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Philosophers Should Not Despair of Understanding Scientific Discov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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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발견에 대한 철학적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논리경험주의의 몇몇 근거 없는 메타철학적 믿음들의 영향 때문이다. (1) 과학철학은 과학의 (좁은 의미의) 논리이다. (2) 과학철학은 경험적 고려에 영향을 받지 않는 선험적 분야이다. (3) 과학철학은 '완결된 연구 보고서'의 논리에 관한 학문이다. 이 메타철학적 믿음들은 논리경험주의의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실제로 철학자들은 암묵적으로 이 메타철학적 믿음을 따르고 있는 것 같다. 즉 아직도 철학자들은 대체로 메타과학적 개념들(법칙, 이론, 설명, 입증도 등등)의 시간초월적인 분석을 제공하고 있다. 몇몇 예외도 있지만 그 경우에도 과학 활동에 대한 세부적인 고려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완성 이론에 대한 평가를 수행하는 경우에도 그들은 완성된 이론처럼 평가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는 미완성의 이론을 중요한 발견으로 인도할 가능성의 측면에서 평가 가능한지에 대한 물음을 금지하고 있다.

과학철학이 과학의 논리라고 한다면, 과학적 발견에 대한 유일한 철학적 질문은 "과학적 발견의 논리는 무엇인가?"일 것이고, 논리경험주의의 메타철학적 믿음이 허용하는 답은 "발견의 논리는 없다" 뿐이다. 보통 발견이라고 하면, 이는 새로운 질문의 물음, 새로운 이론의 창조, 새로운 종류의 현상의 인지 등과 연관된다. 즉 발견은 개념적 혁신을 포함한다. 그리고 분명 개념적 혁신에는 논리가 없다. 또한 '완성된 산물'에 나타난 주장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만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시간적 고려는 중요치 않다는 관념과 함께) 발견을 철학적 이해의 영역에서 밀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발견의 이해에서 시간적 순서는 핵심적이기 때문)

이제 발견에 관한 흥미로운 철학적 질문이 있다는 것을 보이고, 그 질문에 대한 긍정적 답을 허용하는 메타철학을 대략적으로 이야기할 차례이다.

과학적 발견의 철학적 이해를 통해 기대하는 것은? 개념적 혁신의 인지적으로 유용한 분류법의 정립 또는 그러한 혁신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적 지침의 정립. 그러나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여기서 기대해선 안 되는 것의 목록을 나열해보겠다. (1) 주어진 입력으로부터 특정한 혁신을 산출하거나 혁신을 평가하는 계산법의 개발 (2) 발견의 (정확한) 내용 예측 (3) 발견을 위한 여러 접근을 평가하면서 어느쪽이 성공할지에 대한 예측 (4) 대안 가설들의 그럴듯함이나 대안적 접근들의 발견 산출 가능성의 순위를 매길 수 있는 맥락 초월적인 규칙의 발견이나 정당화.

이 중에서 (4)의 주장이 가장 중요하며 가장 논쟁적이다. (4)를 완전히 밀고 나갈 경우, 발견, 합리적 학습 전략뿐 아니라 지지(support), 정당화, 설명, 이론 등에 대한 철학적 해명 역시 맥락 초월적일 수 없다는 주장이 됨. 지지의 논리도 목적, 가능한 배경지식, 필요한 엄밀성 등에 의존하며, 소위 발견의 맥락에서의 그럴듯함, 적저렁, 합리성을 관장하는 제약들도 과학적 맥락과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발견을 위한 방법에 대한 맥락의존적인 평가 기준의 적절성을 정립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 발견에 대한 이해를 위한 몇 가지 요소들을 지적한 후 1차적인 관심인 메타철학으로 돌아가겠다.

세계에 대해 배우는 과정에서 우리는 배우는 방법도 배운다. 더들리 셰피어에 따르면, "방법, 추론 규칙, 기준(예컨대 무엇을 설명으로 간주할 수 있는지에 관한)은 그 적용을 통해 얻은 믿음과 손에 손을 잡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 자신을 통해 얻은 지식이나 믿음에 의해 변경될 수도 있다." 내용과 방법은 연속적이며 상호의존적이며 상호 영향을 준다. 방법에 의해 내용이 바뀌면 다시 그 내용에 의해 방법도 바뀔 수 있다. 내용의 정당성은 방법과 기준에 정당성에 의존하지만, 다시 방법과 기준의 정당성은 내용의 정당성에 의존하기도 한다.

