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gic of Inven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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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tting, Gary, “The Logic of Invention”, in T. Nickles (ed.), Scientific Discovery, Logic, and Rationality, 221-234.

발견은 특유의 논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 구조의 해명은 지금까지 무시되어 왔던 중요한 과학 활동의 측면들을 과학철학에 열어줄 것이다.

근본적 실수 : 발견/정당화 구분에서 출발하는 논증으로 인해, 마치 발견의(가설 개발의) 논리가 전체 과학의 논리 중 한 측면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게 만듦. 정당화의 논리와 더불어 발견의 논리도 있다는 것처럼 보임.

발견/정당화 구분은 정당화되지도 무언가를 밝혀주지도 못함. (1) 정당화 안 되는 이유 : 발견하기란 무언가를 알게 됨을 말하는데, 앎이란 정당화를 필요로 하기 때문. (2) 밝혀주는 역할을 못하는 이유 : 정당화 전에 가설 개발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과학방법론에서는 각각에 대응되는 것을 찾을 수 없기 때문. 다시 말해, 과학의 모든 방법은 정당화되는 가설을 개발하는 것을 의도함. 즉 ‘발견’이자 정당화의 방법임.

발견/정당화 구분 폐기는 가설 개발의 근본적 역할을 옹호하는 훨씬 더 유익한 길을 열어줌. 왜냐하면 정당화되는 가설의 개발이 즉 과학적 탐구의 바로 그 과정과 동일하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 이에 따라, 발견의 논리도 추가적으로 있다는 식의 논의가 아니라, 발견의 논리가 곧 전체 과학의 제1 목표로 간주함으로써 과학방법론의 논의를 바꿀 필요가 있음.

이러한 논의 지형 변경은 몇 가지 중요한 귀결 가짐. (1) 표준 방법론적 문제가 실제 과학 활동과 무관함을 설명해줌. (e.g., 입증의 역설이 과학적 탐구 과정에서는 나타나지는 않는 상황에서만 생기는 문제라는 점 보일 수 있음. 관찰의 이론 적재성과 듀앙 논제로부터 생기는 문제에도 적용 가능) (2) 발견으로서의-과학 접근법은 다양한 과학적 추론 방식에 의한 발견 과정이 수행하는 특정한 역할을 조명함으로써 과학철학에 중요한 새 주제를 열어줌. 즉 귀납, 연역, HD 추론이 각각 정당화되는 가설의 개발에서 독특한 기능을 가짐을 보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상대적으로 무시되어 왔던 추론 방식(e.g., 귀추, 개념 분석)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일 수 있음. 나는 발견으로서의-과학 접근에 의해 제공되는 이 새로운 전망을 과학적 발견의 한 결정적인 측면, 즉 가설의 발명을 반성함으로써 예증해 보일 것임.

가설 발명의 과정도 논리적으로 분석 가능하다.

발명 : 과학적 가설(모호한 아이디어)의 발명이 논리적 분석이 될 수 있는 과정임을 보일 것임. 또한 그러한 분석이 과학철학의 무시되어 왔던 새로운 차원을 열어준다는 것을 보일 것임.

논리1과 논리2의 구분 : 좁은 의미에 해당하는 ‘논리1’은 결론에 대한 근거를 제공하는 과정. 넓은 의미에 해당하는 ‘논리2’는 철학적(인식론적) 분석을 통해 해명가능한 합리성 구조를 가진 과정. (이러한 ‘논리2’의 의미에서, 미학은 예술이 논증적 과정이라는 함축을 가지지 않고서 예술의 ‘논리’에 관련된 것으로 말할 수 있음)

논리1을 가진 과정은 논리2도 가지지만, 논리1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논리2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음. Kordig(1978)는 이를 혼동하여, 최초의 생각을 떠올리는 일에 논리1이 없다는 이유로 인식론 및 과학철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 그러나 감각 지각의 본성은 인식론의 주제가 됨. 지각이 근거를 제공하는 것과 관련되지 않음에도 말이다.

