에서 라틴어에는 없었던 단어들이 등장했고, 새로운 과학 용어들이 정의되고 정교화되었음. 이러한 용어들의 등장과 정교화는 이후(과학혁명기에도) 과학적 논의의 언어적 토대를 마련해주었음.
  • 중세 자연철학과 과학의 문제들: 중세 자연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맹목적 추종자 아니었음. 13-14세기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 자주 이루어짐. 새로운 방법론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짐. 사고실험이 자주 쓰이기 시작했고, quality를 수학적으로 다루면서 자연현상의 수학화에 영향 미침. (아마도 사고실험은 가설연역법으로 연결될 수 있을 듯)
  • 탐구의 자유와 이성의 자율성: 중세의 탐구 태도는 상당히 자유로웠음. 자유로운 탐구, 이성에 대한 강조, 자연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의 허용 등의 태도는 과학혁명이 일어나는 데 중요한 역할 했음.

중세 과학: 그리스-아랍-라틴 과학

그랜트는 대학에서 이루어진 그리스-아랍 자연철학과 기독교의 융합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기독교화"라든가 "기독교의 아리스토텔레스화"라고 칭한 린드버그의 주장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리스-아랍-라틴 과학(Greco-Arabic-Latin science)"이라는 새로운 범주의 형성으로 평가한다. 이러한 다문화주의적 평가에 따르면, 과학혁명에 대해 단순히 '고전의 재발견'으로 보는 관점은 적절치 못한 것이 된다. 그리스의 유산은 다른 곳에 있다 온 것이 아니라 중세의 다른 요소들과 함께 자연철학에 포함되어 끊임없이 변화발전해 과학혁명기까지 전해진 것이 되기 때문이다.

결론: 연속성의 의미

중세와 근대과학 사이에는 상당한 연속성이 있다. 그러나 이 연속성은 특정분야의 내용에 국한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랜트가 보여주는 연속성은 중세의 전반적인 지적 전통, 연구 전통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만 나타나는 것이다. 즉 그랜트가 대학을 통한 학문의 제도화 등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과학혁명을 낳았다거나 중세 자연철학의 내용이 근대과학으로 이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대학이란 제도를 통해 안정적인 배움의 전통이 이어지고 토론의 장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그랜트의 입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7세기 과학혁명은 실제로 일어났다. 그러나 그것은 "중세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것이 아니라, "중세가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