발견과 관련된 철학적으로 중요한 세 가지 사항 : (1) 관심 현상의 영역의 분리(분류). 이는 단순한 자료 수집 이상을 의미한다 이는 자료를 기술하고 자료를 보으기 위한 분류 도식의 정립과 관련되어 있다. 또한 앞으로의 개선을 위해 질문 대상이 되는 현상에 대한 충분히 강력한 기초적 설명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전기 현상에 대해 알려면 전기 현상에 무엇이 속해 있는지를 정해야 한다(cf. 심령현상의 경우). 밀과 왕겨를 분리하는 일은 단순한 자료 수집이 아니다. 이 현상에 대한 신뢰할 만한 지식을 얻기 위해, 우리는 일정한 개념적 재조직화를 필요로 한다. 프랭클린이 전기 현상을 다룰 때, 멘델이 유전자라는 가정에 도달할 때, 뢴트겐이 X레이가 방사선의 일종임을 확정할 때, 베크렐이 자연방사선을 발견할 때 등등은 바로 어지러한 현상과 자료에서 특정한 현상을 분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영역 내 현상으로 간주되는 경험적 결과를 적절하게 구조화된 신뢰할 만한 것으로 정제하는 일은 초보적인 관찰활동뿐 아니라 이론적 활동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e.g., 플랑크의 흑체복사 법칙 발견). 수용되기 위해 결과적인 발견은 관련 영역의 현상들을 모두 설명하거나 관련 현상들을 재조직할 수 있는 원리를 제공함으로써 통일성을 설명해야 한다는 제약을 받기도 한다. 또 우리는 영역 내 현상에 관한 정보가 통일될 수 있는 원리에 대해 더 많이 배움에 따라 그와 매우 멀리 떨어진 영역의 현상에 대해 배우는 방법에 관해서도 배우기도 한다.

(2) 배경 지식의 구조. 이웃 영역의 이론이나 지식, (상위의) 통일적인 이론, 다양한 방법론적 원리, 형이상학 등. 하나의 발견에 관련된 배경지식은 겉보기에 독립된 영역의 현상에 대한 지식일 수도 있다. 이 이웃 영역의 지식의 변화는 발견의 제약조건들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예 : 데이비와 럼퍼드는 1800년 경에 마찰을 통해 무한히 열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 발견. 그러나 칼로릭 이론은 1830년대에 이르러서야 인기를 잃었다. 즉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데이비와 럼퍼드의 결과 때문도 아니며 (1840년대 수행된) 줄의 열의 역학적 등가량 실험 때문도 아니다. 이 변화는 핵심적으로 1820년대 말 프레넬의 빛의 파동 이론의 승리와 열과 빛 사이에 가정된 유비 덕분이었다(통합 이론에 기초한 유비가 아닌, 복사열 실험과 빛 실험 상의 유비에 기초). 게다가 럼퍼드와 데이비의 이론은 당시 분명한 열 현상 영역에 속한 중요한 현상(오늘날 복사열로 취급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었다. 태양열이 어떻게 지구까지 전달될 수 있는가? 프레넬의 빛 에테르는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즉 배경 지식의 구조 변화는 가설 생성과 평가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3) 발견은 주로 문제에서 시작한다. 문제는 배경 정보, 관련 영역의 경험 지식, 유관한 이론 등에 의존한 명확한(변경가능하지만) 구조를 가지고 있다. 동시 발견의 많은 사례들은 바로 이러한 문제 구조의 명확성 덕분이다. 명확하게 정의된 문제 구조는 발견 과정을 마치 논리가 있는 것처럼 하나의 발견으로 인도하는 강한 제약을 발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은 가설 형성뿐 아니라 그럴듯함, 지지, 합리적 수용에 관한 평가에도 적용된다. 이는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의 구분이 과장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종합/분석 구분처럼 정도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 매우 동일한 요소가 가설 생성과 이론 구성에 사용되는 유비 또는 관계를 제안하는 동시에 결과적인 가설과 이론의 추구할만함의 평가에도 영향을 주는 한편(빛의 파동 이론 수용이 열 이론을 평가하는 데 사용된 사례), 가설, 설명, 이론의 그럴듯함, 시험할만함, 지지, 합리적 수용의 평가에도 사용될 수 있다. 정당화와 지지의 기준은 배경 정보, 경험적 가정과 전제, 관심과 목적과 독립적이지 않다. 합리성의 기준은 우리의 세계에 대한 지식에 의존하며 따라 변할 수 있다. 즉 발견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주장의 인식적 평가 역시 맥락의존적이다. 역으로, 발견의 맥락에 속한 활동 역시 정당화의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는 비판과 합리적 평가에 의존한다. 종합하면, 문제 선정, 현상 영역 정립, 가설 고안 및 선택, 가설의 시험, 이론의 고안과 개량과 시험 모두 모두 맥락의존적인 동시에 엄격한 비판적 활동에 의존한다. 합리성을 평가하는 일는 사용가능한 지식에 비추어 (그 역시 지속적인 비판적 평가를 필요로 하는) 기준에 의해 맥락 내에서의 적절성을 평가하는 것과 같다.

결국 과학철학이 경험적 내용과 무관한 선험적 활동이라는 생각은 잘못되었으며, 이로써 발견에 대한 철학적 검토를 방해하던 메타철학적 반대가 제거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콰인의 작업과 잘 맞아떨어진다. 철학은 인간(의 지식)에 대한, 그들의 활동에 대한, 그들의 세계에 대한 전면적이고 비판적인 연구이다. 이는 과학과 연속적이며 그에 우선적이지 않다. 이는 관심 대상에 대해 비판적이며, 반성적이며, 통합적이다. 즉 철학적 연구는 인간이 사는 문제 맥락의 트랙을 잃어서는 안된다. 과학적 방법에 대한 철학적 비판과 우리 지식의 건전성에 대한 철학적 평가는 그 지식의 내용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의존하는 지식의 내용에는 철학 이론도 포함된다. 어떤 철학도 경험적 개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이 글의 주장은 콰인의 분석/종합 구분 철폐 증명을 따르고 있다.