가설의 발명 과정은 논리2를 가짐 : Kordig(1978)는 “누구든 거의 아무 거나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 자명해 보이는 말은 거짓이다. 충분한 지식과 상상력을 갖춘 사람이라도 전자 스핀 가설을 생각해낼 수는 없었다. 오직 원자를 행성 모형으로 고민한 과학자들만이 그러한 가설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또한 그 가설은 그 모형에 잠재되어 있었으며, 이 모형을 발전시키는 데 진지한 관심을 가진 사람에게 더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전자 스핀 가설 발견에 대한 질문의 답에는 보어의 원자 모형의 성격에 대한 개념 분석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발명에 대한 완전한 설명에는 심리학 필요. 그러나 심리학은 철학적 설명과 상보적. 심리학이 철학적 설명을 대체하진 않음. 이 철학적 설명이 바로 논리2.

가설의 발명 과정이 논리1을 가지는 데 원리적 장애물 없음 : 흔히 논증이란 증명되어야 할 명제를 가지고 시작. 그러나 논증을 만들어내는 것을 통해 그 논증 대상이 되는 명제를 처음 생각하는 것은 하등 이상한 점이 없음. 예1: 수학적 도출을 통해 우리는 생각지 않았던 명제를 처음 생각해낼 수 있음. 예2: 섀프너(1974)와 다르덴(1976)의 사례는 새로운 가설을 이끄는 논리적 논증의 일반적 개요 보여주기고 했음. 다르덴(1976)의 개요는 어떻게 과학자가 자신의 문제와 이미 푼 문제 사이의 유비에 기초하여 새로운 가설을 논증(주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줌.

발명의 논리1이 있다는 주장에 대한 대표적인 반론인 ‘새로운 아이디어를 기계적으로 생성하는 방법(알고리즘)이 없다’는 얘기로부터도 ‘발명의 논리1이 없다’는 주장이 따라나오지 않음. 명백히 논리1으로 보이는 과정도 알고리즘적인 계산 문제로 환원되지는 않으며 창의성이 요구됨. 예1 : 가설의 정당화 과정은 논리적이라 인정되지만, 상당한 기술과 상상력이 요구됨. 섀프너의 지적 : “형식 논리학의 연역조차도 비알고리즘적이다”(1974, p. 383).

귀추는 논리적 과정인가?

과학적 가설의 발명이 어떤 점에서 논리적일 수 있는지 더 명료하게 밝히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의 소스로 자주 인용되는 추론 방식을 점검해보자. 퍼스의 귀추.

HD와 RD의 논리적 구조는 동일. 방향만 다름. 핸슨은 둘 사이의 개념적 차이 주장. HD는 일관된 전제(가설)로부터는 일관된 결론들(경험적 귀결)만 나옴. 그러나 RD는 일관된 전제(경험적 자료)로부터 일관되지 않은 결론들(가설)이 나올 수도 있음. 그러나 여기서 핸슨이 쓴 ‘전제’, ‘결론’이라는 표현은 논리적이기보다 심리적 용어. 왜냐하면 논리학의 관점에서, 전제란 결론을 생성하기 위해 추론 규칙이 적용되는 문장이어야 함. 그러나 RD의 ‘전제’는 그렇지 않음. RD에서의 ‘전제’와 ‘결론’은 사고 과정에서 출발선에 있던 것과 마지막에 도달한 것에 지나지 않음. 즉 핸슨이 지적한 HD와 RD의 차이는 심리적 차이일 뿐. 게다가 발견의 논리에 대한 이런 방식의 옹호는 작은 전투에서만 유리할 뿐 큰 전쟁에는 불리. 그가 주장한 차이는 중요한 차이가 아니었으며, 결국 그가 주장한 차이는 과학적 추론에는 단 하나의 근본적 형태(HD)가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변화시키기지 못함. 귀추적 추론의 ‘논리적 형태’만 집중적으로 분석한 것도 핸슨의 약점. 그 과정에서는 그는 퍼스가 강조한 귀추의 또다른 특징들(설명적 가설의 선택을 규제하는 원리들에 대한 의존성)을 간과했음. 사실 귀추법에는 문제가 있음. 적법한 귀추를 위해서는 다른 조건들 필요(애친스타인 1970, 퍼스). 예를 들어 추론된 가설이 거짓일 독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한다와 같은 조건은 기초적. 그러나 특정한 과학적 맥락에서의 귀추의 사용은 추구하고 있는 과학적 탐구의 특정한 라인에 대한 상당한 방법론적 존재론적 동의(commitments)를 표현하는 원리들에 의해 규제될 것이다. 이 동의들이 가설의 발명을 강하게 조건지우며, 귀추적 추론을 특징짓는 것은 바로 그들의 역할이다.

귀추의 규제 원리로 넘어가기 전에 : (1) 귀추를 발명의 방법으로 간주하는 것은 적절한가? 적절하다. 발명의 방법이자 발명된 가설의 평가 방법도 될 수 있음. 가설을 처음 생각해낸 것이 주어진 문제에 답하는 데 적절함 때문일 수 있으며, 더 구체적으로, 가설이 관련된 규제 원리를 만족하는 방식으로 정확히 귀결을 도출하는 핵심 전제로서 과학자에게 처음 떠오를 수 있음. 한편, 한번 발명되고 나면, 귀추의 규제 원리들과 일관된지 상세히 점검함으로써 더 명료한 평가도 가능. 즉 귀추는 발명의 방법이자 발명된 가설의 평가 방법도 됨. (2) 귀추의 규제 원리의 역할은 귀추가 왜 완전히 성숙한 가설을 이끌지 않는지 설명. 왜냐하면 규제 원리들이 과학적 문제의 답을 선택하는 데 미결정적인 일반적인 제약조건들이기 때문. 그 제약조건 모두를 만족하는 가설은 다수임. (3) 가설의 귀추적 발명은 논리적 과정인가? 명백히 논리2를 가짐.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 기본적 성격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제공했기 때문. 그렇다면 논리1은? 과연 귀추는 전제로부터 결론을 생성하는 데 논리 규칙을 적용하는 방법인가? 논리 규칙을 형식 원리에 한정한다면, 귀추는 논리1 과정이 아님. 그러나 논리 규칙에 내용 규칙을 허용한다면, 귀추는 ‘규제 원리를 내용적 추론 규칙으로 가짐으로써’ 논리1 과정이 됨(가능?). 즉, 귀추는 합리적이면서 규칙-기반 과정이다.

가설 발명의 규제 원리 =

규제 원리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음. (1) 발견적 원리 (2) 과학적 목적 (3) 우주론적 원리

(1) 발견적 원리 : 아이디어 개발 과정 촉진. 가설의 고유한 과학적 장점에는 관심 없고, 오직 수용가능한 가설의 발견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효율성에만 관심. 발견적 원리의 유명한 사례는 단순성과 유비. 단순성은 가설의 참과는 무관. 단순한 가설을 선호하는 이유는 작업하기 쉽고, 재빨리 시험할 수 있기 때문. 퍼스에 따르면, 우리는 심지어 거짓일 좋은 이유를 가진 매우 단순한 가설을 선호할 수도 있음. 어떻게 왜 그것이 실패하는지 정확히 알아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음. 유비적 추론이 사용되는 이유는 오래된 이론이 가진 광범위한 자원(문제풀이 기법 등)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 혹자는 이 단순성과 유비를 발견법 이상으로 생각하기도 하며, 때때로 단순성이나 유비에 대한 과학자의 호소는 특정한 종류의 세계관에 대한 그의 동의를 반영하기도 함. 또한 때때로 그 추론은 귀납적 논증의 형태를 띠기도 함. 그러나 단순성과 유비는 최소의 발견적 의미만을 가지는 것으로 가장 잘 해석된다.

(2) 과학적 목적 : 두 가지 있음. 하나는 기본 목적으로, 이는 하버마스가 과학의 ‘인지적 관심’이라 부른 것을 규정하며, 과학 그 자체의 의미이기도 함. 물론 이 기본 목적의 정확한 성격은 논쟁의 여지가 있음. 참? 설명? 예측과 통제? 문제 풀이? 등등이 그 후보가 됨. 어떤 경우이든, 이러한 과학의 목적에 적절하지 않은 가설은 간단하게 진지하게 추구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덜 근본적인 목적들로서 중요하지만 덜 근본적인 기준이 됨. 이런 원리의 예로는, 수학화(혹은 특정한 수학화 방식)에 대한 요구, 진화적 모형에 대한 요구, 행동적으로 정의가능한 개념에 대한 요구 등. 이러한 원리들은 과학자들이 희망하는 과학의 이상을 표현. 따라서 이들은 귀추적으로 추론되는 가설에 강한 영향 줌. (이러한 다양한 목적으로부터 파생되는 과학이라는 관점은 과학이 명제들의 시스템이 아닌 일차적으로 인간의 활동이라는 생각에 의존. 또한 과학의 수행에서의 방법론적 고려의 역할에 대한 역사적 연구에도 의존.)

(3) 우주론적 원리 : 세계의 성격에 대한 존재적 가정들로서, 과학의 경험적 자료에 기반하지 않은 원리들. 많은 연구들은 과학적 작업들이 그러한 원리들에 강하게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줌. 그러나 역사적 사실 이상으로, 그러한 역할이 과학의 필수적인 특징이라는 점은 제대로 주목받지 않음. 과학적 세계관의 건설은 출발점을 가져야 하며, 정의상 그 시작점은 비과학적 개념틀이어야 함. 만약 하나의 비과학적 기원으로부터 꾸준히 개선됨으로써 과학적 분과가 발전했다면 이는 별로 중요치 않을 것. 그러나 이는 그렇지 않음. 계속된 과학적 진보는 세계의 본성에 대한 상당히 다른 관점의 주기적인 주입을 필요로 함. 형이상학자, 신학자, 시인 등의 사변과 전망을 제외하면 이것이 어디서 올 수 있을까? 더구나 하나의 비과학적 개념틀을 도입하고 발전시키는 결정은 작은 일이 아님. 비과학적 틀에 대한 과학적 정제와 평가는 몇 세대, 몇 세기 걸림. 따라서 과학자가 비과학적 틀의 전망을 사전에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중요한 일임. 즉 과학자는 세계관에 대한 비과학적 평가에도 관련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따라서 우주론적 원리들은 과학에서 비과학적 분야들에 대한 불가피한 의존성을 보여줌. (물론 우주론적 원리들이 계속 성공하면 경험적 증거를 가진 원리가 되기도 함. 즉 과학 외적 규제 원리였던 것이 경험적, 과학적 지위를 가지게 될 수도 있음. 예 : 물질이 원자적 구조를 가진다는 관점)

규제 원리의 역할이 가진 과학철학적 함의

우주론적 원리의 과학 외적 기원은 과학의 자율성 논제 거부. 우리는 과학을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더 넓은 지적 노력의 일부분으로 간주해야 할 것임. 이는 적어도 과학철학의 두 가지 새 탐구 영역을 인도. (1) 과학적/비과학적 앎의 방식 모두에 적용될 수 있도록 설계된 합리성의 방식을 개발해야 할 필요성. 몇몇 합리성의 모델(포퍼, 라우든)은 비과학적 사례에도 적용되도록 의도되긴 했지만, 그 측면은 상세하게 전개되지 않았으며 과학적 분야와 비과학적 분야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제기된 많은 인식론적 문제는 별 주의를 받지 않았음. 한 유익한 소스는 푸코의 ‘담론 형성’ 개념. (2) 발견 과정에서 우주론적 원리가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우리의 설명은 ‘원시과학(protoscience)’의 중요성을 보여줌. 즉 실재에 대한 일반 모형의 철학적 구성이 과학적 연구를 가이드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음. 전통적으로 과학 지향적인 사변적 형이상학은 서구 지성계에 철학이 준 주된 공헌. 그러나 최근 형이상학 지향적 철학자는 반과학적이 되고, 과학 지향적 철학자는 반형이상학적이 됨. 이는 대체로 실증주의자들의 과학의 자율성 주장 때문. 예외는 셀라스. 발명의 논리에 대한 우리의 논의는 이런 종류의(셀라스식의) 철학적 제안의 적절성을 보여주며, 철학자가 미래 과학 작업을 위해 유익한 방향을 그리기 위해 의도된 진지하게 형이상학적인 사변을 취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하고 있음.

과학의 기본 목적의 역할

과학의 기본 목적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는 과학과 가치 문제에 핵심. 이는 과학이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가진 우연한 가치에 의존함을 말해주기보다는, 과학이 그 자신의 가치 집합에 의해 정의된 인간 활동으로 보임. (그 가치는 다시 다른 인간의 기본 가치에 의해 정당화되고 연결될 필요가 있지만).

이러한 관점에서 파이어아벤트의 무정부주의적 과학관 평가해보자. 파이어아벤트에 따르면, 과학에는 가치가 적재되어 있으며, 그것은 문제가 아님. 그런데 그 가치는 내적 가치가 아니라 과학 외적 가치들, 즉 과학을 통제하는 사람이나 기관의 이데올로기, 가치에 의해 규정. 따라서 어떤 방법론적 원리도 그 과학을 수행하는 가치에 따라 정당화될 수 있음. 저자가 보기에, 방법론적 원리가 과학이 의존하는 가치에 의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파이어아벤트의 말은 적절. 그러나 그 가치가 과학 외적이라는 것은 틀렸음. 저자가 보기에, 이 가치들은 과학의 본성을 정의하는 기본 목적의 표현임. 더 나아가, 이 목적의 성격에 대한 가능한 최상의 설명(하버마스의 인지적 관심 이론)은 과학을 정의하는 가치들이 과학의 목적에 대한 파이어아벤트 본인의 개인적 선택인 인간 성취와 해방의 이상과 매우 근접함을 보여준다. 즉 발견 과정으로서의 과학에 대한 이해는 과학에서 가치의 역할을 강조한 파이어아벤트를 적절하게 평가해주는 동시에 그 오류를 피하게 해준다.

  • HD와 RD가 똑같은 논리적 형식을 가진다면, RD는 추구의 논리, 사전평가의 논리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커드나 라우든의 주장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 거꾸로 HD조차도 추구의 논리가 되어야 하나?
  • 애친스타인이 제기한 일반적 귀추 모형의 미결정성 문제는 HD에 의한 이론 미결정성 논제와 다를 바가 없어 보임.
  • 가설 발견의 방만함을 줄이는 데 규제 원리가 필요하며, 이 규제 원리, 특히 우주론적 원리의 존재가 과학 내외의 상호작용이 필수적임을 보여준다는 논리는, HD에 의한 이론 미결정성으로부터 사회구성주의적 주장으로 나아간 것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음.
  • 사회구성주의자들은 과학의 기본 목적이 변화해 왔음을 주장. 과학의 기본 목적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도, 사회나 시기에 따라 그것이 변화할 수 있다면, 즉 과학의 정의가 변화한다면, 기본 목적의 존재로부터 무정부주의를 막으려 한 Gutting의 논증은 어떻게 옹호될 수 있을까?
  • 유비와 단순성은 정말 실용적 발견법으로서만 기능할까? 유비가 발견법 이상의 역할을 가진다는 논변이 가능해 보임. 예컨대, 단순한 귀납조차도 유비에 근거한 것으로 보이기도 함.
  • 발견과 정당화의 구분을 더욱 확실히 무너뜨린다면? Curd의 경우, 발견과 정당화의 구분은 새로운 예측에 의한 시험 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